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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존재와 소통하기 # 1. 코뮨은 다양체 매주 화요일에 R식구들끼리 회의를 한다. 이번 주는 금요일 쥐 그래피티 선고 공판, 그 이후 국면 대책을 논의했다. 기소자 2명이 입장이 달랐다. ‘나는 즐겁다 끝까지 싸우겠다’와 ‘나는 피곤하다 이쯤에서 그만두겠다.’ 당사자를 비롯해 남녀로 편이 갈렸다. 그래피티 사건이 법과 예술의 대결구도가 됐고 우리가 잘못한 게 없으니 현장정치 공부도 할 겸 끝까지 가자는 남자들, 지금까지 싸운 것으로 충분하니 지리멸렬하게 끌지 말고 한 명이라도 원하지 않으면 다 같이 끝내자는 여자들. 둘 다 일리 있다. 필요한 지적이다. 그런데 묘했다. 하나의 사안을 두고 남자의 무한정복욕망과 여성의 정서공감능력이 확연히 드러났다. 지난주 일이다. 난 회의시간이 다 되어 연구실에 도착했다. 책장의 배치가 ..
한일 비정규직노조의 만남 - 청년유니온과 프리터노조 메이데이가 지났다. 봄의 새싹들처럼 ‘일어나’곤 했던 노동자들 푸른 함성이 해마다 잦아든다. 일용직, 파견직 등 깃발 없는 노동자가 늘어나는 세태의 반영일 것이다. 아무려나, 바람은 불고 꽃씨는 날린다. 현해탄 건너에서 귀한 손님이 왔다. 121주년 메이데이를 맞이하여 서부비정규센터의 초청으로 일본 프리터 노조 활동가 와타나베 노부타카(43), 후세 에리코(29) 씨가 한국을 찾았다. 이대, 연대 청소노동자를 만나고 재능노조 장기농성장을 방문하는 등 4일간 일정을 마친 두 사람은 귀국 직전 김영경(31) 청년유니온 위원장과 막바지 데이트를 즐겼다. 위클리 수유너머의 주선으로 성사된 이 날 만남은 5월 2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한 카페에서 진행됐다. 일본 프리터 노조는 비정규직만이 아니라 트렌스젠더·외국인..
친구와 동무 쓰던 번호 그대로. 십년이 넘었다. 핸드폰 개통 당시 번호를 지금껏 쓴다. 딱히 바꿀 기회가 없었다. 얼마 전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고등학교 때 친구다. 혹시나 해서 연락했다면서 대뜸 타박이다. “야! 아직도 016 쓰는 사람이 어디 있어. 옛날 애인한테 전화 올까봐 번호 못 바꾸고 있냐?” “흐흐. 말만 들어도 행복하다. 그런 낭만적인 일이 생기면 참 좋겠구나.” 모처럼 이년저년 해가면서 한참 수다를 떨었다. 말이 씨가 된 걸까. 며칠 후. 옛날 애인은 아니고 예전에 가까이 지내던 선배에게 전화가 걸려왔고 내친 김에 만남까지 성사됐다. 3년만의 재회. 우리는 방금 전화 끊고 만난 사람처럼 따끈따끈한 대화를 이어갔다. 좋아하는 선배다. 같이 있으면 편안하고 떨어져 지내면 잊어버린다. 문득 보고 ..
산 / 김종삼 샘물이 맑다 차갑다 해발 3천 피트이다 온통 절경이다 새들의 상냥스런 지저귐 속에 항상 마음씨 고왔던 연인의 모습이 개입한다 나는 또다시 가슴 에이는 머저리가 된다 - 김종삼 시집 민음사 시 한줄 읽고 음악 한곡 찾아 듣고 원고 한 줄 쓰면서 계속 시계를 힐끔거린다. 회의하러 가야하는데 회상을 듣고 있다. 9시 반. 그래도 회의는 가야한다는 마음에 몸을 일으켰다. 4월 22일 슬픔과 충격을 가누지 못해 결석을 해버렸었다. 영하 10도 이하의 엄동설한에도 빠지지 않았던 나. 근면성실 외길인생인데.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은 고사하고 스스로가 한심스러웠다. 버스정류장. 시간을 보려고 핸드폰을 찾는데 없다. 오후 2시에 약속 땜에 핸드폰을 챙겨야했다. 집으로 돌아갔다. 다시 나가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
과거로 도약해 미래를 구원하라 삼주 전 즈음이다. 4차시 강의안 쓰던 날. ‘글감의 4가지’ 범주의 사례로 뭐가 좋을까 고민하다가 내 인생의 핫이슈 서모군을 활용하기로 했다. 옛날 기사를 검색했다. 8집 앨범을 발표했을 때, 서태지 신보가 나왔다는 스트레이트 기사는- 화제형, 8집 장르는 네이쳐파운드이며 곡의 메시지와 녹음 기법 등 상세한 자료를 제공하면- 정보형, 서태지는 이번 앨범에도 역시 철저한 자기관리와 혹독한 맹연습 쉽게 타협하지 않는 장인정신으로 완성도 높은 음반을 선보였다고 쓰면- 감동형, 서태지가 컴백하면 평론가도 컴백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번 앨범도 평가가 엇갈린다며 전문가들의 의견을 소개하면- 논란형 기사이다. 아니, 어쩜 이리도 글감의 범주가 사례별로 똑 떨어지는지, 기사원문 붙여넣기를 해가며 풀어쓰는데 콧노래가 절..
낙화 / 이형기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 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 터에 물 고인 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 이형기 시집 , 문학사상사 공포의 토요일. 안 그래도 울렁증이 가라앉질 않고 입까지 두 군데 헐어서 컨디션이 최악이었다.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어찌나 무섭게 내리는지. 진심 추웠다. 수업 중에 핸드폰이 연달아 울린다. 나중에 쉬는 시간에 보니까 도착한 메시지가 7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한 줄 문자다...
박준상 블랑쇼연구자 - 철학은 ‘자기시대’ 아파하고 발언하는 것 2011년 4월 7일. 그날은 일본발 방사능비가 전국에 내린다는 일기예보로 도심마저 한산했다. 홍대 역 부근 ‘다중지성의 정원’에서는 두 번째 강좌가 열렸다. 사람들이 하나 둘씩 우산을 접으며 들어왔다. 일일 수강신청을 마친 나는 그들 틈에 끼어 앉았다. 일종의 잠입취재다. 궁금했다. ‘프랑스 지성계의 얼굴 없는 사제’로 불리는 모리스 블랑쇼. 그의 자장에 끌려 모여든 이들은 어떤 표정일까, 침묵의 사유를 펼치는 블랑쇼에 대해 박준상은 어떤 언어로 풀어낼까. 4월의 검은 목요일. 비와 블랑쇼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이런 공간, 이런 날씨는 나에게 주어집니다. 그것이 나에게 침투하죠. 공간의 문제는 정서적인 상태에 영향을 줍니다. 오늘처럼 비 오는 날은 기분이 검은, 짙은 회색으로 채색됩니다. 공간은 대상..
리스트 라캄파넬라 - 윤디 리 Liszt La Campanella - by Yundi Li 피아노는 신기하다. 깃털같은 소리도 나고 폭포같은 소리도 난다. 정확히 짚어내는 손끝. 바늘끝처럼 날카롭고 수려한 선율이 가슴에 탁탁 꽂힌다. 리스트의 라캄파넬라는 손이 세 개 있어야 칠 수 있는 곡이라는데 진짜 어려워 보인다. 뛰어난 기량으로 말끔하게 자기만의 연주를 펼치는 중국인 피아니스트, 윤디 리. 열여덟살인 2000년 쇼팽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최연소 입상했다고. 젊은연주자답게 힘있다. 기백과 낭만의 공존. 무한반복으로 어지러운 마음을 달랜다. 음악은 아름답다. 아름다운 것만 음악이다. 세상은 넓고 아름다운 음악은 많다. '함정을 파면 그것을 판 장본인이 빠지는 장소. 그대가 달라붙어서 몸부림치고 그대도 역시 달라붙은 채 한 발자국도 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