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중생들을 보라

[은유칼럼]

매 맞지 않고 성폭력 당하지 않고 사는 게 꿈이라고 말하는 십대 여자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슬픔에 잠이 깰 때마다 새벽녘 시를 썼다. ‘언제나 곁에 있을 것처럼/ 그렇게 때렸으면서// 당신은 뭐가 그렇게 급했기에/ 이토록 빨리 나를 내려두고//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멀리멀리 가버렸나요.’ 이 3연짜리 시의 제목은 ‘가족’이다. 나를 죽인 건 당신들인데 왜 난 당신들을 그리워하고 있나요, 라며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에 관한 시를 쓰고 ‘무서운 나의 집’이라는 글도 남겼다.

내 몸엔 보라, 파랑, 빨간색 멍이 얼룩덜룩 있었고 전신거울로 그걸 보고 있자면 웃음이 나왔다고, 여름에도 긴팔에 긴바지를 입었으며 친구들 입는 핫팬츠를 못 입고 멋을 내지 못해 억울하다고 그 옆의 여자아이는 썼다. 한 사람의 몸에 가해지는 폭력과 상처, 아니 피와 멍의 양과 부피를 가늠할 수 없었던 나는, 눈앞에서 자꾸만 물방울처럼 흩어지는 글자들을 문장으로 모아서 읽느라 종이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어떻게 얼마나 언제까지 아팠을지 알 수 없어 입을 열지 못했다.

부산 여중생 폭력 사건의 사진을 봤을 때, 그 얼굴들이 겹쳐 보였다. 가정폭력과 성폭력 피해를 당한 여자아이들. 중학생 때부터 시작되는 몸의 수난들. 그들이 쓴 증언의 단서들로 서투르게 그려보았던 참혹한 장면들. 제아무리 상상력과 공감력을 동원해도 문장을 따라가지 못하는 완강한 현실들. 부산 여중생은 또래 집단에 의해 일어난 학교 밖 폭력이고, 내가 만난 아이들은 부모에게 당한 가정 내 폭력이지만 공권력이 작동하지 못하는 사적 공간에서 자행되는 폭력이라는 점에선 다르지 않다.

저 지경으로 맞는 여중생이 저게 다가 아니다. 부산을 기점으로 강릉, 대전 등 전국으로 산불처럼 번지는 여중생 폭력 사건의 경쟁적 보도와 네티즌의 공분 기류에 편승해 일러바치고 싶다. 당신의 옆집에서 아침이면 말짱하게 양복 입고 출근하는 아빠에게 맞는 그 또래 아이들이 있다고. 남이 아닌 혈육이라 피해 사실을 드러내지 못하는 사정을 이용해 폭력을 저지르는 어른 가해자는 어떻게 색출하고 처벌하면 좋겠는지 조언을 구하고 싶다.

여중생 가해자가 저지른 ‘조폭 수준’의 잔혹함은 놀랍다. 그러나 대학, 군대, 직장, 집 등을 무대로 어른들이 펼치는 은밀하고 무자비한 조폭 수준의 폭력 사건, 그 연장선에서 보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런 현실에서 가해 여중생을 감옥에 영구 격리 시키자는 엄벌주의가 어떤 효과가 있을까.

청소년을 봐주면 안 되는 게 아니라 폭력을 봐주면 안 된다. 폭력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무시로 일어나는 폭력의 총량을 인식하는 게 우선이다. 사적 공간에서 겪은 폭력을 공적 장에서 떠들고 각각의 폭력 경험을 연결해야 한다. 부산 여중생 피해자가 있기 전에, 이미지의 스펙터클로 전시되지 않았다 뿐,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력 사건 피해자도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저 나이에 난 얼마나 맞고 살았는데…, 부러워요.” 몸의 피멍을 시어로 빼내는 저 아이는 피해여성 쉼터에 있는 여중생을 보며 집에서 좀 더 일찍 탈출하지 못한 제 처지를 통탄했다.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은 자’로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한 가지를 실천하고 있다. 교사들을 만날 때마다 아이들 안색과 몸을 잘 살펴달라고, 가정폭력·성폭력 당하는 아이들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기관을 연계해주라고 신신당부한다. 피해자의 몸-말에 집중할 때 그나마 가해자의 악을 최소화할 수 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10269.html?_fr=mt5#csidx36dc693d9b777feba3e3634fd13c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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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은유칼럼]

‘아이의 말을 중간에 끊지 마세요.’ ‘따뜻한 눈길로 바라봐주세요.’ ‘아이가 화낸다고 같이 화내지 마세요.’ 어느 건물 승강기에 탔더니 ‘좋은 부모 10계명’이 붙어 있다.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의 말이다. 그걸 보며 쓴웃음이 나왔다. 부모가 저렇게 하려면 적어도 초과 노동이나 타인의 무례와 간섭에 시달리는 임금노동자는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관대함은 탄수화물에서 나온다’는 말은 진리다. 좋은 부모 노릇은 10계명이 아니라 등 따습고 부른 배, 심리적 평안에서 비롯된다. 세상에 그냥 부모는 없다. 건물주 부모, 그 건물을 청소하는 비정규직 부모, 만사가 귀찮은 갱년기 부모, 자기 삶에 만족하지 못해 화가 난 젊은 부모가 있을 뿐.

ⓒAP Photo
1999년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격 사건으로 희생된 이들의 묘.

(있는 줄도 몰랐던) 내 안의 ‘미친년’을 애 키우다가 만난다고, 엄마들이 모여 자조적으로 얘기한 적이 있다. 나도 그랬다. 퇴근 후 집이 어질러져 있거나 아이가 보채면 부아가 치밀었다. 온종일 누적된 짜증과 피곤이 다 어디로 가겠나. 눈앞에 있는 만만한, 나보다 약자인 아이에게 쏟아졌다. 그러곤 아이를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지 못한 죄의식에 시달렸다. 그 슬픈 반복을 단절하고자 내가 택한 건 마음 다잡기가 아니라 노동시간 단축이다. 일을 줄이고 반찬가게를 활용했다. 그제야 ‘아이가 화낸다고 같이 화내지’ 않을 수 있었다.


아이를 버릇없이 키우지 말라는 양육법 같은 것은 이미 그렇게 사는 사람에게만 효과가 있다. 좋은 엄마는 고사하고 불량 엄마를 면하고 싶은 내게 도움을 준 유일한 육아서가 있다. 수 클리볼드의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지음
홍한별 옮김
반비 펴냄

이 책은 1999년 미국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총격 사건을 벌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해자 딜런의 엄마가 쓴 자기 진술서다. 저자의 직업은 장애인 학교의 교사. 자기 아이들에게 늘 약자에 대한 관심, 관용과 포용을 강조했다고 한다. 딜런은 학대와 방치를 당한 게 아니라 소위 ‘정상 가정’의 ‘좋은 부모’ 밑에서 자랐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알 수 없는 것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데에 바친 16년의 기록을 공개한다.

아이를 어떻게 키우라는 식의 답은 없다. “내가 알고 신경 쓰고 소중히 여기는 것들은 모두 아이들에게 쏟아부었다. (…) 설교하는 대신 귀를 더 많이 기울였더라면 좋았을 것이다(419쪽)”와 같은 회한만 간간이 새어나온다. 그런데 저자에게는 또 다른 아들(딜런의 형)이 있다. 같은 부모, 같은 환경에서도 아이들은 다르게 큰다. 나쁜 영향이든 좋은 영향이든 부모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다. 이 책의 미덕은 좋은 엄마가 되는 법이 아니라 좋은 엄마라고 착각하거나 방심하지 않는 법을 일깨운다는 점이다.

같은 부모, 같은 환경에서도 다르게 크는 아이


한국에서도 인천 초등생 살해 사건이라는 끔찍한 청소년 범죄가 발생했다. 콜럼바인 총격 사건을 두고 그랬듯이 세상 사람들은 쉽게 판단했다. “사악함을 타고난 나쁜 씨앗이었다거나, 아니면 도덕적 지침 없이 막 자랐다고(243쪽).” 가해자와 부모를 욕하고 내 아이가 피해자가 될까 봐 염려한다. 이 책을 읽은 나는 멀쩡해 보이는 내 아이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오싹했다. “사람은 가정에서만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며 “아이가 아무리 절망적 상태에 빠져 있더라도 그걸 드러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면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부모, 교사, 친구들조차 모를 수 있(183쪽)”기 때문이다. 

‘이웃집 괴물’은 부모의 지덕체 결여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좋은 부모’라는 낭만화된 이상은 양육의 본질을 가리고 매사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린다. 그사이 현실은 빠르게 나빠진다. 아이를 잘 키우기보다 명대로 본성껏 살게 하고, 남을 해치지 않는 사람으로 길러내는 게 시급하다. 그런 점에서 좋은 부모 10계명 대신 붙여놓고 싶은 문장이 있다. “도덕성, 공감, 윤리, 이런 건 한 번으로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니라 아이와 함께하는 모든 것에 깃들어 있다(4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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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몸을 살다

[은유칼럼]

마흔 이후 건강검진을 받지 않았다. 특별히 약을 챙겨먹어야 할 질환이 없어서였는데, 그랬더니 몸에 무심해졌고, 무심하다가 와르르 망가지겠다는 신호가 왔다. 종종 숨이 가쁘고 골이 띵하고 몸이 꺼졌다. 7년 만에 검진센터에 전화를 걸었더니 생리 마치고 1~2주 후에 오라기에 날짜에 맞춰 예약을 했는데, 검진을 앞두고 또 생리를 하는 게 아닌가. 처음 있는 일이다. 아무리 따져보아도 혐의는 하나였다. 갱년기, 생리불순. 두 단어를 검색창에 입력하는 손가락은 더디었다. 갱년기라는 말이 내 삶에 최초로 기입되는 순간, 속옷에 묻은 생리혈을 처음 봤을 때처럼 나는 저 홀로 수치스러웠다.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 사람들은 당황하며, 그래서 연습할 기회를 놓친다. 또 연습한 적이 없으므로 이런 이야기를 나누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결국 사람들은 질병이 이야기할 만한 주제가 아니라고 믿게 되며, 다른 이와 함께 질병을 경험하고 배울 기회를 놓친다(13쪽).”

ⓒ시사IN 신선영


<아픈 몸을 살다>는 심장마비와 암을 겪은 저자가 자신의 질병 경험을 사유한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현대인이 자기 몸에 대한 지식과 지혜가 빈곤한 원인을 알게 되었다. 생리불순 같은 일시적 증상부터 심각한 질병까지 아픈 얘기는 궁상이나 엄살, 약점이나 결핍으로 치부됐기에 너나없이 쉬쉬한다. 그럴수록 병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우리 몸은 ‘의학의 식민지’가 된다. 

저자의 의견에 크게 공감한 나는 앞으로 몸에서 일어나는 자질구레한 의심을 떠들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참이기에 생리불순 건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목소리는 목소리를 불렀다. 또래나 선배 여성들이 원래 그런다, 더한 경우도 있다, 그러다가 수년 내 폐경이 온다는 경험을 말해주었다. 그렇게 배울 기회를 챙겼다. 인체의 신비는 여전히 모르겠어도 늙어가는 자궁의 변덕은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번 검진에서 수면 내시경도 처음 받았다. 손등에 주사 바늘을 꽂고 위 운동 억제제, 목 마취제라는 야릇한 맛의 시럽을 삼키고 얌전히 차례를 기다렸다. 커튼으로 칸칸이 구획된 곳으로 내시경 받을 사람, 받은 사람, 마취 깬 사람의 침대가 일사불란하게 이동했다.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듯 질서정연한 사람의 흐름에 나 또한 이름이 불려 끼어들어갔고, 눈을 떴을 때는 검사가 끝난 뒤였다.

<아픈 몸을 살다>
아서 프랭크 지음 
메이 옮김 
봄날의책 펴냄

수면유도제 기운 탓인지 기분 탓인지 몽롱한 가운데 말소리가 들렸다. 옆 칸 침대의 남자 어르신은 혼자 갈 수 있다며 몸을 일으키고, 간호사는 연세가 있어서 위험하며 보호자가 와야 나갈 수 있고 혼자 가려면 잠 깨는 약을 먹어야 하는데 비용이 1만원 든다고 했다. 실랑이가 길어졌다. 저 어르신은 보호자가 없는 걸까, 1만원이 없는 걸까. 둘 다 없는 걸까, 둘 다 있지만 의료 체계에 저항하시는 걸까. 여러 가지 이유로 보호자를 대동할 수 없는 환자가 분명 있을 텐데 어쩌란 말인가. 

질병 없는 인생은 불가능하다

아프거나 아팠을 얼굴들이 떠올랐다. 두 노인네 밥 먹고 병원 다니는 게 일이라고 한탄하는 시부모님, 얼마 전 백내장 수술을 받은 아버지, 전신 마취하고 디스크 수술을 한 남편. 큰 수술이 아니라고만 생각했지 그들이 병원 침대에서 느꼈을 고립감과 “더는 젊지 않은 자신과 헤어지는 일(148쪽)”의 처연함을 너무 몰랐다. 나의 반성과는 별개로, 아픈 사람을 “가족의 시간과 경제적 자원을 빨아들이는 존재(197쪽)”로 만들고 질병을 개인의 성격이나 건강관리 부주의로 돌리는 사회 현실에는 분개한다. 

“질병이 없는 인생은 불완전할 뿐 아니라 불가능하다(202쪽)”고 하니 감내할 건 감내하고 싸울 건 싸우면서 몸의 일기를 기록해야겠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생리가 규칙적일 수 없으리라는 불길한 예감에 시달리는 중년의 가을은 난감하다(김훈이 쓴 산문집 <풍경과 상처>의 첫 문장, “내일이 새로울 수 없으리라는 확실한 예감에 사로잡히는 중년의 가을은 난감하다”의 패러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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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파파충과 노아재존은 왜 없을까

[은유칼럼]

이른 아침 카페에서 노트북 켜고 일하고 있으면 공무원시험 준비생으로 보이는 청년들이 들어오고 오전 10시 무렵엔 유모차를 민 엄마들이 등장한다. 민소매 원피스 차림의 젊은 엄마들은 커피를 마시며 아기가 자는 틈에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거나 책장을 넘기다 아기가 깨면 분홍색 플라스틱통 뚜껑을 열어 이유식을 먹인다. 새끼손가락만 한 수저가 아이 입에 들어갈 땐 내 입도 덩달아 벌어진다. 숨 붙은 것들 입에 밥 들어가는 장면은 왜 볼 때마다 울컥한가. 


나도 양육기에 어딜 가든 꼭 이유식을 싸갖고 다녔다. 잘 먹어야 잘 자니까, 잘 자야 엄마도 쉬거나 집안일을 하니까, 하루의 흥망성쇠가 달린 아기 밥은 중요했다. 한번은 친정에 갔을 때 아이에게 찐밤 으깬 것을 꺼내 먹이는데 그것을 본 엄마 친구가 말했다. “너 어릴 때도 엄마가 그렇게 키웠다.” 순간 움찔했다. 그간 여성의 돌봄노동에 무지한 사회를 규탄하기만 했지 내가 돌봄노동의 산물이란 사실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렇다. 나를 포함해 누구나 한때 밥을 받아먹는 무기력한 존재였다.


혐오와 낙인은 여성과 아이 몫


한쪽은 최대한 몸을 굽히고 한쪽은 최대한 입을 벌리고, 먹고 먹이는 저 간절한 풍경이 혐오의 빌미가 되고 있다. 언제부턴가 엄마와 아이에 대한 사회 일각의 시선이 곱지 않다. 음식점에서 아기 똥 싼 기저귀를 간다더라, 물컵에 소변을 받는다더라 하는 말들이 괴담처럼 돈다. ‘맘충’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음식점에서 이유식을 데워 달랬다더라, 어린이 메뉴 시켜놓고 공짜밥을 요구한다더라 등 맘충의 악행 목록은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다. 


이 육아의 아수라장에 남성은 없다. 현실에선 아기띠 매고 유모차 미는 아빠들 모습은 어딜 가나 흔하다. 음식점, 마트, 유원지, 촛불집회에서도 자주 목격한다. 드물게 아이를 등원시키는 육아휴직 중인 아빠도 있다. 그렇지만 ‘파파충’은 없다. 남녀가 같이 낳고 같이 키워도, 아니면 엄마 혼자 ‘독박육아’에 외로이 시들어가도, 공동체를 오염시키는 존재로 낙인찍히는 대상은 여성이다. 


아이들도 안전하지 못하다. 특정 연령 이하 어린이의 출입을 금지하는 ‘노키즈존’이 생겼다. 아이 혼자 카드 들고 외식할 일은 없을 테니 이는 엄연히 맘충-엄마-여성에 대한 장소적 제약이고 혐오의 사회적 확장이다. 노키즈존이 조용히 식사할 권리, 시공간을 침해받지 않을 권리를 위해 생겼다는데 그것은 한 대상을 차등 대우할 공적 근거가 될 수 없다. 공공장소에서 타인의 시공간을 침해하는 존재가 아이뿐인가. 타인의 시공간을 침해하지도 않고 침해받지도 않고 살 재간이 있는 자는 누구인가.


동물적 삶의 연속성 혐오하는 남성


나는 여름내 더워서 창문을 열어놓았다가 트럭 방송 소리에 시달렸다. 해풍에 말린 법성포 굴비가…, 복숭아 복숭아 꿀복숭아…, 고장난 컴퓨터 냉장고 에어컨 삽니다…. 업종을 달리한 트럭 장수가 번갈아 찾아와 정신을 강탈해 읽고 쓰기 어려웠다. 카페에 가도 사람이 있다. 운수 나빠 친목모임 일행이나 과외하는 팀이 주변에 있으면 그날 작업은 공친다. 버스나 지하철, 기차에선 ‘쩍벌남’이라도 만나면 가는 내내 불쾌하고 불편하다. 


내가 진행하는 글쓰기 수업에서 학인들에게 노동 르포를 써오게 하는데 단골 등장인물이 중·장년 남성이다. 주로 가해 캐릭터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게 카드를 휙 던지고, ‘딸 같아서’ 이름을 부르고 만지고, 비닐봉투값 20원을 왜 받느냐고 목청을 높인다. 은행이나 우체국 창구에서, 역 대합실에서 ‘이게 왜 안 돼’ 억지를 부리고 음식점에서 술에 취해 난동 피우는 중·장년 남성들의 면면은 익숙하다.


저마다 누려야 할 고요와 기분을 방해하는 집단의 출입을 금지해야 한다면 노키즈존보다 ‘노아재존’이 시급하다. 그러나 생기지 않았고 생기지 않을 것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아버지는 곧 법이고 돈이다. 생산력과 구매력을 가진 집단이기에 은행에서도 음식점에서도 그들을 함부로 금지하거나 차별하거나 배제하지 않는다. 역사상 흑인 전용 화장실은 있었지만 백인 전용 화장실이 없었던 이유와 같다. 


우리는 왜 어떤 대상을 혐오하는가. <혐오와 수치심>을 쓴 마사 누스바움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회는 사람이나 대상을 서열화해 특정 대상을 저열하고 천한 것으로 간주하는데 그 밑바닥에는 자주 유대인이나 여성이 있었다. 특히 여성은 출산을 하기 때문에 동물적 삶의 연속성, 몸의 유한성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고 이는 관조와 초연함을 이루려는 남성의 계획을 가로막는 주된 장애물로 작용한다. 그런 여성에게 남성은 혐오로 반응하면서 자신이 간직한 동물성에서 멀어지려 한다는 것이다.


이 대목은 노키즈존이 여성혐오의 부산물이라는 사실을 설명한다. 아무 데서나 똥 싸고 밥 먹고 울고 떼쓰는 아이와 한 몸인 여성, 그 불결하고 불완전한 대상으로부터 완벽한 차단과 분리라는 생의 기획을 아무나 도모하지 않는다. 노키즈존은 이른바 ‘꼰대’로 불리는 중·장년 남성이나 이기적인 젊은이들만 주장하는 게 아니다. 나이·성별과 무관한 학습된 혐오다. 자본주의보다 더 오래된 가부장제 역사에서 여성을 타자화하며 유지돼온 남성 중심 세계관을 내면화한 기성세대가 저지르는 사회적 경계 긋기의 폭력이다. 


당신도 한때 아이였다


최근 왁싱숍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또 여자라서 살해당했다! 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한 여성이 시끄럽게 울고 보챈다며 4개월 쌍둥이 아들을 코와 입을 막아 숨지게 했다. 그는 어린아이 셋을 홀로 키우면서 심한 우울증을 겪었고 “아이 셋이 너무 울어 이웃집에서 뭐라 그럴까봐 걱정됐다. 순간 내 정신이 아니었다”며 뒤늦게 후회한다고 기사는 전한다. 이 사건 또한 여성혐오 사회의 비극이라고 본다. 노키즈존은 음식점의 경계를 넘어 이미 사회 구성원들 의식에 그어져 자체 검열 기제로 작동한다. 아이 울음소리에 달려올 이웃은 없고 아이 울음소리에 민폐를 우려하는 팍팍한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 양육에 대한 사회적 몰이해에서 오는 적대가, 아이 셋을 키우며 느꼈을 피로와 고립과 만나 끔찍한 폭력을 낳은 것이다. 


마사 누스바움은 “공통의 인간성에 내재된 취약성을 인정하는 기반 위에 있는 사회”를 이상으로 꼽는다. 그의 말대로 세상은 통제할 수 없고 우리 모두는 한때 떠먹여주는 밥을 먹는 아이였다는 사실을 인지한다면 노키즈존이란 혐오의 언어가 폐기되고 약한 존재를 품는 인정(人情)의 언어가 고안될 수 있지 않을까.


은유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저자



한겨레21에 실림.  (21에서 노키즈존 특집을 기획하는데 세바시 강연 내용 보완해서 글을 써달래서 썼는데 제목이 저렇게 자극적으로 나가서 좀 민망했다. 노아재존을 만들자는 게 아니라 어른도 자신들 모습을 보란 얘긴데 논의가 적대적 구도로 흘러버린다. 그보다 나는 기사 말미에 인용된 세 아이의 엄마가 아들 숨지게 한 사건에 너무 충격을 받았다. 애 키우는 게 지옥이 됐다. 관계는 고립되면 서로를 해친다. 노키즈존이 사라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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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의 싱글레이디스여, 버텨주오!

[은유칼럼]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그 말 뒤에는 으레 ‘어차피 후회할 거면 결혼하는 게 낫다’는 말이 덧붙여진다. 여기엔 함정이 있다. 결혼은 누구의 좋음이고 누구의 후회인가, 주체가 생략됐다. 결혼 생활로 덕을 보는 사람이 지어내고 결혼 제도의 유지를 바라는 이들을 중심으로 확산됐으리라 짐작한다. 저 말씀이 효력을 잃어간다. 결혼해서 후회한 사람들, 아마도 여성들이 작성한 후회의 목록이 널리 공유되며 생긴 변화 같다.


시몬느 드 보부아르는 결혼을 이렇게 정리했다. “현대 여성은 결혼하거나 결혼했거나 결혼할 예정이거나 결혼하지 않아서 고통 받는 존재들이다.” 이것이 여성의 입장을 반영한 정확한 현실 진단이다. 후회할 게 빤하면 안 하는 것도 방법이라는 상식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내게 가끔 고민 상담이 들어온다. 애인이 있고 그 사람이 좋은데, 결혼하고 싶은데 또 하고 싶지 않기도 하다며 분열 증상을 호소하는 이들은 99퍼센트 여성이다. 나는 독립적인 삶을 맛보기도 전인 20대 초반에 결혼했다. 그러니까 조혼이다. 남의 결혼에 대해 합리적인 조언을 건네기엔 구세대이고, 주관적이고, 회한이 너무 많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현대 여성’의 무용담을 간추려 들려준다. 결혼을 이렇게 대응하기도 하더라며.


그들은 결혼의 ‘예고된 인재’를 막기 위해 채비를 단단히 한다. A는 인턴십형이다. 청소, 빨래, 설거지, 요리 등 애인의 총체적인 살림 능력을 검증하기 위해 6개월간 자취하게 한 후 결혼했다. 인턴십처럼 예비 심사 기간을 두고 판단한 것. B는 단체협약형이다. 일상 업무 분담은 물론 명절 및 양가 부모 생신 때의 역할과 책임까지 치밀한 세부 규정을 마련하고 조인식 후 결혼했다. C는 일상 돌파형이다. 어느 날 남편에게 아이스크림을 좀 만들어달라고 했단다. 남편이 깜짝 놀라서 “나 그런 거 못 해. 한 번도 안 해봤어”라고 말하길래 “이때까지 내가 했던 음식들 나도 결혼 전엔 한 번도 안 해봤는데 다 배워서 하는 거야. 당신도 배워서 만들어줘”라고 요구했다고.


지혜가 샘물처럼 넘치고 용기가 화산처럼 솟구치는 현대 여성들의 처신에 나는 매번 탄복한다. 여성을 가두는 결혼의 울타리 앞에서 주저앉아 눈물짓거나 낙담하기보다 그것을 흔들어대고 뛰어넘기를 시도하는 모습이 얼마나 활달하고 도도한지. 자신에게 맞춤형으로 결혼이라는 제도를 수정 보완해서 활용한다면 결혼이 구속복이 아닌 양날개가 될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사실 ‘조혼자’인 내가 부러움에 몸이 기우는 쪽은 따로 있다. 결혼을 통째로 거부한 위풍당당 싱글레이디스다. 난 아이 키울 때 육아 동지들과 어울렸고, 너도나도 지지고 볶고 사는 조선 여자의 일생을 흉내 내고 반복했을 따름이다. 아이들이 크고 일을 하고부터는 싱글 여성들과 접촉하는 기회와 빈도가 늘었다. 가까이서 지켜본 ‘싱글 현대 여성’의 일상은 같은 시대 다른 세계였다.


결혼은 여성의 무덤이 아니라 ‘여성의 일의 무덤’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일찍이 간파한 혜안의 소유자들은 가족 아닌 일에 헌신했다. 일을 통한 성취, 성취에 따른 재력, 그 재력에 따른 쾌락을 누렸다. 가볍게 짐 싸서 마실 가듯 인천공항으로 향하고,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해 맛있는 요리를 해먹이고, 늦도록 술을 마셔도 초조해하지 않았다. 엄마 언제 오냐는 전화가 걸려오지 않는 40대 여성의 핸드폰은 정물처럼 고요했다. 


그들은 자기 몸에 대해서도 “신체적 자주권”(338쪽)을 행사했다. 수많은 복락 중에서도 싱글 여성의 독보권(獨步權)은 정말이지 훔치고 싶었다. 난 내가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고만 생각했지 왜, 언제부터 좋아하지 않았는지 몰랐는데 그들을 보며 알았다. 감옥에서 면회, 운동, 목욕 등을 위해 이동할 때 반드시 교도관과 동행해야 하는 재소자처럼, 나도 양육 기간 내내 독보권이 없었다. 그런 내게 여행이란 자식과의 동행을 뜻했고 그건 현실의 탈출이 아닌 일상의 연장이었다. 아이 뒤꽁무니 따라다니면서 본 바다는 낭만의 공간이 아니라 위험한 장소일 뿐이다. 여행이 들뜨고 설레긴 하지만 홀가분 하진 않으니 차라리 집에서 책이나 보는 게 속편한 것이다.

 


결혼과 출산을 후회하진 않는다. 그러나 결혼과 출산, 혹은 결혼과 출산을 배제한 삶에 대한 나의 무지는 통한스럽다. 엄마가 된다는 것, 엄마가 되지 않는 것에 대한 정보는 언제나 부족하고 편파적이었다. 그래서 『싱글 레이디스』가 가뭄의 단비처럼 다가왔다. “아무리 절실하게 사랑에 빠지고 싶다고 해도 그들은 끔찍한 결혼이 주는 잠재적 불행에서 최대한 멀찍이 떨어져 자신만의 충만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408쪽)고 이야기하는 이 책은, 100여 명의 싱글 여성 인터뷰와 여성 학자들 이론을 토대로 싱글 여성의 삶을 통합적으로 소개한다. 

 

싱글 여성의 역사부터 도시, 자립, 우정, 일, 돈, 섹스, 가난, 사랑과 결혼, 아이 등 세부 항목을 짚어가며 육성과 이론을 근거로 싱글 생활의 대소사를 풀어낸다.


“혼자서 생활하다 보면 할 수 있는 게 많다는 걸 알게 된다. (...) 당신이 직접 해낸 일들이 당신을 지탱해 주기에 나약한 아내가 될 필요가 없다.”(372쪽) 이런 대목은 자유로운 여행과 섹스가 가능한 생활로 정도로 축소되곤 하는 싱글 여성의 진짜 삶과 힘이 무엇인지 일러준다.


“싱글로 지내면서 나 자신을 돌보는 법을 배웠고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았어요. 우리는 나 자신 외에는 아무도 줄 수 없는 최고의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해요.”(394쪽) 인간에게 독보권이 주어져야 한다면 바로 이것 때문일 것이다. “나 자신이 누구이며 내가 어디에 맞는 사람인지 (...)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지, 무엇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지 하나씩 직접 생각하고 부딪치면서 알아가”(363쪽)는 게 중요하니까. 자기 인식에 이르고, 자기 배려의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 말이다.


결혼이 존재의 표지이자 기준이던 때는 저물고 있다. 기혼이든 비혼이든 자립적인 1인 여성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가 아니라 결혼을 해도 좋고 안 해도 좋고,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일 정도로 여성이 자유를 구가하는 시대가 오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여성들이 결혼하지 않고 버티는 시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저자는 귀띔한다.


순수한 사랑의 판타지에 눈이 멀어 냉큼 결혼해버린 조혼자인 나는 만국의 싱글 레이디스에게 염치없이 부탁하고 싶어진다. 내 몫까지 버텨주오! 만약 결혼한다면 말해주오. “내가 결국 행복하게 결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행복하게 싱글로 살았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410쪽)이라고.


-채널예스 '은유의 다가오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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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지 않을, 권리

[은유칼럼]

사교육으로 유명한 지역에 강의를 갔다. 앞서 단체 대표가 교육 특구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인사말을 전하더니 여러분들이 글쓰기를 잘 배워두었다가 아이들에게도 알려주라며 자리를 떴다. 객석 대부분은 주부였다. 당황한 나는 황급히 취지를 바로잡았다. 아이들이 원하지 않는데도 가르치지는 마세요. 엄마의 옷을 벗고 본연의 나로 사는 방편으로서 글쓰기가 오늘의 주제입니다. 질의응답 시간에 한 분이 손을 들었다. 6학년 아이에게 독서록을 쓰게 하는데 아이가 싫어한다며 무슨 방도가 없냐는 것이다.


엄마 모드는 웬만해선 해제되지 않는다. 아니다. 학부모만이 아니라 교사들도 읽기와 쓰기를 ‘싫어하는’ 아이들이 골치라며 묘책을 묻곤 한다. 그럴 땐 되묻는다. 왜 아이들이 꼭 글쓰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돌아오는 답은 사고력, 독해력, 이해력 향상 그리고 건전한 여가 선용으로 수렴한다. 그 자동 설정된 믿음은 신앙처럼 견고하다. 인습적 견해와 상식을 의심하고 자기 삶의 맥락에서 따져보는 게 글쓰기 공부인데 글쓰기를 해야 하니까 일단 쓰라는 식이다. 결론을 근거로 삼는 순환 논증에 갇혔다.


내가 아는 배움의 최고 동력은 절실함이고 필수 조건은 덩어리 시간이다. 당장 생존에 필요하지도 않고 (놀) 시간도 없는 아이들에게 글을 쓰라니 얼마나 고역일까. 자투리 시간으로 학습지 하듯 해치우는데 생각이 여물까 싶다. 6학년 학부형에게 제안했다. 어떤 점이 힘든지 아이에게 물어보고 독서록을 당분간 쉬어보라. 자기 의견과 생각이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경험하게 하라. 그래야 아이에게도 의견과 생각이 형성되고 글도 잘 쓴다고 말이다.


사실 그 마음 모르지 않는다. 나도 엄마로서 아이 손에 스마트폰 대신 책이 놓여 있길 바란다. 집에 책이 널려 있으면 우연히라도 손에 닿아 펼쳐 볼 텐데 무슨 몹쓸 것인 양 만지지도 않는 아이들과 나는 산다. 글은 오죽하랴. 처음엔 섭섭하다가 속으로 비난했는데 지금은 내버려둔다. 책 읽는 엄마니까, 아이 뜻을 존중해줘야지 최면을 걸다가 아이가 아직 본능이 살아 있어서 ‘거부’도 하는구나 건강하다는 징표로구나, 해석술을 발휘하는 단계까지 왔다.


대한민국 학부모로서 느끼는 우려는 비슷할 거다. 아이가 책-학업을 멀리한 대가로 가난과 불행을 면치 못할까봐 걱정스럽다. 그런데 요즘 난 다른 층위의 근심이 생겼다. 하루가 멀다 하고 군, 직장, 학교, 가정에서 자행되는 상상 초월 위계 폭력과 젠더 폭력 뉴스가 터진다. 저 정글에서 아이가 남을 해치지 않고, 자기를 침해하는 것들에 저항하면서 존엄을 지키고 살아갈 수 있을지 염려한다. 해결책은 책이런가. 강제적으로라도 읽히는 게 좋을까.


그런데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부모나 교사가 시키는 무리한 것들을 ‘싫어도’ 해낸다면 훗날 자기보다 힘이 센 사람이 시키는 별의별 일도 ‘싫은데’ 꾸역꾸역 감당할 여지가 있다. 복종은 습관이다. 성찰 없는 순종이 몸에 배면 자기의 좋음과 싫음의 감각은 퇴화한다. 자기를 모르는 사람은 자기를 지키기 어렵다.


시급한 건 ‘자기 돌봄’이다. 수능 고득점의 초석을 다지는 독서와 논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사는 법을 들여다볼 기회와 자기 억압을 털어놓을 계기가 필요하다. 그게 나에게는 책과 글쓰기였는데 내 아이에게는 무엇인지 아직 모르겠다. 하나는 알겠다. 해봐서 안다며 책부터 들이밀면 아이가 스스로 가꾸어갈 경험과 사유의 자리가 막힌다는 사실이다. 책 읽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가 격려받는 만큼 싫어하는 아이의 권리도 존중받기를. 입막음을 당하는 약자에겐 행동하지 않음도 행동이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06499.html?_fr=mt5#csidx26bdca53ab180fc91f5d8c22feaf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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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꿈꾸는 이에게 전하고픈 말

[은유칼럼]

강연을 마치고 나가는데 계단 아래까지 한 아이가 따라 나와 말을 건다. 작가가 꿈이라 문예창작과를 가고 싶은데 부모가 반대한다고, 다른 과를 가도 작가가 될 수 있는지 묻는 눈동자는 초조함으로 일렁였다. 고등학생들을 만나면 꼭 나오는 질문이다. 부모의 반대 이유도 한결같다. 돈 벌기 어렵다는데, 취직이 안 된다는데, 밥 굶는다는데.

어느 밤에 문자가 왔다. ‘쌤, 글로 돈을 벌 수 있을까요.’ 같이 글쓰기를 공부하던 20대 후반 학인이다. 나는 초기에는 최저생계비 마련이 어렵다고 답했다. 직장에 다니는데 하루하루 메말라가는 것 같다고, 일을 그만둘까 하지만 돈 문제 때문에 선뜻 결정하기 어렵다고, 알면서도 답답한 마음에 물었다며 그는 대화창을 빠져나갔다.


파블로 네루다 지음
정현종 옮김
민음사 펴냄

스무 살 이전이나 이후에나 진로 고민은 중단 없다. 그 꿈이 글 쓰는 일이라면 더하다. 해법이 없진 않다. 질문에 엉킨 쟁점을 풀어주면 된다. 작가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글로써 세상에 전하고픈 메시지가 무엇인지, 몸에 맞는 장르가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한 달에 꼭 필요한 생활비가 얼마인지. 이를 질문자로 하여금 말하게 하기. 글쓰기 욕망을 정교하게 언어화하는 과정에서 대개는 스스로 답을 찾아간다.


나는 작가라는 말이 여전히 어렵다. 뜻과 범주가 모호하다. 행위인지, 직업인지, 자격인지, 욕망인지, 존재 그 자체인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글 쓰는 사람’으로 내 꿈을 구체화하고 실천했다. 주변에선 작가로 활동하려면 문창과나 국문과를 늦게라도 가라고 권했지만,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에 자격 요건을 갖추기보다 일단 쓸 수 있는 걸 쓸 수 있는 데에 썼다. 블로그에 에세이를 쓰고 <오마이뉴스>에 시민기자로 등록해 활동했다. 본 것, 들은 것, 한 것을 쓰다 보니 그게 사실과 경험에 기반한 논픽션이었다. 논픽션 분야는 등단 제도나 절차가 없으니 내가 작가가 됐는지 안 됐는지 가늠할 척도가 없었다. 그게 속편했다. 작가라는 긍지 없이, 작가가 아니라는 결핍도 없이 쓸 수 있었다. 

돈벌이는 별도로 충당했다. 자유기고가를 주업으로 일감이 없을 땐 자서전을 대필하고, 공공기관 백서를 쓰고, 게스트하우스 주인을 인터뷰해 납품했다. 이 세상에 나쁜 언어를 유포하는 일이 아니면 닥치는 대로 썼고, 원고료를 받아 책과 커피와 쌀을 사먹고 그렇게 살아남아서 ‘쓰고 싶은 글’을 썼다.

파블로 네루다의 창작 동력은 ‘하고많은 불행’

작가를 꿈꾸는 학생에게 말했다. “쓰고 싶으면 빨리 쓰세요. 작가는 쓰는 사람이지 쓰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문창과 간다고 작가의 길이 보증되고 경영학과 간다고 그 길이 봉쇄되진 않는다. 가장 큰 장벽은 부모의 반대가 아니라 자기 생각의 빈곤이다. 자꾸 몸에 들러붙는 생각, 솟아나는 얘기, 복받치는 불행이 아니라면 무엇을 쓸까. 

“나는 우리나라의 하고많은 불행을 보아왔다. 내가 보는 가난-나는 그걸 외면할 수가 없다(129쪽).”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에게 창작 동력은 ‘하고많은 불행’이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 현장을 지키면서 고통의 목소리를 기록했다. 나는 그들 책에서 큰 자극을 받는다. 하고많은 불행의 언저리를 서성이다 보아버린 것을 쓰고자 노력한다.

작가가 되려면 얼마나 책을 읽어야 하느냐는 질문도 곧잘 나온다. 나는 네루다의 이 시를 읽어주고 싶다.

“내가 책을 덮을 때/ 나는 삶을 연다/ 책들은 서가로 보내자,/ 나는 거리로 나가련다./ 나는 삶 자체에서/ 삶을 배웠고,/ 단 한 번의 키스에서 사랑을 배웠으며/ 사람들과 함께 싸우고/ 그들의 말을 내 노래 속에서 말하며/ 그들과 더불어 산 거 말고는/ 누구한테 어떤 것도 가르칠 수 없었다(‘책에 부치는 노래 1’ 중에서, 96쪽).”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29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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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이라는 착각, 정상이라는 환영

[은유칼럼]

초여름 볕이 좋아 이불을 빨아 널다가, 베란다에 빨래가 널려 있으면 저 집은 평범한 일상이 돌아가는구나 알 수 있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빨래는 평화의 깃발인가. 두 아이를 면 기저귀 채워서 길렀다. 전업주부라 시간이 많았다. 하루치 똥오줌을 받아내고 세탁기를 돌리고 하얗고 네모난 기저귀를 널고 마르면 걷어서 개켰다. 일상 의례처럼 날마다 빨래를 하던 그 시기가, 그러고 보니 내 생애 가장 평범한 날들이었다. 평범의 뜻이 무변고·무고통·무탈함이라면.

얼마 전 여성 쉼터에 사는 한 친구가 아파트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을 보는데 부러운 마음이 든다고 했다. 저 거실 안에는 지금쯤 식구들이 둘러앉아 과일을 먹으면서 텔레비전을 보겠지 싶고 자기도 저렇게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거다. 나는 “그렇지 않아”라고 황급히 끼어들었다. 그 집에 막상 가보면 애들은 학원에 갔거나 방에서 핸드폰 하고 있고 아빠는 없거나 엄마는 일터에서 돌아와서 잔뜩 쌓인 설거지통을 보고 한숨 쉬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을 직간접 경험에 근거해 말했고, 우린 같이 웃었다. 

3년 전 친족 성폭력 피해 경험을 담은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이매진, 2012)의 저자 은수연씨를 만났을 때다. 그는 가해자로부터 단절된 이후 일상의 변화를 말했다. 요즘 눈에 독기가 빠졌다는 얘기를 듣고, 시끄러운 카페에서 영어 공부를 하고, 세월호 사건에 남들처럼 눈물을 흘리는 자신을 보면서 ‘나는 평범해지고 있다’고 느낀다고. 힘든 과거가 불쑥 떠오르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더 이상 일상이 엉망이 되지 않는 상태를 평범함으로 규정했다.

평범한 삶을 누구는 집 안에서 찾고 누구는 집 밖에서 찾는다. 무엇이 평범함이냐, 그 뜻과 의미와 기준은 각자 다르다. 평범함이 행복이고 평범하지 않음이 불행이 아니라, 평범의 기준이 나에게 있으면 행복하고 남에게 있으면 불행한 거 같다. 평범함의 의미를 자기 삶의 맥락에서 똑 부러지게 규정하는 은수연씨에게서 불행의 그림자를 찾아보긴 어려웠다.

나의 평범했던 날들, 낮에는 흰 빨래가 걸리고 밤에는 거실 불빛이 새어나오는 아파트에서 퍽 무탈한 일상을 이어갔으나 행복이 막 샘솟지도 않았다. 그 안전하고 예사로운 4인 가족 틀을 벗어나 캄캄하고 어지러운 외부 세계에 맞닥뜨렸을 때, 글쓰기로 하루하루 정신을 깨끗하게 빨아 널고 낯선 이웃을 만나고 삶의 가치라는 내면의 등을 밝힐 때 외려 충만했다.

그날 쉼터에 사는 친구와도 얘기했다. 혈연끼리 마주하고 과일 먹고 텔레비전 보는 것만큼 같이 사는 생활인들과 빵을 먹으면서 평범함에 관해 대화하는 것도 좋은 일상 같다고. 안전한 거처로서 주거 공간은 삶의 기본 조건이기에 필요하지만 ‘정상 가족’이라는 환영이 만든 집은 깨뜨려야 할 무엇이라고. 그건 집이 노동과 위험의 공간인 약자들을 배제하고 집을 휴식과 평화의 공간으로 점유하는 이들이 만들어낸 것이니 말이다.

<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는 평범하지 않은 여성이 평범한 삶을 살아가기까지 걸어온 여정을 담은 에세이다. 선천적 장애로 멋대로 뒤틀리는 자신의 오른손을 어머니는 손님이 오시면 두 손으로 꼭 감싸 쥐어 보이지 않게 했다며 “내가 느끼는 수치심은 어머니에게 배운 것(184쪽)”이라고 말한다. “자기혐오, 숨기는 것에서 오는 고통, 침묵의 답답함(359쪽)”에 갇혀 살다가 집을 나오고 세상과 부딪치며 “정상이라는 것에 대한 근거 없는 환상”을 버릴 수 있었다며 더 일찍 버리지 못했음을 개탄한다.

저자는 이렇게 매듭짓는다. “정상이라는 것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기를 쓰고 추구하지만 결코 손에 넣을 수 없는 환영 같은 거야(369쪽).” 베란다 빨래와 불빛에는 멀쩡해 보이는 남의 삶이 있고, 자기 삶은 수치와 상처와 결핍으로 얼룩진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놀라운 기적’에 잠복해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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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주지 않으면 그 이유를 모르시겠어요?

[은유칼럼]

민지(가명)는 수업 시간에 자주 엎드렸다. 의견을 물어도 묵묵부답. 입을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말을 하지 않으니 나도 더는 말을 시키지 않았다. 물 잔처럼 놓여있던 민지는 할 말이 생각나면 남의 말을 끊고 불쑥 끼어들었다. 주장도 의견도 아닌 그 파편적인 말들을 나는 팔뚝에 튄 물방울 닦듯 무심히 대꾸하거나 못 들은 척 넘겼다. 한 번은 민지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쌤은 할 말 없을 땐 말 시키고 말하고 싶을 땐 안 시켜요.”

 

고루 발언 기회가 돌아가는 ‘말의 평등’을 우선시했던 나는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민지는 ‘어른들’ 말을 못 알아듣겠다고 했다. 아는 얘기가 나와도 끼어들 순간을 못 찾겠다고, 다른 사람 말이 끝나고 말하려면 안 끝나고, 끝나면 다른 주제로 넘어간다는 거다. 말수 적던 아이가 맞나 싶게 눈을 맞추고 조리 있게 말을 했다.

 

10대부터 30대까지 모인 여성 쉼터에서 민지는 최연소였다. 15살. 아무래도 경험이나 지식, 언변 등 토론 자원이 취약하다 보니 말의 권력에서 밀렸던 것 같다. 나는 이야기해줘서 고맙고 알아차리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말하고 싶은 만큼 남의 말을 잘 듣는 것도 중요하니까 앞으로는 발언을 원하면 손을 들자고 제안했다. 이후 민지는 한 번도 엎드리지 않았다.

 

수업 내내 입을 다문 아이도 있었다. 아마도 성격이 소심한 게 아닌가 싶어 넘어갔다가, 물어도 응답이 없으니 화가 났다가, 피곤하거나 기분이 안 좋은 일이 있을 거라 추측했다가, 가타부타 말이 없으니 속을 몰라 난감했다. 투명인간 취급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었다. 사람 마음 헤아리는 눈치는 좀 있는 줄 알았는데 말이 공급되지 않자 나는 관계의 뜨개질에서 첫 바늘도 꿰지 못했다.

 

나는 처방전을 찾듯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를 꺼내 읽었다. 거기엔 ‘수동적 저항’의 대가(大家)가 나온다. 주인공 바틀비는 면벽 묵언수행급, 하는 말이라곤 한 마디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가 전부다. 변호사 사무실에 고용된 필경사인 그는 어느 날부터 일손을 놓는다. 항상 거기에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문제는 일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일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것. 변호사는 그를 어르고 달래고 연민하다가 분통을 터뜨린다. 좀 합리적으로 되라고 애원하지만 “송장처럼 창백한” 바틀비는 미동도 않고 입을 뗀다. “현재로선 좀 합리적으로 안 되고 싶습니다.”(77쪽)

 

소설을 읽다보면 바틀비가 답답하고 불안하다. 제 발로 사무실에 들어갔으면 일은 해야 하지 않나, 안 할 거면 왜 안 하는지 적어도 이유는 말해야 하지 않나, 그래도 살아야 하지 않나 싶은데 그 모든 걸 안 하고 ‘끝’까지 버틴다. 그런 행동에 대한 속 시원한 해명 없이 소설은 장탄식으로 끝난다. “아! 바틀비여, 아! 인간이여”(102쪽)

 

그 허탈함, 황망함, 난감함, 쓸쓸함 속에서 사유가 일어난다(좋은 소설인 것이다). 나는 내 생각을 생각했다. 처음엔 바틀비가 이유도 없이 일하지 않는 게 이상했는데 아니다.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이 이유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을 그토록 열심히 하는 게 이상하다. 바틀비는 왜 자기 생각과 입장을 설명하지 않을까 궁금했다가, 그럼 나는 구구절절 말함으로써 타인을 이해시키고 타인으로부터 이해받은 적이 얼마나 있었는지 회의가 들었다. 말하는 대로 이해받는다는 믿음이야말로 헛것 아닌가….

 

역시 미국 단편소설인 샬롯 퍼긴스 길먼의 『누런 벽지』에는 인간 이해에 서툴다는 점에서 『필경사 바틀비』의 변호사와 닮은꼴 인물이 등장한다. 여자 주인공이 결혼과 출산 후 병을 앓는데 아이도 돌보지 못할 만큼 몸이 아프다고 말하지만, 높은 신분의 내과의사인 남편 존은 이해하지 못한다. 일시적인 신경성 우울증과 약간의 히스테리로 진단하고 휴식 요법을 권한다.

 

“존은 내가 실제로 얼마나 고통을 겪는지 알지 못한다. 그가 알고 있는 것은 고통을 겪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며, 그걸로 그는 만족이다.”(163쪽)

 

남편은 아내에게 이유를 묻지도 듣지도 않고 자기가 알아서 판단하고 통제한다. “나는 의사야. 내가 알아.”(173쪽)라며 아내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잘라내고 무조건 쉬어야 한다며 글쓰기 같은 활동을 금지한다. 남편이 너무 현명해서 자신의 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생각하는 주인공은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바를 나는 어떤 식으로든 말해야 한다”(170쪽)고 여겨 방문을 잠그고 몰래 글을 쓴다.

 

좀 합리적이 되라고 말하는 변호사, 네 병은 내가 안다고 말하는 의사. 그걸 꼭 알려주지 않으면 하나도 모르고, 알려주어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그들은 이 시대의 전문가들이다. 타인의 사정을 헤아리기 위해 진득한 노력을 기울이는 인내심이 부족하고, 한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자기 지식으로 성급히 단순화해버리는 재주에만 능하다.

 

그들에게서 글쓰기 강사라는 이름으로 전문가 행세를 하는 나를 본다. 그나마 엎드린 이유를 말해주었던 민지와 안 하고 싶은 이유는 모르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싶었던 아이에게, 매사 논리를 따지고 원인을 분석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바틀비가 변호사에게 했던 말이 나를 향한다. “알려주지 않으면 그 이유를 모르시겠어요?”(79쪽)

 

그간은 글쓰기를 열렬히 원하는 이들만 만났다. 만사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그러던 중 비자발적 집단과의 수업에서 난관에 봉착했고 그 와중에 나는 얼굴이 자주 화끈거렸는데, 목소리 없는 자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글을 쓰고 싶다고 평소 떠들고 다닌 게 생각나서다. 실상은 목소리 없는 자를 좀처럼 못 견디고, 논리적 전개가 아니면 상황 이해에 서툴고, 원활한 목표 달성에 방해가 되면 구성원을 제쳐두기도 하는 사람이 나였다. 우선은 불안과 조급 없이 목소리 없는 이들과 그냥 있는 연습부터 필요했던 것이다.

 

합리성으로 포획되지 않는 삶, 실패로서만 확인되는 앎이 있다. 그것은 나를 원점으로 돌려놓는다. 아내의 병을 고치겠다는 의지가 확고한 남편이 정작 아내의 말을 듣지 못하듯이, 어떤 목표에 사로잡히면 사람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성실함의 중단, 합리성의 거부를 실천한 바틀비처럼 나도 성실함과 합리성의 스위치를 몸에서 꺼두어야 할까 보다. 그래야 사람이 보일 것 같다.


* 채널예스 '은유의 다가오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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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 처음 봐요

[은유칼럼]

난생처음 이디엠(EDM, Electronic Dance Music) 뮤직 페스티벌에 갔다. 아시아 최대 규모라는 ‘울트라 코리아 2017’이 열리는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 근처에 이르러 친구와 수군거렸다. 우리가 옷을 너무 많이 입고 온 거 같지? 과감한 신체표현 의상에 타투는 기본, 코스튬은 선택, 국기를 든 외국인도 눈에 띄었다. 옷 한 벌로 한 계절 날 거 같은 중년의 덕후들도 오는 록 페스티벌과 이디엠 뮤직 페스티벌은 달랐다. 나이와 계급의 차이랄까. 관객이 젊고 부티 났다. 나중에 관계자에게 들어보니 이십대가 가장 많고 사오십대 예매율은 2%라고. 내 생에 그렇게 처음 2%가 되어보았다.


나도 록 페스티벌을 처음 간 건 이십대였다. 송도에서 열리는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에 남편이랑 두 돌 지난 아이와 동행했다. 중년 남성의 숙소 주인이 말했다. “아줌마도 이런 데를 다녀요?” 질문도 질타도 감탄도 혼잣말도 아닌 그것은 ‘아무말’. 아이와 다니면 존재가 납작해진다. 몰개성, 무취미, 무례함의 대명사 아줌마는 제3의 성으로서 청소년, 흑인, 여자처럼 장소에 제약이 따른다. 트집 잡는 이들을 무시로 대면해야 한다. 1999년에 겪은 일이다.


영화 <런던 프라이드>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두 남자가 얼굴을 맞대고 하는 말, ‘게이 처음 봐요.’ ‘나도 광부 처음 봐요.’ 유쾌하고 통쾌하게, 광부와 퀴어라는 이질적인 두 집단이 합심해 권리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영화는 다룬다. 게이 활동가가 단체 동료들에게 광산 노동자 파업에 연대할 것을 제안했을 때 우리가 광부랑 무슨 상관이냐는 반발의 목소리가 나온다. 활동가는 이렇게 답한다. “광부는 석탄을 캐고 그 석탄으로 전기가 만들어져야 우리가 클럽에서 새벽까지 놀 수 있으니까.”


도구적 접근이긴 하지만 세상에 나와 무관한 존재는 없음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삶은 무수한 타인과 연결돼 있으나 도통 만나지 못한다. 단조로운 일상의 동선을 태엽 인형처럼 왕복하며 보는 사람만 보고 가는 데만 간다. 살면서 직접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책이나 티브이(TV)에서 접하는 게 전부다. 회사원은 사무실에, 주부는 집안에 머무는 일면적이고 기능적인 존재로 나온다. 그러니 실제 삶에서 ‘락페에 온 아줌마’처럼 지정 구역을 벗어난 사람을 ‘처음 보면’ 혼란을 느낀다. 그게 심하면 혐오가 될 테고.


나 역시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하는 삶의 기술을 배우지 못했다. 인터뷰와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매번 낯선 존재와 마주하는데, 무지로 인한 긴장과 혼돈의 시간을 치르며 공부하는 중이다. 얼마 전엔 비혼모를 처음 봤다. 만남이 거듭되자 그녀는 “책 낸 사람 처음 봐요” 내게 말했고 “이렇게 글 잘 쓰는 비혼모 처음 봐요” 나도 고백하고 같이 깔깔댔다.


처음 보면 한 사람이 비혼모로 보이지만 자꾸 보면 비혼모는 결혼제도 외부에 위치한 상태의 설명일 뿐임이 드러나고 자기 한계와 고민을 안고 존엄을 지키며 살아가려는 입체적인 존재로 다가온다. 처음 보고 계속 보는 게 관건이다. 영화처럼 서로 삶이 스밀 때까지.


이디엠 뮤직 페스티벌에 같이 간 친구는 일 중독자처럼 사무실에 갇혀 청춘을 보냈다. 공연장에서 미친 듯이 노는 젊은이들 ‘처음 본다’며 자기는 왜 저렇게 살지 못했는지 한탄했다. 나는 아들 또래를 보면서 군 복무 중인 아이가 떠올라 잠시 미안하기도 했다. 그럴수록 다리 아프게 놀았다. 집 나간 자식 찾으러 오는 엄마가 아닌 사오십대 여자 관객을 뮤직 페스티벌에서 ‘처음 보는’ 나와 낯선 이웃을 위해.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02903.html?_fr=mt5#csidxfa2937ffa1b5c528b344676b1d047b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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