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 읽다 - 시시콜콜 시詩알콜

[은유칼럼]


5년 만에 해외여행을 간 건 우연한 계기에서였다. 친구가 카카오톡으로 여행 계획을 밝히며 가고 싶으면 붙으라고 했다. 소싯적 ‘줄넘기할 사람 여기 붙어라’에 엄지손가락 잡듯이 나는 붙었고 다른 친구도 붙었다. 여권 번호와 영문 이름을 불러주고 친구가 항공권과 숙소를 예약했다. 그때가 초여름, 여행은 가을. 실감나지 않았다. 집필·강연·살림이 회전문 돌아가듯 들이닥치는 일상에서 나는 과연 일주일간 훌훌 떠날 수 있을 것인가. 

눈을 떠보니 타이 북부 도시 치앙마이. 한국에서 기껏 폭염을 견디고 다시 무더위 복판에 던져졌다. 사놓고 한 번도 못 입은 끈 달린 원피스에 슬리퍼 끌고 손바닥만 한 핸드백 메고 여행자 모드로 변신했다. 휴대전화 로밍은 하지 않았다. 할 일 없이 들여다보는 스마트폰과 읽지도 않을 책을 넣은 무거운 가방에서 해방된 일상은, 가능했고 충분했다. 

이러한 내 쾌락의 이면에 타인의 노동이 있다는 걸 셋째 날이 지났을 때 알았다. 여행을 주동한 ‘친구 1’은 항공사 우수회원에 영어 능통자다. 남의 나라 골목 구석에 있는 음식점도 구글맵으로 척척 찾아낸다. 예약부터 안내, 예산 집행을 가이드처럼 도맡았다. ‘친구 2’는 영상 작업을 한다.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우리들 추억을 기록했고, 특유의 준비성을 발휘해 맛집, 명소 등 여행 정보를 챙겨왔다. 나는 휴대전화 안 됨, 영어 못함, 체력 약함을 핑계로 그냥, 마냥 따라다녔다. 조금 미안했지만 점점 익숙해졌는데 친구 1이 한번은 말해버린 것이다. 

“가만히 있지만 말고 가는 길이라도 찾아 좀.” 

앗, 그건 내가 밥 짓느라 동동거리면서 애들한테 “수저라도 좀 놓아”라고 하는 말의 톤과 뉘앙스였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친구 1, 친구 2는 글쓰기 수업에서 만났다. 나이도 내가 제일 많다. 교실 밖 여행 속에서 나는 ‘쌤’이 아니라 무지렁이가 되었고 그 또한 나쁘지 않다 여겼지만 그건 내 생각이고. 그들 처지에선 여행이 서툴고 ‘원래부터 못한다’라며 두 손 놓은 나를 부리거나 내게 성질내긴 어려웠을 거 같다. 

“우리 팀은 분위기가 좋아. 이상한 사람도 없고.” 팀장이 말하면 팀원들이 겉으론 같이 웃지만 속으로 ‘이상한 사람=너님’이라고 말하는 웹툰을 본 적이 있다. 위계와 위치에 따른 감각은 이토록 다르다. 내가 안락하면 남은 그만큼 힘겨운데 안락한 자는 그 사실을 몰라서 더 안락하다. “마음은 생각보다 훨씬 작고 좁은 곳, 무엇도 영원히 숨길 수 없(184쪽)”다. 그런데도 “티를 덜 내고 감정을 참고 내 자신을 속이는 게 언제부터 어른스럽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는지 모르겠다(181쪽)”. 어른스럽지 않게 티를 내준 친구 1이 고마웠다. 덕분에 어른스럽지 않은 행동을 자각할 수 있었으니까. 

가을 여행 이후, 우린 한겨울에 재회했다. 친구 2가 깜짝 선물을 내밀었다. 나와 친구 1의 사진을 손수 편집한 앨범이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여기는 반캉왓, 와로롯 마켓, 호시아나 빌리지…. “사라져버릴 소중한 ‘그때’를 묵념하는 것 같은 순간들(107쪽)”에 울컥했다. 쓸쓸할 때마다 두고두고 어루만질 실물 추억이 생긴 것이다. 타인의 친절로 떠나고 즐기고 기록된 여행. 사진 속 내가 부자처럼 웃는다. 마음에 쌓아둔 친절을 난 누구와 나눌까. 

‘난 말이지, 사람들이/ 친절을 베풀면/ 마음에 저금을 해둬// 쓸쓸할 때면/ 그걸 꺼내/ 기운을 차리지// 너도 지금부터/ 모아두렴/ 연금보다/ 좋단다’ (저금-시바타 도요, 122쪽).


* 시사인 은유 읽다


페미니스트보다 무서운 것

[은유칼럼]

‘밥 안 해놓는다고 자주 갈등 겪어, 잠자던 딸 둔기로 살해한 아버지’. 며칠 전 본 기사 제목이다. 노예제 사회도 아니고 2018년 1월19일에 한국에서 벌어진 일이라니 믿기질 않아서 몇 번을 읽었다. 여자가 여자라서 화장실 가다 죽고, 안 만나준다고 전 애인에게 죽고, 밤늦게 다닌다고 남편한테 죽고, 미용실에서 일하다 죽고, 술자리에서 희롱당하는 뉴스가 연일 터지는 와중에 유독 충격이었다.


나는 밥에 대한 글을 참 많이 썼다. 뇌의 반이 밥(걱정)으로 차 있어서다. 누구나 자신이 속박된 주제에 대해 쓸 수밖에 없다. 밥 얘기를 쓰면서도 스스로 검열했다. 글감치고는 시시한 거 아닌가, 그깟 밥이 뭐라고, 나라의 명운이 걸린 것도 아니고…. 그래도 꿋꿋이 썼지만 ‘여자는 밥하는 존재가 아니다’라고 하면 그 말은 어쩐지 우스워 보였다. 저 기사를 보니 웃을 일이 아니다. 밥이 전선이다. 밥 때문에 사람이, 여자가, 맞아 죽기도 한다.


집안도 화장실도 거리도 일터도 일상 동선 어디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여성에겐 그렇다. 인구 절반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고 말하면 ‘망상’ 같지만, 나나 내 딸아이나 동성 친구들이 해를 입을 수 있다는 건 ‘예상’ 가능하다. 만약 기독교인이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유색인이 유색인이라는 이유로 하루걸러 죽어도 세상이 잠잠할까. 여성혐오가 대기에 만연하고 사망자가 꾸준히 발생하는데 사람들은 미세먼지만큼도 일상의 재난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주변에서도 안전 불감증을 느낀다. 한번은 강연장에서 한 여성이 조심스레 말했다. 형제를 키우는데 여자애들 등쌀에 아들들 학교생활이 힘들다며 남녀차별 시대가 아니고 여성상위 시대 같다고 했다. 또 예쁜 여자한테 꽃이라고 하는 게 왜 문제냐며 ‘페미니스트들’이 좀 무섭다고 했다. 뭐 그리 생각할 수 있다. 원래 내 불편은 가깝고 남의 불행은 멀어 보인다.


그러나 아들들이 학창 시절 이런저런 불편을 겪는다 한들 딸들처럼 죽고 사는 문제는 아니다. 화장실 갈 때나 택시 탈 때마다 불안에 떨면서 평생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 꽃처럼 예쁘단 말은 그 자체로 덕담이지만 한 사람이 꽃이 되는 순간, 발화자가 언제든지 꺾어버릴 수 있는 수동적 존재가 되고, 외모노동을 강요하는 압력으로 작용한다. 여성이 직장에서 ‘꽃’으로 취급되며 개별적 주체나 실력으로 인정받기보다 성적 대상화와 폭력에 노출되는 게 그 증거다.


‘검사인데도 저런 일을 당하다니 보통 여자들은 오죽하겠냐.’ 서지현 검사의 성폭력 피해 사실 인터뷰에 대한 인상적인 반응이었다. 그동안 몰랐나 싶어 조금 놀라기도 했다. 우리 사회 권력 집단에 속한 피해자가 자기 삶을 걸고 방송에 나와 역시 최고의 담론 권력을 쥔 앵커와 마주 보고 증언할 때라야 피해자의 목소리가 겨우 가닿는다. 피해자의 말에 술렁이고 반응한다.


여성혐오로 인한 죽음, 그리고 성폭력 피해는 주식 시세나 날씨처럼 매일 생산되는 뉴스다. 한샘 여직원의 성폭력 사건이 폭로된 게 불과 몇달 전이고, 문단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진 게 이년 전이다. 누구도 들어주지 않아서 서사가 되지 못한 채 눈송이처럼 흩어져버린 힘없는 여성 피해자들 이야기는 반도의 땅 곳곳에 설산을 이루고도 남는다.


우리가 무서워해야 할 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페미니스트가 가리키는 여성이 처한 현실의 참담함이다. 여자는 밥하려고 태어나지 않았고 꽃처럼 꺾어도 되는 존재가 아닌데 밥 안 한다고 죽이고 꽃 꺾듯 존엄을 꺾어버리는 무수한 사건들에도, 우리는 계속 놀라고 말리고 떠들고 분노해야 한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30625.html?_fr=mt5#csidx0b52d534adbd1d2bb4ca4cfa526253e

슬픈 인간- 나는 아직도 '돈 몇푼' 갖고 싸운다

[은유칼럼]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샘이 젤 유명해요.” 4년 만에 만난 지인의 첫인사다. “작가님이 유명해지고 가족들 반응은 어떠냐”라는 질문이 북 토크에서 나온다. 유명하다는 게 뭘까. 유명한 사람은 유명해서 유명해진다는 순환 논리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남편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 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성정의 소유자로 일희일비를 모른다. 군인 아들은 민가의 사정에 어둡고, 딸아이가 가장 실감할까. 한번은 지나가듯 말했다. “엄마, 엘리베이터에서 택배 아저씨를 만났는데 18층 누르니까 너네 엄마 작가냐고 물어보셨어.” 

그렇다. 일상의 가장 큰 변화는 택배 물량이다. 내가 물욕으로 사들이는 책 외에 출판사에서 보내주는 증정 도서가 늘었다. 글쓰기 수업을 한 지 어언 10년, 학인들이 낸 책도 속속 답지한다. 우리 집 고양이는 날마다 크기와 질감이 다른 상자에서 안락을 누린다. 쓰레기 배출을 한 주일만 걸러도 택배 상자와 인쇄물로 방 안이 폐지 집하장이 된다. 밟거나 읽거나, 종이를 헤치며 나아가는 삶이다. 

ⓒ시사IN 윤무영

하루 일과는 매양 같다. 눈 뜨면 글 쓴다고 카페 가고 오는 길에 장 봐서 밥 짓고 강의 가고 여기저기 메일 보내고 책을 베개 삼아 잠들고. 이 마감에서 저 마감으로 시곗바늘처럼 단조롭게 운행된다. “인생이라는 근면한 공장에 한번 말려든 사람은 설령 도중에 싫증이 났다고 해도 뒤에서 밀려오는 사람에 떠밀리고 떠밀려 출구까지 빙빙 돌지 않으면 안 된다(301쪽)”는 걸 실감한다. 

집필 노동자로서 고민도 여전하다. 어떻게 잘 쓸 것인가. 노동력의 정당한 대가를 받을 것인가. 원고 청탁이나 강연 의뢰가 이전보다 많이 오는데, 더 맞춤한 일을 고를 수 있는 건 장점이고 일일이 확인과 거절의 메일을 보내야 하는 건 단점이다. 돈은 늘 복병이다. 일반적으로 아무리 단기 알바라도 급여나 월급날을 모르고 일자리를 구하는 경우는 없다. 프리랜서 작가는 아니다. 상대방이 고료와 지급 날짜를 명시하지 않고 일을 의뢰하기도 한다. 난 요즘도 이런 메일을 쓴다. “원고료(강연료)가 얼마인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일전엔 한 잡지사에서 원고 청탁이 왔다. 고료와 지급 날짜가 단정히 적혀 있었다. 기본 사항인데도 고마워서 뭉클했다. 같은 날 한 팟캐스트에서 출연 섭외가 왔다. 출연료가 안 쓰여 있었다. 메일로 물었더니 답이 왔다. 교통비밖에 안 되는 적은 금액이라 죄송해서 말 못했고 가는 길에 스윽 드리려 했다고. 맥이 풀렸다. 자금 사정이 안 좋아도 스튜디오 대신 길거리 녹음을 하지는 않을 텐데 인건비는 줄인다. 인정으로 갈음한다. 악덕 자본가만 그러는 게 아니라 시민단체도 영세 업체도 일인 기업도 자연스레 그리 한다. 

<슬픈 인간> 나쓰메 소세키 외 지음, 정수윤 옮김, 봄날의책 펴냄

‘두부 장수가 두부를 만들듯’ 

자유기고가로 일할 때부터 최저 원고료를 보장하지 않는 곳과는 가급적 일하지 않았다. “대중 소설가가 그 출판사와 절교를 한다는 건 식량 수송로를 끊어버리는 것과 같다(234쪽)”는데, 비슷한 강도의 결단으로 버텼다. 남들 보기에 유명의 날개를 단 나는 아직도 ‘돈 몇 푼’ 갖고 싸운다. 수십 번 망설이다 그래도 말한다. 안정된 직업, 고정된 급여 없이 오직 글에서 밥을 구하는 노동자를 위해. 

글은 정자세로 앉아 시간을 바치지 않으면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목뒤부터 어깨를 타고 손끝까지 흐르는 저림을 겪으며 문장의 길을 터나가야 한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을 수 없는 직업이지만 그 미련스러움 때문에 내 일이 좋다. 새해를 맞아 순정하게 다짐해본다. “두부 장수가 두부를 만들듯이 성실하게 규칙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써 나가고 싶습니다 (201쪽).”


* 시사인 은유 읽다

이상한 정상 가족 - '불쌍한 아이' 만드는 '이상한 어른들'

[은유칼럼]

인터넷 광고 페이지에서 아기 사진을 보았다. 통통하게 오른 볼살과 한 줌의 보드라운 머리카락을 가진 아기가 누워서 천장을 보는 옆모습이었다. 작은 생명의 연약함, 무구함, 천진함이 몽글몽글 만져졌다. 자세히 보니 어느 사회복지 단체의 광고 홍보성 페이지다. 태어나자마자 버림 받은 아이들을 돌본다는 그곳은 이웃의 관심을 당부했고, 게시물 아래에는 ‘후원했다’, ‘우리 아이가 떠올라 마음이 아프다’, ‘돕겠다’, ‘천사 같은 아기야 힘내라’는 댓글이 달렸다.

 

때는 연말, 날은 춥다. 원래 아기 사진은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힘이 있는데다 순탄치 못한 서사까지 더해지니 나 역시 그 페이지를 휙 나가지 못하고 어정거렸다. 눈꼬리에 물기가 맺혔다. 부모 없이 자라는 게 가여워서가 아니라 부모 없이 자랐다는 말을 듣고 살아가야 할 아기가 애처로워서다. 한 아이가 성장하는 데 필요한 게 부모인가 돌봄인가. 한국사회에서는 오직 부모에게 전가된 돌봄이고, 그것이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비극을 초래하는 것 같다.

 

한 사회복지시설에서 지내는 아이가 ‘비밀’이라는 글을 썼다. 너무 비밀이라 선생님만 봐야 한다며 글쓰기 수업이 끝나고 내게 가져왔다. 자기는 아빠, 엄마가 없는데 그걸 친구들한테 말하지 못했고 제일 친한 친구에게만 아빠가 없다는 걸 말했다고. 자기는 친구 집에 놀러가지만 친구들을 집에 초대할 수가 없는데, 여기도 집이지만 친구를 데려오면 부모가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때문이라는 내용이었다. 진실한 글들이 그러하듯 읽으면서 아이의 불안과 감정에 전염되어버렸다. 아이의 비밀스러운 고민은 그때부터 나의 고민이 되었다.

 

열다섯 살 아이의 비밀은 왜 비밀이어야 할까. 만약 우리사회가 ‘정상’가족에 대한 기준이 엄격하지 않은 사회라면,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제대로 큰다는 이상한 믿음 체계만 없다면, 저 정상이라는 게 얼마나 허술한지 낱낱이 드러난다면, 다양한 가족 형태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면, 타인의 개별적 상황을 들어주고 보듬어주는 분위기라면, 아이는 비밀을 굳이 비밀로 채택하지 않았을 것 아닌가. 

 

이런 두서없는 물음과 한탄으로 꽉 막힌 속을 뚫어주는, 같이 한숨 쉬면서도 정확한 분노와 고민의 지점을 알려주는 미더운 한 권의 책을 만났다. 김희경이 쓴 『이상한 정상가족』이다.

 

우리 사회가 유독 정상가족에 집착하는 이유가 나온다. “가족은 부계혈연 중심의 유교적 가족규범이 지배적이었던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근대화, 도시화, 산업화를 거치며 줄곧 사회적 위기상황에서 개인을 지켜주는 거의 유일한 울타리였다.”(166쪽) 그러니까 사회 안전망이 없는 사회에서 개인이 기댈 유일한 언덕은 ‘사적 안전망’인 가족이라는 얘기다.

 

그렇지만 가족 내부의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 삭막하다. 각각 밥하고 돈 벌고 공부하는 도구적 존재로서 서로를 구실 삼아 정상가족의 그럴싸한 외양을 유지한다. “자녀를 소유물처럼 대하고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자녀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증명하려드는 부모라는 권력”(10쪽)은 체벌이나 학대 같은 친밀한 폭력을 은밀히 혹은 대놓고 행사한다. 아동인권단체에서 6년간 활동하며 ‘아이들의 수난사’를 지켜본 저자는 묻는다. 가족은 정말 울타리인가.

 

저 물음에 대해 난 고개를 반쯤 젓게 된다. 수년간 글쓰기 수업에서 ‘어른들의 성장기’를 접하면서 한 사람의 지울 수 없는 고통과 치욕은 어김없이 가족의 뿌리에 닿아 있음을 보았다. 유년시절부터 노동에 지친 아버지는 술 마시고 엄마에게 폭언과 폭력을 휘두르는 모습이었기에 이제 아버지가 죽어도 눈물이 날 것 같지 않다고 자식은 말한다. 일 나간 엄마 아빠를 대신해 초등학교 때부터 가족의 노동력으로 동원되고 두 동생을 돌봐야 했던 어린 장녀는 이웃집 아주머니와 싸움에 휘말렸으나, 자식의 편을 들어주기는커녕 매질을 한 엄마에 대한 30년 묵은 원망을 털어놓는다.

 

가족의 울타리는 핵가족 사회에선 억압과 공포의 밀실이 되기도 한다. 학창시절 최고 성적을 놓치지 않았던 아이는 너에게 들어간 학원비가 얼마인줄 아느냐, 1등을 못하면 강아지를 죽이겠다는 협박에 시달리며 과중한 학습 노동을 수행했고 끝내 정신의 질병을 얻었다. 물론 가족의 헌신과 지지로 좌절을 감내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말해지지 못한다는 점에서 고통이 더 깊고 크다. 저자 말대로 “문제는 가족의 형태가 아니다. 예컨대 친부모라고 안전하다고 할 수 없다”(63쪽).

 

부모와 산다고 다 행복하지 않듯이 부모가 없다고 꼭 불행하지 않다. 복지시설에서 사는 열다섯 살 아이의 비밀이 아픈 것이지, 그 아이의 삶 자체가 슬픈 것은 아니다. 아침에 학교에 가고 아이돌 좋아하고 친구들이랑 싸우고 떠들고 치마 기장 줄이기에 연연하며 핸드폰 카톡에 정신이 팔려 있는 모습은 또래 아이와 다르지 않다. 부모의 부재를 무조건 동정하거나 차별하는 시선만 아니라면 아이가 기죽을 일도, 거짓으로 둘러댈 일도 없다. 

 

한 아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 타인의 돌봄이다. 그 타인이 꼭 부모일 필요는 없다. 부모이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인간은 나약하고 흔들리는 존재다. 자식을 낳는다고 남을 돌볼 수 있는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 상태가 자동으로 세팅되지는 않으며 그랬다고 해도 영원하지도 않다. 그러므로 “아이는 무조건 친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식으로 혈연을 강조하고 모성에 대한 환상을 부풀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128쪽) 

 

한 아이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든 신체적 온전함과 존엄성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후원금을 척척 내는 어른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부모님 뭐하시느냐’ 다짜고짜 묻지 않는 어른이 많아져야 하고 이력서에 가족관계를 쓰지 않도록 하는 제도가 생겨야 한다. 이 세상에 ‘불쌍한 아이’는 없다. 부모 없이 자란 자식이란 굴레를 씌우고 불쌍한 아이를 만들어내는 집요한 어른들이 있고, 정상 가족이라는 틀로 자율적 존재를 가두거나 배제하는 닫힌 사회가 있을 뿐이다.


* 채널예스에 실림

서울, 패터슨의 가능성

[은유칼럼]

평일 오후에 이런 적은 처음인데 싶어 연신 창밖으로 몸이 기울었다. 정류장이 코앞. 신호가 몇번 바뀌도록 버스가 꼼짝 못 하자 기사는 뒷문을 열어주었고 승객 서넛이 내렸다. 큰 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정류장도 아닌 데 차를 세웠다며 뒷문 쪽에 웬 남자가 서서 목청을 높였다.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 줄 아느냐, 운전기사가 아무것도 모른다, 형편없는 사람이다, 라며 그는 술 취한 아버지처럼 한 말 또 하기 신공을 발휘하더니만 느닷없이 화제를 자신에게 돌렸다.

“내가 말이야 모자 쓰고 잠바때기나 입고 있는 늙은이라고 날 무시해!” 짙은 밤색 모자와 남색 외투를 입은 행색은 단정하고 허리는 꼿꼿했다. 행동도 민첩했다. 핸드폰을 꺼내 차 문 위에 붙은 교통불편 신고 전화번호를 누르고 차량 번호, 위치, 신고 내용을 읊고는 꼭 처리해달라며 끊었다. 그사이 버스는 정류장에 닿았고 중얼중얼 단죄를 멈추지 않으며 그는 퇴장했다.

가래 끓는 말들의 악취가 버스에 낭자했다. 무대응으로 일관하던 기사님은 묵묵히 차를 몰았다. 빈 의자 없이 좌석을 채운 승객들은 정물처럼 조용했다. 만약 기사가 멱살을 잡혔다면 누군가 말렸을까. 이 공공연한 멸시와 억측의 현장에서 나는 무기력했다. 이 정도는 부정 정차가 아니다, 기사님한테 왜 막말하느냐, 당신이야말로 업무방해죄로 신고하겠다는 말은 입 밖으로 터져나오지 못했다.

일전엔 밤 10시 무렵 버스 뒷자리에서 젊은 여성 둘이 종알종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어 칸 앞에 앉은 중년남성이 고개를 획 돌리더니 ‘조용히 하라’고 했다. 취기 섞인 음성과 불그레한 얼굴은 위압적이었고 여성들의 말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근데도 압박의 제스처가 계속된 모양이다. “왜 자꾸 기분 나쁘게 쳐다보세요? 아저씨가 뭐라고 한 뒤로 우린 아무 말도 안 했거든요?” 여자의 단호한 목소리가 들렸고 남자의 대응은 없었다.

때로 버스는 폭력을 잉태한 가부장의 공간이 된다. 사회적 약자들, 특히 자리를 뜰 수 없고 눈동자를 마주할 수 없는 운전기사는 쉽게 사물화된다. 한평도 안 되는 일터에서 겪는 기막힌 일들, 무례의 말들은 얼마나 많을 것이며 저 울화를 누구에게 얘기하고 이해받고 몸 밖으로 흘려보낼까. 행여나 그 얼토당토않은 신고 때문에 징계를 받는 건 아닌지, 걱정은 하면서도 난 버스회사에 전화 한 통 넣지 못했다. 마음의 빚으로 남았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한 아이를 학대하는 데에도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사무치는 나날이다. 일터 괴롭힘이든 아동 학대든 학교 왕따든 성폭력이든 다수의 침묵과 방조 없인 불가능하단 얘기다. 살면서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정신 차리고 피해자가 됐을 때 대응하자며 공부하지만 시급한 건 목격자로서 행동 매뉴얼, 남의 일에 간섭하고 목소리를 내는 훈련 같다.

영화 <패터슨>의 남자 주인공 직업은 버스 운전기사다. 그는 운전석이라는 공적 공간에 비눗방울 같은 막을 만들어 고요를 누린다. 사람과 주변을 관찰하고 시상을 떠올리며 짬짬이 시를 쓴다. 그의 내적 세계를 함부로 터뜨리거나 침해하는 사람은 없다. 자기 생각과 감정을 가진 노동하는 존재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장면은 천국 같았다. 우리 일상이 시를 낳는 공간이 되려면 똥물 같은 언사를 휘두르는 현실에 눈 돌리지 않고 같이 뒹굴고 치워야 할 것이다. 새해엔 나도 ‘반격하는 몸’이 되고 싶다. 시 쓰는 운전기사를 위해.


*한겨레 삶의 창 

듣고도 믿기지 않는 실화

[은유칼럼]

“딸이 있어 참 다행이야(57쪽).” 

엄마의 장례식장에 온 이모는 나를 구석에 있는 벤치로 데려가서 앉혀놓고 손을 부여잡고 연신 말했다. 딸이 있어서, 네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너마저 없었으면 어쩔 뻔했니, 아버지랑 오빠 남겨두고 가면서 엄마가 어떻게 눈을 감았겠니, 네가 엄마 대신 잘해라. 너만 믿는다. 그날 문상객들은 급작스러운 망자의 죽음에 경황이 없었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보다 몇 시간 일찍 부고를 들었을 뿐인 나는,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내가 딸이란 사실을 떠안아야 했다. 

한 해 두 해 지나자 의구심이 일었다. 왜 나지? 누가 시켰지? “혀뿌리까지 치밀었던 말들(278쪽)”이 어느 날 넘쳤다. 힘들어서 못하겠으니 반찬가게에서 사먹거나 가사도우미를 구하라고 남자들에게 통보했다. 그러자 바로 가사도우미가 왔고 난 반찬 셔틀을 중단했다. 그건 수갑이 풀리듯 매우 간단한 일이었다. 몇 가지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그걸 말하지 않으면 모르나 싶지만 정말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것. 남의 고통을 헤아려주는 사람은 없다는 것, 그리고 내가 무얼 하지 않아도 세상엔 별일이 안 일어난다는 것이다. 

폭탄 돌리기처럼 허둥지둥 여자 역할을 내게 떠넘긴 사촌이모는 “자신도 가부장제의 피해자인 동시에 그 규범을 적극적으로 재생산”하는 보통 엄마였다. “딸이 있어 얼마나 다행이니.” 우리 엄마도 자주 말했다. 속 하나 안 썩이고 없는 것처럼 자란 속 깊은 딸, 엄마의 자랑, 엄마의 보험, 엄마의 친구. 이 모든 명예 훈장은 실은 집안의 일손이자 엄마의 보조 노동력이자 감정 해우소로 딸을 승인하는 몹쓸 언어다. 그 딸들은 며느리가 되어서도 “집안의 사노비(55쪽)” 신세를 면치 못한다. 

아무리 그래도 노비라니 너무 심한 거 아닌가, 경상도 남자와 결혼한 선배의 얘길 듣기 전이라면 서울 여자인 나는 그리 생각했을 거다. 새 며느리의 첫 명절, 생면부지의 친척들이 줄줄이 들이닥쳤고 부엌에 갇혀 과중한 노동에 시달렸다. 유건 쓰고 도포 입은 남자는 없었으나 남녀 상차림을 따로 했다고. 거기까진 각오를 했는데 현실은 늘 예상을 초과하는 법. 시어머니가 말하길, 우리 여자들은 남자들이 남긴 밥을 먹자고 했다는 것이다. “아니, 내가 왜 누군지도 모르는 늙은 남자들이 남긴 더러운 밥을 먹어야 해?” 

가부장제 생존자의 증언 

그날 우린 깔깔대다가 같이 울었다. 듣고도 믿기지 않는 실화, 구토가 치미는 강도의 기억. 가부장제 생존자의 증언은 왜 언제나 새롭고도 새삼스러운가. 한 사람이 물꼬만 터주면 “삭히거나 잊어야 하는 줄만 알았던 자신의 이야기 (278쪽)”를 너도나도 꺼내놓는다. 그리고 거기에는 “참고 또 참는 사람. 남자가 하는 일에 토를 달지 않는 사람, 남자와 아이들에게 궁극의 편안함을 제공하는 사람. 자기 욕구를 헐어 남의 욕구를 채워주는 사람, 자기주장이 없거나 약하므로 갈등을 일으킬 일도 없는 사람(51쪽)”으로 길러졌으나 이제 그런 자기를 들여다보는 사람으로 변신한 한 존재가 있다. 그저 말하고 있음. 단지 말하고 싶음. 나는 말해야겠으므로 쓰인 소설 한 권, 여성들의 삶을 정 가운데로 놓은 이야기가 있어 참 다행이다.



*시사인 은유 읽다

걷기의 인문 - 사람, 걷기, 공부의 조합에 마음 설레다

[은유칼럼]

학교 운동장 수돗가 크기의 족탕에 두 발을 담그고 앉았다. 뜨끈한 김이 오르는 온천수 아래로 짚신처럼 쭈글쭈글하고 단풍처럼 붉어진 두 짝의 발이 나란하다. 총 길이 12㎞, 다섯 시간 코스 종착점에서 수고한 발을 달래주는 시간. 오늘 얼마나 걸었나 보자며 한 사람이 스마트폰을 열었다. 1만9000걸음이란다. 나도 열어보았다. 2만2000걸음이다. 아침부터 같은 동선으로 같이 다녔는데 왜 숫자에 차이가 나죠, 묻자 누군가 말했다. 다리 길이가 다르니까요. 맨발의 어른들은 ‘롱다리 숏다리’ 얘기에 깔깔깔 즐겁다. 

<시사IN> 창간 10주년 기념 규슈올레 걷기 행사에 3박4일간 동행했다. 독자 61명과 길을 걷고 강연을 듣고 역사 현장을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나는 여행을 썩 즐기는 편은 아닌데 ‘사람, 걷기, 공부’의 조합에 마음 설레어 나섰다. 자연보다 사람에 자극받는 편이고 달리기보다 걷기, 놀기보다 공부가 적성에 맞는다. 이 세 가지에는 공통점이 있다. 삶도 걷기도 공부도 서두르지 않고 자기 속도대로 꾸준히 해나가는 일, 결과보다 과정이 소중한 행위라는 점이다. 

ⓒ시사IN 신선영

“보행은 그저 존재하는 것과 뭔가를 해내는 것 사이의 미묘한 균형이다(20쪽).” 리베카 솔닛의 말에서 보행을 공부로 바꿔도 뜻이 통한다. 책 한 권을 읽거나 강연 한번 듣는 일은 산책 한번 하는 것처럼 그 자체로는 별다른 변화도 보상도 주지 않는다. 아무것도 안 하는 거랑 당장에는 비슷하다. 그런데 그것들이 쌓여서 몸의 감각이 변하고 삶의 자리가 달라진다. 태생적으로 경쟁을 무서워하는 나는 이 “아무것도 안 하는 것에 가까운 일”로 인생의 지면을 채우며 생산 지향적 사회에서 간신히 살아왔다. 

이번 걷기 여행에서도 하위 그룹에 섞였다. 내 뒤에 오던 이가 힘들어서 못 따라가겠다고 헉헉대자 가이드가 조언했다. “그냥 지금처럼 가셔도 돼요. 앞에 가는 사람은 신경 쓰지 말아요. 맨 앞에 가는 사람들은 빨리 못 가게 하면 병나는 사람들이에요. 나중엔 다 만나요.” 원래 60명 정도가 걸으면 선두에서 후미까지 한 시간 정도 차이가 난다고 가이드는 설명했다. 그 말이 꼭 세상의 운행 원리를 밝히는 스님의 법문처럼 가슴에 박혔다. 

속도 숭배의 사회에선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목소리가 어딜 가나 들린다. 글쓰기를 배우는 학인들은 잘 쓰는 동료 때문에 기죽는다고 호소한다. 난 수영 강습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는 초급반에서 가장 진도가 느려서 자주 창피한데, 수영대회 출전을 위한 게 아니고 건강을 위한 운동이므로 뻔뻔하게 다닐 것이며 2~3년 지나면 웬만한 영법은 하겠지 생각한다고, 글쓰기도 당장의 시간 투입 대비 산출을 셈하지 말고 묵언 정진하라고 말한다. 빨리 배우라고 하면 병나는 종족인 내가, 빨리 못 배우면 병나는 종족들에게 어쭙잖은 충고를 했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남에게 하는 말은 곧 나에게 하는 말. 

전복적 우회를 택하는 용기 

리베카 솔닛 지음김정아 옮김반비 펴냄

규슈올레 마지막 날, 미야마 코스는 두 시간 소요 예정인데 30분 일찍 목적지에 전원이 도착했다. 진행 스태프가 왜 이리 빨리 걷느냐고 ‘천리마운동’ 하시느냐며 지청구를 주었다. 어쨌거나 우리는 걸었다. 일하던 컴퓨터를 켜놓고 빠져나온 직장인, 연기된 수능을 보는 동생과 엄마를 두고 혼자 온 대학생, 나 홀로 일하는 앱 개발자, 여고 동창들과 외유 나온 어르신 사총사 등, 하던 일도 보폭도 폐활량 나이도 제각각 다르지만 “생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여가를 오그라뜨리고 존재를 짜부라뜨리는 지점(31쪽)”에서 전복적 우회를 택하는 용기를 냈다. 

“중류층의 육체를 집과 사무실에 갇혀 있는 시대착오적 물건으로 변형시키는 환경”, 돌아다니기에 알맞은 사람의 몸을 “공장의 기계 부품으로 변형시키는 환경(274쪽)”에 대한 거부로서 걷기가, 못생긴 발을 마주하는 가식 없는 만남이 여행이 아닌 일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 시사인에 게재됨


김장 버티기

[은유칼럼]


‘마음은 빈집 같아서 어떤 때는 독사가 살고 어떤 때는 청보리밭 너른 들이 살았다’고 어느 시인은 노래했는데, 찬 바람이 불면 내 마음엔 커다란 김장독이 산다. 남도의 땅에서 나고 자란 엄마는 김치를 중시했다. 배추김치는 기본에 깍두기, 총각김치, 갓김치, 파김치, 물김치를 번갈아 담갔고 김장철엔 손이 더 커졌다. 김치 가져가라는 전화에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고선 냉장고에 자리도 없는데 또 담갔냐고 기어코 한소리하기도 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10년, 엄마 김치를 못 먹게 된 지 10년이다. 김치 가뭄으로 엄마의 부재를 실감한다. 시댁에서 가져온 김치는 빨리 동나고 산 김치는 비싸서 감질나고, 나는 김치를 담글 줄 모른다. 가사노동, 양육노동, 집필노동으로 꽉 채워진 일상. 내 인생에 김치노동까지 추가되면 끝장이라는 비장함으로 안 배우고 버텨왔다. 할 줄 알면 누가 시키기도 전에 몸이 자동으로 움직일 게 뻔하니까, 식구들이 잘 먹으면 먹이고 싶으니까. 내가 나를 말리는 심정으로 김치 먹을 자유보다 일하지 않을 권리를 수호하고 있다. 

“이번엔 황석어젓을 사봤는데” “고춧가루 빛깔이 안 좋아서 속상해” “올해는 절임배추 써볼까 하는데” 요즘 시장에서, 거리에서, 버스에서, 목욕탕에서 나이 든 여자들은 둘만 모였다 하면 김장 얘기다. 마음에 김치가 사는 나는 이런 목소리를 줍고 다닌다. 머리가 허옇고 허리가 기역자로 굽어도 장바구니 달린 보행기를 밀고 다니면서 쪽파며 배추를 실어 나르는 동네 할머니를 본다. 

살아계셨으면 일흔일곱. 우리 엄마도 저이들처럼 억척스럽게 장 보고 김장을 하고 삭신이 쑤신다며 앓아누우셨을까. 엄마는 그즈음 부쩍 음식 간이 안 맞는다고, 뭘 해도 맛이 없고 김치도 짜기만 하다고 낙심했다. 혀가 늙는다는 것도, 김치 담그기가 중노동이라는 것도 삼십대인 나는 알지 못했다. 김장을 안 해도 된다는 것을 그 시절 엄마가 알지 못했듯이. 

어쨌거나 나는 매년 김장 김치를 먹는다. 파는 김치는 비위생적이며 당신 손으로 해주는 게 부모의 도리라고 여기는 시어머니가 담가주시고, 가까운 이들에게 사랑의 김장이 답지한다. 올해는 친구의 시골 노모가 담근 김치를 분양받았다. 양이 많다며 배추김치 한 통에 덤으로 총각김치랑 묵은지까지 보내주었다. 끼니마다 콕 쏘는 김치를 허겁지겁 먹어치우면서도 목 안이 따끔하다. 한 여성이 소위 ‘바깥일’을 하려면 다른 여성의 돌봄노동이 필요하듯이, 내가 김치 담그기에서 해방되자면 누군가의 고단한 노역의 산물인 김치를 먹게 된다. 얼마나 손끝이 얼얼하도록 마늘을 까고 생강을 다지고 배추를 씻고 절이고 버무렸을까. 

‘엄마표 김치’라는 말이 그리운 말에서 징그러운 말이 되어간다. 엄마의 자기희생이 강요된 말, 넙죽 받아먹기만 하는 자들이 계속 받아먹기를 염원하는 말이다. 어느 소설가의 문학관에는 대하소설을 쓰는 동안 사용한 볼펜과 원고지가 탑처럼 쌓여 있다고 하는데, 엄마들이 평생 담근 김치와 사용한 고무장갑을 한눈에 쌓아놓으면 어떤 붉은 스펙터클이 나올지 상상해본다. 어머니가 해주신 밥과 김치 먹고 굴러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절대 가시화되지 않는 이상한 노동. 피와 살로 스며서 똥으로 나가버리는 엄마의 땀. 부불노동(unpaid work)으로서 가사노동의 불꽃인 김장. 

한 동료의 엄마는 여든살을 맞아 김장을 안 한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늦은 은퇴다. 엄마들의 잇단 김장 파업 선언에 김치 난민이 속출하는 또 다른 겨울 풍경을 그려본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22724.html?_fr=mt5#csidx59f1e4f302efc4dba1b0897023be44f 

마침내 사는 법을 배우다

[은유칼럼]

모처럼 한국을 떠났다 돌아온 다음 날, 문자 메시지가 왔다. “여행 중이신 거 같아 알리지 못했는데 이재순 선생님이 돌아가셨습니다.” 뒤늦은 부고에 황망함이 몰려오자 그의 장례식에 찾아 뵙지 못한 죄스러움이 커져갔다.

 

이재순은 2016년 봄부터 한 지역 평생학습관에서 10주간 같이 공부한 학인이고, 지난 수년간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면서 내가 만난 이들 중 최고령자다. 수업 첫날 이렇게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나이가 많습니다. 일흔 살인데 결혼을 안 했고 자식이 없고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담담한 자기 진술은 힘찬 빗줄기처럼 가슴을 두드렸고 그가 쓰는 글들은 사람은 왜 배워야하는가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였기에 난 그의 사연을 『쓰기의 말들』에 소개하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췌장암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나는 옛 게시판을 뒤져 그가 쓴 글들을 추려서 찬찬히 읽어보았다.

 

이재순은 세 살 때 홍역을 앓았다. 부모님은 이미 아이 셋을 홍역으로 잃은 뒤였기에 포기하고 윗목에 밀어두었는데, “엄마” 하고 모기만한 소리로 불러서 살아났다. 그에게 유년 시절은 전쟁 직후로 몹시도 가난했지만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다. “건강한 시절은 오직 그 때 뿐이었으니까.”

 

10대부터 수난이었다. “딸인 나를 중학교에 보내면 아들인 동생을 중학교에 못 보낼 수도 있다”는 아버지의 말씀에 “발광을 떨며” 단식투쟁으로 맞섰고 어머니와 외삼촌의 도움으로 중학교 입학금을 겨우 마련했다. 그러나 류머티즘 관절염이란 병이 공부의 앞길을 막았고  관계의 끈도 헝클어버렸다. 중3 때, 아픈 다리를 간신히 이끌고 학교에 가던 길이었는데 또래의 동네 남자아이가 절룩거리는 모습을 흉내 내며 계속 따라왔다. “너무나 화가 나서 그놈을 잡아 죽이고 싶었다.”

 

고등학교 진학은 언감생심, 긴 투병이 시작됐다. 변변한 치료법을 찾지 못하던 그 시대에 병을 고쳐보겠다고 “무당들과 한 달 동안 함께 기거하며 굿을 하기도 했고, 때로는 부적을 불에 태워서 그 재를 먹기도 했고, 때로는 동네 두더지란 두더지는 다 잡아서 약탕에 고아 먹기도 하며 세월을 보냈다.” 그러다가 서울의 큰 병원에서 올바른 진단과 치료를 받고 겨우 걸음을 걸었다.

 

세월이 흘러도 공부에 대한 열망은 식지 않았다. 60대로 접어든 어느 해 “아픈 몸으로도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걸 알고 방송통신고등학교에 들어갔다. “학력란에 당당하게 ‘고교 졸’이라고 쓸 수 있다는 기쁨”에 만족하지 않고 사이버대학에 진학했으며 한의학 공부를 2년 마치고 사회복지학과로 전과하여 2급 복지사 자격증까지 받았다. 배움의 길을 따라 발걸음을 내딛어 평생학습관에까지 다다른 그는 공부의 의미를 이렇게 정리한다.

 

“나의 60대의 공부는 출세보다는 못다 꾼 꿈을 이루기 위한 것도 있겠지만 사람들과의 만남이 더 중요했다. 그 속에서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되는 것이다. 공부란 끝이 없이 사람들과의 어울림 속에서 인간답게 사는 것을 배우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인간답게 사는 방법의 탐구로서의 배움. 그것은 그가 생소한 책도 거부 없이 척척 읽어낼 수 있었던 비결이다. 조지 오웰의 『위건부두로 가는 길』을 읽고, 그는 영국의 탄광노동자들에게서 “연탄가루 묻혀가며 일하시던 아버지의 삶”을 본다. 아버지의 노동이 얼마나 고달픈 줄 몰랐고 그냥 아버지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는 자책, 아버지가 12세에 부모님 잃고 고아로 살아왔으니 ‘그 얼마나 고독하셨을까’ 하는 생각은 “내가 나이 들어서야 깨닫게 되었다”는 탄식, 얼굴에 시커먼 가루를 묻힌 모습으로 “재순아, 이거 먹고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거라” 하시며 쇠고기 한 근 사오시던 그날의 모습을 선연히 그려낸다.

 

프리모 레비의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를 읽고는 수치심의 정의를 확장한다. 다리 수술을 하기 전엔 항상 절룩거렸고 힘든 걸음걸이보다 사람들의 눈초리가 늘 수치심으로 다가왔는데, 이 책을 읽고 “자잘한 감정의 수치심”이 아닌 “더 큰 수치심”을 깨닫게 되었다며 쓴다.

 

“(세월호 사건 때) 마음으로만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눈다고 생각했으며 한 번도 그들이 있는 곳에 직접 찾아가본 적이 없었다. 나는 내 몸의 건강이 따라 주지 않는다는 핑계로 그들이 울부짖고 있을 때 그들의 곁에 가서 그들의 눈물을 닦아준 적이 없었다.”

 

평생 아픈 몸을 살았다. 그림자처럼 들러붙어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자기 고통에 매몰되어왔기에 타인의 고통을 좀처럼 보지 못했음을 그는 뒤늦게 자각하고 반성했다. 하지만 그토록 혹독한 고통의 시간을 살아온 그이기에 배제와 차별, 불의와 불공정에 대한 남다른 예민함으로 읽고 쓰기가 가능했을 것이다. 단어 하나 잣대 삼아 자기 생각의 크기를 재어보고, 책 한권 거울 삼아 자기 일상의 태도를 점검했던 그의 영전에 나는 책 한 권 놓아드리고 싶다.

 

강남순의 『배움에 관하여』. 이 책에서 저자는 비판적 성찰을 일상화하여 삶의 주변을 들여다본 배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는 행간마다 수시로 출몰하는 이재순의 얼굴과 대화하고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이 책을 함께 읽었다.

 

“어떤 특정한 조건들이 충족되는 ‘무엇 때문’이 아니라 그 ‘어떤 정황들에서라도’ 한 사람의 내면 한 귀퉁이에서 저렇게 잎사귀가 나올 수 있게 하는 힘”(35쪽) 그 끈질긴 희망의 줄기, 그것은 차가운 윗목에서 간신히 살아나 끈질긴 희망의 줄기를 틔워낸 그의 삶에 관한 메타포가 아닌가. 이재순은 “이미 만들어진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만들어가야 하는 ‘형성 중의 존재’”로서 “자기 자신과의 관계의 정원을 소중하고 아름답게 가꾸고 키”(137쪽)웠다. 

 

옛 게시판에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글은 수업 후기다. 평생학습관에 등록하던 날의 에피소드가 적혔다.

 

“글쓰기 수업을 신청하겠다고 하자, 학습관 담당자가 ‘이 프로그램은 감응의 글쓰기인데요?’ ‘저도 알아요. 신청해 주세요.’ 담당자가 나이도 많고 헙수룩한 내 모습을 보고 그 프로그램에 참가해서 따라갈 수 있을까 미리 염려를 했던 모양이다. 순간 기분이 상했지만 두려움도 있었다. (...) 나의 삶은 병에 갇혀서 넓은 세상을 보면서 살지 못했는데, 여러 학인님들의 폭넓은 삶을 내 마음에 담아가니 나는 큰 부자가 되었다는 뿌듯함에 시간이 끝나는 게 아쉬웠다.”

 

첫 시간에 정한 이재순의 닉네임은 ‘함께하는 즐거움’이었다. “‘살아감이란 함께 살아감’이라는 심오한 존재의 철학”(182쪽)을 이미 삶으로 체화한 그였기에 자신을 낯선 자리에 개방했으리라. 내가 만일 일흔 살에 살아 있다면 어느 자리에 누구와 함께 있을까. 나보다 삼사십년 아래인 젊은이들이 모여 있고, 읽어본 적 없는 책을 읽고 써본 적 없는 글을 쓰는 그런 “변혁적 배움”(9쪽)의 자리를 찾아갈 수 있을까. 나는 가슴 펴고 문 두드릴 수 있을까.

 

한 해 한 해 나이 들고 자꾸만 굳어가는 생각과 관계, 익숙한 자리에 안주하려는 나를 그의 온 삶이 일깨운다. 『배움에 관하여』에 나오는, 프랑스 철학자 데리다가 죽기 3일 전 스스로 작성했다는 장례식 조사를 나는 고인이 세상에 보내는 유언으로 마음에 새긴다.

 

“언제나 삶을 사랑하고 생존하여 살아냄을 긍정하는 것을 멈추지 마십시오.”(157쪽)

 

* 채널예스 '은유의 다가오는 것들' 


벨훅스,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

[은유칼럼]

3년 전 초여름, 동료들과 전주로 1박2일 엠티를 갔다 왔다고 하니 선배가 말했다. “너는 고3 엄마가 6월 모의고사 보는 날 놀러 갔니?” 이 질책이 의미하는 바를 몰랐는데, 6월과 9월 모의고사가 대입의 명운을 가르는 중대한 시험이란다. 특히 6월 모의고사 성적은 거의 수능 점수로 보면 된다고. 알고 나서도 어리둥절했다. 그렇다면 그날 엄마 된 자로서 무얼 해야 하는지 몰라서이고, 내 정체성이 고3 엄마로 명명된 상황이 뜬금없어서다. 

고3 엄마의 본분에 대한 무지와 나태는 11월까지 이어졌다. 수능 날도 도시락 싸서 보내놓고 나니 할 일이 없었다. 이제 와서 새삼 예배당을 갈 수도 없는 노릇. 그냥 광화문 카페로 달려가 책을 폈으나 책장은 그대로다. 아이가 답안지를 밀려 쓰는 건 아닌지 따위의 별별 걱정에 마음이 콕콕 조여왔다. 긴 하루를 보내고 이듬해 모 대학 ‘추가 합격자’ 명단에 아이 이름이 오르면서 고3 엄마를 간신히 면했다.

그 심란한 겨울을 보내고 나니 입시를 왜 ‘입시 전쟁’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동생의 희생까지 네 박자가 맞아야 아이가 명문대에 간다는 말에는 거짓이나 보탬이 없다. 그런데 생업은 제쳐둔 채 입시설명회에 다니고, 수백 가지가 넘는 수시 전형을 파악하고, 고가의 입시 컨설팅을 받는 학부모가 얼마나 될까.

ⓒ시사IN 신선영

올해도 친한 친구들이 수험생 부모가 되었다. 아이가 수시 원서 넣을 대학을 정하느라 두통약을 먹고, 시험장에 따라다니느라 업무 시간을 뺐다. 원서비만 100만원에 육박했고, 시험 날이 다가올수록 심야 할증요금 붙듯 마구 오르는 학원비에 기겁했다. ‘비(非)강남권’ 지역의 학원도 사정이 이랬다. 입시 전쟁에서 살아남기는커녕 끼어들기만 하려 해도 적지 않은 판돈이 든다. 전쟁으로 군수산업이 돈을 벌고 힘없는 병사들이 죽어가듯 입시 전쟁에는 학원산업이 득을 보고 평범한 아이들은 조용히 스러져간다. 

11월 들어 고등학교 두 곳에 강연을 갔다. 과학 고등학교에서 글쓰기에 관심 있는 아이들과 일반 고등학교에서 흡연 예방 교육을 받는 아이들을 각각 만났다. 과학고 아이들에게 아르바이트를 해봤느냐 물었더니 “저희가 시간이 어딨어요” 한다. 사교육의 최전선을 일찍이 통과한 그 아이들은 평일에는 기숙사에서 살고 주말에는 귀가해 사교육을 또 받는다. 

흡연 예방 교육에 온 한 학생은 주유소 알바를 하다가 돈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그만둔 사정을 털어놓았다. 그 아이가 다니는 고등학교는 전국에서 대학진학률이 최하위권이라고 담당 교사가 전했다.

수능 한파를 몰고 오는 그들의 비명


벨 훅스 지음
이경아 옮김
모티브북 펴냄
<벨 훅스,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를 쓴 벨 훅스는 가난한 흑인 여성이었다. 대학에 들어가서 “자신들은 선택받았고, 특별하며, 이렇게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행운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백인들(13쪽)”을 만나면서 사회의 불평등한 구조와 자신의 계급적 위치를 자각한다. 그녀는 마르크스도 구체적인 해법을 알려주지 않는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복잡한 계급 문제(62쪽)”에 맞닥뜨린다.

남의 얘기 같지 않았다. 인간은 경험적 존재다. 태어나면서부터 부유했고, 가난과 가난으로 인한 고통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이, 공감 능력이 아닌 학습 능력만 평가하는 제도를 통과해 이 사회의 엘리트층을 이루고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은 분명 문제다. 우리 사회의 경제 체제가 공정하게 변화하기 위해선 계급 분리를 조장하는 입시 제도부터 달라져야 할 텐데, 현실은 요원하고 수능은 요란하다. 

올해도 수능 추위가 예고됐다. 딱히 대학을 거부할 소신이나 대안이 없고 이른바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재력과 실력도 간당간당한, 대다수 학부모와 아이들의 비명이 매년 수능 한파를 몰고 오는 게 아닐까. 


* 시사인 은유 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