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항상 함께한다는 느낌

[은유칼럼]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엠티에 ‘시간이 되면’ 같이 가자는 문자가 ‘콩(공유정옥 활동가)’에게 왔다. 삼성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1023일 농성을 마친 기념으로 농성장을 지켰던 이들이랑 강릉 바닷가에서 2박3일 편안하게 쉬다 올 예정이란다. ‘시간이 되나’ 머리를 굴려본다. 시간과 돈을 거래하는 시대. 시간이 화폐다. 이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나도 예외는 아니라서 돈으로 보상되는 일 위주로 시간을 살뜰히 썼구나 싶다. 그건 잘 살았다기보다 초조하게 살았다는 느낌에 가깝다. 이건 다르다. 사적 여행도 아니고 공적 활동도 아니다. 작가 초청 강연 말고 그냥 같이 놀자니까 좋아서 짐을 쌌다.

“아유, 바쁠 텐데 어떻게 시간이 됐어?” 삼성 직업병 피해자 한혜경씨의 어머니 김시녀씨가 활짝 웃으며 반긴다. 시간이 뭐길래. 왠지 부끄러웠다. 어머니는 몸이 불편한 딸 혜경씨를 휠체어에 태우고 1000일이 넘도록 매주 시간을 내어 춘천에서 서울을 오가며 한뎃잠을 잤다. 고 황유미의 아버지 황상기씨도 속초에서 강남역을 묵묵히 오갔다. 농성장 해단식 날 물었다. “3년을 하루같이 어떻게 다니셨어요? 오기 싫진 않았어요?” 그는 주저 없이 말했다. “힘든 적은 많았지만 가기 싫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위인전에 나오는 어떤 인물보다 커 보였다. 그분들 삶의 자리에 나를 놓아보면 난 그렇게 살 자신이 없다. 구체적으로 승산 없(어 보이)고 기약 없(어 보이)는 싸움에 매일매일 ‘시간을 낼’ 배짱이 없다. 싸운다고 죽은 자식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병이 낫는 것도 아니라는 판단을 뒤로하고 삶을 통으로 내어 싸운다는 건 어떻게 가능한가.

언젠가 광화문 집회에서 혜경씨가 무대에 올라가 발언을 했는데 그걸 지켜보는 이종란 노무사 눈에는 금세 눈물이 차올랐다. 십몇 년 수천 번은 들어서 다 아는 얘기일 텐데 진심으로 마음 아파했다. 엠티에서도 혼자 힘으로 화장실을 가거나 씻을 수 없는 혜경씨를 활동가들이 너도나도 나서 휠체어를 밀었다.

드물고 귀한 관계. 같이 보내는 시간을 물 쓰듯이 써야만 가능한, 무심히 밥을 먹고 곁을 지킨 인연이 갖는 한가함과 안정감이 그들 사이에 있었다. “누군가와 항상 함께한다는 느낌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 주는 가장 값진 선물(211쪽)”이라고 했던가. 아마도 한 사람이 마냥 담대하고 무모해질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을 믿기 때문인 거 같다.

엠티 첫날 밤, 흰 파도 까불고 별 총총 박힌 바닷가로 ‘민중가요 노래집’과 기타를 들고 우르르 나갔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가사가 막힘없고 노래가 자동 재생되는 이종란과 콩과 나는 ‘올드 제너레이션 시스터즈’라는 놀림을 받았다. 30대 농성장 지킴이가 신기한 눈으로 물었다. “대학 때 노래만 했어요?” 콩은 공강 시간마다 과방에서 노래를 불렀다고 했다. 나는 노조 사무실에 한 시간 일찍 출근해 기타 코드 어설프게 잡아가며 시간을 보냈다. 자격증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에 왜 그토록 열심을 다했는지 설명할 순 없지만, 사랑과 신념이 가슴에 출렁대던 시절임은 분명하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근본 원칙과 사랑의 원칙은 결코 양립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본주의의 급류에서 부서진 삶을 복구하는 사람들, 그러는 사이 그들은 사랑의 원리를 깨우쳤다. “삶은 상호 의존적이라는 점은 무시되고, 개개인은 고립된 채 자기 이익을 챙기는 것에 최상의 가치를 두(111쪽)”도록 세상이 우리를 길들이고 있기에, 무가치하고 무의미해 보이는 일에 무모하게 시간을 보낸 것들만 곁에 남아 있다. 무던한 사람, 철지난 노래, 변치 않는 신념, 짠 눈물 같은 것들.

<올 어바웃 러브> 벨 훅스 지음, 이영기 옮김, 책읽는수요일


※ 이번 호로 ‘은유 읽다’와 ‘김현 살다’ 연재를 마칩니다. 수고해주신 필자와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자소설 쓰는 어른들

[은유칼럼]

얼굴 안 본 지 십년 넘은 지인한테 전화가 왔다. 첫 에세이집을 낸 다음해 일이다. 지인은 네가 책 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어색한 축하 인사를 건네고는 용건을 꺼냈다. “조카가 고3인데 수시 원서에 넣을 자기소개서를 봐줄 수 있을까?” 특목고에 다니는 공부 잘하고 예쁜 아이이며 “자식과 다름없는 조카”라고 했다. 느닷없는 연락과 부탁에 이중으로 당황한 나는 횡설수설 거절 의사를 밝히고 통화를 종료했다.

지인은 몰랐지만 당시 내 아이도 고3이었다. 그때 난 손가락이 저릿하도록 집필 노동을 하느라, 또 복잡한 입시제도를 따라갈 여력 부족으로 소위 고3 엄마 노릇은 포기한 상태였다. 그 전화가 날 서럽게 했다. 다른 입시생은 이모까지 나서는 판국에 너무 무심했나 싶은 게 전쟁터에 아이 혼자 내버려둔 것 같아 미안했다. 한 아이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온 집안의 티끌만한 자원이라도 동원되는 현실, 글은 얼마든지 기만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확인한 것도 씁쓸함을 가중시켰다.

자소서의 세계는 알수록 놀라웠다. 글쓰기 수업에 온 취준생이 “이번엔 꼭 붙어야 한다”며 자소서 봐주길 간청했다. 한번 읽어보았다. 종교를 언급한 단락에서 글의 톤이 깨진다고 했더니 지원하는 곳이 기독교 기업이라 신앙생활을 부각했단다. 실은 교회를 안 간 지 오래됐다고 했다. 그래야만 했으니까 그랬겠지만 말리고 싶었다. 거짓이 통하는 회사에 합격해도 위장하고 살아야 하니까 문제, 자신을 속이기까지 했는데 낙방해도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흐른 지금은 ‘자소설’이란 단어가 포털사이트 국어사전에 버젓이 등재됐다. 자기소개서와 소설의 합성어로 실제로 없던 일을 꾸며 쓰는 자기소개서를 가리킨다. 과한 경쟁이 낳은 비릿한 단어다. 현장은 정말 소설처럼 전개되는 모양이다. 자소서 컨설팅 업체에 수백만원을 갖다 바쳤다는 취준생의 한탄도, 일용직 노동자 아버지를 건설회사 대표로 포장했다는 후회 어린 고백도 들린다. 학교에 강연을 가면 교사들은 자기소개서 지도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꿀팁을 묻는다.

그럴 때면 나도 묻고 싶다. 자소서가 자소설이 된 공공연한 현실에서 거짓 자아의 전시장이 된 글이 얼마나 공정한 변별력을 갖는지. 기능인이 개입한 노회한 글이 당사자가 쓴 거친 글보다 낫다고들 보는지. 자소서를 도움받을 만한 자본이나 관계 자원이 없는 수험생들은 어떻게 되는 건지가 제일 궁금하다. 입시제도가 계급 격차를 벌리는 국가 장치가 된 건 알았지만 자소서마저 거기에 일조하는 현실은, 글의 인간인 내겐 유독 비극으로 다가온다.

자기소개서는 과거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기만의 서사를 만드는 뜻깊은 작업이다. 그것이 자소설이 된다는 건, ‘살아온 나’가 아니라 ‘평가받는 나’로 자기를 바라본다는 말이다. 강요된 가치로 자기 삶을 평가하고 타인의 시선에 길들여지면 나란 존재는 늘 부족하고 초라해 보인다. 제아무리 스펙을 쌓아도 자존감은 낮은 ‘불안한 어른’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지금처럼 사회적 위계가 공고한 풍토에선 아이들 자소서에 어른이 나서고 어른들 자소서가 돈벌이가 되는 현실을 막을 수 없을 거다. 시몬 베유는 “밭을 가는 농민이 자기가 농민이 된 것은 교사가 될 만한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회 체제는 깊이 병든 것이다”라고 <노동일기>에 썼다. 먼 꿈 같지만, 궁극적으로는 농민도 교사도 정비공도 비슷한 임금을 받고 동등하게 사람 취급 받는 사회가 될 때라야 ‘자소설’이란 단어가 소멸할 수 있으리라.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63180.html?_fr=mt5#csidx6bf59ba0f94e30aac574cb66a39c8e2 

무궁화호에서 삶에 밑줄을 그었다

[은유칼럼]

무궁화호 한 칸의 좌석은 72개다. 숫자에 A, B, C, D를 붙여 표기한 KTX와 달리 일련번호로만 좌석번호가 매겨져 있다는 사실을, 보따리를 든 할머니가 ‘기차표’ 들고 자리를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한 청년이 도움을 주는 장면을 보며 알았다. 알파벳을 모르는 ‘할매’들은 KTX는 어떻게 탈까, 왜 관절도 성치 않은데 할매들은 짐을 이고 지고 다니나 생각하는 사이 두 시간이 휙 지났다. 무궁화호만 닿는 지역에 강의를 가는 건 아마 처음 같다. 

“옥천에 처음이시죠?” 대합실 계단을 내려오자 아는 얼굴이 보인다. 서울에 누가 온다고 해서 역으로 마중 나간 적이 나는 없는데, 지역에 가면 이렇게 픽업을 나온다. 과분한 환대다. 이날 강연은 옥천신문사 주최다. <옥천신문>은 안티조선 운동을 하면서 1989년에 만들어진 지역신문이고 전국에서 옥천에만 <조선일보> 지국이 없다고, 서울에서 뵙고 ‘아는 얼굴’이 된 포도밭출판사 최진규 대표가 말한다. 

역에서 5분 남짓 가니 옥천신문사가, 길 건너 건물 2층엔 <월간 옥이네> 잡지사와 ‘포도밭출판사’ 사무실이, 1층엔 널찍한 북카페 ‘둠벙’이 자리했다. 집성촌처럼 모여 있는 사무실에 들러 간단히 목례를 나누고 오늘 강연장인 북카페를 둘러보는데, 내 몸은 또 서가 앞이다. 최진규 대표는 최근에 나온 책이라며 <보통의 행복>을 내게 주면서 음료를 만들고 있는 카페지기에게 말한다. “한 권은 제가 채워 넣을게요.” 

나는 책값을 지불하려다가 ‘외상’으로 긋고 주는 즉석 선물이 재밌어서 넙죽 받았다. 좀 있다가 옥천 사람이 쓴 옥천 시인 정지용 시 비평집을 구매하면서 선물받은 책을 한 권 더 샀다. 강연장엔 청소년 기자단 학생들, 아이를 데려온 주부들, 옥천의 기자들, 지역주민들이 속속 들어찼다. 이렇게 직업, 성별, 나이 고른 분포를 보이는 청중 앞에서 강의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농사지은 건데 조금이지만 드셔보세요.” 강연이 끝난 후, 한 여성이 스윽 건네고 총총 사라진다. 누런 종이봉투 속엔 연두색 포도송이가 싱그러운 향을 내뿜는다. 그러고 보니 옥천은 포도의 고장. 지역 출판사 이름도 포도밭이다. 

아마미야 마미 외 지음, 나희영 옮김, 포도밭출판사 펴냄

사람 옆에 사람이 있음을 환기시키는 능력

옥천에서 팔이 자랐다. 무궁화호 막차를 기다리는 내 손 아래로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달렸다. 책 세 권이 담긴 비닐봉지, 독자가 준 포도 선물, 아는 사람이 챙겨온, 간수까지 다 먹을 정도로 꿀맛이라는 두부 두 모와 아이스팩이 든 에코백. 그리고 기자들이 준 <월간 옥이네> 8월호와 박누리, 김예림, 임유진, 최문석, 이범석, 장재원 등의 명함까지 더해진 내 가방은 어깨에서 자꾸 미끄러진다. 설상가상 뒤풀이 자리에서 먹다 남은 병맥주까지 악착같이 손에 쥔 나는, 무궁화호에 타는 중·장년 여성들처럼 보따리를 든 여인이 된 것이다. 

KTX에선 대개 노트북이나 핸드폰을 보는 사람이 되고 만다. 나도 그랬다. 타인과 엮이고 싶지 않다는 공기가 팽배한 그곳은 “타자가 두려운 사회(58쪽)”의 축소판이다. 무궁화호엔 객차 바닥에 옥수수 속대가 나 몰라라 나뒹군다. 좀 더 허술한 공기가 흐르고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어오는 “관계 개시 기술(46쪽)”을 선보이는 공간이다. 

“아주머니들이 필요해요. 은행에 줄 서 있을 때 어느 아주머니께서 ‘오늘 사람이 북적북적하네!’라고 한마디 던지면 주변이 확 온화해져요(51쪽).” 일본의 사회학자는 ‘아주머니 기술’이란 참신한 용어로 칭한다. 그건 사람 옆에 사람이 있음을 환기시키는 능력 같다. 모처럼 북적북적한 ‘보통의 행복’을 체험하고 올라가는 길, 잠과 책을 넘나들며 밑줄을 긋는다. “의외로 우리들은 얽어매여 있어서, 개인으로 산다는 게 어려워요(59쪽).” 


* 시사인 은유 읽다

이렇게 말해도 될까 '불행에 몰두하세요'

[은유칼럼]

“그럼,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어느 날 이메일 말미에 붙어 있는 저 인사말에 눈길이 머물렀다. 관습적으로 사용하는 구문인데 그날따라 아리송했다. 왜 행복해야 되지? 꼭 행복해야 하는 건가? ‘행복해라’는 말은 ‘부자 돼라’는 말보다 덜 속되고 선해 보이지만 도달 확률이 낮다는 점에선 더 잔인한 당부이기도 했다. 아무리 용쓰고 살아도 불행이 속수무책 벌어지는 현실에서 어떻게 행복하라는 건지 의심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내가 안 행복하니까 심통이 나서 삐딱해졌으며 ‘덕담’을 ‘다큐’로 받아들이는 불만분자가 됐는지도 모른다고 스스로 검열했다.


<잘 표현된 불행>은 그즈음 눈에 들어왔다. 나의 책에도 인용했는데, ‘시는 행복 없이 사는 훈련’이란 명제를 발견하고 (행복은 단념하고) 행복 없이 사는 훈련에 임하면서 조석으로 시를 읽던 중 만난 823쪽짜리 황현산의 시 평론집이다.

“아름다운 말로 노래하지 못할 나무나 집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하지 못할 불행도 없다. 불행도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선율 높은 박자와 민첩하고 명민한 문장의 시를 얻을 권리가 있다(605쪽).”

이 책을 인식의 베개 삼아, 나는 깊이 있는 독해의 향연을 누리고 덤으로 글쓰기의 목적과 방향도 잡았다. 왜 행복하지 못할까 비탄하는 반성문이나 이런저런 조건이 충족되면 언젠가 행복해지리라는 판타지 장르가 아니라 불행의 편에 서서 면밀히 관찰하고 분석하는 기록물을 썼다. 그런다고 불행의 내용이 바뀌진 않지만 ‘잘 표현된 불행’은 묘한 쾌감을 주었다. 불행에서 오는 인식과 감정의 진수성찬을 발견하자 조금 행복해지는 것도 같았다. 내가 해보니 좋아서, 글쓰기 수업에서 나는 불행 전도사가 되었다.

글쓰기에서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건 마무리다. 이메일 말미에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라고 쓰거나, 일기장 마지막 문장으로 ‘오늘도 참 보람찬 하루였다’라고 하는 것처럼 글쓰기에서도 교훈적인 맺음에 집착한다. 즉, 불행한 채로 끝내는 걸 두려워한다. 불행은 어서 벗어나야 할 상태라는 강박이 있다 보니 그때는 불행했지만 지금은 괜찮다고 서투르게 봉합하는 식이다. 그러나 삶에는 결론이 없는데 글에서 거창한 결론을 내려고 하면 글이 억지스럽게 마련이다.

<잘 표현된 불행>의 그 구절에 밑줄을 긋다

제람도 그런 강박을 가진 학인이었다. 그는 군 복무 중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군 정신병원에 갇혔던 경험을 글로 썼다. 워낙 고통스러운 사안이기에 처음부터 쓰기 수월한 건 아니었고, 수차례 시도 끝에 좌절의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복기하는 작업이 가능했다. 그리고 디자인 유학을 떠났는데 얼마 전 자신의 증언과 경험을 설치미술로 표현한 작업을 마쳤다며 내게 소책자를 건네주었다. 제목은 〈You come in, I come out〉.

이것은 잘 표현된 불행! 어떻게 하면 개인의 증언이 사회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나, 문제의식을 담아낸 결과물에 감격하는 내게 그가 말했다. 불행을 인정하는 순간 무너질 거 같아서 행복을 연기했다고. 불행하면 안 되는 줄 알았는데 불행해도 된다고 말해주니까 자유로워졌고, 불행을 말할 용기가 생겼다고 했다.


그 감사 인사는 애당초 황현산 선생님의 것이다. 그리고 선생은 말했다. “작은 조언도 큰 이론도 자신의 몸으로 영접하지 않은 한 자신의 앎이 되지 않는다(119쪽).” 그러므로 황현산에게서 온 나의 전언을 붙잡은 것은 그의 감응 능력이기도 하다. 이젠 제람의 사례를 들어 말해도 될까. ‘오늘도 행복하세요’ 대신 ‘차분히 불행에 몰두하세요’라고. “내용 없는 희망은 불행을 대신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주 그 불행의 씨앗이 된다(607쪽)”라고요.

글쓰기 강좌에 여성이 몰리는 이유

[은유칼럼]

25명 중 3명이 남자다. 내가 진행하는 글쓰기 강좌의 성비다. 여대남소의 성비는 수년째 무너지지 않고 있다. 일회성 강연도 상황은 마찬가지로 거의 여탕 수준이다. 지난번 개강 때 넌지시 물었다. “이번에도 여자가 압도적으로 많아요. 남자들은 다 어디 간 거죠?” 이에 60대 여성 한 분이 말하기를, 여기만이 아니라 어느 강좌를 가도 그렇단다. “수강생은 다 여자인데 강사는 또 거의 남자예요.”

영국도 상황이 비슷한가. <남자는 불편해>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내가 총장으로 있는 런던 예술대학교에서는 시각예술을 공부하는 1만8000명의 학생 중 70%가 여성이다.” 저자는 이유를 분석한다. “남자아이들은 가정의 부양자로 길러질 뿐 아니라, 의사소통에도 서툴고 자신의 감정에 무관심하도록 조건화되기 때문에, 예술은 자신들에게 안 맞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193쪽)

자신의 감정에 무관심하도록 ‘조건화’됐다는 말을 내 식대로 풀어본다. 적극 소통이나 자기 의심을 하지 않아도 이 세상을 사는 데 큰 지장이 없었다는 뜻 같다. 화장실부터 여행지까지 곳곳이 돌부리인 터라 여자는 자기감정과 행실을 점검하는 게 ‘생활화’됐다. 여성 학인들의 글만 봐도 여실히 드러난다. 음식 소리 내서 먹지 마라, 다리 오므리고 앉아라, 밤늦게 다니지 마라, 쓸데없이 공부 많이 하지 마라, 애 잘 키우는 게 남는 거다 등등 몸의 소리부터 움직임, 마음 상태, 진로까지 통제를 당한다. 그렇게 성장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매사 자기감정은 누르고 남의 기분을 살피며 셀프 처벌을 내리게 된다.

이 책의 저자 그레이슨 페리는 남자인데, 이성의 복장을 입는 ‘크로스드레서’다. 그는 드레스를 입고 있을 때도 남자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여성 전용 공간을 존중해서이기도 하지만 주된 이유는 남자 화장실에서는 줄 설 일이 거의 없어서란다. “공공장소에 여자 화장실 수가 충분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왜 그럴까? 건축가들이 거의 다 남자이기 때문”이다. 사용자의 ‘기준’은 자연스레 남자가 되며, 이런 식으로 “남자들은 아주 오랫동안 권력을 잡고 있으면서 자신들을 너무나도 정확하게 반영한 세계를 건설했다”(60쪽)고 본다.

이것이 꼭 성별 권력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나는 여성이지만 이성애자로서 남자들이 남성성을 향유하듯 이성애자의 언어를 무심히 구사했다. 30대 총각에게 ‘여자친구 있어요?’라며 대상 성별을 지정해 물었다. 그건 상대가 성소수자일 가능성을 차단한다. 이제 그런 질문이 꼭 필요할 땐 ‘애인 있느냐’고 묻는다.

‘디폴트맨’ 자리의 탈환 아닌 제거를 위해

남성, 이성애자, 대졸자, 비장애인, 기혼 출산자 등 “디폴트맨”에게 세상은 수월하다. 여성보다 남성이, 장애인보다 비장애인이 화장실도 충분하다. “남성의 권력이 언어 자체에 깃들어 가장 근본적인 수준에서 영향력을 행사”(43쪽)하므로 ‘말의 민감성’을 기르지 않아도 되는 권리가 주어진다. 그래서 남자에게 남성성을 설명하려면, 비남성이 겪는 존재의 제약을 설명하려면, “물고기들을 상대로 물에 관해 이야기”(63쪽)하는 것처럼 애를 먹게 된다.

생존의 문제다. 글쓰기부터 타로점까지 배움의 자리에 여자가 몰린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 언어가 절실하다는 증거다. 그 배움의 종착역은 ‘디폴트맨 자리’의 탈환보다는 제거가 됐으면 좋겠다. 남자들도 “언제나 옳아야 하고 책임지는 일을 해야 하는 데서 오는 심장병을 유발하는 스트레스를 떨쳐내”고 “자기를 잘 드러내고 감정을 잘 인식하여 좋은 인간관계를 누리”는 복락을 누려야 하니까. 동시에 “여성과 소수 집단들이 자신들의 다양한 인생 경험을 정책 결정에 반영”(45쪽)하려면 우선 ‘여탕의 언어’가 세상 밖으로 쏟아져 나와야 할 것이다.


*시사인 은유 읽다

이분법의 유혹

[은유칼럼]

‘너희들 나이도 어린데 대단하다 같은 말을 삼가 주세요.’ 얼마 전 청소년 대상 강의를 앞두고 몇 가지 당부가 적힌 메일이 왔다. 강사들에게 귀띔할 정도면 이런 일이 잦나 보다. 부끄럽지만 나도 전적이 있다.

한 강연에서 그간 청소년을 만나면서 편견이 깨졌노라 고백하다가 그 문제적 발언, ‘청소년들 정말 대단하다’고 했다는 걸 지적받고 알았다. 한 청소년이 말했다. “만약에 은유 작가님께 누가 ‘여자가 이런 글도 쓰고 대단하다’는 말을 하면 기분이 어떨 것 같습니까.”

무안함에 ‘땀뻘뻘’ 상태가 된 나는 다른 섬세한 표현을 찾아보겠다며 사과했다. 며칠간 그 쓴소리가 웽웽거려 혼자 얼굴 붉어졌다. 맞는 말인데 ‘좀만 살살 말해주지’ 싶은 서운함이 들었지만, 청소년을 동료 시민으로 대하지 못하고 은근히 하대한 내 무지를 깨우쳐준 은덕을 입어 놓고 다정함까지 바라는 건 염치없다는 자각에 이르렀다.

나 기성세대인가. 자동으로 늘어나는 뱃살처럼 안정과 나태에서 오는 ‘정신의 군살’이 한번씩 만져질 때마다 당혹스럽다. 편견을 깬다면서 편견을 쌓아가고 있었음이 들통났다. 어른은 성숙, 아이는 미숙 같은 이분법의 잣대로 충고하거나 칭찬하는 권력을 스스로 부여하기도 한다. 이게 단지 나이 탓일까.

한 여자 선배는 동일범죄 동일처벌의 기치를 내건 젊은 여성들의 ‘혜화역 시위’를 두고 과격하다며 도리질 쳤다. 자기 같은 여자들도 아우르려면 개방적이고 온건하게 해야 한다는 거다. 순간 선배가 기성세대로 보였다. 그건 남자가 이해하는 만큼만 허락하는 ‘오빠 페미니즘’ 입장과 달라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절실함 없는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일은 어떤 대단한 혁명세력에게도 어려운 미션이다.

유명한 시구대로 늙은 의사가 젊은이의 병을 모르듯이, 우리 세대만 해도 젊은 여성들의 ‘불법촬영’에 대한 공포와 분노를 체감하지 못할 테니까 노력은 우리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일전에 혜화역 시위 참가자에게 들었다. 4시간 넘는 집회에서 1~2분도 안 되는 시간에 흘러나온 혐오성 구호만 자극적 이슈로 남았다며, 혐오 발언이 옳다는 게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말하려는가 들어달라고, “말투에 트집을 잡는 사람은 대화에 집중하지 않는 것”이라는 그의 일침을 선배에게도 전했다.

요즘은 여성주의 이슈가 복잡다단하다. 외국어 배우듯 줄임말과 신조어를 익혀가며 간신히 쟁점을 따라가지만 벅차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지난 토요일엔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주관하는 광화문 집회에 나갔다. “피해자다움 강요 말고 가해자나 처벌하라” 구호를 외치며 생생한 현장의 언어를 수혈받고 돌아와 기사를 검색하니 댓글은 딴 세상이다.

‘여성단체는 왜 장자연은 가만히 있고 김지은만 떠드느냐’는 댓글이 최다 추천에 올랐다. 이는 한국 사람이 굶어죽는데 왜 해외 난민을 돕느냐는 말처럼 익숙한 구도다. 이런 말 하는 사람치고 구체적 대상을 지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여성단체 호통칠 시간에 과거 뉴스를 조금만 찾아봐도 안다. 미투라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 속에서 장자연 사건이 9년 만에 재수사에 착수했고 미투는 여성(단체)의 오랜 분투와 역사 속 김지은들의 목소리로 일궈낸 거센 물결임을. 김지은과 장자연은 대립항이 아니라 공의존 관계다.

기성의 관념에 갇히는 건 게으름 탓 같다. 특히 이분법은 사유의 적이다. 생각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생각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누구나 기성세대가 된다. “선입관이 현실을 만나 깨지는 쾌감”(고레에다 히로카즈)은 세상에 자기를 개방할 때만 누리는 복락이다.

은유 읽다 - 나의 두 사람

[은유칼럼]

출산을 앞둔 후배에게 선물을 하려고 신생아 용품 매장에 갔다. 손바닥만 한 턱받이부터 팔뚝만 한 배내옷까지 크기가 앙증맞고, 순백색부터 복숭아 색까지 색감마저 보드라워 넋을 잃고 만지작거리는데 저만치에서 통화를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나 혼자 가란 말이야? 평생 한 번인데 하루도 못 빼? (…) 오빠 회사 사람만 그렇겠지. 내 주변엔 교육 안 듣는 사람 없어.” 

만삭의 임신부였다. 아마도 예비 부모 출산교육 프로그램에 남편과 함께 가려는 계획이 어그러진 모양이다. “에휴…”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나왔다. 아이를 대하는 태도와 감각이 달라서 남편이 남처럼 느껴졌던 기억이 먹구름처럼 몰려왔다. 무언가에 깊이 절망하는 사람은 무언가를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했던가. 누군가를 많이 사랑해서 결혼하고, 사랑하는 그이와 아이를 낳아 많이 절망하고, 청춘이 그렇게 흘러간 것 같다. 

ⓒ어떤책 제공 김달님씨의 대학 졸업식 사진.그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이날 처음으로 학사모를 써봤다.

첫아이는 예쁘고 두려운 낯선 생명체다. 꼬물꼬물한 발가락에도 수시로 벅찼지만 작은 충격에도 아이가 소멸할까 봐 무서웠던 나는 남편 출근길에 차를 얻어 타고 친정에서 지내다가 오곤 했다. 돌 이후에는 동네의 또래 엄마들에게 주로 의지했다. 같이 유모차를 끌고 산책하고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고 문화센터를 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육아는 살림하는 내 몫으로 받아들였기에 괜찮았다. 하지만 유치원 재롱잔치나 참관수업, 입학식이나 졸업식처럼 꼭 함께했으면 하는 자리에 남편이 부재할 땐, 저 만삭의 여인처럼 복받쳐서 따졌다. 서러워 눈물지었다. 

한 아이가 자라는 데는 최소한 두 사람이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부모든, 조부모든, 이웃들이든. 아무도 없으면 자기를 둘로 나누어야 한다. 아이를 돌보는 나와, 그런 나를 다독이는 나. <나의 두 사람>을 쓴 김달님에게 두 사람은 할머니, 할아버지다. 사회적 용어로 ‘조손가정’인 셈인데 조부모 품에서 자란 그 아이가 “나는 행복과 불행을 고루 느껴본 평범한 어른으로 자라 있었다”라며 그 고마움을 책으로 기록했다. 

“내가 평범한 어른으로 자라는 동안 내 늙은 부모에게는 평범하지 않은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50의 나이에 다시 시작된 부모의 삶. 두 시간마다 깨는 갓난아기를 제 품에서 키우는 수고로움. 한 아이를 먹고 입히기 위해 되풀이된 돈벌이의 고됨(6쪽).” 

조금 다를 뿐 고개 숙이지 않아도 돼 

<나의 두 사람> 김달님 지음, 어떤책 펴냄

나도 부모에 의해 그렇게 자랐겠고 또 부모가 되어 어떻게 키워냈다. 사람답게, 남들 사는 것처럼 살아보려고 우리는 얼마나 버둥대는가. 그래서 부부가 손잡고 오는 출산교육에 저 홀로 가야 하는 여자는 울컥한다. 비슷한 이유로 친구들의 ‘젊은 부모’가 모여드는 초등학교 졸업식 날 달님이는 초조하다. ‘늙은 부모’인 할머니가 오는 것도 싫고, 오지 않는 것도 싫어 심장이 빨리 뛴다. 그 시절을 살아낸 저자는 “열세 살의 초조한 나에게”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조금씩 다른 가족의 풍경을 가지고 산다고. 너 역시 조금 다를 뿐 고개 숙이지 않아도 된다고(103쪽).” 

할아버지는 세상을 비추는 사람이 되라며 저자에게 ‘달님’이란 이름을 주었다. 달님은 자신의 성장 스토리를 통해 훌쩍이는 예비 엄마에게, 곧 태어날 아이에게, 그리고 엄마의 부재로 기죽은 아이에게 나직이 말을 건넨다. “화목한 가정이란 누구나 기대하는 실체 없는 이미지에 가까울지 모른다(6쪽)”라고. 앞서 말한 대로 평범하게 살기 위해선 평범하지 않은 노력이 필요한 법이니, 성에 안 차고 서러웠더라도 당신이 크는 동안 “많은 것을 무릅쓰고 온 한 사람이 항상 네 옆에 있었”음을 기억하라고.


*시사인 은유 읽다



고통의 출구를 찾는 방법

[은유칼럼]

강원도 한 고등학교에 초대받았다. 학생들이 6월에 ‘평화’를 주제로 독서 토론을 하는데 내가 쓴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인터뷰집 <폭력과 존엄 사이>를 읽는다며 저자와의 만남을 준비한 것이다. 강연을 앞두고 담당 교사가 ‘아이들이 작가님께 드리는 질문지’를 미리 보내주었다. 이 책을 왜 쓰게 되었는지, 자료 수집은 어떻게 했는지…. 질문지를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다 난 그만 웃음이 터졌다. 

‘억울하게 잡힌 분들의 주소는 어떻게 알았나요?’ 이토록 엉뚱한 질문이라니, 과연 아이들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핵심 질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주소는 개인의 사회적 좌표다. 그 학생은 폭력 상황에 처한 한 사람이 어떻게 공적 발언의 장을 확보해 ‘나 여기 있음’ ‘나 억울함’을 세상에 알렸는지, 그 절차와 경로의 시작점을 묻고 있었다. 그건 국가폭력 피해자 인터뷰집의 기획 의도와도 닿아 있다. 고통의 출구를 찾는 법은 삶의 필수 기술이니까. 

ⓒ시사IN 조남진

나는 아이들을 만나 답변했다. 간첩 누명을 쓴 분들이 억울한 옥살이를 했지만 진실 밝히기를 포기하지 않고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생겼을 때 진상 규명을 신청했다고. 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같은 단체에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고. 그분들이 이런저런 시도를 하면서 남긴 기록과 인연의 고리를 연결해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고. 

며칠 후 나는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를 읽었다. 이주여성들이 직접 쓴 폭력 피해 증언집이다. 제목이 말해주듯 ‘몰랐던’ 세상의 이야기다. 아니, 피해 대상만 다를 뿐 익히 ‘알았던’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간 내가 만난 선주민(한국인) 여성들의 가정폭력, 성폭력 피해 사례와 내용이 일치해 오싹했을 정도다. 특히 캄보디아에서 온 쏙카의 경험은 가정폭력을 넘어 “인신매매와 강제노동”에 가까운데, 그 지옥을 그는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쏙카에게는 쏙카를 위해 통역을 해주고 시어머니를 설득시켜준 사촌언니와 동서가 있었다. 통장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폭력 신고를 도와준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있었고, 집에서 나왔을 때 쉼터로 연결해준 경찰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도록 도와주는 쉼터가 있다. 고립되어 있는 쏙카를 살려준 것은 세상과의 연결이었다(35쪽).” 

강연에서 아이들에게 당부한 말

한국이주여성인권 센터 지음, 오월의봄 펴냄

당사자 증언에 대해 전문가가 쓴 해설이다. “고립은 피해자에 대한 통제와 지배를 확보하는 과정으로서 가정폭력의 주요한 형태의 하나(31쪽)”라고 한다. 어디 가정폭력뿐일까. 성폭력이나 학교폭력의 경우도 ‘말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식으로 피해자를 고립시킨다. 그래서 ‘세상과의 연결’, 즉 내 존재를 남이 알게 하는 것이 피해자에게는 상황을 돌파하는 유일한 방법이 된다. 

아울러 피해자는 어떤 일시적 상태의 명명이지 한 사람의 정체성이 아니다. <폭력과 존엄 사이>가 그분들이 무자비한 국가폭력에 맞서 어떻게 존엄을 지키고 살아갔는가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처럼, 이주여성들의 생존담도 꼭 그러하다. “피해자의 취약성보다는, 어려운 상황에 처했는데도 문제 해결을 위해 참여하는 이들의 행위성을 강조한다(187쪽).” 

사실 그날 강연에서 아이들에게 당부했다. 살면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니 여러분도 폭력을 당하면 꼭 도움을 주는 기관이나 단체를 찾아가라고. 이런 말을 해야 하는 현실이 착잡했지만,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를 읽고 나니 잘한 거 같다. “폭력이 발생하기 전에 폭력에 대응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건 중요하니까. 


* 시사인 은유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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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호텔로 간 까닭은

[은유칼럼]

<19호실로 가다>라는 소설이 있다. 영국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도리스 레싱 작품으로 유명하다. 크고 좋은 집, 돈 잘 버는 남편, 귀엽고 기운찬 아들 둘 딸 둘까지. 모든 것이 매끄럽고 흠잡을 데 없이 설계된 가정생활을 누리고 있으나 주인공 수전은 행복하지 않다. 가족을 돌보면서 정작 자신이 사라지는 현실을 자각한다. 다시 “나 자신이 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오롯한 몰입이 가능한 ‘익명의 장소’를 찾던 수전은 호텔로 간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아내가 사라지는 것을 안 남편은? 사설 탐정을 시켜 찾아낸다. 수전은 세상에 의해 발각된다.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나 6시까지 19호실에서 혼자 있다가 간다고 호텔 지배인이 ‘있는 그대로’ 증언했지만 남편은 믿지 않는다. 다른 남자와 있었으리라 추측한다. 그렇게 믿고 싶어한다. 자신에게 애인이 있었듯이 당신도 그랬을 거라며 교양과 관용의 제스처를 취한다.

얼마 전 인터넷 포털 화면도 ‘호텔’이란 단어로 어지러웠다. 위계, 위력에 의한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재판에 대해 “김지은 호텔 잡았다”, “본인이 직접 호텔 예약” 등의 제목으로 여러 개의 기사가 났다. 호텔 예약. 이건 수행비서의 업무다. 그러나 이 사건의 맥락에서 저 단어의 조합은 사실판단이 아닌 가치판단을 유도한다. ‘합의에 의한 관계’라는 피고인 주장에 유리한 기사였다.

언론사 사무실에서 저와 같은 제목을 짓느라 말을 고르고 단어를 배치하는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편집기자의 손놀림과 데스크의 표정과 지시하는 입모양은 어땠을까. 성별이 남자든 여자든 가부장제의 통념과 상식에 길들여진 두뇌에서 나온 합작품일 것이다. <19호실로 가다>에서 아내가 겪는 고립과 절망과 소외를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 남편이, 배우자의 호텔 출입을 ‘그렇고 그런’ 빤한 일로 자동 반응했던 것처럼 말이다.

사람이 호텔을 가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그런데도 여성의 행위는 일 그 자체로 인식되거나 말 그대로 인정되지 않는다. 김지은은 네 차례 성폭행을 당했다고 미투에서 밝혔다. 이를 두고 처음 폭행을 당했을 때 곧장 사표 내지 않은 게 의심스럽다고들 한다. 반문하고 싶다. 상사에게 언어적·물리적 폭력을 당했다고 해서 그 즉시 사표를 제출하거나 고발하는 직장인이, 저항과 권리를 배우지 못하는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있을까. 사표는 생존과 직결된 결단이다.

삶은 늘 우리의 경험과 인식을 초과한다. 문학으로 타인의 삶을 상상할 수는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왜 결혼생활 10년이 넘도록 잘 참다가 하필 그날부터 호텔로 갔는지, 기껏 가놓고 왜 그 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지, 결혼 전 광고회사에서 일한 ‘스마트한 여성’인데 어째서 이혼하지 않고 지리멸렬한 결혼을 이어갔는지, 매사 합리적인 언어를 주장하는 이들에게는 설명 불가능하다. 문학의 언어는 보여준다. 스스로 전개되는 삶을 통해 합리와 이성으로 기획된 세계의 빈틈과 모순을 드러낸다. 그래서 <19호실로 가다>의 첫 문장은 의미심장하다. ‘이것은 지성의 실패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로 시작한다.

안희정 성폭행 혐의 사건은 법리적 판단이 내려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건이 끝나도 여성의 삶은 계속된다는 사실이다. 그건 성폭행이 계속된다는 말이고, 남성의 언어로 세상을 해석하고 편집하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말하기는 계속 실패하리란 뜻이다. 그러나 견고한 지배질서의 틈을 뚫고 터져나오는 목소리는 그만큼 질긴 생명력을 갖는다. 삶을 대동하고 나온 목소리는 말하기에 실패할 때마다 정교해진다는 것에서 나는 희망을 본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55231.html?_fr=mt5#csidxb609449c1f5541497dfeac21ffe18f2 

싱크대 앞에서 아담스미스 생각하기

[은유칼럼]

아들이 제대하고 나서 나는 ‘싱크대 앞 체류 시간’이 늘었다. 하루 한 끼 정도 집에서 먹는데 제대로 먹여야 할 것 같은 책임감에 스스로 놓여나지 못하고 있다. 마트, 유기농 식료품점, 백화점, 동네 슈퍼를 오며 가며 찬거리를 연신 사다 날라도 냉장고는 금세 텅 빈다. 끼니는 뭐든 먹어치우는 괴물인가. 성인 남자 입 하나 느는 게 수저 한 벌 더 놓는 일이 결코 아님을 실감하는 나날이다.

그러면서도 다 큰 아들의 밥을 계속 차려주는 게 옳은가 자책한다. 처음엔 군대에서 고생한 아이가 가여워서 해 먹였다. 당분간이라 여겼다. 그런데 아이가 바로 복학하고 학업에 아르바이트에 친교 활동으로 바빠지면서 난 하숙집 아줌마처럼 시간 맞춰 밥을 대령하고 있다. ‘너도 성인이니까 네 밥은 알아서 챙겨라’ 생각은 하면서도, 미성년자인 딸아이만 해주고 아들은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 내 몸은 내가 말릴 틈도 없이 앞치마를 두른다.


ⓒ시사IN 윤무영

이런 행동은 너무도 반시대적이다. 이 한 몸 ‘고생’에서 끝나지 않고 가사노동이 여성, 곧 엄마의 할 일로 ‘고착’되는 데 일조하는 것 같아서 그렇다. 물론 안다. 자식한테 밥 안 해주는 게 페미니즘은 아니다. 다만 자기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해도 매번 밥이 나오는 게 당연한 일도 쉬운 일도 아님을 깨칠 기회를 아이에게 주고 싶다.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던 건 푸줏간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 등 “상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긴밀한 공조 때문만이 아니라 “그의 어머니가 매일 저녁 식사가 식탁에 오를 수 있도록 보살폈기 때문(32쪽)”임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보이지 않는 손’보다 ‘보이지 않는 어머니’를 아는 교양인으로 키우기. 실은 계획이 있었다. 아이들 식사 제공 기한을 스물세 살로 정해놓았다. 그건 내가 어머니의 일방적인 돌봄 속에서 반찬 하나 만들 줄 모르다가 결혼한 나이다. 양심상, 받은 만큼은 돌려주자는 의미로 정했다. 서서히 아들이 스물셋이 되어가니 불안한 것이다. 어제까지 해주던 밥을 과연 오늘부로 안 할 수 있을까. 내가? 갑자기? 어떻게?

한 수강생이 “고맙다”라고 한 이유


카트리네 마르살 지음, 김희정 옮김, 부키 펴냄

“쌤, 고마워요.” 나와 같이 1년 동안 글쓰기 공부를 한 여성이 다짜고짜 고백한다. 고마운 이유는 이랬다. 처음에는 오후 5시에 수업 마치면 남편 저녁 차리러 가야 해서 가슴이 조마조마했단다. 점점 읽고 쓰면서 여자의 본분이란 사회적 갑옷이 갑갑해지기 시작했다. “가족 중 한 명은 모든 시간을 무보수 가사노동에 쓰고, 다른 성인 한 명은 모든 시간을 집 밖에서 보수를 받는 노동에 쏟아붓는 것이 과연 이치에 맞는가?(62쪽)” 회의했고, 죄의식에서 벗어났다며 말한다. “이젠 남편 저녁밥을 안 차려줘도 안 미안해요.”

20년간 밥을 하던 사람이 안 하게 된 것은 혁명이다. 그녀의 용기가 내게도 용기를 준다. 나야 일 때문에 집에 없을 때도 많고 가사노동을 남편과 분담하고 있지만, ‘자식 밥걱정’의 족쇄를 풀지 못했다. 강한 모성이라기보다 질긴 습관이다. 이행기를 두고 아들에게 제안해볼까 싶다. 먼저 일주일에 한 끼는 직접 메뉴를 정해서 밥을 차려보라고.

로리아 스타이넘은 페미니즘을 “여성들이 기존의 파이에서 더 큰 조각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파이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정의한다(102쪽). 내게 페미니즘은 ‘밥은 엄마’라는 등식, 아니 무의식을 해체하는 일이다. “무한정한 천연자원을 캐듯, 돌보는 손은 여성의 본능으로부터 항상 얻을 수 있다는 신화(186쪽)”는, 전 세계에서 날마다 자동으로 차려지는 밥상에서부터 만들어진다는 의심을 떨칠 수 없다.



*시사인 은유 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