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창 - 화장하는 아이들

[은유칼럼]
교실에 들어가니 아이들이 파우치를 꺼내놓고 입술연지를 바르거나 파우더를 두드린다. 헤어롤을 말고 있거나 셀카에 열중하는 아이도 보인다. 글쓰기에 관심 있는 고등학생 30명이 모인 자리니까 시집이나 만년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적 없지만, 책상을 점령한 의외의 사물에 놀란 건 사실. 이 신세계 구경에 어리둥절한 내게 담당 교사는 귀띔했다. 대다수 아이들을 ‘교칙 위반자’로 만들 수 없다는 교장의 용단에 따라 화장 금지 조항을 없앴다고. “아침에 화장 못 하고 출근하면 애들한테 빌려 써요” 하며 웃는다.

비슷한 시기에 대안학교 학생들을 만났다. 교사와 학생의 토론 끝에 교내 화장 금지로 결정이 났단다. 화장하는 것과 공부하는 것이 대립 관계가 아니다, 화장을 하면 내가 다른 사람이 된 거 같아 기분이 좋다는 내용의 과제물을 한 학생이 제출했다. 그 글에 다른 학생이 동조했다. “십대는 화장 안 해도 예쁘다는 어른들 말은 이상해요. 사실 화장하면 더 예쁘잖아요?”

귀가 반짝 열렸다. 정말 그런가 싶어 떠올려 보았다. 화장한 얼굴은 해님같이 쨍하다. 화장기 없는 얼굴은 햇살처럼 퍼진다. 또렷함과 은은함의 차이, 같은 신체 다른 표현이다. 근데 나는 왜 교복 입은 아이들은 맨얼굴이 낫다고 믿었을까. 자연에 대한 낭만적 이상화 같은 건가. 생각해 보니 생각 자체가 없었다. 크는 동안 어른들에게 들어온 익숙한 말들을 내가 어른이 되어 아이들에게 적용한 것뿐. 대개의 선악 판단이 그러하듯 낯섦에 대한 저항, 익숙함에 대한 옹호일 따름이다.

딸내미는 열여섯살이다. 얼마 전 생일엔 립글로스와 마스크팩을 선물로 받았다. 앞머리를 목숨처럼 여겨 헤어롤을 가방에 부적처럼 넣고 다니는데 아직 화장은 하지 않는다.(밖에서는 하는지도 모름) 고등학생이 되면 입술색도 짙어지려나. 10년 후쯤엔 직장을 나가면 아마 지하철에서 허둥지둥 손거울 들고 눈썹을 그리는 민폐녀가 될 수도 있겠다. 중년엔 지체 높은 신분이 되어 실수로 헤어롤을 매단 채 회의에 나가면 일하는 여성의 애환을 보여준 미담의 주인공이 될지도.

아이들 말대로 어른들은 이상하다. 화장과 관련한 일련의 삽화들을 떠올려보니 일관성이 1도 없다. 십대의 강을 건너는 순간 여자의 민낯에 대한 평가는 순수의 상징에서 무례의 표시로 뒤바뀐다. 화장이 부덕에서 미덕이 되는 기준은 무엇이고, 누가 정하는지 알 수 없으나 당사자인 여성의 욕망과 목소리는 애초부터 배제된다. 묻지 않고 듣지 않고. 화학 물질이 아이들 피부에 해롭기에 화장을 금한다는 말도 궁색하다. 이 미세먼지 나쁨의 나라를 건설한 어른들이 말이다.

이상한 어른 일인으로서 반성한다. 갑갑한 교육 현실, 세상은 못 바꾸고 화장으로 자신을 바꾸겠다는 주체적인 아이들을 잠시나마 힐끔거렸다. 내면과 외면의 아름다움을 분류하는 자체가 기성세대의 문법이다. 그것도 낡은. 너희들은 육체의 좋음에 무능하여 영혼의 좋음을 최상으로 추구하는 게 아니냐고 니체라면 일갈했을 것이다. 좋은 화장품 사주든가, 해로운 화장품은 만들지 말고 팔지를 말아야 한다. 그게 어른의 일이다.

꾸준한 행동으로 분가루 냄새 약동하는 교실 풍경을 일궈낸 아이들, 화장을 하는 이유를 또박또박 주장하고 어른들의 두서없는 논리와 간섭을 반박하는 아이들, 나탈리 크나프가 정의한 대로 “인생의 지혜에서 아직 멀어지지 않은” 이 존재들에게 화장권이 널리 허용되길. 화장할 권리와 투표할 권리는 멀지 않아 보인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91757.html?_fr=mt5#csidx5ef57463832a4e797c7f8ebf50f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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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 슬픔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은유칼럼]

군에 간 아이가 휴가를 나왔다가 들어간 다음 날, 빨래를 개키다가 멈칫했다. 아이가 입던 양말이랑 팬티가 손에 잡혔다. 사람은 가고 없는데 옷가지만 남아 있는 게 영 이상했다. 당분간이겠지만 임자 없는 옷들. 그것을 만지작거리다가 나는 ‘최초의 빨래’를 생각했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처음 돌아간 세탁기에서 나왔을 옷들. 아이가 수학여행 가기 전 벗어놓은 허물들. 그것을 빨고 말리고 개켜도 입을 사람이 더는 없음을 알았을 때, 참사 이전의 일상을 완강하게 간직한 그 옷들은 다시 젖어가지 않았을까.


살다가 슬퍼지는 순간이면 자동 연상처럼 세월호가 떠오른다. 정확하게는 세월호 유가족 인터뷰집 『금요일엔 돌아오렴』의 문장들이 생각난다. 내 평생 목도한 비참의 총화, 그 불가해한 사건의 실체를 나는 이 책으로 이해했다. 번호가 매겨진 희생자가 아닌 한 명 한 명 아이들이 어떤 이름을 가졌는지, 하루아침에 자식을 잃었다는 건 어떻게 실감하는지, 슬픔이 정수리까지 꽉 찬 몸으로 살아가는 일상은 얼마나 휘청이는지, 대체 어떤 사건이 일어난 건지 부모들은 소상히 들려준다.


“전화로 미지 엄마한테 속옷서부터 팬티까지 얘기했지. ‘겉옷은 무슨 색인데 이게 맞냐’ 그랬더니 ‘맞다’. ‘속옷은 땡땡이 입었는데 이거 맞냐’, ‘맞다’. ‘팬티는 줄무늬에 뭐가 있는데 맞냐’, ‘맞다’”(54쪽) 미지 아버지 유해종 씨는 사고 한 달 만에 속옷 무늬로 딸의 시신을 찾는다. 죽은 아이를 확인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물. 무늬도 색깔도 크기도 제각각인 속옷은 아이의 몸과 취향의 고유성을 나타내는 표지이자 엄마와의 내밀한 연결을 매개하는 유품이 된다. 아마도 미지 어머니는 일 인 분만큼 줄어든 빨랫감에서, 보이지 않는 땡땡이 무늬의 속옷에서 딸의 부재를 두고두고 실감할 것이다.


소연 아버지 김진철 씨는 아이가 세 살 때부터 “도둑질만 안 하고” 다 해가며 홀로 아이를 키운 한 부모 가장이다. 세상에 딸하고 나 둘만 남겨졌는데 잃은 그 아이, 딸의 장례를 치르고 집에 왔을 때 소포가 와 있었다. “풀어보니 소연이가 인터넷으로 산 책들인듸 소설책과 참고서였어유. 그걸 보고 엄청 울었네요. 그 책들을 샀을 때는 열심히 살려고 그런 거 아니여유. 근디 죽어버렸으니 얼마나 기가 막혔겄시유.”(96쪽) 


그 책들은 결국 딸의 친한 친구에게 주었다고 나온다. 짧게 언급된 한 줄 문장. 나는 그 행간에 오래 머물렀다. 너무 빨리 간 아이의 너무 늦게 도착한 책들을 안고 오열하는 아버지.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고, 책들을 건네주고, 살아 있는 딸의 친구를 보면서 부러움에 눈물짓고 소주를 들이켜다 쓰러져 잠들었을 아버지의 동선을 끝말잇기 하듯이 더듬더듬 그려보았다. 유통기한 없는 슬픔의 효소는 얼마나 오래 아버지의 술잔을 채웠을까.


“애가 좋은 데 간다”는 스님의 조언에 따라 호성 어머니 정부자 씨는 아이의 노트며 가방을 그대로 태웠다. 그런데 신발은 아이가 수학여행에 다 신고 가버리는 바람에 남은 게 없었다. “없어서 하나 사서 태워줬다.”(126쪽) 왜 그리 구질구질하게 살았는지 모르겠다며 엄마는 가슴을 친다. 죽은 아이의 신발을 버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 사기도 해야 한다는 것을 난 이 책에서 처음 알았다. 슬픔은 이토록 개별적이고 구체적이고 성가시고 집요하고 난데없다. 예습과 추론이 불가능하고 복습과 암기로 공부해야 하는 과목이다.


나는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글쓰기 수업 교재로 자주 쓴다. 한국사회 모순과 부조리를 보여주는 사회학 교과서이자, 삶을 질문하게 하는 철학서, 인간의 고통과 슬픔을 다루는 문학 작품으로 더없다. 이 책을 언급하면 거의 똑같은 반응이 나온다. 사놓고 엄두가 나지 않아 ‘아직’ 안 읽었다며 뒷걸음질 친다. 용기 내어 읽고 나면 눈빛이 단단해진다. 어떤 학인은 이렇게 썼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아픈 사람들의 마음을 전혀 알려고도, 소통하려고도 하지 않은 무소통‧불통의 인간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스컴에서 보도되는 대로 믿어왔고 세월호를 인양하는 것이 국세 낭비라고만 생각했었다. 이미 떠나간 아이들이 뭐 건진다고 달라질까? 아이를 잃은 슬픔이 어떤 건지 아이를 기르고 있는 입장에서도 전혀 공감하지 못했던 것이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은 평범한 사람들의 각성과 저항의 서사로 빛난다. “아이랑 함께 했던 공간과 시간을 아이 없이 모두 다 새로 시작해야 한다”(213쪽)는 사실에 인생 초보가 된 사람들. 행동 양식의 초기화는 의식화로 이어진다. 세월호 사건이 “동네 저수지에 사람 하나 빠졌을 때보다 못하다”(291쪽)는 사실을 알아챈다. “뉴스가 진실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26쪽) 물론 “처음부터 투사가 되어 이걸 밝히고 말거야라는 생각으로 뛰어든 부모는 한 명도 없다.”(157쪽) 


        제훈 어머니 이지연 씨는 교육열 높은 엄마였다. 아이의 뇌기능에 좋게 모차르트 음악을 틀어주고 영어를 일찍 접하게 하고 학원 스케줄을 관리했다. 저만 삐뚤어지지 않고 열심히 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한참 슬픔에 젖어 있던 무렵에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딸과 아들을 잃은 부모를 만났고 위로를 받았다며 말한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껴안는다는 거 그전에는 전혀 생각 못했어요. 내가 경험하지 않았다고 모른 체하고 살았던 게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329쪽)


         전국으로 간담회를 다니는 세희 아버지 임종호 씨는 “우리 자식 물에 빠져죽지 않게 수영 가르쳤다”는 학부모들 이야기를 들으면 안타깝다. “개인이 노력해서 수영 잘 해서 될 게 아니잖아. 왜 법이 만들어져야 하는지 말하는 거지. 그런데 사람들이 자기 자식 일이라고 생각 안 해요. 소를 잃어본 사람이 외양간을 고치지, 소가 멀쩡하게 있는 사람은 모르더라고.”(276쪽)


         얼마 전 인천에서 여덟 살 아이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아이가 친구와 놀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휴대폰을 빌리러 한 여성을 따라간 뒤 봉변을 당했다. 엄마들 사이에서 충격이 컸고, 아이에게 핸드폰을 사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자식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젊은 엄마에게 난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권했다.


나는 과연 소가 멀쩡하게 있는 사람인지, 멀쩡함의 기준이 되는 시기와 조건은 무엇인지,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싶은지 자기 욕망과 세계관에 질문을 던지는 책. 핸드폰을 지니거나 생존 수영을 배우기처럼 내 자식만을 위해서는 내 자식을 위할 수 없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책. 이 책의 첫 장을 넘기는 게 자기 슬픔과 불안을 직시하고 외양간을 고치는 일의 시작이 되리라 믿는다.


* 채널예스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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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노동은 일흔 넘어도 계속된다

[은유칼럼]

“여자는 박쥐나 올빼미같이 살며 짐승처럼 일하다가 벌레처럼 죽는다(마거릿 캐번디시).” 장송곡 같은 인용문으로 시작된 글을 읽어나간다. “남자 셋을 부양하기 위해 컴컴한 새벽길을 나서는 일이 서럽고, 아무도 눈 맞춰주는 이가 없는 낯선 건물을 닦고 화장실을 청소하는 일이 고됐을 것이다.” 엄마의 신산한 노동은 일흔이 넘도록 끝나지 않는다. 


오십 대 딸이 인터뷰한 엄마 이야기다. 나는 글쓰기 수업에서 학인들이 써오는 부모님에 관한 글을 읽으며 ‘남자는 돈 벌고 여자는 살림한다’는 가부장제 성별 분업 구도가 허위는 아닐까 자주 의심한다. 자식들 증언에 의하면, 아버지가 생계를 맡았지만 온전히 책임지지 못하곤 했다. 엄마는 식당 아줌마로, 목욕탕 매점 이모로, 백화점 의류판매원으로, 똥 치우는 간병인으로 일했고, 농사짓거나 장사했다. 그러고도 당연히 살림까지 도맡았다. 


작년에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를 인터뷰했다. 일곱 명을 만났는데 그중 여성 피해자가 두 명이다. 김순자씨는 결혼 후 잦은 외도로 ‘집 나간’ 남편을 대신해 보험설계사로 일하며 생계를 꾸리다가 간첩조작 사건에 연루돼 5년 옥살이를 마치고는 여관 청소와 식모살이를 전전했다. 삼 남매를 혼자 키웠다. 박순애씨는 당시로는 드물게 대학 교육까지 받았으나 12년 수감 생활 끝에 경력단절 여성이 되었고,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파출부뿐이었다. 


남성 피해자들도 투옥과 낙인으로 생활고가 심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 그 가장 노릇의 빈자리를 채운 것도 아내인 여자였다. 반찬가게나 분식점을 차려 다리가 퉁퉁 붓도록 일했고, 십수 년 생선 행상으로 자식들 공부 뒷바라지부터 남편 옥바라지까지 묵묵히 해냈다. 광주리를 하도 이고 다니는 바람에 정수리 머리카락이 다 빠졌다며 “눈물 흘려서 한강수 되고 한숨 쉬어서 동남풍 된다”라고 말하는 피해자 아내의 사연을 역사는 기록하지 않는다. 

ⓒ연합뉴스

나의 주변에서 대강만 추려도 이 정도. 여성 노동 잔혹사가 고구마줄기처럼 끝도 없이 나온다. 앞치마 두른 전업주부는 드라마나 CF에서 나올 뿐 현실에서는 드문 거 같다. 여성의 노동은 왜 기록되지 못했을까. 나부터도 여성은 임노동자 이전에 엄마나 아내로 먼저 인식했다. 노동자는 전태일이다. 노동자는 택배기사다. 남성은 허드렛일을 해도 일하는 주체로 인정받는다. 이 남성 중심의 노동사에서 여성의 노동은 늘 주변화한다. 


한번 초점이 맞춰지니 보였다. 열아홉 개 섬 사람들 이야기를 잔잔히 풀어낸 산문집 <섬>을, 그래서 나는 여성 노동 생활사로 읽었다. 계집애로 태어나 윗목에 버려졌던 딸내미, “나나 마나 한 거라는 이름을 받아 ‘쬐그만 몸뚱이’로 평생 갯일, 부엌일, 피붙이들 바라지로 살아온(98쪽)” 형도의 나 할머니. “국민학교 졸업하자마자 갯바닥으로 나갔(186쪽)”다는 우도 해녀 공명산 할머니. 웅도의 박경분 할머니는 “웅크리고 조개를 캐니까 몸이야 항상 아프지유. 오늘 갔다가 내일 앓더라도 일단은 나가게 돼유(86쪽)” 한다. “나이 들어서 물일은 못해도 손 노릇은 할 만항께(164쪽)” 칠순을 넘기고부터는 비탈밭에 약초 가꾸기로 용돈벌이 하는 세 할머니가 만재도에 살고 있다. 

<섬>박미경 지음봄날의책 펴냄

기록되지 못한 여성 노동 잔혹사 

<섬>은 숙박시설과 맛집 안내, 역사 유적 소개로 채운 여행서가 아니라 그곳에 터를 잡고 사는 이들의 목소리가 담긴 민중 자서전이다. 그리 사는 할머니들은 섧지 않다는데 읽는 나는 섧다. 퇴근이 없고 정년이 없어 평생 몸을 가만두지 못하면서도 노동자로서 최소한의 보상과 보호도 받지 못한 여성들. 자식 돌봄, 부모 봉양, 가사 노동, 남성 부양 의무까지 이중 삼중 노동을 수행하는 쪼글쪼글한 그녀들로 인해 나는 여자는 ‘고생한다’는 막연한 통념을 벗고 ‘노동한다’로 인식을 바로잡았다. 


아무려나, 제 몸 써서 일한 사람들이 갖는 삶에 대한 통찰력, 남의 몫 가로채지 않고 자기 손 놀려 ‘저금통’ 같은 갯벌 일구어 살아온 이들의 가뿐함, 그 와중에도 기역 자로 굽은 허리를 펴 “누부리 곱과(노을이 고와)(98쪽)”라며 감탄할 줄 아는 우아함을 배운다. 이 책의 최고령 97세 소무의도 윤희분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농땡이가 최고야. 젊어서 일 많이 하지 마시오. 늙어서 이렇게 아플 줄 알았으면 그렇게 안 했어. 젊었을 때는 뼈가 나긋나긋하니까 물불 안 가렸지. 농땡이가 최고야(220쪽).” 


짐승처럼 일하다가 벌레처럼 작아진 몸피에서 나온 사리 같은 말, 인간다움을 추구하기에 너무도 혁명적인 그 입말을 곱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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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 하찮은 만남들에 대한 예의

[은유칼럼]

먼저 오는 버스를 탔다. 초봄 꽃샘바람이 사정없이 볼을 때리니 견디지 못해 올라탔다. 중간에 환승할 심산으로 옷에 붙은 바람을 털며 통로 안쪽에 자리를 잡던 중, 한 사람과 시선이 얽혔다. K? 어! 여기 웬일이냐며 우린 멋쩍은 웃음으로 상황을 눅였다. 우연한 상봉, 물러설 곳 없는 마주침, 기승전결의 대화를 나누기 어려운 어정쩡한 시공간. 이 불리한 조건의 만남이란 강제된 소개팅처럼 어색하다.

 

“저 이 버스 백 년 만에 탔어요.” “저도 거의 안 타는 버스인 걸요.” 어머 이럴 수가. “어디 갔다 오는 길이에요. 영화 한 편 봤어요.” “무슨 영화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영화 좋나요?” “네. 초반엔 좀 졸다가 울면서 봤네요.” “어디서 오는 길이세요?” “서촌에 미팅이 있어서요.” “그랬구나. 아직 거기 살죠?” “작업실 냈어요.” “와, 번성하네요.” “간간이 소식은 듣고 있었어요. 이번에 작업한 거 좋던데요.”

 

K는 디자이너다. 5년 전 작은 잡지를 만들 때 같이 일했다. 편집주간까지 뭉쳐 낮밤으로 술 마시고 말을 나눴다. 흥이 잘 통했다. K는 젠틀하고 익살맞다. 엉뚱하고 단정하다. 색깔이 다른 양말을 신되 셔츠의 단추는 반드시 목 끝까지 채웠다. 남자 사람이지만 자기 얘기를 앞다투어 꺼내지 않았으며, 가만히 듣다가 한 번씩 재치 있는 대사를 쳤다. 섬세한 개인주의자인 K는 좋은 동료였다. 일하기에도 놀기에도. 가끔 보고 싶었지만 굳이 연락은 하지 않고 그리운 대로 흘려보낸 지 어언 2,3년이다.

 

버스에 대롱대롱 매달린 K와 나. 말의 시속이 30킬로미터를 넘지 않는 대화가 끊기다 이어지다 했다. K가 입을 뗐다. “영화 보고 나서 눈물까지 흘리셨잖아요, 조용히 감동을 안고 가야 하는데 제가 괜히 방해한 거 아니에요.” 두 눈을 껌뻑이며 미안함을 표하는 K는 여전했다. 난 손사래를 치고 고개까지 흔들었다. 선의도 호의도 없이 우린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를 탄 것뿐이다. 게다가 난 극장을 나와 카페에 들러 비엔나커피 한 잔 마시고 오는 길이었다. 영화를 음미했으니 괜찮다고 했다. K는 다음 정류장에서 내렸다. 제 역할이 끝난 연극배우처럼.

 

이 짧은 해후가 삼삼했다. 우연히 만난 이들의 모범 답안 같은 그것. 버스 장면을 몇 번 돌려봤다. 언제 밥 한번 먹자고 말하지 않아서 좋았다. 흔해 빠진 관용구로 인연을 복제하는 건 시시하니까. 자기가 나의 고요를 침탈한 거 아니냐고 물어봐주어 고마웠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사람의 말씨는 다정하니까. 기억에 검은 발자국만 남기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다음에 또 만났을 때 싫음이 올라오면 곤란하니까.

 

예정된 후배의 결혼식에 갔다. 재작년 다른 결혼식에서 만났던 후배의 동기들 서넛이 보인다. 그중에 Y도 있다. 지난 번에 이혼 의사를 내비쳤던 Y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궁금한데도 연락 한번 안 하는 일이 살다보니 가능해지고 있다. 어쩐지 미안해서 직접 묻지 않고 옆에 있던 C에게 넌지시 물었다. 귀에 대고 손으로 막고 소곤소곤. “Y말야, 이혼했어?” C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때 했지” 한다. 그러더니 잠시 후 저쪽에서 다가오는 Y에게 말한다. “언니가 모르고 있어서 네 소식 업데이트 해드렸다.”

 

순간 난 뒷담화하다가 들킨 사람 마냥 저 혼자 무안했다. Y는 결혼하든 이혼하든 슬기롭고 자유로운 주체로 살아갈 여성이지만 그렇다고 이혼이 비옷에 묻은 빗방울 털 듯 간단한 문제는 아니니까, 말 꺼내는 자체가 아직 괴로울 수도 있으니까, 여기는 결혼식장이고 난 교양인이니까 조용히 말한 건데 나 빼고 아무도 조심하지 않았다. 신여성들 사이에서 나만 동그마니 구여성이다.

 

그 어중간한 만남, 결혼식 장면이 자꾸 떠올랐다. 나는 평소 ‘결혼은 행복, 이혼은 불행’이란 관습적 사고의 척결을 주장했다. 결혼식은 일생의 화창한 하루일 뿐 평생의 맑음을 보장하는 의례는 아니고 이혼은 비감한 일이지만 앞날의 불행을 예비하는 생의 절차는 아니다. 비 오는 날도 해 뜨는 날도 그냥 날씨인데 인간의 관점에서 좋은 날씨 궂은 날씨 구별한다는 스피노자의 말대로, 삶의 어떤 국면을 좋음과 나쁨으로 가르는 것도 지극히 관습적이고 현재중심적인 판단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결혼은 축하로 이혼은 염려로 몸이 자동 반응한 것이다. 앎은 몸을 이기지 못한다.

 


일본 사회학자 기시 마사히코의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에서 내 고민과 비슷한 상황이 나온다.

 

“우리는 좋아하는 이성과 맺어지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 그래서 축복한다. 결국 여기에는 좋아하는 이성과 맺어진 일이 당사자뿐만 아니라 세상 일반에 행복한 일이라는 사고방식이 전제로 깔려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 어법, 축복의 방식은 동시에 좋아하는 이성과 맺어지지 못한 사람들은 불행하다든가, 아니면 적어도 이 두 사람만큼 행복하지 않다는 의미를 필연적으로 띠고 만다.”(111쪽)

 

저자는 두 사람의 결혼을 축복한다는 것 자체가 독신이나 동성애자에게는 저주가 된다며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나누는 규범을 모조리 갖다 버려야 한다. 규범이란 반드시 그것에 의해 배제 당하는 사람들을 산출하기 때문이다”(112쪽)라고 일갈한다. 뭔가 후련했다. 좋음과 나쁨의 전복이 아닌 규범의 용도 폐기. 누구도 소외되지 않으니 배려도 필요치 않은 상태. 누가 결혼했든 이혼했든 합격했든 실직했든 발병했든 서툰 연극 배우처럼 구는 짓은 이제 그만이다.

 

나이 들면서 체지방이 늘 듯 안 쓰는 핸드폰 번호가 쌓인다. 번호는 정리해도 인연은 삭제되지 않고 내가 피해도 삶이 만나게 한다. 사는 동안 운명을 뒤바꿔놓을 결정적인 만남은 거의 일어나지 않겠지만 신상 정보의 업데이트가 안 된 지인들과의 애매한 만남, 아니 마주침은 종종 일어날 것 같다. 

 

“우리의 인생은 (…) 어릴 적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잘고, 협소하고, 단편적이다.”(116쪽)

 

이 단편적 만남, 하찮은 우연에 잘 임하고 싶다. 안색을 살피고 고요를 챙길 것. 앞으로 수 차례 결혼식과 장례식 그리고 무수한 대중교통의 탑승 기회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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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즈비언 부부와 놀다

[은유칼럼]

여자 다섯이 짧은 여행을 갔다. 나이는 삼사십대. 농부, 활동가, 직장인, 백수 등 하는 일도 제각각. 레즈비언 부부와 이성애자 셋. 이성애자들 중 둘은 기혼, 하나는 비혼이다. 아무래도 커플이 있다 보니 중심이 그들에게 쏠렸다. 서로 자기가 맞다고 티격태격할 때는 여느 부부 같았고 손잡고 걷는 모습에선 흔한 연인이 떠올랐다. 아득한 바다보다 다정한 사람 풍경에 눈이 시렸다. 곤한 일정을 마친 밤, 술이 한 순배 돌자 사랑 얘기가 나왔다.


둘이 어떻게 처음 만났어요? 아직 연애의 꿈이 짱짱한 비혼 친구가 물었다. 십년 전 모임에서 봤어. 사람들이 스무명 정도 있는데 눈에 띄더라고. 어떤 점이? 얼굴이 동그랗고 예뻐서. 세상일에 관심이 많고 사고가 유연했어. 2차는 우리끼리 따로 가자고 했지. 얘기가 잘 통해서 시간 가는 줄 몰랐어. 자취방에 가자고 했는데. 어머, 라면 먹고 갈래요? 그날은 그건 아니었고…. 그로부터 7년째 그들은 연인이다.


사연이 한 보따리다. 친한 동창들한테 최초로 커밍아웃을 했을 때의 반응. 어떤 친구가 그러지 말고 남자랑 한번 자보라고, 그러면 달라질 것이라고 하더란다. 그래서 네가 먼저 여자랑 한번 자봐라. 네가 가능하면 나도 남자랑 자겠다고 했다고. 딸의 성정체성을 모르는 양가 부모는 ‘시집 안 간 딸’ 때문에 속 끓이다가 마흔이 넘자 포기한 거 같다고 했다. 한데 걱정이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걱정이 들어섰으니 파트너의 존재를 ‘죽고 못 사는’ 오랜 지기로 아는 엄마가 하루는 그러더란다. ○○가 너 두고 먼저 결혼하면 어떡하니?


웃기엔 슬프고 울기엔 다행인 상황. 엄마의 바람이 자식의 결혼이 아니라 자식의 행복이라면 그건 엄마가 모르는 상태로 충족되고 있으니 말이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그들은 커밍아웃은 포기한 상태다. 누구를 탓할까. 부모 세대는 물론 우리도 태어나면서부터 학교, 종교, 매스컴을 통해 이성애 중심의 교육을 받았다. 남녀의 결혼관계를 제외한 나머지 섹슈얼리티를 일탈이나 변태로 몰아가는 ‘강제적 이성애’를 비판 없이 수용한다. 그들 역시 자기 앎을 의심하지 않았기에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는 혹독한 시기를 거쳤고 자기 몸-삶과 화해한 후에야 비로소 짝을 만난 것이다.


‘공짜 숙소’가 있다는 전갈을 받고 이틀 만에 성사된 여행이다. 차 한 대에 끼여 타고 가다가 경치 좋으면 걷고 배고프면 먹고 수시로 셔터를 눌러대는 별다를 것 없는 여정이었다. 그럼에도 은밀하고 넉넉했다. 어딜 가나 귀 따갑게 반복되는 자식 얘기, 입시 얘기, 돈 얘기, 연예인 얘기 같은 레퍼토리를 벗어나 안으로 파고든 대화들 덕이다.


일명 내면 탐사 여행.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이성애 가족 중심 제도에서 벗어난 레즈비언 부부와 함께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서로를 엄마, 아내, 딸, 노동자 같은 역할의 수행자로 보지 않는 사람들과 마주앉아 존재에 관한 수다 삼매경에 빠지는 자리. 정체성이나 성욕 같은 단어를 두서없이 내뱉어도 어색하지 않고, 나는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좋은지 중얼거려도 민망하지 않은 배치 덕에 익숙한 나로부터 떠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2017년 퀴어문화축제 기사가 뜬다. ‘나중은 없다, 지금 우리가 바꾼다!’로 슬로건이 정해졌단다. 나중으로 유보될 수 없는 삶이 어디 그들뿐이랴. 인생이라는 책에서 접어두었던 존재 물음의 장. 사랑, 존재, 관계, 편견, 욕망의 페이지를 넘기도록 자극을 준 내 친구들을 만나러 오월에는 퀴어 축제로 떠나야겠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87903.html#csidx956910baa66b9b194d896a92ff45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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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같은 엄마와 딸이라는 환상

[은유칼럼]

“맞벌이 하시죠? 수레는 혼자 있는 시간에 뭘 하면서 보내요?”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아이 담임에게 전화가 왔다. 학부모가 되고부터 핸드폰 액정에 학교 전화번호만 떠도 가슴이 철렁한다. 학교는 어쩐지 불길의 정조를 몰고 온다. 담임의 부름을 받고 불안을 안고 몇 시간 후 빈 교실에 마주 앉았을 때, 담임은 물었고 나는 순간 깜깜했다. 뭐든지 말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말할 게 없었다. 월수금 영어학원 간다고 둘러댔지만 고작 한 시간 반. 끝나면 아이는 또 무얼 할까.

 

상담 중 담임이 말했다. 지난주 과학 시험을 보았고 아이는 점수가 낮았고 남자애들 몇 명이 놀렸고 아이가 울었다. 수레가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삭이는 편이다. 혼자 있을 때 드라마를 즐겨보는 것 같다. 일기에 ‘정주행’한 드라마 이야기를 쓰는데 줄거리 요약을 제법 잘한다고 했다. 집에서 아이를 세심하게 살피라는 당부와 함께 상담이 끝났다.

 

그날도 이런 날씨였다. 교정을 빠져나오며 올려다본 하늘은 파랗고 햇살은 노랗고 바람은 시렸다. 세상과 내가, 나와 아이가 분리된 느낌. 영화의 한 장면처럼 운동장 끝에서 아이가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담임과의 상담은 아이를 아는 시간이 아니라 아이에 대해 아는 게 없는, 나를 아는 자리였다.


수레는 둘째다. 첫 아이 때는 교과서 육아로 임하느라 ‘9개월 이후는 물젖’ 이론에 입각해 만 9개월 되는 날 모유에서 분유로 갈아탔다. 지나고서 후회했다. 더 먹일걸. 그래서 둘째는 마냥 먹였다. 젖이 텅텅 비어 쭈글쭈글해지도록 대여섯 살까지 물렸다. 몸으로 연결된 관계는 각별했다. 내가 울면 아이의 눈에도 눈물이 찼다. 아이는 유능한 기상관처럼 내 표정 변화를 감지해 기분을 맞췄다. 그런데 난 밥만 제때 먹이는 것만으로도 허덕였고, 아이의 감정은 헤아리지 못했던 모양이다. 스스로 모성을 맹신하는 사이 아이는 열세 살이 됐다.

 

그날 밤 아이에게 학교에 다녀온 얘기를 했다. 대개 아이들이 그렇듯 겉으론 태연했다. 남자애들이 놀린 건 사실이지만 사과했고 다 끝난 일이라며 말꼬리를 잘랐다. 왜 엄마한테 말하지 않았는지 물었더니 “엄마는 무조건 걱정만 하잖아” 한다. 엄마한테 말해봤자 문제 해결에 도움은 안 되고 ‘엄마의 걱정’을 해소시켜줘야 하는 문제까지 추가되는 구조를, 아이는 파악하고 있었다.

 

나는 맥없이 울었다. 자책과 회한과 연민이겠지. 아이의 슬픔을 알아보지 못한 게 미안하고, 품에서 무언가 빠져나가는 거 같아 섭섭하고, 밤이고 낮이고 일하느라 뒷등만 보여준 게 면목 없고, 무엇보다 아이의 몸에 고통을 견디는 회로가 깔린 게 안쓰러웠다. 흘깃 쳐다본 아이의 눈에서도 눈물이 주르륵 떨어졌다. 고통을 나누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눈물은 공유하는 우리. 그런데 아이는 왜 울었을까.

 

돌이켜보니, 난 딸이랑 닮았다. 나도 엄마를 좋아했지만 엄마에게 비밀이 많았다. 인생 고민은 막판까지 숨겼다. 고등학교 때 담임한테 말대꾸하다가 뺨 맞고 조퇴한 일을 엄마는 모르고 내가 모범생에 순둥이인 줄만 안다. 스물한 살 노조 상근을 결정했을 때도 출근 전날에야 실토했다. 말하는데 눈물이 마냥 흘렀다. 노조 활동 하는 거보다 이유 없이 운다고 혼났다. 도대체 왜 우는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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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가오는 것들>에도 모녀 사이 눈물의 강이 흐른다. 주인공 나탈리(이자벨 위페르)의 딸은 출산 후 몸조리를 하다가 침대에서 느닷없이 운다. 엄마는 왜 우느냐며 이런저런 이유를 캐묻지만 딸은 말없이 울기만 한다.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은 가능한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하는 영화의 테마가 녹아든, 내겐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딸과 엄마는 서로에게 멀고도 가까운 타인이다. 주변의 동성애자 친구들도 엄마에게 커밍아웃 하는 것을 마지막 과제로 남겨둔다. 성폭력 피해 경험을 엄마에게 말하는 딸은 드물다. 돌싱녀 친구들은 이혼 서류에 도장 찍고 나서 엄마에게 통보한다. 그건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효심과 자신의 감정노동을 최소화하려는 계산이 포함된 고도의 협상이다. 덜 진실한 태도는 아니다. 자식의 정체성 투쟁에서 엄마가 최후의 관문인 건 분명해 보인다.

 

그 봄날 상담 이후, 나는 친구 같은 엄마와 딸이라는 환상에서 일찌감치 퇴각했다. 모녀관계에서의 무능을 인정했다. 아이도 내게 자주 상기시킨다. 수레는 요즘은 방과 후 집에서 고양이 무지와 노는 것으로 소일하는데, 이렇게 말한다. “난 무지가 너무 좋아. 잘 놀아주고 나한테 아무 말도 안 하잖아.” 이것은 언중유골. 그러니까 고양이와 달리 (엄마) 사람은 이래라저래라 한다는 뜻이다. 난 잔소리 안 하는 엄마라고 자부했는데 아이 입장에선 아닌가 보다.

 

“어떤 감정이입은 배워야만 하고, 그 다음에 상상해야만 한다.”(157쪽) 구원은 과거에 있다. 엄마가 되면서 상실한 아이 적 감각을 복원하기. 이를 위해 엄마가 쓴 자식 양육서를 읽느니 딸이 쓴 엄마 이야기를 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환경운동가이자 작가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 앞부분에 나오는 엄마의 이야기는 그런 점에서 귀했다. 사실 딸의 금발과 눈썹을 질투하는 엄마는 보편적이지 않다. 전래동화 캐릭터처럼 오싹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시기심이라는 “하나의 감정을 이성적 명분으로 바꾸고 명분을 사실로 바꾸는”(36쪽) 어머니, “내 삶에 분노를 쏟아내는”(41쪽) “나를 단 한번도 알아보지 못한”(43쪽) 필자의 어머니는 내 모습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나도 종종 딸을 향한 불안함이라는 감정을 기정 사실로 왜곡할 때가 있고, 나의 풀리지 않는 화를 아이에게 퍼붓기도 한다, 보고 싶은 면만 초점을 맞추니 있는 그대로의 아이를 본 적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으로 ‘연구 대상’ 엄마를 한 존재로 받아들이는 딸의 지적 여정을 함께 하고 난 후, 나의 꿈은 정교해졌다. 자기가 좋은 엄마라고 착각하지 않는 엄마 되기, 아이의 눈에 비치는 내 모습을 수시로 그려보기. 그저 고양이처럼 말없이 아이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것이다. 


http://m.ch.yes24.com/Article/View/32972

* 이 글은 채널예스 '은유의 다가오는 것들'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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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인 - 그날의 눈은 나를 멈춰세웠다

[은유칼럼]
10년간의 프리랜서 생활을 청산하고 직장을 구한 건 고정 급여가 필요해서였다. 은행 대출금을 석 달 이상 갚지 못하면 집이 경매로 넘어간다고 했다. 그 말에 충격을 받았다. 애들 데리고 이사 다니기 싫어서 마련한 궁여지책인데 길바닥에 나앉을 수도 있다니 얼마나 두렵던지. 매달 대출 상환금만큼의 수입 확보를 위해 취직을 택했다. 근면 성실하게 일하니까 꼬박꼬박 통장에 돈이 들어왔고, 그 돈은 대출금으로 고스란히 빠져나갔다.

직장 생활 1년이 될 즈음 어느 날 출근하려고 집을 나섰는데 함박눈이 내렸다. 굵고 탐스러운 눈송이에 눈이 부셨다. 어머 이건 봐야 해! 물고기가 물속을 헤엄치듯 눈 속을 살랑살랑 거닐었다. 회사로 향하는 길 저만치에 카페가 보였다. 지금 이 순간 저 창가에서 뜨거운 커피를 마실 수 있다면 여왕보다 더 행복할 거라는 상상에 이르는 찰나, 카페 쪽으로 횡단보도를 건너버렸다. 그러니까 궤도 이탈.

진한 커피 향이 얼굴을 덥히도록 잔을 쥐고 천상의 자리에 안착했다. 허나 어찌된 일인지 내 눈길은 창밖 함박눈보다 핸드폰 액정을 향했다. 선을 넘어놓고 건너편만 바라보고 있는 꼴이다. 반차를 쓸까, 결근을 할까. 근래 사무실은 너무 바빴다. 정시 퇴근도 눈치 보이는데 정시 출근을 어기는 건 심한 반칙 같았다. 누구는 낭만을 몰라서 출근하니? 초자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 안에 사장 있다. 예식장에서 도망가는 신부처럼 호기롭던 기세는 금세 누그러졌다. 문자를 보냈다. “사정이 생겨서 한 시간가량 늦겠습니다.”

ⓒ연합뉴스

내 사정이란 대관절 무엇인가. 눈 내림이다. 눈사태로 열차가 멈추는 건 되어도 함박눈에 홀려 발걸음이 멈추는 건 안 된다. 그것은 문서로 옮기지 못하는 감정, 직장인에겐 가당치 않은 사정이다. 선한 동료들 덕에 그날은 얼버무리고 넘어갔으나 모종의 합의된 규칙으로 돌아가는 조직에서 한번 엇박자가 나자 내면에선 계속 ‘한량 충동’이 일었다. 그해 봄, 사표를 냈다.

내쫓김의 불안보다 소모됨의 불행이 컸다. 퇴근 후 독서와 집필이 힘에 부쳤다. 감정의 수문이 열릴까 봐 음악을 줄였다. 영화 관람에도 소홀했다. 반응 기회를 잃어가며 감응 능력도 퇴화했다. 도식화된 문서를 생산하며 관료적 언어에 길들여졌다. 돈이 들어오는 대신 체력, 생각, 감각, 음악, 언어, 몽상, 눈물같이 형체 없는 것들이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살리는 일

40대 중반에 돌아온 프리랜서의 삶. 다시 광야, 다시 빈손에서 2년을 버텼다. 단행본 위주의 집필 생활이 처음인 나는 또 허둥댄다. 생산성을 예측하지 못하고 사명감만 앞서나간 탓이다. 요 며칠은 ‘죄송합니다’로 시작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나의 무지와 무모, 다듬어지지 않는 충동과 불안으로 주변에 폐를 끼쳤다. 덜 죄송하고 더 작정하고 ‘글’을 쓰겠다는 각오로 임하던 차에, 그날의 눈처럼 나를 멈춰 세우는 ‘불’같은 문장을 만났다. 

“창조가 단순히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에 지나지 않는다면, 즉 실천을 향해 장님처럼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예술은 (…) 일종의 재현으로 추락하고 말 것이다(73쪽).” 

<불과 글>
조르조 아감벤 지음
윤병언 옮김
책세상 펴냄
책 제목이 <불과 글>. 접속조사 ‘과’가 말해주듯 둘은 선택적 관계다. 인류에게 불이 있던 시절엔 글이 없었으나 글을 얻고 불을 잃어버렸다. 불의 속성인 신비, 신화, 영감, 비애가 사라지면서 글이 재현으로 추락했다는 거다. “현대 작가들은 언어의 심연에서 들려오는 신음 소리를 듣지 못하고 언어를 하나의 순수한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고 믿는다(19쪽).”

나는 어떤 글을 그토록 쓰고 싶었을까. 세상에는 이미 너무 많은 글이 있고 논리가 있고 지식이 있다. 그것에 묻힌 너무 작은 목소리가 있다.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살리는 일을 내심 과업으로 삼았다. 저자의 일침대로라면 육성만 담지 말고 울림과 떨림까지 담아야 하고 그것은 “무언가를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의 저항”으로 가능하다. 이 무위의 글쓰기라는 경지는 아득하지만 일단 쓰기에 대한 열망으로 조급해진 마음은 누그러뜨려준다. 무언가를 즉각적으로 수행하려는 욕심을 무너뜨리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힘을 다스리라는 글쓰기의 이정표 앞에서 나는 또 가던 길 멈추고 숨을 고른다. 

글이 불이 되는 글쓰기를 해낼 재주는 없지만 쓰면서 알아가고 싶다. 전업 작가가 되고 싶거든, 혹은 됐으면 하루에 이삼십 장씩 쓰라는 말보다 윤리적이며 매혹적이고 현실적이다. 이미 글이 범람하는 시대에 제면기에서 면발 나오듯 줄줄 써대는 게 능사는 아니며, 그렇게 능력을 행위로 소모하다간 4대 보험 적용도 안 되는 무명작가로 과로사하기 딱 좋다는 자각이 아주 세게 드는 조언이다. 고마워요, 아감벤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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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말하기 공부

[은유칼럼]
새봄 새 학기, 급식 메뉴도 맛있고 문화체험 행사도 많아 기대에 들뜬 소년은 선생님의 다급한 부름을 받는다. 엄마의 부고 소식이다. 교통사고로 엄마를 떠나보낸 때가 열다섯. 죽음을 받아들이기에 적당한 나이가 있진 않겠으나 검은 상복이 안 어울리는 연령대는 있다. 그 소년은 스물한살이 되어 그날의 상황과 심정을 글쓰기로 풀어냈고, 어린 상주에게 감정이 이입된 동료들은 숨죽였다.

얼마 전 글쓰기 수업 장면이다. 그가 낭독을 마치자 예의 침묵이 한동안 감돌았다. 합평은 늘 긴장된다. 이런 경우처럼 상실 경험이라면 더하다. 글이 묵직하니 말이 더디 터진다. 적절한 위로와 지적의 말을 찾느라 그런가 보다 했는데 아니었다. 남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불쑥 삐져나온 자기 기억과 대면하느라 저마다 머릿속이 바쁘기도 한 거였다.

이 침묵, 이 머뭇거림을 나는 한때 견디지 못했다. 글쓴이가 울컥해 낭독을 멈추면 내가 대타로 나서 읽어주었다. 낭독 이후 의견이 없으면 말의 물꼬를 트려고 애썼다. 그럴수록 표현이 궁했다. 가령, 친족 성폭력은 누구나 겪는 일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삶에서는 이미 일어난 일이다. 별일 아니라고 말하기엔 별일이고, 별일이라고 말하기엔 별일이 아니어야 산다. 삶의 아이러니 앞에서 말은 무력하다. (듣고 나서 무어라 말해야 좋은지 당사자에게 물어보았더니 “믿고 말해줘서 고마워”라고 했다.)

한번은 나도 상념에 빠져 주춤하는 사이 다른 동료의 발언으로 토론이 진행된 적이 있다. 왜 꼭 먼저 나서려 했던가 싶어 민망했다. 한발 뒤로 물러서니 침묵의 다른 기능이 보였다. 침묵은 정지의 시간이 아니라 생성의 시간이다. 무슨 말이든 하고 싶지만 아무 말이나 하지 않고자 언어를 고르는 시간, 글을 쓴 이의 삶으로 걸어들어가 문장들을 경험하고 행간을 서성이고 감정을 길어내는 활발한 사고 작업의 과정이다.

나는 내 시행착오를 학인들과 공유했다. 침묵을 견디는 법, 그리고 글에 대한 평가와 삶에 대한 평가를 구별하는 방법을 얘기했다. 만약 어린 상주의 글을 읽고서 ‘부모 없이도 잘 자란 훌륭한 사람 많다’고 말하는 건 삶에 대한 평가다. 덕담 같지만 압박이다. 자기 기준으로 상대를 끌고 오는 게으른 태도다. 엄마가 없어서 언제 제일 힘들었는지 결정적인 한 장면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건 글에 대한 평가다. 한 사람의 처지를 헤아리려는 노력의 발로다. 복잡해 보이지만 간단하다. 글에 대한 평가가 더 구체적이고 다정하다. 해결사가 아닌 듣는 사람의 위치를 지키면 된다.

그날 발표자 학인은 후기를 남겼다. “무슨 용기로 엄마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했는지(…) 아마 정리를 하고 싶었던 거 같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글 쓰는 작업이 처음이라 읽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지 못했다며 그는 퇴고를 다짐했다.

읽고 쓰고 말하고 고치기의 반복. 이 고된 노역을 우리는 왜 자처하는가. 글쓰기의 목적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이렇게 정리해본다. 삶이 고차함수인데 글이 쉽게 써지면 반칙이다. 정확한 단어와 표현을 고심하다 보면 자신을 스스로 속일 가능성이 줄어들고, 몸을 숙여 한 사람의 내면의 갱도에 들어가는 훈련으로 남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을 수 있다고.

“모든 사물과 현상을 씨-동기-로부터 본다”(김수영)는 것, 자기 중심성을 벗어나 타인의 처지가 되어보는 일, 사람살이에 꼭 필요한 이것을 교육받을 기회가 드물었던 우리는 글쓰기를 핑계 삼아 공부하고 있다. 꼰대발언, 혐오발언이 승한 시대에 말을 지키는 것은 나를 지키는 것이기도 하니까.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84097.html?_fr=mt5#csidxe2d3af335abd7509266efb7c208a3a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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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인 은유 읽다 -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

[은유칼럼]

“엄마는 생일날 우리랑 안 있고 왜 친구 만나러 가?” 아이가 눈망울을 굴리며 물었다. 예상치 못한 기습 질문에 당황했지만 나는 면접에 임하는 사람처럼 성심껏 답했다. 우리는 매일 밥을 같이 먹고 외식도 자주 한다. 근데 생일에도 가족이 꼭 함께해야 하는 걸까. 엄마는 아빠나 너네들이랑 같이 있으면 자꾸 일하게 된다. 동생이 어리니까 밥 먹을 때도 반찬을 챙기게 되고 신경이 쓰인다. 일상의 연장이고 특별하지 않다. 엄마도 생일에는 마음 편히 보내고 싶다고.


나는 첫아이를 저렇게 질문이 가능한 ‘사람’으로 만들어놓고 둘째를 낳았다. 6년 만에 재개된 육아는 겨우 정돈된 일상을 쉽게 뒤집어버렸다. 내 일이 바쁠 때면 두 아이 손발톱 40개가 꼬질꼬질한 채로 자라 있곤 했다. 늘 동동거리느라 혼이 빠진 나는 틈만 나면 고요히, 단독자의 시간을 탐했다. 아이는 이해했을까. 가족이 아니라 노동을 거부하는 엄마의 마음을.


‘생일은 가족과 함께’라는 사회규범은 유니폼처럼 거추장스럽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늘 함께하는 사람들이 정해져 있다는 게 인간 행복의 관점에서 온당한지 잘 모르겠다. 외부가 없는 삶은 숨 막힌다. 평소에도 밥을 같이 먹는 식구인데 굳이 생일까지 모여야 하는지. 아마도 평소엔 밥상을, 생일엔 잔칫상을 받았던 아버지를 위한 가부장 문화의 잔재가 아닐까 추측한다. 그 수혜자가 아닌 뒷수발 드는 ‘안’사람 처지에서는 가족 ‘바깥’이 선물이다.


엄마가 되고 나면 사라지는 권리들. 자아실현이나 경력 단절보다 먹고 자고 누는 기본 생식 활동에 제동이 걸리는 게 나는 더 혼란스러웠다. 아무리 호텔 요리를 먹어도 아이가 옆에 있으면 맛을 느끼지 못했다. 아이를 두고 나오면 걱정되고 데리고 나오면 성가시고. 첫 수저를 뜨려는 찰나 아이의 ‘응가’ 한마디면 식사의 흐름이 끊긴다. 밥이 허용되지 않는 엄마의 시간. 그뿐인가. 백화점 여성용 화장실 칸 내부에는 접이식 아기 의자가 달려 있다. 몸을 못 가누거나 멋대로 돌아다니는 영·유아를 동반한 고객을 위한 장치다. 지극히 사적인 공간에서도 아이를 그림자처럼 달고 다녀야 한다.


“아이가 태어나고, 타인의 도움 없이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생명이란 것을 알고 나면 그 생명을 키우는 일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된다(130쪽).” 그것을 출산 전에 구체적으로 알 길이 없다. 타인의 도움 없이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한 생명이 다른 한 생명의 일상을 어떻게 바꾸어놓는지, 몰라서 낳는다. 그리고 키우면서 알아간다. 어디로도 도망칠 거리가 확보되지 않는 참 곤란한 관계를 출산과 양육을 통해 경험하는 것이다.


그 무수한 날들, 너무도 모질어서 존재가 공글려지는 시간이 흘렀고 아이들은 자랐다. 지난해 내 생일엔 군 입대를 앞둔 아이에게 미역국을 끓여달라고 부탁했다. 올해는 아직 어린 둘째가 오빠를 대신해 미역국을 차려주었다. 그냥 한번 말해보았는데 밥이 나왔다. 나는 ‘남편 재교육보다 자녀 출산 후 교화가 빠를 수 있다’는 교훈을 공유한답시고 페이스북에 인증 샷을 올렸다. 비혼 친구에게 먼저 반응이 왔다. 좋겠다, 부럽다를 연발한다. 난 스마트폰 계산기를 켰다. 20년, 365일, 세끼를 곱하니 2만1600끼 만에 한 끼가 돌아온 셈이다. 배불리 먹었고 자랑도 했으나 썩 부러워할 일은 아닌 거 너도 알지 않느냐고 말했다. 친구도 선뜻 인정. 이러한 극단적 비대칭 관계를 모성으로 숭앙하는 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자식 키운 보람 따윈 됐고요 육아 수당이나 주세요, 여성들이 요구하는 시대로 변하는 중이다.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난 그래도 엄마가 됐을 거 같다. 아이를 무작정 좋아하는 데다가 한 생명을 키우는 데 필요한 재화와 노동의 총량에 대한 정보는 알아도 구체적인 실감은 어려우니까 용감하게 출산의 길을 가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 놓고 여전히 생일날 온전한 식사를 위한 외출 이용권과 효행 미역국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하는 심정으로 살았으리라.


이러한 내 부산스러운 행동과 생각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낳을 자유’다. “부모를 골라서 태어날 수 없는 아이들의 평등을 지켜주는 공적 자원(281쪽)”과 “아이를 낳지 않고 싶은 여성이 비난받지 않을 자유(283쪽)”가 확보된 상태. 특정 상대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헌신하지 않는 관계 맺음이 가능하도록 가족제도가 개선될 때까지, 나는 무한한 모성을 강요하는 세상의 모든 면접관들에게 말씀드릴 작정이다. 엄마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
우에노 지즈코·미나시타 기류 지음, 조승미 옮김, 동녘 펴냄


원문보기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28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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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창 - 나, 다니엘 블레이크 따라하기

[은유칼럼]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두 번 봤다. 켄 로치의 마스터피스로 꼽히는 만큼 훌륭함으로 꽉 찬 영화지만 난 등장인물들이 같이 다니는 장면에 눈길이 갔다. 주인공 다니엘은 40년 경력의 늙은 목수, 케이티는 아이 둘을 키우는 한 부모 가장이다. 둘 다 관료화된 복지제도의 희생양으로 관공서에서 우연히 조우했다. 처음 만나서부터 허름한 집에 따라가고 소소한 도움을 주고받다가 무료 식료품 보급소나 질병수당 항고심이 이뤄지는 법원 등 비참함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운명의 극장’까지 동반 입장한다.

그냥 같이 따라가는 것. 혹은 가 ‘주는’ 것. 간다는 행위의 조건 없는 증여. 딱히 임무가 없었지만 가면 할 일이 생기기도 하는 것. 어찌할 도리는 없으나 그냥 옆에 앉아 있는 것. 이 무위의 동행은 일상을 분 단위로 쪼개 생산성을 추구하는 현대인에게 가장 어려운 과업인지 모른다. 시간 낭비이자 간섭으로 간주된다. 영화는 다르다. 목적도 거래도 없이 사람과 사람이 그냥 같이 있음으로써 일어나는 일은 가히 혁명적이다. 사람을 도구화하고 인격을 뭉개버리는 사회 제도에 맞서 그들은 존엄을 지켜주고 대변하는 삶의 증인이 된다.

영화에서 본 대로 ‘그냥 같이 가기’를 언제 한번 흉내 내고 싶었는데 그 행위 모방의 기회는 새해 벽두부터 찾아왔다. 작은 출판사를 운영하는 친구가 출판도매상 송인서적 부도로 피해를 입었다. 타격이 크다. 정유라 말 한 마리 값도 안 되는 돈이지만 책 한 권 낼 돈은 넘는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려고 집필 노동을 할 때, 친구는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들려고 편집 알바를 했다. 그 돈을 고스란히 날렸다. 며칠 뒤 국회에서 대책 마련 간담회가 열렸다. 출판인들이 많이 참석해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채권단이 된 처지가 처량해 가기 싫다는 친구를 나는 짐짓 심상하게 따라나섰다.

국회 간담회장엔 출판계 실상을 고하는 말들이 쏟아졌다. 출판계는 아직도 어음이 거래되고 그나마 문방구 종이어음이 사라진 게 불과 1년 전이라는 것. 책을 낸다는 이유로 최하위 신용등급을 받고 있다는 어느 출판사 대표의 증언. 출판업이 사양산업이라며 투자를 기피하고 게임이나 엔터테인먼트 산업만 육성했다는 질책. 무속신앙에 관한 책 안 팔리는 거 알지만 기록을 위해 만들었다고, 출판계가 무너지면 전통, 문화, 미래가 사라진다고, 대출금리 1%, 2% 논할 때가 아니라고 목청을 높이던 한 출판인은 복받치듯 외쳤다.

“우리가 거지입니까!”

옆자리 친구가 울컥 고개를 떨궜다. 건너편 한 출판사 대표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평생 목수로 일한 다니엘이 이리저리 떠밀리다 벼랑 끝까지 다다른 삶의 자리에서 ‘나는 거지도 게으름뱅이도 아니다’ 선언하듯이 책 만들기 외길을 걸어온 그들도 우리는 거지도 장사꾼도 아님을 목 아프게 이야기하고 있다. 당장에 무너지는 출판사를 붙들어 놓고 낙후된 출판유통 시스템을 바꾸는 구조적 대책을 세우길 요구했다.

가난한 출판인들 생살여탈권이 논의되는 운명의 극장을 돌아나오며 또 한 편의 영화를 본 기분이 들었다. 제목은 ‘나, 출판쟁이’. 최소한의 직업적 자부심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 일하는 사람을 종이컵처럼 쓰고 버리는 게 당연한 체제에서, 허기와 모욕에 꺾이지 않고 존엄을 지키려면 더 많이 선언하고 더 그냥 같이 다녀야 할 것 같다. “괜찮아. 네 탓이 아니야. 넌 엄마-출판인으로 잘 버텼어”라는 영화 속 명대사까지 외워서 건네면 더 좋고.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79625.html?_fr=mt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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