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지지 않는 한 사랑은 없다

[은유칼럼]


한 사람에게 다가오는 사랑의 기회에 관심이 많다. 이제껏 사랑을 몇 번 해봤느냐는 물음을 실없이 던져보기도 한다. 상대는 거의 머뭇거린다. 사랑과 사랑 아닌 것의 기준 설정부터 간단치 않은 거다. 내게 사랑은 나 아닌 것에 ‘빠져듦’ 그리고 ‘달라짐’이다. 우연한 계기로 엮여  서로의 세계를 흡수하면서 안 하던 짓을 하거나 하던 짓을 안 하게 되는 일. 연애가 그랬고 공부가 그랬다. 이전과 다른 삶으로 넘어가는 계기적 사건이 사랑 같다.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에는 내 어설픈 사랑 연구에 맞춤한 세 편의 이야기가 나온다. 각기 다른 세대의 이성애 커플이 등장하는 옴니버스식 구성인데 스토리가 촘촘하고 풍성하다. “우린 모두 각기 다른 얼굴이지만 사랑에 빠졌을 때만은 같은 얼굴이다”라는 극중 대사처럼, 그리스의 경제, 외교, 정치 조건에서 그들이 겪는 곤란은 다르지만 나이와 국적을 불문하고 사랑하는 모습은 닮은꼴이다.


청년 커플은 그리스 여대생과 시리아 이민자 남성이다. 경제 위기에 처한 그리스인들에겐 기근과 전쟁을 피해 흘러든 이방인은 불청객이다. 정치학을 전공하는 여대생은 수업시간 교수가 말하는 난민 문제에 집중하지 못한다. 그녀에게 난민은 토론 과제가 아니라 만져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민자 남자는 그리스인들 사이에 있을 땐 사회에 불안과 공포를 조성하는 혐오의 대상이지만 그녀와 있을 땐 시리아에서 태어난 순박하고 정의로운 예술가 청년이 된다. 인종이나 계급, 문화의 차이는 차별의 근거가 아니라 사랑의 동력으로 작용한다. 그들은 닥칠지도 모르는 불안에 미리 쪼그라들거나 위험을 계산해 행동하지 않는다. 늘 불안한 눈빛을 보였던 그는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변한다. 그녀 곁에선 천진한 웃음의 존재로 개화한다.


중년 커플은 파산 위기를 맞는 그리스 회사 직원과 그 회사의 구조조정 책임자로 온 스웨덴 여성의 사랑을 그린다. 하루하루 실적으로 평가 받는 마케팅 업무의 스트레스와 쇼윈도 부부 노릇에 지친 중년 남자는 공황장애 약을 먹으며 간신히 일상을 지탱한다. 왜 그런 약을 먹느냐며 남자의 나약함을 비웃는 그녀. 사랑에 빠지면서 숫자만 보이다가 ‘사람’이 보이기 시작하자 그녀의 냉정하고 빈틈없는 사고 체계에는 교란이 일어난다. 자본주의의 생리인 신속함과 무자비함을 요구하는 본사의 닦달을 못 이기고 업무를 포기한다. 그리고 그가 먹던 알약 로세프트 50mg을 삼킨다. 이제 남의 밥줄 끊는 일은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노년 커플은 그리스인 평범한 주부와 독일에서 이주해온 역사학자 남자다. 사랑이 잉태되는 공간은 마트. 그녀는 절박하다. 장바구니에 토마토 한 상자를 넣었다 뺐다 할 정도로 생활고가 극심하다. 아직도 싱크대 앞에서 ‘이게 내가 원하던 삶인가’ 한숨 쉰다. 이런저런 고민을 그에게 터놓는다. 서툰 영어로 더듬더듬. 마트 밖은 위험하다고 여기는 그녀를 남자는 신화의 세계로 인도한다. 그녀는 그가 선물한 두툼한 신화 원서를 읽고자 돋보기를 쓰고 영어사전을 편다. 혼자 힘으론 불가능한 말하기, 듣기, 읽기의 세계를 그의 꾸준한 도움으로 통과한 그녀는 자신이 목도한 부조리에 항의하는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자기 생각을 당당히 표현하는 사람이 된다.


이것이 사랑의 급진성이 아닌가.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사랑에 빠지기 그것은 곧 혁명’이라고 말하는 책 『사랑의 급진성』을 떠올렸다. 한 사람의 이민자가 혐오의 대상에서 환대의 대상이 되고, 해고하는 사람이 해고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공부하지 않던 사람이 공부하는 사람이 된다. “범상한 일상, 새로운 것은 무엇이든 생겨날 수 없게끔 사방에 켜켜이 쌓인 먼지의 단층에 하나의 균열이 생기는 사건”(12쪽)이라는 혁명의 정의대로, 영화 속 주인공들은 사랑이라는 ‘일인분의 혁명’을 완수한다. 한 사람이 바뀌면 세상도 약간 방향을 튼다는 점에서 그것은 역사적 사건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는 또 다른 주인공, 사랑에 무능력한 존재가 나온다. 극우 파시스트 조직에 가담해 유럽 난민에게 무차별한 테러를 자행하는 인물이다. 그는 시대의 불운으로 인한 자기 삶의 실패와 불만족을 이민자 같은 사회적 약자에게 투사하며 혐오의 일그러진 얼굴로 살아간다. 혐오를 뿌리고 혐오를 거두는 악순환의 고리에 갇힌다. 누구나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일상은 비슷할지 모르나 사랑의 있고 없음으로 훗날 다른 얼굴 다른 관계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그는 삶으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랑의 주체로 살아갈 수 있을까. 무엇이 사랑이고 무엇이 사랑 아닌가 하는 물음에 『사랑의 급진성』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위험 제로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19쪽) 성적 욕망으로 팽배한 현대사회지만 아이러니하게 사랑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한다며 자기동일성에 안주하는 현대인의 왜소함을 저자는 지적한다. “결과가 어떻든 간에 위험을 무릅쓰는 것, 이 숙명적인 만남으로 인해 일상의 좌표가 변경되리라는 점을 알면서도, 오히려 바로 그런 이유에서 만남을 갈구하는 것”(166쪽)이 사랑이다.


사랑에 빠지는 원인은 세 가지다. “첫째는 보는 것, 둘째는 듣는 것, 셋째는 연인의 후한 마음”(19쪽)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의 세 커플도 각각 낯선 사람에게 눈길을 건네는 사소한 행위로부터 사랑이 시작된다. 거기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시간과 정성을 후하게 쏟으며 사랑의 주체가 된다.


“사랑에 빠지지 않는 한 사랑은 없다.”(151쪽) 사랑은 특별한 지식이나 기술이 필요치 않다는 점에서 쉽고, 자기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점에서 어렵다. 그러니 사랑을 얼마나 해보았느냐는 질문은 이렇게 바꿀 수도 있다. 당신은 다른 존재가 되어보았느냐. 왜 사랑이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비활성화된 자아의 활성화가 암울한 현실에 숨구멍을 열어주기 때문이라고 답하겠다. 존재의 등이 켜지는 순간 사랑은 속삭인다. “삶을 붙들고 최선을 다해요.”(123쪽)


채널예스  http://ch.yes24.com/Article/View/33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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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키즈 존은 없다

[은유칼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강좌를 열었을 때다. 한 여성이 꼭 읽고 싶었던 책이라며 아기를 데리고 참가할 수 있는지 물었다. 생후 12개월 남아랬다. 두 마음이 다퉜다. 마음 하나. ‘공부하러 나와서까지’ 아이를 보고 싶지 않다. 내게 아이란 존재의 훼방꾼, 공부의 대립물이었다. 책 한 줄 보겠다고 아이의 숙면을 얼마나 애태웠던가. 마음 둘. 아이를 달고서라도 ‘공부하러 나가고픈’ 그 여성의 열망은 불과 얼마 전까지 내 것이기도 했다. 외면하면 반칙이다.


일기일회(一期一會). 평생 단 한 번의 기회라는 마음으로 결정했다. 학인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사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우리는 공부한다. 아기라는 불편한 존재를 배제가 아닌 관계의 방식으로 우리 삶-공부에 들여 보자고. 문제가 생기면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아기는 온순했다. 기적처럼 두세 시간을 내리 자기도 했고 엉금엉금 기어다니며 필기구를 잡아당기기도 했다. 간혹 수업이 끊겼지만 여느 수업의 흐름을 벗어나진 않았다.


영유아와 함께 수업이 가능하다는 선례와 신뢰는 그렇게 생겼다. 엄마의 시도, 동료의 협조, 아이의 견딤. “남편이 일찍 온다고 해놓고 늦어서요” “맡길 곳이 없어서요” 요즘도 가끔 아이를 데려가도 되는지 엄마들은 문의를 하고 아이들은 장학사처럼 수업에 슬그머니 들어온다. 또한 곁에 없다 뿐 전화로 수업에 끼어들기도 한다. 엄마 학인은 주로 강의실 ‘문간’에 앉는데 아이에게 긴급한 연락이 오면 튀어나가 전화를 받기 위해서다.


이 육아·공부 병행의 난리통에서 난 외부자였다. 공부하는 여성들의 분투를 지지하고 조율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도 긴급 호출이 왔다. 군에 간 아이의 전화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제가 걸 순 없고 오는 전화만 받을 수 있거든요. 문자도 안 되고….” 일이분가량 수업 중단을 초래한 나는 일이분 정도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누가 뭐라지 않아도 저 혼자 목소리가 기어들어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스무살 넘은 군인 ‘아이’ 때문에 양해를 구하게 될 줄이야. 도대체 인간은 언제 어른이 되는가.


사람답게 살기 위해 공부하지만 공부하면서 사람답게 살기는 퍽 어렵다. 공부든 일이든 하나의 목적성에 갇힌 사람은 앞만 본다. 관계를 놓치고 일상을 망친다. 내 경우 그 자기모순에서 헤어나오도록 도운 건, 무력한 아이다. 틈만 나면 떼어버리고 싶었지만 떼어지지 않는 성가신 존재가 복잡한 삶의 문제를 회피하지 않도록 환기시켜준 것이다.


‘노 키즈 존’이란 말을 보고 철렁했다. 개인의 시간과 공간이 침해당하지 않을 권리를 내세우며 식당이나 카페에서 아이들 출입을 금한다는데 그 논리가 옹색하다. 우리는 누군가의 시공간을 침해하면서 어른이 됐다. 여전히 힘 있는 어른들은 자기보다 약자의 시공간을 임의로 강탈하면서 자기를 유지한다. 왜 아이들을 대상으로만 권리를 주장할까. 그래도 되니까 그럴 것이다. 나 역시 양육의 책임을 나누지 않는 어른(배우자)에게 가야 할 원망이 애꿎은 아이에 대한 부정으로 나타나곤 했으니까.


인간 사회는 민폐 사슬이다. 인간은 나약하기에 사회성을 갖는다. 살자면 기대지 않을 수도 기댐을 안 받을 수도 없다. 아기를 안고 공부에 나선 엄마처럼 폐 끼치는 상황을 두려워 말아야 하고 공동체는 아이들을 군말 없이 품어야 한다. 배제를 당하면서 자란 ‘키즈’들이 타자를 배제하는 어른이 되리란 건 자명하다. 건강한 의존성을 확장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서만 우리는 관계에 눈뜨고 삶을 배우는 어른이 될 수 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95467.html?_fr=mt5#csidx686b75dac6a85a0bcf25b75e560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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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인 - 끼니와 끼니 사이에 명령과 복종이 있다

[은유칼럼]

'패스트푸드로 버티는 아이들.’ 인터넷 포털 화면에 뜬 기사다. 학원 시간에 쫓겨 5분 만에 허겁지겁 컵라면을 먹는 아이들 모습과 서울 대치동 일대 편의점·패스트푸드점 풍경을 스케치했다. 학원 다섯 곳을 다니고 과외 두 개를 한다는 한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이런 생활’을 했다고 증언한다. 역시 ‘이런 기사’의 마무리는 전문가 의견. 라면과 패스트푸드가 성장에 지장을 초래하니 채소나 과일 위주의 식단을 규칙적으로 섭취하라고 식품영양학 교수는 충고했다.


내가 전문가라면 일몰 이후 학원을 금지하고 아이들의 식사권과 수면권 등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을 텐데. 아니다. 실은 남 얘기가 아니다. 중3인 딸내미도 일주일에 두 번 수학 학원에 간다.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가 되기는 아직 이르다는 본인의 선택이다. 방과 후에 주먹밥이나 과자를 사먹고 밤 8시에 학원을 마치면 집에 와서 늦은 저녁을 먹는다. 나는 부랴부랴 돈가스 튀기고 국을 데워 늦은 끼니를 대령하면서도 나쁜 현실의 공모자가 된 듯해 착잡하다. 그것도 그때뿐. 월·수·금 오후 4~5시에 집에 와서 뒹굴거리면 또 그것대로 심란하다. 월화수목금금금 학원에서 시험에 단련된 아이들과의 성적 격차가 벌어지는 건 빤한 일이기에 그렇다.


남편이 목동의 학원이 밀집된 건물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했다. 학원 교사와 원생들이 주 고객이고 밤 10시부터 새벽 2시에 몰린다고 한다. 아이들이 새벽 1~2시에 교습을 마치고 와서 도시락이나 라면을 먹는데, 고3 수험생만 있는 게 아니라 중학생도 꽤 된다고. 아이들이 매일 같은 시간에 와서 같은 종류의 밥과 음료수를 사가니 나중에는 얼굴과 메뉴가 외워지더란다. 


심야 고속도 아니고 어쩌다 심야 학원이 생겼을까. 어른으로 치면 부실한 저녁 먹고 매일 야근하는 회사에 해당한다. 수당이 없는 야근이다. 아직 성장판도 닫히지 않은 10대 아이들이 제때 먹지도 못하고 시멘트 건물 형광등 불빛 아래 종일 묶여 있다니, 늘 그래왔으니까 익숙하지만, 익숙하다고 정당화되는 건 아니다. 심야 학원은 아무리 봐도 기괴한 풍속도다.


그즈음 <먹는 인간>을 읽었다. “고매하게 세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감에 의존해 ‘먹다’라는, 인간의 필수 불가결한 영역에 숨어들어 보면 도대체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347쪽).” 저자 헨미 요는 이 질문을 안고 탐식의 나라 일본을 떠나 세계 15개국을 누빈다. 독일 감옥을 방문해 수감자들의 밥을 먹고, 방글라데시에서 음식 찌꺼기를 사먹는 빈민들을 보고, 필리핀 산속에서 인육을 먹은 태평양전쟁 시기의 일본 잔류 병사들 얘기도 현장에서 검증한다. 대한민국 편도 있다. 청학동에서 예절의 맛을 음미하고,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에게 비통의 맛에 관해 듣는다.


“그 세계에는 ‘끼니와 끼니 사이’라는 것이 있었다. 아침 8시에 식사를 마치면 일반 병사들이, 오후에 점심을 먹고 나면 하사관들이, 저녁 식사를 끝내면 장교들이 찾아왔다. 병참부 군인들이 가져오는 퍼석퍼석한 밥과 된장국, 단무지를 미쓰코 같은 여자들이 허겁지겁 먹고 나면 끝도 없이 그것이 시작되었다(330쪽).”


한 존재를 ‘먹는 인간’으로 바라보면 아릿함이 더해온다. 전쟁이나 재난이든 일상이든 사람은 무릇 “허겁지겁 먹고 나면 끝도 없이 행해야 하는” 그것을 수행하고 산다. 먹는 일은 때론 위안이고 때론 치욕이다. 저자가 최근에 이 책을 썼다면 청학동 대신 대치동을 가지 않았을까. 아이들에게 밥버거의 맛을 물어보면 독일 감옥의 수감자처럼 말했겠지. “맛있지도 않고 맛없지도 않지(105쪽).”


끼니와 끼니 사이 벚꽃이 난분분한 봄날, 딸아이는 말한다. “벚꽃 꽃말이 중간고사래.” 해마다 벚꽃 시즌이면 다가올 중간고사에 대비해야 하는 중·고등학생들 처지를 빗댄 말이다. 꽃을 놓치고 밥을 거르며 자란 아이들 몸에 무엇이 남을까. 패스트푸드에 길들여지는 것은 자발적 자기 착취에 길들여진다는 것이고 명령과 복종의 속도에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먹는 인간’으로서 아이가 통제의 맛에 길들여지느니 부모가 초라한 성적표에 길들여지는 게 백번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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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의 다가오는 것들 - 인공자궁을 생각함

[은유칼럼]

        “저 엄마 왜 울어?” 

        “몰라. 아까부터 울더라.”


간호사들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가 멀어진다. 새벽 4시 32분 아이를 낳고 나는 분만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예닐곱 시간 산통 끝에 몸통은 거죽만 남은 듯 너덜너덜했다. 혀가 껄끄러워 입 안에 손가락을 넣었는데 노란 모래 가루 같은 입자가 묻어나왔다. 물 좀 달랬더니 간호사가 적신 거즈를 준다. 그걸 입술에 대고 있는데 눈물이 흘렀다. 무슨 스위치를 켠 것처럼 느닷없고 하염없이. 흐느낌도 통곡도 아닌 조용한 눈물의 방류를 간호사들이 본 모양이다.


이렇게 아픈데 엄마는 오빠를 낳고 어떻게 나를 또 낳았을까. 첫 아이 출산 때 정신이 돌아오고 처음 든 생각이다. 몸을 초과하는 통증에 몸서리쳤다. 그래 놓고 나는 또 둘째를 낳은 것이다. 동이 트자마자 남편이 양가에 전화를 드렸고, 엄마는 아침 7시 병실 문을 열고 뛰듯이 들어왔다. 침대에 누워 있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얼굴 근육이 제멋대로 실룩거리던 엄마. 왈칵 눈물을 쏟으며 말한다. “고생했다. 애 낳는 게 얼마나 아픈데…”


삼칠일이 지나 산후도우미 아주머니가 가고 남편은 회사 일로 바쁘고 혼자 남겨졌다. 밤낮으로 두 아이 사이를 오가며 쩔쩔매던 어느 날, 아이를 재워놓고 방문을 닫는데 아이가 뒤척였다. 다시 토닥토닥하고 재우면 또 깨고 그러길 수차례. ‘잘 자라 우리 아가’를 입으로는 흥얼흥얼 등을 두드려주는데, 빨리 자라 좀 제발 하면서 손에 힘이 들어갔다. 등짝을 세게 한 번 내리쳤다. 손바닥에 꽉 차는 조그만 등의 느낌. 후끈했다. 그런 난폭함이 내 몸 어디에서 나왔는지 놀랐고 더 놀란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었다.


“아이는 분유도 이유식도 거부했다. 끼니마다 전쟁이 벌어졌다. 제발 한 입만 먹어라, 제발. 애원은 분노로 바뀌었다. 나는 분노에 못 이겨 소리를 지르며 손에 잡히는 대로 벽에 던졌다. 아기는 놀라 비명을 지르며 울었다. 모든 게 지옥이었다.” 

한 여성이 산후우울증을 호되게 앓았던 경험을 글쓰기 수업에서 발표했다. 저 대목에서 멈칫, 까맣게 잊고 있었던 오래 전 화의 기운이 나를 덮쳤다. 행여나 들킬세라 과제물에 시선을 두었다. 낭독이 끝나고 고개를 들었더니 세상에나, 여기저기서 훌쩍훌쩍 손으로 눈물을 찍어내고 휴지를 꺼내 코를 푼다. 각기 다른 연령 대 여성들이 운다. 침묵을 깨고 한 명이 말문을 열었다. “남들은 척척 해내는 육아가 나는 왜 이렇게나 힘이 들까.” 이 문장이 특히 공감이 간다고, “그 말을 저는 남편에게 들었어요”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날 수업을 마치고 가는 길, 이 집단적 슬픔의 광경이 떨쳐지지 않았다. 지금도 육아의 고통을 자신의 모성 부족으로 탓하며 속울음 삼키는 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내 안의 폭력 성향이 불쑥 나타날 때 어떻게 잠재울까. 문득 엄마들을 모아서 ‘봉기蜂起’를 일으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충동적으로 페이스북에 봉기 단상을 올렸고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이토록 고된 육아를 불평 한마디 없이 묵묵히 수행한 선배 엄마들에 대한 원망, 육아로 인한 일상의 압박과 인격의 왜곡에 대한 토로가 족자처럼 펼쳐지는 와중에 한 줄 의견이 외롭게 버티고 있었다. ‘저도 봉기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내가 구상하는 봉기는 단순하다. 벌떼처럼 모여서 윙윙윙 떠들기다. 자기 공격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다른 해석이 필요한 법이니, 내 목소리를 내보내고 내 삶에 다른 목소리가 흘러들게 하는 것이다. 육아의 기쁨만큼이나 슬픔을, 어린 생명이 주는 충만함만큼이나 자멸감을 저마다 말하기만 해도 자신이 비정상이 아님을 알고 적어도 자기 억압의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나는 또 엄마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면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의 『성의 변증법』을 펼쳐서 읽어주고 싶다. 그간 젠더 불평등은 근원적으로 해소될 수 있을지 난 회의적이었다. 그러니까 아무리 깨인 남자, 페미니스트 배우자를 만나더라도 여자의 몸에서 임신과 출산이 이뤄지는 한 양육에 따른 최종 책임은 마치 자연의 섭리처럼 여자에게 귀속되더라는 것이다. 여자의 몸이 무거워지는 순간 필연적으로 삶도 무거워진다. 비출산 경향도 그걸 인지한 여성들의 선택일 거다. 이에 대한 여성의 구제 방안을 『성의 변증법』 이 제시한다.


“남자는 땀 흘려 일하고 여자는 고통과 산고를 참아야 하는 이중 저주는 처음으로 인간적 삶을 가능하게 하는 테크놀로지를 통해 해소될 것이다.”(292쪽) 저자가 말하는 테크놀로지는 인공 생식의 완전한 발달을 뜻한다. 즉, 인공 자궁에서 태아를 잉태함으로써 남성도 임신과 출산이 가능해지도록 하자며 “모든 가능한 방법을 통하여 여성을 생식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키고 양육의 역할을 여성뿐 아니라 남성, 즉 사회 전체로 확산시킬 것.”(294쪽)을 요구한다.


스물다섯 살의 저자가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이 급진적 주장에 처음엔 놀랐지만 읽을수록 빠져들었다. 시험관 아기처럼 인공 자궁을 통한 임신과 출산이 가능한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인류의 반이 그들 모두의 아이를 낳고 길러야 한다”(293쪽)는 것에 근본적인 회의와 물음을 던진 점, 피임법이 개발되기 전 계속되는 출산으로 여성들이 끊임없는 부인병, 조로, 죽음을 겪는 현실의 단절을 꾀한 점, 온갖 지력과 상상력을 동원해 대안을 제시했다는 사실이 귀하게 다가온다.


         『성의 변증법』은 1970년에 발간됐다. 40년이 흐른 지금, 남성 양육 역할 확대는 남성 육아휴직제로 논의, 실천되고 있으니 파이어스톤의 ‘혁명적 요구’가 비현실적인 대안이라고만 일축할 수 없다. 이 책을 통해서 나는 자기가 처한 상황을 고정 불변의 현실로 여기지 않고 다른 삶을 그려보는 태도를 배웠다.


가끔 생각난다. 분만실 침대 위에서 천장의 사나운 형광등 불빛에 시선을 고정한 채 눈물짓던 내 모습이. 귓속에 흘러들던 미지근한 눈물이. 무에 그리 서러웠을까. 애 낳은 게 뭐 대수라고 ‘저 엄마는 왜’ 눈물 한 바가지 흘리는지 나도 잘 몰라서 더 서글펐다. 그런 내게 “임신은 야만적이다. (…) 임신은 종을 위하여 개인의 육체가 임시로 기형이 되는 것이다”(287쪽)라는 말, 자연분만의 신화화를 비판하는 문장은 구원 같았다.


그날 나는 여자의 몸에서 발생하는 고통, 임신 출산 육아로 이어지는 외로운 노동을 딸에게 고스란히 대물림한다는 사실이 아득하고 미안했던 것 같다. 엄마가 몸을 푼 나를 보자마자 울었듯이 나 역시 막 탯줄 끊어낸 딸에게 본능적으로 눈물을 바친 게 아닌가 싶다. ‘생식의 기계화’를 주장하는 극단적이고 급진적인 언어가 내 초라한 눈물의 이유를 밝혀주었다. 그러니 점점이 흩어져 홀로 고행하던 여성들의 입술이 말할 때, 나만 힘든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공유할 때, ‘고통의 언어화’로 자기 억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면 엄마들의 봉기는 인공자궁에 버금가는 혁명이 되지 않을까 나는 상상한다.




- 채널예스 '은유의 다가오는 것들' 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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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의 수만큼 우리는 돈을 번다

[은유칼럼]
개강 후 두 번째 수업에 과제 발표자가 결석했다. 과제 부담일까, 개인 사정일까. 궁금한 마음에 전화기 버튼을 눌렀다. “저, 오늘 안 오셔서 연락드렸어요.” “네? 지난주에 수강 취소하고 환불받았는데요.” 예기치 못한 답변에 당황한 나는 전달을 못 받았다며 얼버무리고 끊었다. 문자로 남길 걸 괜히 전화했나. 불편한 상황을 만든 나 자신을 책망했다.

그날 전화를 끊고 수업을 잘 마쳤다. 집에 가는 길, 얼마 전 통신사 해지방지팀에서 일하다가 자살한 현장실습생이 떠올랐다. 취소·환불이란 말들이 귓속으로 여과 없이 파고드는 따가운 경험. 나는 20초 정도의 짧은 통화였는데도 가슴에서 휑한 무엇이 자꾸 올라왔다. 만약 그게 온종일 해야 하는 일이라면 그 사람의 삶은 어떻게 될까. 더구나 경험의 군살이 붙지 않았을 열아홉 살 사회 초년생이라면 말이다.

미국 빈민 여성의 생존기이자 노동 르포르타주인 <핸드 투 마우스>의 저자 린다 티라도는 말한다. “나는 내 상처의 수만큼 돈을 번다(49쪽).” 베이고 데는 상처만 뜻하는 게 아니다. 짜증, 분노, 무시 같은 것도 독처럼 쌓여서 영혼을 부식시킨다. 필자는 병원에 가면 ‘스트레스를 줄이라’는 처방이 내려지곤 한다며 말한다. “의사들은 잠을 잘 자고 잘 먹으라고 환자에게 말하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마치 그게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인 것처럼(88쪽).”

ⓒ윤성희
4월12일 서울 동대문종합시장에서 한 지게꾼이 원단을 짊어지고 운반하고 있다.

늘 단순한 상황 판단은 타인의 구체적 처지에 대한 고려 없음에 기반한다. 나도 전적이 있다. 큰애 세 살 즈음 육아로 후줄근해진 내 청춘을 보상받기 위해 옷을 샀다. 단정한 모노톤 셔츠였다. 여름철이라 한 번 입고 세탁소에 맡겼다. 일주일 넘게 감감무소식. 세탁물 수거하는 직원에게 문의했더니 이동 중에 분실했단다. 이튿날 그 직원은 5만원을 내밀었다. 옷값의 절반이다. 그러곤 사장에게 분실 건을 말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개인 부담으로 배상을 받는 게 영 찜찜했지만 새 옷을 잃은 속상함에 묻혀 금세 잊었다.

몇 년 후, ‘뭐라도 좋으니’ 일해야 했을 때, 자유기고가로는 수입이 불안정해 친척 회사의 경리 업무를 도왔다. 6개월가량 서울 동대문종합시장 매장을 드나들었는데 그곳은 이전에 쇼핑하러 갈 때와는 다른 장소였다. 민속촌에서나 보던 지게에다 돌돌 만 원단을 가득 쌓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늙은 지게꾼을 목도했다. 복도에는 보험회사 전단을 나눠주는 사람, 커피와 음료를 배달하는 사람들이 오갔다. 길가로 나오면 오토바이 택배 기사가 십자가처럼 원단을 지고 위태로운 질주를 했고, 지하철 입구에선 아주머니가 빠른 손놀림으로 전단을 안겼다.

<핸드 투 마우스>
린다 티라도 지음
김민수 옮김
클 펴냄
세상은 노동하는 육체의 전시장! 그때 불쑥 그 세탁소 직원이 떠올랐다. 나는 어떻게 했어야 옳은가. 그의 과실이지만 고의 과실은 아니다. 피해보상 규정 같은 노동자의 보호책을 마련하지 않은 고용주, 합리와 효용의 잣대로 따지는 깐깐한 소비자, 그 사이에서 가장 약자인 피고용인이 피해를 입었다. 내가 ‘챙긴’ 5만원이 그의 식비이거나 노모의 약값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부끄럽고 후회스럽다.

딱히 소비자 권리를 내세운다기보다 자기중심으로 사고하고 내 몫 지키기에 급급했다. 대안공동체에서 공부할 땐 인문학 소비 풍토를 비판했다. 문화센터 같은 즉자적인 지식 거래가 아닌 다른 관계, 다른 속도, 다른 일상을 발명해야 한다고 그럴듯한 말로 열을 올리기도 했다. 그게 평생 견적이라는 걸 몰랐다. 나는 소비자이면서 노동자라는 다층적 위치성에 대한 실감이 모자랐다. 이제 목표는 소박해졌다. 일상에서 부딪치는 이들의 유니폼 너머, 표정 너머, 계산 너머 삶의 면모를 그려보기. 잘 자고 잘 먹는 사람이 드문 세상이니만큼 이 책의 저자처럼 “나는 사람들이 생계로 삼는 일을 더 힘겹게 하지는 않겠다는 원칙을 고수하려고 애쓴다(2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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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창 - 화장하는 아이들

[은유칼럼]
교실에 들어가니 아이들이 파우치를 꺼내놓고 입술연지를 바르거나 파우더를 두드린다. 헤어롤을 말고 있거나 셀카에 열중하는 아이도 보인다. 글쓰기에 관심 있는 고등학생 30명이 모인 자리니까 시집이나 만년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적 없지만, 책상을 점령한 의외의 사물에 놀란 건 사실. 이 신세계 구경에 어리둥절한 내게 담당 교사는 귀띔했다. 대다수 아이들을 ‘교칙 위반자’로 만들 수 없다는 교장의 용단에 따라 화장 금지 조항을 없앴다고. “아침에 화장 못 하고 출근하면 애들한테 빌려 써요” 하며 웃는다.

비슷한 시기에 대안학교 학생들을 만났다. 교사와 학생의 토론 끝에 교내 화장 금지로 결정이 났단다. 화장하는 것과 공부하는 것이 대립 관계가 아니다, 화장을 하면 내가 다른 사람이 된 거 같아 기분이 좋다는 내용의 과제물을 한 학생이 제출했다. 그 글에 다른 학생이 동조했다. “십대는 화장 안 해도 예쁘다는 어른들 말은 이상해요. 사실 화장하면 더 예쁘잖아요?”

귀가 반짝 열렸다. 정말 그런가 싶어 떠올려 보았다. 화장한 얼굴은 해님같이 쨍하다. 화장기 없는 얼굴은 햇살처럼 퍼진다. 또렷함과 은은함의 차이, 같은 신체 다른 표현이다. 근데 나는 왜 교복 입은 아이들은 맨얼굴이 낫다고 믿었을까. 자연에 대한 낭만적 이상화 같은 건가. 생각해 보니 생각 자체가 없었다. 크는 동안 어른들에게 들어온 익숙한 말들을 내가 어른이 되어 아이들에게 적용한 것뿐. 대개의 선악 판단이 그러하듯 낯섦에 대한 저항, 익숙함에 대한 옹호일 따름이다.

딸내미는 열여섯살이다. 얼마 전 생일엔 립글로스와 마스크팩을 선물로 받았다. 앞머리를 목숨처럼 여겨 헤어롤을 가방에 부적처럼 넣고 다니는데 아직 화장은 하지 않는다.(밖에서는 하는지도 모름) 고등학생이 되면 입술색도 짙어지려나. 10년 후쯤엔 직장을 나가면 아마 지하철에서 허둥지둥 손거울 들고 눈썹을 그리는 민폐녀가 될 수도 있겠다. 중년엔 지체 높은 신분이 되어 실수로 헤어롤을 매단 채 회의에 나가면 일하는 여성의 애환을 보여준 미담의 주인공이 될지도.

아이들 말대로 어른들은 이상하다. 화장과 관련한 일련의 삽화들을 떠올려보니 일관성이 1도 없다. 십대의 강을 건너는 순간 여자의 민낯에 대한 평가는 순수의 상징에서 무례의 표시로 뒤바뀐다. 화장이 부덕에서 미덕이 되는 기준은 무엇이고, 누가 정하는지 알 수 없으나 당사자인 여성의 욕망과 목소리는 애초부터 배제된다. 묻지 않고 듣지 않고. 화학 물질이 아이들 피부에 해롭기에 화장을 금한다는 말도 궁색하다. 이 미세먼지 나쁨의 나라를 건설한 어른들이 말이다.

이상한 어른 일인으로서 반성한다. 갑갑한 교육 현실, 세상은 못 바꾸고 화장으로 자신을 바꾸겠다는 주체적인 아이들을 잠시나마 힐끔거렸다. 내면과 외면의 아름다움을 분류하는 자체가 기성세대의 문법이다. 그것도 낡은. 너희들은 육체의 좋음에 무능하여 영혼의 좋음을 최상으로 추구하는 게 아니냐고 니체라면 일갈했을 것이다. 좋은 화장품 사주든가, 해로운 화장품은 만들지 말고 팔지를 말아야 한다. 그게 어른의 일이다.

꾸준한 행동으로 분가루 냄새 약동하는 교실 풍경을 일궈낸 아이들, 화장을 하는 이유를 또박또박 주장하고 어른들의 두서없는 논리와 간섭을 반박하는 아이들, 나탈리 크나프가 정의한 대로 “인생의 지혜에서 아직 멀어지지 않은” 이 존재들에게 화장권이 널리 허용되길. 화장할 권리와 투표할 권리는 멀지 않아 보인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91757.html?_fr=mt5#csidx5ef57463832a4e797c7f8ebf50f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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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 슬픔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은유칼럼]

군에 간 아이가 휴가를 나왔다가 들어간 다음 날, 빨래를 개키다가 멈칫했다. 아이가 입던 양말이랑 팬티가 손에 잡혔다. 사람은 가고 없는데 옷가지만 남아 있는 게 영 이상했다. 당분간이겠지만 임자 없는 옷들. 그것을 만지작거리다가 나는 ‘최초의 빨래’를 생각했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처음 돌아간 세탁기에서 나왔을 옷들. 아이가 수학여행 가기 전 벗어놓은 허물들. 그것을 빨고 말리고 개켜도 입을 사람이 더는 없음을 알았을 때, 참사 이전의 일상을 완강하게 간직한 그 옷들은 다시 젖어가지 않았을까.


살다가 슬퍼지는 순간이면 자동 연상처럼 세월호가 떠오른다. 정확하게는 세월호 유가족 인터뷰집 『금요일엔 돌아오렴』의 문장들이 생각난다. 내 평생 목도한 비참의 총화, 그 불가해한 사건의 실체를 나는 이 책으로 이해했다. 번호가 매겨진 희생자가 아닌 한 명 한 명 아이들이 어떤 이름을 가졌는지, 하루아침에 자식을 잃었다는 건 어떻게 실감하는지, 슬픔이 정수리까지 꽉 찬 몸으로 살아가는 일상은 얼마나 휘청이는지, 대체 어떤 사건이 일어난 건지 부모들은 소상히 들려준다.


“전화로 미지 엄마한테 속옷서부터 팬티까지 얘기했지. ‘겉옷은 무슨 색인데 이게 맞냐’ 그랬더니 ‘맞다’. ‘속옷은 땡땡이 입었는데 이거 맞냐’, ‘맞다’. ‘팬티는 줄무늬에 뭐가 있는데 맞냐’, ‘맞다’”(54쪽) 미지 아버지 유해종 씨는 사고 한 달 만에 속옷 무늬로 딸의 시신을 찾는다. 죽은 아이를 확인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물. 무늬도 색깔도 크기도 제각각인 속옷은 아이의 몸과 취향의 고유성을 나타내는 표지이자 엄마와의 내밀한 연결을 매개하는 유품이 된다. 아마도 미지 어머니는 일 인 분만큼 줄어든 빨랫감에서, 보이지 않는 땡땡이 무늬의 속옷에서 딸의 부재를 두고두고 실감할 것이다.


소연 아버지 김진철 씨는 아이가 세 살 때부터 “도둑질만 안 하고” 다 해가며 홀로 아이를 키운 한 부모 가장이다. 세상에 딸하고 나 둘만 남겨졌는데 잃은 그 아이, 딸의 장례를 치르고 집에 왔을 때 소포가 와 있었다. “풀어보니 소연이가 인터넷으로 산 책들인듸 소설책과 참고서였어유. 그걸 보고 엄청 울었네요. 그 책들을 샀을 때는 열심히 살려고 그런 거 아니여유. 근디 죽어버렸으니 얼마나 기가 막혔겄시유.”(96쪽) 


그 책들은 결국 딸의 친한 친구에게 주었다고 나온다. 짧게 언급된 한 줄 문장. 나는 그 행간에 오래 머물렀다. 너무 빨리 간 아이의 너무 늦게 도착한 책들을 안고 오열하는 아버지.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고, 책들을 건네주고, 살아 있는 딸의 친구를 보면서 부러움에 눈물짓고 소주를 들이켜다 쓰러져 잠들었을 아버지의 동선을 끝말잇기 하듯이 더듬더듬 그려보았다. 유통기한 없는 슬픔의 효소는 얼마나 오래 아버지의 술잔을 채웠을까.


“애가 좋은 데 간다”는 스님의 조언에 따라 호성 어머니 정부자 씨는 아이의 노트며 가방을 그대로 태웠다. 그런데 신발은 아이가 수학여행에 다 신고 가버리는 바람에 남은 게 없었다. “없어서 하나 사서 태워줬다.”(126쪽) 왜 그리 구질구질하게 살았는지 모르겠다며 엄마는 가슴을 친다. 죽은 아이의 신발을 버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 사기도 해야 한다는 것을 난 이 책에서 처음 알았다. 슬픔은 이토록 개별적이고 구체적이고 성가시고 집요하고 난데없다. 예습과 추론이 불가능하고 복습과 암기로 공부해야 하는 과목이다.


나는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글쓰기 수업 교재로 자주 쓴다. 한국사회 모순과 부조리를 보여주는 사회학 교과서이자, 삶을 질문하게 하는 철학서, 인간의 고통과 슬픔을 다루는 문학 작품으로 더없다. 이 책을 언급하면 거의 똑같은 반응이 나온다. 사놓고 엄두가 나지 않아 ‘아직’ 안 읽었다며 뒷걸음질 친다. 용기 내어 읽고 나면 눈빛이 단단해진다. 어떤 학인은 이렇게 썼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아픈 사람들의 마음을 전혀 알려고도, 소통하려고도 하지 않은 무소통‧불통의 인간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스컴에서 보도되는 대로 믿어왔고 세월호를 인양하는 것이 국세 낭비라고만 생각했었다. 이미 떠나간 아이들이 뭐 건진다고 달라질까? 아이를 잃은 슬픔이 어떤 건지 아이를 기르고 있는 입장에서도 전혀 공감하지 못했던 것이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은 평범한 사람들의 각성과 저항의 서사로 빛난다. “아이랑 함께 했던 공간과 시간을 아이 없이 모두 다 새로 시작해야 한다”(213쪽)는 사실에 인생 초보가 된 사람들. 행동 양식의 초기화는 의식화로 이어진다. 세월호 사건이 “동네 저수지에 사람 하나 빠졌을 때보다 못하다”(291쪽)는 사실을 알아챈다. “뉴스가 진실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26쪽) 물론 “처음부터 투사가 되어 이걸 밝히고 말거야라는 생각으로 뛰어든 부모는 한 명도 없다.”(157쪽) 


        제훈 어머니 이지연 씨는 교육열 높은 엄마였다. 아이의 뇌기능에 좋게 모차르트 음악을 틀어주고 영어를 일찍 접하게 하고 학원 스케줄을 관리했다. 저만 삐뚤어지지 않고 열심히 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한참 슬픔에 젖어 있던 무렵에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딸과 아들을 잃은 부모를 만났고 위로를 받았다며 말한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껴안는다는 거 그전에는 전혀 생각 못했어요. 내가 경험하지 않았다고 모른 체하고 살았던 게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329쪽)


         전국으로 간담회를 다니는 세희 아버지 임종호 씨는 “우리 자식 물에 빠져죽지 않게 수영 가르쳤다”는 학부모들 이야기를 들으면 안타깝다. “개인이 노력해서 수영 잘 해서 될 게 아니잖아. 왜 법이 만들어져야 하는지 말하는 거지. 그런데 사람들이 자기 자식 일이라고 생각 안 해요. 소를 잃어본 사람이 외양간을 고치지, 소가 멀쩡하게 있는 사람은 모르더라고.”(276쪽)


         얼마 전 인천에서 여덟 살 아이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아이가 친구와 놀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휴대폰을 빌리러 한 여성을 따라간 뒤 봉변을 당했다. 엄마들 사이에서 충격이 컸고, 아이에게 핸드폰을 사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자식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젊은 엄마에게 난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권했다.


나는 과연 소가 멀쩡하게 있는 사람인지, 멀쩡함의 기준이 되는 시기와 조건은 무엇인지,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싶은지 자기 욕망과 세계관에 질문을 던지는 책. 핸드폰을 지니거나 생존 수영을 배우기처럼 내 자식만을 위해서는 내 자식을 위할 수 없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책. 이 책의 첫 장을 넘기는 게 자기 슬픔과 불안을 직시하고 외양간을 고치는 일의 시작이 되리라 믿는다.


* 채널예스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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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노동은 일흔 넘어도 계속된다

[은유칼럼]

“여자는 박쥐나 올빼미같이 살며 짐승처럼 일하다가 벌레처럼 죽는다(마거릿 캐번디시).” 장송곡 같은 인용문으로 시작된 글을 읽어나간다. “남자 셋을 부양하기 위해 컴컴한 새벽길을 나서는 일이 서럽고, 아무도 눈 맞춰주는 이가 없는 낯선 건물을 닦고 화장실을 청소하는 일이 고됐을 것이다.” 엄마의 신산한 노동은 일흔이 넘도록 끝나지 않는다. 


오십 대 딸이 인터뷰한 엄마 이야기다. 나는 글쓰기 수업에서 학인들이 써오는 부모님에 관한 글을 읽으며 ‘남자는 돈 벌고 여자는 살림한다’는 가부장제 성별 분업 구도가 허위는 아닐까 자주 의심한다. 자식들 증언에 의하면, 아버지가 생계를 맡았지만 온전히 책임지지 못하곤 했다. 엄마는 식당 아줌마로, 목욕탕 매점 이모로, 백화점 의류판매원으로, 똥 치우는 간병인으로 일했고, 농사짓거나 장사했다. 그러고도 당연히 살림까지 도맡았다. 


작년에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를 인터뷰했다. 일곱 명을 만났는데 그중 여성 피해자가 두 명이다. 김순자씨는 결혼 후 잦은 외도로 ‘집 나간’ 남편을 대신해 보험설계사로 일하며 생계를 꾸리다가 간첩조작 사건에 연루돼 5년 옥살이를 마치고는 여관 청소와 식모살이를 전전했다. 삼 남매를 혼자 키웠다. 박순애씨는 당시로는 드물게 대학 교육까지 받았으나 12년 수감 생활 끝에 경력단절 여성이 되었고,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파출부뿐이었다. 


남성 피해자들도 투옥과 낙인으로 생활고가 심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 그 가장 노릇의 빈자리를 채운 것도 아내인 여자였다. 반찬가게나 분식점을 차려 다리가 퉁퉁 붓도록 일했고, 십수 년 생선 행상으로 자식들 공부 뒷바라지부터 남편 옥바라지까지 묵묵히 해냈다. 광주리를 하도 이고 다니는 바람에 정수리 머리카락이 다 빠졌다며 “눈물 흘려서 한강수 되고 한숨 쉬어서 동남풍 된다”라고 말하는 피해자 아내의 사연을 역사는 기록하지 않는다. 

ⓒ연합뉴스

나의 주변에서 대강만 추려도 이 정도. 여성 노동 잔혹사가 고구마줄기처럼 끝도 없이 나온다. 앞치마 두른 전업주부는 드라마나 CF에서 나올 뿐 현실에서는 드문 거 같다. 여성의 노동은 왜 기록되지 못했을까. 나부터도 여성은 임노동자 이전에 엄마나 아내로 먼저 인식했다. 노동자는 전태일이다. 노동자는 택배기사다. 남성은 허드렛일을 해도 일하는 주체로 인정받는다. 이 남성 중심의 노동사에서 여성의 노동은 늘 주변화한다. 


한번 초점이 맞춰지니 보였다. 열아홉 개 섬 사람들 이야기를 잔잔히 풀어낸 산문집 <섬>을, 그래서 나는 여성 노동 생활사로 읽었다. 계집애로 태어나 윗목에 버려졌던 딸내미, “나나 마나 한 거라는 이름을 받아 ‘쬐그만 몸뚱이’로 평생 갯일, 부엌일, 피붙이들 바라지로 살아온(98쪽)” 형도의 나 할머니. “국민학교 졸업하자마자 갯바닥으로 나갔(186쪽)”다는 우도 해녀 공명산 할머니. 웅도의 박경분 할머니는 “웅크리고 조개를 캐니까 몸이야 항상 아프지유. 오늘 갔다가 내일 앓더라도 일단은 나가게 돼유(86쪽)” 한다. “나이 들어서 물일은 못해도 손 노릇은 할 만항께(164쪽)” 칠순을 넘기고부터는 비탈밭에 약초 가꾸기로 용돈벌이 하는 세 할머니가 만재도에 살고 있다. 

<섬>박미경 지음봄날의책 펴냄

기록되지 못한 여성 노동 잔혹사 

<섬>은 숙박시설과 맛집 안내, 역사 유적 소개로 채운 여행서가 아니라 그곳에 터를 잡고 사는 이들의 목소리가 담긴 민중 자서전이다. 그리 사는 할머니들은 섧지 않다는데 읽는 나는 섧다. 퇴근이 없고 정년이 없어 평생 몸을 가만두지 못하면서도 노동자로서 최소한의 보상과 보호도 받지 못한 여성들. 자식 돌봄, 부모 봉양, 가사 노동, 남성 부양 의무까지 이중 삼중 노동을 수행하는 쪼글쪼글한 그녀들로 인해 나는 여자는 ‘고생한다’는 막연한 통념을 벗고 ‘노동한다’로 인식을 바로잡았다. 


아무려나, 제 몸 써서 일한 사람들이 갖는 삶에 대한 통찰력, 남의 몫 가로채지 않고 자기 손 놀려 ‘저금통’ 같은 갯벌 일구어 살아온 이들의 가뿐함, 그 와중에도 기역 자로 굽은 허리를 펴 “누부리 곱과(노을이 고와)(98쪽)”라며 감탄할 줄 아는 우아함을 배운다. 이 책의 최고령 97세 소무의도 윤희분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농땡이가 최고야. 젊어서 일 많이 하지 마시오. 늙어서 이렇게 아플 줄 알았으면 그렇게 안 했어. 젊었을 때는 뼈가 나긋나긋하니까 물불 안 가렸지. 농땡이가 최고야(220쪽).” 


짐승처럼 일하다가 벌레처럼 작아진 몸피에서 나온 사리 같은 말, 인간다움을 추구하기에 너무도 혁명적인 그 입말을 곱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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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 하찮은 만남들에 대한 예의

[은유칼럼]

먼저 오는 버스를 탔다. 초봄 꽃샘바람이 사정없이 볼을 때리니 견디지 못해 올라탔다. 중간에 환승할 심산으로 옷에 붙은 바람을 털며 통로 안쪽에 자리를 잡던 중, 한 사람과 시선이 얽혔다. K? 어! 여기 웬일이냐며 우린 멋쩍은 웃음으로 상황을 눅였다. 우연한 상봉, 물러설 곳 없는 마주침, 기승전결의 대화를 나누기 어려운 어정쩡한 시공간. 이 불리한 조건의 만남이란 강제된 소개팅처럼 어색하다.

 

“저 이 버스 백 년 만에 탔어요.” “저도 거의 안 타는 버스인 걸요.” 어머 이럴 수가. “어디 갔다 오는 길이에요. 영화 한 편 봤어요.” “무슨 영화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영화 좋나요?” “네. 초반엔 좀 졸다가 울면서 봤네요.” “어디서 오는 길이세요?” “서촌에 미팅이 있어서요.” “그랬구나. 아직 거기 살죠?” “작업실 냈어요.” “와, 번성하네요.” “간간이 소식은 듣고 있었어요. 이번에 작업한 거 좋던데요.”

 

K는 디자이너다. 5년 전 작은 잡지를 만들 때 같이 일했다. 편집주간까지 뭉쳐 낮밤으로 술 마시고 말을 나눴다. 흥이 잘 통했다. K는 젠틀하고 익살맞다. 엉뚱하고 단정하다. 색깔이 다른 양말을 신되 셔츠의 단추는 반드시 목 끝까지 채웠다. 남자 사람이지만 자기 얘기를 앞다투어 꺼내지 않았으며, 가만히 듣다가 한 번씩 재치 있는 대사를 쳤다. 섬세한 개인주의자인 K는 좋은 동료였다. 일하기에도 놀기에도. 가끔 보고 싶었지만 굳이 연락은 하지 않고 그리운 대로 흘려보낸 지 어언 2,3년이다.

 

버스에 대롱대롱 매달린 K와 나. 말의 시속이 30킬로미터를 넘지 않는 대화가 끊기다 이어지다 했다. K가 입을 뗐다. “영화 보고 나서 눈물까지 흘리셨잖아요, 조용히 감동을 안고 가야 하는데 제가 괜히 방해한 거 아니에요.” 두 눈을 껌뻑이며 미안함을 표하는 K는 여전했다. 난 손사래를 치고 고개까지 흔들었다. 선의도 호의도 없이 우린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를 탄 것뿐이다. 게다가 난 극장을 나와 카페에 들러 비엔나커피 한 잔 마시고 오는 길이었다. 영화를 음미했으니 괜찮다고 했다. K는 다음 정류장에서 내렸다. 제 역할이 끝난 연극배우처럼.

 

이 짧은 해후가 삼삼했다. 우연히 만난 이들의 모범 답안 같은 그것. 버스 장면을 몇 번 돌려봤다. 언제 밥 한번 먹자고 말하지 않아서 좋았다. 흔해 빠진 관용구로 인연을 복제하는 건 시시하니까. 자기가 나의 고요를 침탈한 거 아니냐고 물어봐주어 고마웠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사람의 말씨는 다정하니까. 기억에 검은 발자국만 남기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다음에 또 만났을 때 싫음이 올라오면 곤란하니까.

 

예정된 후배의 결혼식에 갔다. 재작년 다른 결혼식에서 만났던 후배의 동기들 서넛이 보인다. 그중에 Y도 있다. 지난 번에 이혼 의사를 내비쳤던 Y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궁금한데도 연락 한번 안 하는 일이 살다보니 가능해지고 있다. 어쩐지 미안해서 직접 묻지 않고 옆에 있던 C에게 넌지시 물었다. 귀에 대고 손으로 막고 소곤소곤. “Y말야, 이혼했어?” C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때 했지” 한다. 그러더니 잠시 후 저쪽에서 다가오는 Y에게 말한다. “언니가 모르고 있어서 네 소식 업데이트 해드렸다.”

 

순간 난 뒷담화하다가 들킨 사람 마냥 저 혼자 무안했다. Y는 결혼하든 이혼하든 슬기롭고 자유로운 주체로 살아갈 여성이지만 그렇다고 이혼이 비옷에 묻은 빗방울 털 듯 간단한 문제는 아니니까, 말 꺼내는 자체가 아직 괴로울 수도 있으니까, 여기는 결혼식장이고 난 교양인이니까 조용히 말한 건데 나 빼고 아무도 조심하지 않았다. 신여성들 사이에서 나만 동그마니 구여성이다.

 

그 어중간한 만남, 결혼식 장면이 자꾸 떠올랐다. 나는 평소 ‘결혼은 행복, 이혼은 불행’이란 관습적 사고의 척결을 주장했다. 결혼식은 일생의 화창한 하루일 뿐 평생의 맑음을 보장하는 의례는 아니고 이혼은 비감한 일이지만 앞날의 불행을 예비하는 생의 절차는 아니다. 비 오는 날도 해 뜨는 날도 그냥 날씨인데 인간의 관점에서 좋은 날씨 궂은 날씨 구별한다는 스피노자의 말대로, 삶의 어떤 국면을 좋음과 나쁨으로 가르는 것도 지극히 관습적이고 현재중심적인 판단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결혼은 축하로 이혼은 염려로 몸이 자동 반응한 것이다. 앎은 몸을 이기지 못한다.

 


일본 사회학자 기시 마사히코의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에서 내 고민과 비슷한 상황이 나온다.

 

“우리는 좋아하는 이성과 맺어지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 그래서 축복한다. 결국 여기에는 좋아하는 이성과 맺어진 일이 당사자뿐만 아니라 세상 일반에 행복한 일이라는 사고방식이 전제로 깔려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 어법, 축복의 방식은 동시에 좋아하는 이성과 맺어지지 못한 사람들은 불행하다든가, 아니면 적어도 이 두 사람만큼 행복하지 않다는 의미를 필연적으로 띠고 만다.”(111쪽)

 

저자는 두 사람의 결혼을 축복한다는 것 자체가 독신이나 동성애자에게는 저주가 된다며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나누는 규범을 모조리 갖다 버려야 한다. 규범이란 반드시 그것에 의해 배제 당하는 사람들을 산출하기 때문이다”(112쪽)라고 일갈한다. 뭔가 후련했다. 좋음과 나쁨의 전복이 아닌 규범의 용도 폐기. 누구도 소외되지 않으니 배려도 필요치 않은 상태. 누가 결혼했든 이혼했든 합격했든 실직했든 발병했든 서툰 연극 배우처럼 구는 짓은 이제 그만이다.

 

나이 들면서 체지방이 늘 듯 안 쓰는 핸드폰 번호가 쌓인다. 번호는 정리해도 인연은 삭제되지 않고 내가 피해도 삶이 만나게 한다. 사는 동안 운명을 뒤바꿔놓을 결정적인 만남은 거의 일어나지 않겠지만 신상 정보의 업데이트가 안 된 지인들과의 애매한 만남, 아니 마주침은 종종 일어날 것 같다. 

 

“우리의 인생은 (…) 어릴 적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잘고, 협소하고, 단편적이다.”(116쪽)

 

이 단편적 만남, 하찮은 우연에 잘 임하고 싶다. 안색을 살피고 고요를 챙길 것. 앞으로 수 차례 결혼식과 장례식 그리고 무수한 대중교통의 탑승 기회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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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즈비언 부부와 놀다

[은유칼럼]

여자 다섯이 짧은 여행을 갔다. 나이는 삼사십대. 농부, 활동가, 직장인, 백수 등 하는 일도 제각각. 레즈비언 부부와 이성애자 셋. 이성애자들 중 둘은 기혼, 하나는 비혼이다. 아무래도 커플이 있다 보니 중심이 그들에게 쏠렸다. 서로 자기가 맞다고 티격태격할 때는 여느 부부 같았고 손잡고 걷는 모습에선 흔한 연인이 떠올랐다. 아득한 바다보다 다정한 사람 풍경에 눈이 시렸다. 곤한 일정을 마친 밤, 술이 한 순배 돌자 사랑 얘기가 나왔다.


둘이 어떻게 처음 만났어요? 아직 연애의 꿈이 짱짱한 비혼 친구가 물었다. 십년 전 모임에서 봤어. 사람들이 스무명 정도 있는데 눈에 띄더라고. 어떤 점이? 얼굴이 동그랗고 예뻐서. 세상일에 관심이 많고 사고가 유연했어. 2차는 우리끼리 따로 가자고 했지. 얘기가 잘 통해서 시간 가는 줄 몰랐어. 자취방에 가자고 했는데. 어머, 라면 먹고 갈래요? 그날은 그건 아니었고…. 그로부터 7년째 그들은 연인이다.


사연이 한 보따리다. 친한 동창들한테 최초로 커밍아웃을 했을 때의 반응. 어떤 친구가 그러지 말고 남자랑 한번 자보라고, 그러면 달라질 것이라고 하더란다. 그래서 네가 먼저 여자랑 한번 자봐라. 네가 가능하면 나도 남자랑 자겠다고 했다고. 딸의 성정체성을 모르는 양가 부모는 ‘시집 안 간 딸’ 때문에 속 끓이다가 마흔이 넘자 포기한 거 같다고 했다. 한데 걱정이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걱정이 들어섰으니 파트너의 존재를 ‘죽고 못 사는’ 오랜 지기로 아는 엄마가 하루는 그러더란다. ○○가 너 두고 먼저 결혼하면 어떡하니?


웃기엔 슬프고 울기엔 다행인 상황. 엄마의 바람이 자식의 결혼이 아니라 자식의 행복이라면 그건 엄마가 모르는 상태로 충족되고 있으니 말이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그들은 커밍아웃은 포기한 상태다. 누구를 탓할까. 부모 세대는 물론 우리도 태어나면서부터 학교, 종교, 매스컴을 통해 이성애 중심의 교육을 받았다. 남녀의 결혼관계를 제외한 나머지 섹슈얼리티를 일탈이나 변태로 몰아가는 ‘강제적 이성애’를 비판 없이 수용한다. 그들 역시 자기 앎을 의심하지 않았기에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는 혹독한 시기를 거쳤고 자기 몸-삶과 화해한 후에야 비로소 짝을 만난 것이다.


‘공짜 숙소’가 있다는 전갈을 받고 이틀 만에 성사된 여행이다. 차 한 대에 끼여 타고 가다가 경치 좋으면 걷고 배고프면 먹고 수시로 셔터를 눌러대는 별다를 것 없는 여정이었다. 그럼에도 은밀하고 넉넉했다. 어딜 가나 귀 따갑게 반복되는 자식 얘기, 입시 얘기, 돈 얘기, 연예인 얘기 같은 레퍼토리를 벗어나 안으로 파고든 대화들 덕이다.


일명 내면 탐사 여행.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이성애 가족 중심 제도에서 벗어난 레즈비언 부부와 함께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서로를 엄마, 아내, 딸, 노동자 같은 역할의 수행자로 보지 않는 사람들과 마주앉아 존재에 관한 수다 삼매경에 빠지는 자리. 정체성이나 성욕 같은 단어를 두서없이 내뱉어도 어색하지 않고, 나는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좋은지 중얼거려도 민망하지 않은 배치 덕에 익숙한 나로부터 떠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2017년 퀴어문화축제 기사가 뜬다. ‘나중은 없다, 지금 우리가 바꾼다!’로 슬로건이 정해졌단다. 나중으로 유보될 수 없는 삶이 어디 그들뿐이랴. 인생이라는 책에서 접어두었던 존재 물음의 장. 사랑, 존재, 관계, 편견, 욕망의 페이지를 넘기도록 자극을 준 내 친구들을 만나러 오월에는 퀴어 축제로 떠나야겠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87903.html#csidx956910baa66b9b194d896a92ff45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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