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키우기에서 고양이 되기로

[은유칼럼]



수레 집에 혼자 있겠구나. 밖에서 전화하면 딸아이는 정정한다. 아니, 무지랑 둘이 있어. 아, 그렇지 무지가 있었지. 자꾸 까먹는다. 무지는 우리집 고양이다. 사람이 아닌 고양이라서 나는 아이 혼자 있다고 여기고, 고양이를 자신과 동등한 개체로 여기는 딸아이는 둘이 있다고 말한다.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기가 이토록 어렵다. 

3년 전, 딸아이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한 장 보냈다. 어미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 네 마리를 품고 있는 장면이 ‘명화’ 같았다. 친구의 지인 새끼 고양이들인데 다 입양이 결정됐고 한 마리만 남았다며 우리가 키우자고 했다. 말로 졸랐으면 단박에 거절했을 텐데 사진을 보곤 홀렸다. 나는 고양이 입양 불가 의견을 빈대떡 뒤집듯 뒤집었다. “그럼 데려오든가.”

흰색·밤색·검은색 털이 멋스러운 삼색이가 식탁 아래 오도카니 몸을 말고 있었다. 딸아이는 고양이를 신발주머니에 넣어 운반했다고 한다. 도보로 20분 거리다. 가만히 있었느냐고 물으니 계속 야옹야옹 거렸단다. 그 장면을 그려보았다. 열세 살 여자아이와 생후 3개월짜리 고양이의 동행. 어미 품을 벗어난 어린 생명체의 두려움과, 다른 생명체를 품은 어린이의 책임감이 둘을 단단히 묶어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시사IN 윤소영
두 존재의 교감에는 ‘종’의 동일성보다 ‘곁’의 연속성이 중요하다.

고양이 이름은 무지로 지었다. 내 삶의 모토인 ‘네 무지를 알라’는 의미의 무지. 무지 귀엽다는 뜻의 부사 무지. 딸아이는 인터넷으로 육묘 노하우를 빠르게 학습하고는 전문용어로 고양이의 행동을 해설했다. 저건 식빵 자세, 닭 자세, 꾹꾹이, 그루밍…. 그리고 병든 노모 돌보듯 조석으로 사료와 물을 챙겼다. 무지랑 놀기가 중요 일과로 자리 잡았다. 둘은 좁은 거실을 톰과 제리처럼 가로지르며 뛰었다. 


나도 놀고 싶었다. 낚싯대 장난감을 들고 유인해봤는데 무지가 시큰둥했다. 왜 엄마에겐 반응이 없냐고 물었더니 수레가 말한다. “엄마, 고양이 관점에서 생각해야지. 몸을 그렇게 뻣뻣이 세우고 있으면 오겠어.” 

그러고 보니 난 항상 무지를 아기처럼 번쩍 들어올렸다. 내 눈높이로 끌어올리면 고양이는 1초 만에 빠져나가곤 했다. 수레는 늘 엎드려서 네 발로 무지랑 눈을 맞추었다. 이것이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한 “되기”인가. 자신의 고정된 위치를 버리고 다른 존재로 넘어가기. 한 사람의 놀이 능력은 곧 교감 능력이자 변신 능력이고 사랑 능력이나 다름없었다. 

“고양이랑 결혼하고 싶어”

고양이는 만져지는 자연이다. 무지는 명당자리를 용케도 발견한다. 외출에서 돌아와 겉옷을 벗자마자 손 씻고 오면 그새 외투 위에 여왕처럼 앉아 있다. 목도리, 스카프부터 쇼핑백, 책까지 폭신하든 단단하든 보드랍든 뭐든 한 겹 깔고 본다. 커튼 사이로 한줌 볕이 들면 그곳이 아무리 손바닥만 할지라도 몸집의 표면적을 최대화해 누린다. 볕을 모은다. 무지를 보면서 알았다. 내가 고양이를 싫어한 게 아니라 고양이 키우는 걸 싫어했구나.


버지니아 울프가 쓴 <플러쉬>라는 소설에서 난 수레와 무지를 떠올렸다. 주인공이 코커스패니얼 견공 플러쉬와 여주인 바렛이다. 냄새와 행동으로 세상을 감각하는 플러쉬와 언어 생활자 바렛은 “넘을 수 없는 차원의 장벽(36쪽)”을 느끼지만 반려 관계가 되어 “각자에게서 휴면상태인 것으로 서로를 완성시켜준다(189쪽)”. 플러쉬는 여주인의 침대 발치에 자리를 잡는데 무지가 밤마다 수레의 발치에서 잠드는 것 같았다. 두 존재의 교감에는 ‘종’의 동일성보다 ‘곁’의 연속성이 중요함을 책과 현실이 증명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어린 시절부터 개를 키웠다. 평생 개의 행동과 습성, 감각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연구했다고 한다. <플러쉬>는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 쓴 게 아니라 개가 되고픈 사람이 쓴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렸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고양이랑 결혼하고 싶다는 딸아이 수레의 말도 헛웃음으로 넘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시사인 은유 읽다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29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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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것들'이라는 자각

[은유칼럼]

간첩조작사건 피해자를 인터뷰하러 제주도에 갔을 때다. 30여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은 자칭 ‘전직 간첩’ 어르신들과 같이 승합차에 타고 있었다. 그중 한 분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쪽에서 만나자고 했는지 당신 사정을 말한다. “오늘은 안 돼. 육지 사람들이 왔거든.” 그 말을 듣자 육지에서 온 객들이 일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어르신은 왜 웃느냐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덩달아 웃었다.


육지 사람이란 합성어가 생소했다. 그리 호명되는 것도 첫 경험이다. 섬을 척도로 내 정체성은 육지 사람이 맞다. 일상에선 육지생활자가 기본값이니 섬 사람이 아닌 그냥 사람으로 살았던 거다. 여자는 여성 장관이고 남자가 장관이듯 말이다. 이 육지 사람 에피소드를 제주에 사는 친구에게 말했더니 조용히 부연한다. 우리들끼리 있을 때는 ‘육지 것들’이라고 부른다고.


‘군’ 소재지 강연을 얼마 전 처음 갔다. 충남 부여군에 있는 한국전통문화대학교 특강에서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작가님이 서울에서 인문학 공부를 하고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활동하고 있는데 만약 여기에 살았어도 그게 가능했을까요.” 낮고 느린 목소리, 수줍은 말투의 그녀가 어쩐지 울까 봐 나는 조마조마했고 급소를 찔린 듯 안절부절못했다. 원망도 질책도 애원도 없는 그 투명한 물음에는 지역에 깃든 청년의 실존적인 고민이 담겨 있었다.


서울 아닌 지역에서 오는 강의 제안 메일은 더 길다. ‘지방이라 오시라고 청하기 면구스럽습니다’ ‘교통편이 좋아졌는데도 죄송스럽네요’ 같은 문장들이 덧달렸다. 죄 없이 죄송해야 하는 지역의 언어에 나는 점차 무뎌지고 있었다. 서울 사는 게 벼슬처럼 되어버린 현실에서 별다른 불편이 없으니 자각도 없었다. 서울 사람으로서 누리는 줄도 모르고 누리는 것들을 부여 학생의 물음이 일깨웠다.


나는 대답했다. 배산임수한 가옥에 사는 사람이 쓸 수 있는 글이 있고 한 평 고시원에 사는 사람에게 나오는 글이 있으니 그나마 글쓰기는 삶에 공평한 거 같다고. 물론 영화, 전시, 강연, 시설, 사람이 서울에 몰려 있고 혜택을 받는다. 그러나 서울은 기회의 땅이기에 욕망을 생산하는 공장이고 결핍을 가르치는 학교다. 좋아 뵈는 온갖 것을 좇느라 정작 자기 자신을 놓친다. 나는 ‘서울’에서 공부와 일에 몰두하던 시기에 나를 가장 많이 부정했다. 기혼, 출산, 고졸, 여자라는 콘크리트처럼 견고한 존재 조건이 숨 막혀 한숨지었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물음이 터져나올 때마다 글을 썼다고 고백했다.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어르신도 청년 시절엔 섬이 갑갑했다. 제주의 명문 고등학교를 나오고 ‘서울 유학’을 몹시도 꿈꾸었지만 가난 때문에 포기했고 돈 벌러 일본을 드나들다가 결국 간첩 누명까지 썼다. 억울한 옥살이를 했지만 그의 무죄를 증명한 건 어린 시절부터 그를 보아온 동창과 이웃인 제주 사람들이었다. 팔순의 길목에서 생의 한 주기를 돌아보는 그는 서울 간 친구들이 부럽지 않다며 벗이 있는 고향에서 죽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고 했다. 그 말씀에서 배웠다. 잘 산다는 건 내 일상을 오래 묵묵히 지켜본 사람을 갖는 거구나.


청춘의 몸은 질문을 낳는다. 1960년에 제주 청년이 그랬듯이 2017년에 부여 청년이 뒤척인다. 삶이 던지는 질문에 답이 있는 경우가 드물지만 그나마 막막한 질문만이 숨길을 열어주고 살길로 인도한다. 근래 육지 것이자 서울 것으로 정체성을 받아안은 나는 질문의 말풍선 하나 띄운다. 육지-서울이라는 다수, 주류, 중심을 벗어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까.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99134.html?_fr=mt5#csidx8b421edfbc53165b18879532c8aba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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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의 다가오는 것들 - 왜 살수록 빚쟁이가 되는가

[은유칼럼]


“왜 목동 아파트를 고집하느냐” “좁아터진 집에서 사느니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면 넓게 산다” “공부할 애들은 학원 안 보내도 공부한다”…. 내가 목동아파트에서 가장 작은 평수에 사는 동안 귀가 따갑게 들었던 충고다.


신혼 때 남편의 지점 발령으로 목동에 자리를 잡았다. 당시 단지 주변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10층이었다. 몇 해 사이 백화점과 방송국이 들어서고 주상복합 시설과 고층빌딩이 앞다퉈 생겼다. 건물 안은 학원과 부동산으로 신속하게 채워졌다. ‘전문가 집단’ ‘물꼬터 학원’ ‘열정과 끈기’ ‘자기주도학습센터’ 등등 자고 나면 학원 간판이 내걸렸다. 내가 학원 천국 목동으로 이사를 간 게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학원들이 난입한 거다. 


그 즈음 난 20평 아파트 세입자가 됐다. 단지 안 가장 좁은 평수 맨 위층 복도 끝 집을 겨우 구했다.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덥고, 4인 가족이 살기엔 비좁았다. 그래도 이사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교육이 아니라 양육 때문에. 목동은 내게 학원이 많은 곳이 아니라 급할 때 아이를 부탁할 ‘언니들’이 많은 동네였다. 그 ‘언니들’은 남편 말고 육아 대체자가 없는 워킹맘에겐 동아줄이다. 육아 난민이 되느니 목동 빈민을 택했다.


 가끔 만나는 친척이나 지인들은 주저 없었다. 아이가 둘 있고 집이 목동이라고 하면 사교육 때문에 목동에 사는구나 자동으로 연상했다. 대개의 판단은 자기 정념과 욕망에 근거하는 법. 현실은 달랐다. 서울·경기 서남부권에서 세단을 몰고 와 아이들을 들여보내는 소위 이름난 학원과 족집게 강사를 집 앞에 두고 구경만 했다. 입시생이라고 해주는 것도 없는데 친구들과 생이별까지 시키기 미안해서 큰애가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버텼다. 그리고 20년 살던 나의 고향 목동을 등졌다.


목포에 취재 갔을 때다. 여느 도시처럼 아파트가 밀집한 신도시가 생겨났고 구도심도 재개발 위기에 처했다. 구도심에는 가장 취약한 계층인 어르신들만 남았다. 이 지역 시민단체 활동가가 말했다. 어르신들이 새로운 동네에 정착하려면 김치도 담가 이웃과 나누고 마실도 다니고 해야 한다, 그런데 노인네라서 음식 할 기력도 없고 관절도 성치 않고 귀도 안 들린다, 재개발이 시행돼 어르신들이 이 동네를 떠나면 살기 힘들 거라고 우려했다. 어르신들이 ‘살던 데서 살기를’ 고집하는 이유를 난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에는 가난한 대학생의 속사정이 소상히 나온다. 독립연구자이자 글 쓰는 사람으로서 “통장잔고는 늘 10만원을 넘지 못했”(9쪽)던 저자가 대학원까지 학자금 대출금 2200만 원을 받은 경험을 토대로 ‘대학생은 어떻게 채무자가 되는지’ 구조적으로 밝혀낸다. 이 책은 내가 무심코 가졌던 청년․공부․가난에 대한 편견을 마주하게 했다.


“끼니는 김밥이나 샌드위치로 해결하면 그만이었다. 더 이상 절약할 곳이 없다고 느꼈을 때 나는 세미나 뒤풀이 모임에 빠지기 시작했고 친구들을 거의 만나지 않았다.”(15쪽)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을 경우, 메뉴와 가격을 선택하는 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195쪽)


‘우리 때’와 달리 혼밥이 왜 그리 유행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요즘 청년들이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서 스펙 관리만 하느라 밥도 혼자 먹고 깍쟁이처럼 뒤풀이도 안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500원 1000원이 고민거리가 되는 “굶주림이 익숙해진 삶”을 채무자-대학생은 피할 수 없었다. “밥 한 끼에 마음 졸이며 눈치를 보는 삶 속에서 음식뿐만 아니라 생활의 전 영역에서 스스로 단속하며 살아간다.”(196쪽)


또 다른 편견들. 가난한데 대학원을 왜 굳이 가려고 할까, 했다가 저자처럼 공부가 너무 재밌고 평생 하고 싶은 이들은 어디서 어떻게 공부할까를 묻게 됐다. 학자금 대출 받지 말고 장학금 받으면 되잖아? 각 장학금마다 요구하는 ‘인재’상에 맞춰 “가난소개서”(99쪽)를 써야 한다며 “장학금을 받기 위해 자신의 가난을 강제적으로 발화하게 하는 것은 특정 계층에 대한 낙인화이자 폭력”(102쪽)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나의 큰애도 대학에 가서 장학금을 받았는데 아이의 표정이 얄궂었다. 장학금 종류마다 이름이 다르단다. 기준 학점 이상에, 부모 소득 분위 하위권 학생에게 지급되는 ◯◯◯ 장학금을 받았으니 그 사실 하나로 자기 처지가 만천하에 공개됐다는 거다. 나는 가난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틀에 박힌 말로 위로했는데 저자는 나은 답을 들려준다.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는 문화가 부끄러운 것이다.”(102쪽)


가난은 상대적이나, 한 존재에게 중요한 것들을 뺏어간다. 밥부터 포기시키고 밥이 매개하는 관계와 건강을 무너뜨린다. 가난은 말을 가로챈다. 감추고 싶은 것은 강제로 노출시키고, 말하고 싶은 것은 들어주지 않는다. 먹고살기 바빠 일일이 사정을 말할 기회가 없다. 설명도 간단치 않다. 저자처럼 수년을 공부하고 책 한권 분량의 구조적 분석을 마쳐야 제대로 이해시킬까 말까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 아마 그건 고생 끝에 낙이 온 사람에게만 발언권이 주어졌기 때문일 거다. “성실한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 성실했다가 개죽음을 당한”(189쪽)이들은 말이 없다. 특정 지역이 사교육 시키기 좋다는 말. 사교육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 기득권층이 된 이들의 언어일 것이다. 사교육에 실패했거나 애초에 사교육을 받을 수 없는 이들의 말은 배제됐다. 재개발이 지역 발전에 좋다는 말도 마찬가지. 매매차익으로 부를 축적한 중산층과 그것을 조장한 토건재벌의 말이다. 쫓겨난 원주민의 말은 무음 처리다. 사회적 편견은 그렇게 생산–유통 된다. 


나는 목동 아파트를 떠나 집을 구하며 주택담보대출이란 것을 받았다. 용쓰고 살았으나 살다보니 중년에 빚쟁이다. 20년 상환의 굴레에 갇혀 죽지도 못할 처지가 된 게 황망하고 서글펐는데 이 책에서 부채에 관한 다른 해석을 얻었다. “개인이 가난해서 빚을 지는 것이 아니라, 빚을 지지 않고는 살 수 없는 환경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이 사회에 적응해 나가기 위해 빚을 지는 것이다.”(105쪽) 학생-채무자의 글에 노동자-채무자인 나는 위안을 받는다.



* 채널예스 은유의 다가오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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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 읽다 - 슬픔만 한 혁명이 어디 있으랴

[은유칼럼]

“눈물이 안 멈춰요.” “대통령 연설에 눈물 흘리긴 처음이에요.” 5월18일, 눈물바람으로 SNS가 넘실댔다. 문재인 대통령의 5·18 민주화운동 기념사 전문과 동영상을 너도나도 인용하고 공유하고 복기했다. 한날한시에 다 같이 운다. 남의 아픔에 감응하는 이 집단적 애도극을 보며 비로소 정권 교체를 실감했다. 

내게 눈물은 길조다. 모두가 웃는 행복한 나라가 아니라 누구나 마음껏 슬퍼할 수 있는 사회를 바랐다. 세월호 참사에 눈물 흘리고 가슴 아파할 줄 아는 대통령을 가졌으면 했고, 노동자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는 기업인이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했고, 폭력이나 치욕을 당했을 때 큰 소리로 울고불고 떠드는 평범한 사람들이 더 많았으면 했다. “모두가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라는 시구가 긴 병명처럼 세간에 오르내릴 정도로 무감각의 일상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호환마마보다 두려웠다.

글쓰기를 배우러 온 이들도 더러 고백하곤 한다.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슬픔이나 분노 같은 감정이 메말라서 고민입니다.” 그러면 나는 묻는다. 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가가 아니라 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걸 ‘문제 있다’고 여기는지. 그 각성의 계기가 무엇이냐고. 돈이나 스펙이 아닌 슬픔 없음을 근심하는 사람의 탄생이 내심 반가웠다. 한 사람이 어떻게 자기감정과 느낌을 되찾을까. 이 물음은 어떻게 인간다운 세상이 가능한가와 닿아 있다.

내 슬픔의 계보를 따져본다. 슬픔의 첫 습격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다. 자료 사진을 보고 책을 읽고 망월동 묘역을 다녀오면서 소위 세상에 눈 떴다. 당시 구 묘역의 황량한 무덤가에 놓인 영정 사진에 눈 맞추고 유가족이 써놓고 간 편지를 일일이 다 읽었다. 충격이 컸다. 그때부터 오월 광주를, 억울한 죽음을 잊지 않기 위해 통장부터 회원 가입까지 온갖 비밀번호 네 자리를 0518로 지정했다. 그 숫자를 암호 삼아 세상을 읽고 슬픔을 동력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속지 않는 자들이 방황한다>의 저자 백상현은 이렇게 말한다. “슬퍼하는 것 자체에 우리가 알지 못했던 역능이 존재한다(23쪽).” 슬픔에 빚진 나로선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슬퍼서 책 보고 슬퍼서 글 쓰고, 이 슬픔에서 돌아 나와 저 슬픔으로 건너간다. 

이 책은 슬픔이라는 개념으로 세월호 사건에 철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세월호와 함께 사라져갔던 단원고의 어린 학생들이 우리에게 전한 이 슬픔은 우리를 스펙터클의 관객석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게 하는 특별한 슬픔의 형식이었다. 존재를 흔들고, 자리에서 일어나게 만드는, 그리하여 광장으로 나서게 만드는 슬픔이었다(61쪽).”

슬픔은 정의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 

슬픔은 이렇게 혁명이 된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내가 80년대 ‘광주’를 통해 그랬듯이 ‘세월호’로 존재의 지진과 정치적 각성을 경험했다. 슬픔의 주체로서 광장을 메웠다. 저자가 라캉을 빌려 강조하는 것은 슬픔 자체보다 슬픔을 끌고 가는 힘이다. 권력의 부패와 무능이 야기한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들은 끝까지 이해하지 않기. 죽음과 상처를 쉽게 봉합하지 말기.

이번 5·18 민주화운동 기념사가 감동적인 이유가 바로 이 ‘슬픔의 가치’가 존중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슬픔의 주체들이 공동체의 내부를 유령처럼 떠돌게 되었을 때 국가는 그들을 억압하려 했고, 길들이려 했다(44쪽).” 광주를 기억하는 이들은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라’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밝은 미래를 내다보자’ 같은 “생각의 방황을 정지시키는 고정관념들(25쪽)”에 타협하지 않았고 슬픔을 털어내지 않았다. 문학에서 일상에서 현장에서 광주를 불러냈다. 

슬픔은 “정의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이자 가장 근본적인 정치적 욕망(45쪽)”이다. 슬픔의 인간띠가 더 길어지고 질겨졌으면, 부디 애도의 눈물바람이 오래갔으면 한다. 아무도 침몰하지 않도록.



- 시사인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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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 읽다 - 남해금산

[은유칼럼]


서울 강남역, 정오의 해를 받아 번쩍거리는 고층 빌딩들이 산처럼 우뚝하다. 마천루의 도시라도 온 양 감탄사를 연발하던 딸아이는 급기야 스마트폰을 꺼내 찰칵찰칵. “엄마, 여기가 강남이야?” 내 대답을 듣기도 전, 아이는 가장 기세 좋은 건물을 가리키며 어디냐고 묻는다. 


저 일대가 삼성타운이라고 했다. 아이가 흠칫한다. 우리 집은 수년 전부터 삼성 제품을 쓰지 않는다. 그래도 자기는 저런 ‘화려한 건물’에서 일하고 싶다며 나를 힐끗 본다. 입사도 어렵지만 갈 곳이 못 된다고 난 일축했다. 아이가 재차 묻는다. “내가 삼성 안 가면 백수로 산다고 해도 반대할 거야?” 


그때서야 빌딩 아래 비닐 천막이 눈에 들어왔다. 삼성 직업병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시민단체 ‘반올림’ 농성장. 몇 번 지지 방문을 갔을 땐 지하도에서 8번 출구로 나와 곧장 농성장에 들어갔다. 건너편에서 보긴 처음이다. 푸르스름한 유리 건물에 껌같이 희고 넓적하게 달라붙은 모양새다. 풍찬노숙 어언 600일째. 빌딩 꼭대기만이 아니라 저 아래까지 봐야 한다고, 저기에 76명의 영정사진이 걸려 있다고 딸아이에게 일러주었다. 초일류 기업에서 일하다가 죽은 사람들이라고. 


해마다 학기 초에 가정통신문이 온다. 아이의 질병이나 고민, 진로를 묻는 신상조사 설문지엔 ‘부모가 원하는 자녀의 직업’ 문항이 있다. 그 공란 앞에서 한참 망설인다. 아이의 욕망과 능력을 잘 알지 못하고, 좋은 직업을 설계하기 곤란한 사회에 산다는 사실을 잘 알아서다. 아무리 부모라지만 남의 직업을 내가 원한다는 설정도 마뜩지 않다. 당사자의 꿈은 수시로 변한다. “초라한 소기업은 질색”이라며 대기업에 다닐 것을 천명하다가 피아니스트가 되겠다고 했다가 그냥 부자면 된다고도 한다. 욕망은 날것이고 희망은 계통이 없다. 


나는 딸아이가 선망하는 유수의 대기업을, 으리으리한 건물을, 사보 기자로 일하면서 수년간 드나들었다. 10년 전인데도 모기업 사옥에는 헬스장, 최신 커피 머신과 푹신한 의자가 비치된 카페가 있었다. 직원용 무료 시설이다. 처음엔 부러웠다. 그런데 직원들은 아침에 출근 카드를 찍으면 종일 건물에 갇혔다. 안에서 밥 먹고 차 마시고 일했다. 야근하고 회식하고 헬스장에서 땀을 빼고 책상으로 돌아갔다. 고득점을 위해 개인의 권리와 동선을 통제한 기숙형 입시학원처럼, 그곳은 고생산성을 위한 기숙형 회사 같았다. 노동자의 하루를 통째로 삼키며 기업은 몸집을 불려갔다. 


어머니, 저희는 금빛 거미가 쳐놓은 
그물에 갇힌 지 오래됐어요 
(…) 
어머니, 무서워요 
금빛 거미가 저희를 먹고 
흰 실을 뽑을 거예요 

- 금빛 거미 앞에서 (53쪽) 


20대에 나도 금빛 건물에서 일했고 30대엔 외부자의 시선으로 살벌한 내부를 뜯어보았다. 40대엔 삼성 직업병 문제, 이랜드의 아르바이트생 임금 체불 사건, 대한항공 임원의 갑질 사건, CJ제일제당 현장실습생의 자살, 연출가의 자살 소식을 접한다. 대기업이 무서워진다. 등 따시고 배부른 정규직도 있겠지만 소수의 안위는 다수의 희생과 침묵을 기반으로 한다. 한 사람의 죽음에 무감한 기업 문화가 미세먼지보다 더 공포스럽다. 아이를 피하게 하고 싶은 것이다. 


가정통신문의 부모가 원하는 직업란엔 ‘예술가’라고 썼다. 피아니스트나 화가 같은 협의의 예술가가 아니다. 자기 삶과 노동의 균형, 감성과 이성의 조화를 추구하는 삶의 예술가라는 이상을 담았다. 대기업 직원이든 작은 가게의 점원이든 대수랴. 일할 때 자기 의견과 불편을 말할 수 있고,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는 직장이고, 남을 눌러야 내가 사는 경쟁 구도가 아닌 자유로운 개인들로 존중하며 동료와 만나는 일이면 좋겠다. 


“치욕이여,/ 모락모락 김 나는/ 한 그릇 쌀밥이여(23쪽)” 밥 때문에 생겨나는 치욕 앞에 무릎 꿇지 않기를 부디 바랄 뿐이다. 직업엔 귀천이 없지만 삶에는 귀천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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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지지 않는 한 사랑은 없다

[은유칼럼]


한 사람에게 다가오는 사랑의 기회에 관심이 많다. 이제껏 사랑을 몇 번 해봤느냐는 물음을 실없이 던져보기도 한다. 상대는 거의 머뭇거린다. 사랑과 사랑 아닌 것의 기준 설정부터 간단치 않은 거다. 내게 사랑은 나 아닌 것에 ‘빠져듦’ 그리고 ‘달라짐’이다. 우연한 계기로 엮여  서로의 세계를 흡수하면서 안 하던 짓을 하거나 하던 짓을 안 하게 되는 일. 연애가 그랬고 공부가 그랬다. 이전과 다른 삶으로 넘어가는 계기적 사건이 사랑 같다.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에는 내 어설픈 사랑 연구에 맞춤한 세 편의 이야기가 나온다. 각기 다른 세대의 이성애 커플이 등장하는 옴니버스식 구성인데 스토리가 촘촘하고 풍성하다. “우린 모두 각기 다른 얼굴이지만 사랑에 빠졌을 때만은 같은 얼굴이다”라는 극중 대사처럼, 그리스의 경제, 외교, 정치 조건에서 그들이 겪는 곤란은 다르지만 나이와 국적을 불문하고 사랑하는 모습은 닮은꼴이다.


청년 커플은 그리스 여대생과 시리아 이민자 남성이다. 경제 위기에 처한 그리스인들에겐 기근과 전쟁을 피해 흘러든 이방인은 불청객이다. 정치학을 전공하는 여대생은 수업시간 교수가 말하는 난민 문제에 집중하지 못한다. 그녀에게 난민은 토론 과제가 아니라 만져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민자 남자는 그리스인들 사이에 있을 땐 사회에 불안과 공포를 조성하는 혐오의 대상이지만 그녀와 있을 땐 시리아에서 태어난 순박하고 정의로운 예술가 청년이 된다. 인종이나 계급, 문화의 차이는 차별의 근거가 아니라 사랑의 동력으로 작용한다. 그들은 닥칠지도 모르는 불안에 미리 쪼그라들거나 위험을 계산해 행동하지 않는다. 늘 불안한 눈빛을 보였던 그는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변한다. 그녀 곁에선 천진한 웃음의 존재로 개화한다.


중년 커플은 파산 위기를 맞는 그리스 회사 직원과 그 회사의 구조조정 책임자로 온 스웨덴 여성의 사랑을 그린다. 하루하루 실적으로 평가 받는 마케팅 업무의 스트레스와 쇼윈도 부부 노릇에 지친 중년 남자는 공황장애 약을 먹으며 간신히 일상을 지탱한다. 왜 그런 약을 먹느냐며 남자의 나약함을 비웃는 그녀. 사랑에 빠지면서 숫자만 보이다가 ‘사람’이 보이기 시작하자 그녀의 냉정하고 빈틈없는 사고 체계에는 교란이 일어난다. 자본주의의 생리인 신속함과 무자비함을 요구하는 본사의 닦달을 못 이기고 업무를 포기한다. 그리고 그가 먹던 알약 로세프트 50mg을 삼킨다. 이제 남의 밥줄 끊는 일은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노년 커플은 그리스인 평범한 주부와 독일에서 이주해온 역사학자 남자다. 사랑이 잉태되는 공간은 마트. 그녀는 절박하다. 장바구니에 토마토 한 상자를 넣었다 뺐다 할 정도로 생활고가 극심하다. 아직도 싱크대 앞에서 ‘이게 내가 원하던 삶인가’ 한숨 쉰다. 이런저런 고민을 그에게 터놓는다. 서툰 영어로 더듬더듬. 마트 밖은 위험하다고 여기는 그녀를 남자는 신화의 세계로 인도한다. 그녀는 그가 선물한 두툼한 신화 원서를 읽고자 돋보기를 쓰고 영어사전을 편다. 혼자 힘으론 불가능한 말하기, 듣기, 읽기의 세계를 그의 꾸준한 도움으로 통과한 그녀는 자신이 목도한 부조리에 항의하는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자기 생각을 당당히 표현하는 사람이 된다.


이것이 사랑의 급진성이 아닌가.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사랑에 빠지기 그것은 곧 혁명’이라고 말하는 책 『사랑의 급진성』을 떠올렸다. 한 사람의 이민자가 혐오의 대상에서 환대의 대상이 되고, 해고하는 사람이 해고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공부하지 않던 사람이 공부하는 사람이 된다. “범상한 일상, 새로운 것은 무엇이든 생겨날 수 없게끔 사방에 켜켜이 쌓인 먼지의 단층에 하나의 균열이 생기는 사건”(12쪽)이라는 혁명의 정의대로, 영화 속 주인공들은 사랑이라는 ‘일인분의 혁명’을 완수한다. 한 사람이 바뀌면 세상도 약간 방향을 튼다는 점에서 그것은 역사적 사건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는 또 다른 주인공, 사랑에 무능력한 존재가 나온다. 극우 파시스트 조직에 가담해 유럽 난민에게 무차별한 테러를 자행하는 인물이다. 그는 시대의 불운으로 인한 자기 삶의 실패와 불만족을 이민자 같은 사회적 약자에게 투사하며 혐오의 일그러진 얼굴로 살아간다. 혐오를 뿌리고 혐오를 거두는 악순환의 고리에 갇힌다. 누구나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일상은 비슷할지 모르나 사랑의 있고 없음으로 훗날 다른 얼굴 다른 관계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그는 삶으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랑의 주체로 살아갈 수 있을까. 무엇이 사랑이고 무엇이 사랑 아닌가 하는 물음에 『사랑의 급진성』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위험 제로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19쪽) 성적 욕망으로 팽배한 현대사회지만 아이러니하게 사랑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한다며 자기동일성에 안주하는 현대인의 왜소함을 저자는 지적한다. “결과가 어떻든 간에 위험을 무릅쓰는 것, 이 숙명적인 만남으로 인해 일상의 좌표가 변경되리라는 점을 알면서도, 오히려 바로 그런 이유에서 만남을 갈구하는 것”(166쪽)이 사랑이다.


사랑에 빠지는 원인은 세 가지다. “첫째는 보는 것, 둘째는 듣는 것, 셋째는 연인의 후한 마음”(19쪽)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의 세 커플도 각각 낯선 사람에게 눈길을 건네는 사소한 행위로부터 사랑이 시작된다. 거기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시간과 정성을 후하게 쏟으며 사랑의 주체가 된다.


“사랑에 빠지지 않는 한 사랑은 없다.”(151쪽) 사랑은 특별한 지식이나 기술이 필요치 않다는 점에서 쉽고, 자기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점에서 어렵다. 그러니 사랑을 얼마나 해보았느냐는 질문은 이렇게 바꿀 수도 있다. 당신은 다른 존재가 되어보았느냐. 왜 사랑이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비활성화된 자아의 활성화가 암울한 현실에 숨구멍을 열어주기 때문이라고 답하겠다. 존재의 등이 켜지는 순간 사랑은 속삭인다. “삶을 붙들고 최선을 다해요.”(123쪽)


채널예스  http://ch.yes24.com/Article/View/33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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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키즈 존은 없다

[은유칼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강좌를 열었을 때다. 한 여성이 꼭 읽고 싶었던 책이라며 아기를 데리고 참가할 수 있는지 물었다. 생후 12개월 남아랬다. 두 마음이 다퉜다. 마음 하나. ‘공부하러 나와서까지’ 아이를 보고 싶지 않다. 내게 아이란 존재의 훼방꾼, 공부의 대립물이었다. 책 한 줄 보겠다고 아이의 숙면을 얼마나 애태웠던가. 마음 둘. 아이를 달고서라도 ‘공부하러 나가고픈’ 그 여성의 열망은 불과 얼마 전까지 내 것이기도 했다. 외면하면 반칙이다.


일기일회(一期一會). 평생 단 한 번의 기회라는 마음으로 결정했다. 학인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사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우리는 공부한다. 아기라는 불편한 존재를 배제가 아닌 관계의 방식으로 우리 삶-공부에 들여 보자고. 문제가 생기면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아기는 온순했다. 기적처럼 두세 시간을 내리 자기도 했고 엉금엉금 기어다니며 필기구를 잡아당기기도 했다. 간혹 수업이 끊겼지만 여느 수업의 흐름을 벗어나진 않았다.


영유아와 함께 수업이 가능하다는 선례와 신뢰는 그렇게 생겼다. 엄마의 시도, 동료의 협조, 아이의 견딤. “남편이 일찍 온다고 해놓고 늦어서요” “맡길 곳이 없어서요” 요즘도 가끔 아이를 데려가도 되는지 엄마들은 문의를 하고 아이들은 장학사처럼 수업에 슬그머니 들어온다. 또한 곁에 없다 뿐 전화로 수업에 끼어들기도 한다. 엄마 학인은 주로 강의실 ‘문간’에 앉는데 아이에게 긴급한 연락이 오면 튀어나가 전화를 받기 위해서다.


이 육아·공부 병행의 난리통에서 난 외부자였다. 공부하는 여성들의 분투를 지지하고 조율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도 긴급 호출이 왔다. 군에 간 아이의 전화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제가 걸 순 없고 오는 전화만 받을 수 있거든요. 문자도 안 되고….” 일이분가량 수업 중단을 초래한 나는 일이분 정도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누가 뭐라지 않아도 저 혼자 목소리가 기어들어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스무살 넘은 군인 ‘아이’ 때문에 양해를 구하게 될 줄이야. 도대체 인간은 언제 어른이 되는가.


사람답게 살기 위해 공부하지만 공부하면서 사람답게 살기는 퍽 어렵다. 공부든 일이든 하나의 목적성에 갇힌 사람은 앞만 본다. 관계를 놓치고 일상을 망친다. 내 경우 그 자기모순에서 헤어나오도록 도운 건, 무력한 아이다. 틈만 나면 떼어버리고 싶었지만 떼어지지 않는 성가신 존재가 복잡한 삶의 문제를 회피하지 않도록 환기시켜준 것이다.


‘노 키즈 존’이란 말을 보고 철렁했다. 개인의 시간과 공간이 침해당하지 않을 권리를 내세우며 식당이나 카페에서 아이들 출입을 금한다는데 그 논리가 옹색하다. 우리는 누군가의 시공간을 침해하면서 어른이 됐다. 여전히 힘 있는 어른들은 자기보다 약자의 시공간을 임의로 강탈하면서 자기를 유지한다. 왜 아이들을 대상으로만 권리를 주장할까. 그래도 되니까 그럴 것이다. 나 역시 양육의 책임을 나누지 않는 어른(배우자)에게 가야 할 원망이 애꿎은 아이에 대한 부정으로 나타나곤 했으니까.


인간 사회는 민폐 사슬이다. 인간은 나약하기에 사회성을 갖는다. 살자면 기대지 않을 수도 기댐을 안 받을 수도 없다. 아기를 안고 공부에 나선 엄마처럼 폐 끼치는 상황을 두려워 말아야 하고 공동체는 아이들을 군말 없이 품어야 한다. 배제를 당하면서 자란 ‘키즈’들이 타자를 배제하는 어른이 되리란 건 자명하다. 건강한 의존성을 확장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서만 우리는 관계에 눈뜨고 삶을 배우는 어른이 될 수 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95467.html?_fr=mt5#csidx686b75dac6a85a0bcf25b75e560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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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인 - 끼니와 끼니 사이에 명령과 복종이 있다

[은유칼럼]

'패스트푸드로 버티는 아이들.’ 인터넷 포털 화면에 뜬 기사다. 학원 시간에 쫓겨 5분 만에 허겁지겁 컵라면을 먹는 아이들 모습과 서울 대치동 일대 편의점·패스트푸드점 풍경을 스케치했다. 학원 다섯 곳을 다니고 과외 두 개를 한다는 한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이런 생활’을 했다고 증언한다. 역시 ‘이런 기사’의 마무리는 전문가 의견. 라면과 패스트푸드가 성장에 지장을 초래하니 채소나 과일 위주의 식단을 규칙적으로 섭취하라고 식품영양학 교수는 충고했다.


내가 전문가라면 일몰 이후 학원을 금지하고 아이들의 식사권과 수면권 등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을 텐데. 아니다. 실은 남 얘기가 아니다. 중3인 딸내미도 일주일에 두 번 수학 학원에 간다.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가 되기는 아직 이르다는 본인의 선택이다. 방과 후에 주먹밥이나 과자를 사먹고 밤 8시에 학원을 마치면 집에 와서 늦은 저녁을 먹는다. 나는 부랴부랴 돈가스 튀기고 국을 데워 늦은 끼니를 대령하면서도 나쁜 현실의 공모자가 된 듯해 착잡하다. 그것도 그때뿐. 월·수·금 오후 4~5시에 집에 와서 뒹굴거리면 또 그것대로 심란하다. 월화수목금금금 학원에서 시험에 단련된 아이들과의 성적 격차가 벌어지는 건 빤한 일이기에 그렇다.


남편이 목동의 학원이 밀집된 건물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했다. 학원 교사와 원생들이 주 고객이고 밤 10시부터 새벽 2시에 몰린다고 한다. 아이들이 새벽 1~2시에 교습을 마치고 와서 도시락이나 라면을 먹는데, 고3 수험생만 있는 게 아니라 중학생도 꽤 된다고. 아이들이 매일 같은 시간에 와서 같은 종류의 밥과 음료수를 사가니 나중에는 얼굴과 메뉴가 외워지더란다. 


심야 고속도 아니고 어쩌다 심야 학원이 생겼을까. 어른으로 치면 부실한 저녁 먹고 매일 야근하는 회사에 해당한다. 수당이 없는 야근이다. 아직 성장판도 닫히지 않은 10대 아이들이 제때 먹지도 못하고 시멘트 건물 형광등 불빛 아래 종일 묶여 있다니, 늘 그래왔으니까 익숙하지만, 익숙하다고 정당화되는 건 아니다. 심야 학원은 아무리 봐도 기괴한 풍속도다.


그즈음 <먹는 인간>을 읽었다. “고매하게 세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감에 의존해 ‘먹다’라는, 인간의 필수 불가결한 영역에 숨어들어 보면 도대체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347쪽).” 저자 헨미 요는 이 질문을 안고 탐식의 나라 일본을 떠나 세계 15개국을 누빈다. 독일 감옥을 방문해 수감자들의 밥을 먹고, 방글라데시에서 음식 찌꺼기를 사먹는 빈민들을 보고, 필리핀 산속에서 인육을 먹은 태평양전쟁 시기의 일본 잔류 병사들 얘기도 현장에서 검증한다. 대한민국 편도 있다. 청학동에서 예절의 맛을 음미하고,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에게 비통의 맛에 관해 듣는다.


“그 세계에는 ‘끼니와 끼니 사이’라는 것이 있었다. 아침 8시에 식사를 마치면 일반 병사들이, 오후에 점심을 먹고 나면 하사관들이, 저녁 식사를 끝내면 장교들이 찾아왔다. 병참부 군인들이 가져오는 퍼석퍼석한 밥과 된장국, 단무지를 미쓰코 같은 여자들이 허겁지겁 먹고 나면 끝도 없이 그것이 시작되었다(330쪽).”


한 존재를 ‘먹는 인간’으로 바라보면 아릿함이 더해온다. 전쟁이나 재난이든 일상이든 사람은 무릇 “허겁지겁 먹고 나면 끝도 없이 행해야 하는” 그것을 수행하고 산다. 먹는 일은 때론 위안이고 때론 치욕이다. 저자가 최근에 이 책을 썼다면 청학동 대신 대치동을 가지 않았을까. 아이들에게 밥버거의 맛을 물어보면 독일 감옥의 수감자처럼 말했겠지. “맛있지도 않고 맛없지도 않지(105쪽).”


끼니와 끼니 사이 벚꽃이 난분분한 봄날, 딸아이는 말한다. “벚꽃 꽃말이 중간고사래.” 해마다 벚꽃 시즌이면 다가올 중간고사에 대비해야 하는 중·고등학생들 처지를 빗댄 말이다. 꽃을 놓치고 밥을 거르며 자란 아이들 몸에 무엇이 남을까. 패스트푸드에 길들여지는 것은 자발적 자기 착취에 길들여진다는 것이고 명령과 복종의 속도에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먹는 인간’으로서 아이가 통제의 맛에 길들여지느니 부모가 초라한 성적표에 길들여지는 게 백번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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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의 다가오는 것들 - 인공자궁을 생각함

[은유칼럼]

        “저 엄마 왜 울어?” 

        “몰라. 아까부터 울더라.”


간호사들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가 멀어진다. 새벽 4시 32분 아이를 낳고 나는 분만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예닐곱 시간 산통 끝에 몸통은 거죽만 남은 듯 너덜너덜했다. 혀가 껄끄러워 입 안에 손가락을 넣었는데 노란 모래 가루 같은 입자가 묻어나왔다. 물 좀 달랬더니 간호사가 적신 거즈를 준다. 그걸 입술에 대고 있는데 눈물이 흘렀다. 무슨 스위치를 켠 것처럼 느닷없고 하염없이. 흐느낌도 통곡도 아닌 조용한 눈물의 방류를 간호사들이 본 모양이다.


이렇게 아픈데 엄마는 오빠를 낳고 어떻게 나를 또 낳았을까. 첫 아이 출산 때 정신이 돌아오고 처음 든 생각이다. 몸을 초과하는 통증에 몸서리쳤다. 그래 놓고 나는 또 둘째를 낳은 것이다. 동이 트자마자 남편이 양가에 전화를 드렸고, 엄마는 아침 7시 병실 문을 열고 뛰듯이 들어왔다. 침대에 누워 있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얼굴 근육이 제멋대로 실룩거리던 엄마. 왈칵 눈물을 쏟으며 말한다. “고생했다. 애 낳는 게 얼마나 아픈데…”


삼칠일이 지나 산후도우미 아주머니가 가고 남편은 회사 일로 바쁘고 혼자 남겨졌다. 밤낮으로 두 아이 사이를 오가며 쩔쩔매던 어느 날, 아이를 재워놓고 방문을 닫는데 아이가 뒤척였다. 다시 토닥토닥하고 재우면 또 깨고 그러길 수차례. ‘잘 자라 우리 아가’를 입으로는 흥얼흥얼 등을 두드려주는데, 빨리 자라 좀 제발 하면서 손에 힘이 들어갔다. 등짝을 세게 한 번 내리쳤다. 손바닥에 꽉 차는 조그만 등의 느낌. 후끈했다. 그런 난폭함이 내 몸 어디에서 나왔는지 놀랐고 더 놀란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었다.


“아이는 분유도 이유식도 거부했다. 끼니마다 전쟁이 벌어졌다. 제발 한 입만 먹어라, 제발. 애원은 분노로 바뀌었다. 나는 분노에 못 이겨 소리를 지르며 손에 잡히는 대로 벽에 던졌다. 아기는 놀라 비명을 지르며 울었다. 모든 게 지옥이었다.” 

한 여성이 산후우울증을 호되게 앓았던 경험을 글쓰기 수업에서 발표했다. 저 대목에서 멈칫, 까맣게 잊고 있었던 오래 전 화의 기운이 나를 덮쳤다. 행여나 들킬세라 과제물에 시선을 두었다. 낭독이 끝나고 고개를 들었더니 세상에나, 여기저기서 훌쩍훌쩍 손으로 눈물을 찍어내고 휴지를 꺼내 코를 푼다. 각기 다른 연령 대 여성들이 운다. 침묵을 깨고 한 명이 말문을 열었다. “남들은 척척 해내는 육아가 나는 왜 이렇게나 힘이 들까.” 이 문장이 특히 공감이 간다고, “그 말을 저는 남편에게 들었어요”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날 수업을 마치고 가는 길, 이 집단적 슬픔의 광경이 떨쳐지지 않았다. 지금도 육아의 고통을 자신의 모성 부족으로 탓하며 속울음 삼키는 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내 안의 폭력 성향이 불쑥 나타날 때 어떻게 잠재울까. 문득 엄마들을 모아서 ‘봉기蜂起’를 일으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충동적으로 페이스북에 봉기 단상을 올렸고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이토록 고된 육아를 불평 한마디 없이 묵묵히 수행한 선배 엄마들에 대한 원망, 육아로 인한 일상의 압박과 인격의 왜곡에 대한 토로가 족자처럼 펼쳐지는 와중에 한 줄 의견이 외롭게 버티고 있었다. ‘저도 봉기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내가 구상하는 봉기는 단순하다. 벌떼처럼 모여서 윙윙윙 떠들기다. 자기 공격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다른 해석이 필요한 법이니, 내 목소리를 내보내고 내 삶에 다른 목소리가 흘러들게 하는 것이다. 육아의 기쁨만큼이나 슬픔을, 어린 생명이 주는 충만함만큼이나 자멸감을 저마다 말하기만 해도 자신이 비정상이 아님을 알고 적어도 자기 억압의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나는 또 엄마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면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의 『성의 변증법』을 펼쳐서 읽어주고 싶다. 그간 젠더 불평등은 근원적으로 해소될 수 있을지 난 회의적이었다. 그러니까 아무리 깨인 남자, 페미니스트 배우자를 만나더라도 여자의 몸에서 임신과 출산이 이뤄지는 한 양육에 따른 최종 책임은 마치 자연의 섭리처럼 여자에게 귀속되더라는 것이다. 여자의 몸이 무거워지는 순간 필연적으로 삶도 무거워진다. 비출산 경향도 그걸 인지한 여성들의 선택일 거다. 이에 대한 여성의 구제 방안을 『성의 변증법』 이 제시한다.


“남자는 땀 흘려 일하고 여자는 고통과 산고를 참아야 하는 이중 저주는 처음으로 인간적 삶을 가능하게 하는 테크놀로지를 통해 해소될 것이다.”(292쪽) 저자가 말하는 테크놀로지는 인공 생식의 완전한 발달을 뜻한다. 즉, 인공 자궁에서 태아를 잉태함으로써 남성도 임신과 출산이 가능해지도록 하자며 “모든 가능한 방법을 통하여 여성을 생식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키고 양육의 역할을 여성뿐 아니라 남성, 즉 사회 전체로 확산시킬 것.”(294쪽)을 요구한다.


스물다섯 살의 저자가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이 급진적 주장에 처음엔 놀랐지만 읽을수록 빠져들었다. 시험관 아기처럼 인공 자궁을 통한 임신과 출산이 가능한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인류의 반이 그들 모두의 아이를 낳고 길러야 한다”(293쪽)는 것에 근본적인 회의와 물음을 던진 점, 피임법이 개발되기 전 계속되는 출산으로 여성들이 끊임없는 부인병, 조로, 죽음을 겪는 현실의 단절을 꾀한 점, 온갖 지력과 상상력을 동원해 대안을 제시했다는 사실이 귀하게 다가온다.


         『성의 변증법』은 1970년에 발간됐다. 40년이 흐른 지금, 남성 양육 역할 확대는 남성 육아휴직제로 논의, 실천되고 있으니 파이어스톤의 ‘혁명적 요구’가 비현실적인 대안이라고만 일축할 수 없다. 이 책을 통해서 나는 자기가 처한 상황을 고정 불변의 현실로 여기지 않고 다른 삶을 그려보는 태도를 배웠다.


가끔 생각난다. 분만실 침대 위에서 천장의 사나운 형광등 불빛에 시선을 고정한 채 눈물짓던 내 모습이. 귓속에 흘러들던 미지근한 눈물이. 무에 그리 서러웠을까. 애 낳은 게 뭐 대수라고 ‘저 엄마는 왜’ 눈물 한 바가지 흘리는지 나도 잘 몰라서 더 서글펐다. 그런 내게 “임신은 야만적이다. (…) 임신은 종을 위하여 개인의 육체가 임시로 기형이 되는 것이다”(287쪽)라는 말, 자연분만의 신화화를 비판하는 문장은 구원 같았다.


그날 나는 여자의 몸에서 발생하는 고통, 임신 출산 육아로 이어지는 외로운 노동을 딸에게 고스란히 대물림한다는 사실이 아득하고 미안했던 것 같다. 엄마가 몸을 푼 나를 보자마자 울었듯이 나 역시 막 탯줄 끊어낸 딸에게 본능적으로 눈물을 바친 게 아닌가 싶다. ‘생식의 기계화’를 주장하는 극단적이고 급진적인 언어가 내 초라한 눈물의 이유를 밝혀주었다. 그러니 점점이 흩어져 홀로 고행하던 여성들의 입술이 말할 때, 나만 힘든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공유할 때, ‘고통의 언어화’로 자기 억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면 엄마들의 봉기는 인공자궁에 버금가는 혁명이 되지 않을까 나는 상상한다.




- 채널예스 '은유의 다가오는 것들' 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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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의 수만큼 우리는 돈을 번다

[은유칼럼]
개강 후 두 번째 수업에 과제 발표자가 결석했다. 과제 부담일까, 개인 사정일까. 궁금한 마음에 전화기 버튼을 눌렀다. “저, 오늘 안 오셔서 연락드렸어요.” “네? 지난주에 수강 취소하고 환불받았는데요.” 예기치 못한 답변에 당황한 나는 전달을 못 받았다며 얼버무리고 끊었다. 문자로 남길 걸 괜히 전화했나. 불편한 상황을 만든 나 자신을 책망했다.

그날 전화를 끊고 수업을 잘 마쳤다. 집에 가는 길, 얼마 전 통신사 해지방지팀에서 일하다가 자살한 현장실습생이 떠올랐다. 취소·환불이란 말들이 귓속으로 여과 없이 파고드는 따가운 경험. 나는 20초 정도의 짧은 통화였는데도 가슴에서 휑한 무엇이 자꾸 올라왔다. 만약 그게 온종일 해야 하는 일이라면 그 사람의 삶은 어떻게 될까. 더구나 경험의 군살이 붙지 않았을 열아홉 살 사회 초년생이라면 말이다.

미국 빈민 여성의 생존기이자 노동 르포르타주인 <핸드 투 마우스>의 저자 린다 티라도는 말한다. “나는 내 상처의 수만큼 돈을 번다(49쪽).” 베이고 데는 상처만 뜻하는 게 아니다. 짜증, 분노, 무시 같은 것도 독처럼 쌓여서 영혼을 부식시킨다. 필자는 병원에 가면 ‘스트레스를 줄이라’는 처방이 내려지곤 한다며 말한다. “의사들은 잠을 잘 자고 잘 먹으라고 환자에게 말하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마치 그게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인 것처럼(88쪽).”

ⓒ윤성희
4월12일 서울 동대문종합시장에서 한 지게꾼이 원단을 짊어지고 운반하고 있다.

늘 단순한 상황 판단은 타인의 구체적 처지에 대한 고려 없음에 기반한다. 나도 전적이 있다. 큰애 세 살 즈음 육아로 후줄근해진 내 청춘을 보상받기 위해 옷을 샀다. 단정한 모노톤 셔츠였다. 여름철이라 한 번 입고 세탁소에 맡겼다. 일주일 넘게 감감무소식. 세탁물 수거하는 직원에게 문의했더니 이동 중에 분실했단다. 이튿날 그 직원은 5만원을 내밀었다. 옷값의 절반이다. 그러곤 사장에게 분실 건을 말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개인 부담으로 배상을 받는 게 영 찜찜했지만 새 옷을 잃은 속상함에 묻혀 금세 잊었다.

몇 년 후, ‘뭐라도 좋으니’ 일해야 했을 때, 자유기고가로는 수입이 불안정해 친척 회사의 경리 업무를 도왔다. 6개월가량 서울 동대문종합시장 매장을 드나들었는데 그곳은 이전에 쇼핑하러 갈 때와는 다른 장소였다. 민속촌에서나 보던 지게에다 돌돌 만 원단을 가득 쌓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늙은 지게꾼을 목도했다. 복도에는 보험회사 전단을 나눠주는 사람, 커피와 음료를 배달하는 사람들이 오갔다. 길가로 나오면 오토바이 택배 기사가 십자가처럼 원단을 지고 위태로운 질주를 했고, 지하철 입구에선 아주머니가 빠른 손놀림으로 전단을 안겼다.

<핸드 투 마우스>
린다 티라도 지음
김민수 옮김
클 펴냄
세상은 노동하는 육체의 전시장! 그때 불쑥 그 세탁소 직원이 떠올랐다. 나는 어떻게 했어야 옳은가. 그의 과실이지만 고의 과실은 아니다. 피해보상 규정 같은 노동자의 보호책을 마련하지 않은 고용주, 합리와 효용의 잣대로 따지는 깐깐한 소비자, 그 사이에서 가장 약자인 피고용인이 피해를 입었다. 내가 ‘챙긴’ 5만원이 그의 식비이거나 노모의 약값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부끄럽고 후회스럽다.

딱히 소비자 권리를 내세운다기보다 자기중심으로 사고하고 내 몫 지키기에 급급했다. 대안공동체에서 공부할 땐 인문학 소비 풍토를 비판했다. 문화센터 같은 즉자적인 지식 거래가 아닌 다른 관계, 다른 속도, 다른 일상을 발명해야 한다고 그럴듯한 말로 열을 올리기도 했다. 그게 평생 견적이라는 걸 몰랐다. 나는 소비자이면서 노동자라는 다층적 위치성에 대한 실감이 모자랐다. 이제 목표는 소박해졌다. 일상에서 부딪치는 이들의 유니폼 너머, 표정 너머, 계산 너머 삶의 면모를 그려보기. 잘 자고 잘 먹는 사람이 드문 세상이니만큼 이 책의 저자처럼 “나는 사람들이 생계로 삼는 일을 더 힘겹게 하지는 않겠다는 원칙을 고수하려고 애쓴다(2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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