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플 비혼, 너에겐 친구가 있잖아

[은유칼럼]

전주에는 친구 봄봄이 산다. 봄봄은 5년 전 전주에서 서울까지 오가며 내가 하는 글쓰기 강좌 16주 과정에 참여했다. 비혼 여성 공동체 ‘비비’를 운영하는데 강의료와 교통비를 동료들이 지원해주어 자기가 ‘대표’로 유학 오는 거라 했다. 그녀의 자기소개는 멋지고 대단하게 들렸다. 수업에 오는 기혼 여성 중 일부는 (자격증도 나오지 않는) 자기 공부를 위해 돈과 시간을 쓴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갖거나 배우자를 설득하기 곤란하다는 고민을 터놓곤 했다. 그렇기에 봄봄이 들려주는 고만고만한 일상을 넘어선 삶, 결혼 제도 바깥에서 이뤄지는 존중의 반려 관계는 듣는 것만으로도 숨통을 틔워주었다.

봄봄은 멀리서 오는 사람이 으레 그렇듯 가장 먼저 강의실에 와 있었다. 늘 수줍게 웃었고 성실히 글을 써냈다. 십년지기 네댓 명이 주축이 되어 비혼 공동체를 꾸리는데 살림집은 따로 있는 1인 가족 네트워크 형태라는 것, 각자 특성에 따른 역할 분담과 활동들, 갈등을 어떻게 풀거나 뭉개며 사는지 찬찬히 기록했다. 내용은 흥미로웠지만 낯선 도시의 지도처럼 복잡해 보이기도 했다. 부딪치고 고심하며 나은 삶을 빚어내는 과정이기에 유토피아 보고서는 아니었다. 그래도 문장마다 힘이 넘쳤다. “시도의 에너지는 정지의 안정성보다 위대하”므로(134쪽).


ⓒ시사IN 윤무영

올해 초 봄봄에게서 초대장이 왔다. “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협동조합은 비혼 여성들의 space&link를 목적으로 시작되었지만, 현재는 기혼 여성들도 함께 참여하는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폭이 넓어졌습니다.” 거기서 봄봄은 글쓰기 모임을 꾸리고 있는데 매번 읽기와 쓰기가 여성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느낀다며, 작가와의 만남에 나를 부르고 싶다고 했다. 강연 주제는 ‘여성에게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였다.


산수유 꽃망울 터지는 3월 셋째 주 금요일, 한달음에 전주로 달려갔다. 봄봄은 여전히 잔꽃무늬 옷을 입고 잔잔한 미소로 나를 반겼다. 강연장에는 여성 30여 명이 자리를 꽉 채웠다. 맞은편 벽면에는 ‘원더풀 비혼-너에겐 친구가 있잖아’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가슴이 콩콩 뛰었다. 여자들만의 신나고 친밀한 세계. “나는 말도 부드러워지고 생각도 부드러워져서 상기한다. 모든 것이 머지않아 다른 모든 것이 된다는 걸(146쪽).” 하나를 말하면 열을 알아듣고 열을 논하다 보면 속 깊은 질문 하나는 반드시 던져주는 여성들과 함께하는 강연은 내게 치유의 시간이 되어주었다.


나는 강연 전날 내려가 봄봄의 집에서 묵었다. 봄봄의 벗들과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었다. 지역에서 비혼 공동체를 꾸린 지 10년이 되어가지만 여전히 남성들에겐 이해받지 못한다고 했다. 사소하게는 “여자들끼리 있으면 짐을 나르거나 험한 일은 누가 하느냐”라고 묻거나, 진지하게는 “그렇게 폐쇄적으로 살지 말고 바깥으로 나오라”고 충고한다는 말에 우리는 깔깔 웃었다.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마음산책 펴냄




살뜰한 챙김에서 상상하는 다른 삶

대로변에 공간을 갖춰 10년 가까이 유지하는 단체를 불완전하거나 폐쇄적이라고 보는 건 무엇 때문일까. 남자 없는 삶을 상상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강연을 앞두고도 문의가 왔단다. “남자인데 가도 됩니까?” 여성 생활 문화 공간이라서 여성이 우선이며 정원이 이미 차서 받지 못했다고 한다. 당혹스러웠을 거 같다. 남자가 남자라는 이유로 거절당하는 것이 한국 사회에서 흔한 일은 아니니 말이다.


충만한 1박2일을 보내고 집에 와서 봄봄이 들려준 선물상자를 열었다. 쌀·멸치·깨소금·들깻가루·양말·수첩이 옹기종기 붙어 있다. 이런 살뜰한 챙김에서 깨닫는다. 다른 삶을 상상하라고 말하지만, 그러한 “세상은 우리의 깊은 관심과 소중히 여김의 소용돌이와 회오리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124쪽)”을.







* 시사인 '은유 읽다'



우리가 한바탕 이별했을 때

[은유칼럼]

마흔이 되자 친구들이 이혼하기 시작했다. 배우자가 무책임해서, 시댁이 무례해서, 같이 있기 싫어서 갈라선다고 했다. 남 일은 아니었다. 나도 한달간 떨어져 지냈다. 사람이 이토록 미워지는 마음이 참 낯설었는데, 내가 지은 밥을 그가 먹는 게 싫어질 지경에 이르렀을 때 결심했다. 소설가 위화는 책을 읽다가 재미없으면 덮는단다. 계속 읽으면서 작가를 미워하긴 싫기 때문이라고 했다. 책장 덮듯 나도 얼굴을 덮고 싶었다.

‘한부모 여성 가장’이 된 친구들은 아이에게 이혼 알리기를 가장 어려워했다. 아이가 어릴수록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다. 회사 일로 떨어져 지낸다, 아빠는 외국에 갔다는 철 지난 유행가 같은 이유를 둘러댔다. 결혼 10년간 한 번도 생활비를 준 적 없는 남편과 헤어진 선배는, 짐을 벗어버렸는데 생각만큼 후련하지 않고 살아갈 힘도 같이 사라졌다는 야릇한 말을 남겼다. 인간은 얼마나 복잡한 존재인가.

나는 타협했다. 여자로서 독립적이나 엄마로서 자립적이지 못했다. 대체 양육자가 없으니 어차피 오래 끌 수 없었다. 아이를 위해 참고 산다는 말. 비주체적이고 비겁해 보였지만 그 참음이 다른 고통보다 나으니까 참아졌다. 사랑으로 한시절 살았기에 사랑 없이 한시절 살아갈 수 있었다. 친구 따라 이리 뒤척, 내 맘에 지쳐 저리 뒤척 하는 동안 나라는 존재의 나약함에, 여성이란 종의 고통에 조금씩 눈떴다.

그때, 우리가 한바탕 이별했을 때 ‘고민거리’로 여겨졌던 아이들의 존재가 들어온 건 근래다. 이십대가 된 내 아이 또래가 글쓰기 수업에 오면서 ‘헤어진 부모’에 관한 글이 부쩍 늘었다. 부부 싸움이 시작되는 전조를 감지하는 초조, 쟤만 없으면 당신이랑 안 산다는 말에 덴 자국, 아빤 외국에 갔다는 엄마의 세뇌, 아빠의 재혼 소식을 엄마에게 전하며 울던 기억, 집에 놀러 온 친구가 너도 아빠 없니? 나도 따로 살아, 라고 말해 비밀 친구가 된 일화, 조손 가정이란 구멍을 메우기 위해 죽기로 공부에 매달렸다는 고백.

약자에 가려진 약자가 있었다. 아이들에게 이혼은 어느 날 부모 한 명이 증발하는 일이고, 남은 부모의 안색을 살피는 고도의 정신노동이 부과되는 삶이며, ‘너라도 잘 커야’ 하는 장기 채무가 발생하는 사건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어떤 고통도 주지 말라는 게 아니라 옆에서 생생한 아픔을 겪는 한 존재가 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애들은 몰라도 되는 어른 문제 따위는 없다는 것이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6살 여자아이 ‘무니’의 무지갯빛 표정이 화면을 꽉 채운다. 싸구려 모텔에서 단기투숙자로 미혼모 엄마와 사는 아이는 가난과 결핍의 공간을 생성과 자극의 놀이터로 만든다. 이 낙담하지 않는 악동은 자신의 신묘한 능력을 고백한다. “난 어른들이 울려고 하면 바로 알아.” 엄마의 기후 변화를 귀신같이 감지하는 것도 아이고, 어떤 절망에 빠졌어도 라면 수프 같은 복원력으로 생기를 되찾는 것도 아이다.

“고통이 아픔을 준다는 것이 고통에 반대하는 논거가 될 순 없다”는 니체의 말을 생각한다. 인간은 최악의 상태에서 진정한 통찰과 만난다는 뜻이다. 한부모 가정 아이는 불행하다기보다 예민하다. 그 예민함의 촉수로 무니가 타인의 슬픔을 포착하듯 또 다른 무니들이 삶의 무수한 장면을 읽어내고 속 깊은 글을 써내는 걸 나는 본다. 그래서 묻게 된다. 이혼은, 한부모 가정은, 누구의 무엇을 언제를 기준으로 결핍이고 약점일까. 나와 내 친구가 오매불망 걱정했던 그 작았던 아이들은 자기 고통을 응시하고 기록하는 사람으로 옆에 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39511.html?_fr=mt5#csidx70d0137672b79808b04799e10a3f06e 

세상에 '그냥 엄마'는 없다

[은유칼럼]

"한 사람과 한 단어의 진정한 만남에 기회가 필요할 때도 있다. (…)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일생에서 수많은 단어를 만나지만, 어떤 단어들은 한눈에 이해할 수 있는 데 비해 어떤 단어는 평생을 함께 지내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37쪽).” 

중국 문화대혁명 속에서 성장한 소설가 위화는 그 단어를 ‘인민’으로 꼽는다. 스물아홉 살에 작은 시위 현장을 목격하고 인민을 진정으로 이해했다고 고백한다. 내게 그런 단어가 무엇일까 생각하니 ‘엄마’가 떠오른다. 부르기도 많이 불렀고 불리기도 제법 불렸다. 엄마에게 전적으로도 의탁했던 시기엔 공기처럼 망각했던 말. 출산을 한 뒤로 피부처럼 몸에 달라붙어버린 단어. 

ⓒ시사IN 자료

엄마라는 말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냥 엄마’는 없기 때문이다. 임신에서 출발해 신생아 엄마, 돌쟁이 엄마, 유치원생 엄마, 중학교 2학년 엄마, 수험생 엄마, 실습생 엄마, 군인 엄마 등 생애주기에 따라 다른 엄마의 옷을 입고, 상황에 따라 비염에 걸린 아이 엄마, 가해자 엄마, 학급 모임에 안 나오는 엄마도 되어본다. 매번 낯설고 계속 헤맨다. 둘째 아이는 첫째와 기질이 다르니 양육 경험이 무용하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듯 같은 엄마를 두 번 사는 경우는 없다. 

얼마 전 아들이 군 생활을 마치고 제대했다. ‘군인 엄마’는 가장 난해한 엄마 체험이었다. 입대 날짜 받아놓았을 때, 먼저 아이를 군에 보낸 선배가 말했다. “너, 글 쓸 거리 매일 생길 거다.” ‘글감이 많다는 건 풍파가 많다는 뜻인데….’ 무지는 불안을 조장했다. 아이가 신병훈련소에 있을 땐 날마다 육군 홈페이지에 접속해 편지를 썼다. 군부대 카페 게시판 클릭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소대 ‘밴드’에도 가입했다. 아, 구속이여. 군인 엄마로서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다가 ‘전쟁없는세상’이라는 단체에 가입해 후원금을 냈다. 여기저기서 정보를 챙기고 불안을 글로 달랬다. 

어느덧 나는 아들이 휴가를 나와도 사발면 사놓고 외출하는 의연한 엄마가 되어갔다. 바로 그 무렵 휴가 나온 아들이 귀대하며 말했다. 어제 여자친구와 헤어졌다고. 만 3년을 교제했다. 여자친구는 나와는 아들 면회도 같이 갔던 사이니, 우리의 인연도 종료되는 셈이었다. 아들을 보내고 나는 자꾸 눈물이 흘러 애를 먹었다. 아들과 감정선이 연결된 느낌은 아이가 열이 날 때 대신 아프고 싶은 마음과는 또 달랐다. 이것이 슬픔의 공동체인가. 그 경험은 나에게 엄마라는 말의 지평을 넓혀주었다. 군 복무 중 애인과 헤어진 아들의 엄마까지 해보자 엄마 레벨이 상승하는 것 같았다. 

연이어 망각하고 배신하는 단어, 엄마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위화 지음김태성 옮김문학동네 펴냄

위화는 “한 개인의 운명을 결코 자기 것이라고 할 수 없었던 시대(124쪽)”를 통과했다. 유년 시절부터 소년 시절까지 사형수들이 총살되는 장면을 무수히 목격하고 밤마다 꿈속에서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에게 쫓긴 이야기를 터놓으며 “정신이 허물어지는 아슬아슬한 가장자리를 걸어온 것 같다(156쪽)”라고 쓴다. 그가 추락하지 않고 살아낸 건 글쓰기의 힘이었다. “글쓰기의 세계에서는 이렇게 억압된 욕망과 감정을 충분히 표출할 수 있다. 나는 글쓰기가 사람의 심신 건강에 큰 도움이 되고 더욱더 완전하게 만들어준다고 믿는다(147쪽).” 

한 개인의 운명을 자기 것이라고 할 수 없는 삶인 엄마. 날마다 나를 생초보로 리셋시키는 환장할 엄마 노릇이 아니었으면 글쓰기를 시작하지 않았을 거 같다. 뭐라도 쓴 덕에 몰락을 피했다. “가장 먼저 인식하고 쓴 단어였지만 살아가면서 연이어 망각하고 배신했던 단어(37쪽)”, 엄마를 오늘도 산다. 


- 시사인에 실림


웅크린 말들 - "원하는 돈 줄테니까 덮고 가자"

[은유칼럼]

한강 다리는 서른한 개다. 하나씩 두 발로 건너보리라 언제부터 다짐했다. 아름다운 한강을 살뜰히 만끽하려는 서울내기의 욕심이고 목표였다. 성산대교, 양화대교, 한강대교, 원효대교, 마포대교, 잠실대교를 걷고 나선 진척이 더뎠다. 봄기운 깃드는 3월 6일, 반포대교를 건넜다.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 11주기 ‘방진복 행진’에 참가했는데 그 구간에 반포대교가 포함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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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지는 한남동 리움미술관 앞. 미술관 건너편에 붉은색 높은 담장이 보였다. 저 안쪽이 삼성 총수 일가 자택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저기가 대대손손 태평성대를 누리는 재벌보호구역이구나. 그 성벽 아래에서 백여 명이 일사분란하게 방진복을 입고 손에는 희생자의 영정을 들었다. 내가 든 영정에는 최호경, 1985~2013년, 뇌종양, 삼성LCD천안이라고 써 있다. 나이를 헤아려보니 스물여덟 생애다. 고 황유미가 스물셋. 다른 영정들도 거의 20, 30대에 생을 마감한 여성이다. 백혈병이나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다.

 

“삼성은 직업병 문제 해결하라” “삼성은 산재 은폐 중단하라” 리움미술관을 나와 이태원 대로변을 구호를 외치며 걸었다. 길가에는 KUHO, 에잇세컨, Beaker, 빈폴 등 삼성그룹 의류브랜드 매장이 즐비하다. 바삐 걷던 파란 눈 외국인도, 카페를 나오던 젊은 연인도 걸음을 멈추고, 우편배달부 아저씨도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다가 힐끔 방진복 대열에 눈길을 준다.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입구에서는 한 중년 아주머니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나무라듯 말한다.

 

“삼성을 어여 나와요. 뭐 하러 있어. 사람이 이렇게 죽는데, 다른 데로 가면 되지.”

 

내가 삼성 직원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아, 저는 삼성에 다니지 않아요”, 말했더니 아주머니는 흠칫하며 “그럼 뭐 하는 사람이에요” 물었다. “삼성 직업병 문제 해결을 바라는 사람인데...” 웅얼웅얼 둘러대고 일행을 따라갔다. 녹사평역을 지나 용산구청 앞을 걸으며 생각했다. 내가 삼성 직원이었으면 직업병 문제가 있다고 해서 그만둘 수 있었을까, 나는 뭐 하는 사람이지. 왜 여기에 있지.

 

2010년 11월 8일, 내가 공부하던 연구공동체에서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을 초대해 토론회를 가졌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에 맞서 15년간 긴 싸움을 벌여온 위원장은 한 뼘 두께의 투쟁 백서와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삼성 백혈병 노동자의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나는 충격과 혼란에 빠졌다. 조직폭력배들이 나오는 공포 영화처럼 끔찍했고, 전태일 평전을 읽었을 때처럼 비통했다.

 

이게 지금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삼성에서 노조 만들다 미행당하고 해고되고 감옥 가고 일하던 젊은 처자들이 병을 얻어 죽고 유가족이 회유와 협박에 시달리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보다 그게 신문에 기사 한 줄 나오지 않았다는 게, 그러니까 1980년 5월 광주처럼 언론이 철저히 통제된다는 사실이 믿기질 않았다. 이 지독한 고립을 어떻게 견디고 싸웠느냐고 위원장에게 물으니 이렇게 답했다. 

 

“돈에만 매수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게 없습니다.”

 

그날 토론회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눈물이 쏟아졌다. 그냥 무서웠던 거 같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아니, 이런 일이 일어나는 세상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되물으며 걷고 걸었다. 연희동에서 목동까지 성산대교를 건너며 강물에, 하늘에, 거리에, 가슴에 내용 없는 결심들을 막 뿌렸던 거 같다. 다음 날 삼성일반노조에 월 2만 원을 후원하기 시작했다. 삼성 내부비리를 고발한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를 폈다. 삼성 백혈병 노동자를 돌보던 의사이자 활동가 공유정옥 씨를 인터뷰했다. 조금씩 알아갔고, 알게 되면 뭐라도 열심히 쓰고 썼다.

 

“애써 말해야 하는 삶들이 있다. 말해질 필요를 판단하는 것이 권력이고, 말해질 기회를 차지하는 것이 권력이다. 말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권력과 거리가 먼 존재일수록 말해지지 않는다.”

(『웅크린 말들』 , 478쪽)

 

방진복 행진 쉬는 시간. 반포대교 북단 아래 벤치에서 강물을 바라보았다. 강남 강변 풍경이 낯설다. 낮은 병풍 같던 아파트 라인이 사라지고 주상복합 건물 네 채가 미사일처럼 우뚝하게 솟았다. 높고 높다. 며칠 전 부산 엘시티 공사현장 55층에서 일하던 노동자 네 명이 추락사한 사건이 떠올랐다. 저 휘황한 건물은 또 얼마나 많은 무명씨의 목숨을 삼켰을까. 내게 낭만의 상징이었던 한강의 서른한 개 다리들, 교각 공사라고 산재 예외 구역은 아닐 것이다.

 

다시 걸었다. 이재용을 풀어준 정형식 판사에게 항의하는 의미에서 법원 앞으로 가는 길이다. 뒤편에서 고 황유미 아버지 황상기 씨가 방송사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죽어가는 딸을 뒷좌석에 태우고 달리던 속초의 택시운전사, 언제나 웃고 있는 동자승 같은 얼굴, 순한 억양의 강원도 사투리가 오늘따라 쟁쟁하다. 말하려고 노력하는, 권력에서 먼 존재의 목소리가 들린다.

 

“삼성은 저희 집에 찾아와서 ‘원하는 돈 다 줄 테니까 이 문제 덮고 가자’고 수없이 얘기해댔지만 전부 거절했어요. (...) 죽은 유미가 살아 돌아올 수 없고, 삼성에서 살기 위해 일하다가 많은 노동자들이 병에 걸리고 죽었고, 또 돌본 가족들은 가정은 파탄이 났어요. (...) 이 자리에서 일일이 나열할 수 없지만, 수많은 잘못을 저지른 삼성을 정부가 한번 제대로 처벌해본 적이 있냐고 묻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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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삼성그룹에서만 320명의 직업병 피해 제보가 있었고, 118명이 목숨을 잃었다. 2013년엔 삼성전자서비스에서 에어컨 수리기사로 일하던 서른두 살 최종범 씨가 ‘노조 인정’을 요구하며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유가족인 형은 말한다. “삼성 조끼를 입은 동생의 자부심도 컸습니다. (...) 동생은 개처럼 일했습니다. 스스로를 ‘여왕개미’(삼성)을 먹여 살리느라 죽어나는 일개미라고 동료들에게 말하곤 했습니다.”(125쪽) 그로부터 7개월 뒤, 염호석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양산센터 분회장도 노조를 인정하라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또 하나의 가족은 없다. 황상기 씨가 지적한대로, 삼성그룹 안에서 수많은 목숨이 사라져가는데도 경영진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올림픽에서 스케이트 타던 선수가 팀워크만 해쳐도 60만 명이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사회적 형벌을 내리는 ‘도덕의 나라’에서 삼성의 부도덕한 경영에는 죄를 묻지 않는다. 권력의 꾀임에도 굴하지 않고 존엄을 지키는 사람들, ‘돈에 매수되지 않’은 이들이 기적처럼 살아남아 삼성에서 벌어진 죽음의 진실을 전할 뿐이다.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네 시간, 9킬로미터 걸어서 삼성본관 앞 반올림 농성장에 도착했다. 허물처럼 방진복을 벗고나자 갑자기 발바닥이 아려와 나는 황급히 택시를 탔다. 안락하게 앉아 건너는 한남대교는 그리 비관적이지 않았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또 잊고 살겠지. 다리든 빌딩이든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자그마한 사망자 위령탑이 세워지면 좋겠다. 나는 삼성제품을 사용하지 않은 지 오래됐지만, 삼성 TV나 에어컨, 핸드폰 사용설명서 한 귀퉁이에라도 이 제품을 만들다가 돌아가신 이들 이름 석 자 새겨주면 좋겠다. 고인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 생활 터전이, 문명의 편리가 누군가의 죽음에 빚지고 있음을 기억하도록.

 

*채널예스에 실림



여자들은 왜 늘 반성할까

[은유칼럼]

북토크 자리에서 한 20대 여성이 질문했다. 친구들과 수다 떨다 보면 남자들 외모 평가를 하게 되는데 페미니즘을 공부한다는 사람이 그래도 되는지 양심에 찔린다는 거다. 나는 우선 드는 생각을 얘기했다. “이렇게 자기 행동을 객관화하는 분이라면 타인을 대상화할 가능성은 적어 보이는데요.” 이성애자가 이성에게 관심을 갖고 표현하는 행위는 자연스럽다. 다만 허벅지, 가슴, 허리, 다리, 입술 등 ‘신체 부위별’로 쪼개서 사람을 보다 보면 ‘통합적 인격’으로 보지 못하고 사물화하게 된다. 단톡방에서, 술자리에서, 컴퓨터 앞에서 외모 평가를 일삼다가 실제로 만난 사람을 사람으로 존중하지 못하고 그 사람에게 (성)폭력을 휘두르는 일까지 발생한다. 

이것이 문제다. 쟁점은 외모 평가 자체라기보다 ‘누가 외모 평가를 하느냐’ ‘그 외모 평가가 무엇을 파생시키느냐’다. 미국에서 총기 사용이 전 국민에게 허용되지만 가해자의 90%는 남성이라는 통계를 일례로 들려주었다. 페미니즘이 외모 평가를 금지하는 매뉴얼이 아니라 어떤 말과 행동이 놓인 상황과 맥락을 다층적 관점으로 헤아리는 공부라고 할 때, 외모 평가라는 행위 자체만 떼어놓고 죄의식을 갖는 건 올바른 접근이 아닐 것이다. 

ⓒ시사IN 신선영

사실, 그날 내가 느낀 문제점은 따로 있었다. 여자도 외모 평가를 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조차 왜 여자는 반성을 할까 하는 점이다. 여성은 ‘자기 처벌’ 정서에 익숙하다. 아버지들의 경제적·정서적 무능, 가정 폭력에 대해서도 어머니들은 뒤돌아 가슴을 치며 ‘내 팔자다, 잘해주면 돌아온다, 남편 복이 없어서 그렇다’고 말했다.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도 ‘밤늦게 술자리에 있어서’ ‘여지를 주어서’라며 자기 행실을 먼저 되돌아본다. 외모 평가를 당할 땐 참아도 외모 평가를 행할 땐 가책을 느낀다. 나도 젠더 이슈로 불화를 겪으면 내 언행부터 점검한다. 말이 공손하지 못했나, 너무 민감했나 수없이 자책한다. 

여성의 신체는 거의 자동 반성 모드다. 왜들 그럴까. 남성 지배적 문화에서 여성은 불합리한 상황에 자주 노출된다. 그때마다 시비를 가리고 싸우고 상황을 바꿔내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남자는 원래 그런 종족이고 여자는 원래 그렇게 사는 거라고 배웠다. 원래 그런 것을 두고 왜 그런지 뿌리부터 따지자니 어렵고 복잡한데,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는 건 쉽고 간단하다. 자기반성으로 상황을 무마하고 또 일상을 살아가고, 그랬던 게 아닐까 싶다. 

왜 여성은 ‘자동 반성 모드’여야 하는가 

홍성수 지음, 어크로스 펴냄

이 같은 여성의 습관적 반성과 침묵으로 다져진 성차별의 역사에 균열이 일고 있다. 여자도 말을 한다. 남자의 외모와 언행을 평가하고 되갚는다. ‘김치녀’라는 공격에 ‘한남충’으로 맞불을 놓는 일명 ‘미러링’이라는 흐름도 생겼다. 이는 후련함과 통쾌함도 주지만 앞서 질문한 여성이 느끼는 것처럼 혼란과 불편도 남긴다. 나도 처음에는 여성들이 구사하는 거침없고 도발적인 말들이 낯설고 어색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미러링은 혐오가 목적이라기보다 뒤집어 보여주기 (213쪽)” 위한 수단이다. “여성들의 저항이 중요한 것이지, 미러링이라는 형식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제 반성과 검열의 삶과 작별하고, 욕이 섞여 있든 비논리적이든 울먹이든 막무가내든 말하는 주체의 탄생에 박수칠 때다. “비하적인 혐오 표현에 대해 웃어넘기거나 침묵하지 않고 조목조목 문제점을 따지(222쪽)”는 목소리가 ‘정상’이고 ‘일상’이 되는 현실에 모두가 길들여져야 한다. 섣부른 반성과 침묵으로 복잡한 삶의 문제에서 도망가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딸 없으면 공감 못하나

[은유칼럼]

여자들과 달리 남자들은 동성 친구에게 힘든 얘기를 잘 안 한다고 남자 지인이 말했다. 그 자리의 네댓 명이 대체로 동의했다. 내 아버지나 남편, 동료들을 봐도 결정적인 고민은 남들과 공유하지 않는 눈치였다. 나는 힘든 일이 생기면 친구랑 전화통 붙들고 운다. 친구의 긴급 호출도 물론 온다. 이런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 왜 그런지 토론했다. 한 중년 남성은 사회생활의 경쟁 시스템에선 하소연이 곧 약점이 되어 불리하니까 숨긴다고 했다. 

여자들의 고민 공유, 즉 수다는 약자들의 연대라고 나는 말했다. 말해봐야 잃을 것도 없고, 말이라도 해야 후련하니까. 일종의 궁여지책이다. 품앗이처럼 말하고 들어준다. 그러면서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타인의 처지도 공감하고 현실을 받아들이고 또 하루를 살아간다. 난 어려서부터 엄마가 친지랑 전화 통화하는 걸 엿들으며 여자의 일생을 배웠다. 이런 소소한 일상의 누적이 여성의 공감 능력을 신장시켰을 거다. 반대로 ‘센 척’하느라 말하고 듣는 과정을 의도적으로 생략한 남성은 공감 능력을 학습할 기회가 없었을 테고. ‘수다’를 떨지 않는 아버지들은 풀어내지 못한 자기 고충을 ‘주사’로 토한 것도 같다. 

모든 존재의 행위는 저 살려고 하는 일. 여성학자 벨 훅스가 말한 ‘감정적 자기 절단’이 남자들 생존에 유리한 시대가 있었다. 그 긴 세월 부작용이 일상의 폭력을 낳았음을 미투운동이 증명한다. 미투운동이 일자 술렁이는 여자들에 비해 남자들은 잠잠했다. 참회하느라 그런다, 켕겨서 그런다, 조심하느라 그런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내가 볼 땐 몸치처럼 주춤했던 거 같다. 타인의 고통에 깊게 개입하고 슬픔의 장단을 맞춰본 적이 없기에 언제 어떻게 끼어들어야 할지 모르는 상태. 

그 와중에 딸 키우는 아빠로서 미투운동을 지지한다는 글을 봤다. 어딘가 궁색하고 근원이 수상쩍다. ‘아무 남자에게 내 딸 못 준다’는 말이나, 티브이 자막에 박히는 ‘딸바보’ 인증이 거북살스러운 것과 유사한 맥락이다. 자식을 소유물로 여기는 가부장 정서와 내 핏줄의 안위가 중한 가족주의에 기반한 발언이다. 그냥 단독자로서 어른 남자이기만 해서는 남의 아픔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건 많이 어색하고 어려운 일일까.

평창겨울올림픽에서 헬멧에 세월호 리본을 부착한 김아랑 선수가 화제였다. 환한 미소만큼 인품이 돋보였다. 속사정을 알진 못하지만 김아랑 선수의 공감이 적어도 부모나 누이로서, 즉 혈연을 매개로 한 반응이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료 시민으로서 슬퍼하고 슬픔의 인파가 빠져나간 자리에서도 묵묵히 애도했기에 울림이 더 컸다. 

한 사람의 공감 능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계속 질문하는 중이다. 여자라서, 아이를 키워봐서, 딸이 있어서처럼 저절로 주어지는 것들이 계기가 될 순 있어도 공감의 지속 조건이 될 순 없다. 배움이 필요하다. 글쓰기 수업에 오는 어른들도 느끼는 능력을 갈구한다. 남 일에 무관심하면 ‘더 빨리 더 높게’ 사회적 성취를 올릴지 모르겠으나 자신과의 서먹함, 관계의 무능함으로 삶의 다른 한쪽이 허물어지는 탓이다. 

내가 아는 공감 방법은 듣는 것이다. 남의 처지와 고통의 서사를 듣는 일은 간단치 않다. 자기 판단과 가치를 내려놓으면서, 가령 왜 이제 말하느냐 심판하는 게 아니라 왜 이제 말할 수밖에 없었을까 이해하려 애쓰면서, 동시에 자기 경험과 아픔을 불러내는 고강도의 정서 작업이다. 온몸이 귀가 되어야 하는 일. 얼마 전 엽서에서 본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당신이 할 말을 생각하는 동안 나는 들을 준비를 할 거예요.’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35429.html?_fr=mt5#csidx3a639e46adcb520a719e3ecd68f7430 

눈물의 목격자, 스물두살 자동차를 보내며

[은유칼럼]

'열일곱 살 자동차'라는 그림책이 있다. 같은 해에 태어난 아이와 자동차가 17년이라는 세월을 함께하는 이야기다. 따뜻한 그림과 내용에 공감하면서도 으쓱했다. 우리 집에는 그보다 더 오래된 자동차가 있다. 무려 스물두 살! 사람으로 치면 백 살쯤 될 거 같은데, 그림책이랑 상황이 비슷하다. 

첫아이가 태어난 해에 구입했다. 짙은 녹색의 성능 좋은 자동차는 아이를 돌잔치에도, 할머니댁에도, 입학식과 졸업식에도 데려다주었고 성인이 되어 군에 입대하는 날까지 동행했다. 아이를 신병 훈련소에 보내놓고 눈물 훌쩍이며 집으로 오는 길 새삼 쇳덩이인 자동차가 둘도 없는 살붙이처럼 느껴졌다.

비유가 아니라 사실이다. 자동차가 아이와 생애 주기를 같이한 동년배라면, 내게는 구질구질한 눈물콧물 다 받아준 속 깊고 품 넓은 비밀친구 같은 존재다. 지금도 가끔 떠오른다. 작은아이는 유치원에 있고 큰아이는 태권도 학원에 갔을 때 막간을 이용해서 차 몰고 장을 보러 가곤 했다. 집에서 마트까지, 마트에서 집까지. 왕복 30~40분 정도의 시간이 유일하게 나 홀로 있는 시간, 고독을 누리는 호젓한 기회였다.

집에서도 혼자 있지만 집은 번잡스러운 노동의 공간이지 고요가 고이는 공간은 아니다. 게다가 집이 퍽 좁았다. 20평형 아파트에 네 식구 기본 살림뿐인데도 남은 공간이 손바닥만 했으니 발 뻗고 누우면 몸이 레고블록처럼 방에 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가슴에서 뭐가 해일처럼 수시로 밀려왔고 그것을 애써 눌러두곤 했다. 애들 보는 데서 울면 안 되니까. 그렇게 저만치 밀쳐놨던 눈물이 꼭 차에서 터졌다. 일몰의 쓸쓸함과 음악의 척척함 효과도 컸으리라. 

어떤 날은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해도 눈물이 멈추지 않아 마저 울고 안 운 사람처럼 얼굴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집으로 갔다. 감쪽같이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그 모든 걸, 내 눈물범벅 청승의 역사를 자동차는 지켜보고 있었던 거다.

며칠 전, 스물두 살 자동차를 보냈다. 작년부터 치매에 걸린 것처럼 수시로 말썽을 일으켰다. 오디오도 안 되고 계기판이 멈추고 창문이 안 올라가고, 최근에는 지방에 갔다가 차의 시동이 안 걸려 긴급 서비스를 불러서 겨우 왔다. 안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또 자동차도 자신을 다 소진해 봉사했으므로 보내주었다. 큰아이 제대할 때 그 차로 데려오고 싶었는데 제대를 한 달 앞두고 포기했다. 자동차를 폐차장에 보내는 날, 유독 정성스럽게 차를 가꾸고 타서 ‘세차맨’이란 별명으로 불린 남편도 끝내 눈물을 비쳤다. 나도 눈물이 멈추지 않아 애를 먹었다.

이것이 눈물의 완창인가. 박연준 시인이 친구 앞에서 마음 푹 놓고 실컷 울어댄 일이 있는데 그걸 두고 친구들이 “완창”(판소리의 한마당을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는 일)이라 부르며 놀렸다고 한다. 한 세월 떠나보내는 느낌, 사연 한 편 완성되는 느낌으로 더없는 표현이다.

요즘 나는 해일처럼 밀려오는 감정에 익사당하지도, 폭포 같은 눈물에 잠식되지도 않는다. 재무구조가 개선되지는 않았지만 집은 넓어졌고 조용히 울 수 있는 방도 생겼는데 예전보다 덜 운다. 나이 들면 머리숱이 줄고 생리양이 줄듯이 눈물도 줄어드는 걸까. “가끔 그때가 그립다. 이제는 체력이 달려서 그리고 그만큼 슬프지가 않아서 완창을 할 수가 없다. 살면서 완창은 그리 자주 오는 것이 아닌가 보지?(50쪽)”

한 세월이 갔다. 눈물도 잦아들고 눈물의 목격자도 떠났다. 멀리서 지켜봤을 거 같다. 내가 모처럼 사연 있는 여자처럼 한바탕 운 사연을 나의 스물두 살 자동차는 알리라.

<소란>, 박연준


- 시사인 은유 읽다에 실림


성폭력 가해자에게 편지를 보냈다

[은유칼럼]

최근에 폭탄처럼 터지는 성폭력 사건을 보면서 부대꼈다. 내가 당한 크고 작은 피해 경험과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전해 들었던 피해자들 이야기가 일제히 대책없이 되살아났다. 몸의 기억이 들쑤셔져서 잠 못 이루는 피해자가 얼마나 많을지 상상할 수 없다. 집단 트라우마다. 그 와중에 이 책을 집어들었다. 제목이 『용서의 나라』 라니 사실 미심쩍었다. 성폭력과 용서라는 말은 양립 불가능한 조합 같았다. 적어도 한국사회에선. 

 

성폭력 피해 생존자 이름은 토르디스 엘바. 아이슬란드에 산다. 16살 소녀일 때 교환학생을 온 남자친구와 사귀었고 강간당한다. 가해자는 자기 나라인 오스트레일리아로 가버린다. 그후 토르디스는 섭식장애, 알코올 중독, 자해 등 고통을 겪다가 9년 만에 가해자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으로 용서의 첫걸음을 뗀다. 

 

사건의 핵심 명제, 성폭력은 강자가 가까이 있는 약자에게 가하는 폭력이라는 것. 토르디스가 사랑하는 사람인 애인에게 당했듯이 내가 본 성폭력 피해자의 90%도 아는 사람에게 당했다. 아버지, 삼촌, 이모부, 오빠, 선배, 친구, 담임선생님, 교수, 직장 동료, 남편 등등. 그들은 힘으로든 돈으로든 지위로든 피해자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렇게 “믿을 수 있다고 여겨지는 이들”에게 당했기에 여파가 크다. 피해자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바로 알아차리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나는 네가 나한테 한 행동이 강간이라는 걸 몰랐어. 신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상처가 컸는데도 말이야.” (192쪽) 가까스로 인지한 다음엔 가해자가 아니라 자기를 혐오한다. “첫 이성 관계에서 참혹하게 실패한 후로 나는 스르로의 판단을 믿을 수가 없었다.”(23쪽)는 토르디스의 고백은 피해자들이 공통으로 겪는 아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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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성폭력은 한 사람을 관계 불능의 존재로도 만든다. 초등학생 때 선생님에게 성폭력을 당한 한 여성은 서른을 바라볼 때까지 친구도 애인도 없었다. 교우 관계나 이성 관계에서 친해질 만하면 떠나가는 식으로 관계를 기피했다고 한다. 믿었던 사람들도 “나를 그렇게 철저히 능욕했는데 대체 누구를 믿을 수 있단 말인가.”(68쪽) 그래서 피해자들은 “오랜 세월 동안 자기를 혐오하며 주변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밀쳐내다 보면 누군가를 보살피거나 거꾸로 보살핌 받기가 힘들어진다.”(223쪽) 

 

성폭력 피해자의 시간은 정지한다. 성폭력 피해 사실을 말하면, 왜 수년이 지났는데 지금 말하느냐는 반응부터 나온다. 시간은 만인에게 공평하게 흐르지 않는다. 이제 와서 말하는 게 아니라 이제 겨우 말하는 거다. 친척에게 17살에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는 열일곱, 스물일곱, 서른일곱 등 10년 단위로 악몽에 시달렸다. 그 해마다 몸이 아팠고 일상이 무너졌다고 했다. 고등학생 때 오빠에게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는 그 오빠의 딸이 결혼할 정도로 세월이 흘렀음에도 복수를 꿈꾼다. 조카의 결혼식장에 찾아가서 ‘사실을 폭로하는’ 상상을 한다. 

 

토르디스는 16살에 강간을 당하고 25살에 가해자에게 편지를 보냈다. 사건을 자기 밖으로 꺼내기까지 9년이 걸렸다. 아무런 표현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일이 없는 건 아니다. 피해자들은 “부서진 자아를 감추”(22쪽)기 위해 과도할 정도로 성취하거나 반대로 무기력에 빠져버린다. 겉보기에 멀쩡한 듯 일상을 영위하면서 내면에서 전쟁을 치르며 “나 자신이 주제하는 재판”을 수시로 여는 것이다. 

 

『용서의 나라』 에는 용서의 또 다른 주체인 가해자의 목소리가 들어있다. 톰 스트레인져는 깊게 반성하고 사건 해결에 적극적으로 임한다. 여기서 적극성이란 최대한의 소극성이다. 토르디스가 주로 말하고 톰은 그저 듣는다. 침묵과 경청으로 자신의 의견과 입장을 표현한다. 자기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하나하나 배워간다. 

 

“너는 그날 밤 그래도 되는 권리가 네게 있다고 느꼈겠지.” (179쪽) “내가 여자라서 강간했잖아. (...) 넌 어디선가 배웠을 거야. 네 즐거움이 내 동의보다 더 중요하다고.”(282 쪽)  이 모든 진실 말하기를 겪어내고 톰은 의견을 낸다. “나도 일원이 되고 싶어. 문제의 한 축이 아니라 해결의 한 축이라는 느낌을 갖고 싶어.” (393 쪽) 

 

두 사람은 그렇게 용서를 도모한다. 8년간 300통의 편지를 교환하고, 16년 만에 중간지점인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직접 얼굴을 마주한다. 쓰고 읽고 듣고 말하며 서로의 언어에 길들여지는 시간을 갖는다. 각자 어렸을 적부터 살아온 과정을 시시콜콜 나누면서 그 맥락에서 성폭력 사건을 들여다보고 이후 고통의 일상까지 소상히 공유한다. 이 탄탄한 밑작업을 통해 한 사람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얻는다. 

 

토르디스는 말한다. 나는 강간당한 적이 있지만 그게 날 ‘희생자’로 만들진 않는다고. 사람은 평생 살면서 좋은 일도 하고 나쁜 일도 한다고. 나라는 사람이 그날 밤 일어났던 일로 축소될 수는 없고, 그건 너도 마찬가지라고. “용서의 핵심은 짐을 덜되 그 짐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않는 거야. 그 짐이 원래 그 사람의 몫이라 하더라도 말이야.”(68 쪽) 

 

두 사람에게 용서란 자책을 넘어서 자기 행동으로 나아감이다. “자책하는 것과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것은 다르다. 전자는 자기 채찍질로 이어져 자기 연민에 빠져 살게 만든다. 후자는 자기 너머를 보기 때문에 타인과 관련 지어 자기 역할을 찾아낸다.”(438 쪽) 토르디스와 톰은 자신들이 16년간 기울인 그야말로 “태산 같은” 노력을 가족에게 친구에게 차츰 터놓다가 책으로 테드 강연으로 모르는 전 세계 타인들과 공개한다. 세상을 바꾸기 위한 ‘자기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용서의 나라』 를 읽는 내내 분노하고 의심하다 안도했다. 성폭력 사건이 믿기지 않는 것만큼 용서의 귀결도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저게 가능한가 싶었는데, 가능하게 되어가는 장대한 여정을 따라가면서 나는 성폭력 사건의 복잡성과 다층성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거 하나는 분명하다. 용서는 신이 지급하는 쿠폰이 아니고 인간의 용기를 거름 삼아 자라는 나무라는 것. 그래서 가해자와 피해자, 공동체 구성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용기 내어 정성스럽게 가꾸어야 한다는 것 말이다. 살아있음 자체가 용기다. “삶은 계속된다. 한껏 이용하라. 네가 가진 게 별로 없다 해도 삶만은 네 것이다.” (451쪽)

 

* 채널예스에 실림

은유 읽다 - 시시콜콜 시詩알콜

[은유칼럼]


5년 만에 해외여행을 간 건 우연한 계기에서였다. 친구가 카카오톡으로 여행 계획을 밝히며 가고 싶으면 붙으라고 했다. 소싯적 ‘줄넘기할 사람 여기 붙어라’에 엄지손가락 잡듯이 나는 붙었고 다른 친구도 붙었다. 여권 번호와 영문 이름을 불러주고 친구가 항공권과 숙소를 예약했다. 그때가 초여름, 여행은 가을. 실감나지 않았다. 집필·강연·살림이 회전문 돌아가듯 들이닥치는 일상에서 나는 과연 일주일간 훌훌 떠날 수 있을 것인가. 

눈을 떠보니 타이 북부 도시 치앙마이. 한국에서 기껏 폭염을 견디고 다시 무더위 복판에 던져졌다. 사놓고 한 번도 못 입은 끈 달린 원피스에 슬리퍼 끌고 손바닥만 한 핸드백 메고 여행자 모드로 변신했다. 휴대전화 로밍은 하지 않았다. 할 일 없이 들여다보는 스마트폰과 읽지도 않을 책을 넣은 무거운 가방에서 해방된 일상은, 가능했고 충분했다. 

이러한 내 쾌락의 이면에 타인의 노동이 있다는 걸 셋째 날이 지났을 때 알았다. 여행을 주동한 ‘친구 1’은 항공사 우수회원에 영어 능통자다. 남의 나라 골목 구석에 있는 음식점도 구글맵으로 척척 찾아낸다. 예약부터 안내, 예산 집행을 가이드처럼 도맡았다. ‘친구 2’는 영상 작업을 한다.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우리들 추억을 기록했고, 특유의 준비성을 발휘해 맛집, 명소 등 여행 정보를 챙겨왔다. 나는 휴대전화 안 됨, 영어 못함, 체력 약함을 핑계로 그냥, 마냥 따라다녔다. 조금 미안했지만 점점 익숙해졌는데 친구 1이 한번은 말해버린 것이다. 

“가만히 있지만 말고 가는 길이라도 찾아 좀.” 

앗, 그건 내가 밥 짓느라 동동거리면서 애들한테 “수저라도 좀 놓아”라고 하는 말의 톤과 뉘앙스였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친구 1, 친구 2는 글쓰기 수업에서 만났다. 나이도 내가 제일 많다. 교실 밖 여행 속에서 나는 ‘쌤’이 아니라 무지렁이가 되었고 그 또한 나쁘지 않다 여겼지만 그건 내 생각이고. 그들 처지에선 여행이 서툴고 ‘원래부터 못한다’라며 두 손 놓은 나를 부리거나 내게 성질내긴 어려웠을 거 같다. 

“우리 팀은 분위기가 좋아. 이상한 사람도 없고.” 팀장이 말하면 팀원들이 겉으론 같이 웃지만 속으로 ‘이상한 사람=너님’이라고 말하는 웹툰을 본 적이 있다. 위계와 위치에 따른 감각은 이토록 다르다. 내가 안락하면 남은 그만큼 힘겨운데 안락한 자는 그 사실을 몰라서 더 안락하다. “마음은 생각보다 훨씬 작고 좁은 곳, 무엇도 영원히 숨길 수 없(184쪽)”다. 그런데도 “티를 덜 내고 감정을 참고 내 자신을 속이는 게 언제부터 어른스럽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는지 모르겠다(181쪽)”. 어른스럽지 않게 티를 내준 친구 1이 고마웠다. 덕분에 어른스럽지 않은 행동을 자각할 수 있었으니까. 

가을 여행 이후, 우린 한겨울에 재회했다. 친구 2가 깜짝 선물을 내밀었다. 나와 친구 1의 사진을 손수 편집한 앨범이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여기는 반캉왓, 와로롯 마켓, 호시아나 빌리지…. “사라져버릴 소중한 ‘그때’를 묵념하는 것 같은 순간들(107쪽)”에 울컥했다. 쓸쓸할 때마다 두고두고 어루만질 실물 추억이 생긴 것이다. 타인의 친절로 떠나고 즐기고 기록된 여행. 사진 속 내가 부자처럼 웃는다. 마음에 쌓아둔 친절을 난 누구와 나눌까. 

‘난 말이지, 사람들이/ 친절을 베풀면/ 마음에 저금을 해둬// 쓸쓸할 때면/ 그걸 꺼내/ 기운을 차리지// 너도 지금부터/ 모아두렴/ 연금보다/ 좋단다’ (저금-시바타 도요, 122쪽).


* 시사인 은유 읽다


페미니스트보다 무서운 것

[은유칼럼]

‘밥 안 해놓는다고 자주 갈등 겪어, 잠자던 딸 둔기로 살해한 아버지’. 며칠 전 본 기사 제목이다. 노예제 사회도 아니고 2018년 1월19일에 한국에서 벌어진 일이라니 믿기질 않아서 몇 번을 읽었다. 여자가 여자라서 화장실 가다 죽고, 안 만나준다고 전 애인에게 죽고, 밤늦게 다닌다고 남편한테 죽고, 미용실에서 일하다 죽고, 술자리에서 희롱당하는 뉴스가 연일 터지는 와중에 유독 충격이었다.


나는 밥에 대한 글을 참 많이 썼다. 뇌의 반이 밥(걱정)으로 차 있어서다. 누구나 자신이 속박된 주제에 대해 쓸 수밖에 없다. 밥 얘기를 쓰면서도 스스로 검열했다. 글감치고는 시시한 거 아닌가, 그깟 밥이 뭐라고, 나라의 명운이 걸린 것도 아니고…. 그래도 꿋꿋이 썼지만 ‘여자는 밥하는 존재가 아니다’라고 하면 그 말은 어쩐지 우스워 보였다. 저 기사를 보니 웃을 일이 아니다. 밥이 전선이다. 밥 때문에 사람이, 여자가, 맞아 죽기도 한다.


집안도 화장실도 거리도 일터도 일상 동선 어디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여성에겐 그렇다. 인구 절반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고 말하면 ‘망상’ 같지만, 나나 내 딸아이나 동성 친구들이 해를 입을 수 있다는 건 ‘예상’ 가능하다. 만약 기독교인이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유색인이 유색인이라는 이유로 하루걸러 죽어도 세상이 잠잠할까. 여성혐오가 대기에 만연하고 사망자가 꾸준히 발생하는데 사람들은 미세먼지만큼도 일상의 재난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주변에서도 안전 불감증을 느낀다. 한번은 강연장에서 한 여성이 조심스레 말했다. 형제를 키우는데 여자애들 등쌀에 아들들 학교생활이 힘들다며 남녀차별 시대가 아니고 여성상위 시대 같다고 했다. 또 예쁜 여자한테 꽃이라고 하는 게 왜 문제냐며 ‘페미니스트들’이 좀 무섭다고 했다. 뭐 그리 생각할 수 있다. 원래 내 불편은 가깝고 남의 불행은 멀어 보인다.


그러나 아들들이 학창 시절 이런저런 불편을 겪는다 한들 딸들처럼 죽고 사는 문제는 아니다. 화장실 갈 때나 택시 탈 때마다 불안에 떨면서 평생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 꽃처럼 예쁘단 말은 그 자체로 덕담이지만 한 사람이 꽃이 되는 순간, 발화자가 언제든지 꺾어버릴 수 있는 수동적 존재가 되고, 외모노동을 강요하는 압력으로 작용한다. 여성이 직장에서 ‘꽃’으로 취급되며 개별적 주체나 실력으로 인정받기보다 성적 대상화와 폭력에 노출되는 게 그 증거다.


‘검사인데도 저런 일을 당하다니 보통 여자들은 오죽하겠냐.’ 서지현 검사의 성폭력 피해 사실 인터뷰에 대한 인상적인 반응이었다. 그동안 몰랐나 싶어 조금 놀라기도 했다. 우리 사회 권력 집단에 속한 피해자가 자기 삶을 걸고 방송에 나와 역시 최고의 담론 권력을 쥔 앵커와 마주 보고 증언할 때라야 피해자의 목소리가 겨우 가닿는다. 피해자의 말에 술렁이고 반응한다.


여성혐오로 인한 죽음, 그리고 성폭력 피해는 주식 시세나 날씨처럼 매일 생산되는 뉴스다. 한샘 여직원의 성폭력 사건이 폭로된 게 불과 몇달 전이고, 문단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진 게 이년 전이다. 누구도 들어주지 않아서 서사가 되지 못한 채 눈송이처럼 흩어져버린 힘없는 여성 피해자들 이야기는 반도의 땅 곳곳에 설산을 이루고도 남는다.


우리가 무서워해야 할 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페미니스트가 가리키는 여성이 처한 현실의 참담함이다. 여자는 밥하려고 태어나지 않았고 꽃처럼 꺾어도 되는 존재가 아닌데 밥 안 한다고 죽이고 꽃 꺾듯 존엄을 꺾어버리는 무수한 사건들에도, 우리는 계속 놀라고 말리고 떠들고 분노해야 한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30625.html?_fr=mt5#csidx0b52d534adbd1d2bb4ca4cfa526253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