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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단추 / 손택수 내가 반하는 것들은 대개 단추가 많다 꼭꼭 채운 단추는 풀어보고 싶어지고 과하게 풀어진 단추는 다시 얌전하게 채워주고 싶어진다 참을성이 부족해서 난폭하게 질주하는 지퍼는 질색 감질이 나면 좀 어떤가 단추를 풀고 채우는 시간을 기다릴 줄 안다는 건 낮과 밤 사이에, 해와 달을 금단추 은단추처럼 달아줄 줄 안다는 것 무덤가에 찬바람 든다고, 꽃이 핀다 용케 제 구멍 위로 쑤욱 고개를 내민 민들레 지상과 지하, 틈이 벌어지지 않게 흔들리는 실뿌리 야무지게 채워놓았다 - 손택수 시집 실천문학사 달빛길어올리기. 인사동 어디쯤에 자리한 민속주점이 떠오른다만 영화제목이다. 박중훈 강수연 예지원 장항선 등이 나온다. 전주에서 찍었다. 한지에 관한 영화다. 우리 것(알리기)에 천착해온 임권택 감독. 역시나 스크린에 펼쳐..
콜드플레이 -The Scientist (Acoustic) 18세기 후반에 와서 병사는 만들어질 수 있는 어떤 것으로 변했다. 형태가 갖추어지지 않은 진흙, 곧 부적격한 신체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기계(곧 인간기계)로 변했다. 자세는 조금씩 교정될 수 있는 것이었고, 계획적인 구속이 서서히 신체의 각 부분을 통하여 영위되었고 그것들을 자유롭게 지배하고 신체 전체를 복종시켜 항구적으로 취급 가능하게 만들고 그리고 자동적인 습관이 되어 암묵리에 남게 되었다. 요컨데 '농민의 요소를 추방하고' 그 대신 '병사의 태도'를 주입시킨 것이다. - 푸코 에서 신체는 정치적인 기술에 의해 얼마든지 조형하고 변형하고 길들일 수 있단 얘기. 국중고 시절 점심시간의 국민체조질은 국민건강증진보다는 조작가능한 신체와 순종적인 신체를 만들 목적이었다... - 귀로는 콜..
밝힐 수 없는 공동체 - 쌍용차조합원 죽음을 애도하며 얼마 전 쌍용차 노조원이 임씨가 죽었다. 13번째 사망자다. 쌍용차 사태 당시 1년 후 복직이라는 약속을 받고 무급자로 있던 조합원이 ‘차일피일 복직을 기다리다’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더 안타까운 사연은, 이 노동자의 아내가 지난해 4월 우울증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둘 있다. 고2아들과 중3 딸. 부모가 일 년 사이 잇달아 세상을 등졌다. 억울하고 원통한 죽음이다. 졸지에 고아가 된 충격도 크겠지만 지난 2년간 부모의 피폐한 처지를 겪어내는 동안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쌍용차 노조원 부부 죽음의 사연연이 전해지면서 모금이 전해진다고 한다. 공지영씨가 500만원 보내고 정혜신 전문의가 아이들 상담치료를 지원한다고 기사가 났다. 나도..
고등학생 아들에게 읽어주는 글 아들 입학식 날. 애들 학교 보내고 오전 내내 잤다. 긴긴 겨울방학, 늦잠형 인간으로 길들여진 몸이 자동적으로다가 나를 침대로 이끌었다. “엄마는 입학식에 오는 거 아니다”라는 아들 말을 덜컥 수용하고 집에서 게으름을 피운 것이다. 정말이지 나는 쉬고 싶다. 아들의 고등학교 진급에 심한 피로감을 느낀다. 며칠 전에는 교복을 사러 갔더니 다 팔리고 없어서 다섯 군데나 되는 교복매장을 순회했다. 마지막 매장에서 엄청 큰 재킷 하나 겨우 확보해 동네 수선집에서 사이즈를 대폭 줄였다. 하마터면 교복도 못 입혀 학교에 보낼 뻔 했다. 설마 교복이 품절됐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졸지에 ‘게으른 엄마’ 됐고 매장마다 "왜 이제야 사러 나왔냐"고 잔소리를 들어야했다. 교복 사는 것까지 속도경쟁을 해야 하나. 남보다..
병역거부자 현민 면회기 일년 전 현민을 마지막으로 보았다. 위클리수유너머 창간 파티에 꽃처럼 예쁜 화과자 세트를 들고 왔다. 청년이 좀처럼 고르기 힘든 선물을 그는 섬섬옥수 긴 손가락으로 건넸다. 이리도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가 거친 옥살이를 어찌 견뎌낼까 안타까웠다. 겨울이 지나고 꽃샘추위가 한창인 3월에 현민은 병역거부자의 옷을 입었다. 돌아오지 않는 화살이 되어 권력의 심장부로 날아가는 전사가 아니라 자유를 갈망하는 한 마리 새가 되어 비상하다 갇혔다. 여름 즈음 현민의 면회를 다녀온 수유너머R 친구들이 이구동성 착찹한 심정을 토로했다. “면회 끝날 때 민이가 울어서 마음이 안 좋다”고. 현민이 군대를 거부한 것은 ‘군대가 싫어서’라고 했다. 평화운동가로서의 대의나 여호와의 증인처럼 종교적인 신념 때문이 아니며 그냥 싫다는..
강좌안내 - "글쓰기의 최전선" 글쓰기의 최전선 글쓰기는 삶을 살아가는 한 방편입니다. 글쓰기를 누구나 배워야 한다면, 근사한 작품을 남기기 위해서라기보다 우선은 기본적인 의사소통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입니다. 내 생각을 표현해보아야 남의 말을 알아듣고, 불필요한 오해와 말의 공해가 줄어듭니다. 제대로 말하고 쓰기. 글쓰기의 필요성은 마치 등산처럼 삶의 어느 지점에서 간절해집니다. 자신이 경험한 인생을 신뢰하고 느낌에 집중하면서 그때부터 한걸음씩 내딛으면 됩니다. 글쓰기는 지성의 영역인 만큼 기술의 영역이기도 합니다. 근육처럼 쓸수록 나아집니다. 그리고 써야 씁니다. 생각을 정리한 다음에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 쓰는 행위를 통해 생각이 명료해집니다. 지속적인 글쓰기가 가능하려면 잘 쓰겠다는 의지보다 꼭 나누겠다는 욕구가 먼저입니다. 그..
만추 - 안개처럼 스미는 사랑의 위대함 ‘작별하는 그대들 뒷모습이여 / 내 어찌 꿈에선들 눈물없이 바라보리’ 조조영화로 를 보았다. 극장 밖을 나오며 휘청했다. 눈부신 햇살이 부담스러웠다. 헤어진 다음 날처럼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질 않았다. 말 그대로 심란하여 고정희 시집을 폈는데 라는 시가 있었다. 거짓말 같은 우연이 눈앞에 펼쳐졌다. 1991년에 선물 받은 시집이다. 이번 는 네 번째 리메이크 작품이다. 고정희 시인이 영화 를 보고 같은 제목으로 시를 지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 시집을 나는 지난 20년 수십 번 보았을 터인데 라는 시가 이제야 보이다니. 이 극적인 상봉을 위해 침묵했던 것일까. 7년 째 수감 중인 애나는 어머니의 부고로 3일 간 휴가를 받는다. 장례식에 가기 위해 탄 시애틀 행 버스에서 훈이를 만난다. 돈 받고 애인노릇 하..
문재홍 폴리아티스트 - 소리를 연기하는 남자 영화는 영화다. 헌데 주인공이 후루룩 쩝쩝 라면을 먹을 때 관객은 군침을 삼키고, 편의점 문이 쾅 닫힐 때 불안을 느끼며, 담뱃불이 지글거릴 때 가슴이 타들어간다. 스크린을 비집고 나오는 미세한 소리가 온 몸을 파고드는 순간 ‘활동사진’은 완벽한 사실성을 획득한다. 지푸라기를 비벼 담배 타는 소리를 만드는 문재홍 폴리아티스트. 그에게 영화는 소리다. 쓰레기 더미에서 소리를 꽃피우다 이곳은 재밌는 소리 공장, 연일 계속되는 강추위도 아랑곳없다. 문재홍 씨는 일 년 내내 여름을 산다. 한 평 남짓한 녹음실에서 온종일 뚝딱뚝딱 소리를 만들다 보면 금세 땀에 젖는다. ‘발소리’를 녹음할 땐 옷감이 스치는 소리가 섞일까봐 쫄바지를 입는다. 만족스러운 소리를 얻을 때까지 걷고 또 걷는다. ‘콰당’ 넘어지는 소리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