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시 은유 - 무관심은 어떻게 혐오와 푹력이 되는가

[사람,기억,기록]




저는 글 쓰는 일을 하면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일을 하는 은유라고 합니다. 글쓰기를 가르치지만 강사라고 하기엔 역할에 한계가 있습니다. 글쓰기 노하우를 알려줘도 상대방이 안 쓰면 그만이니까요. 방법이 아주 없진 않습니다. 글을 쓰게 하는 세 가지 방법이 있어요. 첫째 마감, 둘째 독자, 셋째 원고료. 이 중 하나만 있어도 글을 씁니다. 저는 독자 역할을 합니다. 써온 글을 열심히 읽고 의견을 말해줍니다. 


1. 나의 편견과 무관심 – 게으르니까 뚱뚱하다 


한 친구가 아르바이트 경험을 글로 써왔습니다. “아르바이트를 오래 했더니 살이 쪘다”라는 문장이 있었습니다. 저는 물어봤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 힘들어서 살이 빠지지 않아요?”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어요. 식사 시간이 넉넉지 않아 음식을 빨리 먹고, 빨리 먹으려니까 라면이나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를 자주 먹고, 바쁘면 못 먹고 안 바쁠 때 몰아서 먹고, 규칙적인 식사가 어렵다고 해요. 그래서 살이 찐다는 거죠. 

그렇다면 방금 말한 내용을 글에다가 보완해라, 나처럼 알바생들 처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요. 저는 뜨끔했습니다. 우리 보통 뚱뚱한 사람들 보고 뭐라고 말하죠? “게을러서 살이 찐 거다.” “젊은 사람이 자기 관리도 못하네.” 저도 은연 중에 그렇게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자기 관리는 젊은 사람이라 잘하는 게 아니라 돈과 시간이 많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거에요. 온종일 서서 일하느라 붓기가 안 빠져 살이 되고, 알바하면서 공부하느라 시간이 없어 운동 하기도 어려워요. 근데도 “게을러서 뚱뚱해” 혹은 “뚱뚱한 걸 보니 게으르다”라는 말을 듣습니다.

저는 알바생과 대화를 나누면서 알았습니다. 내가 일하는 청년들 생활을 모르는구나. 누굴 적극적으로 미워하거나 편견을 갖지 않더라도 남의 삶에 무관심하다면, 익숙한 생각을 의심하지 않고 믿는다면, 편견이 강화되고 혐오가 생기겠구나, 하는 걸요. 네. 오늘은 그 이야기를 나눌까 합니다. 무관심은 어떻게 혐오와 폭력이 되는가. 


2-1. “남자는 무조건 여자말만 들어라”


어느날 우연히 인터넷에서 강연 동영상을 보게 됐습니다. 특유의 재치와 입담, 사회적 약자 편에서 소신 있는 발언을 하는 남자분이었죠. 저도 좋아해서 기대감을 안고 보는데 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무조건 남자들은 앞으로 살면서 여자 말을 듣고 산다 생각하면 중간은 갑니다.” 

“너희들보다 훨씬 더 상위에 있는 종족들이에요.” 

“여자들이 불쌍한 남자 잘 보살펴 달라.” 

“(남자는) 사람이 아니고 개다 생각하면 싸울 일이 전혀 없습니다.” 

강연 제목이 뭔 줄 아세요? <연애할 때 싸우지 않는 법> 객석을 채운 선남선녀 커플들이 물개 박수를 치면서 박장대소를 하고 난리 났어요. 

근데 노트북으로 그걸 보는 저는 한숨만 나와요. 그냥 처음 드는 생각은, ’무조건 여자 말만 듣는다고? 여자를 얼마나 부려먹으려고....‘ 얼핏 여자를 추켜세우고 남자를 비하하는 거 같지만 잘 보면 아니에요. 온갖 잡다한 일 여자가 다 하라는 거잖아요. 시시콜콜 멀티플레이어가 돼라. 이런 류의 말은 많습니다. 고인이 된 탤런트 최진실 씨가 처음엔 씨에프 모델로 활동했는데 그녀를 유명하게 만든 말이 있어요.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 또 결혼해서 아들 둘 키우는 여자들은 뭐라고 하죠? “저는 아들 셋 키워요.” 남편도 애처럼 손이 많이 가고 보살펴야 하는 대상이란 뜻입니다. 나이드신 어른들은 “며느리가 잘 들어와야 집안이 잘 된다”라고도 해요. 여자는 남자를 보살피는 것도 모자라, 집안 부흥의 책무까지 맡게 되죠. 요즘 이걸 ‘효도 대행’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이런저런 말들은 ‘연애할 때 싸우지 않는 법’이 아니라, ‘여자를 평생 노예처럼 부리는 법’에 가깝죠. 


2-2. 여자의 수고와 노동에 무관심한 사회 – 남성의 언어


또 한평생 여자 말만 듣고 산 남자는 어떤 가요. 결혼 전에는 엄마가 결혼 후에는 아내가 해줘서, 여자 말만 듣고 산 남자가 나중에 어떻게 됩니까? “여보 양말 어딨어? 작년 여름에 입던 바지 어딨지?” 자기 옷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아버지가 됩니다.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안 좋습니다. 남자를 무능하게 만들고 여자를 혹사시키죠. 그 방송인은 여자가 상위종족이라고 했지만, 실상은 여자는 서열 맨 아래에요. 궂은 일 도맡죠. 그걸 사람들은 잘 몰라요. 여자가 하는 노동과 수고에 대해 무지해요. 왜? 그래도 되니까요. 

‘남자는 평생 여자말만 들으면 중간은 간다’ 우리가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말들은 그 말로 인해 안락을 누린 사람들, 자기 손에 물 안 묻히는 사람들, 상대적으로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입장을 담아낸 말입니다. 남자의 언어, 어른의 언어입니다. 


3-1. 무관심이 혐오로 : 약자는 자기 언어가 없는 사람. 쉽게 해석-혐오당한다. 


약자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내릴 수도 있을까요? 약자는 자기 생각과 감정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없는 사람이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의 언어는 배제돼 왔죠.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온갖 역할을 부여해놓고, 그걸 못하면 ‘여자답지 못하다’ 여성 혐오합니다. 그런 이야기가 내면화되면 여자도 자기 스스로 여성 혐오 합니다. ‘내가 좀더 지혜로웠다면 다 잘했을 텐데’ ‘남편을, 남자친구를 사람 만들었을 텐데.’ 싸우지 않았을 텐데. 그런데 무려 개를 어떻게 사람을 만들어요? 학교도 부모도 못한 ‘사람 만들기’를 어떻게 한 사람이 합니까. 

우리가 익숙하게 말하고 쓰는 말들은 이미 기득권의 것이에요. 약자 편이 아니에요. 약자들은 그래서 쉽게 혐오에 노출됩니다. 남들에게 온갖 힘든 역할 부여받고, 해석 당하고, 평가 당하고, 손가락질 당합니다. 그런 말들이 퍼져나가서 편견이 되고 혐오의 씨앗이 됩니다.


3-2. 여성혐오의 대표 사례 : 맘충

여성혐오의 대표적인 사례, ‘맘충’ 얘기 해볼까요. 맘충은 식당에서 사람들이 밥 먹는데 기저귀 갈거나, 컵에다 소변을 보게 하는 등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엄마를 지칭하는 말이라고 해요. 저도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친구에게 들었어요. 기름 넣으면서 아기가 똥 싼 기저귀 버려달라고 내미는 엄마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깜짝 놀랐죠. 알바생 입장에선 참 너무한다 싶으면서도, 그 엄마 입장을 모르지 않아서 안타까웠습니다.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위험에 빠지는 한 생명체를 돌본다는 일은 간단치 않아요. 24시간 365일 고도의 집중을 요합니다. 아기가 갑자기 토한다거나 똥을 싼다거나 운다거나 긴급 상황이 발생해요. 엄마가 되면 아기 중심으로 세상을 살게 되고 딱 아이 몸뚱이 만큼 시야가 좁아지는 거 같아요. 그러니 남의 사정과 형편을 헤아릴 수 없죠. 우리나라는 수유실 같은 육아 인프라가 아직 부족하니까 엄마가 애 데리고 더 곤란에 처하죠. 몰상식한 행동도 하게 됩니다. 그런 속사정을 헤아려본다면, 마냥 혐오의 손가락질을 할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4. 강자와 약자에 대한 이중 잣대 :  노 키즈 존? 노 아재 존은?


근데 이상하죠? 아이는 남녀 둘이 낳고 기르는 건데, 아빠는 어디가고 욕은 엄마가 먹죠? 

또 욕먹는 대상이 있습니다. 바로 아이죠. 노키즈존이란 말을 들어보셨을 거에요. 식당이나 공공장소에서 특정 연령 이하 아이들 출입을 금지시키는 ‘노 키즈 존’이 있다고 합니다. 관련 기사를 찾아봤는데요, 음식점을 찾은 사람들이 시간적 공간적 침해를 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그렇게 정했다고 합니다. 글쎄요. 이런 생각을 해요. 그 식당 운영하시는 분들도 어른일 텐데, 기억하지 못해서 그렇지 우리도 아이였던 시절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시간과 공간을 침해하고 민폐 끼치면서 어른이 되었을 거에요.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 아이들을 품어주지 못한다는 건 심한 반칙 같아요. 


어른은 과연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삽니까? 한 친구가 편의점에서 손님들이 함부로 대하는 것이 힘들다. 스무살 재수생이었어요. 신용카드를 건넬 때 툭 던지는 사람들, 그리고 비닐봉투가 20원이라고 말하면 왜 그 돈을 받느냐며 화를 내는 사람이 많답니다. 주로 카드를 던지거나 언성을 높이는 사람은 중장년 남성이래요. 인사도 잘하고 제일 좋은 고객은 초등학생이고요. 

은행에서 우체국에서 대합실에서 ‘왜 안 되느냐’고 소리를 지르는 분들도 중장년 어르신들인 경우가 많죠. 그렇다고 편의점에서 은행에서 50세 이상 남자 고객의 출입을 금하는 ‘노 아재 존’이 생길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구매력을 가진 집단이기 때문에 누구도 함부로 출입을 금지하지 않습니다. 이 경우에서 보듯이 타인에게 불편을 끼친다고 해서 다 출입을 금지하지는 않습니다. 돈이 없거나 발언권이 없는 사회적 약자들은 우선적으로 배제하죠. 쉽게 낙인 찍고 혐오합니다. 

그런데 우리 정체성은 계속 바뀌죠. 아이였다가 어른이 되고 어른이 되어 아이를 키우기도 합니다. 살다보면 피해를 입히기도 하고 입기도 합니다. 편의점 고객이다가 나이들어 편의점 알바를 할 수도 있습니다. 삶은 계속 변합니다. 그때마다 당장 불편하다고 금지하고 차별하고 혐오한다면 결국 내가 설 자리도 사라집니다. 우리 사회 생태계는 온갖 금지와 차별의과 혐오의 지뢰밭이 되어, 우리 모두 발 디딜 곳이 없어질 것입니다. 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누구도 안전하지 못합니다. 


5-1. 사람 공부가 필요해 – 알면 사랑하고 모르면 혐오한다 


무관심은 어떻게 혐오와 폭력이 되는가. 오늘 그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 알면 사랑한다는 말이 있죠. 저는 뒤집어서 모르면 혐오한다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어떻게 아느냐? 무관심에서 어떻게 벗어날까가 중요하죠. 

이것은 글쓰기 관련 강의를 하다보면 자주 나오는 질문과도 맞닿아 있어요. 글쓰기에서 공감하는 게 중요한 거 같은데, 공감력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하냐는 거죠. 저는 ‘공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영어를 배우려면 시간과 계획을 갖고 공부하듯이,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알려면 마찬가지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제가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타인의 삶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독자가 되어야하는 거죠. 저도 글쓰기 수업 하면서 남들이 써온 곡진한 자기 이야기 들으면서 편견이 사라졌거든요. 그렇지 않았으면 자동으로 편견이 막 생겼을 거에요. 


저는 글 쓰는 일 할 때, 인터뷰 하면서 동성애자 감독을 처음 만났거든요. 인터뷰이니까 공부해갔어요. 책도 보고 영화도 보고. 그 이후에 자연스럽게 동성애자 친구들이 생겼어요. 편견이 생길 틈이 없이 직접 삶으로 부딪치고 알아간 거죠. 지금 일부 동성애 혐오하는 분들도 가까이 지내고 서로 섞여 지내면 진지한 대화 나누면 혐오하지 않을 거라고 믿어요. 나와는 다른 성정체성을 가진 사람을 접하면서 배우고 자극이 되고요. 동성애 친구들 고민을 듣다보면 나는 이성애자이지만, 곧 어떤 상황에서 억압받고 곤란했던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거든요. 우리는 다르지만 같아요. 성 정체성은 다르지만 같은 고민과 한계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에요. 이성애를 반대할 수 없듯이 동성애도 반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누구에게도 다른 존재를 반대할 자격은 없으니까요. 


5-2. 말의 재난시대 – 00충 없는 사회를 위하여


지금을 말의 재난 시대 입니다. ‘노 키즈 존’ ‘맘충’ ‘일베충’ ‘진지충’ ‘급식충’ 단정짓고 낙인찍고 혐오하는 말들을 너도나도 사용하고 있어요. 무슨무슨 충 없는 사회를 만들 수는 없을까요. 저는 남이 사는 것에 관심을 가질 걸 제안하고 싶어요. 가까이는 엄마의 집안일을 잘 관찰해볼 수 있고, 매일 드나드는 편의점 알바생의 표정도 살피고, 카드도 이왕이면 곱게 내주고요. 니체도 먼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을 했거든요. 가깝고 익숙한 존재가 아니라 나와 다른 상관 없어 보이는 낯선 존재의 삶에도 다가가고요. 그렇게 타인의 삶에 대해 알려하고 물어보고 이해하려하고. 맨 처음 했던 얘기 기억하시죠. 독자 역할, 우리 서로가 서로의 삶을 읽어주는 독자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럴 때 혐오와 폭력이 자연스레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카메라 앞에 얼굴이 연속으로 나오는 게 창피하지만, 열심히 준비했므로, 나누기 위해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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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와 함께 한 모든 날이 좋았다

[사람,기억,기록]

어제 학인들에게 받은 선물. 드물고 귀한 손그림과 편지.

나중에 혼자 이런 책을 내고 싶다. '은유와 함께 한 모든 날이 좋았다.' 

나도 그랬다. '은유'는 나에게도 은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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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 주체로 살아가기

[사람,기억,기록]
세월호 1주기를 앞두고 내가 진행하는 글쓰기 수업에서 <눈먼 자들의 국가>를 읽었다. 이 책은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이라는 부제가 달린, 시인 소설가 평론가의 글 모음집이다. 우리는 돌아가며 마음에 남는 문장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도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주는 셈이다. 따라서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에 나오는 내용을 진은영 시인이 자신의 글에 인용했다. 이 대목을 한 학인이 읽었다. 세월호를 대하는 자신의 태도가 그러했던 것 같다는 말과 함께.  또 다른 학인은 황정은의 ‘가까스로, 인간’의 일부를 읽었다. 
“얼마나 쉽게 그렇게 했는가. 유가족들의 일상, 매일 습격해오는 고통을 품고 되새겨야 하는 결심, 단식, 행진. 그 비통한 싸움에 비해 세상이 이미 망해버렸다고 말하는 것, 무언가를 믿는 것이 이제는 가능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쉬운가.”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지이잉 떨려왔다. 이 대목이 자기 얘기라서 뜨끔했다는 이십대 후반인 그는 낭독을 마치고 마저 훌쩍였다. 무에 그리 서러웠을까.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뗐다. 자기는 이제 ‘어른들은 왜 그래요’라고 말할 수 없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고. 가해자 덩어리에 어느새 속해 있더라고. 그게 슬프고 미안하다고 했다.

대안학교 교사인 한 학인은 아이들과 ‘그 사건’에 대해 말하는 것이 힘들고 어려워서 피하고 싶었다고 했다. 1년이 지났는데 뭐가 달라졌느냐고 학생들이 물을 때 또 다시 응답할 수 없는 고통으로 이 봄을 견뎌야할 것이라고 글을 써왔다. 

갑작스레 찾아든 봄볕에 마음 설레는 3월 토요일 오후 2시 우리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세월호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마다 양심의 침몰, 느낌의 침몰을 고백했다.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물음에 가닿았다. 유가족이 일상을 살 수 있도록 우리가 대신 싸워야 한다고 누군가 주장했다. 남의 아픔을 어떻게 대신 싸우느냐고 그건 불가능하다고 다른 이가 조심스레 고개 저었다. 수업 후 한 학인이 후기를 남겼다. 세월호 1주기에 어디서 이렇게 가슴속 깊은 이야기들을 마음껏 꺼내놓고 슬퍼할 수 있을까요, 글쓰기 공부가 우리를 우리답게 하네요, 라고. 나 역시 글을 읽고 말을 나눠 후련하게 슬픔을 흘려보냈고, 그 과정에서 존재의 편안한 열림을 경험했다. 

다시 야속한 시간이 흘렀다. 세월호 2주기를 보내고 지난여름, 글쓰기 수업에서 세월호 유가족의 육성기록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읽었다. 학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이구동성 말했다. 책은 진즉에 사두었지만 못 읽고 있었는데 이번에 읽었다고. 그동안 왜 못(안) 읽었느냐고 물었더니 “마음이 아플까봐 두려워서”라고 했다. 책을 읽고난 후 우리는 또 말을 나눴다. “지하철에서 읽는데 눈물이 쏟아져서 혼났다. 창피한데 책을 놓을 수 없었다.” “휴지를 옆에 놓고 읽었다. 읽을 땐 마음이 아팠는데 읽고나니 이상하게 힘이 났다.”고 고백했다.

세월호 유가족이 자신에게 닥친 비극적인 상황에 두 손 놓고 있는 게 아니라 참사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그 실천력에 자신도 용기를 얻었다는 것이다. 얼마전 첫 조카가 태어났다는 한 학인은 이런 글을 써왔다. 

“이렇게 축복으로 태어났을 295명의 아이들이, 한날 한시에 사망했다...그리고 현재까지 9명은 실종상태다. (...)책을 통해 유가족들을 만나면서 눈물은 주룩 주룩 흘렀고, 내가 부끄러워졌다. 그 슬픔은 유가족의 슬픔이었고, 부끄러움은 세월호 뉴스 자체를 외면했던, 침묵하던 나 자신에 대한 반성이었다.” 

그는 이어 책을 펼쳐 자신의 마음을 찌르고 생각을 다잡아준 서문의 일부를 낭독했다. 

“부모들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더 이상 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갈 수 없었다.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외면했던, 사회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실은 자신의 모습이었다는 진실을 통렬히 깨닫는 시간이었다. 부모들이 평범한 자신의 삶에 대해 ‘성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사회의 문제를 외면할 때 결국 화살이 돌아오는 곳은 자기 자신이었다.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침묵하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에게 벌을 내리는 것이었다.”

그날도 눈물로 어룽진 수업을 마쳤다.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매주 한권씩 다양한 책을 읽지만 세월호 관련 책을 읽을 때면 어김없이,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앞서 학인들이 고백했듯이 ‘마음이 아플까봐’ 묶어두었던 감정을 허락한다. 이러한 풍경을 겪으면서 나는 생각한다. 마음이 아프면 왜 안 되는가. 우리는 왜 평소에 마음 놓고 슬퍼하지 못할까. 슬퍼하는 시간은 왜 금지당하는가. 별도의 시간을 마련해 모아두었던 슬픔을 방류해야 하는가. 

그것은 애도의 시간이 생산의 시간이 아니(라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슬픔에 잠겨있을 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쫓기는 사람처럼 초조해한다. 그러나 슬퍼하는 건 중노동이다. 슬픔이 과하면 탈진한다. 그 엄청난 감정-정서-육체 노동에 임하면서도 그것은 ‘일’로 인정받지 못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화 되지 못하고 교환가치를 갖지 못하는 것들에 할애하는 시간은 그저 쓸모없는 낭비일 뿐이므로 그렇다. 

그렇게 온전한 슬픔조차 허락되지 않는 사회이기에 슬픈 일이 자꾸만 생기고, 슬픈 일이 자꾸만 생기는데도 그 슬픔을 온전히 살아내지 못해서, 슬픈 일이 끝나지 않고 있구나 생각하는 사이 세월호 천일이 지났다. 봄이 오면 세월호 3주기다. 
그날들에 나는 또 잠시 일상에 틈을 내어 마음껏 슬퍼할 수 있는 날이 하루 주어졌다고 안도하고 자족하지 않기 위해서, 누구와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까. 슬픔과 일상을 분리하지 않는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것이 세월호 천일 이후를 살아갈 내게 주어진 삶의 과제다.



# 2017년 1월 이음책방 304낭독회에서 읽은 글

(위 글에는 <글쓰기의 최전선>에 있는 일부 내용 포함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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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에서 지하에서

[사람,기억,기록]

추석이 끝나고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고 있다. 대학원 논문 쓰는 이들도 만나고, 지역잡지 만드는 이들도 만나고, 투쟁하는 이들도 만났다. 대부분 콘크리트 건물 실내 공간인 강의실에서 진행하는데 최근에 두 번의 색다른 만남이 펼쳐졌다. <해방촌 남산골> 이라는 지역잡지 만드는 이들과 강연에선 경리단길 골목 안쪽 건물 테라스에서 야외 수업을 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선선하고 안온한 초가을밤. 젊은 청년들과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니 호사를 누린 것 같다. 


또 하나는 지하통로에서 강연했다. 광화문역에서 4년 째 이어지는 장애등급제 폐지 투쟁 농성장이 있는 곳이다. 시간이 6시. 근처 빌딩숲의 직장인이 서서히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가 우뢰소리처럼 들렸다 사라졌다 하고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고 간다. 나는 글쓰기 수업에서 강조했던 '주인공 의식을 버리세요'를 나에게 세뇌했다. 난 부끄럽지만 사람들은 남의 일에 관심이 없다는 것. 장애인 동지들에게 좋은 글 이야기, 자기이야기를 어떻게 글로 쓰는지 이야기나누었다. 


한분이 강의 끝나고 전화번호를 물어보았다. 자기가 쓴 글을 보내줄테니 읽어달라했다. 연락처를 드렸고 긴 문자메시지가 왔다. 장애인은 명절에 왜 외로운가, 외로운 사람이 되는가 하는 내용이었다. 아직 답장을 드리지 못하고 있다. 뭐라고 피드백을 해드릴까 고민중이다. 


광화에서 집으로 오는 길. 상념에 잠겼다. 20대에 나는 노조 상근자로 전국 60개 지점 분회 방문을 다녔다. 전국을 안 가본 도시가 없다. 30대에 나는 프리랜서로 일하며 또 전국을 누볐다. 40대에 이른 나는 글쓰기를 이야기하러 또 방방곡곡 다닌다. 사람들을 만나 삶의 이야기를 나누고 듣는다. 20대에 난 30대에 작가로 일할 줄 몰랐고 30대에 난 40대에 강사로 떠들고 다닐 줄 몰랐다. 한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일들이다. 50대에 난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좋아하는 일을 미친듯이 하면 떠나야할 때가 자연스럽게 온다. 낙엽이 지듯 해가 저물듯 마음이 지는 때가. 내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시기가. 그걸 알아차리려면 정신이 깨어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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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들에 체하다

[사람,기억,기록]

일년에 한두번씩 종일 누워지낸다. 대개는 전날 과음하고 다음날 머리 아파서 꼼짝 못하다가 토하고 토하고 토하고 해질녘 깨어난다. 요즘은 연례 행사 과음 대신 날마다 맥주 일캔씩 혼술이 늘었다. 그래서 숙취로 앓아 누울 일도 없었는데 어제는 체기로 숙취같은 고통의 하루를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를 내렸는데 커피가 썼다. 커피를 남기고, 속이 답답해서 박하차를 마셨다. 새벽부터 편의점 알바 다녀온 아들 떡국 끓여주고 냄비에 남은 걸로 끼니를 때웠다. 책상에 앉아서 지난주 제주 어르신 인터뷰 녹취를 푸는데 자꾸 한숨이 났다. 머리가 아파 누웠다. 전날도 전전날도 10시간씩 누워있었기 때문에 그 후유증인가 싶어 일어나 장을 보러 갔다. 과일을 사고 나오는 길 계산대 옆에 아이스크림 통에서 '월드콘'이 보였다. 

월드콘! 어제 호식샘 추모제에서 고인이 생전에 월드콘을 좋아했다는 얘길 들었다. 활동보조인이 "호식이 형과 힘들게 책을 읽고 먹던 월드콘" 얘기를 들려줬었다. 난 호식샘을 애도하는 의미에서 월드콘을 샀다. 나도 월드콘 먹고 힘내서 원고 써야지 했다. 근데 월드콘은 왜 이리 큰지.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았다. 버릴 수 없어서 억지로 다 먹었고 집에 와서 다시 컴퓨터 앞에서 제주 어르신 원고를 정리하는데 또 부대꼈다. 부엌일을 하면 괜찮을까 싶어 딸내미 간식을 챙겼다. 사과를 깎다가 한쪽 먹고, 바나나도 맛을 좀 보았다. 내 몸은 침대로 자동이동. 

설핏 잠이 들었다가 깨어났다. 화장실에 가서 토했다. 옷을 입고 나갔다. 약을 지어 먹고 껌을 씹으면서 속을 달래고 경의선공원길에서 삼십분 앉아서 산책나온 품종 좋은 개들이 뛰어노는 걸 봤다. 어슬렁정거장에서 도착해서 감잎차를 마셨는데 자꾸 엎드리고 싶었다. 수업을 할 수 있을까. 감잎차가 들어가니 또 속이 울렁거려서 화장실에 갔다. 마저 게워내고 났더니 좀 시원했다. 기적처럼 7시반부터 괜찮아져서 학인들 글을 읽고 말을 했다. 다행히 눕거나 엎드리고 싶지 않았고 웃겨서 웃었다. 수업을 잘 마쳤다. 무사히.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 대해 아무래도 난 낭만적인 자세로 임했다. 약자들의 말이 들리는 세상을 그렸고, 자기 언어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전달자 역할을 하길 바랐고, 덤볐다. 그랬는데 용량 초과였던 모양이다. 내 몸이 게워낸 걸 보니. 그러니까 호식샘의 말들과 제주 어르신의 말들과 세월호 아이들의 살려달라는 말들과 토요일 울먹이던 아이들의 말들과 학인들의 말들과 그리고 리베카솔닛의 말들이 속에서 뒤엉킨 거 같다. 그 삶들이 낳은 너무 많은 말들이 몰려왔고 너무 많은 한숨이 들려왔고 너무 많은 눈물이 밀려왔다. 

있는 그대로의 삶을 응시하는 게, 삶에 겁먹지 않고 도망가지 않고 버텨내는 게 의지나 사상이나 신념이 아니라 체력의 문제인가 보다. 기억할 것이 많은 4월, 밀려오는 것이 많은 4월, 조심해야한다. 구토조심의 달. 


먼지 위에 쓴다

손가락을 담근 물의 속살에 쓴다

진흙 위에 쓴다 성에 위에 쓴다 

번쩍이는 청동거울 한 가운데 쓴다

모래 폭풍에 휩쓸려가는 글자들 

버스를 타고 소풍을 갈 때 

앞에 앉은 아이가 창밖으로 놓친 모자를

뒷자리의 아이가 잡아챘던 것처럼

클릭, 하지 않으면 

꼬리를 보이며 사라져가는 글자들

그래서 누군가는 지금도 

꽁꽁 접은 종이쪽을 박아넣고 있다 

웅얼웅얼 돌아서서 기도하는

오래된 돌벽 틈새로  


-'쓴다' 김연숙 시집 <눈부신 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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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기억, 사람

[사람,기억,기록]


# 4월 7일 ~ 8일 제주에 다녀왔다.  

제주에 수학여행 왔을 아이들을 위한 기억 저장소 리본에 들렀다. 

언제 봐도 언제 생각해도 일어나선 안 될 일이 일어났고 아이들이 너무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어떻게 진실을 밝히고 어떻게 아이들을 기억해야할까. 살아남은 내게 주어진 숙제다. 



기억저장소 리본에서 국가폭력피해자 어르신들 모시고 '지금여기에'에서 치유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어르신들 인터뷰 작업을 진행중인 나는 여기 따라와서 틈틈이 어르신들과 인터뷰를 했다. 

제주는 일본과 가까워 일본에서 살다온 분들이 많은데 그들이 간단하게 '간첩'이 되곤 했다. 

 '전직 간첩들' 이라고 농담을 하기까지, 많은 세월이, 많은 사람들이, 많은 말하기가 필요했다. 

서울에서 인터뷰하고 두번째 뵙는 김순자 선생님

제주에 사는 어르신 김평강선생님. 처음 보고 놀랐다. '어떻게 저렇게 선하게 생기셨을까'

다음날 아침 천국 같은 숲, 절물자연휴양림에서 인터뷰을 마저 했다. 

제주 하늘을 두고 온다는 것은 슬픈 일. 

이름이 예쁜 구좌읍 종달리 부근. 제주 바다를 두고 오는 것은 더 슬픈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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