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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걸의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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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걸의 시집 - 복간본 다시 살아난 '올드걸의 시집' 절판 5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이 블로그에 2008년 11월에 첫 글을 쓰게 됐을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고, 일어나고, 일어났다. 그게 삶이겠지.
오월 광주의 시, 입 속의 검은 잎 # 괴로워할 권리 이곳에서 너희가 완전히 불행해질 수 없는 이유는 신이 우리에게 괴로워할 권리를 스스로 사들이는 법을 아름다움이라 가르쳤기 때문이다. - ‘포도밭 묘지2’ 중 시집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구이자 기형도의 미학적 태도가 함축적으로 드러난 시구 같아요. 가난 체험을 통과하고 80년대 군부 독재의 암흑기에 성년이 된 기형도에게 ‘세상’은 어떤 곳이었을까. 세상이 어떻게 보였을까를 생각하면 이 시집의 첫 시가 '안개'인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불안하고 모호하고 불투명하죠. 시인은 그렇게 자기 언어로 구축한 폐허에서 괴로움의 권리를 안전하고 예민하게 누립니다. 거기서 고백적 화법이, 잠언 같은 시구가 터지고요. “나는 헛것을 살았다. 살아서 헛것이었다” “나는 곧 무너질 것들만 그리워했다” “살아..
올드걸의 시집 - '책방 비엥'으로 첫 책 이 절판되었다. 여러가지 사정 상 그렇게 되었고 개정판을 다른 출판사에서 내기 위해 이야기 중이다. 청어람미디어에서 나온 초판본. 그러니까 남은 책 100권이 집으로 왔다. 출판사가 내게 묻지도 않고 절판과 남은 책의 '처분'을 결정했다. 그나마 이것이라도 챙겨주는 걸 고맙게 여겨야하는 이런 상황. 사과상자 두 상자에 담긴 책을 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무슨 유품을 받은 거 같기도 하고. 내 한 시절 떠돌다가 돌아온 아이 같기도 하다. 아무튼 시중에서는 구입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판매하라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더 아름답고 유의미한 방법을, 나눌 방법을 찾고 싶다. (하루 뒤, 그 방법을 찾았습니다. 서점의 제안으로^^)-----------------------..
김수영 - 봄밤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 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靈感)이여 - 김수영 '봄밤' 제11회 서울와우북페스티벌 '시인은 살아있다' '시인 김수영의 밤' '..
휴면기- 허연 오랫동안 시 앞에 가지 못했다. 예전만큼 사랑은 아프지 않았고, 배도 고프지 않았다. 비굴할 만큼 비굴해졌고, 오만 할 만큼 오만해졌다. 세상은 참 시보다 허술했다. 시를 썼던 밤의 그 고독에 비 하면 세상은 장난이었다. 인간이 가는 길들은 왜 그렇게 다 뻔한 것인지. 세상은 늘 한심했다. 그렇다고 재미가 있는 것 도 아니었다. 염소 새깨처럼 같은 노래를 오래 부르지 않기 위해 나는 시를 떠났고, 그 노래가 이제 그리워 다시 시를 쓴다. 이제 시는 아무것도 아니다. 너무나 다행스럽다. 아무것도 아닌 시를 위해,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길 바라 며 시 앞에 섰다. - , 허연 민음사 직장인이 된다는 건 매일 같은 시간에 출퇴근 하는 일이다. 물론 퇴근이 불규칙한 경우가 더 많다. 노동력을 파는 게 아니라 일..
장진주 - 이백 君不見 군불견 그대는 보지 못 하였는가 黃河之水天上來 황하지수천상래 황하 강물은 하늘에서 내려와, 奔流到海不復廻 분류도해불부회 바삐 흘러 바다로 가서는 다시 못 옴을 又不見 우불견 또한, 보지 못하였는가? 高堂明鏡悲白髮 고당명경비백발 고당명경에 비친 백발의 슬픔 朝如靑絲暮如雪 조여청사모여설 아침에 검던 머리 저녁에 희었다지 人生得意須盡환 인생득의수진환 기쁨이 있으면 마음껏 즐겨야지 莫使金樽空對月 막사금준공대월 금잔에 공연히 달빛만 채우려나 天生我材必有用 천생아재필유용 하늘이 준 재능은 쓰여질 날 있을 테고 千金散盡還復來 천금산진환부래 재물은 다 써져도 다시 돌아올 것을 烹羊宰牛且爲樂 팽양재우차위락 양은 삶고 소는 저며 즐겁게 놀아보세! 會須一飮三百杯 회수일음삼백배 술을 마시려면 삼백 잔은 마셔야지 岑夫子..
개 같은 가을이 - 최승자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온다. 매독 같은 가을. 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 한 쪽 다리에 찾아온다. 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고 모든 길들의 경계선이 문드러진다. 레코드에 담긴 옛 가수의 목소리가 시들고 여보세요 죽선이 아니니 죽선이지 죽선아 전화선이 허공에서 수신인을 잃고 한번 떠나간 애인들은 꿈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고 괴어 있는 기억의 폐수가 한없이 말 오줌 냄새를 풍기는 세월의 봉놋방에서 나는 부시시 죽었다 깨어난 목소리로 묻는다. 어디 만큼 왔나 어디까지 가야 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 최승자 시집, 문학과지성사 가을맞이 영어세미나를 시작했다. 푸코의 마지막 저서가 된 다. 강연록이라 구문이 어렵진 않다. 단어가 생소하지. 그 말에 속아서 용기를 내보았다. 세 번 세미나..
오은 - 이력서 '밥 먹기 위해 쓰는 것' 밥을 먹고 쓰는 것. 밥을 먹기 위해 쓰는 것. 한 줄씩 쓸 때마다 한숨 나는 것. 나는 잘났고 나는 둥글둥글하고 나는 예의 바르다는 사실을 최대한 은밀하게 말해야 한다. 오늘밤에는, 그리고 오늘밤에도 내 자랑을 겸손하게 해야 한다. 혼자 추는 왈츠처럼, 시끄러운 팬터마임처럼 달콤한 혀로 속삭이듯 포장술을 스스로 익히는 시간. 다음 버전이 언제 업데이트 될지는 나도 잘 모른다. 다 쓰고 나면 어김없이 허기. 아무리 먹어도 허깨비처럼 가벼워지는데 몇 줄의 거짓말처럼 내일 아침 문서가 열린다. 문서상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다. - 오은 시집 , 문학동네 이주 전 즈음, 수능 100일 앞두고 처음으로 입시설명회를 가보았다. 양천구민회관에 유명한 입시전문가가 온다며 별일 없으면 같이 가보자고 아는 언니가 권유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