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콘서트 -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글쓰기의 최전선]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북토크 2019년 7월 25일 목요일 오후 7시 30분 팟빵홀에서 바갈라딘, 박태근님의 진행으로 열립니다. 고 김동준 군 어머니 강석경 선생님,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동조합 이은아 위원장님과 이야기 나눕니다. 관심 가져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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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적 가해자라는 억울함에 관한 문의

[은유칼럼]

아들 둘 키우는 엄마는 고민이다. 스무살인 큰아이가 페미니즘 이슈에 부쩍 민감한 모습을 보이더니만 이렇게 투덜거렸다. “내가 왜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잠재적 가해자 취급을 받아야 해요? 나는 여자들 괴롭힌 적도 없거든요.” 이럴 때 뭐라고 답해야 할지 난감하다 했다. 같은 자리에 있던 이십대 여성이 말했다. 설령 잠재적 가해자로 몰리더라도 자기가 나쁜 짓 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잠재적 피해자는 제 의지와 상관없이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다고.

‘잠재적 가해자의 억울함에 관한 문의’는 여학교 강연에서도 곧잘 나온다. 어떻게 반박해야 하느냐고 걸페미니스트들이 묻는다. 나는 이십대 여성의 언어로 답한다. “남자는 잠재적 가해자라서 억울하지만 여자는 잠재적 피해자이기에 위험하잖아요. 억울하면 바꾸자고 말해봐요.” 다 같이 깔깔깔, 울 일인데 일단 웃는다. 웃음 끝이 쓰다. 아이들에게 한탄 겸 질문을 던졌다. 여성들은 신체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왜 상대의 억울함을 이해시키는 임무까지 맡아야 하는지 우리 생각해보자고.

한 여자 대학생도 고민을 터놓는다. 생애 최초로 커트머리를 했다. 세상 가뿐했다. 샴푸도 절약되고 외출 준비 시간도 단축됐다. 한 남자 선배가 헤어스타일의 변화를 알아보길래, 그냥 호기심에 잘라봤다고 근데 이 편한 걸 그동안 남자들만 했느냐고 심상하게 말했다. 그러자 남자 선배는 누가 언제 머리 못 자르게 했냐고 받아쳤다. 안부에서 출발한 대화가 서먹해졌다. 그 일이 맘에 걸린다며, 여자 대학생은 남자들과 불편하지 않게 대화하는 법을 물었다.

글 잘 쓰는 법처럼 답 없는 질문이다. “머리 길이가 세상을 활보하는 여성의 경험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을 남자에게 10분 안에 이해시키는 건 불가능하다. 인격체 이전에 관상용으로 취급받는 건 여성 공통의 사회적 경험이다. 그리고 대화에 불편함은 기본값이다. 생각의 결을 맞추는 일은 통증을 수반한다. 그보다 나의 궁금증은 이것이다. 남자 선배도 이 일로 뒤척였을까. 주변 사람에게 여자 후배가 ‘페미니즘을 공부하더니’ 예민해져서 말하기가 조심스러운데 대화하는 방법을 찾고 싶다며 조언을 구했을까. 그랬을 수 있다. 그런데 적어도 내 주변엔 이런 일상의 말 한마디나 에피소드 하나를 두고 그 상황을 복기하고, 반성하고, 모색하는 남성의 목소리는 드물다.

목마른 자가 샘 파는 이치 같다. 여자로 사는 일은 상대를 이해시키는 일이다. 밤에 다니는 것도, 혼자 여행을 가는 것도, 어떤 직업을 택하는 것도, 결혼부터 화장까지 하는 것도 안 하는 것도, 한글부터 페미니즘까지 공부하는 이유도…. 이 세상 ‘아버지들’에게 설명의 통행료를 지급해야 한다. 그래야 삶의 통로가 겨우 확보됐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공감력이란 게 있다면 이 자기 증명의 훈련 덕분일 것이다.

인류를 둘로 나눠본다. 살면서 사사건건 자기 사정을 남에게 설명해야 했던 사람, 굳이 남에게 자신을 설명하지 않아도 사는 데 지장이 없었던 사람. 페미니스트에 반감을 가진 아들을 둔 엄마도, 걸페미니스트도, 어긋난 대화로 고민하는 커트머리 학생도 태어나서부터 전자의 삶을 산 경우일 거다. 남(자)의 기분을 헤아려 조심스럽게 말하고 이해시키는 건 여자의 임무라고 배웠으니까.

나도 그랬다. 노동을 소통으로 알고 살았다. 설명되지 않은 것을 설명하는 혹독한 지적 정서적 감정적 노동을 한쪽에서 너무 오래 전담했다. 이 관계의 불균형이 공감 능력의 양극화를 낳고 있다. 사실 잠재적 가해자의 억울함은 잠재적 피해자의 고통을 알면 사라지는 감정이다. 제 몸 돌려 타인의 입장으로 건너가보는 일은 지구를 반대로 돌리는 일처럼 불가능한 게 아니다.

 

*한겨레 삶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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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대화 아닌데요?

[은유칼럼]

“엄마 아빠가 대화하자고 좀 안 했으면 좋겠어요. 편하게 말하라고 하시는데 별로 할 말도 없고 앉아 있는 게 힘들어요.” 글쓰기 수업에서 스무살 학인이 말했다. 대화는 관계의 윤활유라고 아는 난 혼란스러웠다. 알고 보니 부모가 운동권 출신이란다. 어릴 때부터 지속된 소통형 참교육에 피로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럴 수 있다. 자식이 보기에 부모는 돈, 힘, 지식을 다 가진 강자다. 자식의 생살여탈권, 적어도 용돈권을 쥐고 있다. 그런 비대칭적 관계에서 약자는 발언의 수위를 검열하거나 잠자코 들어야 하는 정서 노동을 피하기 어렵다. 대화가 배운 부모의 좋은 부모 코스프레가 되고 마는 것이다.

실은 나도 ‘이만하면 좋은 부모’의 함정에 빠져 있었다. 아이들이 청소년이 되자 서로 바빠서 대화는커녕 대면 기회가 줄었다. 그 또한 나쁘지 않았다. 아이와 밀착하지 않으니까 집착도 덜어졌다. 내가 육아서에 나오는 모범 엄마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식을 통제하는 극성 엄마도 아니란 은근한 자부심마저 들었다. 한번은 슬쩍 물었다. “엄마 정도면 괜찮지? 잔소리도 잘 안 하고?” 아이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엄마도 짬짬이 잔소리 많이 해요.”

역시, 자기 객관화는 실패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폐회로텔레비전(CCTV)처럼 나를 가장 가까이 지켜보는 타인, 자식이 참스승이다. 그 후로 아이에게 말할 때마다 조심스러웠다. 이것은 대화인가 훈계인가, 무관심인가 무리수인가. 경계는 늘 알쏭달쏭했다. 매번 질문하고 검토하는 수밖에. 애써보다가도 내 기분이 엉망인 날은 슬그머니 짜증이 일었다. 내가 자식한테도 눈치 보고 쩔쩔매야 되나, 라며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러운 내적 외침을 삼키곤 했다.

원래 인간관계는 공손이 기본이다. 그런데 부모라는 이유로 자식한테는 막 해도 된다고 여기는 지극히 폭력적인 양육 관습을 나도 모르게 체화하고 있었다. 인문학으로 본 체벌 이야기를 다룬 책 <사랑해서 때린다는 말>을 읽고선 난 괜찮은 부모라는 환상을 벗었다. 자식에게 매를 드는 체벌만 폭력이 아니다. 빈정거림이나 비하 발언도 언어폭력, 방문을 쾅 닫거나 설거지를 할 때 탕탕거리며 불안감을 조성하는 건 정서 폭력, ‘나중에 두고 보자’는 말은 예고 폭력 등등 찔리는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얼마 전 정부가 부모(친권자)의 자녀 체벌을 제재하는 방향으로 민법 개정을 검토한다는 기사가 났다. 댓글 여론은 험했다. 보기에도 아까운 자식이지만 사람 만들려면 체벌은 필요하다거나, 교사의 손발을 묶더니 부모의 손도 묶는다고 개탄하는 의견, 내 아이니까 꿀밤 정도는 된다는 주장도 폈다. 이들은 꿀밤은 애정 표현이고 체벌은 폭력이 아니며 불가피한 부모 노릇이라는 믿음을 가진 듯 보였다.

‘사랑의 매’라는 말은 그 자체가 이중 폭력이다. 상대에 대한 존중이 없고 폭력을 정당화한다. 우리는 대부분 최초의 폭력을 가정에서 경험한다. 그간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수많은 어른들은 집과 학교에서 겪은 폭력의 기억을 수십년이 지났어도 그대로 복기했다. 맞아서 사람 됐다는 증언은 어디에도 없다. ‘사랑의 매’는 때리는 사람의 언어이지 맞는 사람의 언어는 아닌 것이다.

‘미성년’을 신뢰하지 않으면서 좋은 어른이, 부모가 되긴 어렵다. 자식에 대한 성실한 이해는 귀찮고, 빠른 복종을 받아내길 원하는 이들이 ‘사랑의 매’라는 죽은 문자를 신봉하는 게 아닐까. 아이들은 대화와 훈계의 차이를 특유의 예민함으로 걸러내고 체벌과 훈육의 노골적인 차이를 간파한다. 가족이든 학교든 회사든, 그 조직의 가장 약자는 많은 진실을 알고 있다. 묻지 않으니 말을 안 할 뿐.

 

*한겨레 삶의창 6월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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