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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의 책편지 - 우리가 옳다! “90년대 초반 즈음 어느 노조에 강의를 갔다. 앞 시간 강사가 노무현이었다. 노조에서 활동보고 자료집을 주었다. 우연히 회계 보고를 보게 됐는데 그날 강사료까지 미리 집행한 내역이 나와 있었다. 노무현 50만원, 김진숙 10만원. 평소 노조에서 강의를 요청하면 강사료를 묻지 않고 갔다. 그때 처음으로 강사료를 문의했다. 강의 내용이 차이가 났는가? 아니랬다. 그렇다면 변호사와 (해고)노동자라는 직업에 따른 차등 지급이 아닌가. 노조 간부에게 말했다. 노동자도 노동자를 대접하지 않는데 누가 대접하겠습니까? 그날 강사료는 받지 않았다.” 김 지도님이 인터뷰 때 들려주신 일화가 생각납니다. 두 분이 부산에서 노동운동을 같이했다는 사실이 같은 사업장에서 강의한 얘기를 듣자 실감이 났습니다. 마지막 말씀이 여운..
은유의 연결 - <아낌없이 살아보는 중입니다> 임현주 아나운서 2018년 4월12일, 당시 (MBC) ‘뉴스투데이’ 진행자 임현주 아나운서는 국내 매체는 물론 외신에까지 이름이 났다. 여성 앵커의 ‘안경’은 10년차 아나운서의 자기 발언이자 방송계 성차별 구조를 드러내는 ‘언어’로 발신됐다. 어떻게 안경을 쓰게 됐냐는 세상의 물음은 외려 그를 각성시켰다. ‘하면 안 될 이유가 있을까?’ 아홉살부터 키워온 아나운서의 꿈이었다. 단 한번도 아나운서의 경쟁력 1위가 외모라고 생각한 적이 없으면서도 몸치장에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 모순된 생활과 그는 비로소 작별했다. 딱 붙는 원피스 대신 편한 재킷을 입었다. 덜 꾸밀 용기를 내기 시작하면서부터 아름다움에 대해 사유하게 됐다. 그렇게 하나씩,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글을 쓰며 생각의 기둥을 쌓아갔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
은유의 연결 - <퓨즈만이 희망이다> 신영전 교수 신영전(56)은 의사다. 환자를 직접 대면하는 임상의는 아니다. 질병을 낫게 하기보다 질병을 낳는 정치사회적 요인의 진단과 치료에 관심이 많은 사회의학자다. 특히 취약계층 건강 정책과 대북 의료 분야 전문가로 오래 활동했다. 그러다 보니 ‘빨갱이’ 소리를 더러 듣는다. 공포와 불안을 파는 의료민영화 등 의료 생태계를 그가 비판하면 일선에선 환자도 안 보는 ‘네가 무슨 의사냐’ 하고, 의사 아닌 그룹에서는 ‘너는 의사니까’ 한다. 의료와 정치, 의사와 시민 경계 어디쯤이 그의 자리였다. 신영전은 교수다. 20년 넘게 학생을 가르쳤고, 일간지에 칼럼도 기고한다. 최근 전공의 집단 휴업, 일명 의사 파업이 끝난 뒤 ‘의대생은 학교를 떠나라’( 9월30일치 26면)라는 글을 썼다. “부자가 되고 싶다면 가난하고..
은유의 책편지 - 어쩌면 이상한 몸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라는 노래를 들었습니다. “너를 지켜보고 설레고 우습게 질투도 했던 평범한 모든 순간들”이란 가사가 귀에 감겼어요. 어떤 연애가 평범한 걸까요. 한 친구는 수차례 파국을 맞으며 지독한 연애를 했습니다. 애인과 사이가 좋을 때는 소식이 없다가 관계가 틀어지면 제게 연락이 왔죠. 실망, 상처, 불화의 말들이 눈송이가 아니라 흙먼지처럼 날리곤 했습니다. 그럴 때면 저는 같이 분통을 터뜨리며 말했죠. “당장 헤어져.” 당신이 보낸 편지에도 이성애 연애 서사가 담겨있었습니다. 첫줄부터 놀라웠어요. “때리거나 욕한 적은 없어서” 임신중단(낙태) 수술을 몇 차례 하면서도 수년을 그와 만났다고요. 다행히 지금은 “죽음 앞에서 도망치듯” 헤어졌다고 했습니다. 아, 얼마나 무섭고 외로웠나요. 아마..
인터뷰 후기 - 홍은전 작가 “무슨 심리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큰 강당 같은 데에서 일단 아무렇게나 빨리 걸으라고 해요. 정해진 길은 없어요. 그냥 가다가 부딪혀도 되고 사람들 치면서도 돼고 무조건 가래요. 수십 명이 그 강당에서 막 움직이기 시작하거든요. 그래서 어떤 일이 펼쳐질 것 같아요?” 그가 물었다. 나는 그 장면을 상상만 해도 몸이 졸아들어서 “난 그냥 구석에 있을래요.” 했다. “거기에 세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어요. 치면서 다니는 사람이 있고, 아주 빠르게 피하면서 다니는 사람이 있고, 은유 작가님이나 저 같은 부류가 있고. 저는 주저앉았어요. 너무 괴롭더라고요. 그런 광경을 보는 것 자체가.” 홍은전과 인터뷰 때 나눈 이야기다. 이런 성향이라서 우리가 한구석에서 글을 쓰는가보라며 같이 웃었다. 나는 경쟁이..
은유의 연결 - <그냥, 사람> 홍은전 작가 사범대 4학년생 은전은 딱 1년만 방황할 시간을 갖기로 했다. 거대한 선착순 달리기 시합 같은 임용고시가 두려웠다.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맞는지 알아볼 겸 노들장애인야학을 찾아갔다. 건물 입구에는 휠체어를 탄 남자 셋이 한가로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순간 은전은 뒷걸음질 쳤다. 난생처음 ‘실물’ 장애인을 본 몸의 자동 반응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려다가 되돌아갔다. 장애인보다 무서운 것은 내 안의 편견이란 생각이 스쳤다. 용기 내어 노들의 문을 두드렸다. 그때가 2001년 8월24일 목요일 저녁 7시40분, “길 가다가 맨홀에 떨어지듯” 홀연 다른 세계로 빠져든 순간이다. 그는 노들야학 교사가 되었으나 가르치기 위해서는 공부해야 했다. 20∼30년을 방안에만 갇혀 산 사람을 야학에 오게 하는 법, 휠체어 ..
은유의 책편지 - 아이들의 계급투쟁 고등학교에 강연을 가면 학생들이 제게 묻곤 했습니다. ‘자기소개서 잘 쓰는 법’이나 ‘문창과를 반대하는 부모님 설득하는 법’ 같은 것을요. 그런데 그날 당신은 손을 번쩍 들고 질문했죠. “저는 대학에 진학할 뜻이 없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소속이 없어지는데 누구랑 책을 같이 읽고 토론을 해야할까요?” 순간 귀를 의심했습니다. 대학에 안 간다는 학생도 처음, 제도교육 바깥의 공동체에 대한 고민을 제기한 당사자 학생도 처음이었거든요. 저는 통통 튀는 심장 박동을 느끼며 떠오르는대로 말했습니다. 관심 있는 시민단체나 정당에 들어가 청년모임 활동을 하거나 가까운 동네책방을 찾아가보라고요. 어디 마음 붙일 곳을 찾았는지요? 저도 당신의 물음에 대한 답변을 계속 구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곳이 어디든지 성별, ..
인터뷰 후기 - 원도 작가 얼마 전 정신질환을 앓던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웃들이 악취가 풍긴다고 집주인에게 전했고, 집주인이 경찰에 신고해 모녀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졌다. 전엔 이런 뉴스를 보면 ‘모녀’에 온통 신경이 쏠렸다. 이제는 다른 사람도 보인다. 저 ‘악취 풍기는 시신’을 처리하는 존재 ‘경찰’을 생각한다. 이는 안 보이는 것을 보이게 하는 마법을 글에 부려놓은 사람, 를 쓴 원도 작가 덕분이다. 그가 큰사람으로 보였다. 그는 매일 목도하는 사건의 비참에 눈감지 않을 수 있는 힘. 한바탕 통곡하고 싶은 밤마다 꾸역꾸역 글을 쓸 수 있었던 힘의 소유자다. 용기와 끈기의 원천이 궁금해서 인터뷰를 시도했다. 원도는 지역민, 여성, 장애인 가족으로 살아면서 불편을 숱하게 겪었고 ‘힘’을 갖고싶어서 경찰관이 됐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