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트 눈물

[은유칼럼]

고양이 무지는 아침마다 베란다 창틀로 뛰어오른다. 18층 꼭대기는 세상을 관찰하기 좋은 전망대다. 그런 고양이의 의젓한 뒤통수를 나는 책상에서 감상하곤 한다. 하루는 무지가 생소한 울음소리를 냈다. 옆동 옥상에서 먹잇감인 새를 봤을 때 내는 우렁찬 야생의 소리랑은 달랐다. 무슨 일인가 봤더니 아파트 난간에 사람이 있다. 24년 된 단지의 페인트칠이 시작된 거였다.

작업자는 밧줄에 매달려 페인트 스프레이를 빠른 손놀림으로 뿌려댔다. 방석만한 깔개에 엉덩이를 댄 그는 앉아 있는 게 아니라 떠 있었다. 간당간당 흔들리는 사람을 보자 현기증이 났다. 건물 벽에 붙은 사람이 지상에서는 검은 덩어리로 보이는데 같은 층 높이에선 인체 형상이 온전히 드러났다. 나는 커튼을 닫았다. 무지는 꼼짝 않고는 간간히 요상한 소리를 냈다. 내게 묻는 듯했다. “날개도 없는 닝겐(인간)이 왜 저기에 매달려 있는 거야?”

나는 인터넷 창을 켜고 ‘아파트 외벽 작업’을 검색했다. 청주시 J(62)씨, B(35)씨, 의정부시 A(78)씨, 수원시 J(47)씨, 서울시 김모(55)씨, 광주시에 사는 한 50대 남성, 춘천시 인부 B씨, 수원의 러시아인 A(25)씨…. 아파트를 칠하다가 떨어져 사망한 이들이다. 설마 했는데 ‘전신 골절’이란 단어가 들어간 지역신문 단신은 끝도 없이 나왔다.

2년 전 양산시에서 일어난 사건은 나도 본 기억이 났다. 옥상에 설치해둔 밧줄을 주민이 커터칼로 절단해버려 숨진 인부 이야기. 김모(46)씨는 오전 8시쯤 음악을 틀고 일하던 중 수면에 방해된다며 음악을 끄라고 항의하는 주민에게 변을 당했다. 고인은 칠순 노모, 아내, 그리고 열일곱살부터 세살까지 5남매 등 일곱 식구의 가장이었다고 한다.

우리 아파트에서 작업하는 분들도 누군가의 자식이고 남편이고 아버지일까. 고층건물 외벽으로 출근하는 심정과 그런 가장을 바라보는 가족의 질긴 불안을 헤아려본다. 살다 보니 떠밀려간 자리가,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아파트 난간 같은 ‘벼랑 끝’일 순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생과 사의 완충지대가 10센티미터도 확보되지 않는 일자리는 있어서는 안 되는 거 아닌가. 살기 위해 일하지만 일하다가 죽도록 내버려두는 이 부조리한 구조는 너무 노골적이라 가려져 있다.

우리 아파트는 화사한 봄옷을 갈아입었다. 다행히 사고는 없었으나 그 며칠간 무지는 매일 외부의 낯선 소리와 냄새와 움직임에 반응하며 ‘저기를 보라’ 명령했다. 나는 고양이를 따라 응시했다. 외벽 작업을 하는 반나절만이라도 땅 위에다 매트리스 같은 안전장치를 깔아놓으면 좋겠다 싶다. 당사자는 덜 불안하고 존중감이 들도록. 주민들은 그를 운 나쁘면 죽기도 하는 도구적 인간이 아니라 어떤 경우라도 살아야 하는 존엄한 존재로 보도록. 그러면 적어도 벽에 붙은 벌레 털어내듯 사람을 떨궈내는 일은 막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이런 내 안전 구상을 이웃 아주머니에게 말했더니 실현 가능성 없다며 흘려버린다. 사고가 줄지 않는 걸로 봐서 도장 업체 대표나 노동자의 안전을 담당하는 관료들은 무신경하다. 아들 용균의 죽음으로 세상 돌아가는 비밀을 알아버린 김미숙씨는 이렇게 한탄했다. “우리나라는 안전장치를 하는 것보다 목숨값이 쌉니다.”

고양이에게 면목 없는 인간 세상이다. 오늘도 누군가는 날개도 없이 허공에 매달려 일할 것이다. 그들은 존 버거의 표현을 빌리자면 불사의 존재, “끊임없이 대체 가능하므로 죽음이란 없는 존재들”이다. 죽어도 죽지 않는 이들이 흘린 ‘페인트 눈물’로 우린 깨끗한 아파트, 쾌적한 도시에 산다. 인간 불평등을 자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새가 있을 자리에 사람이 있어도 어쩔 수 없다고 여기면서.

※ ‘페인트 눈물’은 30년 경력의 도장 노동자가 “작업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면 눈에서 페인트 눈물이 나온다”고 말한 데서 빌려왔다.

 

*한겨레 삶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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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는 정말 사라지는가

[은유칼럼]


“애들은 좋은 곳에 갔으니까 이제 마음에 묻어라.” “교통사고다 생각해라.” “시간도 흘렀는데, 옛날처럼 같이 산에도 다니고 만나서 술 한잔도 하자.” “아이를 잃은 건 슬프지만 너는 그만큼 보상을 받지 않았냐?” 세월호 유가족이 들었던 위로의 말들이다. 상대방의 선의는 의심하지 않으나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한다. 


유가족을 배려하는 행동도 배려가 되진 않았다. “유가족입니다” 하는 순간에 모든 사람들이 아무것도 안 시킨다. 커피 한 잔, 물 한잔 마시려고 해도 “앉아계세요, 제가 타드릴게요.” 하고 어딜가도 유가족 자리는 따로 마련한다. 지나친 배려는 때론 배제가 된다. 유가족이 술을 시켜도 되나, 화장은 해도 되나, 여행 간다고 손가락질 하면 어쩌나 지레 주눅이 든다. 


세월호 5주기에 맞춰 발간된 유가족 육성 기록집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에 나온 몇 가지 에피소드다. 유가족은 자식 잃은 비통함에다가 거친 말들과 시선까지 감내해야 했다. “슬픔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을 용서하는 법을 배우는 것도 슬픔의 일부다.(론 마라스코)” 그래서 부모들은 모임을 꺼린다. 광화문 농성장에 모여있어도 말은 돈다. 울기만 한다고 뭐라고 하길래 웃었더니 웃었다고 다시 뭐라고 하니까, 서로 이렇게 충고한다. “간간히 울어.” 


책을 한 장 넘길 때마다 고개가 숙여졌다. 이 나라는 아이들만 구하지 못한 게 아니라 세월호의 슬픔에 빠진 유가족도 손 잡아주지 못했구나 싶었다. 나도 찔리는 구석이 있다. 상처를 건드릴까봐 고인의 이야기는 삼갔다. 예의인줄 알았다. 근데 아니더라. 17년 키운 자식을 한순간 잃었는데, 갑자기 이름도 불리지 않고 존재가 싹 지워진다면 그건 너무 쓸쓸한 일일 것이다. 


우린 슬픔에 무지한 종족이 됐다. 세월호 이전에도 슬픔은 허용되는 삶의 모드가 아니었다. 슬픈 사람은 약자로 분류되고, 약자는 구제의 대상이지 자기 목소리를 내는 권리의 주체로 보지 않는다. 공적 발언의 장이 주어지지 않고, 슬픔은 각자 삭혀야 할 사적 과제로 여긴다. 슬픔을 표현하는 말도, 슬픔에 공감하는 말도 공동체에 흐르지 못하니까 슬픔에 관한 언어가 빈곤하다. 슬픔에 관한 지혜가 모자라다. 


세월호 가족 이야기가 그래서 귀했다. 5년이란 고통의 시간을 견딘 목소리가, 슬픔에 단련된 말들이 쟁쟁하게 빛나는 슬픔의 교과서다. 해야 할 말과 해선 안 될 말이 무엇인지 배운 것만으로도 내겐 공부였다. 그리고 좋은 책이 그렇듯 삶과 사람에 대한 이해와 통찰이 담겼다. 슬픔을 기르는 법이 정신을 가꾸는 길로 통한다.


“이 시간이 내 정신 세계를, 중요한 게 뭔지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생각하는 능력을 좀더 성숙하 게 만들어놨다”고 이지민 엄마는 고백한다. 이영만 엄마도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고, 세상에 힘들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았다”며 이제 어른이 된 것 같다고 한다. 오준영 엄마도 깨어났다. “다 연결되어 있다고. 다 나한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말한다. “책임지는 어른의 모습을 나한테 계속 강요한다”는 이재욱 엄마는 멋지다.


죽은 자는 정말 사라지는가. 아이들은 여전히 곁에 남아 부모의 결정에 개입하고 선한 영향을 미친다. “집에 들어가면 회의 녹음한 걸 세 번, 네 번, 어떤 때는 다섯 번까지 들어요. 이해를 하려고요. 우리 아들이 옆에서 자꾸 공부를 가르치는 것 같아요.” 호성이 엄마의 말이다. 세월호의 시간 5년, 유가족은 주변에서 그토록 권하던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했으나 한 사람의 분별력 있는 시민으로 복귀했다. 나만 잘살면 된다는 각자도생의 삭막한 땅에 슬픔의 눈물을 떨구어 진실의 언어를 심는다.

 

*한겨레 삶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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