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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의 가을 / 최영미 나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 슬프다고 다 우는 게 아니고 눈물이라고 다 순결한 게 아니다. 두 눈에 눈물이 삐져나올 때 '지금 나 슬픈가?' 생각해보면 정말로 가슴 미어질 때도 있고, '울기엔 좀 애매한' 상황인데 저절로 눈물이 흐르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내겐 눈물이 방귀처럼 몸에서 삐져나오는 액체 정도. 수정같은 눈물 아니고 습관성 방귀나 집중호우 같은 개념이다. 내가 잘 우는 이유는 지난 수년간 집중적인 훈련으로 뇌에서 눈까지 눈물이 다니는 길이 닦인 것 같다. 스스로도 기가 막힐 때가 많다. 특히 오후 8시무렵 주차장 씬. 시장보고 오는 길에 차 댈 때 멜로배우처럼 운전대 앞에서 멍하니 눈물 흘린다. 클래식, 가요, 락 등 장르불문. 어둑한 밤길에 흐르는 음악이 나를 가을날 창가로 데려간다. 얼마전..
내겐 너무 SF적인 핸드폰 상용구 핸드폰을 바꿨다. 3년 정도 쓰던 것이 올해 들어서 버튼도 안 눌러지고 종말의 징후를 보이더니만 주말에는 급기야 수발신 기능이 정지됐다. 매장 직원이 내 구닥다리폰을 보고 “참 오래 쓰셨네요”라며 놀랐다. 이참에 스마트폰을 써볼까 유혹도 있었는데 월 통신비가 8-9만원은 나온다고 해서 접었다. 이동통신사를 변경하고 무료폰을 지급받았다. 디자인이고 기능이고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무료폰 종류가 세 개밖에 없었고 그중에 삼성 애니콜이 아닌 게 하나뿐이었다. 썩 좋은 단말기가 아니다. 아무려나 나는 여러모로 흐뭇했다. 새 것이 주는 물질감도 보송보송하니 매끄럽고 카메라 등 각종 기능이 편리했다. 무엇보다 그간은 거의 도장파는 압력으로 자판을 눌러야 했는데 슬쩍만 눌러도 글자가 찍히니 좋았다. 그런데 문자를 보..
정치론: 서론 - 인간본성에서 출발하는 정치적 기획 왜 읽는가. 스피노자의 이 내게 왔다. 아니 내가 찾아갔다. 를 읽고 나니 스피노자에게 욕심이 생겼다. ‘이 오빠, 뭐 있다’는 촉이 왔다. 체내 당분이 부족할 때 케이크만 봐도 군침이 돌듯이 그는 내 사유에 필요한 영양소를 담뿍 함유하고 있는 철학자였다. 내가 공부하는 이유는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이다. 나만 아니라 자식, 친구 그리고 생판 모르는 사람들까지 모두가 고귀하게 살았으면 좋겠고, 책장을 넘길수록 방법이 아주 없지 않다는 희망이 보인다. 다 같이 잘사는 법이란 결국 정치문제로 귀착된다. 현실의 정당정치가 아니라 넓은 의미의 정치. 삶을 다스리는 측면에서 볼 때 은 맞춤한 책이다. 왜 스피노자인가. 스피노자는 1600년대에 살았던 사람이다. 당시 서구는 오랫동안 지켜오던 것들이 흔들리며 새..
행복전도사 그 쓸쓸함에 대하여 ‘애시당초 빈 그릇인데 꽉 찬 것처럼 사는 게 내 모습이야.’ 심야에 문자가 왔다. 가족과 다투었다고, 그냥 사는 게 지겹다고, 집에선 형편없으면서 밖에선 뭐든지 다 해줄 것처럼 사는 자기가 싫다고, 가식과 허위로 포장하는 거 같아 괴롭다고 하소연했다. 익숙한 번민. 자세한 사연은 듣지 못했지만 짐작 가능했다. 원래 가족이란 ‘자기 바닥’을 확인하게 해주는 존재다. 그 회피하고 싶은 자기모습에 놀라고 한탄스럽고 절망하는 건 자연스럽다. 당신 나쁜 사람 아니라고 위로했다. 괜찮은 나와 엉망인 나 사이에 간극이 클 때 우리는 혼란을 느낀다. ‘어떤 게 진짜 내 모습이지?’ 자문자답을 해봐도 답은 없다. 인간이란 원래 하나의 동일성으로 환원될 수 없는 존재다. 정해진 본질이 없는 존재다. 나는 대체로 유쾌하고..
수미일관, 작은 주제로 밀고가라 몇 년 전 11월, 이 달이 가기 전에 꼭 장기기증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난 종교가 없다. 낭만진리교리에 따른 것이다. 우천시 음주처럼 11월에 장기기증. 왠지 조화로워서 그랬는데 나의 사치가 무근거한 의식은 아니었나 보다. 천주교에서 11월이 위령성월이라고 한다. 죽은 이의 넋을 기리는 달. 서울 합정동 절두산 성지로 취재를 가면서 알았다. 그곳은 순교성인 이외에 일반인의 납골당도 있다. (우리엄마도 여기에 계시다) 죽음을 생각하는 삶의 장소로 절두산 성지를 택한 것이다. 글을 써야한다. 소재가 많다. 11월, 죽음, 절두산 성지, 일반신도 납골당 부활의 집 소개, 사람들이야기. 이것들을 버무려 원고를 써야 한다. 난관이 예상된다. 일단 죽음이란 주제가 너무 크다. 어둡고 심오하고 방대하고 한편 ..
심보선 / 슬픔이 없는 십오초 사는 일에 미련이 없다. 없었다. 그말을 예사롭게 해댔다. 진심이었다. 자식 두고 죽는 여자들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뭐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쯤이면 나한테는 생의 마지노선까지 다녀온 거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죽음이 목전에 닿지 않았기에 할 수 있는 팔자 좋은 말잔치같아 부끄러웠다. 지금도 크게 바뀐 건 아니다. 삶의 밀도가 중요하지 길이가 중요지 않다고 생각한다. 인명은 재천이니까 안달해도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나를 확장하려는 노력은 멈출 수 없겠지만 순한 양처럼 주어진 시간에 복종하고 싶다. 어디로든 끝 간에는 사라질 길. 그저 초 단위로 조용히 늙고 싶다. 전화할 때마다 ‘빨리 가고 싶다’는 시어머니의 말은 진심일까. 살고 싶다는 표현에 비가 새는 것이라 여겼다. 나는 죽어도 여한이 ..
세월이 저만치 비켜간 곳, 모란시장길 “지난번에도 깎았잖아요. 내가 모를 것 같아요. 다 알아요. 올 때마다 무조건 깎아달라고 하면 어쩌라고. 나는 뭐가 남느냐고오. 아, 진짜 너무하시네.” 왁자지껄한 시장 통 사이로 우렁찬 사내의 목소리가 파고든다. 가격을 흥정하는 모양이다. 구구절절 하소연이 통했는가. 상대방은 말이 없다. 소낙비처럼 지나가는 시원한 일갈에 주변에 선선한 웃음이 번진다. 요즘은 어딜 가나 ‘고객님~’ 소리가 녹음기 틀어놓은 것처럼 재생된다. 안하무인 고객도 왕으로 모셔야한다. 친절만 있고 인정이 없는 차가운 세태에 비하면 여기는 후끈하다. 소박하고 거칠지만 옥신각신 사람 사는 맛이 살아 있다. 세월이 저만치 비껴간 곳, 성남 모란시장 5일장 풍경이다. “옛날에는 여기가 개천이었어. 복개공사 하기 전에는 대로변에 좌판을 벌..
2010년 목동의 3대세습 풍경 목동엄마들을 좋아한다. 특히 꽃수레 친구 엄마들은 영어유치원이 아니라 단지 놀이방에서 만나서그런지 평균적인 목동엄마들보다 소박하다. 사교육에는 불같은 열정을 태우지만 성품이 별스럽지는 않다. 인정 많고 배려 많고 돈도 많다. 수수하고 친절하다. 살림을 잘한다. 평소에 여러가지 배우는데 한참 바쁠 때 신세를 많이 졌다. 거의 매일 부탁해도 싫은 내색 한 번 없이 꽃수레를 거둬주고 여름엔 수영장, 겨울엔 스키장도 알아서 데려갔다. 계절에 한 번씩은 만나서 밥을 먹는다. 주로 학교와 동네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는데 목동 소수자인 나에겐 ‘그사세’다. 어제도 그랬다. ‘세상에 이런 일이’를 보는 기분이랄까. 2010년 서울 목동. 어느 하루 시간대별 풍경. 오전 11시 : 입시생 수용소가 된 동네 언젠가 말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