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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 - 정치적 글쓰기에 투항하다 어느 날 서점을 휘 둘러보는데 문학이랑 비소설 코너에 공지영 책이 십여 권 깔려있었다. 워낙 대중적이고 구매력 높은 작가니까 서점으로서는 당연한 처사겠지만 독점현상이 안타까웠다. 공지영보다 더 문장력 좋고 문제의식 뚜렷한 작가들 책도 많다. 서점은 책을 파는 곳이기도 하지만 권하는 곳이기도 하다. 자식 입에 밥 한술 더 넣어주는 엄마의 마음으로 영양의 균형을 고려해서 독자의 편식을 막아야한다. 서점의 윤리다. 공지영 에세이를 훑어봤다. 삼십대에 쓴 듯했다. 아무데나 펴서 읽다가 눈길이 멈췄다. 소위 성공한 작가가 되고 나니까 각종 청탁 인터뷰가 밀려오고 거절하면 욕먹고 힘들다...그런데 쓰고 싶은 글 쓰고 10만원 20만 원짜리 사보원고 안 써도 돼서 좋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기분이 묘했다. 그 심정 백..
채소값 폭등의 진실 어제 백화점에서 간단한 장을 봤다. 방울토마토 한통에 3900원이었는데 5500원으로 올랐더라. 태풍과 폭우로 배추와 상추만이 아니라 방토까지 영향이 미치는구나 했는데 알고봤더니 4대강 때문이었다. ㅠㅠ 대파 한단에 4500원이라 살 떨려서 못 사고 내일 장터에서 사야지했다. 그런데 장터에서도 4000원이다. 격차가 없다. 백화점 식품매장이 물건의 질은 월등히 좋은데 백화점도 값을 무한정 올리지는 못하는가보다. 장터에 장 보러 나오신 할머니가 "배추 못 사겠다" 했더니 야채 파는 총각이 "그래도 김치는 먹어야죠"한다. 그러게 말이다. 그런데 야채값 폭등현상이 장기화될 것 같다. 추석 때 시댁에서 얻어온 김치 아껴 먹으려고 부추 한단 샀다. 젓갈이랑 고춧가루 넣고 버무려서 저녁반찬으로 먹었다. 이제 김치와..
철학에의 권리, 국제철학학교 다큐멘터리 금시초문. 철학자 자크 데리다(사진)가 1983년 파리에 연구교육의 어소시에이션 를 창설했다고 한다. 문턱없는 밥상이 아니라 교문없는 철학대학이다. 그것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오늘 수유너머N에서 봤다. 니시야마 유지(Yuji Nisiyama)라는 일본 감독이 만들다. 그가 직접 와서 상영회 후 토론회도 가졌다. 이렇게 좋은 영화인줄 알았으면 미리 홍보해서 여럿이 같이 볼 걸 후회했다. 는 국가적인 교육기관 인가를 받은 곳이 아니다. 하나의 비영리 시민단체다. 하지만 그로 인해 무조건적이고 무제한적인 학술활동이 일어난다. 철학과 철학, 철학과 경제, 철학과 예술 등등. 본거지는 파리5구영의 데키르트 거리에 있지만 고유한 시설은 없고 공간을 빌려 운영되고 있다. 이것이 장점이다. 정해진 곳이 없으니 어디..
단어를 채집하자 나는 그 여자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사랑한다’라는 그 국어의 어색함이 그렇게 말하고 싶은 나의 충동을 쫓아 버렸다. - 아름다운 문장 한 줄 읽는 것으로 시작하자. 빼어난 문장이다. 독창적인 글쓰기의 묘미가 한껏 드러난다. 사랑한다고 차마 입을 떼지 못했다는 것이야 문학작품에서 늘 나오는 얘기다. 그런데 새롭다. 덤덤하면서도 절절하다. 나는 읽으면서 내가 그가 된 것처럼 어색해서 고개 숙이고 입술을 비틀었다 폈다 했다. 저 문장의 핵심단어는 ‘국어’같다. 흔해 빠진 말인데 사랑, 어색과 배치되니까 신선하다. 색다른 울림을 자아낸다. 더군다나 하나도 꾸미지 아니한 담백하고 솔직한 아이 같은 표현의 어른스러움이라니. 좋은 문장은 어려운 단어나 고급한 개념어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평범한..
폴스미스 전 - 모든 것에서 영감을 받는 사람 내가 서울을 사랑하는 이유랑 비슷하다. 백화점을 좋아한다. 그곳에 가면 문화적 자극을 많이 받는다. 아름다운 것들 틈에서 몸이 깨어나는 느낌. 눈이 즐겁다. 잡화, 가구, 그릇, 명품브랜드, 식품매장까지. 국내외 최고의 디자이너들이 만들어놓은 제품을 맛보는 재미가 크다. 남자 옷 코너가 은근히 쏠쏠하다. 여자 옷은 다양하고 화려하지만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측면이 있다. 치마, 스커트, 원피스, 바지 등등에다가 비즈를 박거나 망사로 처리하거나 꽃수를 놓거나 원색을 쓰거나에 따라 얼마든지 파격적인 실험이 가능하다. 남자 옷은 다르다. 기본 아이템에 디테일한 변형을 추구해야한다. 같은 듯 다름을 빚으려면 고난도의 상상력과 창의성을 요한다. 단추 모양 하나, 셔츠의 주름 하나, 스티치 색상 하나, 주머니 위치..
추석전야, 화양연화 화양연화는 와인인가. 기후와 기분에 따라 달리 느껴지는 음악이다. 가을, 이렇게 비라도 내리는 날에 화양연화의 감동은 최적화된다. 비내리는 추석. 내 마음은 양조위의 잘생긴 뒤통수와 하얀셔츠 위로 피어오르는 담배연기 따라 뭉개뭉개 떠다니는데, 곧 바닥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기름 뒤집어 쓰고 전을 부쳐야 한다. 익숙해진 자아분열. 딱히 기다릴 것도 그리울 것도 없는 명절. 뉴스에 나오는 귀경길 인파처럼 내 발걸음은 겅중겅중 기쁘지 아니하다. 가을에 날 설레게 하는 것은 추석이 아니다. 한가위 차오른 달처럼 시린 음악과 빼어난 미장센이 어우러진 영화, 화양연화다. 어제 오후, 멸치선물세트 들고 아는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오픈 카페에서 맥주 한잔 마시는데 핸드폰이 띠리릭~ 양쪽에서 울려댄다. 명절이라고 풍성한..
꽃수레의 '의미와 무의미' 여름휴가 때 월악산 부근 휴양림을 산책했다. 다들 물놀이를 갔는지 통나무집도 비어있고 그림자 하나 얼씬거리지 않았다. 산으로 난 호젓한 숲길을 넷이서 흩어져 걸었다. 맨 앞에서 이꽃 저꽃 살펴보던 꽃수레. 강아지풀 서너 개 뜯어서 가지런히 세운 다음 뒤돌아 나를 부른다. “엄마, 이거 '푸르지오' 상징이다! 그치?” “어머 그러네. 어떻게 알았어.” 참내, 이걸 눈썰미가 좋다고 칭찬해야하는지 애답지 않다고 꾸짖어야하는지 헷갈렸다. 온통 넓은 집, 쾌적한 주거공간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찬 꽃수레는 삼성은 래미안, GS는 자이, 대우는 푸르지오, 현대는 힐스테이트 등 국내 유수의 아파트 브랜드를, 구구단보다 먼저 외웠던 참이다. 그 뿐 아니다. 아빠랑 둘이 부동산정보 웹서핑을 날마다 해대는 통에 집값이 싼 ..
옥희의 영화 - "홍상수 영화에 약 탔나봐" 사랑은 교통사고인가에 관한 물음 '난 사랑은 교통사고 아니라고 생각해’ ‘그럼 피할 수 있다는 거?’ ‘응’ ‘음... 그래. 어떤 점에서 그런지 더 설명해줘’ ‘주체는 자기 의지와 윤리적 선택에 따라 형성되는 거잖아. 먼저 결정돼 있는 게 아니고.’ ‘그래도 싫은 사람을 억지로 사랑할 수는 없잖아.’ ‘그런데 좋은 사람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어. 나는 어떤 남자에 굉장히 빠졌었거든. 그 때 외로워서 그랬던 거 같아. 보기만 해도 가슴이 뛰고 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 거야.’ ‘왜? 섹스하고 싶어서?’ ‘응. 근데 뻔히 보였어. 굉장히 강하고 복잡한 사람이었어. 저 사람을 사랑하면 내가 고통으로 몸부림치겠구나’ ‘복잡한 사람 사랑하면 지옥이지’ ‘엄청 참았어. 지금 생각해도 잘 한 거 같아. 사랑하지 않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