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미일관, 작은 주제로 밀고가라

[글쓰기의 최전선]

몇 년 전 11월, 이 달이 가기 전에 꼭 장기기증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난 종교가 없다. 낭만진리교리에 따른 것이다. 우천시 음주처럼 11월에 장기기증. 왠지 조화로워서 그랬는데 나의 사치가 무근거한 의식은 아니었나 보다. 천주교에서 11월이 위령성월이라고 한다. 죽은 이의 넋을 기리는 달. 서울 합정동 절두산 성지로 취재를 가면서 알았다. 그곳은 순교성인 이외에 일반인의 납골당도 있다. (우리엄마도 여기에 계시다) 죽음을 생각하는 삶의 장소로 절두산 성지를 택한 것이다.  

글을 써야한다. 소재가 많다. 11월, 죽음, 절두산 성지, 일반신도 납골당 부활의 집 소개, 사람들이야기. 이것들을 버무려 원고를 써야 한다. 난관이 예상된다. 일단 죽음이란 주제가 너무 크다. 어둡고 심오하고 방대하고 한편 진부하다. 자칫 추상으로 흐르기 쉽다. 절두산과 부활의 집이 어떤 곳인지도 설명해야 한다. 또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명료하게 말하지 않는다. 막연하게 슬프다 두렵다 등 감정을 뭉뚱그린다. 글이 전체적으로 산만해지기 딱 좋다.

욕심을 버리고 작게 시작하자.
하나의 이야기로 수렴하는 흐름이 있어야 독자의 주의가 흩어지지 않는다. 글에다가 수미일관한 통일성 부여하기. 이를 위해 글쓰기 전에 스스로 기본적인 질문을 몇 가지 던져보아야 한다. 소재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적극 개입 아니면 관조) 어느 정도로 다루며 '어떤 점을 강조할 것인가?' 이 질문을 상기하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글쓰기를 망치는 지름길은 ‘지금 여기서 몽땅 다’ 말하려는 것이다.  

글쓰기에 결정판은 없다. 자기 글이 결정판이 되어야 한다는 의무감, 완벽함에 대한 콤플렉스는 버려라. 누구도 무언가에 ‘대한’ 책이나 글을 쓸 수는 없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 대한 책을 쓸 수 없었고, 멜빌은 고래잡이에 대한 책을 쓸 수 없었다. 그들은 특정한 시간과 장소, 그리고 그 시간과 장소에 대한 특정한 인물들에 대해서만 썼다. 모든 글쓰기는 시작하기 전에 먼저 범위를 좁혀야 한다.
- 글쓰기 생각쓰기
 

절두산 취재의 경우라면 11월 죽음에 ‘대한’이야기가 아니라 ‘절두산 납골당에 온 사람들이 경험한 가족의 죽음’으로 주제를 좁혀야 한다. 가까운 사람을 먼저 보낸 경험을 녹여서 그들의 죽음에 대한 생각을 담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절두산의 유래, 여기에 잠든 성인들, 부활의 집 이야기를 고루 담은 ‘절두산 가이드북’이 되어서도 안 되고, 작가의 과도한 개입으로 죽음에 심취한 '어느 염세주의자의 일기'가 되어서도 곤란하다. 

글의 분위기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것은 결국 이야기를 한 곳으로 끌고 가는 힘이다. 이것은 뼈대나 구성보다 ‘전기자장력’이란 표현이 더 적합하다. 주제를 구현하기 위해 일정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힘, 구심력이다. 구심력과 구성력은 다르다. 대개는 글쓰기에서 기-승-전-결이나 현상-원인-해결책 등 구성을 해놓고 글을 쓰라고 가르친다. 나는 그렇게 써본 적이 없다. 각자의 스타일인데, 뼈대를 짜놓으면 생각의 흐름을 미리 가둬두는 것 같아서 갑갑하다. 내 생각이 어디로 튈지, 내가 무슨 글을 쓸 수 있는지는 나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 두고 구성력이든 구심력이든 각자에 맞게 택하되 ‘주제는 작게’ ‘하나의 흐름으로’ 밀고 나가자.

마지막으로 선물. 여행기 쓰는 법. 모르긴 해도 사람들은 여행기에서 글쓰기 결정판의 유혹을 가장 많이 받는다. 그래서 논점이탈, 주위산만의 오류가 흔히 발견된다. 온누리여행사 패키지를 요약한 듯한 나의 여행일지와 정보를 담은 파리의 가이드북을 만들려고 하면 글쓰기가 부담스럽고, 쓰고나면 장황하고, 읽는 사람도 재미없다. 명소에서 디카로 사진 찍듯이 전부 다 쓰려고 하지 말고 '내 인생의 한 컷'에서 시작하는 게 좋다. '세느강에서 본 것, 들은 것, 일어난 사건 하나'에서 출발하라. 내가 겪은 것 그 이후 나의 감각과 사유의 변화에 대해 써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했느냐는 크게 중요치 않다. 그 상황이 어떤 영향을 주어 지금의 나를 형성했느냐가 중요하다. 글쓰기는 거듭되는 자기갱신의 기록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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