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쓰는가 - 정치적 글쓰기에 투항하다

[비포선셋책방]

어느 날 서점을 휘 둘러보는데 문학이랑 비소설 코너에 공지영 책이 십여 권 깔려있었다. 워낙 대중적이고 구매력 높은 작가니까 서점으로서는 당연한 처사겠지만 독점현상이 안타까웠다. 공지영보다 더 문장력 좋고 문제의식 뚜렷한 작가들 책도 많다. 서점은 책을 파는 곳이기도 하지만 권하는 곳이기도 하다. 자식 입에 밥 한술 더 넣어주는 엄마의 마음으로 영양의 균형을 고려해서 독자의 편식을 막아야한다. 서점의 윤리다.  

공지영 에세이를 훑어봤다. 삼십대에 쓴 듯했다. 아무데나 펴서 읽다가 눈길이 멈췄다. 소위 성공한 작가가 되고 나니까 각종 청탁 인터뷰가 밀려오고 거절하면 욕먹고 힘들다...그런데 쓰고 싶은 글 쓰고 10만원 20만 원짜리 사보원고 안 써도 돼서 좋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기분이 묘했다. 그 심정 백번 이해하나 뭔가 섭섭하고 한편 부러웠다. 사람들이 왜 돈돈 하는지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어서라고 생각했다. 근데 아니었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바로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자유!' 이 도도한 외침! 이 탐나는 선언! 이 우월한 인생! 돈의 위력이 거기에 있었다는 걸 나이 사십 먹어서야 알다니. 

문필하청업자의 비애

주문제작형 원고를 쓰는 문필하청업자는 하고 싶은 일, 하기 싫은 일 가리지 않고 하게 마련이다. 이때 ‘일을 주는’ 편집자와의 소통이 중요하다. 이 글을 왜 쓰는지, 기획의도가 충분히 공유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글을 써줘야 한다. 안 그러면 일이 끊긴다. 당연하다. 과외선생님이 학생들 성적 못 올리면 잘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일년에 두세번 정도 원고가 되돌아온다. 편집방향에 맞게 수정을 요청할 때 대체로 수용 가능한 것들이지만, 가끔은 그렇지 않다. 내 생각은 다르다며 항변하고 싸우기도 한다.  

“처음부터 그런 부분을 분명히 밝혀주셨으면 취재에 응하지 않았을 겁니다. 자연의 위대함, 강물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은 동서고금 수많은 훌륭한 수필가, 시인들이 이미 노래했고 사람들도 이미 다 알아요. 그런데 그걸 왜 다른 중요한 현안 제쳐두고 이 귀한 지면에 반복해서 써야하는 건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고집을 부려보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원하는 대로 고쳐서 보내드리겠다고 말하는데 눈물이 지 혼자 흐르기도 했다. 한번은 나한테 말도 안 하고 편집자가 멋대로 원고를 고쳐 실어서 ‘내가 쓴 글로 인정할 수 없다’며 원고료를 거부한 적도 있다. 그들한테는 길가의 돌부리처럼 일시적인 곤란이었겠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나'라는 존재에 대한 우주적인 물음에 봉착했다. 이 세상에는 훌륭한 글도 많은데 거기에다 나까지 하나마나한 말 보태서 괜한 글공해를 만들고 싶진 않았다. 신경질 나고 자존심이 상해서 이불 뒤집어쓰고 울 때마다 묻곤했다. ‘나는 왜 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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