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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원 뮤지컬 배우 - 나의 인생은 한국뮤지컬 역사 무대 위에서는 감전될 듯 뜨겁지만 겨울날 시린 햇살 아래서는 한들한들 다사롭다. 긴 치마와 굵은 물결머리에 안개꽃을 품은 자태가 그림엽서 소녀마냥 수줍기도 하다. 하나의 의미로 갇히길 거부하는 천생 배우 최정원. 삶의 어느 자리든 맡은 배역마다 싱크로율 100%다. 그래서 그녀 곁엔 항상 아우라와 박수가 따른다. 상복은 덤이다. 얼마 전 한국뮤지컬대상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활짝 웃는 두 뺨에 아직도 살짝 감흥이 배어난다. 눈물 “1995년 한국뮤지컬대상 제1회에서 로 여우신인상을 받았어요. 다음해에 여우조연상을 받고 제7회 때 로 여우주연상 받았죠.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고 그랬죠. 이후에도 계속 후보에는 올랐지만 한번 상을 받았으니까 후배들에게 기회도 줘야하고 기대를 안 했거든요. 마음을 비우고 있다..
사평역에서 /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 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 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
꿈의 비상구, 인천국제공항 4천미터 활주로 손수레 한가득 짐 꾸러미를 이고 지고 밀고 끌고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 화사한 신혼여행 커플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효도관광 떠나는 어르신들도 있고 출장길에 오른 비즈니스맨, 인식의 지평을 넓히려는 유학생,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랬듯이 멀리서 들려오는 북소리에 이끌려 긴 여행을 떠나는 이들도 섞여있을 것이다. 목적은 달라도 표정은 닮았다. 설렘이 가득 괸 눈망울과 시간을 재촉하는 걸음걸이, 아마도 심장은 둥지를 떠나는 어린 새처럼 팔딱팔딱 뛰고 있으리라. 삶의 진풍경을 연출하는 이곳은 인천국제공항 여객터미널 출국층이다. “근무한 지 10년째이지만 지금도 여기만 오면 덩달아 떠나고 싶다”는 김기민 인천국제공항공사 홍보팀 과장. 그의 바람이 말해주듯이 2001년 3월 29일 개항한 인천국제공항은 지난..
뚜라 버마행동 대표 - “정부 비판한다고 난민 불허” 가난한 불빛 번지는 거리를 지나간다. 저만치서 불쑥 나타난 경찰이 불러 세운다. 신분증을 요구한다. 난민을 신청한 상태라고 말한다. 일단 차에 태운다. 전화로 확인이 끝나면 그제야 풀려난다. 무시로 겪는 일이다. 이 번거로움을 피하려면 이걸 들고 다녀야 한다. 인도적 체류를 허가한다는 법원 판결문. A4크기 한 장이다. 가방 없이 가볍게 외출할 때가 문제다. 맨 손에 문서만 팔랑팔랑 들고 다닐 수도 없고 그렇다고 검문을 피해갈 재간도 없다. 운수 사나우면, 또 경찰차 신세다. 시도 때도 없이 존재증명-노동에 시달리는 뚜라 씨. 여러모로 고달프고 씁쓸하다. 지난 10월 버마행동 회원 8명을 난민으로 인정해야한다는 서울고법의 판결이 나왔다. 그런데 정작 버마행동 대표인 뚜라 씨만 난민인정 대상에서 쏙 빠져버..
그날 이후 / 최승자 그날 이후 나는 죽었다. 그러므로 이것은 사후의 기술이다. 물론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것은 과장이다. 그렇다고 못 속아주는 분 또한 어엿한 바보이시다. 그러면 한 곡조 꽝! 저 강 저 벌판을 돌아 내 XX가 간다. 묻어다오, 헤매는 이 발목 흐르는 이 세계를, 묻어다오. 이런 시를 훌쩍이기 위해 시를 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 그러나 나는 내 XX를 다 소비해버린 거디엇다. - 문학과지성 신작 시집, 김현 編 시집을 들고 다니면 사람들이 종종 묻는다. 나도 시를 읽고 싶은데 무슨 시집부터 어떻게 읽으면 되느냐고.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시가 좋으면 시를 읽어야지 어쩌라고. 공무원 시험과목도 아니고 달리 뾰족한 방법이 있겠는가. 근데 사람들은 어느 시인의 어떤 시집을 짚어주길 원했다. 같은 ..
선악의 저편 4장 - 잠언과 간주곡 4장은 짧은 잠언으로 이뤄졌다. 맥락에서 걸어 나온 한줄 문장을 해석하는 건 위험하고 부질없다. 그래도. 울림을 남기는 좋은 문장을 읽고 나누는 일은 아름답고 유용하다. 65. 인식에 이르는 길 위에서 그렇게 많은 부끄러움을 극복할 수 없다면 인식의 매력은 적을 것이다. = 안다는 것은 나의 무지와 편견과 빈구석을 아는 것. 그 손발 오글거리는 쪽팔림을 견디는 것. 자기를 알아가는 투쟁. 그것을 인식의 매력으로 표현하다니 니체는 대인배다. 72. 높은 감각의 강함이 아니라, 지속되는 것이 높은 인간을 만든다. =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습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문구랑은 느낌이 왠지 다르다. 매일 한 쪽씩 글 쓰는 것으로 높은 인간이 될 수 있을까. 그건 아닌 거 같다. 기계적 반복이 아닌 영혼의 단련 차원은..
선악의 저편 3장 종교적인 것 - 금욕의 두 가지 버전 어디선가 신보다 신앙이 먼저 생겼다는 말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는데 같은 맥락에서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종교보다 종교적인 것이 문제라고. 신의 죽음으로 종교는 사라졌지만 종교적인 것은 여전히 위세를 떨친다는 것, 즉 우리시대에는 도덕, 과학 등이 ‘신 없는 신앙’으로 종교의 기능을 대신한다는 비판이다. 종교적인 것의 어떤 부분이 문제이냐 하면 희생, 금욕 같은 것들의 강조이다. 삶을 위한 종교가 아니라 종교를 위한 삶이 되는 가치전도. “그리스도교적 신앙은 처음부터 희생이다: 모든 자유와 긍지, 모든 정신의 자기 확실성을 바치는 희생이다. 동시에 이는 노예가 되는 것이며 자기 조소이자 자기 훼손이다.” 니체는 종교적인 것을 ‘종교적 신경증’이라고도 표현한다. “거기에는 늘 고독, 단식, 성적 금욕이라는 ..
클라라 - 초극의지 돋보이는 브람스의 사랑 슈만과 클라라. 이런 이름의 커피가 있단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 말해줬다.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커피가 아닐까 싶다. 음악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슈만은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독일의 음악가다. 클라라는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두 사람은 서로 사랑했다. 그런데 클라라 아버지가 음악가로서 장래가 불투명한 슈만을 탐탁치 않게 여겨 6년간 법정 공방까지 거치며 결혼에 성공했다. 여기에 젊은 음악가 브람스가 등장한다. 슈만과 클라라, 그리고 브람스. 이들 세 사람은 음악이라는 물안에서 마치 커피설탕프림처럼 서로의 삶에 녹아든다. 슈만은 일찍이 브람스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보고 그를 발굴해 키워낸다. 브람스는 당대의 뮤즈 클라라를 동경하고 사랑한다.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클라라의 곁을 지킨다. 세 사람의 이야기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