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임없이 그짓을 되풀이하였습니다

[글쓰기의 최전선]

어느해 봄이던가, 머언 옛날입니다.

나는 어느 친척의 부인을 모시고 성 안 동백나무 그늘에 와 있었습니다.

부인은 그 호화로운 꽃들을 피운 하늘의 부분이 어딘가를

아시기나 하는듯이 앉어계시고, 나는 풀밭위에 흥근한 낙화가 안씨러워 줏어모아서는

부인의 펼쳐든 치마폭에 갖다놓았습니다.

쉬임없이 그짓을 되풀이 하였습니다.

 

그뒤 나는 연연히 서정시를 썼습니다만 그것은 모두가 그때  그 꽃들을 주서다가 디리던

-그마음과 별로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제 웬일인지 나는 이것을 받아줄이가 땅위엔 아무도 없음을 봅니다.

내가 줏어모은 꽃들은 제절로 내손에서 땅우에 떨어져 구을르고 또 그런마음으로밖에는 나는 내 시를 쓸수가 없습니다.

 

- 서정주, <나의 시>

 

 

쉬임없이 그짓을, 지난주도 되풀이 하였습니다.

우리가 글쓰는 마음도 이 마음과 같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을 받아줄 이가

땅위에 있어서 을매나 다행인가요.

 

지난주 괴산으로 엠티.

시골의 청초한 얼굴을 본 기분이랄까요. 도치님이 '볼 것 없다'고 우려하셨는데, 그 볼 것 없음이 충분한 볼 것이었습니다. 도회고 시골이고 어딜가나 다 천편일률적인 경치가 못마땅했는데 사람의 손길이 정성스레 닿은 있는 그대로의 '시골' 풍경을 한나절 푸근히, 어슬렁거리며 살다올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다른 분들은 꽃사진 찍고 연못사진 찍는데 저는 앨범을 보니 모닥불! 사진만 있네요. 왜인지는 모르지만 타는 모습은 언제나 제겐 매혹적이에요. 지난주  슝슝님 버전으로 '진짜' 거실에 둘러 앉아 합평했네요. 이장님 입회하에 열린 반상회 같기도 했고요. ㅎㅎ 주변 공기가 맑고 순해서 그런지 밥을 든든히 먹어서 그런지 집중이 잘 되고 좋더라고요.

 

두분 글도 매우 훌륭했습니다. 지금까지 중 최고!

 

선미

 

광화문 지킴이 최창덕. 유가족이나 활동가가 아니면서 세월호 현장을 지키는 한 사람의 이야기. 그는 왜 거기에 있는가. 그가 본 것 한 것 느낀 것은 무엇인가. 이걸 담아냈습니다만, 조금 아쉬움이 남아요. 세월호 사건에 대한 당위나 일반론으로 접근해서 그런 거 같아요. 최창덕 씨의 입장에 동의하고 지지하더라고 글 쓸 때는 '왜'라는 질문과 의심!에서 접근해야 조금 더 날카롭고 치밀해질 수 있거든요. 아니 왜 사서 고생을 하지? 하는 아주 단순한 물음이요. 그럴 때 어떤 착하고 정의로운 시민 한 사람이 아니라 갈등하고 분열적인 그러나 '영석아빠 민우아빠'가 마음에 걸려서 다시 마음 다잡고 광장으로  달려가는 최창덕이라는 사람이 보일 거예요.

 

'욕설보다 무섭고 힘든 것이 시민들의 무관심이다.' -> 이건 핵심문장인데요. 자기도 예전엔 무관심했던 사람이고 지금 다른 자리에 서 있기 때문에 무관심한 시민들에 대한 다른 마음, 다른 생각이 있을 것도 같아요. 그런 부분을 디테일하게 파고들어가면 더 솔직하고 진솔한 이야기가 나오겠죠. 선미샘은 이제 글의 구성, 이야기 전개 등에는 무리가 없고 군더더기도 없어요. 디테일을 살리고, 글의 핵심, 인물의 개성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고유성과 핵심 메시지 구현에 집중한다면 더 좋은 글이 될 거예요.

 

노래

 

 '필자가 글 안에서 자유롭다'는 느낌을 받을 때 좋은 글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번 노래님 글이 그랬습니다.  '책-꿈'이라는 핵심소재를 중심으로 에피소드가 적절히 배치되어 몰입이 잘 되었어요. 책을 거들 떠도 안 보는 남자와 책을 스승처럼 여기는 여자, 라는 대비구도가 글의 긴장을 불어넣어주었겠죠. 이건 순정한 인터뷰라기보다는 '대담형 인터뷰'에 가깝고 나쁘지 않았습니다. 모든 인터뷰가 인터뷰이 중심일 필요는 없죠.  다만 있는 그대로의 한 사람을 여기저기 쑤셔보고 찔러보면서 말을 끌어내고 받아내는 방식이 아닌 '책'이라는 틀로 그 사람을  보려는 게 조금 답답하게 느껴졌어요. 왜 책을 읽어야하는지 근본 물음 없이 다짜고짜 '책(꿈)'이 진리처럼 등장해서 전개되는 점이요. 나에게는 삶을 지탱하는 게 책인데, 저 사람에겐 책 같은 존재가 무얼까?가 물었으면 더 좋았겠다 싶습니다. 그래도 마지막에는 필자가 자신의 과오;를 '꼰대'라는 말로 정리하고 인터뷰이의 미덕을 발견해서 이야기를 모아주어 균형이 맞춰졌습니다.

 

노래님 특유의 휘몰아치는 파토스의 글쓰기가 있어요. 그게 큰 장점인데 걸림돌이기도 해요. 조금 상황을 객관화 시키고 감정과의 거리를 만들어보세요. 앞 부분은 서술형으로 정리가 잘 되었는데 중간 단락 '내가 무식하다고?' 부분에서 남편의 말이랑 노래의 지문이 뒤엉켜 좀 어지럽습니다. 본디 사람은 흔들리는 꽃 같은 존재이지만 글쓰는 필자는 튼튼한 뿌리와 흔들리는 잎새를 동시에 보여주어야 독자가 안정감 있게 몰입을 하거든요. 그걸 전략적으로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 문제가 남아요. 다음에는 의도적으로라도 감정적인 발언, 단어, 어휘, 정서를 자제하고 팩트만으로 건조한 글을 써보겠다, 이런 시도를 해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여튼, 재밌는 인터뷰, 덕분에 저도 돌아보게 되었어요. 좋은 글이 공명을 일으킨 거죠. 고맙습니다.


(10차시)


오늑

모두가 다른 옷을 입었으면 좋겠다패션에세이 후속편 느낌입니다필자의 패션관을 현장에서 구현하고 있는 인물 통해 자신의 주장과 생각을 전달하는 글입니다이것이 에세이형 인터뷰가 되려면 주인공에 대한 정보가 더 제공되어야겠죠처음 의류디자이너를 꿈꾼 일가게를 차린 시기와 계기와 이유디자이너로서 옷의 소신 (가령 정구호 씨 인터뷰할 때 들은 기억나는 말=옷에는 여백이 많아야 한다)도 궁금하고요디자이너로서 재미와 불안 등주인장의 이야기가 오늑의 소싯적 꿈과 같이 두 겹으로 진행되어도 좋겠다 싶습니다한 사람인 듯 두 사람 이야기.

 

나의 사치스러운 부끄럼’-> 똑같은 옷을 입은 친구 만났을 때 빨리 집에 들어가고 싶었다.

성별 프레임이 개입된 패션’ -> 이런 말도 더 사례를 들어 풀어주면 좋고요.

패션만큼 일반적인 프레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일상 속의 예술은 없다.’

->일반적인 프레임이란 표현은 모호해요지루한 일상천편일률적 스타일범위가 너무 크죠정확한 표현이 없을 땐 아예 빼는 것도 방법입니다. ‘패션은 일상 속의 예술이다. (부연 설명)’

단어를 더 정교하게 적합한 것으로 쓰고요설명적 표현은 피하고요주어-목적어-술어 관계에 충실한 기본 문장 써보세요좋아하는 소설가 문장 필사하면서 연구 분석하는 것도 방법이에요문장이 매끄러우면 필자의 개성 넘치는 생각이 자유롭게 전개될 것입니다.

 

 

바람도리

엄마 인터뷰가 아주 재밌어요참으로 개성 뚜렷하고 명확한 가치관이 명확해서 글로 쓰기 좋은 인터뷰이입니다중제로 달아놓은 문장만 보면 가난에 한이 맺혔다’ ‘돈을 위해 살았다’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아서 좋다’ “원인-극복과정-결과” 구도가 명확합니다그래서 글이 좀 평면적인 느낌을 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갈등은 글의 재미를 주는 큰 장치거든요어머님이 회의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직진하는 인물이라 갈등이나 위기가 안 나왔잖아요또 고행에 가까운 궁상이라고 했지만 궁상의 사례가 좀 부족해요그런데 글이 설명적이고 단정적 말투로 진행되니까 내용이 흩어지는 것 같았을 거예요.

 

이럴 때는 인터뷰이가 개입해서 근검절약 사례를 더 캐내고엄마가 없다고 우기는 그 내면의 갈등을 더 파헤쳐보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좌절이나 흔들림은 아니더라도 설움외로움?이 있었을 테고 그걸 잘 물어서 배치해 주는 거죠엄마는 삶이 허무하지는 않는지잘 사는 게 무어라고 생각하는지가난한 사람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돕고 싶은 생각이 없는지등등 추가 인터뷰 해보셔도 좋을 거예요이 인터뷰를 고칠 때는 중요한 엄마의 말은 직접인용으로나머지는 딸의 내래이션으로 풀어주면 더 좋겠네요바람도리님 평소 주특기인 내면 탐사와 통찰적 표현이 곁들여진다면 금상첨화!

 

 

송이 (까탈림)

섭외의 힘인터뷰는 섭외가 반인데인물설정이 탁월했습니다이야기가 풍부하고 개성이 강해요톡톡 튀는 필자와 인터뷰이의 도 잘 맞은 거 같아서 글이 이물감’ 없이 흐릅니다.그런데 글이 너무 개그코드로만 흘렀어요웃고 났는데 허무하달까글 서두에 인물에 대한 외모나 분위기 묘사문청으로서 시인이 되기 위한 노력들평소 읽는 시그리고 10년 병간호 하면서 겪은 일들 등을 보여주면 더 인물이 입체적으로 표현되겠지요저는 왠지 저 분이 어두운 내면의 소유자일 것 같아요사람은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고 늘 변하는 존재지만요그리고 인터뷰에 가장 중요한 시 소개가 없는 게 흠입니다한 연 정도 꼭 넣어주시고요.

 

앞으로도 글을 쓸 때 조금 더 한 호흡 깊게 들어가 보자다짐하면 더 많은 걸 담을 수 있어요내 생각내 사고의 틀을 흔들어보자는 마음나는 얼마나 더 달라질 수 있는가 시도하는 장이 되면 글도 삶도 더 좋아집니다이 글은 딱 보여지는 송이만큼 표현되었어요그것도 상콤하고 좋지만 안 보이는 송이의 면까지 드러나는 겹겹의 글 보고싶음요.

 

 

경덕쿵

새로운 시도경덕쿵의 실험 정신을 보여준 글자기의 문체를 찾아가는 용자의 모습을 보았네요지금까지 글은 깔끔한데 모범생 헤어스타일처럼 단정해서 뭔가 아쉬웠어요글쓰기가 더 잘 실패하는 과정이라면이번 실패가 가장 멋져요일단은 분량 긴 것도 맘에 들어요김어준도 흉내내보고 이슬아도 따라해보고 뭐든 해보세요그 과정에서 경덕쿵의 목소리문체를 찾을 거예요.

호기심이 많은 건 기획 단계까지만 좋고글을 쓰기 시작하면 몰입 모드로 가야해요하나의 주제를 살리기 위한 가지치기가장 사랑하는 문장도 버리고촌철살인 같은 표현도 삭제하고무얼 남길 것인가나는 무얼 이야기하고 싶은가계속 묻고 쓰는 거죠이 글은 이슬아랑 경덕쿵이라는 에 관심 많은 호기심 천국 20대 남녀가 만나서 한바탕 수다를 떨었는데,그게 나쁜 게 아니라그게 다 라는 게 문제에요그 수다를 따라가는 독자에게 뭔가 남겨주세요.

 

이 글은 필자의 해석’ 과정이 있어야 해요천착하는 문제의식마지막에 던진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 크고 막연하고 어려운 질문을 갖고 둘이 좀 더 잘게 부수면서 놀았으면 깊은 대화가 되었을 텐데요적어도 난 평생 글 써서(글과 관련된 일로밥 먹고 살겠다라는 패기 있는 마무리라도 나오거나이런 통념을 뒤집을 만한 결론도 좋겠죠글을 사랑하는 사람이 잘 사는 방법은 무엇인지정말 매력적인 질문입니다앞으로도 잘 물고 늘어져보세요.





 

9차시 리뷰-몸으로 읽다 '소년이 온다' 앓이

[글쓰기의 최전선]

소년이 온다 ‘앓이’를 했던 수업이었습니다. 타인의 고통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지만 문학을 통해서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 참 귀합니다. 스크린을 통해 전시되는 무력한 피사체가 아닌 (혼령이 되어서도) 할 말 하는 주인공들을 만나는 시간. 그 꿋꿋하고 집요한 응시는 분명 손쉬운 애도는 아니지만 그래서 더 값진 게 아닐까요. 좋은 문학은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고 생각해요. 안다고 생각했는데 모르고 있었다는 걸 일깨우는 작품이요. 아무튼 온몸으로 소년이 온다를 읽는 여러분들에게 많이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고마워요. 같이 있(읽)어주어서요.

 

오늑 

 

영화 <액트 오브 킬링> 내용정리가 명쾌하네요. 가해자의 말과 대비되는 피해자 증언으로 <소년이 온다>를 접근했습니다. 이 소설도 위의 영화처럼 간략한 요점 정리가 되어야 책을 안 읽은 독자들도 이야기를 따라가졌죠. 그리고 ‘역사 기록의 중요성에 있어 예술의 역할’에 관한 필자의 주장이 나옵니다. ‘모든 사람은 다면체의 진실을 알 권리가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모든 기록은, 예술이든 어떤 형태로든 살아남아야 한다. 소설/미술/영화는 강력한 언론이다.’ 좋아요. 역사적 사건이 예술을 통해 변주되고 재해석 되는 작업의 의미와 가치를 다양한 논거를 들어 잘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런데 독자들을 계몽하려는 논조는 피해주세요. ‘독자들도 팩트라는 언론의 타이틀에 현혹되어 하나의 시선 속에만 스스로 고립시킬 게 아니라 다양한 매체로 역사를 받아들여야 한다.’ 필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당신도 좀 깨어나시오.’ 하는 뉘앙스를 줍니다. 이런 어투보다는 나는 다양한 매체로 역사를 받아들여 조금 더 균형 잡힌 시각을 갖게 되었다, 는 고백이나 아니면 다른 사례나 통계를 제시해줄 수도 있겠죠. 설명하지 말고 보여줘라, 이 원칙을 기억해주세요. 마지막 문인과 예술가들의 (비참한) 삶 부분은 논점을 이탈하는 사족 같습니다. 이번 글을 보니 점점 좋아지고 있습니다. 주제 싱크로율이 높아지네요. 공들인 흔적이 우러나고요. ‘상처의 피는 이야기 되어져야 마르지 않는다.’ 같은 표현은 참 좋습니다.

 

바람도리

 

‘국가, 자본가, 직장상사, 남자, 학교, 선생님처럼 내가 증오하던 모든 존재는 빈집의 아저씨다.’ 모든 폭력은 힘 있는 자, 생사여탈권을 쥔 자들의 일방적 횡포지요. 사적 경험을 폭력의 구조로 읽어 내고 공적 언어로 풀어보려는 해석과 시도가 돋보입니다. 폭력의 경험이 삶의 부정과 방기를 낳았고 알코올 의존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개연성이 있고요. 그런데 ‘성적 쾌락을 위해 자신의 성기를 어린 아이 몸에 대던 아저씨와 술이 주는 알싸함에 취해 토사물을 남기던 나는 다르지 않다.’는 부분은 무리한 동일화 같아요. 둘은 병치구조가 아니고, 인과관계입니다. 앞의 일로 뒤의 일이 발생한 것이니까요.

내 삶의 주도권을 ‘그 사건’에 두었다는 점, 고통스런 기억을 소화하지 못했다는 점, 그로 인해 계속 구토하며 살 수밖에 없었던 점, 빈집의 성폭력을 곳곳에서 마주쳤던 점은 그 사건 이후 필자의 삶에 대한 아픈 진술이고 그 자체로 가치롭습니다. ‘괴물을 미워하다가 어느새 내 안의 괴물을 키웠다.’는 결론도 틀린 진단은 아니지만 정확하진 않아요. 누구라도 나에게 가해를 입힌 괴물을 미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그렇다면 괴물을 미워하면서도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이 부분이 질문으로 던져지면 좋을 거 같아요. 나는 왜 열 살 꼬마에 머물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질문과도 맞닿겠죠.

‘욕망에 중독된 자들은 질주한다.’ 이 정의는 맞는데요, 가해자의 (성적) 욕망과 피해자의 (알코올) 욕망은 달라요. 욕망이 타자를 파괴하는 방식과 자기를 공격하는 방식은 구분이 되어야 해요. ‘내 안의 악을 키우지 않겠다. 치열한 복수가 시작되었다.’ 사건에 대한 자기 정리, 자기 언어로 풀어보는 이 글이 악을 키우지 않는 용기 있는 좋은 시작이자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랄조

“컴컴한 바다 같은 놈들. 이런 넓은 데에서 어떻게 식을 찾아서 활용하라는 거냐.” 수학과 과학을 이렇게 멋지게 표현하다니요. 암담함에 처한 이의 심리가 그대로 읽혀요. ‘오르기에 익숙해진 큰 산과 물이 차다며 발만 담가보고 빼 버린 바다’도 그렇고요. 랄조가 쓴 글은 솔직담백하고 비유가 적절하고 웃겨서 읽는 맛이 있어요. 내가 영화배우가 되겠다는 걸로 착각한 게 아닐까 같은 부분도.^^; 이야기가 대략 진로와 적성을 고민하는 나. 점쟁이/부모님의 말에 흔들리는 모습이 담겼어요.

‘나도 모르는 내 모습과 내재된 가능성. 그것들은 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과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점쟁이의 말을 계기로 자기 가능성을 다시 생각해보는 내용인데요, 그러기엔 근거가 약해요. 영화감독이 왜 되고 싶었는지, 그 직업을 회의하게 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밥 굶는다) 원래 꿈에 대한 내용이 더 들어가야 점쟁이의 이과진로 권유와 팽팽하게 대립되면서 글에 긴장이 생길 것 같아요. 그렇지 않고 사람에게는 좌뇌우뇌/이과문과 성향이 고르게 있다는 결론이 나면 랄조 고유의 글이 되지 않습니다. 무난해져요. 자기욕망으로 더 파고 들어보세요.

  소울리스

‘누구에게나 광주 같은 경험이 있다.’는 문장이 들어오네요. 이게 글의 주제가 되었으면 어땠을까요. ‘정치권력이 생산해내는 일상의 공포가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파괴하던 정황을 직접적이고 강렬하게 드러내어 보여준 것’ 이라는 황현산의 말을 인용하고 나의 광주 경험, 즉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p.207)으로 광주를 풀어내는 겁니다. ‘광주가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명사가 된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이건 좋은 질문입니다. 답이 없고 고민해야하는 부분이니까요.

학생 때 집회에서 본 분수대가 무자비한 폭력과 대비되어 인상적입니다. ‘소년이 온다’에도 나오고요. 그저 무구하게 제 본분에 충실한 분수대로 인한 죄책감을 더 풀어보아도 좋겠습니다. ‘자못 숙연해지’는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마지막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영화와 연결을 짓는 게 다소 무리로 보여요. ‘일상에 만연한 폭력 앞에 올곧게 생을 이어온 사람들의 노력이 통하지 않는 현실’을 담담히 잘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단독의 좋은 글이 될 것입니다. 소울리스님은 풍부한 영화자원, 담백한 문장으로 좋은 전달자가 될 수 있습니다. 바빠서 영화 못보는 사람들을 위해 힘써주세요.^^

히나

 

책 한권의 분량의 강렬한 이야기가 두 페이지에 담겼습니다. 긴장감 있게 읽히고, 그래서 아쉽고요. 너무 놀랍고 가슴이 아프고 속상하고 답답하잖아요. 잘 요약된 시놉시스 같은데, 이걸 면회 장면이라던가, 필자에게 호소하는 부분이라든가 한 부분만 특화해서 생생하게 글로 써보세요. ‘그냥 참았기 때문에, 계속 참기만 했기 때문에, 자신도 상대방도 모두 괴물이 되었다는 말’ 이런 문장은 이 절실한 상황을 담기에는 너무 평이해요. 히나님은 이야기를 요약하고 읽히게 하는 능력이 뛰어난데 깊이 있게 치밀하게 들어가는 시도가 뒷받침 되면 참 좋겠어요. 책 한권을 쓴다는 심정으로 한 편씩 써보세요. 인간에 대한 수많은 질문이 나올 거 같네요.

 

스콜라스티카

 

나는 미안하지 않다. 제목과 문제 설정이 참 좋아요. 이런 관점에서 풀어가는 이야기를 보고 싶었어요. 저는 세월호 초기에 한동안 광화문이나 조문현장에 가지 못했어요. 헌화하고 끝낼 일이 아니고, 미안할 일도 아니고, 슬퍼할 자격이 없다는 죄책감 같기도 하고, 사건과 삶이 분리되지 않는 이상한 느낌에서 살았거든요. 스콜라스티카님도 비슷한 감정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뒤엉킨 마음을 여러 갈래로 조각내어 보았는데 역시 쉽지 않은 작업입니다.

 

오월 광주와 유년 시절과 친구 죽음과 세월호 라는 여러 요소를 한 궤로 꿰는 게 닮은 듯 어긋나네요. 하나의 꼭지마다 더 솔직하게 붙들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뭐지?’ 질문 하면서 써내려 가면 좋은 글이 될 거 같아요. 마음 바탕이 순해서 나를 치고 가는 느낌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게 스콜라스티카님의 장점인데 더 집요하고 치밀하게 밀고 가는 뒷심이 없으면 마냥 예쁜 글이 되고 말아요. 더 사유하면 밝고 환한 슬픔 같은 겹의 울림이 담긴 글이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밀애

 

알곡 같은 삶을 진술해놓고 제목은 이물질 이라고 하다니요. 마지막 단락의 급마무리를 제외하면 글이 좋습니다. 초기에 비해 전체적으로 군더더기 없어지고 서사가 매끄러워요. 사회구조 속에서 나의 삶을 재구성해보는 작업, 근사하고 필요하고 유의미한 시도입니다. 이 글을 초고로 삼아 더 촘촘한 자아탐구가 이뤄질 수 있겠어요. 나는 왜 저항하는 신체가 되었을까. 나는 왜 타협하고 살지 못하는가에 대한 응답이 곧 밀애의 자기서사가 될 거 같아요. 이 글은 조금씩 이야기가 진척되려다 마는 느낌입니다. 각 연령대별 중요 사건과 사건 사이 밀애의 해석(사유)과 느낌으로 메워주세요. 멋있게 쓰자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더 솔직해질 수 있을까, 이 긴장을 놓지 않을 때 좋은 글이 나오는 거 같아요.




8차시 리뷰_섬세한 몸부림이 필요한 시간

[글쓰기의 최전선]

글을 쓰면서 자기 느낌과 자기 경험을 있는 그대로 응시하고 풀어내는 일은 용기와 의지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 작업을 수행하면서 뭔지 모를 괴로움과 불편함을 느끼는 상태를 지나고 있는데, 이런 기분, 조금씩 움찔거리고 달라지는 마음의 결을 계속 글로 계속 풀어보는 것, 그러면서 다른 내가 되는 것이 글쓰기가 주는 선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도치)

박연준의 시어를 계기로, 그간 마음에 불편함을 안겨주고 고개를 돌리게 하고 반면교사로 삼게 했던 험한 말들의 사적 경험을 열거했습니다. 김기덕 영화, 중학교 시간강사 생활, 고2 체벌 경험, 동서와 시동생 사례. 개인적 삶에서는 자연스레 뒤섞인 이야기지만, 글쓰기라는 작업은 그런 무질서한 일상에 질서를 부여하는 일입니다. 위의 사례를 예술 (박연준 시와 김기덕 영화)과 일상(학교와 가족) 두 가지로 분류하면 주제 전달이 더 명확해지겠네요.

 

‘말이나 글이나 순한 표현을 선호’하는 취향의 독자가 ‘무시무시한 단어’로 표현하는 예술가의 창작품을 접했을 때의 느낌과 심정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글입니다. ‘언어든 몸이든 폭력에 노출되는 것을 최대한 줄여야 건강한 사회를 만들지 않을까?’라고 필자는 묻고 있습니다만 여기서 논리모순이 발생하네요. 책장 덮듯이 현실을 덮어버릴 수 없는 무방비 상태로 폭력을 당하는 사람들이 노출되어야 보호받을 수 있고,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요. 시인이 그 역할을 한 것 같아요. 알콜 중독과 치매를 앓는 아빠에게 태어나 언어와 몸이 폭력에 노출되어 30년을 살아가는 존재의 신음을 드러내는 방식으로요.

 

도치임, 힘들게 읽고 힘들게 쓰고 힘들게 읽고, 그렇게 글 한편을 살아내느라 많이 애쓰셨습니다.

 

(랄조)

‘배운 적은 없었지만 묘사는 늘 자신 있었고, 꽤나 교내에서는 인정을 받았다. 쉬는 시간이면 옆반 친구들 혹은 모르는 애들도 내 노트의 그림을 보러왔었다.’ 그림 그리는 어린 학생의 의젓한 모습이 떠올라요. 대개는 솜씨를 인정받으면 그림을 배우러 가는데 그 같은 절차를 거부한 이유가 더 듣고 싶어요. 끝없는 실기와 작업 그리고 과제. 꼭 학원이 아니라 이런 강제와 반복이 예술에서는 필요하니까요.

 

‘난 폴 세잔이 아니다. 내가 그리기 싫은 사과를 잘 그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비슷한 출발점에서 시작해 닮은 듯 다른 노선을 걷는 미대생과 나. 그들에게 그림은 지금 행복한 존재로 다가올까?’ 미술로 고통스러운 그들과 미술이 추억으로 남은 나, 둘 중에 누가 더 행복하다 불행하다고 말하기보다는 나는 행복한가, 아쉬운가, 더 내밀하게 자기탐구하면 글이 풍요로웠겠어요. 앞으로 살면서 2007년 그 애처럼 좋아하는 여자가 나타나면 세잔처럼 멋지게 그려주고 싶을 거 같아요. 그러면 랄조가 다시 붓을 잡을까요.

 

(고구마가)

‘지구가 기억의 행성이라면, 인간은 기억의 종이다. 존재의 칠할 이상이 기억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억을 탈진하면 죽음에 이를지도 모른다. 그냥 그 기억의 조합 덩어리 자체가 우리 자신-몸일 것이다. 어떤 기억은 의미 있고 어떤 기억은 의미 없는가를 결정하는 것이 권력이고 정치일 것이다.’

 

이런 문장들 통찰이 아름다워요. 두물머리 싸움 경험을 있는 그대로 덤덤하게 전달하고 이 문장 단락 넣은 다음에 장소를 철거하는 건 기억을 철거하는 것이다, 라고 마무리했으면 글이 담백하고 명료하겠어요.

 

글에서 힘 빼는 건 사랑니 뽑기만큼이나 힘들어요. 그래도 고구마가가 겪은 귀한 경험과 거기서 길어낸 성찰이 가지런히 담기려면 취사선택을 해야겠죠. 필자의 삶처럼 밝고 귀엽게 진지한 글이 되도록, 자유롭게 풀어놓고 가지런히 정돈해보기로.

 

‘누군가 저항을 하는 것은 저항을 하지 않으면 너무나 모욕적이고, 너무 왜소해지고, 죽은 것처럼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 저항을 하는 것 (바리케이트를 세우고, 팔을 들고, 단식 투쟁에 들어가고, 인간 사슬을 만들고, 소리치고, 글을 쓰는 것)은 미래가 무엇을 품고 있든 상관없이, 지금 이 순간을 지키기 위해서다." 존 버거 ,『벤투의 스케치북』->좋아서 남겨둠.

 

(바람도리)

‘내장 깊은 곳에서 말들을 뽑아내던 기억은 난다. 왜 사람들과 함께하는지 묻지 않았다.’ ‘시민단체가 욕하고 돈을 뺏고 필요하면 나를 이용하는 깡패처럼 두려웠다.’ 가끔씩 바람도리님 글에서 요즘말로 ‘심쿵’하는 표현들이 나와요. 오랜 뒤척임에서만 나올 수 있는 표현들. 잘 살리고 싶네요. 이제 글이 추상적이지는 않은데 설명적이고 심리적이죠. 이걸 잘 살리는 에세이스트가 되는 것도 좋아요. 모든 글이 사례 중심일 필요는 없으니까요. 다만 촘촘해야 해요. 왜? 뭐지? 하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경험의 시간대를 넓게 잡으면 곤란함.

 

‘직장이든 모임이든 사람들과 만나면 나를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부채가 남지 않도록 깍듯이 관계를 맺는 연습을 했다.’ -> 이건 일반적인 내성적인 사람들 특징이므로 더 고유하게 표현하고. ‘타인들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 남들의 표정을 보지 않을 때 내 표정도 보이지 않게 되는 건 아닌지 이야기 더 풀어주시고. ‘우리 이제 친해지자는 말이 친구의 말을 자꾸 생각난다...봄이 되니 꽃 봉우리를 내미는 내 마음도 살아있다.’ ->저도 설렘요.

 

(오늑)

“식물은 비명이 없어 좋다”는 시구를 나의 채식 체험과 연결 지어 풀어주니 좋네요. 식물의 생명은 안 불쌍하냐는 이상한 논리. 그에 대한 반박으로 고통을 최소화하는 선택인 채식론을 폈습니다. “인간의 윤리는 어느새 효율적이고 편리해져서 이것마저도 오만일 수도 있겠지만 둘 (식물먹는동물)을 죽이는 것보다 하나 (식물)만 희생시키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논리적 폭력 말고 일상에서 겪는 경험적 불편도 곁들이면 더 풍부한 주장이될 듯. 브로콜리 낫질 앞부분은 필자의 개성이 드러나요. 더 섬세할 필요는 있고요. 수동태 표현이 많아서 그런지 매끄럽게 읽히지는 않아요. 박연준 시인의 당당한 반어법에 필자의 해석이 더해지니 “오히려 식물에게 비명이 없을 거라 여기며 무덤덤하게 먹었을 현대인들을 깨우는 것 같”습니다.

널부러지다-> 널브러지다, 뿌리채-> 뿌리째.

 

 

(슝슝)

‘송전탑이 왜 필요한가. 전기가 생산되는 곳과 소비되는 곳이 다르기 때문이다. 원자력발전소(이하 원전)는 특성상 발생되는 열을 식히는 대량의 물이 사용 가능한 바다 옆에 지어지고 전기는 서울, 부산, 울산 등의 대도시나 산업단지에서 많이 쓴다. 그래서 밀양 송전탑 싸움은 원전과의 탈핵 싸움과 이어져 있다.’

 

말쑥한 글. 전체적으로 탄탄하고 매끄러워요. 그런데 밀양-쌍차-강정-세월호를 묶는 해석은 상식처럼 되어버려서 남의 글에서도 볼 수 있으니 여기에 슝슝님만의 고유한 해석을 넣어줘야 해요. 밀양할머니 북콘서트의 분위기를 중심축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면 좋죠. 북콘 현장의 디테일을 살려서. “아들을 바다에 묻은 엄마가 마이크를 잡는다. 순간. 삼키지 못한 치명적인 슬픔이 콘서트장 전체를 뒤덮는다. 여기서 편두통, 가슴통증을 느낀다.” 엄마가 쏟아낸 말을 생생하게 전해주어야 합니다. 거기 온 사람들 반응도 묘사하고, 그렇지 않으면 편두통 가슴통증에 독자는 마음으로 공감하지 못해요. 필자는 다급하고 독자는 의아하죠. 다음부터 콘서트장 갈 때 수첩과 연필 혹은 스맛폰으로 메모하시고 남들이 흔히 쓰는 말이 아닌 내 느낌, 내 언어, 내가 보고 들은 것으로만 글을 쓰겠다고 욕심내어 보세요.

 

‘같은 전쟁의 다른 전선이다. 전세는 다급하다. 아픔을 아는 이들은 일어나라. 지금이 싸울 때다.’ 결론이 너무 크고 급해요. 어디서 어떻게 일상에서 실천할지 고민하는 모습이 나아요. 콘서트 찾아간 것도 그런 실천일 테고요. 다음에도 이런 북콘서트 또 가봐야겠다, 책 열심히 읽어봐야겠다, 녹색당 가입해야겠다 등등의 수위로 마무리하면 좋을 듯요.

 

(소울리스)

‘우선 사랑에 대한 정의부터 접근해야겠지만, 주는 사람은 그렇다지만 받는 사람이 힘들어한다면 그건 사랑이 아닌 거다.’ 이 표현 좋네요. 자식과 부모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주로 부모의 언어가 통용되는데 이런 자식의 말이 널리 유포되면 좋겠네요. ‘끈적하게 피로 맺어진 혈연관계’ 때문에 아버지가 되지 않겠다는 선언은 이유가 설득력이 없어요. ‘누구나 ‘다르게 살겠다’ 다짐하지만 대부분 비슷한 길을 간다. 결국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아버지가 되지 않는 거다.‘ 이런 일반화 시키는 건 쉬운 논리이고, 작가는 더 치밀하게 다르게 사유해야 해요. 좋은 아버지, 좋은 부자관계 사례가 영화나 작품에서 소개해준다든가, 논리에 균형을 잡아주세요.

 

‘자식을 낳아서 아버지가 되는 게 아니다. 먼저 아버지가 되어야 자식을 바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표현도 ‘먼저 아버지가 되어야’ 같은 표현은‘먼저 사람이 되어라’처럼 추상적이고 모호하죠. 아버지가 된다는 게 뭔지 나마의 기준을 따져보는 문장이 요구됩니다. 그럴 때 ‘선택의 여지없이 자식으로 태어났지만, 시류에 쫓겨 섣불리 부모가 되지는 않겠다.’는 다짐에 공감하겠죠. 이런 틈새만 막아주면 더 좋은 글이 되겠네요. 하나의 톤으로 논지가 연결되는 데 성공한 글입니다.

 

(밀애)

‘나중에 알았지만 그는 새파란 젊은년이랑 사귀면서 나에게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지만...30살 나는 우연히 만난 남자와 동거를 시작했고 한 아이에 엄마가 됐고 그와 연락을 끊었다.’ 소설 같아요. 솔직하게 주저없이 밀고 나가기 글에 긴장이 살아요. 문장도 가지런해지고, 말줄임표도 줄고. 제목도 좋아요. 삶의 무게감이 커서, 남자친구에게 의지하는 자기모습을 보았다는 그 부분이 이 글의 핵심입니다. 더 내면을 파고들어보세요. 삶은 어차피 외로운 건데, 혼자 아이 키우고 돈 벌면서 살아가는 여성이 겪는 고유한 외로움이 뭔지 보여주어야, 다음 문장이 힘을 받습니다.

 

‘인생은 각자가 책임지는 것이라 늘 말해왔지만 가끔씩 누군가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고 싶을 때가 있다. 이 사람만은 나를 이해해 줬으면 마르지 않는 눈물을 닦아주면서 나와 같이 맘이 아팠으면 했다.’

 

(노래)

전체 통일성이 살아있는 글. 저 무수한 물음표가 존재 혼란을 말해주네요. 하지만 글쓰기는 혼란에 질서를 부여하는 일. 물음표를 느낌표로 혹은 느낌표를 물음표로 전환하는 일. ‘내가 흔히 듣는 말 속에 내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들이 고스란히 내포되어 있다.’ 이걸 하나씩 꼽아 키워드 삼아 풀어보면 어떨까요. 듣기 싫은 말 세 가지를 통한 자기탐구. ‘나를 아는 것과 나를 인정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고 글로 풀어보는 것도 흥미롭겠습니다.

 

이렇게 ‘머릿속이 풀리지 않는 질문으로 가득 차서 터질 것 같’을 때 풀어내는 일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글입니다. 여기서 하나씩 핵심적 질문을 골라내고 탐구하는 게 곧 철학의 부재에서 자기 철학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일 테지요. ‘나만의 언어, 새로운 언어, 상투적이지 않은 언어, 살아 있는 언어, 내 삶과 밀착된 언어, 그 언어를 만들어 내기’에 제대로 부대껴보는 방편으로써 글쓰기, 서두르지 말고 한 편씩 해보세요. 독자가 같이 고민해드립니다.

 

(경덕쿵)

하품 같은 글. 무심한데 의젓한 글. ‘아홉에서 하나를 더했을 때 바뀌는 큰 자릿수의 표정은 쓸데없이 의미심장하다. 괜히 심각한 척 나이듦을 통속화한다.’ ‘동양에선 나잇대별로 이립(而立)이니 불혹(不惑)이니 이름 지어놓고 그에 맞는 품격과 소양을 은근히 강요하니 이걸 세글자로 줄여 '나잇값' 이라 하더라.’ 이런 문장들은 너무 좋네요. 필자의 고유한 생각과 음성이 들려요. 경덕쿵의 글감은 ‘무엇도 되지 않은 나’ ‘유보하는 나’의 존재 탐구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자기 모습, 사회에 수렴되지 않은 이질적 존재로 살아가는 일을 기록하면 그 글이 필자의 삶에 향기를 불어넣어줄 거 같아요. 대개는 살아온 대로 글을 쓰지만, 글을 쓴 대로 살아지기도 하더라고요. ‘도착하지 않기로, 한평생 잘 날아가다 사라지기로’가 필자의 영혼을 피어나게 하는 주문이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