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 - 글쓰기란 다수 경험의 결과물이다

[글쓰기의 최전선]

아침에 파리대학에서 공부하는 후배한테 전화가 왔어요.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번씩 안부와 수다를 전하곤 해요. 일상 잡사가 꼭 젠더와 정치 문제로 연결되는데. 주로 프랑스의 빛과 어둠을 주로 얘기하죠. (살아보니) '' 보기와 달리 프랑스가 얼마나 보수적인가, 또 어떤 사안은 얼마나 급진적이고 합리적인가. 일전에 후배의 프랑스인 레즈비언 친구가 그랬다네요. 너네 한국 부럽다고. 우리는 68혁명 이후 사회적 불평등이 해소되고 여러 제도가 개선되었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국은 70년대에 비하면 얼마나 여성(소수자)의 지위가 크게 변했느냐가 요지입니다. 일견 타당한 말인데, 마치 전교 1, 2등 하는 친구가 너무 성적 올리기 어렵다는 말처럼 들려서 허허로운 웃음이 나왔어요.

후배는 프랑스도 어차피 마찬가지라고, 남자들 기득권층이고 그래서 보수적이라고. 거기도 TV CF에는 여성이 푸른 잔디밭에서 아이를 안고 하얀 천을 휘감고 나오지 (피죤 선전인가요? ㅎㅎ)남자가 아이를 안고 나오진 않는다고 하더군요. 육아의 주체를 여성으로 상징화하는 거죠. 그래도 10년 전 후배가 처음 프랑스 가서 "여기서 애 낳으면 출산수당 준다"고 해서 무척 놀랐는데 한국도 출산수당이 나오긴 합니다. 육아살이 나아진 건가요. 우리 사회 하층계급 여성들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죠. 주거비용 부담이 늘고 비정규직으로 고용 불안정 커지고 교육환경 악화되고 삶의 조건은 더 나빠졌어요. '자기만의 방'을 가진 여성이 숫적으로 얼마나 증가하는가보다 어떤 방인가, 빚으로 얻은 방인가, 방음이 과연 되는 방인가, 그 방에서 과연 무엇을 하는가가 중요하겠죠.

 

어느 시대 어느 민족 어느 국가에서나 삶은 힘듭니다. 억압받는 자는 기본적인 권리조차 주어지지 않아 힘이 들고, 억압하는 자는 소유욕과 획득에 대한 욕망으로 스스로를 비인간화시키니까 인간 본성이 왜곡되고요. 울프가 말한 셰익스피어의 누이, 엘리자베스 시대의 평범한 여성, 샤로트 브론테와 제인오스틴, 파리에서 공부하는 후배, 글쓰기에 모인 우리들. 모두가 사는 동안은 '자기 자신에 대해 투쟁을 벌여야하'는 존재이죠. '저녁식사를 잘 하지 못하면 사색을 잘 할 수 없고 사랑도 잘 할 수 없으며 잠도 잘 오지 않'으니까요. '큰 재산을 모으는 한편 열세 명의 아이를 낳는 것, 그것은 누구도 해낼 수 없는 일'이고 그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합니다.

 

울프의 글을 보면서, 결혼을 앞둔 밤밤의 글을 보면서, 주거형태와 욕망추구 사이에서 방황하는 백납의 글을 보면서, 수정액으로 수공업 교열의 신공을 발휘하며 요약 정리해온 나무와 강님의 글을 보면서, 힘과 용기를 배웁니다. 선지자의 지혜가 아니라 갈지자로 휘청하는 모습에서 배어나는 삶의 중심을 잡기 위해 애쓰는 힘과 용기를요. 같이 수업하는 동안 무엇이든 느낀 그대로를 말하고 주고 받고 하면 좋겠어요.우리가 서로의 삶(의 경험)에 영향 받고 공유하고 서로의 삶(의 진실)을 참조하는 존재임을 울프는 아래와 같이 표현했지요제가 <자기만의 방>에서 가장 좋아하는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 리뷰 들어갑니다.

 

"걸작이란 혼자서 외톨이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것은 여러 해 동안 일단의 사람들이 공동으로 생각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다수의 경험이 하나의 목소리 이면에 존재하는 것이지요."

 

배롱.

목가적 글쓰기의 절정을 보여주시네요. 추리소설보다 이쪽에 더 재능이 있으신 듯하다고 말하면 삐지시려나요? 절반의 진실입니다. 감칠맛 나게 이야기를 끌고 가시니 팔공산 자락 끼고 앉아 시간여행 하는 것 같아요. 경주 최씨 마을 17대 종부의 삶. 마을명칭의 유래, 종부의 역할, 복숭아 수확 장면 등 충실한 정보와 정확한 묘사와 밀도 있는 전개가 할머니의 일생을 느끼게 해줍니다. 그런데 참 신기하네요. 이 향토적 산문에서도 행간에 배롱님 글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긴장과 서늘함이 묻어난다는 겁니다.

 

'한 평생 종부로서 노동하는 여성으로서 고생만 하다가 치매에 걸린 외할머니' 이야기가 흔히 빠지기 쉬운 결말을 절묘하게 피해가요. '메주가 서까래에 매달려 있거나, 삭힌 감들이 아랫목에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기도 했답니다.' 같은 김윤숙 여사의 '자기만의 방' 장면이 그래요. 따뜻한 외가의 풍경이 아니라 당시 살림의 한 용도로 살다간 여성의 삶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처연과 연민을 넘어서는 인식의 힘을 준달까요. '서안이나 지필연묵을 가져본 적이 없는 할머니'가 남긴 이야기가 배롱님의 육체를 타고 흘러나오도록 계속 쓰세요. 본 자, 들은 자는 말을 해야죠. ^^

 

-외할머니는 백지가 되었습니다. 아무 것도 써지기 전의 백지가 아니라 지우개로 하나하나 지워진 백지. 거기에 얼룩얼룩 이야기가 남아 있어 가끔은 노래라도 흘러 나왔지만, 이젠 노래마저도 끊어졌습니다.

 

지원. 반성문이 절절해요. 책을 읽기도 힘들고 이해하기도 글을 쓰는 건 더더군다나 힘들다. 느낀 그대로를 말하는 건 중요하죠. 지원은 자기상태와 감정을 말하는 것에는 능숙한 것 같아요. 그게 시작이에요. 그간 독서경험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왜 최전선 교재가 이리도 어려울까에 대한 물음은 특히 귀합니다. 단지 교재의 난이도 문제인가. 독서 방식에 문제가 있었는가. 더 집요하게 파고들어보세요. 수업 이전에 읽은 책들 목록 10권을 적어보고, 그리고 혼자 읽는 사적 독서와 수업에서처럼 같이 읽고 토론하는 공적 독서의 차이도 세 가지 정도 찾아 보세요. 책 읽고 글쓰기는 왜 이렇게 어려운가, 같이 화두는 추상적일 수 있지만, 그것의 근거는 구체적이고 물리적이어야 글이 자기독백의 일기 형식을 넘어섭니다.

 

이요르.

핸드폰케이스를 샀다. ~ 핸드폰 케이스를 사길 잘했다. 리드와 엔드가 호응하네요. 그간 이요르 특유의 관념적인 글에서 한층 구체화시킨 시도가 돋보여요. 같이 알록달록한 핸드폰 사고 만지작거리는 느낌을 줍니다. 연필 한 자루를 사는 것에도 소심하고 절제하는 모습이 사고 싶은 것은 사버리는 반대 유형의 동생과의 대비로 더 잘 드러납니다. 이런 구도 좋아요. 그런데 왜 언제부터 검약한 생활이 몸에 밴 건지. 절제와 인내가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부모님이나 교과서의 훈육이 내면화된 것인지, 자신이 옳다고 판단하는 건지,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인지, 마음을 한 번 들여다보세요. 궁금하네요.

 

이 글이 단지 핸드폰케이스를 산 행위에서 나아가 가치관의 변화, 삶의 양식의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겠죠. 본인도 '용기'라는 표현을 했고요. 정확해요. 다른 삶을 사는 것은 안 하던 짓 하는 실천이니까요. 5만원 교통카드 분실 사례 등 '허무하게' 잃은 사례 적절히 배치했어요. 돈에 저당잡히지 않고 돈을 활용하면서 살 수 있는 삶은, 수업료 내고 미친 짓도 해가면서 가치를 저울질 하고 하나씩 배워나가는 것 같아요.

 

-내 인생인데 나를 너무 억제해왔다고 느꼈다. 너무 어깨를 좁히며 지냈다. 이 사실을 천천히 깨달아가고 있었고 조금씩 어깨를 펴왔다.

 

겨울.

작은아버지의 죽음. 가까운 지인의 죽음은 큰 혼란과 자극을 가져다주죠. 죽음이 삶에 대한 인식을 바꿔주죠. 이별이 사랑에 대한 가치를 되돌아보게 해주듯이요. 겨울님도 여러 가지 화두를 던지셨는데요. 왜 작은 아버지는 너무나 분명해 보이는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셨을까? 과연 내 삶의 마지막에 어떤 모습일까? 등등. 그리고 얼마나 생을 사랑하느냐, 온몸을 다해 간절히 담았던 것이 무어냐, 삶을 향한 의지를 묻는다 등 큰 단어를 막바지에 집중적으로 나열했습니다.

 

그런데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 그 이후의 변화가 글에서는 중요하죠. 생각의 파동, 심란함, 싱숭생숭을 넘어선 무엇. 죽음을 간접체험하고 구체적 일상적 변화 없이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이다'라고 한다면 그건 너무 겨울님의 고유함이 안 살아나거든요. 작은 아버지 돌아가시고 살이 3~4키로 빠졌다던가, 일을 하지 못했다던가 등 어떤 상태 -그것이 깨달음이든 아니든요-를 이야기하는 게 외려 더 호소력 있습니다. 타인의 죽음이 나의 삶을 어떻게 다르게 구성하게 했는가는 꽤 중요한 진술입니다. 그간 몇 편의 글에서 겨울님의 뒤척임, 존재의 몸부림이 일관되게 전해져옵니다. 무엇보다 문장이 가지런해지고 있어요. 초점을 맞추는 사진가의 손놀림처럼 진지한 문장들. 전체적으로 점점 더 선명해진다는 느낌이 듭니다.

 

밤밤.

결혼을 앞둔 그대를 위해 준비한 듯 맞춤한 책이었네요. 그래서인지 이전보다도 더 절실하고 밀도 높고 생생한 '외치는 글'이었습니다. '결혼'이라는 삶의 행사는 사람을 혼란에 빠뜨리죠. 기존의 가치로 감당 안 되는 일이 많아지니까 자연스럽게 온갖 물음이 퐁퐁 솟아납니다. 예비 신부의 예민한 촉수로 자기만의 방을 빼앗길 거 같은 두려움, 빼앗으려는 낌새들, 빼앗기지 않겠다는 집념을 잘 진술했습니다.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아무도 심지어 부모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했어요. 아마 밤밤님도 스스로 말하지 않아서 그럴 수 있겠죠. 글에서도 '익명의 존재가 되지 않겠다'는 어떤 저항의 원칙은 있는데 '어떤 삶을 살겠다'는 생성의 원칙은 나오지 않아서, 전체적으로 헐겁게 느껴지거든요. 신혼집에 자기만의 방, 혹은 나만의 책상은 있는지, 그곳에서 하루에 몇 시간 정도 고독을 보장받을 수 있는지 등등 그런 소소한 부분부터 물적 토대를 점검하는 식으로 글을 풀었다면 앞의 유모차 끌고 나온 여성들 삶과 맞물리면서 더 진한 글이 되었을 거에요.

 

가부장제에서 결혼이라는 제도에 편입하는 일이 여성성을 자각하게 하고 세상에 날을 세우게 하지만, 그 두려움과 예민함과 긴장감이 삶을 파괴하는 게 아니라 생성하는 에너지가 되어야겠지요. 앞으로 밤밤님의 글쓰기가 그 지혜를 모으는 과정이 되길 바라고 응원할게요.

 

-주어진 역할로 존재하지 않고, 나로서의 존재양식을 인정받는 것은 여전히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 노력이 없다면 저는 저의 삶에서 당신이 말했던 16세기 여성들처럼 익명을 요구 받을지도 모르니까요. 아니 제가 끊임없이 저의 성을 의식하고자 하는 두려움을 갖고 있으니까요.

 

백납.

삶의 욕망(사랑)과 삶의 조건(주거)을 조율해나가는 과정이 잘 그려졌어요. 빈집이라는 독특한 주거형태에 관한 사례가 나와서 글이 더 흥미롭고. 다른 삶의 가능성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정보적인 가치가 있고. 디테일 묘사 충분해서 지루하지 않고. 다만, '하지만'의 오남용으로 글이 흐름이 끊기고 어지럽고. 논리의 비약과 혼란이 발생하고. '설사 그것이 진실이라 할지라도, 만약 진실을 말한다면 그것은 바보다. 하지만 정말로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핵심문장을 잘 처리하지 못하니까 메시지 수용에 대혼란. 글의 후반으로 갈수록 논지가 명확하고 명료해져야해요. (뒷심을 잃으면) 글쓰기는 언제나 허리케인!

 

우리의 움직임을 제약하는 가장 일 순위는 욕망보다는 조건이다.-> 욕망과 통장()이다. 정도가 어떨지. 삶의 조건의 상부구조(욕망) 하부구조 ()이 아닐까 싶고.

 

- 오는 10월 월세 계약이 끝난다. 이후의 주거형태에 대해 고민이 된다. 집사람은 나를 사랑하지만, 혼자 살아보고 싶다고 말한다. 자기만의 방을 가져본 적이 없다고. 생각해 보니 나 또한 자기만의 방을 가져본 적이 없다. 내 스마트폰 첫 화면에는 피터팬의 좋은방 구하기바로 가기가 놓여있다. 당장 이사할 것도 아니면서 경기침체기 주식보유자처럼, 계속해서 검색하고 있다. 삼백에 이십. 삼백에 이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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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울 - 읽고 쓰고 말하며 거듭난 주체, 나는 행복해도 된다

[행복한인터뷰]

 

이곳은 소수언어박물관이다. 사멸해가는 소수언어의 마지막 화자들이 전시되어 있다. 자신이 살던 공동체에서 분리되어 박물관에 사는 한 노인은, 모어를 마음껏 쓸 수 있는 고향을 그리워한다. 말에 대한 지독한 향수병에 빠진 채 차가운 전시관에서 삶 비슷한 것을 살다가 죽음을 맞는다. 그러자 그가 쓰던 소수언어도 사라진다. 말의 통제, 삶의 단절 그리고 작은 말들의 사라짐. 어쩐지 괴이하고 쓸쓸하다. 삶의 질료인 언어가, 관계와 이야기를 만드는 게 아니라 통제와 관리의 도구가 된 이 시대를 김애란은 소설 <침묵의 미래>로 그려낸다.

 

너울은 침묵의 미래에서 걸어 나온 사람이다. 사라지는 언어 최후의 화자가 그러하듯, 말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였다. 인터뷰를 위해 취재 의뢰 메일을 보냈을 때 그는 카페에서 쓴 시를 한 바닥 적어 보냈다. 얼굴을 마주했을 때는 음계의 말들이 공중에 퍼지다가 낙엽처럼 쌓였다. 오래 침묵했고 이제 막 말이 트였다. 집필을 하고 강연을 간다. 사라지려는 말의 불씨를 현장에서 조곤조곤 지피고 있다. 그 말들을 모아 책으로도 엮었다. 제목은 <꽃을 던지고 싶다>, 부제는 아동 성폭력 피해자로 산다는 것’.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얼마 전 너울은 성폭력 예방교육을 하러 지방에 갔다. 실무자와 웃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소개를 받고 강단에 올랐다. 성폭력 생존자의 경험에서 우러난 이야기는 커다란 공감과 지지를 얻었다. 집에 오니 메일이 한 통 와 있었다. 강의 시작 전 그렇게 환한 웃음을 짓고 있어서 강사인 줄 몰랐으며 자기도 성폭력 피해자인데 용기를 얻었다는 내용이 담겼다. 아마 메일을 보낸 그이도 웃는 순간이 분명히 있었을 텐데 몰랐을 거라고 너울은 말한다. 성폭력을 경험하면 행복에 어색하고 불행에 익숙하다고.

 

매일 힘든 건 아니에요. 때때로 힘들죠. 근데 즐거우면 불안해요. 행복을 빼앗길 거 같고 행복하면 안 될 거 같고. 슬픔 중독자처럼, 나는 불행해야 한다 이런 강박에 빠져서 어렸을 때부터 살았던 거 같아요.”

 

아홉 살 때다. 엄마가 운영하던 자동차공업사에 딸린 식당을 찾은 손님이 첫 번째 가해자였다. 순둥이였던 아이는 어른이 시키는 대로 따라갔고 피해 사실을 직관적으로 함구했다. 일주일 내내 굶을 만큼 집안 형편이 어려웠다. 아빠는 엄마를 매일같이 무지막지하게 때렸다. 온통 멍울진 엄마에게 아이가 기댈 품이 보이지 않았다. 홀로 작게 움츠러들던 아이는 계속 표적이 되었다. 열두 살에는 할머니 댁에서 삼촌에게, 다음 해에는 등굣길에 낯선 남자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 작은 몸뚱이에는 내지르지 못한 비명이, 발설하지 못한 말들이 고름처럼 퍼져갔다. , 할머니댁, 학교 어디에도 아이가 몸 둘 곳이 없었다.

 

피난처가 필요했다. 전쟁터 같은 집은 들어가기 싫었고 또래는 유치해보였다. 친구랑 친해지면 비밀을 공유해야 하는데 그것도 내키지 않았다. 그나마 가장 안전해 보이는 공간이 학교 도서관이었다. 아침에 교문이 열리기도 전에 학교에 도착해서 닥치는 대로 읽었다. 철학책, 위인전, 소설. 그런데 아무리 책을 읽어도 강간당하고도 훌륭한 삶을 살았다는 여성의 이야기는 없었다. 그 어떤 책도 왜 연거푸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설명해주지 않았다. 세상이 말을 해주지 않자, 아이도 세상을 향한 입을 다물었다.

 

200712, 너울은 꿈을 꾸었다. 한 남자에게 강간을 당하는 꿈이다. 살려달라는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고 당장이라도 숨통이 끊어질 것만 같은 공포에 사로잡혔다.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악몽 후 며칠간 불면의 밤을 보내고 나서야 꿈속에서 그 남자가 입고 있던 옷차림이 선명히 떠올랐다. 황토색 웃옷과 청바지는, 열세 살 때 강간했던 그 남자의 옷이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청바지를 안 입어요. 그냥 불편하다고만 느꼈어요. 청바지를 입으면 목을 조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계단을 못 가고 지하철을 못 탄다거나 했죠. 성폭행 당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공포는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제 몸은 다 기억을 하고 있었던 거죠.”

 

25년 전 사건은 25년 간 일상을, 전면적으로 그리고 속속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남들처럼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대학에 들어갔으나 열심히는 살면서도 종종 우울하고 문득 죽음충동에 시달렸다. 가난은 천형 같았다. 생계를 해결하느라 고등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했고 하루에 4시간 이상을 자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밥벌이에 아등바등하지 않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서 인생에서 가장 여유롭고 평온한 시기를 보내던 즈음, 느닷없이 악몽이 덮친 것이다.

 

읽기, 자기고통을 해석하다

 

꿈을 꾸고 난 후, 여성단체 상담소를 찾아갔다. 상담과 독서를 병행했다. 상담 선생님이 외국 성폭력 생존자의 수기를 소개해주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답 없음의 결론을 내리고 등 돌린 책과의 해후이다. 너울은 책에 다시 빠져들었다. 원인도 모르면서 결과는 나의 책임이라며 괴로워했던 시간들, 천 번도 넘게 물었던 것들에 관한 이야기가 빼곡했다. 이것은 그토록 찾았던 피해자의 언어가 아닌가.

 

<이야기해, 그리고 다시 살아나>(수잔 브라이슨)는 철학교수가 자신의 성폭력 피해 경험과 치유 과정을 기반으로 자아와 외상,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여성주의 관점에서 풀어낸 책이다. 난마처럼 얽힌 고통의 서사가 가지런히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불편한 진실-강간피해 생존경험 드러내기>(테레사 라우러)은 미국의 한 여성이 강간을 당하고 상담을 받는 지난한 과정을 기록하고 나중에 상담사가 되는 과정이 담겼다. 이 책은 상담을 받는다고 좋아지지 않는 자신을 자책하거나 포기하지 않게 해주었다. <나는 인생을 믿는다>(사미라 벨릴)는 프랑스에서 청소년기에 강간을 당한 여성이 잘못된 통념으로 발생하는 2차 폭력의 고통을 상세히 묘사했다. 사회적으로 성숙함의 기회를 부여받지 못한 아이가 혼란 속에서 어떻게 성폭력을 견뎌내는가를 배웠다. <트라우마>(주디스 하먼)는 가정폭력에서 정치적 테러까지 폭력의 동일한 메커니즘과 인간의 심연을 밝혀낸 책이다.

 

자기의 고통을 여성주의와 접목해서 해석한 책들이 힘이 됐어요. 세상에 나만 이런 경험을 하는 게 아니구나, 내가 왜 고통스러운지, 내가 왜 말을 할 수 없는지 알았죠. 저는 언어화하지 못했는데 그들은 다 언어화하잖아요. 그동안 못 먹고 못 자고 아프면 짜증나고 저를 미워했거든요. <트라우마>를 읽고는 나를 아픈 대로, 부족한 대로 인정하게 됐어요. 스스로 이해하는 계기가 됐죠.”

 

고통도 해석이다. 철학자 니체의 말대로 우리는 고통이 아니라 해석된 고통을 앓는다. ‘성폭력 당했으니 여자 인생 끝이다’ ‘여자가 유혹해서 성폭력이 생겼다같은 말들만 해도 버젓이 가해자를 숨기고 피해자를 내친다. 본디 주류언어는 강자의 좋음에서 비롯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니체는 첫 번째 판단을 버려라. 그것은 시대가 네 몸을 통해 판단한 것이다라고도 했다.

 

너울은 피해자의 언어로 된 책을 읽으며 자기언어를 구했다. 상담을 시작하고부터 일 년 동안 읽은 책이 100여권. 갈급했다. 책의 내용에 자신의 구체적인 경험을 연결지어보면서 서서히 자기미움에서 풀려나고 존재의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었다. 오염된 말들은 저절로 폐기되었다. 페미니즘을 접하고는 처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다.

 

상담 선생님의 권유로 성폭력 상담원 교육도 받았다. 더 이상 죄인처럼 웅크리고 살지 않기로 했다.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상담원으로 4년간 일했다. 내담자들은 10대나 20대나 너나없이 눈물지었다. 나는 살아갈 가치가 없어, 나만 이런 일을 경험해, 라고 말했다. 해석된 고통을 앓고 있는 것이다. 흠칫했다. , 이 사람들이 나랑 같은 생각을 하네. 시대가 이렇게 바뀌었는데 저들도 나처럼 힘들어하는구나.

 

너울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졌다. 외국 생존자 수기를 읽었을 때의 아쉬움도 더해졌다. 한국에는 왜 생존자의 증언을 기록한 책이 없을까. 우리 피해자들은 왜 말을 안 할까. 그렇다고 특별한 정의감의 발로는 아니고 때가 되었다는 자각, 어떤 우주적인 기운에 끌렸다. 2012년 봄부터 여성주의 저널 <일다>에 성폭력 생존자의 기록 꽃을 던지고 싶다연재를 시작했다. 첫 이야기는, 인생 2막의 전환점이 되어준 2007년 꿈 이야기로 전개된다.

 

 

쓰기, 부단히 나로 돌아오는 일

 

모든 말하기는 협상적 말하기다. 약자는 이해받을 수 있다고 판단하는 수위를 고려해서 말한다. 경험을 어디까지 털어놓을까. 과연 써도 되는가. 그러나 말할 수 없음의 자리에서 증언이 시작된다고 했던가. 사흘을 울고, 열흘을 앓아눕고, 한 달을 눈물로 지새우면서도 쓰기를 중단하지 않았다.

 

너울의 성폭력 피해는 성인이 돼서도 계속됐다. 대학생 때 아이들을 가르치던 학원 원장에게, 아르바이트를 하던 곳 고용주에게도 당했다. 가까스로 지탱해온 삶을 한 번씩 더 추락시키는 운명의 야멸참에 몸서리칠 때 어떤 스님이 다가왔다. 그리고 말을 걸었다. 남자 때문에 힘들겠다고, 자기에게 몸 보시를 하면 전생의 업을 씻을 수 있을 거라고. 귀가 번쩍 뜨였다. 전생? 그 말은 이제껏 해명되지 않던 삶의 질곡, 비극의 연쇄, 반복강박과도 같은 자기처벌의 상황들을 설명해주었다. 과거를 구제해줄 계시처럼 들렸다. 그렇게 승복을 입은 남성에게도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

 

나는 왜 이렇게 사건이 많을까. 다른 여성에게 물어봤어요. 남자들한테 성적인 제안을 받느냐고. 그런 일이 있으면 미친놈이러고 만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말하기 위해서는 자존감이 성장해야 해요. 자기부정 하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 몸을 지켜요. 성폭력은 어떤 여자가 예뻐서, 짧은 치마를 입어서가 아니라 힘이나 권력으로 제압할 수 있는 여성을 고르는 거거든요. 제가 취약해 보인 거죠.”

 

그때는 몰랐다. 성폭력으로 망가진 어린 시절. 자아의 기초가 허물어져버린 신체. 열두 살부터 죽음에 대한 시를 썼다. 성장기 내내 치욕과 불안에 시달렸다. 나는 무가치하다는 느낌이 도사리고 있는 상태에서 어른이 됐다. 살고자 택하는 일들이 자꾸만 죽음을 재촉했다. “어른이 돼서 겪은 사건은 내게 선택의 여지가 있었고 어떤 상황은 내가 책임져야 할 부분도 있기에 그걸 글로 옮기기가 부끄러웠다. 하지마 그러한 상황을 내가 원하거나 즐긴 건 아니므로, 폭력의 경험인 건 맞다고 본다.”

 

스님의 성폭력 사건 이후, 운명의 공범이 되기로 했다. 생의 불능 상태라고 판단했다. 고시원 쪽방에서 자살을 시도했다. 지인이 발견해 살아났다. 성을 팔기로 했다. 자살도 실패한다면 성판매 여성이 되는 것이 나를 죽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삶의 가능성을 알지 못했다. 어릴 때 읽은 소설 <헬로우 미미>, <은마는 오지 않는다> 같은 책들에서 체득한 성폭력 피해여성의 삶이 전부 그랬다. 죽거나 미치거나 창녀가 되거나.

 

글 쓰면서 가장 고민한 부분이다. 성산업에 띄엄띄엄 6개월 정도 종사한 경험이 자칫 성판매 여성을 대표하는 말처럼 될까봐 부담스러웠다. 성폭력 피해자는 다 불행하다거나 성판매를 할 수밖에 없다고 받아들일까봐 우려했다. 또 그동안 여성운동의 성과, 성폭력은 (여자 인생 끝장이 아니라) 사소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관점을 무너뜨리면 어쩌나, 자신의 경험으로 인해 사회적 편견이 더 공고해질까봐 주저했다. 그래도 썼다. 내가 겪어낸 일들이니까.

 

30회 연재를 마쳤다. 글쓰기는 를 회피하지 않고 로 돌아가는 일이었다. 촘촘히 쓸수록 까맣게 죽어버린 과거에 피가 돌았고 겹겹이 존재감이 형성됐다. 다행히 내용이 힘들지 쓰는 일 자체는 힘들지 않았다. 어떤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으면 뽕 맞은 것처럼일필휘지로 써내려가곤 했다. 쓰기의 쾌감과 직시의 고통을 넘나들며 일다에 연재한 글들은 20139월에 같은 제목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사회가 규정한 여성성을 거부한다는 뜻의 제목 꽃을 던지고 싶다’. 성폭력 피해보다 더 고통스럽다는 기억의 복구 작업을 마치고 세상에 내놓은 너울은, 자신 있게 말한다. 피해자에게는 경험을 잊는 대신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고.

 

사건이 없어지지 않는 한 잊히지는 않아요. 과거를 부정할 때는 뿌리 없는 사람 같았어요. 과거가 없다는 게 끔찍한 게 뭐냐면, 저는 그 시기에 함께 했던 사람이 없어요. 서른 살 이전에 만난 사람은 지금 아무도 안 만나요. 한 해가 지나면 전화번호를 다 지웠어요. 학년이 바뀌면 아무리 친해도 안 만났어요. 친구를 보면 그 기억이 다시 났으니까요. 힘들어도 과거를 드러냈더니 제가 역사를 가진 사람이 되더라고요. 과거의 고통으로 만들어진 현재의 나를 인정하게 되고 내일을 꿈꾸는 힘이 생겨요. 누군가 저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싶어 할 때 나는 이런 경험이 있어, 라고 말하는 제 자신을 볼 때마다 많이 좋아졌다고 느끼죠.”

 

 

말하기, 드러나야 줄어든다

 

너울은 얼마 전 충북대에서 꽃다운 성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학생 400명이 대강의실에 가득 모였다. 누가 피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될 수 있는가. 한국의 성문화 하에서는 누구나 가해자나 피해자가 될 수 있으며 자신이 피해자, 혹은 가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맺고 있는 관계들을 살펴봐야 한다, 그런 이야기를 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상담 통계에 따르면 성폭력 가해자의 80%가 아는 사람이고, 친족에 의한 성폭력은 12%에 달한다고 한다.

 

축제기간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학생들은 시종 진지한 태도로 몰입했다. 그 총총한 눈빛이 큰 에너지를 전해주었다. 내 삶과 내 경험이 누구한테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 내 경험이 가치 없는 게 아니구나. “성폭력 경험이 가치 있는 경험은 아니지만, 나의 삶이, 그 경험을 견디면서 살아낸 내 삶이 가치 있다는 것을 인정받는 느낌에 너울은 마음이 환해졌다. 이는 보람이고 긍지이자 의무이다. 또 다른 생존자에게 강연의 기회가 이어지도록 활동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라도 너울은 어디든 부르면 가고 가면 열심히 한다.

저자로 데뷔한 이후 글쓰기 작업도 꾸준하다. <여성신문>에 매주 너울의 치유의 레시피라는 칼럼을 쓰고 있다. 생존자의 이야기를 쓰되, 생존자를 드러내지 않고 고통을 드러내기. 어떤 생존자는 어떤 고통을 겪는지 들려준다. 매번 성폭력 얘기만 담으려니 부대껴 요리를 곁들인다. 가령, 일전에 집을 나와 사는 친족성폭력 생존자에게는 식당 밥이 아닌 집 밥을 먹이고 몸보신도 시킬 겸 닭백숙을 해주었다. 요리는 너울의 주특기다. ‘꽃을 던지고 싶다출판기념회에는 그날 초대한 80여 명의 음식을 손수 차리기도 했다. 그렇게 글도 나누고 음식도 나누고 정도 나누고 말도 나눈다.

 

널리 말하기를 실천하는 이유는 절실하다. 성폭력 생존자가 한 명이라도 더 보았으면 해서다. 생존자가 어떤 고통을 경험하는지 이해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주변에서 생존자에게 너 왜 이렇게 불안해?’ 라고 말할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날카로울 수도 있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한다. 또 생존자들에게는 너는 그럴 수밖에 없어가 아니라 너가 그러는 게 당연해라고 말해주고 싶다.

 

제가 처음 성폭력을 경험한 게 30년 전이거든요. 그때는 주변에 믿을 수 있는 어른이 없어서 말 못했어요. 우리나라 아동성폭력 신고율이 9%에요. 미국도 6명 중 1명만 주변에 알린대요. 어느 외국 학자가 분석했는데, 아동성폭력 가해자는 한 장소에서 지속적으로 저지르는 특성이 있대요.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에도 다른 피해자가 있었을 거예요. 주위에 믿을 수 있는 어른이 있었으면 반복적인 피해는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죠.”

 

지금도 여전히 아동성폭력 피해자는 너울이 느꼈던 고통을 그대로 호소한다. 그럴 때 미안하다. 내가 믿을 수 있는 어른이 되어주지 못한 거 같아서.

 

 

모이기, 다섯이 하면 훨씬 난 말

 

 

벤야민은 이야기와 치유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름지기 병이란 그것이 이야기 들려주기의 흐름 속에서 충분히 멀리 떠내려 보낼 수만 있다면 치유 가능하게 되지 않을까() 우리가 겪는 고통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이야기의 흐름을 막는 댐과 같다.” 벤야민의 처방대로 이야기는 너울을 어루만져 주었다. 구술로, 책으로, 다른 성폭력 생존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통을 저만치 떠나보냈고 자연스레 자신도 이야기의 수문을 열 수 있었다.

 

작은말하기(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주최하는 자조모임) 친구들, 여성학과 대학원 친구들, 글쓰기 힘들 때마다 격려해준 일다의 조이여울 대표, 상담과 학업을 물심양면 지켜보며 8년간 곁이 되어준 애인, 출판을 제안해준 출판사, 글을 의미 있게 읽어준 독자들은 너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빚어주고 간직하고 퍼뜨려준 고마운 동료들이다.

 

자신이 받은 것을 세상에 돌려주기 위해 너울은 지난여름 인터넷에 생존자 네트워크 카페 성폭력, 그 이후’(http://cafe.daum.net/e-hoo)를 개설했다. 아직 사무실이 없어 엔지오 단체로 등록하지 못했지만 십시일반 후원과 자발적 재능 기부로 조금씩 체계를 잡아가고 있다. 회원이 50명 남짓이다. 운영진 다섯 명이 격주로 모여서 회의를 하고 사업을 논의한다.

 

가장 중시하는 것은 기록화 사업이다. 피해자들이 자기 언어를 갖고 세상과 소통하는 길을 모색한다. 또 가죽공예, 타로상담, 미술치료 등 각자 회복에 도움이 됐던 강좌를 개설하는 치유회복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생존자의 작품 전시회 등도 계획한다. 책 읽고 글 쓰는 모임도 꼭 꾸리려 한다. 읽으면 똑똑해지고 쓰면 자유로워지고 말하면 당당해진다는 것을 먼저 깨친 자의 욕심이다.

 

누구도 성폭력을 찬성하는 사람은 없는데 성폭력 피해는 왜 이리도 많이 발생하는가. 너울은 말한다. 성폭력을 반대하기는 쉽지만 무엇이 성폭력인지 알기는 그만큼 어렵다. 선뜻 나서서 알려 하지 않는다. 여성들조차 자신이 성폭력 피해 가능성을 거의 상상하지 않고 산다. 어쩌면 소설 <침묵의 미래>에 나오는 소수언어박물관의 설정처럼, 성폭력 생존자가 대상화되고 한갓 소재주의로 전시되었기 때문이리라.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당사자가 직접 증언하고 같이 말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너울은 소설 속 노인이 그리워했던 의 언어들, 이를테면 혼자 하는 말이 아닌 둘이 하는 말, 셋이 하면 더 좋고, 다섯이 하면 훨씬 난 말, 시끄럽고 쓸데없는 말, 유혹하고, 속이고, 농담하고, 화내고, 다독이고, 비난하고, 변명하며, 호소하는 말들을 원 없이 부릴 것이다. 말의 물살은 또 다른 말의 잔물결을 낳겠지. 아마도 성폭력 생존자의 언어가 거리낌 없이 오가는 날 성폭력이라는 몹쓸 단어는 스스로 소멸할 것이다. ‘큰 피해를 입히고 사라져가는 파도라는 뜻의 너울성 파도처럼.

 

 

 

* <나들> 2014년 2월호 '내 몸, 파르헤시아' 연재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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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래 - 잔인한 나의, 홈

[행복한인터뷰]

돌고래는 친족 성폭력 다큐멘터리 <잔인한 나의, >(감독 아오리) 주인공이다. 피해 여성 당사자로서 두 해에 걸친 법정 공방을 좇는 카메라에 민얼굴로, 목소리로, 일상으로 등장한다. 아버지는 7년형을 선고받지만 이 영화는 아버지를 거대한 악으로 다루지 않는다. 제목의 암시대로 한국 사회의 도구적 가족주의의 실상을 드러내고, 자기 몸의 기억과 싸우는 작고 용감한 한 여성의 성장에 주목한다. 7살 때부터 원하지 않는 것을 당해야 하고 바라지 않는 것을 겪어야 했던 맏딸이 자신이 경험한 진실을 또박또박 말하고 부단히 흔들리면서도 삶을 정직하게 마주하는 돌고래로 변모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당함에서 행함으로. 이 고난도 존재 이행의 드라마를 선보인 돌고래가 나는 몹시도 궁금했다. ‘진실 말하기’(파르헤시아·Parrh?sia)에 따르는 치욕, 불안, 고립, 파탄을 감당하면서도 집을 나와 지내니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하는 표정에는 거짓이 없었다. 원한의 힘이 아닌 진실의 힘으로, 세상을 향해 존재를 개방하는 이 신기한 생명체는 누구인가. 두 차례 인터뷰가 성사됐다. 까르르 웃어넘기는 천둥벌거숭이 같은 명랑함으로, 때로는 죽음과 존재의 허무를 아는 것 같은 종교적 차분함으로, 재능에 가까운 솔직함으로, 돌고래는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난 싫다고 말해요

말을 할까 말까 결정하는 게 힘들었어요.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는 게 자연스럽고, 포장하는 게 부자연스러운 거 같거든요. 숨기는 건 힘을 거꾸로 쓰는 거고. 그래서 힘들고. 그 억압하는 힘을 빼면 솔직한 말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그걸 알면서도 진실을 말하기가 두려웠어요. 이 사회의 진행 과정의 목표랄까, 결과적으로는 진실이 드러나는 쪽으로 간다고 생각해요. 진실이 알려지는 게 자연의 흐름이다. 제가 바라는 것이면서도 그렇게 믿는 것이기도 해요.”

돌고래는 스물다섯이다. 다큐멘터리도 찍고 인터뷰도 하고 자신이 드러나는 걸 받아들이고 환영한다고 했다. 보호의 논리로 침묵을 요구받던 시기를 보내고 자연의 이치로 말하기를 택한 것이다.

돌고래가 친부 성폭력 피해 생존자로 세상에 나온 것은 3년 전이다. 시작은 이랬다.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어떤 책을 보게 된다. <난 싫다고 말해요>. 제목에 꽂혔다. 나는 싫다고 말해요? 그것은 돌고래가 외치고 싶었으나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던 그 말이었을까. 어린이를 위한 성폭력 예방 그림책이었다. 책장을 넘겼다. 단순한 의문, 단순한 비교였다. 그 책에 나오는 가족은 엄마·아빠가 자식을 보호해주는 사람인데, 나는 왜 엄마·아빠가 괴롭히는 사람이지. 책에서 부모는 아이에게 솔직히 말해줘서 고맙다, 다친 데 없느냐고 묻는데, 나는 왜 솔직하게 말하면 혼나고, 다친 데는 없느냐고 묻는 사람이 없을까. 돌고래는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왜 나는 괴롭히는 사람이 부모야?’

책 맨 뒷장에 성폭력 관련 기관 연락처가 나와 있었다. 돌고래는 아동·청소년 성폭력 전담센터인 해바라기아동센터에 전화했다. 상담사는 근처의 지역 성폭력상담소로 연계해주었고 상담이 진행됐다. 소장이 엄마를 보자고 했다. 면담에서는 별말이 없던 엄마가 상담소 밖으로 나오더니 말했다. 동생들 교육비를 내야 하는데 너에게 계획이 있냐. 아빠가 그런 사람이라는 게 밝혀지면 동생들 혼삿길은 어떻게 할 거냐. 돌고래는 엄청 화가 나서 말했다. 나는 엄마 딸이 아니냐고.

니체는 우연을 유서 깊은 귀족이라고 했다. 때로 우연은 삶을 예속 상태에서 구제하고 고귀하게 만들어준다. 돌고래는 우연히그 책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어디에 말해야 할지 몰랐다. 아빠의 이런 말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경찰은 아빠가 다 아는 사람인데 네가 전화해서 뭘 어쩌려고, 너랑 나 사이에 있던 일은 무덤까지 비밀이다, 엄마는 나약한 사람이니까 이 일을 알면 슬퍼할 거다, 네가 얘기하면 가족의 행복이 깨진다, 같은 말들이 돌고래의 입을 다물게 했다. 건강한지 보는 거라며 아빠가 몸을 만지기 시작한 7살부터 집을 뛰쳐나온 그날까지.

“21살 때 만난 남자친구가 있어요. 내가 좋아하고 끌리는 사람과 사랑을 나누니까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사귀는 중에 결혼하고 싶다는 맘이 들었어요. 근데 아빠와 저 사이에 있던 일을 숨기고 있다는 죄책감에 너무 괴로웠어요. 솔직해지고 싶어서 얘기했고 그게 남한테 처음 말한 거예요. 남자친구가 생기면서 아빠가 오는 걸 막게 되고 집안이 싸늘해지고 용돈을 깎거나 하고. 더 집을 나오게 되었죠.”

 

세 가지를 놓다

 

20101월부터 지역상담소에서 머물며 상담과 고소를 진행했다. 피해 경험을 말하기 시작하면서 돌고래는 세 가지를 포기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했다. 첫째, 이거 말하면 친구가 없을 수도 있다. 그래도 얘기하고 싶은가. 둘째, 결혼을 못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얘기하고 싶은가. 셋째, 직업을 구하기 힘들 수 있다. 고용자들이 내 경험을 알게 되면 일을 잘 못할 거라 생각해서 뽑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얘기하고 싶은가.

친구, 결혼, . 이 세 가지를 잃게 되더라도 지금 살고 싶었어요. 이 말을 안 하면 죽을 것 같았어요. 그래 어쩔 수 없다. 될 대로 돼라. 그래서 말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내 주위를 봤을 땐, 친구도 애인도 생계를 위한 일자리도 있었어요. 저한테 이렇게 말했죠. , 막연한 걱정이었나보다. 얘기하기 잘했다!”

지역상담소에서 머무는 동안 돌고래는 세상을 기웃거린다. 영어 홈스쿨링 강사, 과외 등으로 직접 돈을 벌었다. 외교관이 꿈이던 돌고래는 서울의 한 대학에서 열리는 정치포럼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의 지식과 언어에 반한 돌고래는 더 넓은 세상에서 살아보기로 결심한다. 휴학 중이던 대학을 자퇴하고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놈에게 복수하는 법>(감독 최미경)이라는 단편영화를 보았다. 감독과의 대화에서 감독이 말했다. 다음 작품으로 친족 성폭력을 다루고 싶은데 자신의 이야기를 하겠다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고. 그 순간 돌고래의 마음에서 나는 괜찮아라는 말이 올라왔다. 감독에게 다가가 영화를 찍고 싶다고 말하고 연락처를 나눴다. 한 달이 지나도록 감독에게 연락이 오지 않자 돌고래는 먼저 전화를 걸었다. 영화는 언제부터 찍느냐고.

<잔인한 나의, > 촬영이 시작됐다. 카메라가 돌아가는 순간순간 돌고래는 자신이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때그때 하고 싶은 말을 했다. 틈틈이 고민했다. 내가 이걸 왜 찍고 있지, 뭘 위해서 찍고 있지, 이 다큐멘터리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런저런 감정이 밀려오고 생각에서 생각으로 돌아눕길 반복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마냥 걱정만 하고 있더라고요. 그 순간을 알아채고 질문을 바꿨죠. 나는 이 영화가 어떤 의미였으면 좋겠나. 이 영화가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하는지 물으면서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있었어요. 이 영화가 엄마·아빠를 욕하고 싶어서 만든 게 아니다, 같이 욕해달라고 말하고 싶어서 찍는 것도 아니다.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다.”

다큐멘터리를 통한 존재 개방의 시도는 자기 인식의 방편이기도 했다. 돌고래는 말했다. “내가 경험한 일이기 때문에 피해가고 싶지도 않고 못 본 척하고 싶지도 않다. 영화를 찍으면서 더 분명하게 보고 싶었다. 이런 태도는 영화에도 잘 드러난다. 특히 타로카드 점 장면. 아오리 감독은 20대 젊은이의 모습을 찍는다는 식으로 촬영 허가를 얻었다. 그런데 돌고래는 사실대로 말하고 싶다고 주장한다. 선의의 거짓말을 한 감독은 몹시 난처해한다. 두 사람은 친구처럼 옥신각신한다. 결국 타로카드 리더와 마주 앉은 돌고래는 말문을 연다. 저는 성폭력 피해자인데요, 라고. 

카메라가 없어도 얘기했을 거예요. 타로카드 점을 솔직하게 보고 싶었어요. 제 피해 경험을 알리려고 영화를 찍는데 직접적으로 알리는 걸 막는 일이 저한테는 역설적인 거예요.”

 

열림터, 존재 회복의 시간

 

돌고래는 지인의 소개로 한국성폭력상담소 열림터에 들어갔다. 열림터는 성폭력 피해자들이 집을 나와 거주하는 시설이다. 초기에는 누워서 시름시름 앓는 시간을 보냈다. 누가 나를 또 아프게 하지 않을까 막연한 불안과 근심이 서렸다. 시간이 지나자 그곳이 점점 좋아졌다. 가족과 있을 때는 이 지구상에 혼자만 겪는 일 같고, 자신이 유발한 일이라는 자책이 많았고, 그래서 더욱 누구한테도 얘기할 생각을 못했다.

열림터에서 다른 피해 사례를 대하면서 돌고래는 자신의 피해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선을 얻었다. ‘저 사람이 잘못해서 생긴 일이 아니듯 나도 내 잘못이 아니구나느꼈다. 피해 경험자들과 같이 밥 먹고 말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매달 열리는 작은말하기에도 참여했다. 작은말하기는 여성 10명이 모여서 피해 경험을 나누는 자리다.

제 이야기를 처음으로 시작했어요. 좀 지나는 순간 확 열리는 느낌이 들면서 같이 많이 울었어요. 몸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나고. 다 같이 얘기가 시작됐죠. 처음 순간 뭔가 침묵이 흐를 때 답답했는데 제가 먼저 얘기할 수 있었던 게 고맙기도 해요.”

소소한 일상도 즐겼다. 돌고래는 열림터에서 최고 연장자였다. 대부분이 10대이지만 돌고래에게 화장을 해주고 선물도 주었다. 돌고래는 친구들에게 피아노를 연주해주고 가르쳐주기도 했다. 관심과 칭찬의 말을 나누었다. 야외로 놀러 갔을 때 음악을 틀어놓고 개인기인 막춤을 춘 일, 명절에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고 놀이공원에 간 일은 신나는 추억으로 남아 있다.

돌고래는 집에서 지낼 때 엄마에게 두 팔 벌려 안기려 했다가 밀침을 당한 적이 있다. 그때 놀란 가슴 때문인지 나는 여자와 잘 지낼 수 없다, 여자는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열림터에서 지내는 동안 여자들과 새로운 경험을 하고 관계가 만들어졌다. 서로의 살아 있음, 서로의 존재 자체가 치유였던 날들. 꽉 채운 2, 고마운 시간을 살았다.

 

잔인한 나의 홈

 

법정 공방도 끝났다. 20101월 경찰 조사가 시작돼 20127월 최종 선고가 났다. 돌고래의 아버지는 1심 무죄판결이 뒤집혀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영화에서 공판이 끝나고 법정을 나온 돌고래는 엄마, 어떡해요라며 오열한다. 복도 바닥에 신발처럼 쓰러져 운다. 재판 승소는 가족 파괴와 다름없다. 엄마는 돌고래에게 네가 아빠를 유혹하지 않았느냐라고 말한 가해자였지만, 재판이 끝나자 남겨진 아내라는 친족 성폭력의 또 다른 피해자가 되어버렸다. 이 어찌할 수 없음으로 인한 좌절, 연민, 통한, 설움의 눈물로 뒤범벅된 장면에 대해 변성찬 영화평론가는 가장 슬픈 승리라고 표현했다.

돌고래의 홈(home)은 겉보기에 멀쩡했다. 아버지의 안정된 경제력, 전업주부인 엄마, 세자매로 구성된 가족이다. 맏딸이 침묵의 봉인을 풀면서 균열이 일어났다. 엄마는 그 말을 통째로 묵살했고, 할머니와 동생들은 아버지를 위해 탄원서를 썼다. 등 돌린 가족. 이 상황은 가정이 보살핌과 배려의 공간이 아니라 온갖 갈등과 폭력이 있더라도 서로의 이해관계에 의해 가족이라는 형식을 유지하고 결속하는 도구적 가족주의가 작동하는 공간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돌고래에게 아빠와의 경험은 이미지로 남아 있다. 일주일에 몇 번인지 구체적인 숫자가 아니다. 지역상담소에 처음 가서 진술서를 쓸 때, 어디서부터 어떻게 무어라고 써야 할지 막막했다. 그것은 일상적 기억이면서 외상적 기억이다. 살면서 한 번도 언어로 발화되지 못한 몸의 느낌과 감정과 일들은 돌고래의 것이면서 돌고래의 것이 아니었다.

그런 행동이 일어날 때마다 턱턱 막히는 게 반복됐고 말로 해본 적이 없으니까, 단어랑 표현을 찾는 데 오래 걸렸어요. 상담소 선생님이 정히 어려우면 소설 쓰듯이 해보라고 해서 그렇게 썼더니 선생님이 야한 연애소설 같다고 하셨어요. 상담소에 있으면서 계속 쓰고 말하니까 기억이 또렷해지기 시작했어요.”

돌고래에게도 저항의 순간이 있었다. 한번은 아빠한테 말했다. 나 건드리지 마라. 어디 가서 돈 주고 해라. 엄마랑 해라. 그만해라. 21살 때인가도 일대일로 말하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말했다. 아빠는 알았다고,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던 거 같다. 그런데 몇 개월이 지나고 또 방에 들어왔다.

항상 초식동물처럼 주위를 살폈다.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일어날 일은 일어났다. 참 싫은데도 집요하게 구걸하는 걸 버티기가 힘들었다. 아버지의 요구에 따르게 되는 일도 있었다. 너무 어려서 생긴 일이다. 처음엔 아빠가 네가 싫으면 안 할게했고 그 말을 믿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공부도 우정도 엉망이 됐다. 돌고래는 괜찮은 성적으로 외고에 들어갔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머리에 뭐가 꽉 찬 거 같아서학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1 때 친한 친구가 있었다. 잘 지내다가 어느 순간 그 애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해지면 경험을 얘기하고 싶다. 따뜻한 게 필요하고 나누고 싶으니까. 그런데 친구를 멀리했다. 다르다는 것. 저 아이는 깨끗하고 나는 더럽다. 나를 싫어할 거라고 지레 짐작했다. 이성복의 시구대로 어째서 무엇이 이렇게 내 안에서 캄캄한가알지 못한 채 십대가 저물었다.

고소하기 전에는 그랬다. 돌고래는 아빠의 행동에 성폭력이라는 이름을 달고 싶지 않았다. 불편하고 꺼림칙하고 귀찮고 제발 그만했으면 좋을 것 같은 어떤 거였다. 아빠니까, 잘 따지지도 못하고 용서하고 다음에 다가오면 당하고 또 용서했다가 까먹었다가 또 당하고, 그런 반복이었다. 그때는 자신의 경험이 성폭력이라는 생각보다 ‘()관계라는 생각을 더 많이 했다.

고소를 안 했으면 안 끊어졌을 거 같아요. 고소한 걸 후회하는 측면이 있는데. 미안하다고 아빠랑 앉아서 얘기했는데, 법이 아니고 내 힘으로는 어떻게 못해요. 엄마가 말릴 수 있을 거 같지도 않고, 밖에 알려지지 않으면 끝날 수 없었어요.”

 

자유에 이르는 기술

 

돌고래는 현재 서울 용산구 해방촌에 있는 주거공동체 빈집에 산다. 청소와 빨래를 하고 마을 활동을 위한 회의에도 참여한다. 빈집 생활이 재미있지만 어떻게 정착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탈출할까를 문득 생각한다. 남자친구를 사귀어도 계속 살핀다. 이 사람을 언제쯤 떠나야 하나. 돌고래에게는 피하는 것이 스스로를 돌보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간 자신을 살게 해준 그 방어기제에 고마워하고 제사를 지내고 감사 표시도 하고 이제 전쟁이 끝났다고 알려주고 이 순간순간을 보려 한다.

자꾸 과거를 탓하지 말자. 아빠가 감옥에 들어간 뒤에 깨달았어요. 아빠 때문인 줄 알았는데 아빠가 없는데도 힘든 거예요. 나한테 책임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가 억울했어요. 어느 순간까지는 필요하죠. 그 사람이 잘못했고, 다 그 사람 탓이고, 그 사람만 아니면 이런 일 없었다, 이런 말들. 그런 다음에는 나를 보는 거예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 남에게 부탁할 수 있는 일을 떠올리고 실천하기. 계속 나로 돌아오는 것. 남 탓에서 벗어나 내 상처에 스스로 책임지기. 그럴 때 그 사람에게 자유가 오는 거 같아요.”

영화 <잔인한 나의, > 후반부에서 돌고래는 재판 뒤 추석에 집을 찾아가지만 엄마는 전화만 받고 만나주지 않는다. 보호자를 잃은 동생들도 언니를 외면한다. 돌고래는 엄마가 보고 싶을 때면 가끔 전화를 건다. 엄마가 어떻게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지 궁금하지만 이야기해주지도 않고 묻지도 못하고 있다.

돌고래는 이런 상황이 아프지만 의연하게 받아들인다. 상처를 입히는 행동을 한 사람이나 상처를 입은 사람이나 공동체, 마을, 국가 안에서 둘 다 따뜻하게 받아들여주면 좋겠다고, 건강한 삶을 위해 서로 도울 수 있는 기술이나 인식이 있는 따뜻한 사회에서 살고 싶다고, 그래서 아빠가 나한테 성폭력하기 이전의 아빠와 나의 관계, 엄마와 나의 관계를 되찾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했다.

 

진실 말하기-들어주기

 

돌고래가 재판을 무사히 마치고 다시 신뢰하고 의욕하는 삶을 살기까지 성폭력상담소 같은 사회적 자원의 도움이 컸지만 주변 지지자들의 역할도 절실했다. 몸은 자기 목소리를 내려 하고 고통은 들어주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돌고래는 피해 경험을 터놓아야 하는 상황이 오면 회피하지 않았다. 가령 누군가와 깊이 친해지고 싶을 때, 왜 가족이랑 따로 사는지를 물었을 때, 말한다. 그 사무치는 말을 들은 사람들은 대개 어떻게 위로할지 몰라 당황한다. 돌고래가 가장 고맙고 짠한 말은 말해줘서 고맙다” “믿어줘서 고맙다는 말이다.

한 친구가 저에게 묻더라고요. 자기가 엄마·아빠 얘기를 해도 괜찮냐고요. 그래서 말했죠. 너의 아빠 얘기 들을 때 어떤지 알려줄까? 나는 안심된다. 딸이랑 아빠랑 성적인 게 개입되지 않고 부모와 자식으로 지낼 수 있는 것, 그런 세상에 살고 싶기 때문에 든든하고 안심된다고요.”

연애할 때도 늘 혼란스러운 문제다. 돌고래가 피해 경험을 처음 말한 상대는 남자친구다. (그의 증언은 법정에서 결정적 사실로 채택된다.) 그때는 마음이 깊어진 뒤에 말했지만, 이후에는 호감 단계에서 미리 말한다. 이걸 알고도 나랑 함께할 수 있느냐 묻는다. 어떤 친구는 자기에게 너무 큰 일이라며 돌아섰다. “섹스를 하기 전이라서 다행이라며 돌고래는 씨익 웃는다.

한 친구는 마음 아파하면서 도저히 상상이 안 된다고 네가 어떤 슬픔과 고통을 겪었는지 모르겠다, 가늠이 안 된다고 했어요. 그래서 말했죠. 굳이 네가 가늠 안 해도 된다. 가늠해서 어쩌려고. (웃음) 내가 느낀 걸 네가 다 느끼게 하고 싶지도 않고 내가 고통스러울 때 옆에 있어줘서 고맙다고 했어요.”

 

돌고래 삶이 내는 소리

 

돌고래는 비폭력대화 중재 전문가 과정을 배우고 있다. 엄마·아빠와의 갈등을 크게 경험하다보니 살기 위해서평화를 만드는 기술을 익히는 게 중요했다. 그 외에 칵테일 제조 기술도 배우고 싶고 영화도 찍고 싶다. 이것저것을 시도하고 탐색한다. 과거의 상처로 하고 싶은 일까지 못하면 너무 억울하니까 다 해보고 싶다며 두 눈을 반짝인다. 시시각각 다른 눈빛, 다른 기류다. 쾌활하고 담대하다가 침울하고 잔망스럽다. 해사하게 웃고 짓궂게 굴고 이내 흔들리다 빤히 응시한다. 감정선이 올올이 살아 있다.

느낄 줄 알고, 물을 줄 알고, 말할 줄 아는 그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 잔인한 나의 홈을 벗어난 돌고래는 끝없는 생성이 일어나는 힘들의 바다 위에 놓였다. 돌고래는 진실 말하기에 엄청난 힘이 있음을 보여준다. 힘이 있어서 진실을 말한 것이 아니라 진실을 말함으로써 힘을 얻고 인연을 끌어오고 그 수행적 힘으로 살아낸 것이다. 상승과 하강의 몸짓이 만드는 생의 파동, 돌고래의 삶이 내는 소리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삶에 대한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것이 당신의 권리임을 결코 의심하지 말라.

 

<나들>2014년 1월호에 '내 몸, 파르헤시아'에 실린 연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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