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신보다 신앙이 먼저 생겼다는 말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는데 같은 맥락에서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종교보다 종교적인 것이 문제라고. 신의 죽음으로 종교는 사라졌지만 종교적인 것은 여전히 위세를 떨친다는 것, 즉 우리시대에는 도덕, 과학 등이 ‘신 없는 신앙’으로 종교의 기능을 대신한다는 비판이다. 종교적인 것의 어떤 부분이 문제이냐 하면 희생, 금욕 같은 것들의 강조이다. 삶을 위한 종교가 아니라 종교를 위한 삶이 되는 가치전도. “그리스도교적 신앙은 처음부터 희생이다: 모든 자유와 긍지, 모든 정신의 자기 확실성을 바치는 희생이다. 동시에 이는 노예가 되는 것이며 자기 조소이자 자기 훼손이다.”
니체는 종교적인 것을 ‘종교적 신경증’이라고도 표현한다. “거기에는 늘 고독, 단식, 성적 금욕이라는 위험한 섭생규정과 연결되어 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은, 금욕이 무조건 문제시되는 것이 아니다. 자기의 욕망을 극대화하는 자기 배려의 금욕이 아닌, 자기의 욕망을 거세하는 자기 파괴의 금욕이기에 문제이다.
니체는 금욕을 강자의 필수덕목으로 친다. “지금까지 가장 강력한 인간은 자기 억제와 의도적이고 궁극적인 부자유의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인 성자 앞에서 언제나 경건하게 머리를 숙여왔다... 그러한 억제를 통해 자신을 시험하고자 했던 탁월한 힘, 그들이 자신의 강함과 지배자의 쾌락을 다시 인식하고 존경할 줄 알았던 의지의 강함을 느꼈다.”
그리고 우리는 보통 번잡한 일상사를 벗어나기 위해서 종교라는 도피처를 택하지만 (속세의 죄를 씻는 구원의 처소) 니체는 “진정한 종교생활을 위해서는 그리고 자기 검증이라고 하는 좋아하는 세밀한 작업을 위해서도” 어느 정도 외적인 한가함이나 절반 정도의 한가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노동은 영혼과 몸을 천하게 만듦으로 한가함 -귀족의 감정에 전혀 낯설지 않은 예부터의 “혈통상의 한가함”이 필요하다는 것.
한동안 저 "혈통상의 한가함"이란 표현에 꽂혀서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오! 혈통상의 한가함!"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고되게 일하고 나면 육신이 지쳐서 생각하기 싫어진다. 물론 부지런한 몸놀림이 정신을 깨어있게도 하지만 이놈의 임노동이 스스로의 의지로 육신의 작동을 멈출 수 없아서 탈이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노동자와 재능학습지 교사가 적당하게 노동하고 집에 가서 철학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노동은 철학본능, 종교본능의 씨를 말린다.
“사람들은 대부분 부지런함 때문에 세대를 거치면서 종교적인 본능을 해체시켜버렸다. 그래서 그들은 왜 종교가 필요한지 전혀 알지 못하며, 일종의 생기 없는 놀라움으로 세계에 종교가 존재하고 있음을 인식할 뿐인 것이다...근면한 상업과 교통의 대중심지에 살고 있는 독일 프로테스탄트 대부분이 이러한 무관심한 부류에 속한다.” 아울러 근면한 학자와 수많은 전 대학 관계자들도 “현대적 이념을 부지런하고 재빠르게 다루는 정신노동자이자 육체노동자이다.”
니체가 볼 때 종교의 쓰임새는 인류를 육성하는 사업을 위해서이다. 저항을 극복하고 지배하는 수단. 또한 브라만의 승려들 경우처럼 더 높은 정신성의 길을 가도록 위대한 자기극복, 침묵, 고독의 감정을 시험하는 충분한 자극과 유혹을 제공한다. 누차 강조하듯이 “어떤 종족이 지배자가 되고자 한다면 금욕주의와 청교도주의는 거의 불가결한 교육수단이고 향상의 수단이다.”
반면에 평범한 사람들에게 종교는 “봉사하고 일반적인 유용성을 위해 존재하며, 단지 그러한 한에서 존재할 만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종교란 자신의 상황과 천성에 무한한 만족과 다양한 마음의 평화, 복종의 고귀함과 자신과 같은 사람들과 함께 겪는 고통 이상을, 모든 일상이나 총체적인 영혼의 천박함이나 전체적인 반 동물적인 빈곤함을 변용하고 미화하며 정당화하는 무엇을 부여한다.” 맑스도 말했다. 약자들은 기적을 믿는데서 구원을 찾았다고.
정리하자면 종교적인 것에 대한 니체의 결론은 이렇다. “만일 종교가 철학자의 손 안에 있는 육성의 수단과 교육의 수단이 아니라 그 스스로 절대 권한으로 군림한다면, 만일 종교가 다른 수단들과 병립해 있는 수단이 아니고 그 자체로 궁극적인 목적이고자 한다면, 이는 언제나 비싸고 무서운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리고 또 말한다. 지금까지의 종교, 즉 절대 권한을 가진 종교들은 인간 유형을 낮은 단계에 머물게 한 주요 원인이 되었다고. “이것들은 몰락해야만 했던 것을 너무 많이 보존해왔다.”고. 니체에게 몰락은 곧 창조다. 몰락이 곧 삶이다. 남루한 현상유지가 아닌 아름다운 몰락, 그것만이 가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