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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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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생강 대금명인 - 生剛, 강하게 살라 이생강(73)은 대금 명인이다. 소싯적 아버지 무릎에서부터 부단히 연마한 천의무봉의 가락으로 가요, 재즈, 팝 등 모든 장르를 아우른다. 품 넓고 속 깊은 그의 연주는 말해준다. 음악인생 65년, 그가 살아온 시간은 무엇을 하든 대금의 본령에 이르기 위한 길이었음을. 이생강 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퓨전국악에서 병아리단소까지’ 때마침 봄비가 내린다. 촉촉이 젖은 세상에 구슬픈 대금소리가 번진다. 굽이쳐 흐르는 ‘목포의 눈물’ 엄마 등이 그리워지는 ‘섬 집 아기’ 발잔등이 아려오는 ‘아리랑’... 겨우내 언 땅을 뚫고 솟아오르는 연둣빛 싹처럼 가슴 속에서 움트는 것이 있으니 영혼의 인기척이라고 해도 좋을까. 나란히 놓인 대금, 소금, 퉁소, 단소 등 일곱 가지 우리 목관악기가 그의 입김을 통과하면..
임종진 사진가 - 사람 사이의 경계를 지우고 싶다 이 세상에는 정상인에 대한 기준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한 낙인이 존재한다. 장애인, 유색인, 에이즈 환자, 네팔 노동자, 북한사람 등등. 이러한 ‘사람 사이의 경계’를, 그는 카메라로 지우고자 한다. 육체 위에 덧입혀진 이데올로기, 피부색, 질병, 국가의 편견을 찬찬히 걷어내려 한다. 한 생명이 또 다른 한 사람으로 보일 때까지 느리고 길게 소통한다. 그리곤 셔터를 누른다. 함부로 찍지 않기. 거기까지다. 사진으로 예술을 하려는 것도, 세상을 바꾸겠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존구자명(存久自明). 존재란 오래되면 스스로 밝아지는 법이라 했던가. 그가 두고두고 묵혀둔 사진은 때로 꽃보다 아름답게 사르르 피어난다. 그걸 보여줄 뿐이다. 이번에는 북한사진만 모았다. 임종진의 첫 개인전. 제목은 이렇다. “사는 ..
김융희 학인 - 수유너머 10년지기 "젊은 벗들과 공부 즐겁죠" 김융희 선생은 연구공간 수유+너머와 99년부터 인연을 맺고 지속적으로 공부해왔다. 연구실 주방에 갖가지 맛난 음식을 남몰래 가져다놓아 ‘우렁각시’로 통한다. 조용히 베풀고 사라지는 손. 그 고마운 손으로 6080의 사는 이야기 을 위클리수유너머에 연재 중이다. 4월 14일 볕 좋은 날, 편집팀은 경기도 연천군 신망리 김융희 선생 댁으로 봄 소풍을 떠났다. # 길 지방 국도변 마을 어귀, 고무신 바람에 서성이는 촌부가 있다면 필시 자식을 기다리는 것이리라. 김융희 선생도 그랬다. 뒷짐 지고서 느린 걸음을 옮기며 두리번거리다 우리가 탄 차를 발견하자 입가가 벙글어졌다. 손을 번쩍 들어 차를 인도하고는 편집팀을 푸근한 눈빛으로 등 두드려 자식처럼 맞아주셨다. “이 먼 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어요.” 그러게 말..
이옥정 막달레나공동체대표 - 성매매여성들의 큰언니 밥 앞에 평등 나뭇결이 벗겨지고 손때가 묻은 둥그런 밥상. 생선조림과 묵은지찌개, 호박전, 가지나물, 겉절이 등 9첩 반상이 올랐다. 푸짐하다. 게다가 3월 하순 다순 햇살이 비스듬히 밥상 위로 쏟아지니 잡지의 화보처럼 입맛을 돋운다. 첫술을 뜨며 두런두런 이야기 오가고 젓가락이 스친다. 반찬이 금세 동났다. 밥 한 그릇 뚝딱 비운 식구들은 가위바위보로 설거지 당번을 정하느라 왁자지껄 소동이다. 성매매여성들의 쉼터 ‘막달레나의 집’ 점심시간 풍경이다. “이 둥그런 밥상을 20년 넘게 썼어요. 위도 없고 아래도 없이 평등하게 둘러앉아 밥을 먹을 수 있지요. 튼튼하고 아주 좋아요.” 운 좋게 설거지를 면한 이옥정 대표가 밥상의 짤막한 다리를 접어 한켠에 세워놓는다. 그와 밥상은 닮았다. 밥상이 매 끼니마다 ..
성태숙 공부방교사 "자기 이야기 있는 사람으로 자라길" 70~80년대 구로동에 산다는 것. 사춘기 소녀에게 그것은 형벌이었다. 집집마다 방 하나 부엌 하나에 ‘공중변소’를 쓰던 서울의 변방. 오직 생존만을 위해 분투하는 도시빈민들의 집단 서식지. 성공하면 황급히 떠나는 동네. 마치 탈옥을 꿈꾸는 죄수처럼, 소녀는 오직 구로동 떠나는 꿈을 꾸며 자랐고 부모로부터 합법적인 탈출을 위해 간호학과를 택했다. 간호사가 되어 ‘전혜린의 나라’ 독일로 가 돈도 벌고 공부도 할 셈이었다. 오직 떠나기 위해 살아온 곳, 구로동. 구로동 사람이란 꼬리표가 창피함에서 자부심으로 바뀐 것은 운동권대학생이 된 이후다. 노동자들의 투쟁 열기 가득한 구로동은 자랑스러운 역사적 현장이었다. 2003년,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다. 영국에서 발도로프교육을 공부한 그는 대안학교 교사로 살며 창..
금강산 대학생 - “내 나이 스물에 벌써 빚쟁이라니” 금강산(22)은 겨울방학 동안 영어 학원에 다니고 있다. 10시부터 12시까지 한 강좌를 듣는다. 학원이 끝나면 12시부터 4시까지 카페에서 세미나 관련 책 읽기나 글쓰기 등 숙제를 한다. 어떤 날은 아르바이트를 한다. 대개 오후 다섯 시 반 즈음 귀가한다. 집에서 퇴근하는 엄마를 기다렸다가 같이 저녁밥 해먹고, 드라마 한 편 보고, 그리고 영어단어 좀 외우려고 책을 뒤적거리다가 잠들곤 한다. 단조로운 하루 일과 중 엄마랑 밥해 먹을 때가 제일 좋다. 그 시간이 행복하다. 사실 영어공부는 마지못해 한다. 영어의 필요성을 못 느꼈다. 잘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았으나 대학에서 영어를 못하니까 불이익이 많다. 영어로 하는 수업이 늘어나서 점점 못 듣는 강의가 많아진다. 토잌 점수가 낮으면 졸업 못한다는 얘기도 ..
김디온, 아규 - 도심 속 공동주거실험 2년 ‘빈집’ 빈집의 진실 “2000원에 주인되는 집?” 1월 1일 모 일간지 일면 헤드라인은 이러했다. 2000원에 주인 되는 집! 주거난에 허덕이는 이들을 단박에 유혹하는 이 제목은 서울 용산2가 해방촌에 있는 대안적 주거공동체 ‘빈집’을 소개한 기사였다. 빈집은 하루 2,000원 이상의 분담금만 내면 누구나 머물 수 있는 일종의 게스츠하우스(Guests’ house)다. 하루를 묵는 것도 몇 달을 머무는 것도 자유다. 다만 각자 주인으로서 모든 것을 스스로 해나가면서 공동의 삶을 꾸려간다. 이 기사가 나간 후 많은 이들이 빈집의 문을 두드렸다. 언론에 소개된 맛집이 한바탕 몸살을 앓듯, 빈집은 1월 내내 호기심 인파로 휘청했다. 하지만 무슨 까닭인지 ‘신문 보고 찾아왔던’ 손님들은 오래지 않아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박효진 의학박사 - 교수실 불 끄고 사색의 문 여는 '시인의사' 하얀 가운에 파란 보타이를 즐겨하는 박효진 선생. 겉모습뿐이 아니다. 그의 가슴에도 푸른 감수성이 나비처럼 팔랑인다. 가을날 빗소리, 아내의 도시락 등 계절의 변화와 대지의 축복, 그리고 일상의 소소함을 시로 써 책으로 엮었다. 여전한 소년 같은 웃음을 간직한 농부이자 시인이자 의사로 사는 그는 “풍요는 갖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이라며 행복비결을 터놓는다. “자연을 음미하고 인생을 찬미하다” ‘흰눈 내리는 이곳으로 어서 오세요./ 머리로, 가슴으로, 마음으로 흰 눈 함께 맞아봐요. / 아침만 해도 각색이었을 주차장 차들도 / 어느새 하얀 옷으로 갈아입고 있고....(중략) 온 세상 하얀 이곳은/ 어젯밤 속상했던 일까지 다 씻어주는 이곳 / 겨울 음악 함께 들으며 흰눈 추억 회상하고 그대와 함께라면 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