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가운에 파란 보타이를 즐겨하는 박효진 선생. 겉모습뿐이 아니다. 그의 가슴에도 푸른 감수성이 나비처럼 팔랑인다. 가을날 빗소리, 아내의 도시락 등 계절의 변화와 대지의 축복, 그리고 일상의 소소함을 시로 써 책으로 엮었다. 여전한 소년 같은 웃음을 간직한 농부이자 시인이자 의사로 사는 그는 “풍요는 갖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이라며 행복비결을 터놓는다.
“자연을 음미하고 인생을 찬미하다”
‘흰눈 내리는 이곳으로 어서 오세요./ 머리로, 가슴으로, 마음으로 흰 눈 함께 맞아봐요. / 아침만 해도 각색이었을 주차장 차들도 / 어느새 하얀 옷으로 갈아입고 있고....(중략) 온 세상 하얀 이곳은/ 어젯밤 속상했던 일까지 다 씻어주는 이곳 / 겨울 음악 함께 들으며 흰눈 추억 회상하고 그대와 함께라면 더욱 더 아름다고 행복할,/ 이곳으로 어서 오세요.’ (흰 눈의 유혹)
눈길 위에 서서 우리를 부르는 그의 너울너울 손짓이 보이는 듯하다. 겨울날 세상을 다 덮는 푸짐한 눈도 그에게는 일상의 아픔을 덮어주는 하얀 반창고이자 축제의 무대가 되어 근사한 시 한편으로 탄생한다.
“가을에는 흙에서 올라오는 비의 향기가 좋아 ‘가을비 향기’라는 시를 썼죠. 또 빗소리는 땅, 지붕, 나무 등 떨어지는 부분에 따라 소리가 전부 다르거든요. 빗물 떨어지는 소리가 오케스트라처럼 아름답게 들려 ‘가을 빗소리’라는 시를 짓고요. 그런 식으로 일상에서 느끼는 자연과 사랑과 영혼의 느낌을 한 줄 한 줄 받아 적습니다. 쓰다 보면 시가 되는 거예요.”
가운 주머니에 시집 넣고 다니던 의사, 시인되다
온화한 표정에 섬세한 감성을 지닌 박효진 선생. 왠지 소싯적부터 교내외 백일장을 휩쓴 문학 소년이 아니었을까 싶지만, 그가 시를 처음 접하게 된 계기는 의사가 된 다음이다. 의사가 되니 너무 바빠서 책 한 줄 읽을 여유시간이 없더란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의사 가운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얇은 책’인 시집을 보기 시작했다. 내용이 짧아 틈틈이 읽기 좋았고 책장을 덮고 나면 울림도 오래갔다. 그렇게 시에 매료되어가던 어느 날 ‘나도 한 번 써볼까’ 싶어 한 편 두 편 쓰다 보니 시 쓰는 사람, ‘시인’이 된 것이다.
시 외에도 드보르작에 대한 단상,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다녀와서 쓴 기행문, 아이들을 위한 동화, 대장내시경을 위한 미학 에세이 등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글을 쓴다. 지난 이십 여 년 간 스쳐지나가는 삶의 한 자락이 아쉬워 붙잡아 쓰기 시작한 글들을 모아 2005년 <추억으로의 여행>이라는 책으로 엮었다. 요즘도 두 달에 한두 편은 시를 쓴다는 그에게 물었다. 시인이 된 후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빛깔인지.
“주변의 것들을 생각 없이 보면 무심히 지나치게 되죠. 그런데 시를 쓴 다음부터는 작은 사물, 작은 생물도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자세히 관찰하게 돼요. 지난여름에는 아내와 신사동 가로수길을 걷는데 나무 그늘 아래로 피하다보니까 옛날에 시냇물 징검다리 걷던 생각이 나더라고요. 어린 시절 닫혀있 추억이 열리는 경험을 했지요. 감성이 복원된다고 할까요.”
또한 여행을 가고 영화와 공연을 보고 산책을 하더라도 매사 되새겨 곱씹는 습관이 생겼다고 한다. 시인에게 삶은 그 자체로 그윽한 음미의 대상이 되더라는 것.
고구마, 밤, 낙엽, 솔방울, 일상의 풍요를 나눈다
박효진 선생은 경기도 용인에 집을 짓고 산다. 텃밭을 일구어 고구마를 심었다. 정원에 밤나무도 있다. 가을이면 고구마와 밤을 추수해서 지인들과 나눠 먹는다. 동글동글 윤기 흐르고 맛 좋고 빛깔 좋은 무공해 밤을 한보따리 가져와 내과 교수실 한켠에 수북이 쌓아둔다. 그러면 동료들이 오며가며 먹을 만큼 가져간다.
뿐 아니다. 빨간 단풍잎을 주워 자작시와 같이 코팅해서 책갈피를 만든다. 집 마당에 떨어진 솔방울에 하얀 스프레이를 뿌려서 크리스마스 장식품으로 리폼한다. 그것들 역시 교수실 책상서랍에 고이 넣어두었다가 지인들에게 하나씩 선물한다. 전원에 파묻혀 사는 시인이 되고부터는 마치 잔에 물이 차면 넘치듯이 물질적 정신적 풍요가 자연스럽게 주위로 흘러가는 것이다. 무엇보다 의사로서 환자를 대하는 태도도 한결 다정하고 교수로서 학문적 열정도 커졌다고 고백한다.
“진료할 때는 환자의 입장에서 배겨하려고 노력합니다. 병에 대해서는 그림을 그려서 자세히 설명해드리지요. 어떤 환자는 그 그림을 퇴원하고 액자로 걸어 놓았다고 하더라고요. 회진할 때도 바지주머니에 손을 넣어 덥힙니다. 차가운 손으로 배를 만지면 환자가 깜짝 놀라지 않겠어요.”
환자에 대한 배려심, 학문적 열정 갖춘 ‘의료계 김장훈’
마치 신생아를 돌보는 엄마의 마음 같은 세심함은 학문적 지식과 맞물려 더욱 빛을 발한다. 박효진 선생은 소화기내과 분야의 권위자로서 교수실 불을 가장 마지막에 끄는 사람이기도 하다. 주말에 자연의 품에서 재충전을 확실히 해주니 주중에는 연구와 진료에 더욱 집중이 잘된다고 귀띔한다. 그는 또한 환자에게 촌지를 받지 않는다는 소신을 지킨다. 환자가 극구 줄 경우에는 이웃돕기 성금으로 쓰겠다는 양해를 구하고 받는데, 그렇게 꾸준히 기부를 하다 보니 요즘은 ‘의료계의 김장훈’으로 불린다.
의사에서, 시인으로, 농부로, 기부천사로. 한 해 한 해 시간이 흐를수록 별명도 늘고 웃음도 늘고 연구업적도 늘고 세상에 보이는 어여쁜 것들도 느는 그는 누구보다 행복하다. 박효진 선생의 충만한 삶의 기록은 오래지 않아 ‘내 마음의 행로’ 라는 두 번째 책으로 발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