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22)은 겨울방학 동안 영어 학원에 다니고 있다. 10시부터 12시까지 한 강좌를 듣는다. 학원이 끝나면 12시부터 4시까지 카페에서 세미나 관련 책 읽기나 글쓰기 등 숙제를 한다. 어떤 날은 아르바이트를 한다. 대개 오후 다섯 시 반 즈음 귀가한다. 집에서 퇴근하는 엄마를 기다렸다가 같이 저녁밥 해먹고, 드라마 한 편 보고, 그리고 영어단어 좀 외우려고 책을 뒤적거리다가 잠들곤 한다.
단조로운 하루 일과 중 엄마랑 밥해 먹을 때가 제일 좋다. 그 시간이 행복하다. 사실 영어공부는 마지못해 한다. 영어의 필요성을 못 느꼈다. 잘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았으나 대학에서 영어를 못하니까 불이익이 많다. 영어로 하는 수업이 늘어나서 점점 못 듣는 강의가 많아진다. 토잌 점수가 낮으면 졸업 못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또 새 학기에 취업후학자금상환제가 실시되면 학점이 4.5점 만점에 3점 이하일 경우 등록금 대출 자격이 없다는 안내문을 며칠 전에 받았다. 가슴 철렁한 벼락같은 통보였다. 1등만 대출해주는 이 더러운 세상!
매달 '이자통지서' 볼 때마다 놀란다
“작년에 입학하면서 450만원을 대출 받았어요. 대출서류 쓸 때 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 내 나이 스무 살에 벌써부터 빚쟁이가 되어야 하나. 제대로 된 돈 한번 벌어본 적 없는데 하는 생각도 들고요. 빚을 진다는 게 신경 쓰였죠. 등록금 대출 안 받는 애들이 너무너무 부러웠어요. 하지만 엄마한테 등록금을 내달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잖아요. 요즘에 평균수명 높아지는데 엄마가 노후자금 털어서 우리한테 돈을 다 쓰면 내가 엄마의 노후를 책임질 수 있느냐, 그건 자신 없었어요. 88만원 세대가 그 돈 벌어서 엄마한테 생활비를 드리지도 못할 테고.”
2학기에도 대출 받았다. 매 학기마다 원금을 언제까지 상환하겠다는 기한을 정하고, 매달 이자를 낸다. 처음엔 이자가 2만 원대여서 부담이 없다. 하지만 한번이라도 이자를 안내면 블랙리스트에 오르고 나중엔 신용불량자가 된다. 그래서 이자 내려고 아르바이트 하는 친구들도 있다. 4년제 일반 대학생을 기준으로, 대학에서 공부하기 위해 일인당 평균 3200만 원 가량의 빚을 떠안는 셈이다. 여기다 이자가 복리 계산되니까 졸업할 즈음에는 대출금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버린다.
“4년 뒤를 생각하면 덜컥 겁이 나죠. 또 하루하루 바빠서 빚진 사실을 잊고 지내다가도 매달 이자 내라는 통지서가 오면 깜짝 놀라요. 작년 여름방학 때는한 푼이라도 모아서 대출금 갚으려고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했어요. 시급 4천원 받는 카페였는데 새벽 3시까지 일해도 밥도 안 주고 택시비도 안 주더라고요.”
노동조건이 열악했다. 그나마 그런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늘 있는 게 아니다. 커피전문점은 바리스타 교육 받은 사람들이 점령했고, 과외 사이트 가보면 거의 ‘전쟁’수준이다. 대학원생이나 유학파가 넘쳐나니 대학생에겐 기회조차 없다. 평범한 대학생이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는 음식점, 피시방 서빙이나 텔레마케터 정도다.
그럴수록 머리띠․ 허리띠․ 신발끈을 동시에 ‘질끈’ 동여매는 수밖에 없다. 어떤 친구는 새벽 5시에 영어 학원 갔다가 학교에 와서 수업을 듣고 평일 저녁에는 아웃백스테이크에서, 주말에는 고깃집에서 일한다. 요즘 대학생들에게 ‘주독야경’은 기본이다. 그런데 그렇게 아등바등 돈을 모으면, 또 막상 갈등한다. 이 돈으로 등록금 갚긴 갚아야 할 텐데, 여행도 가고 싶고, 학원에서 강의도 듣고 싶고, 노트북을 사고 싶기도 하여 번뇌에 휩싸인다. 한참 배움의 열정을 지필 나이에 시급제 노동자 겸직으로 살아가는 가난한 청춘의 가슴은 이래저래 까맣게 타들어간다.
“대학에 와서 제 또래 애들이 참 철없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또 어떤 측면에서는 그들의 대단한 생활력에 감탄해요. 수업 끝나고 알바 하러 달려가는 애들 보면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쟤들은 철없는 게 아니라 위대한 거다!”
로드스쿨러, 큰 배움(大學)을 원하다
긴 생머리에 복숭아빛 뺨이 발그레한 스물두 살의 금강산은 ‘훗날 자식을 낳으면 남자든 여자든 이름은 무조건 금강산’이라고 정해 놓은 ‘운동권’ 부모에게 태어났다. 이름도 아름다워 금강이라지만, 그건 노래 가사일 뿐이고. 금강산은 성장기 내내 이름으로 인한 상처와 고민에서 허우적거렸다. 허나 이름에 저항하며 닮아간 것일까. 성미산마을에서 공동육아를 통해 유년시절을 보낸 금강산은 날이 갈수록 눈매 초롱하고 기상 넘치는 강건한 딸로 자랐다.
중학생이 되고서도 삶은 활기찼다. 마을사람들과 어울리며 온갖 재미난 일을 벌이고 주말마다 농장을 찾는 등 “밖으로 돌았다.” 성적이 좋을 리 없었다. 결국 중학교 2학년 말 엄마의 권유로 자퇴했다. 기숙형 대안학교에 잠깐 다니다가 성미산학교로 옮겼고, 당시 성미산학교에 고등 과정이 없어서 교환학생으로 하자센터에 들어갔다. 3년 동안 인문학 관련 자치활동을 했다. 2006년 고정희청소년문학상에서 문광부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기획하고 글 쓰는 일에 흥미를 느끼며 기자를 꿈꿨다. 백일장 입상실적으로 인하대학교 언론정보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을 꼭 가야하는가 엄마랑 대화를 많이 했어요. 대학을 택한 이유는 개인적으로 성미산마을의 끈끈한 커뮤니티를 좀 벗어나고 싶었어요. 다른 세상의 언어도 접하고 사람들과 관계 맺는 방식도 배우고, 제 한계를 확장시키고 싶었죠. 그런 측면에서 저에게 대학은 되게 신기한 공간이었어요. 내 또래 문화가 이런 거구나 느끼고. 대학에 온 걸 후회하진 않아요.”
학점노예 되기 싫지만 불안하다
그렇다고 대학에 애정이 큰 것도 아니다. 신입생 시절 내내 외부활동으로 바빴다. 고글리 친구들과 ‘또 하나의 문화’에서 <로드스쿨러>라는 책을 펴냈다. 고글리는 ‘고정희청소년문학상에서 만나 글도 쓰고 문화 작업도 하는 이들의 마을(里)’ 줄임말이다. 일주일에 한 차례씩 만나서 여행하고 책 읽고 글 쓰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친다. 학교 수업과 고글리 활동이 겹치면 자연스레 학교를 빠졌다. 더 재밌으니까. 그런데 다른 일로 학과공부에 소홀하면 친구와 선배들이 이구동성으로 걱정한다. “너 앞으로 어떻게 살려고 그러니”
주위의 우려와 달리 1학기엔 학점이 잘 나왔다. 만만한 대학생활이라며 내심 안도했다. 그런데 2학기 성적이 안 좋았다. 서서히 학점경쟁도, 등록금 문제도 남의 일만이 아니었다. 사실, 좋은 강의 듣고 좋은 사람 만나는 대학생활을 꿈꿨지 점수에 연연하는 학점의 노예가 되고 싶진 않았는데 어느새 등 뒤로 긴 불안의 그림자를 끌고 다니게 됐다.
“학점이 상대평가로 줄 세우는 방식이잖아요. 너도나도 열심히 해도 누군가는 C학점 D학점을 받아야 해요. 그러면 취직 힘든 건 당연하고 등록금 대출이 어려우니까 공부를 포기해야하는 구조에요. 기숙사는 거의 4점대만 들어가니까 지방에서 온 친구들은 학점이 안 좋으면 다음 학기에 휴학하고 집에 내려가서 방값 마련해서 복학해야 하는 실정이죠. 주위에서 누구 선배 취직 했다더라 누구 못 했다더라 그런 말 돌면 남의 일 같지 않고 심란하죠.”
대학이 ‘기업연수원’으로 전락했다는 것을 피부로 실감키도 한다. “한 번은 문화관련 수업을 듣는데 고학번 선배들이 많았어요. 교수님이 자연스럽게 대기업 입사하는 법, 대기업 연수받을 때 생기는 일의 대처방법을 가르쳐주시더라고요. 신체검사에서 소수지만 남자는 간, 여자는 폐 때문에 떨어지니까 여학생들 담배피면 안 된다고 당부하셨죠. 어이가 없었어요. 이게 문화랑 무슨 상관이고 내가 왜 여기서 왜 이 수업을 듣고 있는지.”
남성중심적 총학생회 불편하다
일찌감치 제도교육을 벗어나 ‘길’에서 공부한 로드스쿨러 출신 금강산. 사회의 억압적 구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단련된 신체이지만 대학에서 운동권으로 살지는 않는다. 그나마 시사토론 학회에서 1년간 활동하던 것도 그만뒀다. 사람들이 토론을 열심히 하지 않는 것도 불만이고 인간관계, 선후배 관계에 끼여 감정 소모하는 것도 피곤했다.
“대학에서 뭔가 해볼까도 싶지만, 운동권의 남성중심적인 문화가 싫었어요. 고학번 남자 선배들이 크게 목소리 내고, 여자들은 집회 갈 때 상자에 물건을 챙기거나 대자보에 글씨 쓰는 등 뒷바라지 수준이잖아요. 그런 조직에 끼고 싶지 않은 거죠. 언쟁할 때 선배들이 강요하듯이 분위기 제압하는 것도 불편해요. 등록금 문제만 해도 정말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인데, 본관 점거하고 책상 부수고 삭발하고 수업 거부하는 ‘학생회’ 방식에는 껄끄러운 부분이 있어요.”
2010년을 사는 젊은이들에게 80년대식 386세대의 거칠고 진부한 싸움은 통하지 않는다. 요즘 대학생들은 사회적인 큰 이슈보다는 자기의 욕망과 필요에 따라 움직인다. 금강산은 그게 꼭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요즘 애들’은 사랑도 꿈도 열정도 없다, 이기적이다, 이러면 안 된다는 어른들의 말에 한편으로 공감하지만 한편으론 그런 일방적 강요가 불편하다. 우리에겐 우리 세대 고유의 문화가 있으므로.
“성공회대가 등록금 투쟁 때 수업거부 방식으로 싸웠는데 전혀 반응이 없었대요. 그랬던 이유 중에 하나는 학생들이 참여 의지를 낼 수 없는 상황이었겠죠. 우리끼리 재밌게 노는 방식이 필요해요. 본관 점거하고 눈물 흘리며 삭발하고 바리게이트 쌓는 집회가 아니라 20대의 문화를 향유하는 즐거운 투쟁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광우병 촛불집회 초기에 촛불소녀들이 발랄하게 의견을 내고 저항했던 것처럼요.”
벗들과 ‘판’ 벌려 재밌게 싸울 거다
3월이면 신입생의 옷을 벗고 선배가 되는 금강산. 점차 대학생활에 익숙해지면서 문제의식도 동시에 싹튼다. 학교 돌아가는 일에 의문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재학생 만팔 천 명에 한 학기 평균 등록금이 300만원 후반 대다. 그 많은 돈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학교 시설은 여전히 열악하다. 건물은 비좁고 집기는 낡았다. 겨울엔 보일러, 여름엔 에어컨 안 틀어준다. 학회활동비 지원이 안 돼서 작년엔 학생들이 5만원씩 두 번 내서 충당했다.
“학교는 오직 학교를 ‘상품화’하기에만 여념이 없어요. 학교 홍보가 돼야 대기업 취직률이 높아지고 그래야 학교의 사회적 입지도 올라가니까, 돈을 학생들한테 쓰기보다는 학교 홍보에 쓰기 바쁜 거죠. 그래놓고 학교 측에선 돈 없다 재정 안 좋다고 등록금을 올리는 식이죠. 등록금이 비싸면 깎아줘야지 이자 받고 빌려주잖아요. 그나마도 앞으로 내신 5등급, 6등급은 입학할 때 등록금 대출 못 받는다던데, 성적 나쁘면 공부도 하지 말라는 건지 뭔지 답답해요.”
금강산은 요즘 친구의 블로그에서 등록금 문제를 논의 중이다. ‘취업후학자금상환제’가 정말 학생들을 구제하기 위한 제도인지, 나중에 대출금을 안(못) 갚을 경우 입게 될 규정들, 이를 테면 과태료 징수, 외국 출입 제한, 강제 차압 등의 규정이 어떤 문제가 있는지 논의한다. 가난한 사람은 점점 공부하기 힘들어지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한탄한다. 고작 스무살 나이에 청운의 꿈 대신 빚쟁이 낙인과 취업 부담을 안고 시작하는 대학생활의 서글픔과 억울함에 대해 푸념한다.
“이자율을 내리라던가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라든가, 성적에 무관하게 대출해달라든가 등등 우리의 요구를 몇 가지 목표로 구체화해서 싸워야할 것 같아요. 우선은 우리 문제에 대해 더 공부하고 토론하고 논의를 모아야죠. 그런 다음에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판’을 만드는 거죠. 아직은 힘이 약하니까 어느 정도 세력을 키우면 올해 정도에 ‘즐거운 투쟁’을 시작해볼 수 있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만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