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 탄핵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마다 개인이자 공인인 연예인들의 정치적 발언을 두고 과연 타당한가에 대해 논란이 인다. 연예인은 얼굴이 알려져 일거수일투족 대중의 관심을 받고 사회적 파급력이 크므로 자중해야한다는 반대의견과, 그만큼 우리사회에 건강한 에너지를 불어넣을 수 있는 유리한 위치이므로 오히려 공인으로서 적극적이고 책임감 있는 태도를 보여야한다는 찬성의견이 맞서 왔다. 논란의 와중에도 연예인, 문화예술인 등 공인의 정치적 발언은 꾸준히 행해졌다.
유준상, 추신수 “정치인, 경찰 부끄럽다”
지난 8일에도 반가운 기사가 연달아 나왔다. 배우 유준상 씨가 대검찰청 홈페이지에 ‘너무너무 화가납니다. 검찰청선생님들 보고 계신가요’ 라는 글을 직접 썼다는 내용이다. 노무현대통령 대한문 앞 분향소 강제철거에 울분을 참지 못하고 올린 것. ‘저는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시민입니다.’라고 운을 뗀 그는 ‘정치하시는 분들 참 부끄럽다’라고 강도 높게 검찰을 비판하고 반성과 사과를 요구하며 마무리했다. 또 하나는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추신수(27·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노무현 대통령 서거 소식에 큰 충격을 받고 국민장 기간 중 마음속으로 검은 리본을 달고 경기를 했다는 기사다. 또한 그는 ‘경찰차가 시청 앞 광장을 가로막고 있는 모습에선 지금이 2009년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이곳의 한 방송사에서 진기하게 둘러싸고 있는 시청 앞 경찰차들을 보여주는데 어찌나 낯 뜨겁고 부끄러웠는지 모른다’며 경찰의 대응을 비판했다.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타인의 아픔에 눈물짓고 불의에 대해 분노하고 당당히 행동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반갑고 따뜻하다. 노무현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그간 ‘공인’이라는 이유로 억제되었던 연예인, 문화예술인의 의견개진이 조금씩 활발해지는 것 같다. 이는 ‘공인’은 정치적 중립이어야 한다는 낡은 패러다임을 벗어나는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본다.
윤도현, 봉준호, 박찬욱, 문소리, 이승환...'공인도 말한다' 일찍이 앞장 선 이들이 있다. 가수 신해철은 노무현대통령 후보 지지연설까지 나섰고, 가수 윤도현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직후 국회에서 수상한 트로피를 반납했다. 박찬욱 감독이나 봉준호 감독은 선거 때마다 공개적으로 진보정당의 지지를 선언했다. 영화배우 문소리는 지난 대선에서 부친상을 당한 진보신당 심상정 후보를 대신해서 지역구에 매일 출근하다시피하며 선거운동에 나섰고, 2008년 촛불집회에서는 광화문 연단에 오르기도 했다. 노무현대통령 서거에 대해서도 문근영 등 많은 연예인들이 미니홈피에 근조리본을 달았고 유희열, 박용하, 박찬욱 감독 등은 직접 조문을 다녀갔다.
최근 이승환은 용산참사 유가족 돕기 콘서트에 참가했다. 공연 소식을 듣고 본인이 먼저 연락해 참여 의사를 밝혔다. 데뷔 이후 정치·사회 문제에 크게 참여해온 뮤지션이 아니었던 그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난 정치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고 인형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며 “난세가 사람을 철들게 만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승환의 말을 더 들어보자.
“일단 너무 슬펐다는 거예요. 계속 되새기면서 남들보다 잊지 않았다고 할까. 인터넷에서 소식을 듣고 먼저 연락을 취해서 하게 됐는데 주위 분들이 걱정을 많이 하시더라구요. 근데 전 걱정한다는 자체가 너무 웃긴 거예요. 우리는 분명 어려운 이웃을 도와야 한다고 배우면서 커왔는데 ‘그 공연이 이웃을 돕는 것 말고 무슨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니까 그 현실이 참 웃기더라구요.”
그의 말이 옳다. 그들은 공인이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슬픔과 분노를 표시를 할 권리를 갖는다. 고로, 공인의 (정치적)의견 개진은 ‘자유’로워져야 한다기보다 ‘자연’스러워져야 하는 게 맞다. 봉준호 감독은 예전의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치적 중립논쟁은 공인에 대한 잘못된 사회인식에 근거하는 것이라고. “과거부터 대중적으로 알려진 공인은 대중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으니 그러한 신분을 망각하지 말고 근신해야 한다는 식의 시각이 있었다. 하지만 독립운동 하는 일도 아닌데 공인에게 그러한 기계적 중립을 요구할 이유도 명분도 없다. 또 일반 대중이 공인의 말 한마디에 휘둘린다고 생각하는 것도 단순한 발상이다.”
특히나 연예계 종사자나 예술인은 그 누구보다 감성이 풍부하고 민감하다. 인간의 보편정서에 대한 공감능력과 세상은 이래야한다는 자기만의 가늠이 있어야 훌륭한 연예인이고 예술가다. 자신의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자연스럽게 느끼는 대로, 본대로, 분노하는 대로, 울분을 토해내고 생각을 말하는 것이 훨씬 그들다운 일이다. '달리는 기차에 중립은 없다'는 말도 있듯이 가슴 뜨거운 자는 결코 중립일 수 없다.
‘중립’은 이데올로기다 그렇다면 중립을 지키라는 해괴한 논리가 어디서부터 나왔을까. 이는 마치 '종교와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말처럼 정치담론 자체를 막아버리려는 군사 독재 정권의 속보이는 의도에 기원한다. 인간은 생각을 말하는 순간 자신을 알게 된다. 질문하면 생각하고 생각하면 깨어나고,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판단이 선다. 그러면서 토론문화가 정착되고 ‘상식’이 형성되면 시민사회가 성숙하게 되는 것이다. ‘각성한 시민이 많아지는 것’은 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점이다. 촛불 이후 소통의 공간 ‘광장’을 두려워해 차벽을 쌓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민들 사이 정치적 언로를 막는 ‘관념의 차벽’을 쌓은 것이 바로 ‘정치적 중립’이다.
중립의 이데올로기에 갇혀 수많은 이들이 수수방관하는 동안 독재정권은 거리낌 없이 권력의 쇠방망이를 흔들면서 부를 축적하고 인권을 짓밟고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연예인은 오직 자신의 꼭두각시로만 삼고자했다. 결국 대중의 각성과 저항을 두려워했던 저들과, 악을 악이라고 말함으로써 입게 될 손실을 피하고자 겹겹이 보호막을 친 보신주의자들이 '정치적 중립' 논리의 확장에 기여했다. 이후 (정치적) ‘중립’이란 말 스스로가 권위를 획득하고 진리인양 행세했다.
진실한 사람이 많아지면 좋은 세상 온다
공인부터 평범한 시민까지, 이제 낡은 ‘중립의 외투’를 벗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으로 이희아씨 얘기를 나누고 싶다. 얼마 전 봉하마을 노무현대통령 영전에서 네손가락피아니스트 이희아씨가 통곡하는 장면이 언론에 소개됐다. 이희아씨는 북한 장애인을 위해 휠체어보내기도 하는 등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고 정치적 입장표명에 적극적인 건강한 젊은이로 성장했다. 작년 촛불집회 때도 이명박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국민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달라’는 내용이었다.
이희아씨를 취재하던 필자는, 그즈음 촛불탄압국면이라 염려스러운 마음에 ‘혹시나 불이익을 받을 지도 모르는데 기사에 그대로 써도 좋은가?’ 물었다. ‘당연히 괜찮다’고 말했다. 이희아씨를 키운 위대한 ‘마더’인 어머님 우갑선씨(사진에 희아씨 왼쪽 파란상의)가 옆에서 말씀하셨다. “괜찮다. 희아야. 자기 일 열심히 하고 진실되게 살면 된다.” 그 얘길 듣는 순간 전율이 일었다. 답은 쉽다. 희아씨처럼 소신껏 진실 되게 사는 사람이 많아질 때 진실한 세상,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