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다. (요지는 이렇다. 전교조의 한 교사가 수배중인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 도피처를 제공해준다. 8년간 알고 지낸 지인의 요청이어서 거절하기 어려웠단다. 이 과정에서 함께 동행 한 민주노총의 한 간부가 그 교사의 집을 알게 됐다. 이후에 찾아가 저지른 소행이다.)
그 사건이 공론화된 날부터 한겨레신문에는 대문짝만하게 관련기사들이 지면을 장식했다. 조선보다 세게 나간 측면도 있었다. '봐주기'나 '감싸기' 없이 강도 높은 비판의 날을 세운 ‘한겨례’가 듬직했다. 냉철한 비판과 자기성찰은 진보진영에게 절실한 시점이다. 그러면서도 속상하고 씁쓸하고, 정말이지 보고 싶지 않았다. 안 그래도 부글부글 끌탕을 앓을 일 투성인데 알게되면 더 괴로울 것 같기도 했거니와, 사실 ‘안 봐도 비디오’ 라는 마음이 컸다.
냉소는 나쁘다. 누구 말대로 냉소는 가장 손쉬운 선택이다. 냉소가 세상을 바꾸는 일은 없다. 맞다. 그런데 난 냉소보다 동정한다. 사실 오빠들이 불쌍하다. 정확히 수컷이 가엾다. 갖고 있는 감정이 너무 적다. - 감정이야 있겠지만 표현하는 말을 사용하지 않다가 잃어버린 듯 보인다 - 오빠들의 가용 어휘는 '뜬구름 시리즈'다. 우파남성이 성공과 출세 돈 따위라면 좌파남성은 조국과 통일, 민주주의 뭐 이런 개 폼 잡는 것들이다. 좌우 공통적으로는 주식과 섹스판타지의 가련한 노예들이고.
일부 좌파남성들을 보라. 입으로는 민족 민주 인간화를 외쳐도 삶은 누구보다 권위주의적이고 자본주의적이다. 먹는 문제, 윤리적 소비, 문화주권, 호칭문제, 에너지문제 등 일상의 소소한 것들에 대한 고민이 없다. 정작 이런 게 우리의 사고를 형성하고 삶을 이루는 것인데도 말이다. 노동자의 억압과 착취는 말해도 아내의 억압과 착취에는 무관심하다. 성명서에는 시를 쓰면서도 삶에는 침을 뱉어대는 이들. 앎과 삶의 완벽한 분리.
물론 훌륭한 오빠들도 많지만 진보마초들을 만니기란 어렵지 않다. 그들이 따로 교육받는 것이 아니라, 마초들이 양산되는 우리사회 남성중심주의 메커니즘 안에 빨간 오빠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린감수성, 인권감수성은 먼나라 얘기다. 더더군다나 평등감수성이 키워질 기회가 거의 없다. 가부장 사회에서 자랐기에 그렇고, 특히 진보단체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조직보위론’으로 사건을 무마했으니 더 그랬다. 뼈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자성'의 기회를 박탈당한 셈이다. 그러니 20년 째 투쟁현장에서는 더 높이 솟은, 더 큰 깃발을 세울 줄 밖에 모른다. 남근주의에 사로잡힌 딱딱한 신체들. 그들의 상상력으로는 집회에 노란 풍선을 달고 나올 생각을 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민주노총은 성폭력 사건 자체로도 기가 막힌데, 무마 은폐 축소 시도까지 했다. 2차 3차 가해가 일어나는 꼴을 보니 어째 조직 쇄신의 길이 멀어만 보인다. 대국민사과는 했는데, 피해자에게 진심어린 사과는 했나 모르겠다. 설마 재수 없어서 일이 커졌다고 울분을 토하진 않겠지. 내부외부 인사로 구성된 진상규명위원회가 조직되어 2주 안에 조사결과를 발표한다니, 기다려 보자.
한편, 민주노총의 행방에 대한 우려의 소리는 높지만 피해자의 안위와 인권에 대해서는 여론이 무심하다. 피해자보호 문제도 엄격한 대책을 만들어 놓아야한다. 벌써 국정원에서 보수언론에 피해자 연락처와 주소 등 신상을 알려주어 피해자가 시달림을 당하고 있다고 한다. 인권은커녕 상식이 없는 세상이 됐다. 원래 어떤 사건이 생기면 그 사건보다 2차, 3차로 일어나는 일들이 더 잔인한 법이다. 피해자의 상처가 너무 깊어 보인다. 용산참사로 부모 잃은 것도 억울한데 구속까지 당하는 유가족을 봐도 그렇고, 힘없고 약한 자들의 이중삼중 억압의 굴레를 어찌할 것인가.
같이 날뛰는 조중동도 참 가관이다. 피해자에게 전화와 문자로 '같이 있을 때 어땠느냐'고 묻고 집으로 찾아가는 등 막장취재에 열을 올린다고 한다. 최연희 한나라당 의원 성폭행 사건 때는 잠잠하던 조선일보는 ‘섹스노총’이라는 원색적인 표현으로 자기의 천박한 수준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어지간히 급했던 모양이다. 하긴 그들이 바라는 건 민주노총 쇄신이 아니라 말살일 테니까 당연한 짓거리다.
이번 사건으로 여러 단체에서 논평과 성명서를 발표했다. 찬찬히 읽어보았는데, '한국여성단체연합'에서 발표한 성명서가 제일 알찼다. 일상속의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처벌과 사과도 좋지만 ‘아래로부터의 조직의 체질개선’에 힘써야 한다. 안 그러면 이런 일 또 반복된다. 다음은 성명서의 일부이다.
조직 내 성차별, 성폭력 문화의 문제는 핵심 간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조합원이 경험을 나누며 감수성을 함양하고, 일상 속의 대책을 함께 논의해야 하는 문제다. 핵심 간부들의 변화가 전 조직적 변화의 기본이고 출발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아래로부터의’ 다양한 열린 토론과 경험 나눔이 없다면 이 역시 일방적인 결의와 하달이 될 수 있으며, 이것은 일상의 감수성이 변화해야 하는 문제에서는 무기력한 방식이 될 것이라 우려된다....
'성폭력’을 말이 필요 없는 천인공노할 비도덕적 일이라 간주하고 가해자만 격리하는 방식은 차라리 간편하지만, 그 속에 자리 잡은 일상의 문화를 면면히 성찰하고 재구성하는 일은 지난하고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성폭력은 이 과정을 통해서만 줄어들고 바뀔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