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대통령으로 뽑힌 날은 좋아서 울었고, 그가 탄핵당한 날은 분해서 울었고, 그가 떠나는 날은 슬퍼서 울었다. 몇 년간격으로 한 남자를 향해 눈물 한바가지씩 흘리면서도 적잖이 민망하다. 누가 '노무현 좋아해?' 라고 물으면 '응'이라고 답했지만, '나 노무현 좋아해'라고 먼저 떠든 적 없다. 그의 집권시 이라크파병과 FTA체결, 비정규직 양산할 때는 정책에 반대도 했다. 하지만 나에게 그는 완벽한 대통령이 아니라 정직한 대통령이었다. 현명한 판단을 위해 고뇌하고 더 껴안고 가고자 먼저 다가오는 진솔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를 존중했고 사사건건 찬동은 못해도 신뢰와 지지의 끈을 놓지 않았다.
세 차례의 커다란 슬픔사태를 겪고 나서야 알았다. 내게 그가 소중하다면, 높은 인품과 도덕성과 탁월한 능력과 기상을 갖춘 우리의 영도자라서가 아니라, 무방비상태에서 눈물샘을 자극하는 힘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가 나의 눈물샘을 터뜨렸다는 것은 곧 내 삶의 귀한 가치들을 자극했다는 얘기다. 상고출신 대통령의 탄생 과정을 통해 사람만이 '희망'임을 보여주었고, 탄핵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엄청난 '절망'에 빠뜨렸고, 바보 대통령이 떠나는 날은 수십만 인파 속에서는 눈물에 씻긴 순결한 '사랑'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의 도도한 삶 자체가 날 울렸다.
'사람사는 세상'이라는 희망의 집을 지었다 부셨다를 반복하던 단단한 고집, 괴로워하고 미안해할 줄 알았던 선한 마음결의 소유자. 대한민국 정치권에 20년을 몸담으면서도 인간의 수치심과 존엄성을 잃지 않았던 사람. 평범한 사람 사이에 섞여 웃을 때 더 인간미가 살아나는 이장님 같은 구수함으로, 묵묵히 자기만의 길을 걸어간 멋진 한 사람. 오랜 시간 시대정신을 공유한 정든 그 분. 가시는 길 나가 봐야 했다. 사람들 틈에 거의 공중부양되다시피 매달려, 커다란 전광판으로 하늘의 절반을 덮는 큰 생전의 모습들을 본다. 추모객의 눈물 범벅된 얼굴과 번갈아 본다.
눈물이 거대한 강물을 이룬다. 훈훈한 입김과 뜨거운 눈물의 감옥. 아늑한 공기에 마음까지 더워진다. 남녀노소의 눈물 중에 가장 슬픈 건 늙은 아저씨의 눈물. 구릿빛 주름을 타고 흐르는 가난한 눈물이다. 바다로 나아가기를 포기하지 않는 눈물의 강물, 슬픔의 인산인해에 파묻혀 있다가 풀려났다. 개운했다. 홀가분하다. 성남에서부터 약국 문 닫고 달려온 친구와 시청 부근을 맴돌며 행진하고 대한문 분양소 걸개그림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길바닥에 널려진 '당신은 우리의 영원한 대통령'이란 피켓을 한장씩 주워들고 약속한다.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지만 '당신의 뜻은 꼭 지켜가겠다'고.
시청 광장 앞 커피숍. 다른 일행과 합류했다. 가슴은 매우 아프고 안타깝지만 아무리 그래도 노무현 사랑한다는 말은 안나온다고, 박종태 열사에게 분향을 못가서 노무현대통령에게도 분향을 못하겠다는 선배 언니와, 그렇게 노무현 욕하다가 하루아침에 위인전 쓰는 범국민적 추모열기가 적응이 안 된다는 예전 직장 동료와 쥬스를 마셨다. 시니컬함과 질퍽함은 통한다. 서로의 모습이 이해가 되든 안 되는 우리는 어떻게 시청을 사수할 것인가, 추모열기를 실천과제로 풀어낼 것인가에 대해 100분 잡담 수준의 토론을 벌였다. 우리가 그래도 우경화되지 않고 17년 전에도 지금도 이런 대화를 나누게 돼서 다행이라고 누군가 말해서 쓸쓸히 웃었다.
창문 너머 다시 찾은 시청광장, 다시 밟는 녹색 융단. 사람들이 삼삼오오 이야기 꽃을 피운다. 길바닥에 누워 자는 사람도 있고 캔맥주도 마시는 이도 보인다. 시민발언도 재밌다. 날이 어둑해져 촛불을 켰다. 오랜만이라 어색했다. 이 까만 밤, 푸른 잔디, 흔들리는 꼬마불꽃. 손등 위로 뜨겁게 떨어지는 촛농. 노무현대통령님을 애타게 찾는 구호들..모든 게 낯설었다. 난 왜 촛불을 드는가. 광장 열어주면 거기서 촛불 들고, 막으면 안 나가고. 분향소 막으면 맨바닥에 엎드려 절 하고, 모니터 앞에서만 울분의 맨주먹 날리는 나. 작년에도 촛불집회를 백번은 나간 거 같은데, 대체 왜 간 걸까.
그저 컵 속에 담긴 촛불처럼 안전하게만 흔들렸다. 몇 시간 타버리고 마는 한뼘짜리 양초 같은 짤막한 마음이었다. 다 태울 마음의 각오 없이..어떤 절실함 없이 사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것 같다. 약간의 의무감과 사명감에 자리 하나 채우기. 발 하나 담그기. 덜 귀찮도록 큰 일 안 만들고 '정도껏' 살았다. 바보 노무현 같은 무모한 열정은 없었다. 현실의 구구한 변명은 길었다. 아닌건 아니라고 말하지 못했다. 원칙과 소신은 있지만 실천적 대안은 없었다. 욕먹고 손가락질 당하고 외면 당하는 쓰라림과 고통도 미리 차단했다. 상처받기 싫고 끝없는 논쟁도 귀찮으니까 그냥 쉽게 살려했다. 타들어가는 촛불에서 부끄러운 내 모습을 봐버렸다.
노무현대통령 서거 충격 후, 책 덮고 안달 내려놓고 살았다. 금싸리기같은 7일이 갔다. 바보 노무현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헛똑똑이로 살아온 나도 같이 애도했다. 희망, 절망, 사랑에 이어 그가 내게 준 선물은 쓰디쓴 약 '성찰'이다. 전면적인 되돌아봄. 인생의 구조조정. 사람사는 세상이라는 큰 숙제를 풀자. 더 부지런해야하고 더 뻔뻔해야 하고 더 창조적이어야 한다. 일단 영결식에 다녀온 어젯 밤부터 고민의 화두가 변했다. 어떻게 하면 책 한줄 더 읽고 더 쓸까가 아닌, 어떻게 해야 더 부딪히고 넘어지고 훌쩍이며 바보답게 살 것인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