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수요일' 낳은 여성들, 설은주-옥소리-노현희

2008년 12월 17일. 이들의 소식을 접하고 나의 수요일은 슬픔에 잠겼다. 공교롭게 모두 여성이다. 

일제고사 반대 해임 당한 설은주.

황폐한 시국을 살다보니 웬만한 뉴스엔 놀라지도 않는다. 눈물은커녕 욕도 한숨도 콧방귀도 안나오는  지경이 되어버렸는데 오늘 아침 사진 한 장에 막혔던 눈물샘이 툭 터져버렸다. 일제고사 반대로 아이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교정을 나서는 유현초등학교 설은주 교사의 사진이다. 끝내 일을 벌이는구나. 이 사안으로 총 7분의 선생님이 해임됐다. 급식로비로 금품 수수한 교사, 학생을 성희롱한 교사는 정직으로 끝내면서 일제고사 거부 선택권을 준 교사는 단칼에 잘라버렸다. 
'서울시교육청은 2008년 3월 학부모 돈으로 해외여행을 간 교사들에게 경징계 결정을 했고, 2007년 상습적으로 학생을 성추행한 교사에게 정직 3개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설 교사는 “학생들에게 시험 선택권을 준 것이 성추행한 교사보다 더 큰 잘못을 한 것인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한겨레 12.14 기사)

이런 식으로 가면 이제 학교에 누가 남을까. 공부는 학원에 내맡기고 촌지나 바라는 죽은 교사들. 아이를 담보로 출판사, 급식업체와 거래하는 장사치들, 아이들 안색보다 윗분들 눈치나 살피는 관료주의자들만 남게 생겼다. 절망적이다. 

특목고 늘리는 것도 부족해 특목중도 내년부터 몇 군데가 더 생긴다. 대원외고가 대원중을 만들고, 영어와 토론식 수업을 진행하는 귀족학교 영훈초등학교가 영훈중학교를 만들었다. 어제 만난 초6학년 딸을 둔 어떤 엄마가 대원중학교 입학원서를 내러 갔더니 80명 뽑는데 5000명이 지원서를 냈다고, 떨어질까봐 안절부절 하더라. 이렇게 되면 특목고 땜에 중학교 교육이 '초토화' 됐듯이, 특목중 때문에 초등학교 교육도 엉망되는 일만 남았다. 이제 막 콧물 뗀 10돌도 안 된 어린 아이들까지 시험에 시달리고 점수의 노예로 살게 됐다. 

특목중고는 상류층 아니면 절대 못보낸다. 청심국제중 다니는 아이 엄마가 하는 말이, 남편이 의사인데 국제중갔더니 하도 내로라하는 집안 자제들이 많아서 명함도 못내민다고 하더라. 또 수시로 몇 십(백)만원씩 돈을 걷어서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다고 하소연했다. 대한민국은 확실히 교육을 통해 아래로부터 '양극화'되고 있다. 특목중에서 무슨 대단한 특수요원을 기르는 고차원 학습을 하는지는 알 수도 없고 관심도 없으나 분명한 것은 특목중고 열풍이 노리는 것은 명확하다. 외고 있는데 국제고 생기고 특목고가 특목중으로 확대되고 사교육시장이 점차 방대해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특목고이데올로기 기관의 재생산이다.

기업형 학원원장이 누구와 어떻게 결탁하는지 보라. 공정택 당선의 일등공신은 강남학원장들이었다. 외고 과고 자사고 등등의 특목고가 생기면 교육관료들은 노후대책은 물론이요 대대손손 먹고산다. 또 영어유치원부터 특목중고 광풍은, 특목중고 상품을 소비할 수 있는 계층과 그럴 수 없는 계층으로 나누는 계급효과를 야기한다. 이 미친 나라에 만약 교육정책이 있다면, 그것은 아예 대놓고 있는 집 자식들만 끌고 가겠다는 거다. 자본과 권력은 그렇게 스스로 몸집을 불리고 증식한다.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 판결을 받은 옥소리. 

옥소리는 왜 박철을 간통죄로 고소하지 않았을까. 그녀의 주장대로라면 박철이 결혼생활동안 유흥업소 및 안마시술소의 백명이 넘는 여자와 18억이라는 천문학적 돈을 써가며 하도 일상적으로 밥 먹듯이 외도행각을 벌였으므로 간통'죄'라는 실감이 안났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감당이 안 되는 거대한 '악' 앞에서 망연자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살아갔을 수 있다. 현재 자신에게 어떤 비난과 고통을 받더라도 박철에게 놓여나 행복하다는 옥소리의 고백을 보면 그렇다. 결정적으로는, 딸아이의 아빠라는 점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여자들은 아무리 남자가 악마처럼 느껴저도 이혼할 사이라도 '아이의 아빠니까'라는 마지노선을 긋고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려 노력한다. 그래도 그가 개과천선해 인간답게 살기를 바란다. 이렇게 뒤통수 맞을 줄 모르고 말이다.

포털면을 장식하는 연예인들의 사랑과 전쟁은 결코 '남의 집 가정사'가 아니다. 우리 사회 주요 모순을 함축한 사안이다. 간통죄는 뭔가. 기혼자가 다른 사람이랑 애정행각을 벌이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남자의 외도가 더 빈번하하므로,  간통죄가 여성을 위한 법이라고들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단순하게만 생각해도 '남자가 만든 법'이 남자에게 불리할 리가 없지 않은가. 간통죄는 여성을 억압하는 대표적인 법이다. 집에서 가정을 지켜야할 '안사람'이 감히 가정 팽개치고 사랑이라니. 가족삼각형이 무너지면 지배이데올로기가 붕괴된다. 괘씸죄를 내릴밖에.

어릴 때 친구들의 아빠, 지금은 주위의 배우자들만 봐도 남자가 훨씬 '간통죄'를 많이 저지른다. 하지만 고소하는 여자는 단 1명도 못봤다. 간통죄 고소는 아무나 하나. 일단 재벌가 사모님 아니고서야 엄마들은 자금력이 딸린다. 고소하려면 흥신소에 사람 붙여서 증거도 잡아야하고 법정 싸움을 위한 비용도 필요하다. 그런 경제력을 갖춘 여성이 얼마나 되겠나. 돈이 있어도 이혼 이후 혼자 삶을 구성할 능력과 자녀 문제 등등이 발목을 잡는다. 간통죄 고소의 거사를 치르고 이혼 후 혼자 살아갈 내공도 여건도 안되니 다들 참는다. 아이들을 생각하며 견딘다. '남자는 조강지처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라며 '바람'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과거 엄마들 세대가 그랬다면 옥소리를 기점으로 앞으로 양성평등문화 속에서 자란 조폭마누라 세대의 '쎈 언니들'은 달라질 것이다. 옥소리처럼 결혼 10년 독수공방 하면서 아이 키우다가 남편 이외의 남자와 사랑한 죄로 감옥가고, 재산 반 뺏기고, 자식까지 뺏기지는 않을 것이다. 참고로 박철이 데리고 있는 옥소리의 딸은 엄마를 만나게 해달라고 호소하며 지구와 엄마 중에 어떤 걸 선택하겠느냐고 물으면 '엄마'를 선택하겠다는 편지를 판사에게 보냈다고 한다.

이혼 발표한 노현희.

연예인들의 이혼기사에 '앞으로도 친구로 좋은관계를 유지하겠다'는 말은 왜 꼭 약방의 감초처럼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둘다 방송활동 해야하니까 이미지관리 차원이겠지만 그런다고 쿨해보이기는커녕 더 안쓰러워보인다. 인간관계에 쿨이 가능한지도 의아스럽지만, 부부의 연으로 살다가 이혼까지 갈 때는 '쿨'은 절대 불가능하다. 간단하다. 결혼은 집에서까지 내내 같이 있고싶어서 하는 거고, 이혼은 한 집에서 '꼴'도 보기 싫어서 하는 거다. 사실 여자연예인에게 이혼은 자연스러울 정도다. 그 옛날 황신혜도 최진실도 최근에 명세빈도 신은경도 이혼했다. 그녀들은 비교적 자기 욕망에 충실하면서 자유롭고 열정적으로 에너지를 표출하며 살아왔다. 결혼이란 제도의 틀에 갇혀지내기 힘든 것은 당연하다. 숨막혀 죽게 생겼으니 틀을 깨고 뛰쳐 나올 밖에. 비단 이혼만이 아니다. 자기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행복해지는 길을 명확히 아는 사람은 어떤 일에든 선택이 쉽다.

과다한 성형으로 불편해보이는 얼굴도 그렇고 이혼에 대응하는 것만 보아도 그렇고 노현희는 단순한 '여자 연예인의 이혼'이기 이전에 이 시대의 슬픈 자화상처럼 보인다. 물신주의 부작용의 시대. 자신만의 행복의 척도를 갖지 못한 채 화려함을 쫓다가 이리저리 떠밀리고 표류하는 자의 공허함이 내비친다. 결혼할 때부터 노현희는 왠지 측은했다. 억울할 일이다. 재벌가도 아니고 남자아나운서한테 '시집가는' 느낌이 들었으니 말이다. 다시 그녀만의 생기를 찾고 부활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