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서 소환장이란 게 날아왔습니다. 날더러 아이를 돈 주고 사와서 방패로 삼은 가짜 엄마라며 내 가슴을 찢었던 그 여자가 나를, 우리를.... 고소했답니다. 내가 너무 오래 살았나봅니다. - 세상을 바꾸는 여자들’
<한겨레> 7월7일자 생활광고면에 나온 내용이다. 명함 반쪽 크기의 칸에 깨알처럼 적힌 글씨가 궁지에 몰린 유모차부대 엄마들의 갑갑한 처지를 말해주는 듯해 한참을 눈을 떼지 못했다. 서울종로경찰서에서 지난해 촛불집회에 참가했던 ‘유모차 부대’ 회원 44명에게 도로를 무단 점거한 혐의(일반교통 방해) 등으로 소환을 통보했다는 기사가 6일 보도됐다. 참말로 MB의 ‘촛불 뒷설거지’가 길어도 너무 길다. 요즘 말로 ‘뒤끝작렬’이다. 왜 저들은 빨간모자를 꿀꺽 삼키려는 늑대처럼 계속 유모차 주위를 배회하고 있는 걸까. 일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엄마니까 유모차를 끌고 갈수밖에
유모차부대 엄마들의 집회참가는 온당하다. 자기 자식들의 건강을 위해 자발적으로 나서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보장된 표현과 집회시위에 참가한 것이 위법이 아니라면, 유모차를 끌고 간 것 역시 죄가 될 수 없다. 육아보조자가 항시 대기 중인 축복받은 경우가 아니라면, 원래 엄마들은 어디를 가도 유모차와 함께 갈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당장 경찰소환에 응할 때도 유모차를 끌거나 아기띠를 해야 할 엄마들이 있을지 모른다.
도심이 위험하다고? 지난주에도 덕수궁 앞에는 행인보다 경찰이 더 많았다. 도심을 일 년 내 내 공포의 광장으로 만드는 게 누구인가. 계엄 상황도 아닌데 길목마다 전경차로 막아놓고 열 걸음마다 전경을 세워둔 경찰국가에 태어난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작년에도 저들은 도심 한 복판에 물대포를 세워두고 협박했지만 촛불유모차는 시민과 여경의 보호 아래 평화롭게 행진했다. 사실 위험하기로 따지자면 출근길 지하철이 더하다. 먹고 살기 위해 아이를 데리고 출근해야하는 여성에게도 ‘아이가 깔릴 수도 있는데 만원 지하철을 탄 모진 엄마다. 친엄마 맞느냐’고 손가락질할 참인가.
촛불유모차 탄압의 논리는 아무리 둘러대도 궁색하다. 아마 MB정권의 ‘촛불공포증’이 쉽사리 치유되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여자들의 움직임이 그 어떤 깃발보다 쇠파이프보다 위협적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간파했기에 저리도 추하게 연연하는 것으로 보인다. 작년에 촛불집회가 한참 탄력을 받을 때 해묵은 ‘모성이데올로기’를 작동시켜 촛불의 확산을 막았던 상황을 되짚어 보자.
의료비, 사교육, 광우병소...자식걱정, 사회걱정이 불법인가
미국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집회에서 유모차부대 등 엄마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아이의 안전’을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는 엄마의 민감한 신체는 인터넷 동호회의 신경망을 통해 빠르게 논의 확산됐다. ‘아이에게 안전한 먹을거리를 먹이게 해 달라.’ 미국 쇠고기 수입 재협상을 요구하는 유모차부대의 행렬이 이어졌다. 엄마들은 미국산 쇠고기만이 아니라 의료민영화, 교육정책, 전기세 물세 물가인상 등 다른 문제도 빠르게 이해하고 절절히 ‘나의 문제’로 받아들였다. ‘통일’이나 ‘민주주의’ 같은 추상적인 대의가 아니라 ‘아파서 병원 못가고’ ‘우리 아이 잠 못 자게 하는’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다음은 지난해 5월 30일 촛불집회에 갔을 때 들었던 어느 엄마의 발언내용이다.
야구 모자를 눌러쓴 젊은 주부가 등장했다. 24개월과 4개월 된 딸아이의 엄마인데 “마음 같아선 매일 나오고 싶지만 이렇게 친정엄마가 봐줄 때나 외출할 수 있다.”고 운을 뗐다. 대학교 때 데모 한 번 해본 적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나 같은 사람을 거리로 내몰았다며 ‘이명박’을 촛불문화제의 배후로 지목했다. 그는 강제진압 등 쇠고기 정국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고는 의료민영화의 문제 등 삶에 파고들 재앙에 대해 염려를 드러냈다.
“둘째가 태어날 때부터 아팠는데 지금 많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저는 부자는 아니지만 가난하지도 않습니다. 아이가 아프면 집 팔아서라도 치료하면 됩니다. 그런데 병원에 가면 아픈 아이들 너무 많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도 많습니다. 의료보험 민영화가 이뤄지면 그 아이들은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우리 열심히 싸워서 꼭 좋은 나라를 아이들에게 물려줍시다.”
촛불의 핵심동력-유모차, 촛불집회가 나들이로
엄마들은 대전에서 분당에서 김포에서 주말마다 시청으로 몰려나왔다. 유모차를 태운 아이와 노란 풍선은 촛불집회를 평화로운 집회를 표상했고, 일반시민들에게 광우병 쇠고기를 ‘광장 정치꾼’의 문제가 아닌 ‘우리 집 식탁의 문제’로 느끼게 해주었다. 유모차부대는 촛불운동에 특이성을 부여했고, 확산에 기여했다. 엄마들은 어떤 대의나 가치를 수호한 단체가 아니지만 신체적 표현에 민감한 감각을 지닌 사람들이다. 그들이 촛불집회에 유연하고도 강력한 에너지를 불어넣은 것이다.
촛불집회의 핵심동력을 '정확히' 파악한 MB정권은 유모차부대에 대한 탄압을 시작했다. 엄마들이 아이들 안고 나온 현실에 겁먹은 저들은, 물대포 대동하고 날선 방패로 무장한 경찰을 배치해 안전한 장소를 안전하지 않은 장소로 만들어버렸다. 언론이 합세해서 "아이를 부모의 소유물처럼 취급했다" "불의의 위험상황에 아이를 노출시킨 아동학대다"라는 비난 여론을 형성했다. 유모차부대 대표 양씨는 “자신은 평범한 주부이며 세 아이들의 엄마인 제가 깨끗한 먹을거리와 바른 교육 그리고 안정된 삶을 물려주고 싶어 촛불을 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모성이데올로기를 작동시켜 아동학대냐 모성의 적극적 행동이냐의 ‘양자택일 구도’로 몰고 갔다.
‘어느 쪽이냐’ 선택하여 멈추게 하라
'이것이냐 저것이냐'는 이분법적 질의 설정은 모든 논의를 획일-단순화 시킨다. 마치 불륜이냐 사랑이냐, 성녀냐 창녀냐의 물음처럼, 아동학대냐 모성실천이냐로 두 줄 서기를 강요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선택지가 있어서 가는 게 아니라, 가는 행위자체가 몰적 선택지를 구성한다. 그 결과 무수한 의미의 결을 지닌 엄마들 삶의 고민과 행동은 편협하게 축소됐다. ‘유모차의 실체는 누구의 욕망인가?’ ‘유모차부대가 다른 사람들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 엄마들은 고민했다. 생각이 많으면 행동하지 못하는 법. 결국 신나게 전진하던 유모차는 스르르 멈추었다. 저들의 의도대로.
이후에도 MB정권은 유모차부대 대표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등 과잉 수사를 벌였다. 초중고와 싸우던 MB가 아가와 싸움을 선포한 것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매우 날카롭고도 현명한 선택이었다. 앞으로 모든 정책을 펴나감에 있어서도 유연하고 질기고 똑 부러지는 저항의 주체인 ‘엄마’들의 입과 발을 묶어 놓지 않으면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촛불집회 1년 후, 저들이 다시 뒷북을 치는 걸 보니 '세상을 바꾸는 여자들과 MB의 전쟁'은 이제 일상화될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으로 여자-엄마는 살림꾼이다. 살림은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삽 하나 들고는 생명이 죽어나가도 눈 하나 꿈쩍 않는 MB정권이 과연 이 땅의 엄마들을 이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