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장소가 갑자기 바뀌어서 사실 걱정을 좀 했습니다. 온수역인데 옥수역으로 가시면 어쩌나...부천 성공회대인데 성공회 교구가 있는 서울 시청으로 가시면 어쩌나. 근데 여기까지 참 잘 찾아서 많이 들 와주셨습니다.” “우하하하하” 노란 풍선 물든 객석에서 큰 웃음이 터진다.
역시 권해효다. 이번 공연에 쟁쟁한 출연진도 많았지만, ‘권해효의 재발견’이라고 하고 싶을 만큼 그는 돋보였다. 특유의 위트와 진중함, 핵심을 전달하는 논리정연한 말솜씨, 안정된 발성까지 갖춘 완벽한 사회자로서, 장장 4시간 공연의 흐름을 잘 잡아주었다. 뿐 아니다. 중간에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열창해 좌중을 사로잡았다.
“92년 장마 종로에서라는 노래였습니다. 17년 전의 이 노래 이 가사가 아직도 이 현실을 반영하는 가사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권해효의 변신은 계속됐다. 공연 막바지, 윈드시티가 나왔을 때는 무대 중앙에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막춤을 선사해 흥을 돋우었다. 힘 있는 어조와 촌철살인의 멘트를 날리던 그이지만 신명날 때는 아이처럼 망가질 수 있는 변신의 능력이 멋졌다.
권해효 씨는 시민단체 마당발로 유명하다. 얼마 전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 바자회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행사,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호주제 폐지 행사, 평등가족 페스티벌 행사장에도 늘 자리했다. 특히 성평등 운동에 관심이 많다.
"성평등 운동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것은 아내가 있는 남편이라면, 딸을 가진 아버지라면 선택이 아니라 의무사항"이라고 말하곤 했다. 여성은 숫적으로 절반이지만 성 소수자이고, 차별의 대상이고, 손해 보는 집단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술자리에서만 진보를 찾고 싶지 않다며 앎과 삶의 일치를 실천해온 권해효 씨. 그의 얼굴이 큰 스크린에 편집되는데 얼굴과 머리의 경계선 따라 희끗한 흰머리가 보인다. 세월따라 잘 늙어가는 사람 곁에 두고 보는 것이 큰 축복이란 생각이 든다.
# 안치환 - '넌 개새끼야'
단연 하이라이트였다. 안치환이 노래할 때는 객석이 가장 조용했다. 망망대해의 고요처럼 숨조차 크게 쉬는 사람이 없었다. 무대로 일제히 시선고정. 안치환은 노래한 게 아니라 타올랐다. 온몸을 활활 까맣게 태워 음악을 피워 올렸다. 안치환은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세우면서 MB정권을 비판하는 퍼포먼스도 보여주었다. 온 얼굴에서 물기가 배어나왔는데 그것은 땀이지만 누구도 땀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누가보기에도 눈물이었다. 온 몸으로 울었다. 온몸으로 불렀다. ‘개새끼’라는 노래가 절정이었다. 그가 “넌 개새끼야” 라고 포효하듯 절규하는데 막힌 가슴이 뻥 뚫리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객석도 일렁였다. 잠잠하던 바다에서 집채만한 파도가 솟구치듯 환호했다.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 자유, 부메랑, 개새끼, 용서는 없다 까지. 그는 열창하고 관객은 열광했다. 노래를 듣는 우리도 좋았지만 왠지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그가 너무 행복했을 것 같다. 이 시대와 노래가 일치된 '몰입의 기억'이 그를 계속 노래하게 할 것임을 믿는다.
# 신해철 - '이것이 저항이다'
마왕이 왜 마왕인지를 증명해준 신해철의 무대. 노통 서거 이후 신해철이 공연일정을 전부 취소하고 칩거에 들어갔다고 했을 때 마음이 짠했다. 정말 슬프구나, 인정 많은 사람이구나 생각했고 내가 다 위로가 됐다. 그래서 더 보고 싶었는데 역시 마왕은 거침없다. 어둡던 무대에 조명이 켜지고 그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경악했다.
‘이것이 저항이다!’
그가 완전히 머리를 밀어버리고 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전율이 일었다. '민물장어의 꿈’을 읊조리듯 불렀다. 잠시 후, “흐드득....” 신해철은 아빠 잃은 아이처럼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새끼 잃은 어미처럼 날 울음 소리를 냈다. 마이크를 타고 흐느낌이 밤하늘에 울려 퍼지고, 스크린에는 벌겋게 뭉개진 젖어버린 얼굴이 가득 잡혔다.
‘그래 당신이 곡비다....울고 싶은 사람을 대신해서 울어주는 곡비다....’ 저렇게 눈물 흘리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간신히 노래를 두 곡 끝낸 그가 발언을 시작하자 '대중선동가’의 면모를 과시한다.
“누가 노무현 대통령을 죽였죠? 이명박이요? 조선일보요? 저에요,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해자이기 때문에 문상도 못했고 조문도 못했고, 담배한대도 못 드렸고, 쥐구멍에 숨고 싶은데 할 줄아는 게 노래밖에 없어서 노래 한 자락 올리러 이 자리에 왔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우리가 구하지 않았다는 죄의식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 죄의식은 죽을 때까지 우리 발목에 쇠사슬로 묶여 있을 것입니다. 노무현의 죽음은 민주주의를 되돌리는 전기를 마련해 줄 수 있지만 그러기엔 너무 아까운 사람이 죽었습니다.”
# 윤도현 - '비겁한 세상 비를 맞겠어...후회없어...'
마지막 무대는 윤도현. 밤 11시가 넘어 많은 이들이 발걸음을 돌렸는데도 열기는 여전했다. 윤도현은 ‘너를 보내고’에 이어 영결식 날도 불렀던 노래, ‘후회 없어’를 열창했다. 친구가 옆에서 설명한다. '후회없어’는 촛불집회 참가 이후 주위의 우려에 대한 심정을 노래한 것이라고. 맞다.'윤도현의 러브레터' 진행자에서도 아웃되고 우려가 현실로 돌아왔지만, 그는 참말이지 후회 없을 것이다. 저항속에 누리는 자유의 참맛을 알 테니까. 당당한 삶 속에서 따르는 의미와 가치들이 얼마나 빛나고 소중한 것인지 그가 누구보다 잘 알 테니까.
‘넌 말했지 철없는 나를 보며 이 세상은 그런 게 아니라고 또 그렇다고 너의 뜻대로 나 살순 없잖아 비겁한 세상 비 내린다면 그 비를 맞겠어...끝이 없는 험한 길이라도 이대로 난 걸어가 그것뿐야 그것뿐야 촛불 든 손으로 거리에서 밤을 지새워도 친구들아 나를 걱정 하지마....’ ('후회없어' 가사)
윤도현은 열창했고 삽시간에 무대 앞으로 앞으로 사람들이 떼로 몰려들었다. 락페스티벌을 방불케 하는 뜨거운 광경이다. 그도 신명이 났다. 앵콜곡은 ‘돌고, 돌고, 돌고~’ 끝났는가 하면 크게 크게 외친다.
“다~시~ 돌고~~~~~” 열광에서 발광으로. 관객의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돌 것 같은 세상’으로 쌓인 울화를 ‘돌고’로 씻어 내는 사람들. 한판 씻김굿 같은 공연이었다.
# 바보들 - 봉하에서 이어진 희망의 길
“지금 줄을 서도 입장하실 수 없습니다~” 공연 전, 길게 늘어선 행렬을 따라 스태프가 손마이크를 만들어서 외치고 다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미동도 않았다. 노무현을 볼 수 없음에도 봉하마을의 행렬이 계속됐듯이, 그의 추모공연 역시 이미 수용인원이 넘쳐서 공연관람이 어렵겠다는 판정이 내려졌음에도 아무도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뒤에서 한 청년이 말했다. “사람들도 노무현 닮아서 바본가 봐. 아무도 안 가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약속이라도 한 듯이 대열을 지켰다. 발바닥에 아교풀이라도 붙인 듯이 꼼짝 안했다. “ 마지막에 한 곡만 듣더라도 기다리자"고, "무대가 안 보이면 라디오처럼 소리라도 듣자”고 친구와 나도 약속했다. 결국 한시간 반을 줄서서 입장했다. 내가 안 가니까 아무도 가지 않았고 그들이 안 가니까 나도 가지 않았다. 절실함이 우리를 이어주었다. 그동안 속상하고 화나고 분한 일 많았는데 어디 마음 한자락 기대고 위로받을 길 없었던 사람들의 절실함. 그로 인해 우린 모두 다 그 시간만큼은 충분히 행복했다. 욕도 하고, 마음껏 울기도 하고, 목청 높여 노래도 불렀다. 결국 희망을 놓지 않음으로써 희망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사람 사는 세상’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