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씨는 3년 전부터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다. 예순 넷의 나이라면 대부분이 일선에서 물러날 때이지만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 뭐든지 해야 한다" 생각했고 마침 친구의 소개를 흔쾌히 수락해 일하게 됐다. 그는 경비복을 입은 만큼 확실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잠시도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지 않는다. ‘도난, 재난, 침략 따위를 염려하여 사고가 나지 않도록 미리 살피고 지키는 일’이란 경비의 사전적 정의를 그대로 자신의 일터에서 구현한다.
그의 담당구역은 60가구이다. 스무평이라서 신혼부부와 근처에 자식들을 둔 독거노인 가구가 많다. 때문에 혹여 노인네들에게 급작스러운 일이 생길 수 있으므로 그는 잠시도 마음을 놓아선 안 된다고 말했다. 세상이 하도 험하고 이상스러운 경우가 많이 발생하므로 수시로 아파트를 돌며 동정을 살핀다. 또 지팡이를 짚는 어르신들은 엘리베이터 타고 내리는 걸 도와드린다. 비록 내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지만 “그분들이 다 내 부모 아니겠느냐”생각한다.
번거롭고 수고로움을 마다 않는 송 씨의 이웃사랑은 아기자기하고 섬세하다. 택배가 많아진 요즘은 ‘몇 호 택배 왔습니다. 경비실에서 찾아가세요. 경비원 백’이라고 매번 엘리베이터 옆에 친히 방을 붙여놓는다. 엄마가 집을 비우며 아이에게 써놓은 쪽지마냥 살가움이 묻어나는 필체다.
매주 화요일, 아파트 분리수거의 날이면 그는 아예 분리수거 현장을 떠나지 않는다. “사모님 두고 가시죠. 제가 할게요.” “늦으셨을 텐데 어서 출근하세요. 어차피 제가 할 일인 걸요.” 특히 출근길에 분리수거를 들고 나오는 직장인들이나 기력이 딸리는 노인들에게 다가가 적극적으로 분리수거거리를 받아온다. 그것이 쓰고 남은 삶의 폐기물이지만 보물단지라도 되는 양 상대방이 미안하지 않도록 최대한 정중하게, 그리고 한 없이 즐겁게 떠안는다.
바람에 독기가 서리는 겨울철이 다가올라치면 더욱 바쁘다. 아파트가 복도식 구조라서 수도계량기 동파의 위험이 있다. 못 입는 옷가지와 비닐로 수도계량기를 덮어 놓아 동파에 대비해야 하는데, 미리 해놓지 않은 집이 있으면 그가 직접 처리한다. 손수 청테이프와 비닐을 들고 다니며 가가호호 깔끔하고 안전하게 덮어준다. 한 두 집도 아니고 우리 집도 아니지만 직접 나서는 이유는 “노인들은 손에 힘이 없어 다부지게 못하고, 맞벌이 부부들은 시간이 없어서 못하는데 일이 생기기 전에 예방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 뿐 아니다. 눈이 온 날은 계단이며 주차장, 뒷마당 등 아파트 주변에 “슥슥”하는 비질 소리가 마치 산사의 목탁소리처럼 울려 퍼진다. 계단에는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해 어디서 나무판자라도 하나 더 구해서 얹어놓는 식이다.
그렇게 3년 세월, 일 년이면 절반을 출근하면서 “정을 붙”이고 나니 “이제 다 가족 같다”며 허허 웃는다. 마침 지나가는 주민이 인사를 건네자 ‘세 자매’는 여기 살다가 이사 갔는데 언니는 몇 동에 살고 동생은 어디 살아서 놀러 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마음은 60가구 주민들 외에도 한번이라도 살다간 숱한 이웃들로 북적이는 사랑방이었다.
그의 이웃사랑은 대형마트 선전 글귀처럼 ‘연중무휴’다. 추석이나 설날에도 예외 없이 일 년 내내 주민들의 편이다. 사소하지만 그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편익을 기꺼이 제공한다. 안쪽의 차가 빠져나갈라치면 어느새 달려와서 겹겹이 주차되어 있는 차를 밀어주고 장을 보고 양 손에 바리바리 짐을 든 경우 “제가 들어드릴게요.”라며 무거운 짐 맞들어준다. 어둑어둑 밤이 찾아오면 “‘호루라기’가 있나 다시 한 번 확인”하고는 아파트 주위를 순시한다.
하루가 숨 가쁘게 돌아가는 듯싶지만 그가 행하는 것들은 분리수거 돕기, 자동차 밀기, 짐 들어주기 등등 지극히 소박한 것들이다. 무작정 많은 일을 하고, 무조건 돕기보다 꼭 필요한 일, 꼭 필요한 경우에 도움을 주는 식이다. 그에게 있어 오늘 할 일이 절대 내일로 미뤄지는 경우는 없다. 말 그대로, 주민의 지혜로운 동반자다.
그의 일하는 즐거움은 주민들에게 바이러스처럼 번져간다. 그에게 건강한 파장이 일기 때문인지 주변에 늘 활기가 넘치고 사람이 모이고 웃음이 고인다. 어스름 해질 무렵이면 나무 그늘 아래 인근 경비원들과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기도 하는데 “이런저런 사는 얘기도 나누지만, 항상 주민들에게 먼저 인사하고 무거운 거 들어드리고 차도 밀어드리라”고 권유한다고 한다. 그렇게 24시간 알토란처럼 쓰고 나면 다음 날 새벽 6시. 집에 가서 한숨 자고 마누라가 챙겨주는 늦은 아침을 먹고는 자전거를 타고 여의도 한강 둔치를 한 바퀴 돈다.
송 씨는 당산동에서 30년 째 건재상을 운영하고 있다. 경비를 서지 않는 날이면 건재상에 가서 일을 본다. 몇 년 전부터 큰 인테리어 업체가 생겨서 거래도 없고 벌이가 시원찮아졌기에 명목상 건재상일 뿐이고 쉬엄쉬엄 가게를 꾸린다고 한다. 한 가지 일을 하기도 힘든 세상에 ‘투잡’인가 싶지만, 그에게 건재상은 쉽게 접을 수 없는 평생의 업이다.
“그동안 어떤 뚜렷한 목표도 없이 무능하게 산 거 같습니다. 안 돌봐줄 사람 돌봐 주어서 정작 돌봐줄 사람은 못 돌봐주고....” 짧은 한숨을 뱉은 그는 17년 전 삶을 덮치고 간 해일과도 같았던 일을 떠올렸다. 사업을 하는 절친한 친구에게 돈을 빌려 주었다가 친구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연쇄적인 피해를 입게 된 것이다. 몇 십억 규모의 사업이기에 “만의 하나라도 내 돈은 받을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파만파로 불똥이 튀어 송 씨의 집까지 팔아야했다.
“사업을 하다보면 부도도 나고 오르락내리락 굴곡이 있지만 보증서에 도장 한 번 찍고 잘못되니까 그간 일궈놓은 게 완전 송두리째 날아갔습니다. 법원에서 우리 집이 경매 처리되는 거 보니까 세상 살기 싫어지더라고요.”
그 일의 충격으로 가슴에 응어리가 맺혀 3-4년은 시달렸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또 어떻게 하루하루 살게 되더라고 말했다. 연신 후렴구처럼 “어쩌겠어요.”를 반복하는 그는 어떤 고난과 불행도 삭혀버리는 ‘생애화’의 원리를 체득한 듯 보였다. 그 후로도 친구한테 돈을 받을까 싶어 만나서 보면 또 측은하여 말도 못 꺼내고 “그냥 침 한번 꼴깍 삼키고 온다.”
그 힘겨운 시기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마누라 덕분이다. 친구를 만나고 온 날이면 어김없이 묻는다. “그래 돈은 받아 오셨수?” 그러면 송씨가 “집에 쌀도 없길래 쌀 한 말 사주고 왔다”고 답하면 “잘했수~”라고 맞장구를 쳐주는 착한 마누라라고 했다.
송씨는 1녀 2남을 두고 있다. 셋 다 바르게 자랐고 자기 밥벌이 하고 사는 게 마냥 기특하고 대견스럽다고 말했다. 큰 딸은 서른일곱 살인데 결혼할 생각은 안 하고 애들 가르치며 학비 마련해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고, 큰 아들은 작은 사업을, 둘째 아들은 중국어 번역회사를 다닌다고 소개했다. 둘째 아들 놈이 성격이 활달한데 어려서도 용돈을 주면 그걸 안 쓰고 모았다가 반장선거 할 때 애들에게 뭘 사 먹이고 “뇌물”을 주더라며 너털웃음을 지었었다. 같은 배에서 나와도 성격이 다르고 제각각 성향이 다른 게 신기하다며 “애들 어릴 때부터 중학생까지”를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로 꼽았다. 하루가 다르게 빛깔을 달리하며 커가는 아이들을 보는 기쁨도 컸거니와, 사람들과 어울려 이것저것 일을 도모해 건재상이 번창하니 재미났었다.
“지금도 좋지요. 아들이 퇴근하고 집에 오면 아빠 소주한 잔 하실래요. 해서 같이 술 한 잔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합니다. 큰 애는 사업을 하니까, 내가 절대 보증은 서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그 때 그 일만 아니었으면 그 집을 큰 애 주는 건데 생각하다가도 또 땀 흘려 벌어야 자기 꺼가 되니깐 애들을 위해 더 잘된 일인지도 모르고요.”
단지 착하게만 살아간다고 다 잘사는 것도 아니고, 아등바등 댄다고 많은 돈이 모이는 것도 아니고, 행복한 삶은 자신이 시행착오를 거치며 만들고 찾아가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한 평생 먼저 살아본 부모로서 꼭 해주고 싶은 말은 ‘친구끼리 돈 거래는 하지 말 것’이다. 그는 애들에게 용돈 타 쓰지 않고 짐이 되지 않도록 열심히 일하고 건강 지키는 것으로 자식사랑을 다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아직 장모님이 살아계십니다. 아흔이 넘으셨는데 쉬는 날이면 한번 씩 휭허니 가서 뵙고 오지요. 지하철만 타면 가는데 맨 몸으로 할 수 있는 효도가 얼마나 쉬워요. 며칠 전에도 갔더니 그 몸을 하셔가지고 회를 떠놓고, 3년 된 인삼주 따주셔서 잘 먹고 왔습니다.”
이어 그는 장모님도 앞으로 사셔야 3-4년, 자신도 10년 15년이라며 즐겁고 건강하게 살 작정이라고 말했다. 그 구체적인 실천방안 중의 하나가 공부다. 그는 요즘 건축기사 자격증을 공부하고, 찰떡궁합 아내는 방통대를 다니고 있다. 또 틈틈이 집에서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배우는데 뭐가 뭔지 정신이 하나도 없고 들어가긴 해도 나올 줄을 몰라 진땀 뺀다고 고개를 젓는다. 하루가 또 그렇게 간다.
* 우리아파트 경비원아저씨다. 3년 전 즈음, 아저씨와 경비실에서 질퍽한 수다를 떨고 써두었던 글이다. 아저씨를 통해서 '경비원'도 참 재밌고 좋은 직업이라고 느꼈다. 아니, 직업에 귀천은 없고 사람에 귀천이 있다는 걸 알았다. 얼마나 즐겁게 헌신적으로 일을 하시는지 아저씨 뵐 때마다 '인생수업'이 절로됐다. 오죽하면 몇 달전 아저씨가 다른 동으로 발령났다가 하루만에 다시 우리동으로 돌아오셨다. 우리 라인 행동파 할머니 몇 분이 관리소에 가서 항의했다는 얘기를, 늘 나보고 교회다니라고 말하는 5층 할머니에게 엘리베이터에서 전해들었다.;; 그런데 지난달에 경비아저씨가 정년퇴임을 당하셨다. '다음날부터 나오지 말라'는 통보를 '오늘 방금전'에 받았다고 하셨다. 어처구니 없었다. 너무 서운한 마음에 아저씨에게 양말 세켤레를 선물해드렸다. 며칠 뒤 엘리베이터 앞에 방이 붙었다. '헌신적으로 우리주민을 위해 일해주신 경비원 ***씨가 퇴임했습니다. 주민들의 정성을 모아 작은 선물을 해드릴 것을 제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