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따로 없다. 척척 분유를 타는 솜씨며 아기사자의 턱을 감싸고 우유를 먹이는 동작이 너무나도 능숙하다. 섬세한 엄마의 손길로 아기동물을 길러내는 김권식 씨. 사육사 경력 10년차의 그는 무엇보다 ‘아기동물을 살려내는 것만큼은 자신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를 보니 ‘엄마 손은 약손’이 맞다.
서울대공원 동물원 인공포육실. 이곳은 어미가 죽거나 아니면 지쳐서 포기한 새끼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아기호랑이, 아기사자, 아기원숭이 등 앙증맞은 아기동물들이 먹고 자고 놀면서 유유자적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쌀쌀한 바람이 부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동물원을 찾은 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하나같이 통유리에 바짝 붙어 “너무 귀엽다”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다. 이렇듯 관람객에게 공개된 곳에 재롱과 웃음이 넘친다면 반대편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아기동물들의 엄마 사육사의 손길이 분주하다.
“스팀타월로 몸 닦아주면 우유 잘 먹죠” 김권식 씨는 1시 30분 수유시간에 맞춰 분유를 타고 있다. 젖병소독기에서 젖병을 꺼내고 조금 큰 통에 분유를 타서 세 개의 젖병에 나눠담는다. 우유와 스팀타월을 쟁반에 받쳐 들고 조심스레 방문을 열었다. 방 안에는 생후 20일이 채 못 된 아기사자 세 마리가 새근새근 잠들어 있다. 그는 샛노란 타월을 깔고 아기사자들을 꺼내놓았다.
“얘들아, 우유먹자~”
아기사자의 몸통은 통통한 고양이 정도의 크기다. 세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그의 주위를 맴돈다. 아직 이빨이 나지 않아 위험하지 않으니 그저 동물인형처럼 귀엽기만 하다. 세 마리 모두가 비슷비슷 ‘사자’의 얼굴을 하고 있음에도 그는 “요 녀석이 몸 컨디션이 제일 늦게 깨니까 나중에 먹여야 한다”며 다른 아기사자를 품에 안고는 스팀타월로 머리부터 꼬리까지 온몸을 정성스레 살살 문질러 닦아준다. “우유를 먹이기 전에 운동 겸 목욕 겸 닦아줍니다. 따뜻한 수건으로 전신이 골고루 자극이 되면 혈액순환이 잘 돼서 우유를 더 잘 먹죠.”
아니나 다를까. 그가 손으로 턱을 부드럽게 감싸고 젖병을 물리자 쪽쪽 우유 빠는 소리가 요란하더니 채 1분도 안 되어 뚝딱 한 번에 먹어치운다. 세 마리 모두 원샷! 그의 품에 안긴 녀석들마다 앞발을 하나 들어 허공을 휘저으며 만족감을 드러낸다. 세 마리 모두 배불리 먹었음에도 뭐가 아쉬운지 쩝쩝 입맛을 다시는 눈치다. 그가 손가락을 아기사자의 입가에 대고 장난을 치자 다짜고짜 빨아버린다.
“아기동물은 보통 태어나자마자 24시간 안에 이곳으로 옵니다. 인공포육을 해야 하니 맹수를 스트레스 안 받고 사람 젖꼭지에 적응하도록 유도하는 게 관건이죠. 아주 어릴 때는 몸을 가눌 수 없으니까 사육사의 손이 크면 좋아요. 턱 받쳐서 살포시 잡아주면 움직임 없이 편안하게 얼굴을 묻고 우유를 먹을 수 있지요.”
먹이고 재우고...엄마의 노동은 고되다 자신은 손이 작아 사육사의 손으로는 적합지 않다고 말하는 김권식 씨. 하지만 이는 겸손이다. 선량한 눈웃음을 가진 그는 천생 사육사처럼 보일 정도다. 아기동물들도 그에게라면 경계심을 풀고 마냥 어리광을 부리지 않을까 싶은 푸근한 인상을 가졌다. 그는 동료를 보아도 그렇고 “사육사들이 마음이 착하다”고 귀띔했다.
사육사라는 직업은 매스컴에서 보여 지는 것보다 훨씬 더 고되기에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힘들다는 것이다. 엄마가 헌신적 사랑으로 아이의 뒤치다꺼리를 마다 않고 일상의 고단함을 인내하는 것과 같은 이치일까. 사육사에게는 엄마처럼 늘 할 일이 산적해 있다. 아침 7시면 도착해서 계속 먹이고, 얼굴을 살피고, 주위 환경을 점검한다. 녀석들과 엉켜서 지내다 보면 팔뚝과 손등, 얼굴에는 영광의 상처가 지워질 날이 없다. 밤에 우유를 먹이고 퇴근하느라 새벽별 보고 가는 귀가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김권식 씨가 지금껏 길러낸 아기동물만 해도 100마리가 훨씬 넘는다. 처음 어린이동물원 업무부터 시작하면 10여 년 간 아기동물과 동고동락한 것이고, 태어나면서부터 치자면 평생을 동물과 호흡했다. "강원도 두메산골에서 자랐어요. 집에서 소, 돼지, 개, 닭, 고양이, 오리 등 가축을 키웠으니 동물은 가족처럼 제 생활에 일부이고 동물을 돌보는 게 몸에 배었죠. 큰 목장의 주인이 되고 싶었는데 이 길을 가게 됐네요. 아기동물 애들이 건강하게 인공포육실을 졸업할 때 가장 뿌듯하죠. 그게 당연한 일인데도 무사히 커서 나갈 때 참 좋아요.”
“두 번이란 없다” 초심 지켜야
사육사와 동물의 교감은 다양한 방법으로 이뤄진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나 강아지 같은 애완동물은 사람하고 같이 사니까 많이 쓰다듬고 만져주어야 좋지만 사자나 호랑이 같은 야생동물의 경우 있는 그대로 자기의 본성대로 크도록 가급적 개입을 적게 해야 한다. 또한 원숭이처럼 사람의 친구가 되어야하는 동물에겐 사육사가 더욱 친근하게 대한다. 손길이 얼마나 많이 닿느냐보다 동물의 상태와 처지를 고려한 수위조절, 그리고 손뿐 아니라 말과 눈빛을 통한 다양한 방법의 애정표현이 중요하다고.
“저는 애들하고 중얼중얼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이죠. 말썽을 피워서 ‘이노옴~’하고 단호하게 나오면 알아차리고 장난을 안 쳐요. 또 ‘그래그래’하고 받아주면 응석부리고 기고만장해서 날뛰고요.”
그렇게 1년간 부대끼며 정이 흠뻑 들어버린 아기동물들을 원래의 보금자리로 보낼 때는 아쉬움이 크다. 하지만 마치 선생님처럼 해마다 새로운 아기동물과 만나는 이점도 있다. 사자 10마리면 10마리 모두 다 상태가 달라서 매번 새로운 경우를 겪고 배우게 된다. 때문에 다른 건 몰라도 “동물 살려내는 데 있어서는 자신 있다.”고 그는 말한다.
“살아 있는 생명에 두 번이란 없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돌다리를 두드리는 심정으로 살피고 또 살피고 섬세한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해요. 양심에 충실해서 극진한 보살핌이 있어야 한 생명이 자라니까요.”
* 대상그룹 사외보 <기분좋은 만남> 테마인터뷰 2009년 2월 / (사진은 핸드폰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