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문제야’라는 지식인의 언어는 쓰지 않는다. ‘뭐 할 일 없을까’ 두 눈 반짝이며 골몰한다. 승용차도 없고 냉장고도 진작에 없앴다. 쌓아두고 연연하지 않는다. 한줄기 바람처럼 가붓하다. 일요일이면 인사동에서 환경티셔츠를 쓱쓱 만들어 나눈다. 과도한 포장을 줄이고 디자인은 간소화한 '친환경제품'을 선보인다. 머플러 메고 등산화 신고 일상 곳곳에서 그린디자인 퍼포먼스를 즐긴다. 지구오염과 디자인의 불가분한 관련성을 간파해 ‘그린디자인’ 개념을 착안한 윤호섭 국민대 교수이야기다.
가방에서 주섬주섬 핸드폰을 꺼내는데 낙엽뭉치가 딸려 나온다. “느티나무 잎인데 나무냄새가 좋다”며 한번 맡아보라고 권한다. 그의 손 위의 낙엽이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바스락댄다. 신통하고 신기하다. 낙엽을 비닐봉투에 잘 보관해두면 일 년 내 내 집안에서 두고두고 숲 향기가 난다며 인심 좋게 한 주먹 챙겨준다. 명함도 더없이 친환경적이다. 리플렛 자투리 공간으로 만든 재생지로 콩기름 인쇄했다. 가운데 초록색으로 홈페이지 주소 greencanvas.com만 새겨져 있고 매직으로 이름을 손수 써서 완성한다. 이렇게 그의 손에 닿으면 무엇이든 죽어서도 되살아나고 척척 쓰임새를 갖춘다. 예술의 향이 덧입혀져 그린디자인 작품으로 뚝딱 거듭난다.
잘 나가는 광고디자이너, 환경에 눈뜨다
초등학생 때다. 반 아이들이 줄서서 그에게 그림을 부탁했다. 공책 뒷면에 서부영화에 나오는 마후라 휘날리는 카우보이를 그려주고 주스와 과자를 얻어먹곤 했다. 재미가 솔솔 했다. “천재적 재능은 아니었지만” 형님이 화가였고 형제들이 고루 예체능에 재능이 있었다. 6.25 전쟁 직후 대입을 치렀다. 워낙 어렵고 힘든 시절인지라 일단 ‘돈을 벌기 위해’ 순수미술보다는 응용미술로 진로를 택했다. 당시 서울대 응용미술과 입학생 20명 중에 남학생은 그를 포함해 4명뿐이었다. 작업실에 틀어박혀 캔버스와 물감과 씨름하기보다 농구와 방황으로 ‘설렁설렁’ 대학시절을 보냈다.
“대학 졸업 후 롯데제과, 대우, 오리콤 등의 기업체에서 일했어요. 대우는 무역업을 하니까 세계를 무대로 일했고 광고대행사에서도 글로벌브랜드의 외국클라이언트들을 접할 기회가 많았어요. 그 때부터 마음속에서 경계선이나 국경, 종교, 민족이 다 없어졌어요. 아이디어의 가능성이 넓어진 거죠.”
광고디자인 분야에서 탄탄한 입지를 확보해나간 그는 기질적으로 조직생활이 편치는 않았으나 “실력보다는 운, 그리고 주위의 도움으로 만사가 수월했다.” 승승장구 기량을 발휘하던 그가 본격적으로 환경디자인에 눈을 뜨게 된 것은 1991년이다. 설악산에서 열린 세계잼버리대회 때 엠블렘과 행사 포스터 제작을 맡은 그는 당시 거기 참가했던 일본 호세대의 한 학생과 귀한 인연을 맺는다. 연배는 한 세대 아래였지만 생각이 건전하고 ‘디자인’이라는 공통의 화제가 있어 대화가 잘 통했다. 원체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던 그 학생은 한국의 환경운동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질문을 해왔다. 윤 교수는 당시 환경에 대해 별반 의식이 없었는데 그 학생에게 답해주려고 알아보는 과정에서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그 후부터 디자인도 환경을 중심에 놓고 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전후좌우를 보게 됐다.”
과도한 디자인, 전단지 등 환경오염 주범
인류최대의 과제인 생태계보호에 대해 ‘아카데미’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싹텄고 국민대 조형대학장으로 부임한 1995년부터 바로 실행에 옮긴다. 디자인에 생태·환경 문제를 접목한 그린디자인과를 만들어 조형대학과 디자인대학원에서 환경예술을 가르치고 있다.
“디자인은 생각보다 환경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어요. 디자이너가 만들어 내는 제품, 광고, 전단지 하나하나가 우리의 환경을 해치는 주범이거든요. 디자인이 환경문제 개선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소신을 가지고 그린디자인 교육에 임합니다.”
윤 교수는 지구온난화 같은 생태환경만이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경쟁이나 과소비 같은 ‘영적환경’ 오염의 심각성도 언급했다. 대학원 학생들이 조사한 ‘영적환경오염’의 사례에 의하면 가짜 명품의 판매 대금이 마약거래에 쓰이고 있다고 말하며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재능을 그런 데 쓰면 안 된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처럼 영적이든 생태적이든 모든 환경오염은 인간에 의한 것이 분명하고 인간정신의 정도이탈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를 디자인적으로 포용하고 교화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 그는 늘 고민한다.
그렇게 탄생한 윤호섭의 그린디자인은 따뜻하고 참신하다. 2005년부터는 매해 국민대 디자인대학원 학생들과 ‘친환경상품전시회’를 개최해 의미 있는 행사로 자리 잡았다. 지난 10월 서울디자인올림픽에서는 버려진 헌 냉장고에 소금이나 숯을 넣어 음식의 부패 속도를 늦출 수 있도록 한 ‘소금냉장고’도 선보였다. 재생지에 숫자만 큼지막이 적힌 ‘환경달력’은 미니멀리즘의 정수를 꽃피운다. 매달 숫자 모양이 다르다. 지난 일 년 간 우연히 만난 이들에게서 받은 것을 조합했다. 또 일요일과 공휴일의 날짜는 공란이다. 색을 한 가지 덜 사용해도 되니 절약이 되고, 사용자가 직접 써넣음으로써 소비자가 디자인에 참여한다는 취지다. 365일 지속적인 녹색향기가 퍼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아름다운가게’에서 헌옷 티셔츠 1,000벌을 기증받아 3주간 전시장을 찾은 시민들에게 초록색 그림을 그려 나누어주었다.
7년째 인사동 티셔츠 퍼포먼스
인사동 환경티셔츠 퍼포먼스도 매년 4월부터 9월까지 열린다. 시민들이 가져온 티셔츠에 녹색 그림을 그려주는데 7년째 진행 중이다. 지방에서도 올라오고 외국인도 줄을 서는 등 호응이 뜨겁다. 아낌없이 퍼주는 나무가 된 그에게 ‘무료무한증정’의 이유를 묻자 “돈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고 운 좋게 재능을 타고 났으니 나누는 것”이라며 “더군다나 아름다운재단 티셔츠는 시민들이 기증한 것을 시민들에게 돌려준 것 뿐”이라고 말한다.
그린디자인 전령사로 전방위적 활동을 펼치는 그이지만 자신의 일상이 너무 과장되게 전달되는 것이 부담스럽다며 손사래를 친다. 환경문제에 대해 발언하는 것도 가급적 꺼린다. 과연 환경문제 심각성을 과연 모르는 사람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막연히는 다 알지만 같이 남극에 가보기 전에는 지구온난화를 인식하지 못하죠. 환경문제는 지식이고 상식이 됐어요. 이야기를 하면 지루해져요. ‘그게 문제다.’ ‘구조적인 문제다’ 이러면서 승인하고 회피하죠. 사람들이 저보고 뭐 실천할 것 좀 알려달라는데 본인들이 더 잘 알고 있어요. 반찬 안남기기만 해도 큰 실천이잖아요. 환경사랑의 시작이자 기본이고. 소로우의 <월든> 정도는 읽어봐야죠.”
없다고 불편하지 않다
2000년에 들어서면서 그는 디자인에만 적용하던 환경의식을 일상의 영역으로 넓혔다. 일명 ‘에너지 독립선언’의 과감한 결단이 시작된 것. 조심스레 냉장고 이야기를 꺼내자 “별 일도 아닌데 스캔들이 됐다”며 말꼬리를 돌린다. 하지만 8년 전 윤 교수가 냉장고를 없앤 일화는 유명하다. 에어컨이나 TV는 안 쓸 때 끌 수라도 있지만 냉장고는 24시간 켜둬야 하는 전기를 많이 쓰는 제품이라는 것이 ‘방출’의 이유다. 굶는 사람도 있는데 냉장고에 음식을 쌓아두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보름만 안 쓰면 적응한다.”고 대수롭지 않게 얘기한다.
이밖에도 평소 자가용이 아닌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옷도 수수한 차림만 고집한다. 만 원짜리 바지인데 하도 많이 입어서 짤막해졌다며 솔기를 매만진다. 며칠 밤샘작업을 하고 추레한 행색으로 거리에 나가면 어떤 때는 노숙자로 보는 사람들도 있을 지경이라며 웃는다. 승용차도 안타고 옷도 안사고 골프를 안친다. ‘교수님’ 신분이지만 소위 품위유지비가 전혀 들지 않는 셈이다. 돈은 주로 “당구 치고 밥 사먹는 데 쓴다” 부의 증식에는 아예 관심이 없단다.
“걷는 게 좋아요. 다리 근육과 관절이 걸으라고 있는 건데 중력이 작용하는 지구에서 얼마나 경이로워요. 한발 한발 내딛을 때 느끼는 감동을 차에다 빼앗길 순 없죠. 좁은 차 창문에 갇힌 시야도 넓어지고. 자전거 타기는 또 생명체의 퍼포먼스지요. 대자연의 순환에 순응하며 세상의 길을 음미하는 녹색교통이에요. 자전거 타고 골목골목 안 가본 데가 없어요.”
애초에 ‘그린디자인’ 개념을 창안한 건 그이지만, 이젠 ‘그린감수성'이 그의 삶을 디자인 한다. 더 가볍고, 더 적게, 더 자유롭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