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랴 치료하랴 바쁜 나날을 보내는 신형진씨(연세대 컴퓨터과학과4). 척추성근위측증으로 태어나 호흡곤란의 위험을 안고 살아가던 그가 소프트웨어개발자의 꿈을 안고 학업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은 강성웅 교수의 호흡재활치료 덕분이다. 부모님은 감사의 마음으로 연구기금을 냈다. 희망의 꽃씨다. 근육병환우들이 다 같이 꽃처럼 환하게 웃는 그날을 위해.
‘호흡재활치료’ 받으며 '안구마우스'로 공부
영동세브란스병원 별관 앞마당. 10월의 투명한 햇살이 형진씨의 희고 가는 손등 위로 살포시 스민다. 아들의 손을 잡은 어머니 이원옥 씨는 웃으며 말한다. “우리 애가 풍상을 안 겪어서 손이 이렇게 고와요. 그런데 형진이는 뭐래는 줄 아세요? 후배가 왜 그렇게 손이 예쁘냐고 물어봐서 엄마 영양크림을 몰래 발라서 그렇다고 했대요.” 형진씨도 웃고 어머니도 웃는다. 어머니는 형진씨가 남다른 유머감각으로 항상 웃음을 선물한다고 말했다. 형진씨 아버지도 이공계 출신이고 유머감각이 뛰어난데 형진씨가 아버지를 쏙 빼 닮아 ‘단순하고 낙천적’이라는 것. "만약 형진이가 나는 왜 아프냐고 물으면 무어라 답해야하나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이 왜 아픈지 무슨 병인지 묻지 않았다"며 어머니는 애틋한 눈길을 던졌다.
형진씨는 태어나서부터 척수성근육위축증(Spinal Muscular Atrophy)을 앓았다. SMA는 근육에 힘이 없어서 제대로 앉지 못하고 나중에는 호흡기관이 약해져서 항상 호흡곤란의 위험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병이다. 워낙 희귀질환이라 고칠 방법도 없고 몸은 약해졌다. 초등학교도 못 갈 줄 알고 한글도 가르치지 않았던 어머니는 초․중․고등학교 모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형진씨를 등에 업고 등하교를 시켰다. 병원 입원으로 장기결석도 숱하게 했고 고등학생 때는 수업도중 숨이 막혀 119에 실려 가기도 했다. 주변에서는 공부보다 건강이 우선이라고 우려했지만 어머니와 형진 씨의 학구열을 수그러들지 않았고, 그는 2002년 당당히 대학생이 됐다.
형진씨의 캠퍼스 생활은 여느 학생들과 비슷하다. 대필도우미와 보조공학기기 등으로 강의를 듣고 교재의 중요한 부분은 스캔을 해서 본다. 집에서는 눈으로 조절하는 안구마우스로 혼자서 컴퓨터를 작동해 시험공부와 과제물을 챙긴다. 이메일을 통해 인터뷰도 능숙하게 해낸다. 뿐만 아니다. 학교선배가 창업한 회사의 웹페이지 제작 아르바이트도 하고 개인 블로그와 미니홈피도 운영하는 등 더없이 알찬 청춘시대를 보내고 있다. 학업성적도 뛰어나 주위의 기대를 모으며 ‘한국의 스티븐호킹’으로 불린다.
근육병환자 ‘영동세브란스로 오세요’
형진씨는 호흡기관이 약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폐렴에 걸리기 쉽다. 지난 2004년 여름에는 미국 할머니댁에 갔다가 흡인성 폐렴과 동반된 호흡부전으로 인근 미국병원에 머물다가 미군이 제공한 특별수송기를 타고 귀국하는 바람에 뉴스에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했다.
“미국에서 작은 동네병원이었기 때문에 치료 장비가 없었어요. 형진이 상태가 워낙 위험해서 일반 비행기를 탈 수도 없었지요. 매일 해질녘 병원 창가로 철새가 떼 지어 날아가는 걸 보면서 우린 언제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려나 한숨짓곤 했지요.”
그렇게 두 달여를 보낼 즈음 어머니는 미군용 비행기를 생각해냈다. 주한미군 수송을 위해 미국에서 한국으로 빈 비행기가 다닌다는 뉴스 내용이 문득 떠오른 것이다. 그걸 형진이가 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수소문했고 형진이는 ‘하늘을 나는 앰블란스’를 타고 무사히 귀국할 수 있었다.
이후 몸 상태가 악화돼 학교를 휴학한 형진씨는 호흡기 질환으로 18개월 동안 삼성의료원에 입원해 있었다. 그러다가 2006년 3월 지인의 소개로 영동세브란스병원 재활의학과 강성웅 교수를 만나면서 치료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았다.
“강교수님에게 호흡재활 치료를 받고 일주일 만에 낮에는 호흡기 없이 지내게 됐습니다. 밤에만 호흡기를 착용하니까 낮에 활동이 가능해졌고 2년 만에 복학했죠. 호흡재활이 아니었다면 학교는커녕 집에도 못갈 뻔 했으니 정말 감사하죠.”
어머니는 호흡재활치료가 널리 알려지길 간절히 소망했다. 삼성의료원에 입원해 있을 당시 ‘그곳에서도 치료가 안 되면 우리나라 어느 병원에서도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며 ‘왜 호흡재활을 아무도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는지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의료계의 폐쇄성에 대해서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우리가 그랬듯이 호흡재활치료법을 모른 채 고통을 헤맬 근육병 환우들이 아마 지금도 많을 것입니다. 오죽하면 다른 보호자랑 그런 얘길 했어요. ‘근육병환우들 영동세브란스로 오세요’라고 쓴 머리띠를 두르고 큰 길 네거리로 나가고 싶을 정도라고요.”
‘호흡재활치료’ 발전위해 연구기금 기부
그 절실함을 담아 형진씨 부모님은 재활의학과에 근육병치료병 연구기금을 기부했다. 어머니는 형진씨를 포함해 ‘집안에 대학생이 3명’이라고 했다. 형진씨 누나와 여동생은 유학과 교환학생 자격으로 외국에서 공부중이다.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한 상황은 아니지만 그래도 형진씨 아버지가 아직 현업에 있고 상대적으로는 나은 편이라 용기를 냈다고 터놓았다.
“연구가 잘 진행되면 다른 근육병 환자들과 우리 형진이까지도 혜택을 공유하겠지요. 당장 연구 성과가 가시화되진 않겠지만 올해 아니면 내년 그 다음해나 언젠가는 열매를 거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부금을 내니까 기분이 날아갈 것 같이 너무 좋습니다.”
어머니는 가수 김장훈 씨가 왜 계속 기부를 하는지 그 맘을 알겠다며 형편이 좀 나은 보호자들이 솔선해서 기부하는 문화가 정착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또 가끔씩 형진씨에게 “말할 줄 알아요?”라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는데 “우리 아들 대학생이에요”라고 말하면 흠칫 놀란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거두고 예의를 갖춰주길 간곡히 당부했다.
* 영동세브란스병원보 2008년 11월호
(지면한계상 게재되지 못한 취재내용을 더했다. 형진씨 어머니가 최선을 다해 인터뷰에 임해주셨다. 이유는 단 한 명이라도 '호흡재활'을 알길 바라고, 조금이라도 '기부풍토'가 조성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하셨다. 어머님 말씀 중에 '의료계의 폐쇄성'에 깊이 공감했다. 왜 삼성의료원에서는 18개월이나 차도를 보이지 않는 형진이에게 '영동세브란스의 호흡재활'을 말해주지 않았을까.아무쪼록 많은 근육병 환자들이 호흡재활로 새삶을 살아갈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