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스> 시간을 견디는 사랑이 있을까

[극장옆소극장]

처음 당신을 알게 된 게 언제부터였던가요.
이제 기억조차 까마득하군요.
당신을 처음 알았을 때,
당신이란 분이 이 세상에 계시는 것만 해도 얼마나 즐거웠는지요.
여러 날 밤잠을 설치며 당신에게 드리는 긴 편지를 썼지요.

처음 당신이 나를 만나고 싶어한다는 전갈이 왔을 때,
그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아득히 밀려오는 기쁨에 온몸이 떨립니다.
당신은 나의 눈이었고,
나의 눈 속에서 당신은 푸른빛 도는 날개를 곧추 세우며 막 솟아올랐습니다.

그래요, 그때만큼 지금 내 가슴은 뜨겁지 않아요.
오랜 세월, 당신을 사랑하기에는 내가 얼마나 허술한 사내인가를 뼈저리게 알았고,
당신의 사랑에 값할만큼 미더운 사내가 되고 싶어 몸부림했지요.
그리하여 어느덧 당신은 내게 '사랑하는'분이 아니라, '사랑해야할 분'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젠 아시겠지요.
왜 내가 자꾸만 당신을 떠나려 하는지를.
사랑의 의무는 사랑의 소실에 다름아니며,
사랑의 습관은 사랑의 모독일 테지요.
오, 아름다운 당신,
나날이 나는 잔인한 사랑의 습관 속에서 당신의 푸른 깃털을 도려내고 있어요.

다시 한번 당신이 한껏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는 모습이 보고 싶습니다.
내가 당신을 떠남으로써만......당신을 사랑합니다. 
 


이성복 시인의 글이다. 내가 많이 아끼는 시집 <남해금산> 뒷표지에 적혀있다. 과연 '시간을 견디는 사랑이 있을까' 궁금했다. 이 글은 사랑에 관한 모든 답을 정리해주었고 꿈을 심어주었다. 가을날, 햇살 좋은 아침이면 한번씩 소리내어 읽어보곤 한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재재작년에도..가을이면 어김없이 생각난다. 읽다보면, 너무 맑은 하늘에 눈이 시리듯 코끝이 시큰해진다. 끝까지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거 같다. 밤에도 슬프다. 글을 쓰다가 손끝이 시려지면 시집을 꺼내 읽으며 몸을 덥힌다. 가장 빨리 데우기 위해선 이성복의 시집이 좋다. 특히 이 글이. 사람은, 사랑을 하면 사랑을 함부로 대한다. 집착하고 훼손한다. 그런데 이 제목없는 글에서는 사랑을 소중히 대한다. 사랑에 대한 예의바름, 오롯함, 솔직함. 그것이 아름다워서 가끔씩 좋은 사람에게 이 시집을 한권씩 분양해준다. 아름다운 사랑, 멀리 멀리 민들레 꽃씨처럼 퍼져나가라고. 이 가슴에서 저 가슴으로 피어나라고.   



영화 <원스>는 어쩌면 이성복의 글이 영화로 환생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절묘했다. 한 편의 시처럼 아름답고 간결하면서도 여운이 깊은 영화였다. 시간을 초월한 사랑, 아닌 시간을 견딘 사랑이다. '사랑의 의무는 사랑의 소실이며, 사랑의 습관은 사랑의 모독'임을 아는 이들의 사랑. 그래서 아름답고 눈물겹다. 피아노가 선율을 만들듯이 무수한  감정의 결을 생성해내는 사랑. 영원한 사랑. 필시 나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피아노 한 대 선물하고 떠나리라 다짐했다. 그래서 또 나는 '도를 믿으십니까?'하는 사람처럼 떠들고 다녔다. '원스 보셨어요?' 이 가슴에서 저 가슴으로 퍼날랐다. 시집이 아니라 아침저녁으로 꺼내볼 수 없으니 음악을 틀어놓고 살았다. '원스'가 핏줄을 타고 온몸을 돌아다녔다. 입김으로 먼지로 우주의 공기로 흩날렸다. 한없이 부푼 선율은 '凋落하는 가을빛' 따라 낮은 숨결로 잦아들었다. 며칠 전부터 몸에서 'If you want me'가  들린다. 어미들이 매년 출산일즈음에 산통을 겪듯이, 나는 가을을 알아차렸다. 가슴으로 가을을 낳는다. 이성복의 시집과 <원스>를 쌍둥이처럼 품고 있다. 다시,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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