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붐한 안개 자욱한 어느 겨울날. 잿빛 대기와 아스팔트 뚫고 외로운 수직선 하나 걸어온다. 귀에는 이어폰 목에는 목도리 손에는 냉커피, 해사한 얼굴엔 눈망울이 그렁그렁 걸렸다. <시민과 언론> ‘이미지뒤집기’의 필자다. 매체사진비평모임에서 활동하다가 내친김에 영상대학원에 진학한 소신파다. 느리고, 고집스럽고, 삐딱하게 그녀는 모색한다. ‘이미지뒤집기’ 혹은 ‘인생역주행’의 묘안을.
이미지뒤집기 배우는 ‘미애 氏의 일일’
설상가상이다. 엄동설한이건만 냉커피에 빨대 끼워 수시로 목을 축인다. 일본소설에서 갓 튀어나온 듯한 담백하고도 나른한 분위기의 그녀. 어쩌자고, 그저 무람하게 웃기만 한다. 침대처럼 편안한 침묵이 십여 분 흘렀다. 심심풀이 화두를 몇 가지 던졌다. 올해의 드라마를 뽑는다면? “<고맙습니다>” 대선에 누구를 뽑을 생각인가? “비밀입니다.” 한 줌 따스한 입김과 한 줌 난해한 눈빛이 뒤엉킨다. 고맙고도 비밀스러운 이야기의 실타래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본 걸 말로 하라고?
“민언련에는 2004년도에 친구 따라 처음 왔어요. 전공이 사회학인데 NGO를 복수전공 했기 때문에 시민운동에 관심이 많았어요. 과제로 민언련에 대한 것을 쓴 적도 있고, 한 때는 기자가 될 꿈도 있었기에 겸사겸사 왔죠. 저는 학생운동은 안 했거든요. ‘욕심내지 말고 나누며 살자’는 평소의 다짐대로 내가 할 수 있는 걸 찾아 꾸준히 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요.”
그 친구가 매체사진비평분과의 회원이었던 터라 그녀는 자연스럽게 모임에 합류했다. 하지만 정작 친구는 곧 그만두었고, 옥미애 회원은 2년 간 즐겁고 뜨거운 민언련 활동기를 열어갔다.
매체사진비평분과는 말 그대로 각종 매체에 오른 사진이나 이미지를 비평하는 모임이다. 그가 처음에 갔을 때도 사진 한 장을 펴놓고는 ‘사진에서 뭐가 보이는가.’에 대해 저마다의 느낌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미지를 보고 느낀 걸 언어로 개념화해서 표현하기가 무척 힘들고 어려웠어요. 제가 원래 말을 잘 못하고 얼버무리거든요. 그런데 계속 하다보니까 되는 부분도 있고 재밌더라고요. 사람들하고 얘기 하면서 생각이 정리되고 비슷한 느낌도 공유하고, 또 이색적인 의견에 수긍도 하고요.”
‘김선일 씨 피살… 왜 하필 여동생 사진일까’
그녀는 매체사진비평분과 활동을 통해 이쪽 분야에 흥미를 느껴 영상대학원에 진학했다. 그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을 얘기한다.
“2004년 김선일 씨 피살사건 다음 날 각 신문 1면에 김선일 씨의 울부짖는 여동생 사진이 실렸어요. 온몸이 눈물에 젖은 사진인데 눈에 확 들어오고 인상적이었죠. 어머니도 아버지도 아니고 왜 여동생일까. 의미는 차이에서 발생한다고 하잖아요. 다각도로 따져봤어요. 한용운의 시에서도 님은 떠났다고 하는 시적화자가 여자이듯이 우리의 국민정서가 젊은 여성을 상실의 주체로 인식하는데 익숙하다는 걸 알았지요.”
그녀의 반짝이는 호기심과 뭉근한 열정, 거기에다 전문적인 학식을 지닌 당시 김금녀 사무처장의 조언이 더해져 매체사진비평 활동은 탄력을 받게 됐다. 분과에서 논의된 주옥같은 이야기는 텍스트로 다듬어져 <미디어오늘>에 매월 1회 실리곤 했다. 그녀가 초고를 쓰면 김금녀 처장이 검토하는 식으로 글쓰기 작업이 진행됐다. 이는 민언련의 격월간 간행물 <시민과 언론>의 ‘이미지뒤집기’ 칼럼으로 이어졌다.
광화문 ‘망치질하는 사람’ 아이러니한 느낌이란
‘이미지뒤집기’는 처음엔 주로 신문에 나온 사진만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는데 차츰 다양한 이미지로 대상을 확대했다. 지난 9·10월호에는 공공예술 분야를 시도했다. 씨네큐브가 있는 광화문 흥국생명 빌딩의 ‘망치질하는 사람’이 주제였다.
“높이 22미터, 무게 50톤의 실루엣만 남아 있는 거인이 망치로 1분 17초마다 세상을 향해 내리쳐요. 현대인에게 각성을 요구하는 절대자의 모습 같기도 하고, 또 쉼 없는 움직임이 애처롭고 홀로 선 모습에 고독을 느끼죠. 또 부자건물 에 서 있는 그는 경제 성장의 최전방에 선 노동자를 닮았어요. 아이러니한 그 복합적인 느낌을 얘기했어요.”
글을 통해 그녀는 넌지시 속내를 드러낸다. 행동하지 않는 지식인, 패배의식, 불안감과 그래도 아직 청춘이라는 정체성 사이에서 고착되었던 ‘나’가 잠시 숨을 달래기 위해 멈춰선 곳이 하필 ‘망치질하는 사람’ 아래라고. 그가 찍은 곳을 내려다보는 ‘나’는 저기 어디의 해방구가 아닌 여기에 굳건히 박혀볼까 어쩔까나 읊조린다.
방황… 모색… 인생역주행 꿈꾸는 늦깎이 청춘
고백대로, 그녀는 미래를 고민 중이다. 이미 와 있으나 아직 눈치 채지 못하는 시간 ‘미래’의 여기저기를 찔러보며 구멍을 내고 있다. 한 학기를 남겨두고 있는 대학원의 석사논문 주제도 고르는 중이며 장기적인 진로도 탐색 중이다.
본디 느리고 고집스러운 성정을 지닌 탓에 쉬이 결정되는 게 없단다. 마이너의 가치를 탐하고 인생역주행을 수시로 꿈꾼다. 무작정 반대로 가고자 하는 반골기질이 늦깍이 청춘의 ‘방황’에 한 몫 하는 셈이다.
“좋아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열심히 찾고 있지만, 영원히 못 찾을까봐 걱정”이다. 내친김에 박사과정까지 공부를 더 할까 싶기도 하지만 일단 취직하는 걸로 큰 틀은 잡아놓았다. 책상에만 앉아 있으니 멈춰 있는 느낌이고 사람이 점점 서늘해지는 것 같다며 쓰윽 웃는다.
“바르트 아저씨가 자본주의의 폐단을 폭로하기 위해 이미지비평 한다고 했는데 나도 그런 거 잘 해보고 싶어요.” 총기와 한기가 적재된 그녀다운 마무리 발언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편지가 한통 와 있다. ‘제가 원래 낮술 마신 사람처럼 유쾌한데 오늘 너무 우울미애만 보여드린 거 같아요. 다음에 유쾌미애를 보여드릴 기회가 있겠죠…’ 상식을 전복하고 예상을 배반하는 ‘미애 씨의 이미지뒤집기’는 계속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