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문화제가 하도 재밌어 중간에는 자리를 뜨지 못하고 마지막에 해산하는 장면을 찍었다.>
“와, 진짜 신기하다. 투쟁가 한 번을 안 부르고도 두 시간이 지났잖아. 근데 지루한지 모르겠다. 집회 정말 재밌다.”
27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물문화제에 함께 간 선배가 남긴 소감이다. 맞장구를 쳤다. 2분 같은 두 시간이었다. 고작 지하철 한 정거장 지난 기분이다. 서울 도심 한 복판 장엄한 빛무리 속에서 세상과 단절된 달콤한 한 때를 보냈다.
촛불문화제는 번듯한 음향이나 조명시설도 없다. 이름난 연예인도 안 나온다. 오직 촛불과 갑남을녀만이 넘실대는데, 그 자체가 천연조명이고 고성능 음향기기고 한류스타들이다. 그들이 제조하는 ‘명품 대사발’은 풍자와 기지로 가득했다.
7시가 조금 넘자 사회자가 나왔다. 차돌처럼 단단한 음성의 여성분이었다. “오늘 뉴스를 보니까 광우병쇠고기수입반대대책회의 간부를 연행한다고 하더라. 어제는 이름도 안 밝혔지만 이판사판이다 잡아가라.”며 시원스레 이름을 밝히고 인사를 꾸벅했다. 힘찬 격려의 박수를 받은 그는 자발적으로 구성된 의료봉사대와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 등의 회원들이 주위에 있다며 긴급한 상황에 처할 경우 도움을 요청하라고 전했다. 곧바로 시민들의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시민어록을 중심으로 현장의 분위기를 전해본다.
어록1. 양호실도 민영화되는 거 아냐?
첫 번째 발언자는 다음 아고라에서 나온 분이었다. 현장에 나오지 못하는 분들의 성금으로 마련한 것들이라며 초코파이와 물티슈 등 물품을 전달했다. 또 짤막한 게시물을 대신 읽어 무대를 따스하게 데워주었다.
다음 발언자는 “저를 기억하는 분이 있으실 거예요.”라며 말문을 텄다. 이날이 7번째 참석이라는 그는 자칭 ‘청계광장 김제동’이라고 소개했다. 이명박 대통령을 ‘쥐박이’라고 칭하며 친구들과 수다 떨듯 거침없이 발언수위를 높였다. 한 어르신은 “그래도 대통령인데 너무 한 거 아녀!”라며 언짢음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에게서 날선 ‘악의’보다는 다듬어지지 않는 ‘혈기’에 가까웠다. 마지막엔 고품격 풍자로 실추된 이미지를 만회했다.
한 청년은 ‘상도동에 사는 백수’라며 위풍당당 자신을 소개했다. 요즘 시내에 자주 나오는데 은근히 차비가 많이 들어 부담된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또 시간이 많아서 집에서 신문을 샅샅이 보고 있는데 조선일보의 편파보도가 심하다고 지적했다.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면 앞으로 ‘조선일보’ 구독하라고 할 때 자전거 대신 미국산 찜갈비나 T본 스테이크를 제공하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다음 발언자도 촛불문화제를 축소 보도하는 친정부 성향의 언론에 대해 한껏 목소리를 높이고는 “저기 동아일보, 조선일보는 매일 자기네 회사 코앞에서 벌어지는 특종을 놓치고 있다.”고 비꼬았다.
어록3. 조중동, 회사 코앞에서 특종 놓치냐 “쯧쯧”
참여연대 회원이라는 50대 가량의 여성분도 나왔다. “제가 너무 떨려서 좀 적어왔습니다.”혈기방장한 청년들과 달리 ‘여사님’ 톤의 음성 자체만으로 촛불은 웃음으로 일렁였다. 주위를 둘러보며 아들 같은 전경들이라고 연대의 뜻을 표하고는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대해 가느다란 떨림 섞인 음성에 실어 조목조목 짚어냈다. 구호도 적어왔다며 연습을 시키기도 했다.
“제가 그날이~ 하면 여러분은 올 때까지~라고 해주세요.”
그런데 선창이 매끄럽지 못하자 여기저기서 웃음과 박수가 터졌다. 가까스로 구호를 마친 그는 준비해온 게 한 가지 더 있다며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를 히든카드로 제시했다.
“아니, 요즘 젊은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거짓말이야~ 하는 노래가 있는데 내가 ‘웃대가리’만 가사를 바꿨으니 같이 불러요오~”
발언자로 나선 시민은 앞에서 진땀을 흘렸지만 시민들은 큰 박수와 노래로 열렬히 호응했다.
어록4. 엄마한테 쇠고기 사달랬지 이명박한테 사달랬나
교복 입은 여고생이 등장하자 취재진의 카메라가 일제히 그를 향했다. 자신을 “꿈 많고 목표가 뚜렷한 학생”이라고 똑 부러지게 소개해고는 학업에 전념할 수가 없다. 교과서에서 배운 거랑 현실이 틀려도 한참 틀려 답답하다는 등의 의견을 간명하게 피력했다.
엄마한테 혼날까봐 사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다는 여학생도 3분여 발언을 하고는 마지막에 멋진 마무리로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내가 언제 엄마한테 쇠고기 사달라고 했지 이명박대통령한테 쇠고기 사달라고 했습니까~~”
또 어느 여성 노동자는 이명박만 생각하면 우울하다가 여기만 나오면 힘이 나고 기분이 좋아진다며 고백했다.
“여러분, 저 조울증 맞나요?”
성별 종교 연령을 넘나들은 시민발언은 갈수록 무르익었다. 들꽃 향린교회 목사님도 오셨다. 좌우에 동료목회자가 ‘이명박 OUT'이라는 피켓을 들고 보필하며 서 있는 가운데 그는 침착하게 이야기를 풀어갔다.
어록5. 이명박을 석방하라고요? 너무 앞서 갑니다
“이명박 정부가 광우병 때문에 미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을 계속 저지르고 있습니다. 오늘 새벽 최재봉과 이명국 두 목사가 경찰이 여학생을 끌고 가는 것에 항의하다가 연행됐다. 그래서 오늘 낮 우리 목사 50여명이 서대문 경찰서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참 오랫만에 한 집회였습니다. 그런데 한 얼빵한 목사가 구호를 외치다가 글쎄 ‘이명박 석방하라’고 말했습니다.”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목사님은 “앞서가도 너무 앞서간다.”고 예의 그 은혜로운 음성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목사의 말은 힘이 있습니다. 머지않아 그런 일이 발생할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예쁘게 굴어야 석방하라고 하지 지금 같아선 석방하라고 외쳐주지도 않을 것입니다.”
야구 모자를 눌러쓴 젊은 주부도 등장했다. 24개월과 4개월 된 딸아이의 엄마인데 “마음 같아선 매일 나오고 싶지만 이렇게 친정엄마가 봐줄 때나 외출할 수 있다.”고 운을 뗐다. 대학교 때 데모 한 번 해본 적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나 같은 사람을 거리로 내몰았다며 ‘이명박’을 촛불문화제의 배후로 지목했다. 그는 강제진압 등 쇠고기 정국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고는 의료민영화의 문제 등 삶에 파고들 재앙에 대해 염려를 드러냈다.
“둘째가 태어날 때부터 아팠는데 지금 많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저는 부자는 아니지만 가난하지도 않습니다. 아이가 아프면 집 팔아서라도 치료하면 됩니다. 그런데 병원에 가면 아픈 아이들 너무 많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도 많습니다. 의료보험 민영화가 이뤄지면 그 아이들은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우리 열심히 싸워서 꼭 좋은 나라를 아이들에게 물려줍시다.”
이밖에도 “어느 포털사이트에 ‘쥐새끼’란 말이 금지어라고 합니다. 아니 쥐새끼를 쥐새끼라고 하지 뭐라고 한단 말입니까” “전경여러분, 물론 상부의 지시에 의한 진압이라고 하지만 여기에는 여러분의 판단도 개입되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방패로 내리찍는 과격한 행위는 자제해 주세요.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등등 위트 넘치고 지혜로운 발언이 이어졌다.
촛불민심의 <화려한 외출> 재미와 의미가 넘치는 퓨전극
촛불문화제의 전체적인 구성은 마치 최장수 TV프로 <전국노래자랑>을 연상케 한다. 유쾌한 아마추어리즘과 좌충우돌 겉꾸미지 않은 질박함이 생생한 재미와 감동을 준다. 내용은 <가족오락관>의 돌발성과 우연성에 <백분토론>의 진지함과 긴장감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자유발언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김수현 드라마의 ‘명품 대사발’을 구사한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유익함과 유쾌함의 ‘촛불민심 퓨전극’다.
사실 그간 매체를 통해 경이로운 촛불의 향연을 경이롭게 지켜보기만 했다. ‘나 하나 빠져도’ 척척 잘 되고 있으니 안심하며 마음으로 박수만 날려댔다. 그런데 강경진압으로 연행자가 생기고 나니 도덕 감정이 꿈틀거렸다. ‘머리수라도 채우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청계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촛불문화제는 언론으로 접하던 것과는 비할 수 없는 감동드라마를 연출했다. 촛불 밝히던 두 시간 동안 참 많이 웃고 많이 생각했다. 보라색 우비를 세트로 맞춰 입은 연인, 넥타이와 하이힐 차림으로 빌딩에서 바로 광장으로 나온 직장인들,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은 지긋한 노부부, 아이들을 데리고 온 주부, 가운데 자리가 비자 어디선가 총총 나타난 날렵한 여학생 트리오, 건장하고 익살스러운 20대 청년들... 등등 ‘절절한 촛불민심’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촛불문화제가 끝나고 일어나 뒤를 돌아보니 촛불행렬이 끝도 없다. 이명박이 갈고 닦아준 멍석 위에서 ‘이명박’의 위협적인 초대장에 모여든 사람들. 그들에 의해 ‘역사’가 쓰여 지고 있었다. 리더도 없고 기자도 따로 없다. 저마다 핸드폰이며 디카로 자신들의 <화려한 외출>을 기록했다. ‘님을 위한 행진곡’ 한 번 들리지 않는 이색 집회는 주최와 주동자가 없는 ‘자연발생적이고 역동적인 흐름’으로만 설명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명박 정부는 국민은 얕보면서 ‘실체도 불분명한’ 진보진영을 과대평가 하고 있다. 조중동도 몰랐고 이명박도 몰랐듯이 그들이 말하는 ‘좌파세력’도 몰랐다. 미친소 정국이 이런 도도한 흐름으로 일렁일지, 5월 2일부터 시작된 짤막한 촛불이 거대한 들불처럼 번져갈지, 누가 예측이나 했는가.
또 한 가지 들불처럼 번진 촛불을 어서 빨리 끄고 싶다면 불법 연행할 것이 아니라 평화시위를 보장해주어야 한다. 상당수 시민은 강제연행에 발끈해서 나왔다. 강제연행은 절대 국민의 위협수단이 될 수 없다. 이한열의 죽음이 있고나서 “나도 시위대에서 죽을까봐” 겁먹고 시민들이 안 나오던가. 거리가 조용해지던가. 더 큰 저항의 물결로 이어졌다. 인산인해로 아스팔트가 타올랐다. 곧 6월이 다가온다. 그 뜨겁던 6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