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상(上)반 애들만 프린트 주세요? 시험에 나와요?"
김민아 : "고1 담임으로 영어교과 상반과 중반을 가르친다. 하지만 수업내용에 큰 차이를 두지 못하는 실정이다. 상반에서는 영어단어의 뜻을 기본적인 것 외에 한두 가지 더 가르쳐주는 정도다. 초창기 상반 아이들에게 프린트를 한 장 나눠주었더니 하반 아이가 핸드폰으로 찍어서 찾아왔더라. '선생님 이거 시험에 나오는 거 아니에요? 왜 얘네만 줬어요?'하는데 가슴이 아팠다. 당연히 시험에는 가르쳐준 것만 나온다고 안심시켰다."
장정아 : "세부대책도 없이 아이들을 갈라놓기만 했다. 상위권 아이들 공부에 방해되니 격리한 거 밖에 안 된다. 모든 아이들을 아우르는 정책이 아니다."
이범 : "학습능력이 다소 떨어지는 아이들은 더 검증된 교사가 가르쳐야 된다. 또 만약 동일한 진도를 나가려면 하반은 수업시간을 늘려야 한다. 상반 1시간 하면 하반은 2시간 배정해야 한다."
정행복 : "맞다. 하반 아이들을 외부 강사가 맡는 것은 문제다. 우리학교 어느 수학교사는 하반 아이들을 맡겠다고 주장해서 직접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학년은 중2지만 기초가 안 된 애들은 1학년 걸 가르쳐야 하는데 시험은 똑같이 중2 수학을 보니 정말 문제라고 하더라."
과밀학급에 의무 교육내용 과다... 주입식 교육할 밖에
장정아 : "중학교가 과목이 너무 많은 것 같다. 내용도 우리 때보다 훨씬 어려워졌다. 오늘 중간고사라 시험 감독을 했는데 도덕시험 문제가 무척 심오하더라."
정행복 : "도덕은 국사, 국어, 철학 등 광범위한 영역을 아우른다. 이것들이 아이의 삶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암기대상이 되니까 어려운 거다. 도덕은 특히 토론식 수업이 필요하고, 사고하는 훈련 자체가 공부다. 그런데 초등학교 때부터 훈련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정답 없는 걸 못 참는다. '선생님 답이 뭐예요?' 묻고 '없다'고 하면 불안해 한다."
이범 : "교과서 교사지침을 보면 의무적 교육내용의 양이 꽤 많다. 그 많은 양을 한꺼번에 가르치려니 '주입식'으로 가는 거다. 또 이렇게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주입시키는 건 사설학원이 잘할 수밖에 없다. 미국도 학원이 많지만 SAT대비용이다. 미국대입은 내신과 SAT 반영비율이 반반이다. 내신은 토론 탐구형 수업이 이뤄진다. 그러다보니 내신을 가르치는 학원은 없다. 학원에서 학교의 영역은 못 건드리는 거다. 우리는 학교가 주입식 교육을 하니 학원이 따라하기 딱 좋은 거다."
정행복 : "현실적으로 우리도 토론 탐구형 수업이 이뤄지려면 과밀학급 개선이 시급하다. 나는 9개 반 35명을 맡고 있다. 이 아이들에게 토론다운 토론, 즉 토론 주제 잡아주고 진행시키고 마무리 글쓰기까지 봐주려면 교사는 '잠을 자지 말라'는 얘기다. 다양한 수업모델을 해보려 해도 현실적인 벽을 많이 느낀다."
김민아 : "그렇다. 교사의 잡무가 너무 많다. 아이들 학급비, 하다못해 수학여행비 안 낸 아이들을 교사가 일일이 불러서 상담해야하는 실정이다. 학기 초면 더 심하다. 10시 이전에 퇴근 못한다."
장정아 : "이해가 간다. 아이들 둘이 계속 가정통신문을 가져오는 바람에 3월 달엔 사인만 하다가 보냈다. 안 그래도 학급 아이들 걸 다 챙기려면 선생님이 많이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교장 권력독점 고착화... '교장교감평가제' 도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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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에서 발행한 방과후 활동 안내문에 종합반, 단과반이란 표현이 눈에 띈다. 학교와 학원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
ⓒ 김송지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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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 : "이번 학원자율화 조치에서 정말 중요한 게 빠졌다. 교장교감 평가제가 도입돼야 한다. 교원승진제도인 근평(근무평정제도)를 폐지한다는 전제 하에 교원평가제도와 교장교감평가제가 같이 가야 한다. 교장교감평가는 교사 및 학부모에 의한 평가로 하고, 교원평가는 학생에 의한 평가와 교원 간 다면평가로 하는 것이다. 교장이 교사들 잡무 줄여주고 평교사의 민주적인 의견도 듣고 그래야 한다. 교장교감이 교원승진제도의 키를 잡고 있으니 승진해볼 맘이 있는 교사는 교장 손에서 놀 수밖에 없다. 교장을 정점으로 한 피라미드형 권력구조를 해체하고 재구성해야 한다. 교무회의 10년 동안 말 한마디 못했다는 교사도 많다."
장정아 : "정말 교장 마인드에 따라 학교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학기 초에 학부모 총회 갔다가 놀랐다. 교장선생님이 대놓고 '경영마인드'란 말을 쓰더라."
김민아 : "대학 때도 교수평가 써내도 이상한 교수들 계속 남아 있더라.(웃음) 사실 실효성이 의문이다. 교장의 권한이 성역화 된 건 사실이고 대책은 필요하다. 교육청 혁신은 이뤄져서 교사들 잡무부터 줄여주면 좋겠다. 그 시간에 교사들은 생산적인 교과목 연구를 해야 한다."
이범 : "동의한다. 간혹 교육문제가 교사 개개인의 질 문제로 치환되곤 하는데 이는 옳지 않다. 우리나라 교사의 질은 세계적으로 수준 높다. 교대 커트라인과 교원임용고시의 경쟁률만 봐도 그렇지 않나. 그런데 그런 유능한 교사들이 10년 지나면 현실적으로 좌절하고 타협해버린다. 이런 시스템이 문제다."
교육과정 편성권, 교사에게 이양하라
정행복 :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서는 교수학습법을 다양화해야 한다. 그러려면 교사에게 재량권을 줘야 한다. 즉 수업내용에서 평가까지 교사 자율권에 맡겨야 된다. 뭘 좀 해보려고 해도 시험은 교육청에서 규제한 교과과정의 틀을 못 벗어나니 결국 수업내용이 늘 교과목 서머리 수준에서 주르륵 훑기 급급한 거다. 이런 상황에서 공교육은 사교육 시장에 잠식당할 수밖에 없다. 이범씨의 지적대로 경쟁이 안 된다. 마치 공기업을 민영화하듯, 효율의 논리만 내세워 아예 학교를 학원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장정아 : "평가요소를 다양화 한다고 실시한 수행평가가 내용만 복잡하고 알맹이가 없다. 토론식, 논술식 수업이 훈련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수행평가가 제대로 이뤄질 리 만무하다. 애들 스트레스만 늘고, 일부지역에선 엄마 숙제라고 하더라. 도대체 애들에게 실패의 기회를 주지 않는 엄마들도 문제다. 학원에선 재등록 유도를 위해 계속 겁을 주고, 엄마들은 마음이 약하니 선행학습을 시킨다. 악순환이다. 엄마들부터라도 연결고리를 끊어야 한다."
정답 없는 세상 살아갈 아이들, 공교육이 책임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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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혁신을 위해 교장교감평가제를 도입하고, 정답없는 세상을 살아갈 아이들을 공교육이 책임져야 한다고 말하는 이범씨. |
ⓒ 김송지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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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씨는 우리나라 교육의 고질적 병폐 두 가지를 꼽았다. 첫째, 아이들이 정답 없는 문제를 다루지 못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대학마저도 주입식이지만 선진국 학생들은 어릴적부터 정답이 준비되지 않은 질문을 많이 다룬다. 졸업 후 사회 나와도 그렇다. 연애부터 시작해서 기업의 신규사업 기획 등 정답 있는 게 있던가 물었다. 우리나라처럼 교육에 대한 관료적 통제가 심한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다고 비판했다.
둘째, 아이들에게 학습동기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PISA 국제학력평가에서 수학과 읽기는 여전히 최상위권인데 학습 동기는 최하위다. 정규교육과정 내내 주어진 정답을 빨리 찾기 위한 억지 공부만 해왔으니 당연한 결과라는 것. 이러한 교육은 지식기반 경제에 맞는 창의적 인재 배출이 어렵다. 산업시대로 회귀하는 정책들로 글로벌 경쟁력을 키울 수는 없다. 얼마 전 모 대기업에서는 신입사원 선발기준으로 이른바 강남에 사는 스카이대학 출신과 토익 점수만 높은 사람 등을 제외시켰다는 사례도 소개했다.
이밖에도 정행복씨는 동료장학제도 활성화 등 다양한 수업모델 개발을 통한 공교육 정상화의 대안을 제시했다. 김민아씨는 수준별 이동수업이 아닌 영어수업과정을 기초반, 기초 플러스반, 심화반 등등 모듈을 다양하게 만들어 놓고 학생이 직접 신청해서 시험까지 보는 '맞춤형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정아씨는 학부모들이 소신껏 학원의존도를 낮추고 아이에게 더디더라도 자기주도학습법을 익혀주는 등 한 가지씩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20년 전 한 여고생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란 외침이 유행했다. 지금은 모든 학생이 말한다. 행복은 성적순이라고. 그러는 사이 교육문제 논란의 핵심에는 늘 '사교육'이 있었다. 사교육 병폐, 사교육비 과다 지출, 사교육 의존도 등 '사교육'이란 말이 공공연히 회자됐다.
주술의 힘 덕분인지, 학원업계가 번성했고 사교육은 의무교육 이상의 권세를 누렸다. 이제 말을 바꿔야한다. '우리나라 교육은 정말 문제' 라고 말하기보다 '공교육정상화'를 위해선 어떻게 해야할까로 지혜를 모으자. 우리가 '공교육'이란 언어를 자주 사용할수록 희망이 있다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