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아름답다지만 지천에 흐드러졌다. 대놓고 아름다운 거 매력없었다.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게 끌리지. 그래서 뭉게구름 떠가는 마당, 맨질맨질한 낡은 툇마루, 너울너울 춤추는 처마선, 바람에 부딪치는 대숲소리, 이나무에서 저나무로 옮겨다니는 새의 몸짓을 담은 한옥에 별반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흘긋 눈길이 갔다. 처마끝에 빗물 떨어지는 소리에 가슴 설렜다. 한옥에 혹하는 나를 보면서 '노화'의 징후를 자각했다. 나도 세월 앞에 어쩔 수 없구나. 이러다가 십년후에는 산간지방에 귀촌해서 농사짓겠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맘 같아선 마을회관 아니고 구립도서관이나 조조영화 보러 다니는 도회적인 할머니 되고싶은데.
두 가지 욕망. 자연의 위로. 도시의 편리. 다 채워주는 곳이 있더라. 경복궁 부근의 북촌과 서촌, 여기에 한나절 머물면 치즈떡볶이처럼 한식과 양식 둘다 어느 정도 충족이 됐다. 좋은 동네였다. 그런데 살면서 좋은 거 다 가질 수는 없고, 내가 못하면 그런 거 하는 친구를 두면 된다. '시인'이 되면 삶에서 시를 뽑아야하니 고달프고 시인 친구를 두면 풍류를 즐길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점에서 <류가헌>은 나의 시인친구 '가옥' 버전이다. 사는 일이 버거워 허걱대는 나에게 사보작가로 살아가도록 물꼬를 터준 선배부부가 북촌에다가 멋진 갤러리를 냈으니, 사진위주 류가헌. 이름도 근사하지. 사진위주. 완전 압도한다. 몇 주전 토요일에 친구랑 류가헌에 놀러갔다.
"위주가 나쁜 말이 아니더라고. 사전에 찾아보니 [명사] 으뜸으로 삼음. 이란 뜻이야."
언니의 설명대로 '사진' 위주로 운영하는 갤러리다. 언니는 사보기획자와 작가로 일했고 형부는 사진가다. "눈이 와도 사진 찍고 비오면 비 온다고 찍"으러 전국을 마당처럼 돌아다니고, 오래 안보이면 "에베레스트산"에 가 있는 이한구, 벌써부터 10년 경력 관장의 관록이 우러나는 박미경. 언니랑 형부가 커피마니아라 늘 신선한 커피가 준비 돼 있다. 커피값 3000원. 조용한 음악 들으며 마당에서 커피 마시고 사진전도 보고 책장에 꽂힌 사진책도 보고 그러면서 시간을 보내면 도심 속 휴양지로 손색없다. 그동안 일적으로 좋다는 카페, 가게 등 이색적인 공간을 많이 가본 편인데 주인장의 향기가 90%를 좌우한다. 인테리어나 시설은 크게 중요치 않았다. '주인장의 포스'가 관건이다. 음식 잘하는 집 주인장은 앞치마가 달라도 다르다. 그래서 류가헌은 지금도 좋지만 세월의 더께가 쌓이면 쌓일수록 주인장의 삶이 스며들면서 더 운치있는 '낭만위주' 갤러리가 되리라 생각한다.
# 4대강 사진전 보러 가자
애초에 류가헌은 꿈 많고 끼 많은데 돈 없는 가난한 사진가들을 위한 공간으로 기획됐다. 이번에 의미있는 사진전이 열린다. 4대강 사진전 <강강강강> 이상엽, 노순택, 이갑철, 성남훈, 한금선 등 우리나라 내로라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여러 사람들이 많이 들러보면 좋겠다. ^^ 찾아 가는 방법은 쉽다. 3호선 경복궁역 4번 출구로 나와서 청와대 방향 플라타너스 가로수길로 가다가 음식점 <메밀꽃필무렵> 골목으로 들어가서 느린 걸음으로 조금만 걸으면 '류가헌'이 나온다.
강 강 강 강, 사진가들 강으로 가다
10명의 사진가들이 강으로 갔습니다.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의 슬픔을 보았습니다.
흐르는 아픔을 그저 바라보기가 힘들어 기록에 나섰습니다.
두물머리 딸기는 붉디붉게 분노하고,
곰나루터는 포크레인 소음에 진저리 칩니다.
아름답던 본포의 찻집은 사라지고, 미나리꽝은 뽑혀 나갑니다.
사진가 이갑철, 한금선, 조우혜, 김흥구, 최형락이 낙동강을, 성남훈과 최항영이 한강을, 노순택, 강제욱이 영산강을 이상엽이 금강을 기록했습니다. 이 기록이 전부는 아닙니다. 기록은 시작일 뿐입니다. 계속 이어 나가겠다는 약속으로 이렇게 작은 전시회를 준비했습니다.
제목 : 강 강 강 강, 사진가들 강으로 가다
장소 : 사진위주 <류가헌> (02-720-2010) http://www.ryugaheon.com/
일시 : 2010년 5월 25일~30일(초대일시_ 5월25알 화요일 오후 6시)
주최 : 프레시안 http://www.pess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