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에 스위스를 간다니까 주변에서 하나같이 안타까워했다. “2월이 제일 볼 게 없다!” 유럽의 겨울은 춥고 해가 일찍 떨어져서 많이 돌아다니지 못한다, 경치도 봄여름가을보다는 덜 예쁘다 등등. 즉 본전을 뽑지 못해 손해라는 것이다. 마음이 흔들리면서도 씁쓸했다. 투입대비 산출효과의 극대화를 따지는 것은 신자유주의 논리다. 여행을 가면서도 계산기를 두드려야 하나 싶어서다. 자연은 좋은 날씨, 나쁜 날씨가 없다. 그러한 구분은 자연을 대상화한 인간중심적인 사고다. 비가 오면 우산도 챙겨야 하고 바지도 젖지만, 불편한 게 꼭 나쁜 건 아니다.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란 말도 어불성설이다. 4월과 2월의 아름다움은 각기 다르다. 20대와 40대가 그렇듯이 스산함은 화창함에게 없는 나름의 운치가 있지 않던가. 여의도 빌딩가 오후 3시의 식당이나 여름철 피서객이 빠져나간 동해안처럼 다 내어준 후의 헐거움이 나는 더 편하다. 역시나 늦겨울 스위스의 한산함에서 자유를 만끽했다. 빛과 색이 입혀지기 전 밑그림을 본 느낌. 솜씨 좋은 화가가 4B연필로 스케치한 스위스는, 청바지와 면티로 스타일을 살린 배우이거나 생크림만 곁들인 베이직 와플처럼 무한상상놀이가 가능했다. 나는 생각했다. ‘꽃피고 새울면 환장하겠군’ (사진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꼽히는 베른)
# 몽트뢰
몽트뢰는 레만호를 끼고 있는 제네바 옆 작은 도시다. 구불구불한 길 따라 우호수 좌포도밭이다. 레만호의 수평선과 비탈진 포도밭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세상이 열리는 해안도로. 양옆의 나무지붕 사이로 조각난 하늘이 보이는 드라이브 코스와는 정반대의 분위기였다. 사방이 탁 트였지만 아늑하고 온화하다. 꿈결 같이 잔잔한 호수와 키 작은 나무가 빼곡하고 그 위로 햇볕이 직통으로 쏟아지는 장면은 ‘풍요와 평화’ 그 자체였다. 말 그대로 속세를 벗어나 여행한다는 실감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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