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수유너머에서 '여강만필' 쓰시는 김융희선생님 댁을 소개합니다. 지난번 인터뷰 기사가 나가고 자세히 보고 싶다는 분이 계셨어요. "시골에다 집 짓고 텃밭 가꾸며 살고 싶다" 살면서 한번쯤은 꿈꿔보지만 말뿐인 경우가 많죠. 가슴에서 발까지의 거리는 멀기만 합니다. 길들여진 것을 내려놓기 쉽지 않거니와 낯선세계의 두려움이 발목 잡습니다. 원래 저지르기 전이 공포가 가장 극대화되는 법이죠. 한 걸음 벗어나는 순간 깨닫습니다. '별 거 아니네!'
김융희선생님은 인생 9회말에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연천으로 가셨습니다. 세발바기 아이가 그린 것처럼 네모난 집 짓고 자연친화적인 삶을 사시죠. 현관문 열자마자 펼쳐지는 책들의 향연. 여기는 거실이고 방마다 책꽂이가 있습니다. 김융희선생님은 이청준선생님, 한승원선생님 등 남도의 문인들과 막역한 사이입니다. 특히 이청준선생님과 절친이셨대요. 책이 완벽하게 구비돼 있더군요.
오른쪽은 문화살롱 컨셉. 의자에 앉아서 기도도 하고 책도 보고 음악도 듣고 그럼 좋겠죠? 하얀 벽면에 구석에 천경자 그림과 보라색 들꽃, 스탠드... 아무렇게나 놓인 듯 소박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십자가 뒷편은 부엌으로 연결됩니다. 식탁 끄트머리가 보이죠. 부엌이 깊습니다. 작은 유리창 아래 커다란 초록색 그림이 아주 멋져요. 햇살까지 떨어져 천연조명 아래 색들이 꿈틀대요. 사물들이 자로잰 듯 각 맞추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어서 참 편안해 보였습니다. 시골집은 저래야 맛이겠죠.
현관문 나가려다 보니 왼편에 문이 있네요. 방입니다. 온돌방. 겨울에 불 넣으면 불가마 찜질방이라고 합니다. 노란 장판 위 이불 속에 아버지 드실 밥그릇 묻어 놓고 그랬는데. 몸 녹이다가 밥그릇 베고 잠도 자고;; 소싯적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바닥에 쌓인 책들은 고향 마을 도서관에 보내실 걸 추려놓았다고 하시네요. 책은 읽는 것도 좋지만 저렇게 벽돌처럼 쌓아두어도 배부르고 운치있어요. 나무로 만들어서 그런가..
현관문 밖에 미니 빨래터. 개인적으로 서재보다 더 탐나는 공간입니다. 저 정겹기 그지없는 고무다라이와 목욕탕의자 좀 보세요. 숨은그림찾기입니다. 파란 호수 끌어다가 마당 청소하고나면 아주 속 시원하겠죠. 목욕탕 의자에 앉아서 걸레 깨끗이 빨아 널고, 냉이도 다듬고. 여름에 등목도 하고! 김장할 때 배추도 씻고. 그러다가 허리 한번 쫙 펴고 고개 돌리면 바로..
숲입니다. 녹색 바람이 불어와 안깁니다. 저기서 멧돼지녀석이 나온다니 얼마나 맑고 살기 좋은 자연의 품인지요.
뒷편에 진돗개 세 마리가 있고 장독대도 있고 웬 작은 집이 한 채 더 있는데 손님용 게스트하우스랍니다. 그곳에 있는 선생님 비밀의 방. 여기서 글 쓰신다고 하네요. 굳이 말하자면 작업실. 단편소설 한편은 그냥 나올 것 같은 좋은 기운이 흐르는 방. 그런데 어딜가나 그림과 꽃은 꼭 있죠?
김융희선생님이 알고보면 멋쟁이 도시남자입니다. 올리브색 깔깔이 내피점퍼의 연천 농부패션도 좋았지만, 서울나들이 오실 땐 또 이렇게 변신합니다. 색감이 뛰어나시죠. 인사동스타일! 며칠 전 편집회의할 때 오셔서 "욕본다고" 돼지갈비 사주셨습니다. 가방에서 직접 담근 똘배주랑 막걸리를 꺼내셨죠. "어딜가나 내 술은 갖고 다녀" 덕분에 에미애비도 몰라본다는 낮술을 마셨습니다. 똘배주가 어찌나 달달한지 술술 넘어가더군요. 그런데 무려 30도라더군요. 얼굴 벌겋게 닳아오른 채 못다한 수다를 위해 2차로 옆 건물 예쁜 카페에 갔습니다. 저는 건너편에서 케냐AA 마시는 중. 음주 후 커피는 완전 환상.
김융희선생님이 연천집에 원하면 자고가도 된다고 몇번 말씀하셨습니다. 독자들에게도 개방하실 의향이 있으신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 이벤트 한번 할까합니다. 말씀 끝에는 위클리수유너머에 당신 글이 누가 될까 싶어 미안하다고 그러십니다. 왜 어르신들의 어법, 그 고정레파토리 있지 않습니까. '내가 너무 오래 살았다. 괜히 너희들에게 짐이 될까봐 미안하다." 그 마음 다 압니다. 같이 있고 싶고 늘 보고 싶고^^ 김융희선생님의 '여강만필'도 최장수 전원드라마 '전원일기' 만큼 오래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