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배낭 메고 훌쩍 떠나본 적이 없다. 두고두고 아쉽다. 딱히 사랑에 일찍 눈 뜬 것도 아닌데 어쩌자고 결혼은 그렇게 빨리 했는지. 꽃다운 청춘이 조모씨와 함께 한반도에서 시들었다. 그러니 태어나서 지금껏 어디서 무얼 하든 부모, 남편, 아이들, 아니면 친구와의 동행이었다. 조기품절녀의 운명이다. 아니 비극이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을수록 온전한 인간에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스위스여행. 원래는 남편도 같이 가기로 했다가 막판에 못 가게 됐다. 막막했다. 공항의 복잡한 관문을 통과하는 것부터 언어소통의 장애까지 온통 겁났다. 출국 전날, 항공사에 다니는 남편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공항에 도착하면 자기한테 전화하란다. 직장인이지만 소설가 지망생이라 나랑 정서적 유대감이 높은 그다. 남편이 그에게 얘기해놓은 모양이다. 집사람이랑 애들 비행기 좀 태워주라고 -.-
그의 도움으로 티켓팅을 하고 인천공항 식당에서 같이 점심을 먹었다. 그가 아들한테 ‘여행 백배 즐기기 노하우’를 들려준다. 항공사에 다녀 여행을 밥 먹듯이 한 줄은 알았는데 얘기 들으니까 진짜 부러웠다. 가벼움, 자유로움, 풍요로움으로 충만한 청춘시대라니! 입국심사대로 들어가는 길. 그가 아들에게 당부한다. “동생 잘 챙기고 엄마 잘 모셔라.” 이때부터다. 나는 엄마로서 어린것들 데리고 간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노약자는 나, 보호자는 아들이었다. 일명 효도관광이 시작된 것이다.
루체른에서 길 잃다
루체른 1박2일. 우리가족 셋만 다닌 유일한 여행코스다. 몽트뢰와 베른, 제네바는 언니네랑 동행했으니 이번에야 실질적인 배낭여행이 시작됐다. 스위스패스 끊고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동안 서울 시청 앞이나 지하철에 많이 보아왔던 외국인 관광객처럼 나도 지도 들고 연신 체크해 가면서 길을 물어물어 찾았다. 교통박물관. 빈사의 사자상. 카펠교. 그리고 다음날 알프스의 여왕이라는 리기산을 가기로 했다.
교통박물관 안. “문 닫기 한 시간 전인데 괜찮겠습니까?” 카운터에서 자원봉사 하는 분이 물어왔다. 스위스는 남부는 프랑스어권, 북부는 독일어권이다. 루체른의 독일식 영어는 좀 더 투박했다. 아들이 좀 천천히 말해달라며 뭐라고 계속 얘기를 하더니 만면에 미소를 짓는다. 직원에게 우리는 제네바에서 3시간 걸려 왔고 한 시간만이라도 보고 싶다고 했더니 입장료를 절반이나 깎아주었단다. 저렴한 값에 여러 가지 탈것을 원 없이 보고 나왔더니, 박물관 앞 호수에 노을이 지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조각이라는 ‘빈사의 사자상’ 까지는 버스로 두세 정거장. 버스에 타서도 내리는 곳을 놓칠까봐 긴장을 풀 수가 없었다. 독어 안내방송은 안 들리니 소용이 없었다. 시내지도를 펴고 전광판에 나온 철자를 대조해가며 눈치로 판단해야 했다. 일전에 서울 지하철 열차 천장에 작은 전광판이 청각장애인이 제안해서 설치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여행길에서 말이 들리지 않는 청각장애인 신세가 되고나니 전광판의 필요성과 소중함을 깊이 절감했다.
빈사의 사자상이 비슷비슷한 빌딩가 안쪽에 있어서 술래잡기 하듯이 한참을 헤매다 도착했다. 절벽에 앉아 있는 사자의 표정이 정말 불쌍하긴 했지만 솔직히 사자를 동정할 처지가 아니었다.
우리신세도 불쌍했다. 날이 어둑어둑 해지고 바람 쌀쌀했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옆에서 딸은 다리 아프다고, 아들은 배고프고 배낭이 무겁다고 하소연이다. 하루 종일 빵이랑 고기만 먹었더니 칼칼한 한식이 절실했다. 주위를 둘러봐도 어디서 무얼 먹어야할지 마땅한 식당도 메뉴도 없었다.
'여기는 왜 김밥천국이 없담.' 애석했다. 15가지 색소가 들어간 노란 단무지에 중국산 김치라도 싼 값에 배불리 먹고 싶었다. 스위스의 물가는 살인적이다. 생수한통에 4천원. 밥 한 끼니에 일인당 1-2만원은 줘야한다. 그런데 그 돈을 내고 느끼하고 맛도 없다. 하는 수 없이 루체른역 지하의 마트에서 샌드위치와 귤과 우유 등 몇 가지를 사서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유럽여행하면서 맥과 스벅의 단골 됐다. 간판만 봐도 반가웠다. 값이 비교적 저렴하고 화장실이 무료니까. 배낭여행하다보면 맥도날드 M자가 화장실의 W자로 보인다더니 진짜 그랬다.
알프스에서 미끄러지다
심야데이트. 초승달 비추는 밤길을 아이들과 걸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다리라는 카펠교. 빛나는 야경이 그제야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스산하고 을씨년스러운 밤공기가 포근했다. 만약 여기를 혼자 왔다면 어땠을까. 겁이 많은 난 돌아다니길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늘 내 발목 잡는 쇠고랑 같던 아이들이 나의 지지대였던가. 내 앞가림은 하고 산다고 생각했는데 집 밖을 벗어나면 혼자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자각. 이번이 두 번째다. 5년 전에 일자리 구할 때도 그랬다. 울타리를 벗어나 큰 세상에 놓이면 비로소 보인다. 온실에 화초처럼 자라지도 않았지만 길가에 잡초처럼 살지도 않았구나.
배타고 강건너 산악열차 타고 산 넘어 두리번두리번 경치 구경하다보니 어느새 산꼭대기다. 주변에 너울너울 펼쳐진 하얀 산세가 병풍그림 같았다. 편안히 온 만큼 더욱이 실감나지 않는 절경. CG작업으로 내가 '붙여넣기' 된 것 같았다. 상상을 초월하는 눈밭. 두려워서 매력적인 곳. 상상이 하나의 대상을 제시할 수 없을 때 일어나는 감정. 칸트가 판단력비판에서 말한 숭고미가 바로 이것이런가. 알프스의 바람아, 눈송아, 나는 얼마나 작으냐.
하산은 썰매. 기차로 내려가려다가 용기를 냈다. 섬세한 붓터치가 느껴지는 알프스 산자락의 맨살을 느끼고 싶었다. 스키는커녕 놀이기구도 못타는 나로선 '생사'를 건 결단이었다. 겁에 있어서는 나와 버금가는 딸내미를 품에 안고 동화책에 나오는 북극지방 모양의 나무썰매에 앉았다. 구불구불 끝도 없는 급경사. 길고 가파르고 속도는 제트기보다 빨랐다. 멈춰지지가 않았다. 썰매가 두 번이나 뒤집혔다. 꽃수레는 아빠 보고 싶다며 울어버린다. 기차역도 안 보이고 언제나 이 고행이 끝날지 나 역시 울고 싶었다. 얼마나 두 다리를 뻗어 저항했으면 나중에 보니 가죽워커 뒷축이 닳아 구멍이 나버렸다.;;
극기 훈련을 왜 자초했는지 후회했다. 습의 해체와 정신력 강화는 고사하고 눈에 대한 공포심만 키웠다. 애들을 강인하게 키운다고 해병대캠프에 보내는 것은 큰 잘못이다. 고생=성숙이 반드시 참인 명제는 아니다. 고생=피폐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딸이랑 나는 앞으로 스키는 타지 않기로 굳게 약속했다. 스키 못타고 수영 못해도 다른 재미난 일 수두룩하며 정신고양에 이르는 방법은 수백 가지인 걸.
아들에게 나를 비추다
아들은 썰매를 썩 즐기지도 버거워하지도 않았다. 하루 뒤에 언니네 가족이랑 스키도 탔다. 나랑 딸내미는 리프트 타고 정상에서 커피 마시며 알프스 산자락 구경했다. 아들이 스키를 처음 탔는데 넘어지지도 않고 제법 잘 배웠단다. 언니가 초보자가 어떻게 안 넘어지느냐고 묻자 답한다. “저는 원래 무리수를 두지 않아요.” 조급한 엄마는 아들이 지나치게 느긋해서 답답했는데 아이는 자기만의 삶의 호흡으로 여유롭고 의연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아이는 덜 어른이 아닌데 자꾸 미숙하다고 생각하고 나의 가치관과 나의 속사포 리듬으로 살아갈 것을 강요했다. 성에 안차 동동거렸다. 미안했다.
무릇 여행이란 낯선 곳에서 나를 발견하는 것. 나라는 거울방에서 벗어나 타자를 '떼'로 만나는 일이다. 낯선 땅에서 만난 타자를 통해 나는 견적 안 나오는 나의 무능한 신체를 보아버렸다. 여행사 가이드만 없다 뿐 출국할 때는 남편친구가, 스위스에서는 언니랑 형부가, 파리에서는 후배가, 친히 공항에 나와서 맞아주고 보내주었다. 우리 가족만 덩그마니 남았을 때는 아들에게 의지했다. 개미굴만한 집에서는 내가 먹여주고 재워준다는 이유로 의기양양 큰 소리쳤다면, 여행모드로 배치가 달라지자 언어가 통하고 기운 센 아들에게 권력관계가 이동했다. 지구마을에서 나는 작고 아들은 컸다. 아들에 대한 힘감정과 지배의지를 놓을 수 있었던 것. 아들을 나의 분신이 아니라 타자로 인식할 수 있었던 것이 이번여행의 큰 선물이다.
서울 오는 길. 비행기에서 창가에 앉은 딸이 밖을 내다보며 좋아라한다. “꽃수레. 저게 구름이야. 구름보다 더 높이 떠서 가는 거다. 신기하지?” 딸이 눈을 말똥말똥 거리며 묻는다. “엄마, 여기가 구름 위야?” “응” “그럼 천국은 어딨어? 송영숙할머니 계시는...”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찾는다. 웃기고도 시큰했다. 아마 딸아이는 천국이 구름 위에 있는 마을이라고 상상했나보다. 어느새 '이 세계의 죄악과 저 세계의 구원' 의 인식틀을 가져버린 딸에게 말했다.
“원래 천국은 하늘나라에 없어. 지금 구름위를 날아서 행복하지? 그럼 지금 여기가 천국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