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홍길은 산악인이다. ‘신들의 영역’이라는 히말라야 8000m 이상 봉우리
16곳을 세계최초로 완등했다. 이 전설의 기록은,
생사의 갈림길에 가장 많이 놓였다는 뜻이며 공포와 고독의 밤을 가장 많이 지새웠다는 얘기고 자신을 가장 많이 버렸다는 것이며 희망의 발걸음을 가장 많이 내딛었다는 증거다. 자강최강
결국, 자신을 이겨내는 것이 가장 강한 것이라고,
최고의 산악인은 말한다.
“어려서부터 산자락만 들어서면 마음이 편안했어요. 고향에 온 듯 어머니 품속에 온 듯 온 천지가 내 세상 같았죠. 도시문명 속에서 지식을 얻었다면 산은 그 이상의 내면의 성찰, 삶의 방식이나 지혜를 깨닫게 해주었죠. 산은 제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준 위대한 스승입니다.”
엄홍길에게 산은 놀이터였다. 세 살 때 서울로 상경하여 지금의 도봉산 망월사 밑에 자리를 잡았다. 그곳에서 뒷동산인 도봉산을 제집 드나들 듯 오르내렸다. 자연스럽게 산과 친해졌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도봉산에서 바위타기를 시작했고,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는 등반에 온 마음을 쏟았다. 그렇게 산에 미쳐갔다.
우리나라 웬만한 산은 쉽게 오르게 되자 ‘한계’를 넘고픈 욕구가 생겼다. 그즈음, 거봉 산악회에서 만난 한 선배의 `에베레스트에 함께 가지 않을래?`라는 말에서 에베레스트의 도전이 시작됐다. 이때가 1985년. 이후 8000m 급 봉우리에 38차례 도전했는데 18번 실패했고, 20번 등정에 성공했다. 1800년대 말부터 인류의 도전을 받은 히말라야산들에 세계최초로 16봉우리 완등의 깃발을 꽂은 것이다. 세계 최고의 산악인을 넘어 인간의 한계를 극복한 최고의 인물로 꼽히는 엄홍길. 그가 말하는 최고의 조건은 바로 이것이다.
“미칠 수 있는 열정. 반드시 하고야말겠다는 신념. 선택의 기로에서 분별력을 잃지 않는 냉철함. 좌절과 시련은 훌훌 털고 ‘한 번 더’라고 말하는 강인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하는 열정과 신념
엄홍길은 처음으로 에베레스트에 도전장을 던졌으나 두 번의 실패를 연거푸 겪었다. 두 번의 실패 끝에 1988년 세계최고봉인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다. 성공의 기쁨 속에서 자신감에 가득 찼던 바로 그 때부터 산은 그에게 호된 시련을 안겨준다. 이 후 4년 동안이나 낭가파르트, 안나푸르나의 8000미터급 봉우리 등정에 여섯 번 연속으로 실패한 것. 이루 말할 수 없는 좌절과 실의에 빠졌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실패할수록 도전의지가 생겼습니다. 모든 것은 신념에 달렸다고 할 때 신념이 곧 자신감입니다. 자신감이 없으면 의지도 없고 신념도 없는 거죠. 다 같은 말입니다. 에베레스트 정상은 가고 싶다고 가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더 불굴의 의지가 필요합니다.”
히말라야 겨울의 바람과 추위는 상상을 초월한다. 돌, 바위, 얼음이 소낙비 쏟아지듯 핑핑 날아다닌다. 눈 덮인 산길에는 길이 없다. 살을 에는 영하 30~40도의 추위와 초속 45미터의 광풍. 그 속에서 희박한 산소를 겨우 들이쉬며 90도에 가까운 빙벽을 마주해야 한다. 낙석에 머리를 다치고 발가락이 부러지고 아비규환의 상황이 펼쳐진다. 일촉즉발의 위기는 지뢰처럼 널려있다. 힘들다고, 어렵다고 포기하면 절대로 정상에 오를 수 없다. 어떤 극한의 상황, 최악의 고통에서도 끈을 놓지 않는 확고부동한 의지와 신념이 필요한 것이다.
죽을 각오로 몰입하는 냉철함과 강인함
엄홍길은 ‘대장’으로 불린다. 많은 이들이 존경을 담아 그를 ‘대장’으로 부르는 것은 에베레스트 등정에서 보여준 특유의 강인한 카리스마와 뜨거운 인간애, 불굴의 투지 때문. 생명을 담보로 하는 8000미터급 고봉은 치밀한 준비와 대원들의 역량, 등반대장의 리더십 없이는 성공하기 어렵다. 거친 산을 오를 땐 독재자가 되어 책임지고 결정할 줄 알아야 한다.
“두렵지만 회피할 수 없습니다. 단순히 어려운 상황정도가 아니라 생명이 달린 문제라서 리더로서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냉철한 판단력이 필요합니다. 선택의 기로에서, 안 되는 이유가 99%라도 1%의 가능성만 있으면 되는 쪽으로 결정합니다. 긍정적 사고가 잠재력을 끌어냅니다. 사고가 닥치면 그런 사고가 없었다면 더 큰 안 좋은 일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산을 다시 바라보고, 내 목표, 길에 대해 더 신중하게 생각하죠.”
엄홍길이 오른 16개의 봉우리 중 로체샤르는 3전 4기, 안나푸르나는 4전 5기 끝에 등정에 성공했다. 로체샤르 세 번째 도전에서는 정상을 200미터 남겨 놓고 돌아와야 했다. 안나푸르나 네 번째 도전에서는 정상 500미터 남겨놓고 동료를 구하다가 발목이 180도 돌아가는 사고를 당했다. 발목이 덜렁덜렁한 상태에서 2박 3일 동안 기적같이 살아 돌아왔다. 예기치 못한 희생과 사고는 피눈물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그는 어려울 때마다 과거의 혹독한 경험을 불러내 다시 힘을 냈다. 먼저 간 동료들의 이름을 부르며 마음을 다잡았다. “히말라야 신이시여, 에베레스트 신이시여, 나에게 힘을 주십시오. 나를 이끌어주세요” 애원했다.
엄홍길휴먼재단, 새로운 8000m 도전이다
“의욕만으로 덤비면 산은 절대 받아주지 않습니다. 숱한 사고, 실패, 희생,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깨달았습니다. 산이 나를 받아주어야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을요. 산은 욕심, 과욕, 경거망동, 오만, 자만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꼭 사고가 납니다. 잡념이 있으면 안 됩니다. 산에 모든 것을 집중하고, 죽을 각오로 전력투구해야 합니다.”
산을 오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저 오르는 것. 위험을 생각하면 길을 잃는다. 그리고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최고의 산악인 엄홍길의 삶은 말해주고 있다.
‘도전이 아니라면 사는 게 아닌’ 그에게는 또 다른 산이 기다리고 있다. 제 2인생의 8000m를 도전하고자 ‘엄홍길휴먼재단’을 만들었다. K2봉이 지구 온난화로 굉장히 빠른 속도로 녹아가고 있다. 히말라야에서 직접 목격한 환경 파괴와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널리 알리고, 네팔 산간 오지 아이들의 열악한 교육환경, 의료 보건을 지원할 계획이다. 또한 청소년들을 위해선 산악 및 탐험 캠프 등을 만들어 산에서 배운 노하우를 전수할 계획이다.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일입니다. 38번의 등반에서 10명의 동료를 잃고 기적처럼 살아남은 자의 몫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신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가장 오래 머문 사람 아닙니까.(웃음) 명산에서 받은 기운을 다시 세상에 돌려주어야죠.”
KT사외보. 2009년 4월호
>> 후기 엄대장님 인터뷰할 때가 '집나가면 개고생' CF가 화제였다. 블로거들 사이에 세계최고 산악인의 '품위와 체통'을 지키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넌지시 여쭤봤다. CF반응이 뜨겁던데.. 아시느냐고. 안다고 하셨다.
"산을 오르다 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듯이
사는 것도 그렇죠...."
하늘의 기운을 직통으로 받은 분답게, 큰 산같은 넉넉한 웃음이 일었다. 나도 모르게 거울처럼 따라 웃었다.
아들이 사진 꼭 찍어오라고 성화를 부려 기념사진 찍었다. 근데 내가 좀 뒤로 물러서서 엄대장님이 얼큰이로 나오셨다. 사진을 보더니 "어이쿠! 안되겠다!"며 다시 찍자 하셨다. 회의실에 아까부터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 포토그래퍼에게 빨리 찍자고 하시더니, 또 이미지 관리엔 아이돌처럼 신경을 쓰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