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삶’을 굳이 은퇴 이후로 미룰 이유가 있을까. MBA출신으로 글로벌컨설팅회사에서 일하던 그녀는 ‘꿈의 정원’을 위해 ‘꿈의 직장’을 나왔다. 정원사가 되어 3000여 평 숲을 제초제를 쓰지 않고 손수 가꾸었다. 꽃과 나무가 어우러지고 돌과 울타리가 자라길 기다린 시간은 3년. 오랜 정성 끝에 외할머니집처럼 푸근하고 비밀의 화원처럼 아기자기한 ‘유니스의 정원’을 탄생시켰다.
‘오래 보아야 예쁘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풀꽃)라고 노래한 시구처럼 이곳 또한 그렇다. 먼발치서 얼핏 보면 그저 나무가 많은 숲에 그림같은 집한 채 있을 뿐이다. 하지만 두 다리로 찬찬히 눈을 맞추면서 정원 안쪽까지 걷다보면 입가에 미소가 절로 번진다. 드넓은 숲이 계류정원·허브향원·새들의 쉼터·바람의 정원 등 다양한 테마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각기 모양이 다른 새집이며 물고기 조각, 오솔길의 자갈돌 등 주인장의 손길이 닿은 아기자기한 장식과 빛과 바람에 무르익은 꽃과 나무의 운치가 절묘하게 어우러져있다. 이는 “최대한 자연스럽고 따뜻한 느낌이 있는 손 때 묻은 정원을 꼭 내손으로 만들고 싶었다.”는 지승현 씨의 ‘작품’이다.
아마추어 정원사, 3년 반의 고군분투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국제금융분야에 종사한 지승현 씨는 MBA를 마치고 세계적인 컨설팅회사에 다니는 재원이었다. 경영학도라면 누구나 꿈꾸는 최고의 직장에서 딱 2년을 알차게 배우고 재밌게 일했다. ‘작은 꿈’을 이뤘다는 성취감을 맛보고 다음 행보를 고민하던 즈음, 고민이 시작됐다. ‘내가 왜 이 일을 그토록 원했던가’ 곰곰이 생각해 봤다. 돌이켜 보니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을 위해 달려온 그간의 길이 사회적 기준에 따른 ‘성공한 삶’일수는 있으나 평생 하고 싶은 ‘행복한 일’은 아니란 걸 깨달았다.
대부분이 그러하듯 그녀 역시 ‘전원생활’의 계획을 은퇴 이후로 미뤄두었으나, 굳이 그 때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지금 당장' 자연의 품속으로 방향을 틀었다. “몸을 쓰는 일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하는 게 낫겠다”는 영리한 판단에서다. 서른 즈음의 일이다.
가족의 지지 속에서 정원사의 새 삶이 시작됐다. 아버지가 30년 전에 사두었던 경기도 안산의 선산 일부를 내주셨다. 미국에서 건축을 공부하는 언니는 잠시 한국에 들어와 두 팔 걷고 설계를 도와주었다. 남편은 처가살이를 자처하며 '자연으로 돌아간 아내'를 묵묵히 응원해주었다. 하지만 ‘흙으로 돌아가리라’ 호기롭게 시작은 했으되 조경분야에 전혀 문외한인 그로서는 무엇 하나 쉽지 않았다. 워낙 외진 곳이라 산을 지키던 칠순 할아버지 외에 아무도 없었다. 주변에 편의시설은커녕 건물도 전무했다. 화장실도 할아버지댁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늘 사람들 속에 묻혀 살다가 문득 외롭기도 했다.
오직 나무만 울창하던 그곳을 정원으로 가꾸기까지는 모두를 스승으로 삼아야 했다. 꽃시장 아주머니나 조경하는 분들을 쫓아다니며 무조건 이것저것 물어서 배웠다. 조경전문가들의 조언은 천편일률적이었다. “여기는 소나무 심고 정원 앞에는 빨간꽃을 쫙 심어야 티도 확 나고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단 하나의 정답이 정해져 있었다. 말끝마다 후렴구처럼 “당신은 조경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애정어린 꾸지람을 들어야했다.
취사선택했다. 조언은 새겨듣되 살갑고 정성스런 손맛 나는 정원의 설계라는 기조는 지켰다. ‘조경의 공식’을 답습 하는 대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기웃거렸다. 정답을 스스로 만들어갔다. 가드닝 정보가 담긴 책과 영국 할머니들이 꾸민 코티지 가든 외국서적을 보며 공부했다. 시행착오도 무수히 경험했다. 책에서 정말 예쁜 꽃을 보고 어렵사리 씨앗을 구해 심어도 싹조차 틔우지 못하고 죽어버리기 일쑤였다. 온종일 꽃을 심어놓으면 다음날 비가 와서 쓸어갔고 뒤편 산에서 풀씨가 계속 날아와 잡초가 무성해졌다.
“1년이면 되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끝이 안보였다.” 하는 수 없이, 다들 제초제를 써야한다고 해서 딱 한 번 썼는데 금방 후회했다. 당장 중지했다.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자연이 좋아서 한 일이니까 가능한 ‘내 손으로’ 뽑고 또 뽑았다. 참 신기한 일이다. 그렇게 몇 번을 하니까 할수록 수월해지고 결국 잡초가 조금 나 있어도 예쁜 꽃밭이 됐다. 땅을 신뢰하면서 꽃이나 나무와 소통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아, 하니까 되는구나’ 성취감이 컸다. 그리고 꽃과 나무와 바위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했다. 아마도 정원 꾸미기를 조경회사에 맡겼으면 1년도 안 걸렸을 것이나 지금처럼 친근한 정원이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어서 해가 뜨길 기다리며 잠든 ‘녹색의 일상’
“하니까 되더라고요. 성취감이 컸죠. 잡초 뽑는 일이 단순한데 묘한 중독성이 있어요.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명상도 되고요. 회사 다닐 때는 회색빌딩 안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밤이고 낮이고 일했는데 그 삶도 박진감 있고 좋았지만, 늘 피곤하고 다음날이 휴일이면 좋았거든요. 정원 가꾸기는 혼자인데도 전혀 심심하지 않고 밤에 누워서 내일 할 일을 생각하면 맘이 설렜어요. 정말 어서 해가 뜨길 기다렸죠. 그런 제 모습을 보면서 내가 이 일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생각했죠.”
그렇게 3년 반이 흘렀다. 조경전문가가 만든 잘 꾸며진 모델하우스 같은 정원이 아닌 자연을 사랑하는 이의 아마추어리즘으로 가꾼 유럽풍 커티지 가든 ‘유니스의 정원’은 2007년 문을 열었다. 비록 한눈에 펼쳐지는 화려함은 없지만, 은은하고 친근한 멋에 반해 평일에도 발걸음이 이어지는 명소로 자리 잡았고, 다녀간 사람들이 다시 찾는 현대인들의 ‘비밀의 정원’이 됐다. 길손들을 위한 맛난 음식을 위해 청담동과 서래마을의 유명 이태리전문 요리사를 납치해왔다는 지승현 씨. 직접 키운 허브와 유기농 채소를 이용하고 화학조미료를 이용하지 않는다고 귀띔한다. "최고의 음식은 장담 못하지만 ‘정직한 음식’을 착한 가격에 맛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