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한 건 없었다. 오직 자신에 대한 ‘믿음’과 연기에 대한 ‘열정’ 하나로 도전했다. 혈혈단신 지하철에 몸을 싣고 평범한 삶을 배우고자 애썼고, 가장 일찍 나와서 연습하고 제일 늦도록 무대를 지켰다. 그러길 4년. 인기 절정에서 재계약을 포기하고 배우의 길에 접어든 쥬얼리의 전멤버 조민아는 어느덧 뮤지컬계의 빛나는 ‘보석’이 됐다.
“그동안 후회라는 말을 한 번도 써 본적이 없어요” 뮤지컬 <렌트>가 공연 중인 한전아트센터 대기실. 방금 전 분장을 마쳐 바비인형처럼 보이는 그녀가 밝은 표정으로 당찬 소신을 밝힌다. 4년 전, 화려한 가수생활과 팬들의 환호를 등지고 거의 무명에 가까운 뮤지컬 배우의 길에 접어든 조민아는 벌써 여섯 번째 작품인 브로드웨이 뮤지컬 <렌트>의 미미 역할을 맡는 등 눈부신 기량을 꽃피우고 있다.
“원래 독립심이 강했어요. 아기 때부터 우유도 엄마가 잡아주는 것도 싫어하고 혼자 쥐고서는 먹고 병 내려놓고 잠들고 그랬대요.(웃음) 부모님이 이래라저래라 잔소리하고 간섭하기보다 자율적으로 크도록 방목하셨거든요. 저로서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한가지 씩 개척해나갈 수밖에 없었죠. 애초에 내가 선택하고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고, 또 항상 하고 싶은 게 분명했어요.”
씩씩하고 자의식이 강한 어린이 조민아가 연기를 배운 것도 스스로의 판단에서다. 탤런트가 되고 싶어서 엄마의 손을 붙들고 연기학원을 찾아갔고,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아역연기자로 활동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쥬얼리에 합류하기 전까지는 ‘TV는 사랑을 싣고’ ‘이야기 속으로’ 등 재연프로그램을 비롯해 드라마에 출연했다.
쥬얼리에 합류해서도 한껏 물오른 청춘시대를 보낸다. 춤과 노래로 이어지는 혹독한 연습과 방송출연 등 그 빡빡한 스케줄을 기꺼이 소화해냈다. 보통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이 야근이나 밤샘근무를 힘들어하지만 자신은 일 자체를 즐겨버리니까 아무리 밤을 새거나 강행군도 힘들지가 않더라고 터놓는다. 그렇게 꿀맛처럼 순간에 몰입해 행복한 나날을 보냈기에 ‘후회’가 없고, 그만둘 때도 ‘미련’이 남지 않았다.
다만 너무 중요한 결정이었기에 ‘통증’은 있었다. 쥬얼리 재계약을 앞두고 한 달 동안 못 자고 못 먹고 웃고 떠들 수가 없었다. 그럴수록 눈을 크게 뜨고 자신과 현실을 직시했다. 7년 동안 지나온 날을 되돌아 봤다. 최고였다. 앞으로도 재계약을 하면 멋진 차와, 좋은 집과 계약금이 생긴다. 하지만 이런 물질적인 것들과 물거품 같은 인기가 내가 진정 원하던 것일까. 답은 아니었다. 내 인생의 무대에 주인공이 되어 더 가슴 뛰는 삶을 살고 싶었다. 방향을 틀어야했다. 남들이 낭떠러지라고 말한 그곳으로.
“자기를 믿어야 남의 말에 휘둘리지 않는다”
“다들 넌 쥬얼리 나가면 아무 것도 아니고 금방 사람들 기억에서 잊혀질 거라고 만류했지만 저 자신에 대한 믿음 하나로 결정했어요. 뭐든지 적합한 시기가 있는 것 같아요. 그 시기를 위해서는 남들보다 더 먼저 결정하고 준비해야죠.”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할 경우 남의 말을 듣게 되더라는 조민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가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일까’를 중시하는데 자신은 그런 평가에는 둔감해 판단이 쉬웠다고 말한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물질적 욕망은 내려놓았다. 긴 안목으로 꿈과 삶의 가치에 대해 심사숙고한 끝에 결정을 내린 그녀는 자신에 대한 믿음의 갑옷으로 무장했기에 어떤 유혹과 불안과 상처의 말들도 거뜬히 이겨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방송계에서 넘어온 연예인이 대한 뮤지컬계의 벽은 높았다. ‘쥬얼리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인기를 등에 없고 대충 묻어가는 일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기대치는 높고 수입은 적었다. 모든 걸 다 버리고 바닥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뮤지컬을 배우기로 맘먹고는 지하철을 타고 다니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이랑 살 부대끼며 아침에 뭘 먹었는지부터 친구와 통화하는 소소한 대화까지 사는 이야기를 듣고 배워야 했죠. 항상 ‘와~’하는 함성에만 묻혀 사느라 그런 걸 전혀 몰랐어요. 그런데 연극, 영화, 드라마, 뮤지컬 모두 우리들 사는 이야기를 다루잖아요. 그런 또래의 고민이나 일상의 감정을 모르면 진정한 연기가 불가능하죠.”
지하철에서 연기를, 무대에서 인생을 배운다
평범한 생활인으로 돌아간 ‘조민아’의 화장기 뺀 일상생활은 뮤지컬 배우라는 새로운 선택에 믿음을 실어주었다. 하고 싶은 작품을 골라 치밀하게 오디션을 준비했다. <렌트>의 미미 오디션장에도 약물중독에 에이즈에 걸린 댄서 역을 표현하기 위해 엄동설한에 탱크탑에 그물스타킹과 핫팬츠를 입고 갔다. 작품이 결정되면 노래를 제일 잘하는 선배를 찾아가 노래를 배우고, 연기를 배웠다. 배역에 녹아들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연습에도 항상 가장 먼저 나와 청소하고 준비하고 가장 마지막에 불을 끄고 나왔다. 열심히 하겠다, 믿어달라고 ‘말’하지 않고 묵묵히 ‘행동’했다. 그렇게 성실하고 열정적인 모습을 보이자 하나둘 동료들도 마음의 문을 열고 인정했고 ‘조민아’를 보기 위해 찾아오는 관객들도 점차 많아졌다.
“제 뮤지컬을 보신 분이 미니홈피에 소감을 남겨주시기도 해요. 무대에서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였다면서 자기도 직장 옮기는 문제를 고민했는데 조민아씨의 열정적이고 행복한 모습 보고 용기를 내겠다고요.”
새로운 길을 가려는 이들에게 그녀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세 가지는 이렇다. 자신을 믿어야 이뤄진다는 것, 일에 빠져 들었을 때 얻는 성취감이나 행복감은 눈에 보이는 돈이나 명예 이상의 가치를 준다는 것. 오늘을 살라는 것. 이는 뮤지컬 <렌트>에서 조민아가 맡은 주인공 미미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No day but 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