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빨래·세차·운동지수 모두 90점 이상이다. 10월의 마지막 토요일, 가을이 충만하다. 이런 날 그를 만난 걸 축복이라 해야 할까 운명이라 해야 할까. 생태감수성 지수 100점, 기자사명감 지수 만점에 빛나는 박수택 SBS 환경전문기자와 서울 근교의 한 음식점에서 만났다. 동동주에 오색 낙엽 띄워놓고 시작된 ‘무공해 기자생활 23년’ 낭만인터뷰.
SBS 박수택 기자
환경에 대한 남다른 열정 + 기자에 대한 확고한 사명
“환경전문기자 박수택입니다”
노릇노릇 익어가는 가을 속을 서성일 때면, 우리시대 문장가이자 탐미적 허무주의자 김훈의 수필 첫머리가 떠오른다. ‘내일이 새로울 수 없으리라는 확실한 예감에 사로잡히는 중년의 가을은 난감하다’라던… 그런가. 생이 깊어갈수록 가을은 더 애달파지는 것인가. 상념이 지나쳐 궁상에 접어들 즈음 “따르릉 따르릉” 경쾌한 신호음으로 그가 다가왔다. 파란 헬멧, 빨간 티셔츠, 까만 바지 차림의 그는 사람 좋은 웃음으로 일행을 반겼다.
“공기가 다르지요? 서울을 조금만 벗어나도 참 좋아요. 요즘은 날씨가 좋으니까 경치 좋은 데서 밥 먹자고 이리로 오라고 한 거예요.”
원당역에서도 울퉁불퉁 굽이굽이 이어지는 길인지라 투덜이스머프 기사님의 눈치를 보며 가까스로 도착했으나 그깟 번거로움은 단박에 날리는 살맛나는 풍광이다.
일일일락. 박수택 회원은 이렇듯 하루에 한 가지씩 즐거울 거리를 찾아 사람들과 나누며 어제와 다른 오늘을 짓는다. 고로, 그의 중년은 난감하지만은 않다. 유쾌하고 따뜻하다. 왜 아니겠는가. 그는 자연과 사람의 조화로운 공존을 추구하며 새로운 내일을 여는, 그래서 기쁨주고 사랑받는 SBS환경전문기자다.
그 때 그 시절 ‘말지 보급책’ 맡던 MBC 신참기자
“제가 중고등학생 때 우리나라가 중화학공업이 한참 발달하던 시기였어요. 환경에 대한 개념도 없던 때라 공장에서 폐수를 아무데나 버리고 문제가 심각했지요. 그런 기사를 접하면 화가 나더라고요. 수업시간에 선생님에게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나요. ‘우리나라의 근본산업은 농업 아닙니까. 중화학공업 육성도 중요하지만 쇠 씹어 먹고 기름 마시고 살 수는 없잖아요?’라고요.”
만약 성장소설을 쓴다면 그의 미래를 예고하는 중요한 ‘복선’이 아닐까 싶다. 십대라고 믿기 어려운 촌철살인의 명대사를 날린 그는 서울 토박이다. 집이 마포였지만 그때만 해도 초가지붕 이고 텃밭에서 호박 키우며 살았다고 한다. 주변 산림이 훼손되고 농가가 피폐해지는 걸 보면서 이게 진정한 발전인가를 고민했다고 터놓는다.
남다른 생태감수성을 타고난 한 소년의 통찰대로, 세상은 겉만 번지르르하게 팽창했다. 70-80년대 사회적 격변기를 온몸으로 통과한 그는 언론인에 대한 꿈을 키워오다가 1984년 12월 MBC기자로 방송가에 첫발을 내디뎠다. 입사3년차 기자시절에 월간 ‘말’이 처음 나왔는데 선배를 도와 MBC의 ‘말지 보급책’을 맡기도 했다. 말지를 일이백 부씩 맡아서 사내 기자들에게 나눠준 것. 또한 권언유착의 부당한 현실을 직접 목도하고 해직언론인 선배들의 고초를 생생하게 듣는 등 기자들이 대부분 ‘울분’을 갖고 일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SBS로 옮기고 나서 일본 특파원을 다녀왔습니다. 그 때가 95년 10월인데 그 즈음 민언련 회원이 됐지요. 언론이 앞장서서 사회개혁의 방향을 잡아야하는데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한 게 가슴 아프더군요. 이런 상황에서 민언련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서서 활동을 하지는 못하지만 십시일반으로 회비라도 보태자 싶어서 가입했습니다.”
그는 수년 째 <언론학교>에서 ‘방송바로보기’를 맡아 강의하고 있다. 초롱초롱 언론인을 꿈꾸는 예비 후배들에게 언론의 중요성과 역할을 설파한 후 마지막에 반드시 한마디 남긴다고 한다. “그러니까 민언련에 꼭 가입하세요."
보도의 일관성·전문성 위해 ‘전문기자’ 필요
그의 이름 앞에 환경전문기자란 수식어가 붙기 시작한 건 2004년도부터다. 본디 기자란 정보를 모아서 해석하고 전달하는 전문가인데 또 ‘전문’이란 말을 붙이는 게 어불성설이지만, 이제 언론사도 순환보직 방식의 인사시스템을 고민할 때가 왔다며 그가 말을 잇는다.
“기자들이 젊었을 때는 사건기자로 뛰면서 다양한 현장을 두루 맛보다가 7-8년 차 되면 한 분야를 파고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거의 학자수준은 돼야하죠. 그래야 정부나 관련 단체에서 만든 보도자료를 보고 거짓말인지 판별을 할 수 있지요. 당의정이라고 하죠. 홍보성으로 꾸민 건지 아닌지, 환경담당을 4년 째 맡다 보니 이제 훤히 눈에 보이더라고요.”
취재일선에서 전문기자의 가치와 필요성은 여러모로 부각된다. ‘보도의 일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이점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경우 재작년부터 팔당의 한강 상수원의 보호에 대한 취재를 해왔는데 지난해 대비 얼마나 개선됐다거나 혹은 여전하다 등등 깊게 파고드는 심층 분석 보도가 가능하다고 한다. 다만 환경전문기자의 경우 고생은 감내해야한다고 귀띔했다. 등산복에 등산화 차림으로 쌍안경 목에 걸고 삽 들고 산비탈 강기슭을 다람쥐처럼 오르내리기 일쑤라고.
“아침에 운동 삼아 자전거로 공릉천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지난번에 하천변 오염현장이 보도됐었는데 그 후로 돼지축사는 없어졌더라고요. 그런데 슬금슬금 무허가 건물과 철거더미 잔해를 다시 쌓아놓았더군요.”
그가 수첩을 펼친다. 하천지도가 오밀조밀 상세히 그려져 있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늘 둘레를 살핀다. 불법건축, 쓰레기 투척, 소각현장 등 환경오염 실태를 파악하는 버릇이 있다. 가족끼리 놀러가서도 직업병이 돋는 바람에 배우자에게 핀잔을 받는다며 머쓱하게 웃는다.
“자전거를 타면 참 좋아요. 건강에도 물론 좋지만 거리에서 차지하는 면적이 적으니 겸손하고 착해지죠. 길도 많이 물어보고요, 또 자전거 타는 사람끼리 우연히 동행해 맛있는 것도 나눠먹고요. 푸근한 인심이 오가요.”
자전거나 대중교통 이용... 앎과 삶의 일치
그는 평소에도 시간을 다투는 급한 취재가 아니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이는 환경담당 기자가 된 이후에 꼭 지키는 자신과의 약속이다. 기자 스스로가 취재 분야에 관심을 가질수록 뉴스는 더욱 충실해진다는 남다른 신념을 실천하는 것이다.
앎과 삶이 정직하게 일치하는 박수택 회원. 그는 기자생활 23년간 청빈한 지식인으로서의 본분을 지켜온 그야말로 ‘유기농 기자’다. 우리사회에 경종을 울린 많은 보도 중에서 그는 일본의 한 우익 출판사가 <추한 한국인>이란 책을 낸 출판음모의 진상을 파헤친 일과 96년 SBS의 음주문화시리즈 141편을 기획, 보도하여 우리사회의 음주습관을 조명했던 일 을 가장 기억에 남는 취재로 꼽았다.
“생태는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환경은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고요. 언론도 환경입니다. 정신환경이자 문화환경이죠. 그런 의미에서 공짜신문 안보기 같은 건 누구나 손쉽게 할 수 있는 언론환경 정화 운동입니다. 사람들이 주변 환경에 관심을 기울이고 또 아름다운 의무를 다하도록 돕는 게, 또 바로 제 임무겠지요.”
동동주의 바닥을 확인하고 앞뜰로 나갔다. 약수같이 달고 시원한 바람이 안겨온다. 맑은 공기에 입가심을 한 그가 시조 한 소절 읊듯, 마음 깊은 곳에서 소망을 길어 올린다. “언젠가 꼭 우리나라 환경의 아주 근원적인 문제를 깊이 있게 한 번 다뤄보고 싶습니다. 회사에는 정년이 있어도, 일에는 정년이 없으니까요. 탐구 조사하고 알리는 일은 계속 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