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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9.27] 단어를 채집하자 (4)
  2. [2010.09.15] 주어와 서술어는 연인이다 (8)
  3. [2010.09.13] 같은 표현을 두 번 쓰지 마라 (6)
  4. [2010.09.05] 설명하지 말고 보여줘라 (12)
  5. [2010.09.03] 소통인가 과시인가 (13)
  6. [2008.07.04] <왕필의 노자주> '상선약수, 물처럼 써라' (2)

단어를 채집하자

[글쓰기의 최전선]

나는 그 여자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사랑한다’라는 그 국어의 어색함이 그렇게 말하고 싶은 나의 충동을 쫓아 버렸다. - <무진기행>  

아름다운 문장 한 줄 읽는 것으로 시작하자. 빼어난 문장이다. 독창적인 글쓰기의 묘미가 한껏 드러난다. 사랑한다고 차마 입을 떼지 못했다는 것이야 문학작품에서 늘 나오는 얘기다. 그런데 새롭다. 덤덤하면서도 절절하다. 나는 읽으면서 내가 그가 된 것처럼 어색해서 고개 숙이고 입술을 비틀었다 폈다 했다. 저 문장의 핵심단어는 ‘국어’같다. 흔해 빠진 말인데 사랑, 어색과 배치되니까 신선하다. 색다른 울림을 자아낸다. 더군다나 하나도 꾸미지 아니한 담백하고 솔직한 아이 같은 표현의 어른스러움이라니.  

좋은 문장은 어려운 단어나 고급한 개념어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평범한 단어도 이웃한 단어들에 따라 의미가 살아나면서 선명한 전달력을 갖는다. 적재적소의 미학이다. 글 쓰려면 단어를 많이 알고 그 뜻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글의 기본 재료도 연장도 오직 ‘단어’다. 

살아있는 단어를 쓰라  

이외수는 <글쓰기 공중부양>에서 단어를 생어와 사어로 나누고 생어를 쓰라고 권한다. 생어는 오감을 각성시킨다. 아직 글쓰기에 발군의 기량을 습득하지 못했다면 될 수 있는 한 생어를 많이 사용해야 한다. 생어는 글에 신선감과 생명력을 불어넣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시각: 달빛, 주름살. 청각: 천둥, 자명종. 후각: 비린내, 박하. 촉각: 모래, 양탄자. 미각: 꿀물, 고추장 등이 있다. 반면에 사어는 절망. 허무. 총명. 지혜 등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단어들이다. 사어로만 된 글은 이미지가 남지 않아서 글을 따라가기 어렵다. (하지만 김승옥의 <무진기행> 사례에서 보듯이 사어는 작가의 역량에 따라 얼마든지 생어로 변모한다. 기본을 충분히 습득한 다음의 이야기다.)

그놈은 흉기로 자주 자해를 하는 습관이 있다. 라는 문장보다는 
-> 그놈은 뻑하면 회칼로 자기 배를 그어대는 습관이 있다. 라는 문장이 훨씬 선명한 전달력을 가진다.
흉기와 자해라는 '사어' 대신에 회칼이나 배를 그어댄다는 '생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글쓰기비법에는 단어노트나 글감노트를 만들라는 것이 꼭 나온다. 그만큼 ‘단어’가 중요하다. 이외수도 오감에 해당하는 단어를 감각별로 하루에 최소한 열 개씩만 찾아서 노트에 정리해두라고 한다. 사실 나는 몇 년 전 이 부분(20쪽)을 읽다가 책장을 덮었더랬다. 중학교 때 연습장에 영어단어 써서 외우기 숙제가 생각나서다. 난 그 시간이 너무 한심스러웠다. 글쓰기공부도 영어공부랑 비슷하다. 자기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어떤 학원에서는 수업시간마다 영단어 100개씩 외우게 하고, 어떤 학원은 스토리북 읽으면서 문장 속에서 모르는 단어 뜻 찾아가며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한다.

나는 후자를 택한 셈이다. 나도 단어/문장 노트가 있는데 감각별로 상황별로 단어를 정리하지 않고 아름다운 문장과 단어를 볼 때마다 적어놓는다. 비록 쓰자마자 휘발되어버리지만 ‘단어노트’의 잠재성은 크다. 내 손으로 한번 쓰는 행위를 통해 내 몸 어딘가에 저장하는 기분이다. 쓰는 동안이라도 그 단어와 문장을 되새길 수 있다. 그것이 반복훈련이 되면 단어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고 말을 부릴 줄 알게 된다. 글이 안 풀릴 때 훑어보다가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이외수의 단어훈련법 한 토막을 소개한다.

지금 그대 두변에 방치되어 있는 단어들을 무작위로 적어보라. 초겨울, 창문, 바람소리, 골목, 외등, 새벽, 눈시울 이란 단어를 채집했다고 가정하자. 조금만 노력을 기울이면 이것만으로도 진실을 전달할 수 있다.

창문을 흔들고 지나가는  / 초겨울 바람소리 / 행여 그대가 아닐까 / 바깥을 내다보았습니다
골목 저 멀리 외등 하나 /  눈시울이 젖은 채로 /
새벽을 지키고 있습니다.

주위에 널린 좋은 단어를 색색이 꿰어 보배로운 문장이 탄생했다. 그리고 단어를 고르고 이어붙일 때 ‘뜻’만이 아니라 ‘소리’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독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가 읽은 소리를 따라 읽는다. 리듬과 운율은 모든 문장에 필수요소다. 고요한과 평온한은 어감이 많이 다르다. 자꾸 읽어보면서 단어의 배치를 바꾸고, 더 참신한 단어, 더 적합한 단어로 바꿔보자. 활력 있고 울림 있는 문장이 될 때까지. '국어의 어색함'을 발견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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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와 서술어는 연인이다

[글쓰기의 최전선]

一文一思  (one sentense one idea)

글쓰기 말고 글 고치는 일을 했었다. 원고 리라이팅. 교정과는 조금 다르다. 읽히지 않는 글을 읽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오탈자 수정은 물론 단어 교체, 문장 삽입, 문단 위치 변경 등 대대적인 개보수 공사가 이뤄진다. 사보 기획자의 부탁으로 시작했다. 사보에 넣을 임직원 원고를 고치는 일이었다. 대부분 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쓴 글인데 상태가 심각했다. 딱딱한 전문용어가 난무하고 문장이 엉켜서 주어가 실종되기 일쑤였다. 앞에 한 말 뒤에 또 하고 중구난방에다가 결론도 모호했다. 견적이 안 나와서 울고 싶은 적도 많았다. 차라리 내가 새로 쓰고 말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쳐야할지 막막했다.

계속 하다 보니 나중에는 요령이 생겼다. 이때 가장 먼저 한 일이 문장해체다. ‘일문일사’ 원칙에 따라 문장을 잘랐다. 문장이 너무 길면 논리적으로 모순이 생긴다. 십중팔구다. 문장을 단문으로 잘라놓으면 문제점이 쉬이 드러난다. 그 다음 주어와 서술어 짝을 찾아주고, 문장을 재배치한다. 그러면 사실관계가 명확해진다. 여기까지만 해도 7부 능선은 넘은 거다. 만약에 단문으로 쓸 수 없는 경우라면 한문장에 최소한 경우 주어-서술어가 두 개 이상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중복 단어를 없애고 까다로운 표현을 쉽게 바꾸는 등 버리고 벼리면, 리라이팅 끝~  

하나의 문장에 하나의 생각만을 담자. 독자는 순서대로 한 번에 한 가지 생각만 처리할 수 있다. 문장 하나에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다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긴 문장은 고민하지 말고 두세 개로 나누자.  (글쓰기 생각쓰기)   

                                         
주어와 서술어는 연인이다. 가까이 두라  

예문을 보자.


1단계: 특이한 것은 이 물질을 계속 가열하면 붉은 색이 없어지고 본래의 회색 수은으로 되돌아간다.

얼핏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주어-서술어가 짝이 안 맞는다. 특이한 것이 뭐라는 건가? 이렇게 고쳐보자.

2단계: 특이한 것은 이 물질을 계속 가열하면 붉은 색이 없어지고 본래의 회색 수은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좀 낫지만 매끄럽지가 않다.

3단계: 이 물질을 계속 가열하면 붉은 색이 없어지고 본래의 회색 수은으로 되돌아간다는 사실은 특이하다.

이것이 정답이다. ‘이 사실이 특이하다’가 필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중심생각이다. 영어는 중요한 문장이 앞부분에 오지만 한국어는 중요한 정보가 뒷부분에 온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주어-서술어를 붙여라.

* 좋은 문장을 쓰는 초점으로서는 첫째 ‘간결하게’요, 둘째 ‘재미롭게’요, 셋째 ‘친절하게’요, 넷째 ‘유익하게’ 따위를 들 수 있다.
-> 좋은 문장의 초점은 네 가지이다. 첫째 ‘간결’이요, 둘째 ‘재미’요, 셋째 ‘친절’이요, 넷째 ‘유익’이다.


:선물:
긴 문장으로 울림을 자아내는 문학작품의 경우는 '일문일사'를 예외로 해야겠지만, 중문으로 인한 고통은 어쩔 수 없다. 의미 파악이 쉽지 않다. 타고난 문장가로 꼽히는 김승옥의 작품 <야행>을 읽다가 발견한 ‘아름다운 지뢰’다. 어떻게 고치면 더 좋을까는 각자의 판단에 맡긴다.

그릇 속의 물에 떨어진 한 방울의 잉크가 번지듯이 그 여자의 안에서 번지기 시작하여 이제는 발끝까지 번지고 있는 저 쓸쓸한 느낌이, 만약 그 사내가 말을 걸어오던 처음부터 그의 얼굴을 봄으로써 이내 그 여자를 사로잡았더라면 아마 그 여자는 자기 쪽에서 먼저 사내에게 팔을 내밀어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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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표현을 두 번 쓰지 마라

[글쓰기의 최전선]

접속어

12매 분량을 써야하는 원고가 13매 써졌다. 원고 1매를 줄이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두 세 문장을 덜어내는 것도 있지만 글의 구조를 무너뜨리지 않는 가장 안전한 방법은 ‘접속사’와 ‘반복어휘’ 걷어내기다. 그냥 보면 안 보이는데 고르자고 작정하면 여기저기 박혀있는 접속어가 눈에 띈다 . 접속어가 많으면 글이 딱딱해지고 논리적, 설명적이 된다. 철학책을 생각해보라. 접속어에 자꾸 걸려서 글이 매끄럽지가 않다. 논조를 따라가기 어렵다. 나는 철학책에 한 줄 걸러 등장하는 접속어가 거슬려서 - 안 그래도 내용도 어려운데- 몰입에 곤란을 겪곤 했다.

- 이상은 현실을 견디는 진통제다. (그러므로) 이상이 크고 높을수록 어지간한 통증은 다 녹아들어 간다.

- 니체는 철학이 비탄의 음울한 구름을 걷어 내고 삶 앞에서 커다란 웃음을 터뜨리길 바란다. (그리고) 그것이 철학이 지향해야 할 바가 아니냐고 묻는다.  

접속어를 빼고 읽어보자. 별 차이를 못 느끼겠다고? 각각 문장만 떼어놓고 보면 그렇다. 하지만 한 페이지에 접속어가 한두 개 있는 글과 열 개에 달하는 글은 확연히 다르다. 접속어가 적을수록 글의 리듬이 살아난다.   

반복어휘

 간결함을 추구하는 현대 문장에서 중복 어휘는 '이단'이다. 요즘 뒤늦게 영어공부를 하느라 ‘오바마 연설문’을 읽고 있다. 미국대통령 취임문이니 최고의 문장가가 썼을 것이다. 내가 발견한 특징은 중복 어휘가 없다는 점이다. 같은 의미 다른 표현. 조상이란 표현도 각기 forebear, ancestor, founding father 등 세 가지를 쓰더라.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글 쓰는 사람한테 어휘선택은 자존심 지키기다. 무지개 빛깔의 단어를 적재적소에 새기는 건 글에 대한 예의이다. 
 다음은 중언부언의 사례들. 

* 주어진 조건하에서 어떤 역이든 주어만 주십시오.

-> 가능한 한 어떤 역이든 맡겨만 주십시오.

* 한번 만지기만 해도 왈칵 잠이 들 것만 같은 담요를 한번 만져 보고 싶었다.

-> 한번 만지기만 해도 왈칵 잠이 들 것만 같은 담요에 탐이 났다.

* 70~80% 정도 -> 70~80%

* 미리부터 예약되었었다. -> 예약되었다.

* 컨대 금연실 설치가 그 이다. -> 예컨대 금연실 설치이다.

* 가장 우수한 사원의 한 사람이다. -> 최우수 사원이다. 가장 뛰어난 사원이다.  

조사중복 

* 서울은 집이 방이 좁다. -> 서울 집은 방이 좁다.

* 주식화사의 설립의 조건의 가짓수는 다섯이다. -> 주식회사 설립의 조건은 다섯 가지다.

* “군자는 다섯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 “군자는 다섯수레의 책을 읽으라” 했다.

아름다운 중복 

더러는 어휘 중복으로 글맛이 살아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중복을 피해야한다면서 무조건 반복어휘를 삭제해도 곤란하다. 일반적인 법칙에서 예외적인 상황을 판단하는 것이 필자의 능력이고 고유의 스타일이다. 니체는 아포리즘 형식으로 글을 썼다. 시처럼 유난히 중복이 많고, 그렇기에 힘이 넘친다. 예문을 보자. 니체가 '진리'와 사랑에 빠진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비판하는 부분에서 나온 문장이다. 철학자는 현인이기보다 지혜의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니체는 말했다. 진리를 사랑하지 말고 삶을 사랑하라는 얘기다. '너는'의 삿대질이 글을 살렸다.  

"너는 노예인가? 그렇다면 너는 친구가 될 수 없다. 너는 폭군인가? 그러면 너는 친구를 가질 수 없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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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하지 말고 보여줘라

[글쓰기의 최전선]

군살을 제거하라
글의 목적이 과시가 아니라 소통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간소한 글이 좋은 글이란 얘길 했다. 글쓰기 실력은 필요 없는 것을 얼마나 걷어낼 수 있느냐에 비례한다. 이것을 안(못)하는 이유는 처음에는 뭐가 불필요한 요소인지 ‘무지해서’이고 나중에는 ‘귀찮아서’이다. 아. 찔려 -.-; 일단 습관을 들여놓아야 한다. 나도 한 1년 동안은 글을 쓰고 인쇄해서 모나미 적색볼펜으로 고쳐 버릇했다. 다 걷어냈다고 생각했는데도 나중에 인쇄물을 보면 또 거슬리는 단어들이 있었다. 아무쪼록 꾸준히 하면 문장 보는 눈을 기를 수 있다. 첨삭지도 할 때 사용하는 방법으로 괄호 치기를 권한다. 글에서 유용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모든 요소에 괄호를 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면,

(따로) 틈을 내서 -> 틈을 내서
그녀의 (개인적인) 의사 -> 그녀의 의사
(행복하게) 미소짓다 -> 미소짓다
(~라는 사실) 때문에 -> ~ 때문에
~(라는 목적)을 위해서 -> ~을 위해서
(높은) 마천루-> 마천루
가요계의 전설(이라고 불리는) 서태지 -> 레전드 서태지 (오빠, 화보집 고마워요 ㅠㅠ) 
그는 ~할 수 있는 능력이 전적으로 결여된 사람이었다 -> 그는 ~ 할 수 없었다. 

이렇게 고치고 문장을 다시 살펴보자. 모든 단어가 새로운 역할을 하고 있는가? 그 생각을 더 경제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는가? 잘난 체하고 있지는 않는가?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고 나면 원고 10매가 5매로 줄어든다. “글의 초고는 글에 담긴 정보나 글쓴이의 목소리를 잃지 않고도 오십 퍼센트는 줄일 수 있다.”   이 과정은 생살 떨어지는 아픔을 동반한다. 몇 시간을 끙끙대며 쓴 글을 절반을 날릴 땐 억울해서 눈물 나고 아까워서 손 떨린다. 여기서 더 밀고 나가야 한다. 내가 자주 떠올리는 격언이 있다. “글을 다 쓰고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부분을 날려라” 어떤 맥락에서 본 건지 가물가물한데 자아도취에 빠지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로 이해했다. 도움을 많이 받았다. 마음은 아프지만 고치고 나면 없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게 된다. 글쓰기는 낭비다. 밑 빠진 독에 물 부어 간신히 채워놓고 또 절반을 덜어내는 미련한 짓을 감내해야 한다.

설명하지 말고 보여줘라
참 재밌었다. 슬펐다. 기뻤다. 즐거웠다. 보람찼다는 아이들이 일기 마무리 멘트로 자주 쓰는 말이다. 이런 표현은 뭘 해도 신통방통한 ‘자식의 일기’가 아니고서야 도통 글에 집중할 수 없게 한다. 설명하지 말고 눈앞에 생생히 보여줘라. 그래야 독자가 만화책을 보듯이 말풍선을 그리며 따라간다. 소설의 3요소는 대화 묘사 설명이다. 소설가가 된 기분으로 육하원칙에 입각한 구체적 내용과 생생한 비유적인 표현을 의도적으로 써라. 실감나게 읽히고, 쉬운 문장이 되어 설득력도 커진다.

상품이 날개 돋친 듯이 팔렸다. -> A상품은 하루에 600개나 팔렸다.
수없이 많은 군중이었다. -> 어림잡아 500명의 군중이었다.
꽃수레가 조용했다. -> 꽃수레는 삼십분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5월이다. -> 연한 녹색이 나날이 번져가고 있는 오월이다. (피천득) 

부끄럽지만 내가 쓴 글에서도 인용해보겠다. 버마이주노동자 활동가 소모뚜씨 인터뷰할 때다. 그가 말했다. "해질녘이면 동네 청년들이 길에 나와서 노래를 불러요." 지나가듯이 한 말인데 인상 깊었다. 낭만이 살아 있는 마을이라니! 그 장면이 수채화처럼 아름답게 느껴졌다. 버마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돈없고 궁핍한 나라'다. 그 나라에서 온 노동자도 문화적 욕망이나 향유를 모르는 삭막한 기계 혹은 노예 이미지다. 이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 소모뚜 인터뷰의 핵심이었다. 가난이 곧 불행이 아니라는 것, 물적재화가 삶의 질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  그들 역시 아프고 꿈꾸고 사랑하며 사는 삶의 풍요를 꿈꾸는 존재, 우리와 같은 친구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한줄 문장을 한껏 부풀렸다. 내가 상상한 풍경과 메시지를 보여주기 위해 온 세포를 집중했다.

'버마의 어느 작은 마을, 부챗살로 퍼지던 햇살이 몸을 접는 시간이면 기타를 멘 청년들이 하나둘 거리로 흘러나온다. 저마다 벤치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서 딩딩 기타를 매만진다. 가슴에 고이 접어두었던 오선지가 서서히 펴지고 감미로운 선율이 날개 달고 훨훨 허공으로 떼 지어 난다. 부르고 또 부르고, 여기서 한 소절 저기서 한 소절. 섬처럼 떨어져 노래하던 청년들은 어느새 따로 또 같이 화음을 맞춘다. 어스름 밤공기 타고 골목골목 휘돌아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는 청량한 바람 되어 동네사람들의 마음을 적신다.'  (소모뚜 인터뷰 중)



* 사례인용 <글쓰기 생각쓰기> <글고치기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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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글쓰기

소통인가 과시인가

[글쓰기의 최전선]

“나 글쓰기 좀 가르쳐 주라.”
“그러고 싶은데.......어느 시인이 그랬거든. 효모에게 술이 되는 법을 가르칠 수 없듯이 시 쓰기를 가르칠 수 없다고. 난 그 말이 맞는 거 같아. 더군다나 내가 야매로 글쓰기를 배웠으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뭘 가르쳐줘야할지 모르겠어.”
“그런 거 말고!”
“그래. 뭐 기본적인 기사작성법 같은 건 알려줄 수 있지. 가르쳐줘? -.-;;”

얼마 전 친구와 나눈 대화내용이다. 요즘 들어 글 쓰는 법을 가르쳐 달라는 요청이 잦다. 그럴 때면 두 마음이 다툰다. 하나는 “진정 온갖 정성을 다해 가르쳐주고 싶다”이고,  다른 하나는 “내 앞가림도 못하면서 남 가르쳐줄 처지인가” 이다. 그러던 중 이 딜레마의 해결방법을 찾았다. ‘가르친다’ 대신 ‘나눈다’로 의미를 재규정하는 것이다. 난 글쓰기를 옆자리 선배한테 무료로 배웠다. 첨삭지도 받으면서 감을 잡아갔다. 이 세상에 나오면서 '얻은 것'은 돌려보내야 한다고 문태준 시를 읽으면서 다짐을 했듯이 결초보은 사상에 입각하여 퍼주기로 했다. 글 써서 밥은 먹고 살았으니 뭔가 미약하게나마 나눌거리가 있을 것 같다.   

이 세상에는 좋은 글쓰기 강좌와 책이 많다.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한겨레 글쓰기 교실의 미더운 강사들. 서점에 깔린 그 수많은 주옥같은 글쓰기 스테디셀러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글쓰기 방법을 묻는 건 왜 인가. 시간과 돈이 없어서 혹은 내가 좋고 만만해서. 둘다 이거나 둘 중 하나겠지. 후자라고 믿기로 했다. ㅋ 그래서 내가 어떻게 낑낑대면서 글을 쓰는지, 혹은 잘 쓰고 싶어서 어떤 안달과 노력을 기울이는지, 어떤 때 원고를 퇴짜 맞고 부끄러움의 눈물을 흘리는지. 나의 글쓰기 경험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려 한다. 글쓰기에 관한 윤리적인 부분과 기술적인 부분.  크게 두 가지 측면이 될 것이다. 주관적 오류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글쓰기 책을 참고서처럼 옆에 펴놓고 밑줄 친 문장을 인용할 참이다.  

자폐적 글 vs 소통적 글  

소통인가 과시인가. 얼마 전 돌아가신 이윤기 선생님이 글쓰기 전에 꼭 되새겨본다는 말이다. 어디선가 이 대목을 보고는 즉시 내 것으로 삼았다. 벽면에 붙여두어야 할 격언이다. 일기 외의 글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쓴다. 전달할 내용이 분명한 상태에서 출발한다. 그러면 그것을 잘 전하면 된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대개는 장황하게 쓰다가 길을 잃기 십상이다. 나도 그런다. 처음에 쓴 글을 보면 아주 가관이다. 잘 쓰고 싶은 의욕이 넘쳐서 중언부언, 내 말에 내가 심취해 있다. 뭔가 몽롱하고 아련한 있어보이지만 딱히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안개정국에 빠진 글은 십중팔구 위험하다. 글의 핵심이 흐릿하기 때문이다.

교장선생님 말씀과 목사님 말씀과 주례사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한 말 또 하기다.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다 말하려니까 아무것도 전달하지 못하고 만다. ‘행복한’ ‘열심히’ ‘훌륭한’ 같은 죽은 표현은 또 얼마나 많은지. 독자가 알고 싶은 것은 팩트의 진실함이지 필자의 학식이나 감정 상태가 아니다. 그러니 글 쓸 때는 불필요한 단어, 반복적인 문장, 과시적인 문장, 무의미한 전문용어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구질구질한 것은 빼라. 그래야 글이 가벼워진다.

좋은 글쓰기의 비결은 모든 문장에서 가장 분명한 요소만 남기고 군더더기를 걷어내는 데 있다. 아무 역할도 못하는 단어, 짧은 단어로도 표현할 수 있는 긴 단어, 이미 있는 동사와 뜻이 같은 부사, 읽는 사람이 누가 뭘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게 만드는 수동 구문, 이런 것들은 모두 문자의 힘을 약하게 하는 불순물일 뿐이다.
- <글쓰기 생각쓰기> 중 
 

소설가 김훈은 주어와 동사로만 된 생선가시 같은 문장을 쓰고 싶다고 했는데 그건 굉장한 경지이다. 필자의 몸에 저장된 동사가 많아야 가능하다. 어쨌거나 그 분의 스타일이니 모두 따라할 필요는 없다. 일단은 생선가시를 떠올리며 짧고 명료하게 쓰려는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읽다가 문맥 파악이 어려워서 되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단문으로 끊어 쓴다. 그게 훈련이 되면 길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자연스러운 문장이 써진다.  

내가 사보의 글을 쓸 때 편했던 것은 늘 분명한 ‘기획의도’가 제시됐다는 점이다. 가령, 김대리의 사진 찍는 취미가 회사생활에 어떤 활력을 주는지 정리해주세요. 이렇게 취재요청이 오면 첫째, 둘째, 셋째 맥을 잡고 에피소드를 섞어서 활력사례를 정리하면 된다. 기어코 사진 미학에 관하여 아는 척 하고 싶은 욕구가 일더라도 참아야 한다. 사보든 일간지든 소식지든 블로그 포스팅이든 모든 글에는 ‘하나의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야 함을 잊지 말자.

한곳을 비추자. 조명은 한 군데만 비춰져야 조명으로서 기능한다. 글쓰면서 수시로 물어야 한다. 내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이었나? 이 글을 읽고 났을 때 한줄 요약이 되는가? 두 번 묻고 세 번 고쳐야 한다. 난 징검다리로 놓았는데 알고보면 돌부리인 것들이 있다. 읽다보면 보인다. 치우면 된다. 귀찮아서 그렇지 글은 고칠수록 좋아진다. 환골탈태를 확인할 수 있다. 생각해보라. 전문가가 쓴 신문 칼럼도 안 읽히는 글이 의외로 많다. 막힘없이 읽히기만 해도 글쓰기는 일단,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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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필의 노자주> '상선약수, 물처럼 써라'

[비포선셋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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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성인의 말씀이야 이롭지 않은 것이 없겠지만 삶의 한 능선을 넘는 즈음, 마흔 목전에 접한 노자는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삶의 전 영역에 걸쳐 무위사상을 펼친다. 행하지 않으면서 행하고 爲無爲, 무사의 마음으로 일하며 事無事, 무미의 마음으로 맛을 보라고 말한다 味無味.

자연이 그러하듯 ‘검박하게 순리대로’ 살라는 말일 게다. <왕필의 노자주>를 공부한 기념으로 (글써서 밥 벌어 먹는 사람으로서 심기일전 차원에서) 노자의 가르침을 ‘글 쓰는 태도’에도 적용해 보았다. 좋은 글은 좋은 삶에서 우러나온다. 그 순환구도를 생각하면 '잘 사는 법은 곧 잘 쓰는 법'이기도 하다. 무위를 행한 글쓰기. 쓰지 않으면서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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