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인가 과시인가

[글쓰기의 최전선]

“나 글쓰기 좀 가르쳐 주라.”
“그러고 싶은데.......어느 시인이 그랬거든. 효모에게 술이 되는 법을 가르칠 수 없듯이 시 쓰기를 가르칠 수 없다고. 난 그 말이 맞는 거 같아. 더군다나 내가 야매로 글쓰기를 배웠으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뭘 가르쳐줘야할지 모르겠어.”
“그런 거 말고!”
“그래. 뭐 기본적인 기사작성법 같은 건 알려줄 수 있지. 가르쳐줘? -.-;;”

얼마 전 친구와 나눈 대화내용이다. 요즘 들어 글 쓰는 법을 가르쳐 달라는 요청이 잦다. 그럴 때면 두 마음이 다툰다. 하나는 “진정 온갖 정성을 다해 가르쳐주고 싶다”이고,  다른 하나는 “내 앞가림도 못하면서 남 가르쳐줄 처지인가” 이다. 그러던 중 이 딜레마의 해결방법을 찾았다. ‘가르친다’ 대신 ‘나눈다’로 의미를 재규정하는 것이다. 난 글쓰기를 옆자리 선배한테 무료로 배웠다. 첨삭지도 받으면서 감을 잡아갔다. 이 세상에 나오면서 '얻은 것'은 돌려보내야 한다고 문태준 시를 읽으면서 다짐을 했듯이 결초보은 사상에 입각하여 퍼주기로 했다. 글 써서 밥은 먹고 살았으니 뭔가 미약하게나마 나눌거리가 있을 것 같다.   

이 세상에는 좋은 글쓰기 강좌와 책이 많다.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한겨레 글쓰기 교실의 미더운 강사들. 서점에 깔린 그 수많은 주옥같은 글쓰기 스테디셀러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글쓰기 방법을 묻는 건 왜 인가. 시간과 돈이 없어서 혹은 내가 좋고 만만해서. 둘다 이거나 둘 중 하나겠지. 후자라고 믿기로 했다. ㅋ 그래서 내가 어떻게 낑낑대면서 글을 쓰는지, 혹은 잘 쓰고 싶어서 어떤 안달과 노력을 기울이는지, 어떤 때 원고를 퇴짜 맞고 부끄러움의 눈물을 흘리는지. 나의 글쓰기 경험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려 한다. 글쓰기에 관한 윤리적인 부분과 기술적인 부분.  크게 두 가지 측면이 될 것이다. 주관적 오류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글쓰기 책을 참고서처럼 옆에 펴놓고 밑줄 친 문장을 인용할 참이다.  

자폐적 글 vs 소통적 글  

소통인가 과시인가. 얼마 전 돌아가신 이윤기 선생님이 글쓰기 전에 꼭 되새겨본다는 말이다. 어디선가 이 대목을 보고는 즉시 내 것으로 삼았다. 벽면에 붙여두어야 할 격언이다. 일기 외의 글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쓴다. 전달할 내용이 분명한 상태에서 출발한다. 그러면 그것을 잘 전하면 된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대개는 장황하게 쓰다가 길을 잃기 십상이다. 나도 그런다. 처음에 쓴 글을 보면 아주 가관이다. 잘 쓰고 싶은 의욕이 넘쳐서 중언부언, 내 말에 내가 심취해 있다. 뭔가 몽롱하고 아련한 있어보이지만 딱히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안개정국에 빠진 글은 십중팔구 위험하다. 글의 핵심이 흐릿하기 때문이다.

교장선생님 말씀과 목사님 말씀과 주례사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한 말 또 하기다.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다 말하려니까 아무것도 전달하지 못하고 만다. ‘행복한’ ‘열심히’ ‘훌륭한’ 같은 죽은 표현은 또 얼마나 많은지. 독자가 알고 싶은 것은 팩트의 진실함이지 필자의 학식이나 감정 상태가 아니다. 그러니 글 쓸 때는 불필요한 단어, 반복적인 문장, 과시적인 문장, 무의미한 전문용어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구질구질한 것은 빼라. 그래야 글이 가벼워진다.

좋은 글쓰기의 비결은 모든 문장에서 가장 분명한 요소만 남기고 군더더기를 걷어내는 데 있다. 아무 역할도 못하는 단어, 짧은 단어로도 표현할 수 있는 긴 단어, 이미 있는 동사와 뜻이 같은 부사, 읽는 사람이 누가 뭘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게 만드는 수동 구문, 이런 것들은 모두 문자의 힘을 약하게 하는 불순물일 뿐이다.
- <글쓰기 생각쓰기> 중 
 

소설가 김훈은 주어와 동사로만 된 생선가시 같은 문장을 쓰고 싶다고 했는데 그건 굉장한 경지이다. 필자의 몸에 저장된 동사가 많아야 가능하다. 어쨌거나 그 분의 스타일이니 모두 따라할 필요는 없다. 일단은 생선가시를 떠올리며 짧고 명료하게 쓰려는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읽다가 문맥 파악이 어려워서 되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단문으로 끊어 쓴다. 그게 훈련이 되면 길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자연스러운 문장이 써진다.  

내가 사보의 글을 쓸 때 편했던 것은 늘 분명한 ‘기획의도’가 제시됐다는 점이다. 가령, 김대리의 사진 찍는 취미가 회사생활에 어떤 활력을 주는지 정리해주세요. 이렇게 취재요청이 오면 첫째, 둘째, 셋째 맥을 잡고 에피소드를 섞어서 활력사례를 정리하면 된다. 기어코 사진 미학에 관하여 아는 척 하고 싶은 욕구가 일더라도 참아야 한다. 사보든 일간지든 소식지든 블로그 포스팅이든 모든 글에는 ‘하나의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야 함을 잊지 말자.

한곳을 비추자. 조명은 한 군데만 비춰져야 조명으로서 기능한다. 글쓰면서 수시로 물어야 한다. 내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이었나? 이 글을 읽고 났을 때 한줄 요약이 되는가? 두 번 묻고 세 번 고쳐야 한다. 난 징검다리로 놓았는데 알고보면 돌부리인 것들이 있다. 읽다보면 보인다. 치우면 된다. 귀찮아서 그렇지 글은 고칠수록 좋아진다. 환골탈태를 확인할 수 있다. 생각해보라. 전문가가 쓴 신문 칼럼도 안 읽히는 글이 의외로 많다. 막힘없이 읽히기만 해도 글쓰기는 일단,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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