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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전선

설명하지 말고 보여줘라

군살을 제거하라
글의 목적이 과시가 아니라 소통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간소한 글이 좋은 글이란 얘길 했다. 글쓰기 실력은 필요 없는 것을 얼마나 걷어낼 수 있느냐에 비례한다. 이것을 안(못)하는 이유는 처음에는 뭐가 불필요한 요소인지 ‘무지해서’이고 나중에는 ‘귀찮아서’이다. 아. 찔려 -.-; 일단 습관을 들여놓아야 한다. 나도 한 1년 동안은 글을 쓰고 인쇄해서 모나미 적색볼펜으로 고쳐 버릇했다. 다 걷어냈다고 생각했는데도 나중에 인쇄물을 보면 또 거슬리는 단어들이 있었다. 아무쪼록 꾸준히 하면 문장 보는 눈을 기를 수 있다. 첨삭지도 할 때 사용하는 방법으로 괄호 치기를 권한다. 글에서 유용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모든 요소에 괄호를 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면,

(따로) 틈을 내서 -> 틈을 내서
그녀의 (개인적인) 의사 -> 그녀의 의사
(행복하게) 미소짓다 -> 미소짓다
(~라는 사실) 때문에 -> ~ 때문에
~(라는 목적)을 위해서 -> ~을 위해서
(높은) 마천루-> 마천루
가요계의 전설(이라고 불리는) 서태지 -> 레전드 서태지 (오빠, 화보집 고마워요 ㅠㅠ) 
그는 ~할 수 있는 능력이 전적으로 결여된 사람이었다 -> 그는 ~ 할 수 없었다. 

이렇게 고치고 문장을 다시 살펴보자. 모든 단어가 새로운 역할을 하고 있는가? 그 생각을 더 경제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는가? 잘난 체하고 있지는 않는가?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고 나면 원고 10매가 5매로 줄어든다. “글의 초고는 글에 담긴 정보나 글쓴이의 목소리를 잃지 않고도 오십 퍼센트는 줄일 수 있다.”   이 과정은 생살 떨어지는 아픔을 동반한다. 몇 시간을 끙끙대며 쓴 글을 절반을 날릴 땐 억울해서 눈물 나고 아까워서 손 떨린다. 여기서 더 밀고 나가야 한다. 내가 자주 떠올리는 격언이 있다. “글을 다 쓰고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부분을 날려라” 어떤 맥락에서 본 건지 가물가물한데 자아도취에 빠지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로 이해했다. 도움을 많이 받았다. 마음은 아프지만 고치고 나면 없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게 된다. 글쓰기는 낭비다. 밑 빠진 독에 물 부어 간신히 채워놓고 또 절반을 덜어내는 미련한 짓을 감내해야 한다.

설명하지 말고 보여줘라
참 재밌었다. 슬펐다. 기뻤다. 즐거웠다. 보람찼다는 아이들이 일기 마무리 멘트로 자주 쓰는 말이다. 이런 표현은 뭘 해도 신통방통한 ‘자식의 일기’가 아니고서야 도통 글에 집중할 수 없게 한다. 설명하지 말고 눈앞에 생생히 보여줘라. 그래야 독자가 만화책을 보듯이 말풍선을 그리며 따라간다. 소설의 3요소는 대화 묘사 설명이다. 소설가가 된 기분으로 육하원칙에 입각한 구체적 내용과 생생한 비유적인 표현을 의도적으로 써라. 실감나게 읽히고, 쉬운 문장이 되어 설득력도 커진다.

상품이 날개 돋친 듯이 팔렸다. -> A상품은 하루에 600개나 팔렸다.
수없이 많은 군중이었다. -> 어림잡아 500명의 군중이었다.
꽃수레가 조용했다. -> 꽃수레는 삼십분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5월이다. -> 연한 녹색이 나날이 번져가고 있는 오월이다. (피천득) 

부끄럽지만 내가 쓴 글에서도 인용해보겠다. 버마이주노동자 활동가 소모뚜씨 인터뷰할 때다. 그가 말했다. "해질녘이면 동네 청년들이 길에 나와서 노래를 불러요." 지나가듯이 한 말인데 인상 깊었다. 낭만이 살아 있는 마을이라니! 그 장면이 수채화처럼 아름답게 느껴졌다. 버마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돈없고 궁핍한 나라'다. 그 나라에서 온 노동자도 문화적 욕망이나 향유를 모르는 삭막한 기계 혹은 노예 이미지다. 이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 소모뚜 인터뷰의 핵심이었다. 가난이 곧 불행이 아니라는 것, 물적재화가 삶의 질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  그들 역시 아프고 꿈꾸고 사랑하며 사는 삶의 풍요를 꿈꾸는 존재, 우리와 같은 친구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한줄 문장을 한껏 부풀렸다. 내가 상상한 풍경과 메시지를 보여주기 위해 온 세포를 집중했다.

'버마의 어느 작은 마을, 부챗살로 퍼지던 햇살이 몸을 접는 시간이면 기타를 멘 청년들이 하나둘 거리로 흘러나온다. 저마다 벤치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서 딩딩 기타를 매만진다. 가슴에 고이 접어두었던 오선지가 서서히 펴지고 감미로운 선율이 날개 달고 훨훨 허공으로 떼 지어 난다. 부르고 또 부르고, 여기서 한 소절 저기서 한 소절. 섬처럼 떨어져 노래하던 청년들은 어느새 따로 또 같이 화음을 맞춘다. 어스름 밤공기 타고 골목골목 휘돌아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는 청량한 바람 되어 동네사람들의 마음을 적신다.'  (소모뚜 인터뷰 중)



* 사례인용 <글쓰기 생각쓰기> <글고치기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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