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장애인 아버지가 된다

[은유칼럼]

지하철 객차에서 장애인 아들과 비장애인 아버지를 보았다. 건장한 성인 체격의 아들은 천진난만한 어투로 목청껏 떠들고 크게 웃었다. 주변의 눈길이 일제히 쏠렸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조금만 작게 말해달라고 타일렀다. 자상한 눈빛이었다. 부자지간의 대화가, 그들의 외출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나는 그 아버지를 따라가고 싶었다. 직업정신인데, 무수한 이야기가 깃든 얼굴, 자기정리가 된 듯 편안한 기운에 끌렸다. 어떤 일로 웃는지, 속상한지, 불편한지, 실망하는지, 어떻게 기운 차려 하루를 살아가는지 궁금했다. 매스컴에 소개되는 동정과 차별의 대상인 장애인 말고 다른 이야기들, 지하철 한 칸에 섞여 타는 동료 시민으로서, 애 키우는 같은 부모로서 사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나의 부모님도 장애인 아들을 두었다. 오빠가 삼십대 초반 급작스런 질병으로 장애를 얻었다. 신앙심 깊고 인정 많은 엄마는 평소 약하고 병든 이를 도와야 한다고 말했지만 막상 당신의 아들이 ‘사회적 약자’가 되자 크게 절망했다. 엄마에게 장애인은 동정의 대상이지 인정의 실체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병실에 있는 사람들에게 늘 이렇게 설명했다. “얘가 ○○대를 나왔는데 이렇게 됐다.” 그런 말을 하는 아버지가 나는 민망하고 애처로웠다. 그건 장애인이라는 ‘비정상성’의 노출을 학벌 자원이라는 ‘정상성’의 외투로 가려보려는 안간힘 같았다. 장애인은 못배우고 가난하고 불행하다는 편견의 그물에 두 분 스스로가 휘적휘적 발이 걸려 넘어지고 상처 입었다.


자유기고가로 일하며 난 장애인과 자주 만났다. 기업체 사보와 공공단체 기관지에서는 ‘소외된 이웃’을 향해 손길을 내미는 사회공헌 활동이 단골 메뉴다. 장애인 학교 체육대회에 취재를 갔을 때다. 그날 만난 학부모가 저녁에 전화를 걸었다. 아이가 학교를 졸업하면 모든 지원이 끊기고 다닐 곳이 없다고, 아무 힘 없는 문필하청업자인 내게 이십여분을 하소연했다. 청각장애인 영화감독을 만났을 때는 노트북을 사이에 놓고 한줄 한줄 질문과 대답을 입력해가며 필담을 나누었다.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이들의 창작 작업을 상상하고 기록했다. 뇌병변 장애인 인터뷰에선 활동보조인이 통역을 도와주었다. 더치커피처럼 한 단어씩 느리게 떨어지는 말들을 난 처음 맛보는 커피처럼 찬찬히 음미했다.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긴 생머리의 여성 학인은 자기를 이렇게 소개했다. 걸레 짤 힘도 없이 손목이 아플 때가 많아서 서류에 자신을 장애인으로 표시한다고.


‘장애인 페미니스트’ 해릴린 루소는 <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에서 자기 이야기를 속 시원하게 풀어놓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고작 몇 층 이동하는 동안에도 익명성을, 잠깐의 고요를 누릴 권리가 없는 불편을 토로한다. 구조적 문제도 놓치지 않는다. “내가 살면서 부딪히는 수많은 문제의 근본 원인은 장애 자체가 아니라 장애에 대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태도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관계는 관점을 결정한다. 일과 책으로 장애인의 언어를 접하며 내 편견은 서서히 무너졌다. 존재의 이해도가 높아졌다. 정상적인 삶이 아무 문제 없다는 뜻이 아니라면, 장애인이 처한 곤란을 정확한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는 매우 임의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대개의 장애는 극복할 수 없다고 들었다. 사실 비장애인도 평소 뭘 그리 극복하고 살지 않는다. 해릴린 루소 말대로 “장애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장애가 있어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에선, 비장애인도 닦달당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회였다면 우리 부모가 그토록 절망했을까. 


지하철에서 목청이 커지는 장애인을 만나면? 장애인이 ‘극복’할 수는 없지만 비장애인이 ‘수용’할 수는 있을 것이다. 짜증내지도 힐끔거리지도 못본 체하지도 않으면서 익명성의 권리를 존중하는 기술은, 대부분 관계의 문제가 그렇듯 내가 풀어야 할 몫 같다. 그래서 난 뭐에 끌린 듯 아버지를 따라가고 싶었나 보다. 

* 한국방송통신대학보에 실림


(무슨 책 내는 것도 아니면서 이런 말이 우습지만, 난 이 글을 장애인 부모로 살아가는 곤란과 아픔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 준 나의 학인들을 위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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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되지 않은 전태일을 기록하며

[은유칼럼]

10대부터 60대까지 연령대가 모인 글쓰기 수업에서 <전태일 평전>을 읽을 때면, 그의 생애 만큼이나 뜨겁고 척척한 말들이 오간다. 감응의 지점이 세대별로 조금씩 다르다. 60대는 ‘신발에 물이 새지 않으면 다행인’ 찢어지는 가난에 좀 더 공감하고 40~50대는 ‘비참한 현실을 바꿔내는’ 집요한 싸움에 반응한다. 20~30대는? 가장 열렬하다. 전태일이 그리는 생생한 노동 현장 실태에 맞장구 치며 목소리를 높인다. 


“월급 받아도 교통비를 제하고 나면 남는 게 없다는 전태일 말이 그때나 지금이나 틀리지 않구나 싶어요.” “먹고 살길이 막막한 젊은이들이 서울로 몰린다는 것도요.” “노동력으로 전락한 인간상을 증오한다는 문장이 팍 와 닿아요.” “‘왜 이렇게 의욕이 없는 일을 하고 있는지 나 자신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렴풋이 생각이 확실해질 때는 퇴근 시간이 다 될 때이다.’ 이 대목 읽으면서 진짜 제가 쓴 줄 알았어요.” 


전태일은 48년 생. 살아있었다면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다. 책에 나오는 수기는 1960년대 후반에 쓴 글들이다. 무려 오십년 전 어느 노동자의 참담한 수기를 ‘요즘 젊은이들’이 지루해하면 어쩌나 하는 나의 걱정은 기우였다. 무지와 편견이었다. 마르크스 말대로, 어떤 노동자가 어떤 자본가를 만나느냐는 우연적일 수 있지만 전체로서 노동자 계급이 자본가 계급을 만나는 것은 거의 필연적인 법. 전태일의 평화시장이 그들에겐 편의점이고 사무실이다. 완장 찬 작업 반장 대신 CCTV가 감시할 뿐, 사람을 이윤 창출의 도구로 보는 현실은 너무도 닮았다. 


며칠 전 수업 때다. 머리카락 희끗한 어느 남자 학인은 <전태일 평전>을 읽고 무슨 예언처럼 이런 말을 보탰다. “전태일은 기록이 남아 있고 분신을 해서 후대에 알려졌지만 아마 그 당시 전태일 만큼 열심히 싸운 다른 노동자가 또 많을 겁니다.” 그리고 그날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난 거짓말처럼 어느 노동자의 ‘부고’를 들었다. 


경기도 시흥의 스피로폼 파쇄업체에서 한 노동자가 파쇄기에 상반신이 끼어 압착 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이다. 그는 이미 25세에 공단지역에서 일하다가 프레스 사고로 손가락 4개를 절단한 산재노동자이고, 그 사건을 계기로 수지 접합 산재노동자들을 돕는 일에 15년 간 종사한 활동가였다. 4년전 베트남인 여성과 결혼해 3살, 5살 두 아들과 다문화가정을 꾸리며 일상을 일궈가던 중 참변을 당한 것이다. 


<전태일 평전>에 나오는 사례라고 해도 믿기지 않을, 2016년에 일어난 이 사건을 다룬 매체는 <한겨레>와 <민중의 소리> 두 곳 뿐이었다. 인공지능 로봇과 인간의 바둑 대결이 생중계 되는 첨단과학의 시대에, 기계가 사람을 삼켜버리는 영세 사업장의 무참한 현실은 뉴스가 되지 않았다. 아마 페이스북을 열지 않았으면 나도 몰랐을 일이다. 이십대에 손가락 네 개를 잃고 사십대에 온 몸이 찢긴 ‘어느 노동자의 삶과 죽음’은 그렇게 조용히 세상에서 지워진다.


기억할 것 많은 4월, 기억 하나 더 얹는다. 남현섭(1967~2016). <전태일 평전> 한 귀퉁이에 조심스레 그의 이름을 쓴다. 기록되지 않는 전태일의 죽음을 기록한다. 다음 수업에 학인들에게 읽어줄 것이다. 이 찬란한 봄에 그가 꾸었던 소박한 꿈을.


‘자연이 연출하는 너무나 아름다운 광경을 보고 그리고 상상하고 있노라니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고마운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이 아름다운 세상을 떠나게 되는 그 때까지 이렇게 몸과 마음이 다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2010년 4월 26일 '건강한 노동세상 소식지'에 고인이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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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기고 - 반도체 소녀의 귀향

[은유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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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귀향>을 보는 동안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팠다. 일본군의 (성)폭력으로 인한 비명과 무자비한 총성이 길고 셌다. 무구한 소녀와 잔인한 일본군의 선악 대비, 그 단순한 서사의 프레임은 생각을 몰수하고 통증을 일으켰다. 이런 궁금증이 남았다. 왜 저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범하고 죽이게 되었는가. 존재를 침범당한 인간은 또 어떻게 존엄을 추스르고 일상을 살아갔는가.

극장을 나와 핸드폰을 켜니 문자가 와 있었다. 내일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세상에 알린 고 황유미씨의 9주기 추모제가 열린다는 내용이다. 아, <귀향>은 끝나지 않았구나. 여기에 또 하나의 악이 있고, 또 하나의 기막힌 죽음이 있고, 귀향을 기다리는 또 하나의 소녀상이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묵직했다. 

이튿날, 서울 강남역 8번 출구 삼성전자 본사 앞을 찾아갔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 150일째 농성 중이었다. 기나긴 풍찬노숙엔 이유가 있다. 지난 1월 언론에선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보상 마침내 마무리’라는 기사가 쏟아졌으나, 겉과 속이 다르다. 삼성전자는 독립된 사회적 기구가 아닌 독자적 사내 보상위원회를 발족했다. 그러곤 가해자인 자기들이 직접 보상을 진두지휘했다. 산정기한을 정해서 피해자들을 압박하고, 합의사항에 대한 비밀을 유지하라는 각서를 발송했다. 사과도 형식적이다. 삼성의 부실한 안전관리 행위를 인정하고 사과하라는 조정권고안의 내용은 쏙 빼고 “아픔을 헤아리는 데 소홀했다”는 말로 얼버무렸다. 한마디로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아프다니 유감이다’라는 식이다.

이것은 우리가 풀어야 할 거대한 의문부호다. 삼성은 왜 저 푸르스름한 건물 유리처럼 차가운 얼굴을 갖게 되었나. 직업병 사망자 76명과 암환자 223명이 나왔는데도 왜 눈물 흘리지 않는가. 죽음의 공장인 삼성이 어떻게 세계 일류 기업의 칭호를 누리는가. 삼성은 아는 것 같다. 영화 <귀향>의 일본군처럼 삼성은 한국 사회의 절대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다. 독한 화학약품의 생산라인에 사람을 방치하여, 죽이지 않고 죽게 내버려둔다. 돈 몇 푼 쥐여주고 조용히 죽음의 흔적을 치워버린다. 언론은 삼성 편이다. 대학생이 들어가기 원하는 1위 기업의 위상은 굳건하다. 어떤 짓을 해도 어떤 저항에도 부딪치지 않는다는 확신이 폐쇄적이고 책임을 회피하는 기업 체질을 만들었으리라. 

황유미는 열아홉에 속초에서 관광버스 타고 삼성반도체 기흥 공장에 들어갔다가 백혈병을 얻어 스물셋에 세상을 떠났다. ‘생전의 고인은 왜 아파야 하는지 몰랐다’는 기자회견문에서 영화 <귀향>의 소녀의 대사가 겹친다. 트럭 타고 일본군에 끌려온 열다섯 소녀도 몰랐다. 그래서 묻는다. ‘여기가 어디예요?’ 일본군은 질문하는 소녀의 입을 후려쳤다. 황유미 추모제가 열리는 날 삼성전자는 본사 앞에 펜스를 쳤다. 말하는 자, 감히 알려고 하는 자를 저들은 몹시도 겁낸다.

은유 작가
은유 작가
9년 사이, 말이 쌓여 질문이 되고 진실이 드러났다. 황유미의 산업재해가 행정법원에서 인정됐다. “왜 네가 병에 걸렸는지 원인을 밝혀내겠다”던 약속을 아버지 황상기씨는 지켰다. 세상으로 나온 또 다른 유미들이 매일 강남역 삼성전자 앞에서 이어 말하고 있다. 삼성이라는 악에 대한 증언에서 나아가 저들의 비열한 횡포에 맞서 어떻게 분투했는지, 일상을 파괴하는 고통과 분노에 익사당하지 않고 타인에게 관심을 넓히게 되었는지, 알 수 없는 고통이 알 수 있는 고통이 되기까지 어떻게 싸웠는지…. 오가는 행인의 발걸음을 붙들어 세우는 그 뜨거운 이야기들은, 반도체 소녀들의 ‘귀향’이다.

은유 작가


* 고 황유미 9주기를 맞아 언론사 릴레이 기고에 참여했습니다. 한겨레 3월 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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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분과 전혜린

[은유칼럼]


‘본분’이라는 말, 이 쿰쿰한 냄새 피우는 단어의 옷을 공교롭게도 ‘여자 아이돌’이 입고 나타났다. 설 연휴에 KBS 2TV에서 ‘본분 금메달’이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됐고 제목 그대로 누가 더 여자 아이돌의 본분에 맞는가를 겨루었다. 가령 모형 바퀴벌레를 던져놓고 얼마나 예쁘게 놀라는지,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도 표정이 일그러지지 않는지, 프로필상 몸무게와 실제 몸무게가 얼마나 일치하는지 등의 테스트를 거친 후 총점을 매겨 무슨 올림픽처럼 금메달을 수여했다. 방영 후 ‘아이돌 괴롭히기’라는 논란이 일고 ‘눈살 찌푸리게 한다’는 시청자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그럴 만했다. 본분本分. 본래의 직분에 따른 책임이나 의무를 진다는 뜻이다. 이 행실 바른 말의 숨은 폭력성을 저 프로그램은 여실히 드러냈다. 학생의 본분 하면 공부, 여자의 본분 하면 조신하게 살림하고 애키우기를 떠올리는 건 나뿐인가? 대개 본분이란 약자의 (동의 없이 정해진) 의무이고 그 본분은 약자의 생사여탈권을 쥔 자가 정한다. 아이돌의 본분 역시 방송 권력이 급조했다. 위 프로그램을 만든 최승희 PD는 프로그램 제목인 아이돌의 '본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언제 어디서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남의 삶의 의무를 내가 정한다는 발상 자체는 얼마나 위험한가. 이 가학의 놀이가 공공연히 공중파 프로그램으로 제작 유통되는 시스템이 나는 끔찍하다. 

사람 사이 위계를 전제한 ‘본분’이라는 봉건적 언어와 ‘금메달’이라는 경쟁지상주의를 접목해 프로그램 제목을 짓는 천박함이,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이미지 관리가 가능할지 바로 확인 들어갑니다’라는 자막을 넣는 오만함이, “어떤 상황에서도 웃어야하는 아이돌의 숙명”을 보여주겠다는 제작진의 인권 감수성의 무감각이, 시청률을 내기 위해서라면 “언제 어디서나 최선을 다하는” 그 성실한 임무 의식이 무섭다. 이렇듯 개인의 존엄을 간단히 몰수하는 나쁜 관념을 만드는 건 너무도 평범하게 굴러가는 저마다의 일상이다. 

본분은 질 나쁜 꿈처럼 여자의 삶에서 떨쳐지지 않는다. 아이돌 뿐이랴. 저 방송 제작진의 간파대로 본분의 명령이 “어떤 상황에서도” “언제 어디서나” 일상에 불쾌하게 끼어드는 걸 나도 경험한다. 심지어 아이가 수능 시험을 보는 해에는 “고3 엄마가 엠티를 가느냐”는 등 '고3 엄마의 본분’을 강요당하기도 했다. 학생의 본분은 졸업이 있어도 여자의 본분은 졸업이 없다. 고3 엄마가 가야할 장소란 입시설명회나 절, 성당, 교회 같은 기도처라는 듯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유는 아마 수능 시즌 언론 보도 영향이 클 것이다. 매체의 이미지는 그렇게 대중의 무의식이 된다. 

본분 금메달이 열리는 설 연휴에, 차례를 지낸 후 나는 제주도로 떠났다. 기름 냄새에 찌든 메스꺼운 기분이 아닌 옥빛 바다의 찬 공기를 쐬며 맑은 정신으로 명절을 보냈다. 결혼 후 처음 누리는 호사다. 며느리, 딸, 엄마, 아내의 본분을 벗어나 존재의 오롯함을 즐겼다. 바닷가 마을 작은 서점에 들렀다가 스무살의 내가 되어 전혜린의 에세이 <목마른 계절>을 집어들었고, 그 책에서 “여성의 가장 본질적인 약점으로 나는 생 전반에 대한 비본연적 태도를 들고 싶다”는 문장을 아프게 읽었다. 

비본연적 태도로 살아가길 강요 받는 이땅의 모든 본분 금메달의 출전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전혜린은 이렇게 글을 매듭짓는다. 남녀를 막론하고 인간이라는 무서운 조건 하에 놓인 우리가 해야할 일은 (본분 수행이 아니라) “근본적인 생 감정에 지배된 생활”이어야 한다고.


* 한국방송대학보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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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니까 ,

[은유칼럼]



지난 설에 친정에 들러서 저녁 준비를 했다. 나는 싱크대에 붙어서 쌀을 씻고 전을 부쳤고 아버지는 거실에 놓인 상을 정리했다. 평소 네모난 교자상에 신문이며 우편물, 성경책을 산더미처럼 쌓아놓는 아버지는 우리 식구가 오면 거기서 밥을 먹기 위해서는 상을 치운다. 그날도 주섬주섬 물건을 내려놓더니 당신 손녀를 불렀다. "행주 갖다가 닦아라." 그리고 그 상에 둘러앉아 다같이 밥을 먹었다. 식사 후 그릇들과 물컵, 남은 반찬을 남편이 나르고 상을 치우는데 아버지는 또 손녀에게 물 가져와라, 컵 가져오라며 이것저것 시켰다. 부엌에서 일하는 나는 그 말이 점점 귀에 걸렸다. 


'왜 딸아이를 시키지..' 혼잣말로 궁시렁거리며 참고 있는데 아버지의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야, 행주로 상 닦아라." 

"아니, 왜 자꾸 어린 ○○를 시키세요? 큰 애도 있는데..." 


기어이 말을 뱉었다. 아니,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아버지는 놀랐는지 "뭐?" 하시더니 더듬더듬 말했다. "○○은 여자니까" 말문이 막혔다. 다시 숨을 가다듬고 말문을 열었다. "여자면 해야 돼요? 나이도 어린 애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는지 아들내미가 나와서 그릇을 치우고 거드는 시늉을 했다. 아버지는 "그래. 너네는 남녀가 평등하구나." 했고 상황은 멋쩍게 종료됐다. 


친정엄마가 돌아가시고 명절이면 자동으로 우울하다. 엄마의 빈자리도 크고, 엄마의 빈자리를 딸인 나 혼자 몸으로 메워야하는 현실도 서글프다. 시댁에서 앞치마 풀자마자 친정에 가서 식구들 밥을 먹여야하는 게 고되다. 자주 찾아뵙는 것도 아니고 아버지와 고작 밥 한끼 먹는 일인데도 마음이 부담스럽다. 나 어리광 부리고 싶은가. 엄마가 전업주부였기 때문에 난 결혼 전엔 집안일을 하지 않았다. 또 일찍 결혼한 편이라 친정에 가면 엄마가 딸인 내 손에 물 한방울 못 묻히게 했다. 그 엄마가 안 계시고 나니 다 내 차지다. 친정에서의 가사노동은 아직도 어색하다. 


그런데 나도 부족해서 딸의 딸에게, 중학생인 아이에게까지 부엌일의 부담이 지워지는 게 화가 났다. 큰 아이는 스무살. 그 애가 만약 아들이 아니고 딸이었으면 명절의 가사노동은 큰 아이 몫이었을 것이다. 아버지 말대로 "여자니까." 


아버지에게 이렇게 내 의견을 직접적으로 말한 건 처음이다. 한동안 마음이 복잡하고 불편했다. '옳은 말'을 다다다 해대고 나니 늙은 아버지가 불쌍하다. TV를 보는 어깨도 더 굽어보인다. 어른에게(라도) 할말은 하고 상황을 불편하게 만드는 일이, 나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나 하나 참고 조용해지자는 평화주의자였는데 딸아이에게까지 성역할이 부과되는 것은 참기 힘들었다. 그건 어쩌면 딸아이가 아닌 '어린 여자' '어린 나'에 대한 연민이자 옹호였을지 모르겠다. 딸이니까 참았는데 딸이니까 말해야겠다. 지금부터라도. 조금씩이라도.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들에게 물었다. 

"엄마가 할아버지한테 너무 한 건가? 여자니까 가사일 해야한다는 말, 어떻게 생각해?" 

운전대를 잡은 남편은 말이 없고 딸은 가만히 있는 사이 아들이 먼저 "그러면 안 되죠" 라고 한다. 엄마는 남녀가 평등한 걸 바라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이 소외된 노동을 하는 것에 대해 무심한 가족 문화가 아니었음 좋겠다고 부연했다. 아빠는 운전 오래 해서 피곤하고 엄마 혼자 부엌에서 일하니까 다음부턴 니가 솔선해서 도우라고 아들에게 말했더니 그러겠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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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부에서 온 우편물

[은유칼럼]

여성가족부에서 우편물이 왔다. 24세 남자의 무표정한 정면 측면 얼굴과 전신 사진, 주소, 범죄 사실이 담긴 ‘고지정보서’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따른 것으로 성범죄자가 사는 인근 지역에 보내진다고 했다. 성범죄자 재발 방지 대책이라는데 그 우편물은 안도감보다 불쾌감만 키웠다. ‘이웃을 조(의)심하라’는 메시지가 담긴 이런 행정 조처는 변죽만 울리는 꼴이다. 골목길에 나타난 범죄자라는 편견을 강화해 집안이나 사무실에 ‘상주’하는 가해자를 못보게 한다. 


성범죄자는 낯선 남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그간 공적 사적으로 만난 성폭력피해여성들의 가해자는 거의 친족, 직장 동료, 고용주, 교사, 친구 같은 일상을 공유하는 사람이다. 이런 경우를 예비하지 않았으니 피해를 입고도 그것이 성폭력인 줄 모르거나, 알아도 누구에게 피해 사실을 말하지 못한다. 지독히 외롭고 고통이 깊다. 한국성폭력상담소 2014년 상담 통계도 아는 사람에 의한 경우가 81%, 직장 내 고용주 및 상사에 의한 피해와 대학에서 상급자에 의한 피해가 가장 많았다고 한다. 이 두렵고 불편한 진실은 아무리 말해도 들리지 않는다. 


얼마 전 유아동을 위한 성폭력예방교육용 인형극 대본을 의뢰받아 작업했다. 5~10세 아이들의 언어와 감각이 감감해 고민이 깊었다. 성폭력 피해는 집이나 학교, 학원 등 언제 어디서나 일어난다. 가족이나 관계의 개념이 형성되기 이전 아이들에게 실제로 닥치는 현실은 험하나 교육은 착하게, 수위를 조절해야 했다. 배경은 집으로, 또래 아이들을 등장인물로, 가해자는 장난이나 피해자는 폭력이라고 느끼는 사건을 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내 몸은 나의 것이며 남이 함부로 손대면 안 된다는 자아 인식 확립을 교훈으로 무난한 결론을 맺었다. 


이 작업에서 내가 정작 욕심낸 메시지는 진실을 ‘듣는’ 용기였다. 자식이 성폭력 사건을 터놓기도 힘들지만 말했을 때 엄마의 태도는 어떠할까. 부정하거나 꾸짖는다. ‘니가 어떻게 하고 다녔길래’ 라며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다. 몇 가지 이유다. 엄마들도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한 교육을 받았을 테고 자신의 묻어두었던 피해 경험이 떠올랐을 수도 있다. 그 사실을 모르는 딸들은 두 번 아프다. 가까운 사람의 도움이 가장 절실한 순간 손을 내밀었을 때 뿌리치는 엄마, 나중에 가해자와 함께 엄마가 아이에게 사과하는 장면을 극본에 넣었다. 듣는 능력이 퇴화한, 나를 비롯한 어른들 교육용으로.


나는 아직도 미안하다. 성폭력 피해 사실을 내게 터놓은 그 친구에게. 가해자가 친족이었고 아홉 살에 일어난 일이라고 했다. 나는 너무 놀라 ‘그랬구나...’ 말끝을 흐리며 어정쩡하게 다른 얘기로 넘어갔다. 그 친구는 더 말하고 싶었을 텐데 난 듣는 법이 서툴렀다. 세월이 흐르고 성폭력피해여성들을 인터뷰할 때 물었다. 피해사실을 털어놓았을 때 무어라고 말해주면 가장 좋은지. 이렇게 답했다. “힘들었겠구나. 나한테 얘기해줘서 고마워.”


진실은 말하는 데 있는 게 아니다. 듣는 데 있는 것이다. 말할 권리 ‘the right to speak’와 들릴 권리‘the right to be heard’는 영어로 같은 표현이다. 그러니 집집마다 당도해야 할 것은 가해자의 신상 명세가 아닌, 피해자의 들릴 권리가 담긴 서툰 말이다. 



- 한국방송통신대학보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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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마을 다이어리 - 죽음과 죽음 사이에 밥이 있다

[은유칼럼]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아버지) 장례식으로 시작해서 (이웃 아줌마) 장례식으로 끝나는 수미쌍괄식 구성이다. 검은 상복의 여인 네 명이 주인공. 15년 전 집을 나간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부고를 통해 만나게 된 이복 여동생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다. 바닷가 마을과 집이 주무대인데 잔멸치 덮밥, 카레 등 식사 장면이 많이 나와 군침을 돌게 하니 이 작품을 ‘먹방 영화’로 추천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내게는 ‘죽음과 죽음 사이에 밥이 있다’는 것을 환기하는 가족 영화로 다가왔다. 

이 영화는 없음으로 채워진다. 다른 가족에겐 있는 것이 이들에겐 없다. 우선 완전한 악인이 없다. 아빠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 중심의 이성애 가족의 기본 프레임을 따르나, 부양의무를 진 아빠와 남편 뒷바라지와 자녀 양육에 헌신하는 엄마라는 틀을 깬다. 아빠는 딴 여자와 사랑에 빠져 이혼하고 전처 자식인 딸들과 왕래가 없다. 무려 15년. 엄마 역시 애들 두고 집을 나갔다. 나중에 외할머니 제사에서 오랜만에 집을 ‘방문한’ 엄마를 큰 딸이 원망하자 이렇게 말한다. “엄마에게도 시간이 필요했다.” 자기 욕망에 솔직한 부모. 아빠와 엄마는 부재하는 채로 존재한다. 

무임승차 하는 사람이 없다. 네 자매가 보살피고 배려하는 감정노동과 밥짓고 빨래하는 가사노동에 모두 참여한다. 각자 돈을 번다. 스스로 밥을 해먹고 매실주를 담그고 빨래를 개키고 일 하고 연애를 한다. 맏언니는 마더 테레사급 품성의 소유자다.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만난 이복 동생을, 가족 파탄의 원인 제공자인 딴 여자의 자식이 아닌 한 인격적 존재로 바라본다. 또래 답지 않게 의젓한 모습에서 일찍이 삶의 무게를 떠안은 자기 자신을 보고 “함께 살자” 손내민다. 

마지막으로 원망이 없다. 아버지의 외도, 죽음, 엄마의 가출, 이복동생의 출현이라는 막장 드라마적 설정에도 불구하고 딸들이 의연하다. 부모에 대한 미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원망하느라 일상을 중지시키는 게 아니라 묵묵히 살아가면서 원망한다. 그러는 사이 삶의 다른 경험이 쌓이고 그것으로 부모를 이해하는 다른 계기를 얻는다. 부모의 빈 자리가 타인의 이해라는 인간적 성숙함으로 채워진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부모 없어도 잘 크는 아이들에 관한 가족 판타지가 아니다. ‘정상 가족’이 아니라 ‘일상 가족’을 꾸리는 힘은 상실의 대처, 살림의 기술, 타인의 이해 같은 구성원들 삶의 태도와 역량이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강력한 가족주의가 작동하는 한국 사회에선 낯선 풍경이다. 우리는 가족의 가치만 신화화할 뿐 일상의 기술은 소홀히 여긴다. 그래서 소위 정상 가족은 구성원의 독점적 희생과 착취, 무임승차, 원망과 배제의 구조로 돌아간다. 배신과 죽음 등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상실의 사건에 무능하다. 불에 대인 것처럼 반응하고 고통을 전가한다. 

영화의 네 자매는 상실에 단련된 신체들로 등장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보낸 상실 공동체이고, 그로 인한 원망과 투정을 들어주는 대화 공동체이며, 날마다 같이 밥을 먹는 밥상 공동체다. 그들이 영위하는 삶은 더없이 조화롭고 평화롭다. 혈연이 아닌 밥심으로 맺은 관계, 성취가 아닌 상실을 나눈 사이는 이렇게 힘이 세다. 

나는 영화에서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몇몇 이들을 떠올렸다. ‘엄마 아빠가 이혼했다’는 고백은 나를 놀래켰고 글에 담긴 삶에 대한 통찰은 나를 헷갈리게 했다. 그들은 결핍된 존재다. 그러나 그들은 넘치는 존재다. 그때마다 나는 질문했다. 결핍은 왜 결핍인가. 결핍의 기준은 무엇인가.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나의 오랜 물음을 영화로 근사하게 증명한 영화다. 글 버전도 있다.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자신의 에세이 ‘걷는 듯 천천히’에서 이렇게 썼다. 

“결핍은 결점이 아니다. 가능성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세계는 불완전한 그대로, 불완전하기 때문에 풍요롭다고 여기게 된다."


* 한국방송통신대학보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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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한 일을 모르는 사람들

[은유칼럼]


‘신생아 쓰레기통’. 인터넷 포털 화면에 검색어를 넣었다. 며칠 전 지나가듯 본, 신생아를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린 사건의 기사를 찾기 위해서다. 스크롤을 내리니 수십 개의 단신이 뜬다. ‘강릉 음식물 쓰레기통서 신생아 발견…‘인면수심' 부모는 누구?’ 가장 자극적인 제목이다. 인면수심의 ‘부’는 정체불명. ‘모’에 관한 정보를 취합하니 이렇다. 

오후 6시40분쯤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집 화장실에서 애를 낳았다. 아기를 낳고 나니 키우기가 곤란하고 겁이 나 수건에 감싼 후 비닐봉지에 넣어 택시를 타고 10km 떨어진 곳의 음식점 쓰레기통에 넣었다. 전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임신 사실을 알았다. 이를 숨겨오다 혼자 출산한 뒤 미혼모로 살게 될 것을 우려해 범행했다.

내 식대로 정리하면, 그녀는 배 위로 트럭이 세 대쯤 지나가는 산통을 화장실에서 견뎠다. 탯줄을 직접 잘랐다. 아기와 함께 쏟아져 나오는 피, 양수, 똥 같은 오물을 처리했다. 과다출혈의 위험은 운 좋게 피했다. 출산 직후 뼈가 벌어져 걷기도 힘든 몸으로 기름때와 핏덩이가 묻은 아기를 수건에 싸서 택시를 탔다. 쿵쾅쿵쾅 심장이 뛴다. 미혼모로 살 수는 없다. 임신과 출산은 ‘없던 일’이다. 아기를 버린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전 남자친구, 부모, 그리고 외부 단체나 기관 등 누구에게도 임신 사실을 터놓거나 도움을 청하지 못했다. 

단독범이다. 전 남자친구는 그녀의 임신 사실을 알았든 몰랐든, 성적 책임감이나 고통감수성이 희박할 개연성이 크다. 그렇지 않다면 그녀는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것이다. 딸의 배가 불러오는 사실을 한 집에 사는 부모는 모를 수 있다. 한국에서 가족은 인격적 관계가 아니다. 엄마, 아빠, 딸, 아들의 역할로 각자 바삐 산다. 일주일에 밥 한끼 얼굴 보고 먹지 못하는 가족이 부지기수다. 여자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상대방의 감정과 기분을 맞춰주고 배려하도록 키워진다. 문제를 터뜨려서 해결하는 ‘분란’보다 나 하나만 참으면 유지되는 ‘평화’가 익숙하다. 그렇게 신생아 유기범이 된다. 

신생아는 예능프로에 나오는 연예인 자식들의 축소판이 아니다. 나는 갓 태어난 아기를 봤을 때 충격을 잊지 못한다. 털 뽑힌 닭처럼 벌겋고 머리와 몸통만 크고 팔다리가 올라붙은 모습이 기괴했다. 32주 만에 조산한 한 후배는 몸에서 꺼낸 아기가 고깃덩이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이상한 형체였으며 그 몸에 주렁주렁 주삿바늘이 달린 채 인큐베이터에 누워 있는 걸 보고 병원 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했다고 한다. 출산은 성스럽지만은 않다. 아이는 모성의 힘으로 낳는 게 아니다. 제 스스로의 힘으로 뚫고나온다. 그리고 낯선 존재의 출현은 공포와 위험으로 다가온다. 첫 아이 키우는 엄마들은 밤잠을 설치며 아기가 숨을 잘 쉬는지 코에 손가락을 대보곤 한다. 

갓난아기는 신성한 생명인데 어떻게 버릴 수 있느냐는 물음은 바뀌어야 한다. 신성함은 누구에 의해 어떤 상황에서 규정되는가. 왜 생물학적 아버지인 남자친구나 부모에게도 말 못하고 ‘혼자서’ 한 생명체를 쏟아내듯 낳고 치우듯 버려야만 했을까. 왜 미혼모로 살아가는 일이 제 몸 아파 낳은 아기를 죽게 내버리는 일보다 더 공포스럽게 되었을까. 미혼모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학교에 유아원이 있는 나라(독일)도 있다는데 왜 우리 사회는 미혼모가 섞여 살아가지 못하고 양육의 짐을 몽땅 떠맡아야 할까. 

신생아 유기 사건은 참담하다. 당장 성인이 된 아들과 생리하는 딸을 키우는 나와 결코 멀지 않다. 성(적 책임감)에 무지한 기성세대가 낳은 자식들의 소행이다. 콘돔 사용법부터 아는 사람에 의한 강간 시 대처 법,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을 논의할 수 있는 상담기관의 연락처 공지 같은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성교육이 절실하다. 하루 걸러 뉴스에 오르는 신생아 유기 사건을 보지 않으려면, 우리가 ‘자신이 한 일을 모르는 사람’으로 살지 않으려면 말이다. 

음식물 쓰레기통에서 구출된 아기는 병원 신생아실로 옮겨져 건강한 상태라는데, 미역국도 못 먹고 초유가 돌아 젖몸살을 앓고 있을 ‘영아 살해 미수’ 혐의자 산모는 철창에서 어떤 밤을 보내고 있을까.


* 한국방송통신대학보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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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왜 궁금한 거죠?

[은유칼럼]


“세상에 저런 일이 어딨어.” 아버지는 TV를 보면서 늘 말씀하시곤 했다. 말도 안 되는 얘기라는 말도 꼭 덧붙였다. 어릴 때부터 나는 그 말이 싫었다. 세상을 다 아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저렇게 확신하지? 말도 안 된다면서 굳이 보면서 욕하는 것도 이상했다. 나는 자라서 세상에 일어나지 못하는 일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고 백발 성성한 아버지는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온순한 시청자가 됐다. 

아랫집에 사는 60대 초반의 어르신과 엘리베이터에 가끔 동승한다. 오전에 눈곱만 간신히 뗀 몰골로 대파가 삐져나온 장바구니를 들고 있을 때도 보고 저녁 강의를 마치고 노트북 가방 멘 채 밤 12시에 마주치기도 한다. 어색한 인사를 나누곤 했는데, 하루는 남편이 말했다. “아랫집 아저씨가 당신 무슨 일 하느냐고 물어보더라.” 비슷한 일이 또 있었다. 지난 성묘 때 친척 남자 어른은 내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길래 성묘에 빠지)느냐고 남편에게 물었단다. 그들에게 나는 남편을 경유해서 존재하는 ‘안사람’이다. 

“무슨 일 하세요?” 가끔 눈앞에서 질문을 받기도 하지만 그게 또 꼭 유쾌한 건 아니다. 글 쓰는 일을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소설가냐, 시인이냐, 방송작가냐 직업 유형을 대가며 되묻는다. 자동반응이다. 문창과 나왔냐, 국문과 나왔냐, 신방과 나왔냐는 질문도 곁들여진다. 글쓰기 수업 버전도 있다. 소속을 물어온다. 대안연구공동체에서 한다고 말하면 그게 어디냐, 누가 듣느냐, 무슨 과정이냐 묻고는 마지막 질문은 꼭 이렇게 마무리된다. “그런 일 하고도 먹고살 수 있어요?” 

그 말은 그 옛날 아버지의 말씀 “세상에 그런 일이 어딨어”의 리메이크처럼 내게는 들린다. 다른 사람의 삶으로 들어가서 이해하기 위한 말 건넴이 아니라 바깥에서 자기 생각을 주장하기 위한 말 던짐이다. 달갑지 않다. 먹고살 수 없으면 생활비 대줄 거냐고 따지고 싶은 심술이 슬그머니 올라온다. 그들은 왜 질문하는 자리에 있고 나는 왜 쩔쩔매며 답하는 자리에 있는가. 아니, 저 질문(의 형식을 띤 모욕)하는 자리는 왜 사라지지 않는가. 

나와 글쓰기 공부를 하는 학인들도 자주 하소연한다. 어떤 이는 대학교 3학년에 자퇴하고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일만 하고 있다. 어른들은 물론 친구들조차 ‘재입시’로 추측하거나 아니면 철없는 ‘한량짓’으로 본다며 심지어 ‘집이 부자구나’라는 말도 듣는단다. 자기는 한량도 부잣집 자식도 아니고, 취직하거나 대학원에 가는 친구들을 보면 불안감에 흔들리는 존재지만 그래도 지금은 자기를 내버려두는 중이라며 주변의 몰이해를 안타까워했다.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은 나를 울게 한다”(허수경). 명함과 소속이 없으면 이리저리 치인다. 직장 다니는 여자가 살림하는 건 당연시하지만 살림하는 여자가 공부하는 건 수시로 이유를 추궁 당한다. 학위와 등단과 취직을 위한 공부가 아니어서, ‘그냥 글 쓰고 싶은 삶’이어서 나는 긴 세월 난감했다. 사회적 약자는 가진 게 없는 사람이 아니라 무지한 질문에 답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몸으로 겪었다. 내가 책을 냈다고 했을 때도 가장 먼저 듣는 질문은 이거였다. “어느 출판사예요?” 

사람이나 책이나 이름 대면 알만한 반듯한 명패가 방패가 되어 주는 세상에서, 불확실성의 살아가기로 버티려면 아버지들의 말씀을 반사시킬 질문 카드라도 한장 준비해야 할까 보다. "근데 그게 왜 궁금한 거죠?"


* 한국방송통신대학보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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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공단 - 그가 누웠던 자리

[은유칼럼]



영화 <위로공단>(감독 임흥순·제작 반달)을 보았다. 일하는 여성노동자 22명의 깊은 목소리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얼굴선이 너그러운 중년 여성이 인상적이었다. 카메라 앞에서 지난시절을 회고하는 그녀는 1970년대 구로공단 노동자다. 푸른색 작업복을 입고 풀밭에서 도시락을 먹는 동네 언니가 멋져 보였고 일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대기업 공장에 취업한다. 실상은 달랐다. 매일 철야작업이 이어져 타이밍 같은 각성제를 먹어야 했다. 관리자의 욕설과 성희롱을 견뎌야 했다.


이 장면에서 나는 후배의 말이 떠올랐다. 취업준비생 시절, 도심의 빌딩숲을 지날 때 직장인들이 몹시 부러웠단다. 하얀 셔츠 위에 출입증을 메달처럼 목에 걸고 손에는 아메리카노를 들고 삼삼오오 웃고 떠드는 그들을 동경하며 직장생활을 꿈꿨다고. 그런데 막상 건물에 입성하니 ‘웃음의 실상’이 파악되더란다. 종일 격무와 회의에 시달린 탓에 ‘점심시간’에만 겨우 얼굴이 피어날 수 있는 거였다며 “속았다”고 통탄했다.  


예전에도 속고 지금도 속는 노동자. 겉 다르고 속 다른 일터. 영혼을 탈탈 털어가는 자본. 영화 <위로공단>은 이 구조적 반복과 고통의 질적 변화를 찬찬히 보여준다. 구로공단 ‘공순이’부터 다산콜센터 ‘콜순이’, 탈의실 바닥에 상자 깔고 밥 먹는 마트노동자, 감정노동에 미적노동을 강요당하는 항공사 승무원까지. 내 친구이자 동생이고 엄마인 이들의 목소리는, 슬프게도 영화 속 한 여성의 증언으로 귀결된다. “회사는 우리의 모든 걸 소모시키길 원한다.”


이것은 노동자의 자기표현이 자기각성으로 이어지는 빛나는 대목이다. 아동문학가 이오덕 선생도 일 하는 사람들이 글을 써야 세상이 바뀐다고 말했다. 맞다. 그런데 세계 최장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나라의 노동자가 글을 쓰기는 어렵다. 글쓰기가 업인 나도 1년 남짓 직장에 다닐 땐 퇴근 후 한 줄도 쓰지 못했다. 충전기에 꽂힌 핸드폰과 나란히 누워 ‘노동재생산의 밤’을 보내곤 했다. 업종 불문 비슷한 처지다. 그렇다면 어떻게 ‘노동자의 말’을 틔워낼까. 


<위로공단> 엔딩 자막이 힌트가 될지도 모르겠다. ‘40년간 봉제공장에서 일한 어머니, 백화점 의류매장과 냉동식품 코너 판매원으로 일한 여동생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는 내용의 헌사가 올라간다. 이 영화는 일하는 엄마의 아들이자 일하는 누이의 오빠의 기록인 것이다. 


내가 진행하는 글쓰기 수업에서도 비슷한 작업을 한다. 엄마 이야기 듣고 쓰기. 가장 천대받는 직업인 똥 치우는 아줌마 간병인, 김밥집에서 종일 김밥만 말다가 손목이 고장나 재래시장에서 거스름돈만 겨우 내어주는 일을 하는 빵집 종업원, 솜먼지에 목이 막히고 재봉틀 소리에 귀가 멀어가는 이불집 미싱사, 목욕탕 매점 이모…. 일하는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는 <위로공단>에서처럼, 노동자 엄마의 존엄을 살리고 노동자 자식들을 삶에 눈뜨게 했다. 자기 삶을 풀어놓은 엄마들은 하나같이 자식들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고 한다. 내 이야기 들어주어 고맙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윤동주 시 ‘병원’ 부분


한 사람의 노동자가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고 한 사람이 다른 노동자의 삶을 기록한다는 것. 그것은 떠들썩한 이해나 분석이 아닌 그저 그가 누웠던 자리에 가만히 누워보는 일인지 모른다. 남의 삶의 자리에 내 몸을 들여놓는 일, 이 조용한 기울임과 존재의 포개짐이 얼마나 뭉근한 위로인지, 영화 <위로공단>은 말하고 있다. 



* 한국방송통신대학보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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