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부에서 온 우편물

[은유칼럼]

여성가족부에서 우편물이 왔다. 24세 남자의 무표정한 정면 측면 얼굴과 전신 사진, 주소, 범죄 사실이 담긴 ‘고지정보서’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따른 것으로 성범죄자가 사는 인근 지역에 보내진다고 했다. 성범죄자 재발 방지 대책이라는데 그 우편물은 안도감보다 불쾌감만 키웠다. ‘이웃을 조(의)심하라’는 메시지가 담긴 이런 행정 조처는 변죽만 울리는 꼴이다. 골목길에 나타난 범죄자라는 편견을 강화해 집안이나 사무실에 ‘상주’하는 가해자를 못보게 한다. 


성범죄자는 낯선 남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그간 공적 사적으로 만난 성폭력피해여성들의 가해자는 거의 친족, 직장 동료, 고용주, 교사, 친구 같은 일상을 공유하는 사람이다. 이런 경우를 예비하지 않았으니 피해를 입고도 그것이 성폭력인 줄 모르거나, 알아도 누구에게 피해 사실을 말하지 못한다. 지독히 외롭고 고통이 깊다. 한국성폭력상담소 2014년 상담 통계도 아는 사람에 의한 경우가 81%, 직장 내 고용주 및 상사에 의한 피해와 대학에서 상급자에 의한 피해가 가장 많았다고 한다. 이 두렵고 불편한 진실은 아무리 말해도 들리지 않는다. 


얼마 전 유아동을 위한 성폭력예방교육용 인형극 대본을 의뢰받아 작업했다. 5~10세 아이들의 언어와 감각이 감감해 고민이 깊었다. 성폭력 피해는 집이나 학교, 학원 등 언제 어디서나 일어난다. 가족이나 관계의 개념이 형성되기 이전 아이들에게 실제로 닥치는 현실은 험하나 교육은 착하게, 수위를 조절해야 했다. 배경은 집으로, 또래 아이들을 등장인물로, 가해자는 장난이나 피해자는 폭력이라고 느끼는 사건을 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내 몸은 나의 것이며 남이 함부로 손대면 안 된다는 자아 인식 확립을 교훈으로 무난한 결론을 맺었다. 


이 작업에서 내가 정작 욕심낸 메시지는 진실을 ‘듣는’ 용기였다. 자식이 성폭력 사건을 터놓기도 힘들지만 말했을 때 엄마의 태도는 어떠할까. 부정하거나 꾸짖는다. ‘니가 어떻게 하고 다녔길래’ 라며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다. 몇 가지 이유다. 엄마들도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한 교육을 받았을 테고 자신의 묻어두었던 피해 경험이 떠올랐을 수도 있다. 그 사실을 모르는 딸들은 두 번 아프다. 가까운 사람의 도움이 가장 절실한 순간 손을 내밀었을 때 뿌리치는 엄마, 나중에 가해자와 함께 엄마가 아이에게 사과하는 장면을 극본에 넣었다. 듣는 능력이 퇴화한, 나를 비롯한 어른들 교육용으로.


나는 아직도 미안하다. 성폭력 피해 사실을 내게 터놓은 그 친구에게. 가해자가 친족이었고 아홉 살에 일어난 일이라고 했다. 나는 너무 놀라 ‘그랬구나...’ 말끝을 흐리며 어정쩡하게 다른 얘기로 넘어갔다. 그 친구는 더 말하고 싶었을 텐데 난 듣는 법이 서툴렀다. 세월이 흐르고 성폭력피해여성들을 인터뷰할 때 물었다. 피해사실을 털어놓았을 때 무어라고 말해주면 가장 좋은지. 이렇게 답했다. “힘들었겠구나. 나한테 얘기해줘서 고마워.”


진실은 말하는 데 있는 게 아니다. 듣는 데 있는 것이다. 말할 권리 ‘the right to speak’와 들릴 권리‘the right to be heard’는 영어로 같은 표현이다. 그러니 집집마다 당도해야 할 것은 가해자의 신상 명세가 아닌, 피해자의 들릴 권리가 담긴 서툰 말이다. 



- 한국방송통신대학보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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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마을 다이어리 - 죽음과 죽음 사이에 밥이 있다

[은유칼럼]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아버지) 장례식으로 시작해서 (이웃 아줌마) 장례식으로 끝나는 수미쌍괄식 구성이다. 검은 상복의 여인 네 명이 주인공. 15년 전 집을 나간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부고를 통해 만나게 된 이복 여동생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다. 바닷가 마을과 집이 주무대인데 잔멸치 덮밥, 카레 등 식사 장면이 많이 나와 군침을 돌게 하니 이 작품을 ‘먹방 영화’로 추천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내게는 ‘죽음과 죽음 사이에 밥이 있다’는 것을 환기하는 가족 영화로 다가왔다. 

이 영화는 없음으로 채워진다. 다른 가족에겐 있는 것이 이들에겐 없다. 우선 완전한 악인이 없다. 아빠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 중심의 이성애 가족의 기본 프레임을 따르나, 부양의무를 진 아빠와 남편 뒷바라지와 자녀 양육에 헌신하는 엄마라는 틀을 깬다. 아빠는 딴 여자와 사랑에 빠져 이혼하고 전처 자식인 딸들과 왕래가 없다. 무려 15년. 엄마 역시 애들 두고 집을 나갔다. 나중에 외할머니 제사에서 오랜만에 집을 ‘방문한’ 엄마를 큰 딸이 원망하자 이렇게 말한다. “엄마에게도 시간이 필요했다.” 자기 욕망에 솔직한 부모. 아빠와 엄마는 부재하는 채로 존재한다. 

무임승차 하는 사람이 없다. 네 자매가 보살피고 배려하는 감정노동과 밥짓고 빨래하는 가사노동에 모두 참여한다. 각자 돈을 번다. 스스로 밥을 해먹고 매실주를 담그고 빨래를 개키고 일 하고 연애를 한다. 맏언니는 마더 테레사급 품성의 소유자다.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만난 이복 동생을, 가족 파탄의 원인 제공자인 딴 여자의 자식이 아닌 한 인격적 존재로 바라본다. 또래 답지 않게 의젓한 모습에서 일찍이 삶의 무게를 떠안은 자기 자신을 보고 “함께 살자” 손내민다. 

마지막으로 원망이 없다. 아버지의 외도, 죽음, 엄마의 가출, 이복동생의 출현이라는 막장 드라마적 설정에도 불구하고 딸들이 의연하다. 부모에 대한 미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원망하느라 일상을 중지시키는 게 아니라 묵묵히 살아가면서 원망한다. 그러는 사이 삶의 다른 경험이 쌓이고 그것으로 부모를 이해하는 다른 계기를 얻는다. 부모의 빈 자리가 타인의 이해라는 인간적 성숙함으로 채워진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부모 없어도 잘 크는 아이들에 관한 가족 판타지가 아니다. ‘정상 가족’이 아니라 ‘일상 가족’을 꾸리는 힘은 상실의 대처, 살림의 기술, 타인의 이해 같은 구성원들 삶의 태도와 역량이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강력한 가족주의가 작동하는 한국 사회에선 낯선 풍경이다. 우리는 가족의 가치만 신화화할 뿐 일상의 기술은 소홀히 여긴다. 그래서 소위 정상 가족은 구성원의 독점적 희생과 착취, 무임승차, 원망과 배제의 구조로 돌아간다. 배신과 죽음 등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상실의 사건에 무능하다. 불에 대인 것처럼 반응하고 고통을 전가한다. 

영화의 네 자매는 상실에 단련된 신체들로 등장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보낸 상실 공동체이고, 그로 인한 원망과 투정을 들어주는 대화 공동체이며, 날마다 같이 밥을 먹는 밥상 공동체다. 그들이 영위하는 삶은 더없이 조화롭고 평화롭다. 혈연이 아닌 밥심으로 맺은 관계, 성취가 아닌 상실을 나눈 사이는 이렇게 힘이 세다. 

나는 영화에서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몇몇 이들을 떠올렸다. ‘엄마 아빠가 이혼했다’는 고백은 나를 놀래켰고 글에 담긴 삶에 대한 통찰은 나를 헷갈리게 했다. 그들은 결핍된 존재다. 그러나 그들은 넘치는 존재다. 그때마다 나는 질문했다. 결핍은 왜 결핍인가. 결핍의 기준은 무엇인가.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나의 오랜 물음을 영화로 근사하게 증명한 영화다. 글 버전도 있다.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자신의 에세이 ‘걷는 듯 천천히’에서 이렇게 썼다. 

“결핍은 결점이 아니다. 가능성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세계는 불완전한 그대로, 불완전하기 때문에 풍요롭다고 여기게 된다."


* 한국방송통신대학보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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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한 일을 모르는 사람들

[은유칼럼]


‘신생아 쓰레기통’. 인터넷 포털 화면에 검색어를 넣었다. 며칠 전 지나가듯 본, 신생아를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린 사건의 기사를 찾기 위해서다. 스크롤을 내리니 수십 개의 단신이 뜬다. ‘강릉 음식물 쓰레기통서 신생아 발견…‘인면수심' 부모는 누구?’ 가장 자극적인 제목이다. 인면수심의 ‘부’는 정체불명. ‘모’에 관한 정보를 취합하니 이렇다. 

오후 6시40분쯤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집 화장실에서 애를 낳았다. 아기를 낳고 나니 키우기가 곤란하고 겁이 나 수건에 감싼 후 비닐봉지에 넣어 택시를 타고 10km 떨어진 곳의 음식점 쓰레기통에 넣었다. 전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임신 사실을 알았다. 이를 숨겨오다 혼자 출산한 뒤 미혼모로 살게 될 것을 우려해 범행했다.

내 식대로 정리하면, 그녀는 배 위로 트럭이 세 대쯤 지나가는 산통을 화장실에서 견뎠다. 탯줄을 직접 잘랐다. 아기와 함께 쏟아져 나오는 피, 양수, 똥 같은 오물을 처리했다. 과다출혈의 위험은 운 좋게 피했다. 출산 직후 뼈가 벌어져 걷기도 힘든 몸으로 기름때와 핏덩이가 묻은 아기를 수건에 싸서 택시를 탔다. 쿵쾅쿵쾅 심장이 뛴다. 미혼모로 살 수는 없다. 임신과 출산은 ‘없던 일’이다. 아기를 버린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전 남자친구, 부모, 그리고 외부 단체나 기관 등 누구에게도 임신 사실을 터놓거나 도움을 청하지 못했다. 

단독범이다. 전 남자친구는 그녀의 임신 사실을 알았든 몰랐든, 성적 책임감이나 고통감수성이 희박할 개연성이 크다. 그렇지 않다면 그녀는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것이다. 딸의 배가 불러오는 사실을 한 집에 사는 부모는 모를 수 있다. 한국에서 가족은 인격적 관계가 아니다. 엄마, 아빠, 딸, 아들의 역할로 각자 바삐 산다. 일주일에 밥 한끼 얼굴 보고 먹지 못하는 가족이 부지기수다. 여자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상대방의 감정과 기분을 맞춰주고 배려하도록 키워진다. 문제를 터뜨려서 해결하는 ‘분란’보다 나 하나만 참으면 유지되는 ‘평화’가 익숙하다. 그렇게 신생아 유기범이 된다. 

신생아는 예능프로에 나오는 연예인 자식들의 축소판이 아니다. 나는 갓 태어난 아기를 봤을 때 충격을 잊지 못한다. 털 뽑힌 닭처럼 벌겋고 머리와 몸통만 크고 팔다리가 올라붙은 모습이 기괴했다. 32주 만에 조산한 한 후배는 몸에서 꺼낸 아기가 고깃덩이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이상한 형체였으며 그 몸에 주렁주렁 주삿바늘이 달린 채 인큐베이터에 누워 있는 걸 보고 병원 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했다고 한다. 출산은 성스럽지만은 않다. 아이는 모성의 힘으로 낳는 게 아니다. 제 스스로의 힘으로 뚫고나온다. 그리고 낯선 존재의 출현은 공포와 위험으로 다가온다. 첫 아이 키우는 엄마들은 밤잠을 설치며 아기가 숨을 잘 쉬는지 코에 손가락을 대보곤 한다. 

갓난아기는 신성한 생명인데 어떻게 버릴 수 있느냐는 물음은 바뀌어야 한다. 신성함은 누구에 의해 어떤 상황에서 규정되는가. 왜 생물학적 아버지인 남자친구나 부모에게도 말 못하고 ‘혼자서’ 한 생명체를 쏟아내듯 낳고 치우듯 버려야만 했을까. 왜 미혼모로 살아가는 일이 제 몸 아파 낳은 아기를 죽게 내버리는 일보다 더 공포스럽게 되었을까. 미혼모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학교에 유아원이 있는 나라(독일)도 있다는데 왜 우리 사회는 미혼모가 섞여 살아가지 못하고 양육의 짐을 몽땅 떠맡아야 할까. 

신생아 유기 사건은 참담하다. 당장 성인이 된 아들과 생리하는 딸을 키우는 나와 결코 멀지 않다. 성(적 책임감)에 무지한 기성세대가 낳은 자식들의 소행이다. 콘돔 사용법부터 아는 사람에 의한 강간 시 대처 법,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을 논의할 수 있는 상담기관의 연락처 공지 같은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성교육이 절실하다. 하루 걸러 뉴스에 오르는 신생아 유기 사건을 보지 않으려면, 우리가 ‘자신이 한 일을 모르는 사람’으로 살지 않으려면 말이다. 

음식물 쓰레기통에서 구출된 아기는 병원 신생아실로 옮겨져 건강한 상태라는데, 미역국도 못 먹고 초유가 돌아 젖몸살을 앓고 있을 ‘영아 살해 미수’ 혐의자 산모는 철창에서 어떤 밤을 보내고 있을까.


* 한국방송통신대학보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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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왜 궁금한 거죠?

[은유칼럼]


“세상에 저런 일이 어딨어.” 아버지는 TV를 보면서 늘 말씀하시곤 했다. 말도 안 되는 얘기라는 말도 꼭 덧붙였다. 어릴 때부터 나는 그 말이 싫었다. 세상을 다 아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저렇게 확신하지? 말도 안 된다면서 굳이 보면서 욕하는 것도 이상했다. 나는 자라서 세상에 일어나지 못하는 일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고 백발 성성한 아버지는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온순한 시청자가 됐다. 

아랫집에 사는 60대 초반의 어르신과 엘리베이터에 가끔 동승한다. 오전에 눈곱만 간신히 뗀 몰골로 대파가 삐져나온 장바구니를 들고 있을 때도 보고 저녁 강의를 마치고 노트북 가방 멘 채 밤 12시에 마주치기도 한다. 어색한 인사를 나누곤 했는데, 하루는 남편이 말했다. “아랫집 아저씨가 당신 무슨 일 하느냐고 물어보더라.” 비슷한 일이 또 있었다. 지난 성묘 때 친척 남자 어른은 내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길래 성묘에 빠지)느냐고 남편에게 물었단다. 그들에게 나는 남편을 경유해서 존재하는 ‘안사람’이다. 

“무슨 일 하세요?” 가끔 눈앞에서 질문을 받기도 하지만 그게 또 꼭 유쾌한 건 아니다. 글 쓰는 일을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소설가냐, 시인이냐, 방송작가냐 직업 유형을 대가며 되묻는다. 자동반응이다. 문창과 나왔냐, 국문과 나왔냐, 신방과 나왔냐는 질문도 곁들여진다. 글쓰기 수업 버전도 있다. 소속을 물어온다. 대안연구공동체에서 한다고 말하면 그게 어디냐, 누가 듣느냐, 무슨 과정이냐 묻고는 마지막 질문은 꼭 이렇게 마무리된다. “그런 일 하고도 먹고살 수 있어요?” 

그 말은 그 옛날 아버지의 말씀 “세상에 그런 일이 어딨어”의 리메이크처럼 내게는 들린다. 다른 사람의 삶으로 들어가서 이해하기 위한 말 건넴이 아니라 바깥에서 자기 생각을 주장하기 위한 말 던짐이다. 달갑지 않다. 먹고살 수 없으면 생활비 대줄 거냐고 따지고 싶은 심술이 슬그머니 올라온다. 그들은 왜 질문하는 자리에 있고 나는 왜 쩔쩔매며 답하는 자리에 있는가. 아니, 저 질문(의 형식을 띤 모욕)하는 자리는 왜 사라지지 않는가. 

나와 글쓰기 공부를 하는 학인들도 자주 하소연한다. 어떤 이는 대학교 3학년에 자퇴하고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일만 하고 있다. 어른들은 물론 친구들조차 ‘재입시’로 추측하거나 아니면 철없는 ‘한량짓’으로 본다며 심지어 ‘집이 부자구나’라는 말도 듣는단다. 자기는 한량도 부잣집 자식도 아니고, 취직하거나 대학원에 가는 친구들을 보면 불안감에 흔들리는 존재지만 그래도 지금은 자기를 내버려두는 중이라며 주변의 몰이해를 안타까워했다.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은 나를 울게 한다”(허수경). 명함과 소속이 없으면 이리저리 치인다. 직장 다니는 여자가 살림하는 건 당연시하지만 살림하는 여자가 공부하는 건 수시로 이유를 추궁 당한다. 학위와 등단과 취직을 위한 공부가 아니어서, ‘그냥 글 쓰고 싶은 삶’이어서 나는 긴 세월 난감했다. 사회적 약자는 가진 게 없는 사람이 아니라 무지한 질문에 답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몸으로 겪었다. 내가 책을 냈다고 했을 때도 가장 먼저 듣는 질문은 이거였다. “어느 출판사예요?” 

사람이나 책이나 이름 대면 알만한 반듯한 명패가 방패가 되어 주는 세상에서, 불확실성의 살아가기로 버티려면 아버지들의 말씀을 반사시킬 질문 카드라도 한장 준비해야 할까 보다. "근데 그게 왜 궁금한 거죠?"


* 한국방송통신대학보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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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공단 - 그가 누웠던 자리

[은유칼럼]



영화 <위로공단>(감독 임흥순·제작 반달)을 보았다. 일하는 여성노동자 22명의 깊은 목소리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얼굴선이 너그러운 중년 여성이 인상적이었다. 카메라 앞에서 지난시절을 회고하는 그녀는 1970년대 구로공단 노동자다. 푸른색 작업복을 입고 풀밭에서 도시락을 먹는 동네 언니가 멋져 보였고 일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대기업 공장에 취업한다. 실상은 달랐다. 매일 철야작업이 이어져 타이밍 같은 각성제를 먹어야 했다. 관리자의 욕설과 성희롱을 견뎌야 했다.


이 장면에서 나는 후배의 말이 떠올랐다. 취업준비생 시절, 도심의 빌딩숲을 지날 때 직장인들이 몹시 부러웠단다. 하얀 셔츠 위에 출입증을 메달처럼 목에 걸고 손에는 아메리카노를 들고 삼삼오오 웃고 떠드는 그들을 동경하며 직장생활을 꿈꿨다고. 그런데 막상 건물에 입성하니 ‘웃음의 실상’이 파악되더란다. 종일 격무와 회의에 시달린 탓에 ‘점심시간’에만 겨우 얼굴이 피어날 수 있는 거였다며 “속았다”고 통탄했다.  


예전에도 속고 지금도 속는 노동자. 겉 다르고 속 다른 일터. 영혼을 탈탈 털어가는 자본. 영화 <위로공단>은 이 구조적 반복과 고통의 질적 변화를 찬찬히 보여준다. 구로공단 ‘공순이’부터 다산콜센터 ‘콜순이’, 탈의실 바닥에 상자 깔고 밥 먹는 마트노동자, 감정노동에 미적노동을 강요당하는 항공사 승무원까지. 내 친구이자 동생이고 엄마인 이들의 목소리는, 슬프게도 영화 속 한 여성의 증언으로 귀결된다. “회사는 우리의 모든 걸 소모시키길 원한다.”


이것은 노동자의 자기표현이 자기각성으로 이어지는 빛나는 대목이다. 아동문학가 이오덕 선생도 일 하는 사람들이 글을 써야 세상이 바뀐다고 말했다. 맞다. 그런데 세계 최장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나라의 노동자가 글을 쓰기는 어렵다. 글쓰기가 업인 나도 1년 남짓 직장에 다닐 땐 퇴근 후 한 줄도 쓰지 못했다. 충전기에 꽂힌 핸드폰과 나란히 누워 ‘노동재생산의 밤’을 보내곤 했다. 업종 불문 비슷한 처지다. 그렇다면 어떻게 ‘노동자의 말’을 틔워낼까. 


<위로공단> 엔딩 자막이 힌트가 될지도 모르겠다. ‘40년간 봉제공장에서 일한 어머니, 백화점 의류매장과 냉동식품 코너 판매원으로 일한 여동생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는 내용의 헌사가 올라간다. 이 영화는 일하는 엄마의 아들이자 일하는 누이의 오빠의 기록인 것이다. 


내가 진행하는 글쓰기 수업에서도 비슷한 작업을 한다. 엄마 이야기 듣고 쓰기. 가장 천대받는 직업인 똥 치우는 아줌마 간병인, 김밥집에서 종일 김밥만 말다가 손목이 고장나 재래시장에서 거스름돈만 겨우 내어주는 일을 하는 빵집 종업원, 솜먼지에 목이 막히고 재봉틀 소리에 귀가 멀어가는 이불집 미싱사, 목욕탕 매점 이모…. 일하는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는 <위로공단>에서처럼, 노동자 엄마의 존엄을 살리고 노동자 자식들을 삶에 눈뜨게 했다. 자기 삶을 풀어놓은 엄마들은 하나같이 자식들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고 한다. 내 이야기 들어주어 고맙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윤동주 시 ‘병원’ 부분


한 사람의 노동자가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고 한 사람이 다른 노동자의 삶을 기록한다는 것. 그것은 떠들썩한 이해나 분석이 아닌 그저 그가 누웠던 자리에 가만히 누워보는 일인지 모른다. 남의 삶의 자리에 내 몸을 들여놓는 일, 이 조용한 기울임과 존재의 포개짐이 얼마나 뭉근한 위로인지, 영화 <위로공단>은 말하고 있다. 



* 한국방송통신대학보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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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집 귀한 자식

[은유칼럼]

대학 밴드 동아리에서 키보드를 치는 큰아이가 정기공연을 한다고 해서 구경을 갔다. 홍대 앞 작은 클럽. 벽면은 포스터 붙여다 뗀 테이프 자국이 너덜너덜했고 조명은 교차로 신호등 같은 삼색불빛이 단조롭게 깜빡였다. 아이들이 무대에 올랐다. 사운드가 터지고 조명이 켜지자 기타를 멘 여학생의 어깨끈에서 무슨 글자가 눈에 띄었다. ‘귀한 자식’. 동그란 장식용 배지였다. 


어느 알바생 유니폼 등쪽에 ‘남의 집 귀한 자식’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이미지를 인터넷에서 본 적 있다. 진상 고객이 얼마나 많으면 저랬겠냐, 사장님 센스 있다는 댓글이 달려 있었다. 요즘 ‘귀한 자식’이라는 말이 유행인가. 그러나 저 몸에 새긴 표지는 너무 온당해서 쓸쓸하다. 사람이 사람대접 받지 못하고 값싼 부속처럼 쓰이는 세상을 향한 청년들의 혼잣말 같다. 


가끔 들르는 감자튀김 파는 호프집이 있다. 그곳 아르바이트생의 유니폼 문구는 이렇다. ‘손님이 짜다면 짠 거다’. 고객이 왕이다의 호들갑스러운 표현이겠지만 사람 사이에 ‘위계’를 설정한 그 억지가 거슬렸다. 그 말을 알바생들 스스로 선택했을 리도 없다. 무분별한 갑질을 승인하고 순치된 개인을 기르는 나쁜 말이다. 그에 비하면 ‘남의 집 귀한 자식’은 사람 사이를 ‘관계’로 접근한다. 우리는 먹는 자와 일하는 자로 잠시 결합한 사이. 종신 노예 부리듯 할 권리가 없다. 각기 다른 역할로 만난 대등한 동료 시민일 뿐임을 상기시킨다. 한 존재를 겹으로 헤아려 살피는 좋은 말이다. 


존귀함의 자기선언. 셀프 인권수호의 시대. 문필하청업 중년 여성노동자인 나도 귀한 자식 선언의 전력이 있다. 어느 정례회의 시간, 의견을 개진하는 내게 한 동료가 여러 번 다그치듯 말했다. 거친 말투와 독한 눈빛이 몸을 찌르는 것 같았으니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모멸감은 이미 눈물로 새어나왔다. 나는 부들거리는 양손을 지그시 누르며 더듬더듬 입을 뗐다. “저 귀하게 자랐거든요.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얼핏 시트콤 대사 같기도 한 말, 귀한 자식 타령이 갑자기 왜 나왔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존재 본연의 마음이 침해당하는 순간 재채기처럼 튀어나온 거 같다. 다행히 그 동료는 나쁜 사과에 꼭 들어간다는 ‘그럴 의도 없음’을 들먹이지 않았고 두 손 모으고 고개 숙여 상황은 금세 수습이 되었다. 울음 사태까지 초래한 게 미안하고 무안하여 나도 맞절하는 심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가짜를 진짜처럼 위장하는 것

가짜인데 진짜라고 믿는 것을 

더는 못 참겠어요

못 참는 저를 참아야 할까요

...

생(生)은 진짜이고 

활(活)은 가짜예요


- 윤병무 시 '생활' 부분



일-돈 중심의 세계에서 사람은 부풀어 풍선껌처럼 작았다 커지고 커졌다 꺼진다. 사람이 일을 하는데 일에다 사람을 우겨넣는 조직의 난폭한 생리가 두렵고 거기에 맞추어 살아가는 나 포함 귀한 자식 일군이 가여워 참았던 눈물이 그 참에 솟구친 것도 같다. 존재의 항변. 나는 눈물로 구질구질하게 말하고 아이들은 배지로 데면데면하게 말한다. 이게 세대차이려나.


스무 살 청춘들 공연을 보며 나는 내가 일으킨 귀한 자식의 난이 떠올라 머쓱하다. 무대에서 키보드를 치는 저 아이도 방학 동안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몸 돌리면 제자리인 좁다란 점포에서 꼬박 열 시간을 서 있느라 종아리에 파스 두 장을 붙이고 잠들곤 했다. 귀한 자식이 낳은 귀한 자식이 겪었을 현실과의 격투, 제몫의 설움에 눈가가 시큰하다. 클럽에서 빠져나온 홍대 앞 거리. 일년 내내 성탄전야처럼 북적거리는 이 향락의 미로는 또 얼마나 많은 귀한 자식들의 노동으로 굴러가는가.



* 한국방송통신대학보에 실림

* 블로그에만 아들 사진 특별 공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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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저녁식사

[은유칼럼]

모처럼의 불금. 친구 넷이 만나 밥과 술을 먹었다. 밤 9시가 넘자 “엄마 언제 오냐”는 전화가 번갈아 걸려오는 애 있는 여자들이다. 우리는 무더위를 어떻게 났는지 여름 안부를 주고받았다. A는 반바지 일화를 꺼냈다. 하루는 너무 더워 사무실에 반바지를 입고 나갔는데 타부서 선배가 지나가며 한마디 하더란다. “그렇게 짧게 입고 다니면 남편이 싫어하지 않아?” A는 이혼하고 혼자 아이들을 키운다. 저간의 사정을 모르는 이라서 대충 웃고 넘기려다 그냥 말했다고 한다. “저 남편 없는데요?” 

B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절 사진을 찍는 취미가 있는 B는 지난주말에도 태백의 절로 떠났다. 옆방에는 60대 중년부부가 묵었고 오며가며 마주쳐 눈인사를 나누게 되었는데 부인이 슬그머니 다가와서 묻더란다. “이렇게 혼자 다니면 남편이 싫어하지 않아요?” B는 남편이 절 가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각자 주말을 보낸다고 말했다고 한다. 

익숙한 질문이다. 나는 결혼하고도 가끔 록 공연장을 다녔는데 그때마다 이웃집 언니들은 음악이나 공연에 관심을 갖기보다 남편의 태도에 감탄해 묻곤 했다. “그런 데 다니면 남편이 안 싫어해?” 

말은 웬만해선 사라지지 않는다. 남편의 입장을 내면화한 말들, 결혼한 여자의 ‘행실’을 제약하는 발언이 여전히 아무 때나 아무렇지 않게 통용된다는 사실에 나는 놀랐다. 그러자 큰언니 C가 질문하는 여성들을 변호했다. 아마도 그들이 그렇게 살아보지 못해서 그럴 거라고, 자기도 스스로 가둔 여자의 굴레에서 벗어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C는 아내의 삶과 자기의 삶의 절충에 피로감을 느껴 남편과 별거 중이다. 

나 D의 기억. 십오년 전 안동 하회마을에 놀러갔다가 배낭을 메고 조리를 신은 외국인 할머니와 마주쳤다. 계모임 단체관광도 가족여행도 아닌 노년 여성의 나 홀로 여행이라니. 영화에서나 보는 장면이 현실에서도 가능하다는 게 마냥 신기했다. 걱정도 됐다. 이렇게 만리타국까지 혼자 다녀도 정말 괜찮은지, 아마 영어만 능통했으면 다가가서 말 걸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하면 “이렇게 다니면 남편이 싫어하지 않느냐”와 크게 맥락이 다르지 않았을 뜬금없는 질문에 파란 눈의 할머니는 뭐라고 답했을까. 

모든 물음은 질문자의 입장과 욕망을 내포하는 법이다. 나의 물음은 그간 얼마나 진화했는가. '남편'의 시선만 간신히 모면한 듯하다. 자기 욕망을 일인칭 시점에서 구사할 수 있는 언어는 여전히 모자라다. 착한 여자는 천당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간다는 말대로, 일상의 금기는 넘나들지만 몸에 그은 선은 제자리다. 올 여름 ‘그래도 될까’를 되묻고 검열하다가 점잖지 못한 핫팬츠 두 개는 버렸고, 머리는 기장만 짧게 손질했다. 내 인생의 두발자율화가 시행된 지가 언제인데 머리 모양은 중고등학생 때 그대로. 단발에서 어깨까지 길이를 무료하게 오간다. 꼭 한번 빨간머리를 원했지만 어느새 흰머리가 정수리부터 증식하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명동성당 첨탑이 보이는 이층 술집에서, 그날 우리는 늙기 전에 오프숄더 드레스 입고 송년 파티를 열어볼까 호기롭게 떠들었다. 술단지가 비는 동안 ‘남들이 뭐라든 입는’ 장단지가 드러나는 반바지에서 ‘우리가 입어보고 싶은’ 어깨가 내보이는 드레스로 논의가 진척됐다. 이게 어딘가. 자못 대견하다. 저무는 여름밤, 여자들은 매미처럼 시끌벅적 ‘생의 언어’를 배양했다. “욕망의 성기이며 육체의 현실인 말”(오규원)을.


* 한국방송통신대학보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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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안)하는 엄마

[은유칼럼]



몇 년전 한 여성 소설가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서울의 한적한 동네에 아담한 정원이 있는 단층 양옥집으로 찾아갔다. 거실 책꽂이 한칸에는 무슨 무슨 문학상 상패들이 나란히 놓여있었다. 집에서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설은 주로 밤 10시부터 새벽 서너시까지 쓴다고 했다. 그에게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새벽까지 글을 쓰면 아침에 일어나기가 무척 괴로웠던 터라 개인적인 질문이라며 아이 아침밥은 어떻게 해주느냐고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아침밥 안 먹는 아이로 키우면 돼요.” 


그 초월적이고 독자적인 답변에 정신이 번쩍 났다. 그리고 곧 알아차렸다. ‘밥’의 탈을 쓴 저 사사로운 질문이 얼마나 정치적인가를. 남자는 돈 벌고 여자는 (일해도) 살림한다는 이성애적 성별 분업 구도에 따른 ‘닫힌 질문’을 던진 것이다. 창피하고 그만큼 부러웠다. 밥을 안 하는 것보다 밥 안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공표’할 수 있는 그 당당함이. 비록 아침식사에 국한하지만 요리와 육아를 거부하는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엄마의 모습은 낯설고 기이하고 커보였다. 


같은 시기에 나는 어느 남성 평론가의 평론집을 읽었는데 서문 마지막에 이런 글귀가 있었다. “어머니가 해주신 밥 먹으면서 이 글들을 썼다. 어머니가 쓰신 책이므로, 어머니께 드린다.” 참으로 빤하고 오래된 각본처럼 진부했다. 어머니를 밥 하는 존재로 못 박는 듯해 갑갑했다. 700쪽이 넘는 두툼한 책의 현란한 문학적 수사와 이론적 분석의 글에 압도될수록 나는 어머니의 밥이 떠올랐다. 한 사람이 이 정도 지적 과업을 달성하기까지 동시간대에 이루어졌을  700그릇 이상의 밥을 짓는 한 사람의 ‘그림자 노동’이 아른거렸다.  


‘어머니가 해주신 밥’라는 말은 완고하다. 어머니를 어머니로 환원하는 가부장제의 언어다. 인습을 의심하고 약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문학의 본령을 거스르는 말이다. TV 아침프로그램에 나오는 중년탤런트의 “아들 아침밥은 꼭 차려주는 며느리를 맞고 싶다” 같은 류의 발언에 더 가깝다.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자란 아이가 나중에 아내가 차려주는 밥을 당연시할 확률도 높을 테니까 말이다. 아침밥 안 먹고 자란 아이는 (전문가들의 경고대로 학습력이 저하될 지언정) 아침에 해가 뜨듯 밥이 저절로 나오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적어도 알지 않을까 싶다. 이걸 모르는 어른이 의외로 많다. 


요즘 집’밥’이 화제가 되는 걸 보면서 나는 오래전 저 어머니와 밥의 삽화들이 떠올랐다. 지금 나는 ‘아침 안 먹는 아이로 키우는 소설가 엄마’보다는 ‘밥 차려주는 어머니’에 해당하는 순응적인 일상을 겉으로는 살고 있지만 속으로는 끼니마다 회의한다. 나에게 밥은 집밥이냐 외식이냐, 레시피가 간단하냐 복잡하냐, 맛이 있냐 없냐가 아니다. 그 밥을 대체 ‘누가’ 차리느냐의 문제다. 최승자 시인이 시구대로 우리는 “채워져야 할 밥통을 가진 밥통적 존재”이고, 누군가 차리지 않은 그냥 밥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엄마들은 어디 효도관광이라도 가서야 “내가 아무것도 안 했는데 매끼니 밥이 나오는 신비”를 경험한다. 그제야 맛본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누군가가 차려주는 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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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를 안 낳아봐서 그렇다는 말

[은유칼럼]


세월호 사건이 발생하고 유가족이 동의할 만한 진상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자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에 대한 원성과 비난이 높았다. “대통령이 애를 안 낳아봐서 그렇다”는 말까지 돌았다. 기사에 달린 댓글로만 보다가 나는 얼마 전에 직접 듣게 되었다. 하필 ‘애를 안 낳아본 친구’가 있는 자리에서 그 사실을 모르는 다른 여성이 대뜸 말했다. 박근혜가 엄마가 되어 보지 못해 생때 같은 아이들의 죽음에 공감하지 못하고, 그래서 세월호 문제가 미궁에 빠졌다는 것이다. 나는 조마조마했지만 모두가 무안해질까봐 어물쩡 넘어갔다. 

다시 생각해도 참 무심한 논리다. 한 사람의 지적·정서적 무능이 출산 경험의 부재에서 왔다는 발상. 다산할수록 성불한다는 말인지 뭔지 모르겠다. 그건 애 낳지 않은 여자들에 대한 집단적 모독이고, 애 낳은 여자들에 대한 편의적 망상이다.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 형성은 ‘출산’ 유무와 상관이 없다. 인간적 성숙이 ‘군필’ 유무와 무관한 것과 같은 이치다. 내 주변에서 세월호 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광화문 광장에라도 한번 나가는 사람은 비출산 여성이 더 많다. 육아 부담이 없어 저녁이나 주말에 시간이 나기 때문이고, 세월호 이전에도 세상일과 자기 삶을 분리시키지 않고 살았기 때문이다. 

애 낳고 가족 이기주의에 빠지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가. 나부터도 출산 이후, 즉 육아집중기에는 신문을 챙겨볼 시간도 행동하는 시민으로 살 기운도 없었다. 

나에게 엄마로 사는 건 인격이 물오르는 시간이 아니었다. 외려 ‘내 안의 야만’과 마주하는 기회였다. 태아가 물컹한 분비물과 함께 나오는 출산의 아수라장을 경험하는 것부터 그랬다. 그 생명체가 제 앞가림 할 때까지 나는 혼자 있을 권리, 차분히 먹을 권리, 푹 잘 권리, 느리게 걸을 권리 같은 기본권을 몽땅 빼앗겼다. 그런 전면적이고 장기적인 실존의 침해를 감내하다보면 피폐해진다. 성격 삐뚤어지고 교양 허물어진다. 육아의 보람과 기쁨을 위안으로 삼기엔 그것과 맞바꿀 대가가 너무 크고 길다. 그 사실을 경험하기 전에는 모른다. 
.

귀뚜라미나 여치 같은 큰 울음 사이에는 
너무 작아 들리지 않는 소리도 있다 
(…)
그 통로의 끝에 두근거리며 매달린 여린 마음을 생각한다. 

- 김기택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함’ 부분 
.

인간적 성숙은 낯선 대상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혼란과 갈등을 겪으며 자기와 세상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때 일어나는 것이다. 엄마라는 '생태적 지위'는 성숙에 이르는 여러 기회 가운데 하나일 뿐, 저절로 성불하는 코스가 아니다. 그나마 (출산-육아) 고통의 자산화가 가능하려면 어느 정도 문화적 자원이 있어야 한다. 애 키우고 먹고사느라 하루하루 허덕이는 여성은 그럴 겨를조차 없다.

요즘은 소신 있게 출산을 거부하는 이들이 많지만 불임 여성도 느는 추세다. 그래서 애 낳은 여자, 애 안(못) 낳는 여자의 일상의 구체적 고통을 외면한 ‘모성의 이상화’는 참 나쁜관념이다.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고 윤리적으로도 옳지 않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애를 안 낳아봐서가 아니라 해결하지 않아도 권력 유지에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권력을 떠받치는 것은 온갖 나쁜 관념에 휩싸여 주변의 여린 소리를 듣지 못하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 한국방송통신대학보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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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건 아닙니까?

[은유칼럼]





"당신은 부인을 여자라서 만났습니까? 나는 남자를 사랑한 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남자였을 뿐입니다.”


지난 세기의 일이다. 1999년 KBS TV에서 <슬픈 유혹>이라는 단막극이 방영됐다. 동성 간의 사랑을 다룬 파격적인 소재였고 나는 좋아하는 노희경 작가의 작품이라서 ‘본방’을 사수했다. 저 대사가 화살처럼 가슴에 꽂혔다. 단 한 줄로 사랑의 섭리를 깨우친 거 같았다. 또 신기했다. 누군가 내 연애에 ‘태클’을 걸었을 때 나는 저렇게 근사하게 대답할 수 있을까?


새천년 이후 스크린 안팎에서 동성 간 사랑을 자연스레 접했다. 남자사람 친구가 동성애자였다. 애인의 생일이라며 남성복 코너에서 셔츠를 살 때 외에는 일상에서 그의 성정체성을 자각할 일은 별로 없었다. <브로크백마운틴> <해피투게더> 같은 ‘게이영화’나 <안토니아스 라인> <에브리바디 올라잇> 같은 ‘레즈비언 영화’는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고 사랑의 속성을 탐구할 수 있는 내겐 너무 좋은 인생수업 교재였다. 그리고 글쓰기 수업에서 치열한 자아탐색 끝에 ‘커밍아웃’에 이르는 동성애 학인들의 멋진 글을 더러 만났다. 


작년에는 신촌에서 열리는 퀴어퍼레이드에 갔다. 입이 딱 벌어졌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이들이 ‘당신이 만나는 의사는 게이입니다’ 라는 피켓을 들고 행진했다. 퍼레이드카에 올라간 언니 오빠들의 옷차림과 춤동작은 제대로 야했다. 망사와 깃털과 비즈는 기본 아이템. 인터넷 포털 화면의 단골 수식어 ‘아무나 소화 못하는’ ‘눈 둘 곳 없는’의 결정판이다. 


아니다. 차원이 달랐다. 음흉한 카메라의 시선에 포획된 특정 부위의 노출이 아닌 주체적이고 흥겨운 존재의 펼침에 가깝다고 해야할 것이다. 그러니까 걸그룹의 노출이 관음의 욕구를 충족시키며 시청자를 길들인다면 그들의 벗음은 보는 사람을 낯설고 불편하게 함으로써 가치 체계를 흔들어놓았다. 너도 근엄하게 굴지 말고 좀 즐겨보란 듯 유혹했다. 


나는 이성애자(인 것 같)다. 정상인으로 분류되어 이땅에서 살아가기에 불편이 없지만 그래서 고민도 없었다. 자기 욕망에 솔직하고 성적 취향이 섬세한 성소수자들과 달리 나는 자기 성적 욕망에 무지하고 자기 표현에 무능하다. 그들과 있으면 그런 내가 보인다. 
.
깊이 잠들지 않고 더 많이 질문하기 위해 그들은 서서 잔다. 
- 김승일 시 <선잠 자는 전봇대> 부분
.

올해도 퀴어문화축제가 열렸고 나는 또 놀러갔다. 기쁨을 아는 몸들의 축제에 나타난 원한을 익힌 몸들이,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작년보다 더 조직적이고 더 극악스럽다. 자발적으로 축제를 열어 즐기지 못하고 남의 축제에서 ‘훼방’을 놓는 저 부정의 영혼들을 보자니 <슬픈 유혹>의 또 다른 명대사가 떠올랐다. 직장동료가 커밍아웃한 주인공에게 너를 몰랐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나는 남자 사랑하는 법을 모른다”고 하니까 동성애자 남자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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