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크린 말들 - "원하는 돈 줄테니까 덮고 가자"

[은유칼럼]

한강 다리는 서른한 개다. 하나씩 두 발로 건너보리라 언제부터 다짐했다. 아름다운 한강을 살뜰히 만끽하려는 서울내기의 욕심이고 목표였다. 성산대교, 양화대교, 한강대교, 원효대교, 마포대교, 잠실대교를 걷고 나선 진척이 더뎠다. 봄기운 깃드는 3월 6일, 반포대교를 건넜다.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 11주기 ‘방진복 행진’에 참가했는데 그 구간에 반포대교가 포함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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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지는 한남동 리움미술관 앞. 미술관 건너편에 붉은색 높은 담장이 보였다. 저 안쪽이 삼성 총수 일가 자택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저기가 대대손손 태평성대를 누리는 재벌보호구역이구나. 그 성벽 아래에서 백여 명이 일사분란하게 방진복을 입고 손에는 희생자의 영정을 들었다. 내가 든 영정에는 최호경, 1985~2013년, 뇌종양, 삼성LCD천안이라고 써 있다. 나이를 헤아려보니 스물여덟 생애다. 고 황유미가 스물셋. 다른 영정들도 거의 20, 30대에 생을 마감한 여성이다. 백혈병이나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다.

 

“삼성은 직업병 문제 해결하라” “삼성은 산재 은폐 중단하라” 리움미술관을 나와 이태원 대로변을 구호를 외치며 걸었다. 길가에는 KUHO, 에잇세컨, Beaker, 빈폴 등 삼성그룹 의류브랜드 매장이 즐비하다. 바삐 걷던 파란 눈 외국인도, 카페를 나오던 젊은 연인도 걸음을 멈추고, 우편배달부 아저씨도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다가 힐끔 방진복 대열에 눈길을 준다.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입구에서는 한 중년 아주머니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나무라듯 말한다.

 

“삼성을 어여 나와요. 뭐 하러 있어. 사람이 이렇게 죽는데, 다른 데로 가면 되지.”

 

내가 삼성 직원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아, 저는 삼성에 다니지 않아요”, 말했더니 아주머니는 흠칫하며 “그럼 뭐 하는 사람이에요” 물었다. “삼성 직업병 문제 해결을 바라는 사람인데...” 웅얼웅얼 둘러대고 일행을 따라갔다. 녹사평역을 지나 용산구청 앞을 걸으며 생각했다. 내가 삼성 직원이었으면 직업병 문제가 있다고 해서 그만둘 수 있었을까, 나는 뭐 하는 사람이지. 왜 여기에 있지.

 

2010년 11월 8일, 내가 공부하던 연구공동체에서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을 초대해 토론회를 가졌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에 맞서 15년간 긴 싸움을 벌여온 위원장은 한 뼘 두께의 투쟁 백서와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삼성 백혈병 노동자의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나는 충격과 혼란에 빠졌다. 조직폭력배들이 나오는 공포 영화처럼 끔찍했고, 전태일 평전을 읽었을 때처럼 비통했다.

 

이게 지금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삼성에서 노조 만들다 미행당하고 해고되고 감옥 가고 일하던 젊은 처자들이 병을 얻어 죽고 유가족이 회유와 협박에 시달리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보다 그게 신문에 기사 한 줄 나오지 않았다는 게, 그러니까 1980년 5월 광주처럼 언론이 철저히 통제된다는 사실이 믿기질 않았다. 이 지독한 고립을 어떻게 견디고 싸웠느냐고 위원장에게 물으니 이렇게 답했다. 

 

“돈에만 매수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게 없습니다.”

 

그날 토론회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눈물이 쏟아졌다. 그냥 무서웠던 거 같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아니, 이런 일이 일어나는 세상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되물으며 걷고 걸었다. 연희동에서 목동까지 성산대교를 건너며 강물에, 하늘에, 거리에, 가슴에 내용 없는 결심들을 막 뿌렸던 거 같다. 다음 날 삼성일반노조에 월 2만 원을 후원하기 시작했다. 삼성 내부비리를 고발한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를 폈다. 삼성 백혈병 노동자를 돌보던 의사이자 활동가 공유정옥 씨를 인터뷰했다. 조금씩 알아갔고, 알게 되면 뭐라도 열심히 쓰고 썼다.

 

“애써 말해야 하는 삶들이 있다. 말해질 필요를 판단하는 것이 권력이고, 말해질 기회를 차지하는 것이 권력이다. 말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권력과 거리가 먼 존재일수록 말해지지 않는다.”

(『웅크린 말들』 , 478쪽)

 

방진복 행진 쉬는 시간. 반포대교 북단 아래 벤치에서 강물을 바라보았다. 강남 강변 풍경이 낯설다. 낮은 병풍 같던 아파트 라인이 사라지고 주상복합 건물 네 채가 미사일처럼 우뚝하게 솟았다. 높고 높다. 며칠 전 부산 엘시티 공사현장 55층에서 일하던 노동자 네 명이 추락사한 사건이 떠올랐다. 저 휘황한 건물은 또 얼마나 많은 무명씨의 목숨을 삼켰을까. 내게 낭만의 상징이었던 한강의 서른한 개 다리들, 교각 공사라고 산재 예외 구역은 아닐 것이다.

 

다시 걸었다. 이재용을 풀어준 정형식 판사에게 항의하는 의미에서 법원 앞으로 가는 길이다. 뒤편에서 고 황유미 아버지 황상기 씨가 방송사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죽어가는 딸을 뒷좌석에 태우고 달리던 속초의 택시운전사, 언제나 웃고 있는 동자승 같은 얼굴, 순한 억양의 강원도 사투리가 오늘따라 쟁쟁하다. 말하려고 노력하는, 권력에서 먼 존재의 목소리가 들린다.

 

“삼성은 저희 집에 찾아와서 ‘원하는 돈 다 줄 테니까 이 문제 덮고 가자’고 수없이 얘기해댔지만 전부 거절했어요. (...) 죽은 유미가 살아 돌아올 수 없고, 삼성에서 살기 위해 일하다가 많은 노동자들이 병에 걸리고 죽었고, 또 돌본 가족들은 가정은 파탄이 났어요. (...) 이 자리에서 일일이 나열할 수 없지만, 수많은 잘못을 저지른 삼성을 정부가 한번 제대로 처벌해본 적이 있냐고 묻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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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삼성그룹에서만 320명의 직업병 피해 제보가 있었고, 118명이 목숨을 잃었다. 2013년엔 삼성전자서비스에서 에어컨 수리기사로 일하던 서른두 살 최종범 씨가 ‘노조 인정’을 요구하며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유가족인 형은 말한다. “삼성 조끼를 입은 동생의 자부심도 컸습니다. (...) 동생은 개처럼 일했습니다. 스스로를 ‘여왕개미’(삼성)을 먹여 살리느라 죽어나는 일개미라고 동료들에게 말하곤 했습니다.”(125쪽) 그로부터 7개월 뒤, 염호석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양산센터 분회장도 노조를 인정하라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또 하나의 가족은 없다. 황상기 씨가 지적한대로, 삼성그룹 안에서 수많은 목숨이 사라져가는데도 경영진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올림픽에서 스케이트 타던 선수가 팀워크만 해쳐도 60만 명이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사회적 형벌을 내리는 ‘도덕의 나라’에서 삼성의 부도덕한 경영에는 죄를 묻지 않는다. 권력의 꾀임에도 굴하지 않고 존엄을 지키는 사람들, ‘돈에 매수되지 않’은 이들이 기적처럼 살아남아 삼성에서 벌어진 죽음의 진실을 전할 뿐이다.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네 시간, 9킬로미터 걸어서 삼성본관 앞 반올림 농성장에 도착했다. 허물처럼 방진복을 벗고나자 갑자기 발바닥이 아려와 나는 황급히 택시를 탔다. 안락하게 앉아 건너는 한남대교는 그리 비관적이지 않았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또 잊고 살겠지. 다리든 빌딩이든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자그마한 사망자 위령탑이 세워지면 좋겠다. 나는 삼성제품을 사용하지 않은 지 오래됐지만, 삼성 TV나 에어컨, 핸드폰 사용설명서 한 귀퉁이에라도 이 제품을 만들다가 돌아가신 이들 이름 석 자 새겨주면 좋겠다. 고인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 생활 터전이, 문명의 편리가 누군가의 죽음에 빚지고 있음을 기억하도록.

 

*채널예스에 실림



여자들은 왜 늘 반성할까

[은유칼럼]

북토크 자리에서 한 20대 여성이 질문했다. 친구들과 수다 떨다 보면 남자들 외모 평가를 하게 되는데 페미니즘을 공부한다는 사람이 그래도 되는지 양심에 찔린다는 거다. 나는 우선 드는 생각을 얘기했다. “이렇게 자기 행동을 객관화하는 분이라면 타인을 대상화할 가능성은 적어 보이는데요.” 이성애자가 이성에게 관심을 갖고 표현하는 행위는 자연스럽다. 다만 허벅지, 가슴, 허리, 다리, 입술 등 ‘신체 부위별’로 쪼개서 사람을 보다 보면 ‘통합적 인격’으로 보지 못하고 사물화하게 된다. 단톡방에서, 술자리에서, 컴퓨터 앞에서 외모 평가를 일삼다가 실제로 만난 사람을 사람으로 존중하지 못하고 그 사람에게 (성)폭력을 휘두르는 일까지 발생한다. 

이것이 문제다. 쟁점은 외모 평가 자체라기보다 ‘누가 외모 평가를 하느냐’ ‘그 외모 평가가 무엇을 파생시키느냐’다. 미국에서 총기 사용이 전 국민에게 허용되지만 가해자의 90%는 남성이라는 통계를 일례로 들려주었다. 페미니즘이 외모 평가를 금지하는 매뉴얼이 아니라 어떤 말과 행동이 놓인 상황과 맥락을 다층적 관점으로 헤아리는 공부라고 할 때, 외모 평가라는 행위 자체만 떼어놓고 죄의식을 갖는 건 올바른 접근이 아닐 것이다. 

ⓒ시사IN 신선영

사실, 그날 내가 느낀 문제점은 따로 있었다. 여자도 외모 평가를 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조차 왜 여자는 반성을 할까 하는 점이다. 여성은 ‘자기 처벌’ 정서에 익숙하다. 아버지들의 경제적·정서적 무능, 가정 폭력에 대해서도 어머니들은 뒤돌아 가슴을 치며 ‘내 팔자다, 잘해주면 돌아온다, 남편 복이 없어서 그렇다’고 말했다.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도 ‘밤늦게 술자리에 있어서’ ‘여지를 주어서’라며 자기 행실을 먼저 되돌아본다. 외모 평가를 당할 땐 참아도 외모 평가를 행할 땐 가책을 느낀다. 나도 젠더 이슈로 불화를 겪으면 내 언행부터 점검한다. 말이 공손하지 못했나, 너무 민감했나 수없이 자책한다. 

여성의 신체는 거의 자동 반성 모드다. 왜들 그럴까. 남성 지배적 문화에서 여성은 불합리한 상황에 자주 노출된다. 그때마다 시비를 가리고 싸우고 상황을 바꿔내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남자는 원래 그런 종족이고 여자는 원래 그렇게 사는 거라고 배웠다. 원래 그런 것을 두고 왜 그런지 뿌리부터 따지자니 어렵고 복잡한데,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는 건 쉽고 간단하다. 자기반성으로 상황을 무마하고 또 일상을 살아가고, 그랬던 게 아닐까 싶다. 

왜 여성은 ‘자동 반성 모드’여야 하는가 

홍성수 지음, 어크로스 펴냄

이 같은 여성의 습관적 반성과 침묵으로 다져진 성차별의 역사에 균열이 일고 있다. 여자도 말을 한다. 남자의 외모와 언행을 평가하고 되갚는다. ‘김치녀’라는 공격에 ‘한남충’으로 맞불을 놓는 일명 ‘미러링’이라는 흐름도 생겼다. 이는 후련함과 통쾌함도 주지만 앞서 질문한 여성이 느끼는 것처럼 혼란과 불편도 남긴다. 나도 처음에는 여성들이 구사하는 거침없고 도발적인 말들이 낯설고 어색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미러링은 혐오가 목적이라기보다 뒤집어 보여주기 (213쪽)” 위한 수단이다. “여성들의 저항이 중요한 것이지, 미러링이라는 형식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제 반성과 검열의 삶과 작별하고, 욕이 섞여 있든 비논리적이든 울먹이든 막무가내든 말하는 주체의 탄생에 박수칠 때다. “비하적인 혐오 표현에 대해 웃어넘기거나 침묵하지 않고 조목조목 문제점을 따지(222쪽)”는 목소리가 ‘정상’이고 ‘일상’이 되는 현실에 모두가 길들여져야 한다. 섣부른 반성과 침묵으로 복잡한 삶의 문제에서 도망가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딸 없으면 공감 못하나

[은유칼럼]

여자들과 달리 남자들은 동성 친구에게 힘든 얘기를 잘 안 한다고 남자 지인이 말했다. 그 자리의 네댓 명이 대체로 동의했다. 내 아버지나 남편, 동료들을 봐도 결정적인 고민은 남들과 공유하지 않는 눈치였다. 나는 힘든 일이 생기면 친구랑 전화통 붙들고 운다. 친구의 긴급 호출도 물론 온다. 이런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 왜 그런지 토론했다. 한 중년 남성은 사회생활의 경쟁 시스템에선 하소연이 곧 약점이 되어 불리하니까 숨긴다고 했다. 

여자들의 고민 공유, 즉 수다는 약자들의 연대라고 나는 말했다. 말해봐야 잃을 것도 없고, 말이라도 해야 후련하니까. 일종의 궁여지책이다. 품앗이처럼 말하고 들어준다. 그러면서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타인의 처지도 공감하고 현실을 받아들이고 또 하루를 살아간다. 난 어려서부터 엄마가 친지랑 전화 통화하는 걸 엿들으며 여자의 일생을 배웠다. 이런 소소한 일상의 누적이 여성의 공감 능력을 신장시켰을 거다. 반대로 ‘센 척’하느라 말하고 듣는 과정을 의도적으로 생략한 남성은 공감 능력을 학습할 기회가 없었을 테고. ‘수다’를 떨지 않는 아버지들은 풀어내지 못한 자기 고충을 ‘주사’로 토한 것도 같다. 

모든 존재의 행위는 저 살려고 하는 일. 여성학자 벨 훅스가 말한 ‘감정적 자기 절단’이 남자들 생존에 유리한 시대가 있었다. 그 긴 세월 부작용이 일상의 폭력을 낳았음을 미투운동이 증명한다. 미투운동이 일자 술렁이는 여자들에 비해 남자들은 잠잠했다. 참회하느라 그런다, 켕겨서 그런다, 조심하느라 그런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내가 볼 땐 몸치처럼 주춤했던 거 같다. 타인의 고통에 깊게 개입하고 슬픔의 장단을 맞춰본 적이 없기에 언제 어떻게 끼어들어야 할지 모르는 상태. 

그 와중에 딸 키우는 아빠로서 미투운동을 지지한다는 글을 봤다. 어딘가 궁색하고 근원이 수상쩍다. ‘아무 남자에게 내 딸 못 준다’는 말이나, 티브이 자막에 박히는 ‘딸바보’ 인증이 거북살스러운 것과 유사한 맥락이다. 자식을 소유물로 여기는 가부장 정서와 내 핏줄의 안위가 중한 가족주의에 기반한 발언이다. 그냥 단독자로서 어른 남자이기만 해서는 남의 아픔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건 많이 어색하고 어려운 일일까.

평창겨울올림픽에서 헬멧에 세월호 리본을 부착한 김아랑 선수가 화제였다. 환한 미소만큼 인품이 돋보였다. 속사정을 알진 못하지만 김아랑 선수의 공감이 적어도 부모나 누이로서, 즉 혈연을 매개로 한 반응이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료 시민으로서 슬퍼하고 슬픔의 인파가 빠져나간 자리에서도 묵묵히 애도했기에 울림이 더 컸다. 

한 사람의 공감 능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계속 질문하는 중이다. 여자라서, 아이를 키워봐서, 딸이 있어서처럼 저절로 주어지는 것들이 계기가 될 순 있어도 공감의 지속 조건이 될 순 없다. 배움이 필요하다. 글쓰기 수업에 오는 어른들도 느끼는 능력을 갈구한다. 남 일에 무관심하면 ‘더 빨리 더 높게’ 사회적 성취를 올릴지 모르겠으나 자신과의 서먹함, 관계의 무능함으로 삶의 다른 한쪽이 허물어지는 탓이다. 

내가 아는 공감 방법은 듣는 것이다. 남의 처지와 고통의 서사를 듣는 일은 간단치 않다. 자기 판단과 가치를 내려놓으면서, 가령 왜 이제 말하느냐 심판하는 게 아니라 왜 이제 말할 수밖에 없었을까 이해하려 애쓰면서, 동시에 자기 경험과 아픔을 불러내는 고강도의 정서 작업이다. 온몸이 귀가 되어야 하는 일. 얼마 전 엽서에서 본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당신이 할 말을 생각하는 동안 나는 들을 준비를 할 거예요.’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35429.html?_fr=mt5#csidx3a639e46adcb520a719e3ecd68f7430 

눈물의 목격자, 스물두살 자동차를 보내며

[은유칼럼]

'열일곱 살 자동차'라는 그림책이 있다. 같은 해에 태어난 아이와 자동차가 17년이라는 세월을 함께하는 이야기다. 따뜻한 그림과 내용에 공감하면서도 으쓱했다. 우리 집에는 그보다 더 오래된 자동차가 있다. 무려 스물두 살! 사람으로 치면 백 살쯤 될 거 같은데, 그림책이랑 상황이 비슷하다. 

첫아이가 태어난 해에 구입했다. 짙은 녹색의 성능 좋은 자동차는 아이를 돌잔치에도, 할머니댁에도, 입학식과 졸업식에도 데려다주었고 성인이 되어 군에 입대하는 날까지 동행했다. 아이를 신병 훈련소에 보내놓고 눈물 훌쩍이며 집으로 오는 길 새삼 쇳덩이인 자동차가 둘도 없는 살붙이처럼 느껴졌다.

비유가 아니라 사실이다. 자동차가 아이와 생애 주기를 같이한 동년배라면, 내게는 구질구질한 눈물콧물 다 받아준 속 깊고 품 넓은 비밀친구 같은 존재다. 지금도 가끔 떠오른다. 작은아이는 유치원에 있고 큰아이는 태권도 학원에 갔을 때 막간을 이용해서 차 몰고 장을 보러 가곤 했다. 집에서 마트까지, 마트에서 집까지. 왕복 30~40분 정도의 시간이 유일하게 나 홀로 있는 시간, 고독을 누리는 호젓한 기회였다.

집에서도 혼자 있지만 집은 번잡스러운 노동의 공간이지 고요가 고이는 공간은 아니다. 게다가 집이 퍽 좁았다. 20평형 아파트에 네 식구 기본 살림뿐인데도 남은 공간이 손바닥만 했으니 발 뻗고 누우면 몸이 레고블록처럼 방에 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가슴에서 뭐가 해일처럼 수시로 밀려왔고 그것을 애써 눌러두곤 했다. 애들 보는 데서 울면 안 되니까. 그렇게 저만치 밀쳐놨던 눈물이 꼭 차에서 터졌다. 일몰의 쓸쓸함과 음악의 척척함 효과도 컸으리라. 

어떤 날은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해도 눈물이 멈추지 않아 마저 울고 안 운 사람처럼 얼굴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집으로 갔다. 감쪽같이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그 모든 걸, 내 눈물범벅 청승의 역사를 자동차는 지켜보고 있었던 거다.

며칠 전, 스물두 살 자동차를 보냈다. 작년부터 치매에 걸린 것처럼 수시로 말썽을 일으켰다. 오디오도 안 되고 계기판이 멈추고 창문이 안 올라가고, 최근에는 지방에 갔다가 차의 시동이 안 걸려 긴급 서비스를 불러서 겨우 왔다. 안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또 자동차도 자신을 다 소진해 봉사했으므로 보내주었다. 큰아이 제대할 때 그 차로 데려오고 싶었는데 제대를 한 달 앞두고 포기했다. 자동차를 폐차장에 보내는 날, 유독 정성스럽게 차를 가꾸고 타서 ‘세차맨’이란 별명으로 불린 남편도 끝내 눈물을 비쳤다. 나도 눈물이 멈추지 않아 애를 먹었다.

이것이 눈물의 완창인가. 박연준 시인이 친구 앞에서 마음 푹 놓고 실컷 울어댄 일이 있는데 그걸 두고 친구들이 “완창”(판소리의 한마당을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는 일)이라 부르며 놀렸다고 한다. 한 세월 떠나보내는 느낌, 사연 한 편 완성되는 느낌으로 더없는 표현이다.

요즘 나는 해일처럼 밀려오는 감정에 익사당하지도, 폭포 같은 눈물에 잠식되지도 않는다. 재무구조가 개선되지는 않았지만 집은 넓어졌고 조용히 울 수 있는 방도 생겼는데 예전보다 덜 운다. 나이 들면 머리숱이 줄고 생리양이 줄듯이 눈물도 줄어드는 걸까. “가끔 그때가 그립다. 이제는 체력이 달려서 그리고 그만큼 슬프지가 않아서 완창을 할 수가 없다. 살면서 완창은 그리 자주 오는 것이 아닌가 보지?(50쪽)”

한 세월이 갔다. 눈물도 잦아들고 눈물의 목격자도 떠났다. 멀리서 지켜봤을 거 같다. 내가 모처럼 사연 있는 여자처럼 한바탕 운 사연을 나의 스물두 살 자동차는 알리라.

<소란>, 박연준


- 시사인 은유 읽다에 실림


성폭력 가해자에게 편지를 보냈다

[은유칼럼]

최근에 폭탄처럼 터지는 성폭력 사건을 보면서 부대꼈다. 내가 당한 크고 작은 피해 경험과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전해 들었던 피해자들 이야기가 일제히 대책없이 되살아났다. 몸의 기억이 들쑤셔져서 잠 못 이루는 피해자가 얼마나 많을지 상상할 수 없다. 집단 트라우마다. 그 와중에 이 책을 집어들었다. 제목이 『용서의 나라』 라니 사실 미심쩍었다. 성폭력과 용서라는 말은 양립 불가능한 조합 같았다. 적어도 한국사회에선. 

 

성폭력 피해 생존자 이름은 토르디스 엘바. 아이슬란드에 산다. 16살 소녀일 때 교환학생을 온 남자친구와 사귀었고 강간당한다. 가해자는 자기 나라인 오스트레일리아로 가버린다. 그후 토르디스는 섭식장애, 알코올 중독, 자해 등 고통을 겪다가 9년 만에 가해자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으로 용서의 첫걸음을 뗀다. 

 

사건의 핵심 명제, 성폭력은 강자가 가까이 있는 약자에게 가하는 폭력이라는 것. 토르디스가 사랑하는 사람인 애인에게 당했듯이 내가 본 성폭력 피해자의 90%도 아는 사람에게 당했다. 아버지, 삼촌, 이모부, 오빠, 선배, 친구, 담임선생님, 교수, 직장 동료, 남편 등등. 그들은 힘으로든 돈으로든 지위로든 피해자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렇게 “믿을 수 있다고 여겨지는 이들”에게 당했기에 여파가 크다. 피해자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바로 알아차리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나는 네가 나한테 한 행동이 강간이라는 걸 몰랐어. 신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상처가 컸는데도 말이야.” (192쪽) 가까스로 인지한 다음엔 가해자가 아니라 자기를 혐오한다. “첫 이성 관계에서 참혹하게 실패한 후로 나는 스르로의 판단을 믿을 수가 없었다.”(23쪽)는 토르디스의 고백은 피해자들이 공통으로 겪는 아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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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성폭력은 한 사람을 관계 불능의 존재로도 만든다. 초등학생 때 선생님에게 성폭력을 당한 한 여성은 서른을 바라볼 때까지 친구도 애인도 없었다. 교우 관계나 이성 관계에서 친해질 만하면 떠나가는 식으로 관계를 기피했다고 한다. 믿었던 사람들도 “나를 그렇게 철저히 능욕했는데 대체 누구를 믿을 수 있단 말인가.”(68쪽) 그래서 피해자들은 “오랜 세월 동안 자기를 혐오하며 주변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밀쳐내다 보면 누군가를 보살피거나 거꾸로 보살핌 받기가 힘들어진다.”(223쪽) 

 

성폭력 피해자의 시간은 정지한다. 성폭력 피해 사실을 말하면, 왜 수년이 지났는데 지금 말하느냐는 반응부터 나온다. 시간은 만인에게 공평하게 흐르지 않는다. 이제 와서 말하는 게 아니라 이제 겨우 말하는 거다. 친척에게 17살에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는 열일곱, 스물일곱, 서른일곱 등 10년 단위로 악몽에 시달렸다. 그 해마다 몸이 아팠고 일상이 무너졌다고 했다. 고등학생 때 오빠에게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는 그 오빠의 딸이 결혼할 정도로 세월이 흘렀음에도 복수를 꿈꾼다. 조카의 결혼식장에 찾아가서 ‘사실을 폭로하는’ 상상을 한다. 

 

토르디스는 16살에 강간을 당하고 25살에 가해자에게 편지를 보냈다. 사건을 자기 밖으로 꺼내기까지 9년이 걸렸다. 아무런 표현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일이 없는 건 아니다. 피해자들은 “부서진 자아를 감추”(22쪽)기 위해 과도할 정도로 성취하거나 반대로 무기력에 빠져버린다. 겉보기에 멀쩡한 듯 일상을 영위하면서 내면에서 전쟁을 치르며 “나 자신이 주제하는 재판”을 수시로 여는 것이다. 

 

『용서의 나라』 에는 용서의 또 다른 주체인 가해자의 목소리가 들어있다. 톰 스트레인져는 깊게 반성하고 사건 해결에 적극적으로 임한다. 여기서 적극성이란 최대한의 소극성이다. 토르디스가 주로 말하고 톰은 그저 듣는다. 침묵과 경청으로 자신의 의견과 입장을 표현한다. 자기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하나하나 배워간다. 

 

“너는 그날 밤 그래도 되는 권리가 네게 있다고 느꼈겠지.” (179쪽) “내가 여자라서 강간했잖아. (...) 넌 어디선가 배웠을 거야. 네 즐거움이 내 동의보다 더 중요하다고.”(282 쪽)  이 모든 진실 말하기를 겪어내고 톰은 의견을 낸다. “나도 일원이 되고 싶어. 문제의 한 축이 아니라 해결의 한 축이라는 느낌을 갖고 싶어.” (393 쪽) 

 

두 사람은 그렇게 용서를 도모한다. 8년간 300통의 편지를 교환하고, 16년 만에 중간지점인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직접 얼굴을 마주한다. 쓰고 읽고 듣고 말하며 서로의 언어에 길들여지는 시간을 갖는다. 각자 어렸을 적부터 살아온 과정을 시시콜콜 나누면서 그 맥락에서 성폭력 사건을 들여다보고 이후 고통의 일상까지 소상히 공유한다. 이 탄탄한 밑작업을 통해 한 사람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얻는다. 

 

토르디스는 말한다. 나는 강간당한 적이 있지만 그게 날 ‘희생자’로 만들진 않는다고. 사람은 평생 살면서 좋은 일도 하고 나쁜 일도 한다고. 나라는 사람이 그날 밤 일어났던 일로 축소될 수는 없고, 그건 너도 마찬가지라고. “용서의 핵심은 짐을 덜되 그 짐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않는 거야. 그 짐이 원래 그 사람의 몫이라 하더라도 말이야.”(68 쪽) 

 

두 사람에게 용서란 자책을 넘어서 자기 행동으로 나아감이다. “자책하는 것과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것은 다르다. 전자는 자기 채찍질로 이어져 자기 연민에 빠져 살게 만든다. 후자는 자기 너머를 보기 때문에 타인과 관련 지어 자기 역할을 찾아낸다.”(438 쪽) 토르디스와 톰은 자신들이 16년간 기울인 그야말로 “태산 같은” 노력을 가족에게 친구에게 차츰 터놓다가 책으로 테드 강연으로 모르는 전 세계 타인들과 공개한다. 세상을 바꾸기 위한 ‘자기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용서의 나라』 를 읽는 내내 분노하고 의심하다 안도했다. 성폭력 사건이 믿기지 않는 것만큼 용서의 귀결도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저게 가능한가 싶었는데, 가능하게 되어가는 장대한 여정을 따라가면서 나는 성폭력 사건의 복잡성과 다층성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거 하나는 분명하다. 용서는 신이 지급하는 쿠폰이 아니고 인간의 용기를 거름 삼아 자라는 나무라는 것. 그래서 가해자와 피해자, 공동체 구성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용기 내어 정성스럽게 가꾸어야 한다는 것 말이다. 살아있음 자체가 용기다. “삶은 계속된다. 한껏 이용하라. 네가 가진 게 별로 없다 해도 삶만은 네 것이다.” (451쪽)

 

* 채널예스에 실림

은유 읽다 - 시시콜콜 시詩알콜

[은유칼럼]


5년 만에 해외여행을 간 건 우연한 계기에서였다. 친구가 카카오톡으로 여행 계획을 밝히며 가고 싶으면 붙으라고 했다. 소싯적 ‘줄넘기할 사람 여기 붙어라’에 엄지손가락 잡듯이 나는 붙었고 다른 친구도 붙었다. 여권 번호와 영문 이름을 불러주고 친구가 항공권과 숙소를 예약했다. 그때가 초여름, 여행은 가을. 실감나지 않았다. 집필·강연·살림이 회전문 돌아가듯 들이닥치는 일상에서 나는 과연 일주일간 훌훌 떠날 수 있을 것인가. 

눈을 떠보니 타이 북부 도시 치앙마이. 한국에서 기껏 폭염을 견디고 다시 무더위 복판에 던져졌다. 사놓고 한 번도 못 입은 끈 달린 원피스에 슬리퍼 끌고 손바닥만 한 핸드백 메고 여행자 모드로 변신했다. 휴대전화 로밍은 하지 않았다. 할 일 없이 들여다보는 스마트폰과 읽지도 않을 책을 넣은 무거운 가방에서 해방된 일상은, 가능했고 충분했다. 

이러한 내 쾌락의 이면에 타인의 노동이 있다는 걸 셋째 날이 지났을 때 알았다. 여행을 주동한 ‘친구 1’은 항공사 우수회원에 영어 능통자다. 남의 나라 골목 구석에 있는 음식점도 구글맵으로 척척 찾아낸다. 예약부터 안내, 예산 집행을 가이드처럼 도맡았다. ‘친구 2’는 영상 작업을 한다.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우리들 추억을 기록했고, 특유의 준비성을 발휘해 맛집, 명소 등 여행 정보를 챙겨왔다. 나는 휴대전화 안 됨, 영어 못함, 체력 약함을 핑계로 그냥, 마냥 따라다녔다. 조금 미안했지만 점점 익숙해졌는데 친구 1이 한번은 말해버린 것이다. 

“가만히 있지만 말고 가는 길이라도 찾아 좀.” 

앗, 그건 내가 밥 짓느라 동동거리면서 애들한테 “수저라도 좀 놓아”라고 하는 말의 톤과 뉘앙스였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친구 1, 친구 2는 글쓰기 수업에서 만났다. 나이도 내가 제일 많다. 교실 밖 여행 속에서 나는 ‘쌤’이 아니라 무지렁이가 되었고 그 또한 나쁘지 않다 여겼지만 그건 내 생각이고. 그들 처지에선 여행이 서툴고 ‘원래부터 못한다’라며 두 손 놓은 나를 부리거나 내게 성질내긴 어려웠을 거 같다. 

“우리 팀은 분위기가 좋아. 이상한 사람도 없고.” 팀장이 말하면 팀원들이 겉으론 같이 웃지만 속으로 ‘이상한 사람=너님’이라고 말하는 웹툰을 본 적이 있다. 위계와 위치에 따른 감각은 이토록 다르다. 내가 안락하면 남은 그만큼 힘겨운데 안락한 자는 그 사실을 몰라서 더 안락하다. “마음은 생각보다 훨씬 작고 좁은 곳, 무엇도 영원히 숨길 수 없(184쪽)”다. 그런데도 “티를 덜 내고 감정을 참고 내 자신을 속이는 게 언제부터 어른스럽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는지 모르겠다(181쪽)”. 어른스럽지 않게 티를 내준 친구 1이 고마웠다. 덕분에 어른스럽지 않은 행동을 자각할 수 있었으니까. 

가을 여행 이후, 우린 한겨울에 재회했다. 친구 2가 깜짝 선물을 내밀었다. 나와 친구 1의 사진을 손수 편집한 앨범이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여기는 반캉왓, 와로롯 마켓, 호시아나 빌리지…. “사라져버릴 소중한 ‘그때’를 묵념하는 것 같은 순간들(107쪽)”에 울컥했다. 쓸쓸할 때마다 두고두고 어루만질 실물 추억이 생긴 것이다. 타인의 친절로 떠나고 즐기고 기록된 여행. 사진 속 내가 부자처럼 웃는다. 마음에 쌓아둔 친절을 난 누구와 나눌까. 

‘난 말이지, 사람들이/ 친절을 베풀면/ 마음에 저금을 해둬// 쓸쓸할 때면/ 그걸 꺼내/ 기운을 차리지// 너도 지금부터/ 모아두렴/ 연금보다/ 좋단다’ (저금-시바타 도요, 122쪽).


* 시사인 은유 읽다


페미니스트보다 무서운 것

[은유칼럼]

‘밥 안 해놓는다고 자주 갈등 겪어, 잠자던 딸 둔기로 살해한 아버지’. 며칠 전 본 기사 제목이다. 노예제 사회도 아니고 2018년 1월19일에 한국에서 벌어진 일이라니 믿기질 않아서 몇 번을 읽었다. 여자가 여자라서 화장실 가다 죽고, 안 만나준다고 전 애인에게 죽고, 밤늦게 다닌다고 남편한테 죽고, 미용실에서 일하다 죽고, 술자리에서 희롱당하는 뉴스가 연일 터지는 와중에 유독 충격이었다.


나는 밥에 대한 글을 참 많이 썼다. 뇌의 반이 밥(걱정)으로 차 있어서다. 누구나 자신이 속박된 주제에 대해 쓸 수밖에 없다. 밥 얘기를 쓰면서도 스스로 검열했다. 글감치고는 시시한 거 아닌가, 그깟 밥이 뭐라고, 나라의 명운이 걸린 것도 아니고…. 그래도 꿋꿋이 썼지만 ‘여자는 밥하는 존재가 아니다’라고 하면 그 말은 어쩐지 우스워 보였다. 저 기사를 보니 웃을 일이 아니다. 밥이 전선이다. 밥 때문에 사람이, 여자가, 맞아 죽기도 한다.


집안도 화장실도 거리도 일터도 일상 동선 어디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여성에겐 그렇다. 인구 절반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고 말하면 ‘망상’ 같지만, 나나 내 딸아이나 동성 친구들이 해를 입을 수 있다는 건 ‘예상’ 가능하다. 만약 기독교인이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유색인이 유색인이라는 이유로 하루걸러 죽어도 세상이 잠잠할까. 여성혐오가 대기에 만연하고 사망자가 꾸준히 발생하는데 사람들은 미세먼지만큼도 일상의 재난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주변에서도 안전 불감증을 느낀다. 한번은 강연장에서 한 여성이 조심스레 말했다. 형제를 키우는데 여자애들 등쌀에 아들들 학교생활이 힘들다며 남녀차별 시대가 아니고 여성상위 시대 같다고 했다. 또 예쁜 여자한테 꽃이라고 하는 게 왜 문제냐며 ‘페미니스트들’이 좀 무섭다고 했다. 뭐 그리 생각할 수 있다. 원래 내 불편은 가깝고 남의 불행은 멀어 보인다.


그러나 아들들이 학창 시절 이런저런 불편을 겪는다 한들 딸들처럼 죽고 사는 문제는 아니다. 화장실 갈 때나 택시 탈 때마다 불안에 떨면서 평생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 꽃처럼 예쁘단 말은 그 자체로 덕담이지만 한 사람이 꽃이 되는 순간, 발화자가 언제든지 꺾어버릴 수 있는 수동적 존재가 되고, 외모노동을 강요하는 압력으로 작용한다. 여성이 직장에서 ‘꽃’으로 취급되며 개별적 주체나 실력으로 인정받기보다 성적 대상화와 폭력에 노출되는 게 그 증거다.


‘검사인데도 저런 일을 당하다니 보통 여자들은 오죽하겠냐.’ 서지현 검사의 성폭력 피해 사실 인터뷰에 대한 인상적인 반응이었다. 그동안 몰랐나 싶어 조금 놀라기도 했다. 우리 사회 권력 집단에 속한 피해자가 자기 삶을 걸고 방송에 나와 역시 최고의 담론 권력을 쥔 앵커와 마주 보고 증언할 때라야 피해자의 목소리가 겨우 가닿는다. 피해자의 말에 술렁이고 반응한다.


여성혐오로 인한 죽음, 그리고 성폭력 피해는 주식 시세나 날씨처럼 매일 생산되는 뉴스다. 한샘 여직원의 성폭력 사건이 폭로된 게 불과 몇달 전이고, 문단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진 게 이년 전이다. 누구도 들어주지 않아서 서사가 되지 못한 채 눈송이처럼 흩어져버린 힘없는 여성 피해자들 이야기는 반도의 땅 곳곳에 설산을 이루고도 남는다.


우리가 무서워해야 할 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페미니스트가 가리키는 여성이 처한 현실의 참담함이다. 여자는 밥하려고 태어나지 않았고 꽃처럼 꺾어도 되는 존재가 아닌데 밥 안 한다고 죽이고 꽃 꺾듯 존엄을 꺾어버리는 무수한 사건들에도, 우리는 계속 놀라고 말리고 떠들고 분노해야 한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30625.html?_fr=mt5#csidx0b52d534adbd1d2bb4ca4cfa526253e

슬픈 인간- 나는 아직도 '돈 몇푼' 갖고 싸운다

[은유칼럼]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샘이 젤 유명해요.” 4년 만에 만난 지인의 첫인사다. “작가님이 유명해지고 가족들 반응은 어떠냐”라는 질문이 북 토크에서 나온다. 유명하다는 게 뭘까. 유명한 사람은 유명해서 유명해진다는 순환 논리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남편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 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성정의 소유자로 일희일비를 모른다. 군인 아들은 민가의 사정에 어둡고, 딸아이가 가장 실감할까. 한번은 지나가듯 말했다. “엄마, 엘리베이터에서 택배 아저씨를 만났는데 18층 누르니까 너네 엄마 작가냐고 물어보셨어.” 

그렇다. 일상의 가장 큰 변화는 택배 물량이다. 내가 물욕으로 사들이는 책 외에 출판사에서 보내주는 증정 도서가 늘었다. 글쓰기 수업을 한 지 어언 10년, 학인들이 낸 책도 속속 답지한다. 우리 집 고양이는 날마다 크기와 질감이 다른 상자에서 안락을 누린다. 쓰레기 배출을 한 주일만 걸러도 택배 상자와 인쇄물로 방 안이 폐지 집하장이 된다. 밟거나 읽거나, 종이를 헤치며 나아가는 삶이다. 

ⓒ시사IN 윤무영

하루 일과는 매양 같다. 눈 뜨면 글 쓴다고 카페 가고 오는 길에 장 봐서 밥 짓고 강의 가고 여기저기 메일 보내고 책을 베개 삼아 잠들고. 이 마감에서 저 마감으로 시곗바늘처럼 단조롭게 운행된다. “인생이라는 근면한 공장에 한번 말려든 사람은 설령 도중에 싫증이 났다고 해도 뒤에서 밀려오는 사람에 떠밀리고 떠밀려 출구까지 빙빙 돌지 않으면 안 된다(301쪽)”는 걸 실감한다. 

집필 노동자로서 고민도 여전하다. 어떻게 잘 쓸 것인가. 노동력의 정당한 대가를 받을 것인가. 원고 청탁이나 강연 의뢰가 이전보다 많이 오는데, 더 맞춤한 일을 고를 수 있는 건 장점이고 일일이 확인과 거절의 메일을 보내야 하는 건 단점이다. 돈은 늘 복병이다. 일반적으로 아무리 단기 알바라도 급여나 월급날을 모르고 일자리를 구하는 경우는 없다. 프리랜서 작가는 아니다. 상대방이 고료와 지급 날짜를 명시하지 않고 일을 의뢰하기도 한다. 난 요즘도 이런 메일을 쓴다. “원고료(강연료)가 얼마인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일전엔 한 잡지사에서 원고 청탁이 왔다. 고료와 지급 날짜가 단정히 적혀 있었다. 기본 사항인데도 고마워서 뭉클했다. 같은 날 한 팟캐스트에서 출연 섭외가 왔다. 출연료가 안 쓰여 있었다. 메일로 물었더니 답이 왔다. 교통비밖에 안 되는 적은 금액이라 죄송해서 말 못했고 가는 길에 스윽 드리려 했다고. 맥이 풀렸다. 자금 사정이 안 좋아도 스튜디오 대신 길거리 녹음을 하지는 않을 텐데 인건비는 줄인다. 인정으로 갈음한다. 악덕 자본가만 그러는 게 아니라 시민단체도 영세 업체도 일인 기업도 자연스레 그리 한다. 

<슬픈 인간> 나쓰메 소세키 외 지음, 정수윤 옮김, 봄날의책 펴냄

‘두부 장수가 두부를 만들듯’ 

자유기고가로 일할 때부터 최저 원고료를 보장하지 않는 곳과는 가급적 일하지 않았다. “대중 소설가가 그 출판사와 절교를 한다는 건 식량 수송로를 끊어버리는 것과 같다(234쪽)”는데, 비슷한 강도의 결단으로 버텼다. 남들 보기에 유명의 날개를 단 나는 아직도 ‘돈 몇 푼’ 갖고 싸운다. 수십 번 망설이다 그래도 말한다. 안정된 직업, 고정된 급여 없이 오직 글에서 밥을 구하는 노동자를 위해. 

글은 정자세로 앉아 시간을 바치지 않으면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목뒤부터 어깨를 타고 손끝까지 흐르는 저림을 겪으며 문장의 길을 터나가야 한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을 수 없는 직업이지만 그 미련스러움 때문에 내 일이 좋다. 새해를 맞아 순정하게 다짐해본다. “두부 장수가 두부를 만들듯이 성실하게 규칙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써 나가고 싶습니다 (201쪽).”


* 시사인 은유 읽다

이상한 정상 가족 - '불쌍한 아이' 만드는 '이상한 어른들'

[은유칼럼]

인터넷 광고 페이지에서 아기 사진을 보았다. 통통하게 오른 볼살과 한 줌의 보드라운 머리카락을 가진 아기가 누워서 천장을 보는 옆모습이었다. 작은 생명의 연약함, 무구함, 천진함이 몽글몽글 만져졌다. 자세히 보니 어느 사회복지 단체의 광고 홍보성 페이지다. 태어나자마자 버림 받은 아이들을 돌본다는 그곳은 이웃의 관심을 당부했고, 게시물 아래에는 ‘후원했다’, ‘우리 아이가 떠올라 마음이 아프다’, ‘돕겠다’, ‘천사 같은 아기야 힘내라’는 댓글이 달렸다.

 

때는 연말, 날은 춥다. 원래 아기 사진은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힘이 있는데다 순탄치 못한 서사까지 더해지니 나 역시 그 페이지를 휙 나가지 못하고 어정거렸다. 눈꼬리에 물기가 맺혔다. 부모 없이 자라는 게 가여워서가 아니라 부모 없이 자랐다는 말을 듣고 살아가야 할 아기가 애처로워서다. 한 아이가 성장하는 데 필요한 게 부모인가 돌봄인가. 한국사회에서는 오직 부모에게 전가된 돌봄이고, 그것이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비극을 초래하는 것 같다.

 

한 사회복지시설에서 지내는 아이가 ‘비밀’이라는 글을 썼다. 너무 비밀이라 선생님만 봐야 한다며 글쓰기 수업이 끝나고 내게 가져왔다. 자기는 아빠, 엄마가 없는데 그걸 친구들한테 말하지 못했고 제일 친한 친구에게만 아빠가 없다는 걸 말했다고. 자기는 친구 집에 놀러가지만 친구들을 집에 초대할 수가 없는데, 여기도 집이지만 친구를 데려오면 부모가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때문이라는 내용이었다. 진실한 글들이 그러하듯 읽으면서 아이의 불안과 감정에 전염되어버렸다. 아이의 비밀스러운 고민은 그때부터 나의 고민이 되었다.

 

열다섯 살 아이의 비밀은 왜 비밀이어야 할까. 만약 우리사회가 ‘정상’가족에 대한 기준이 엄격하지 않은 사회라면,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제대로 큰다는 이상한 믿음 체계만 없다면, 저 정상이라는 게 얼마나 허술한지 낱낱이 드러난다면, 다양한 가족 형태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면, 타인의 개별적 상황을 들어주고 보듬어주는 분위기라면, 아이는 비밀을 굳이 비밀로 채택하지 않았을 것 아닌가. 

 

이런 두서없는 물음과 한탄으로 꽉 막힌 속을 뚫어주는, 같이 한숨 쉬면서도 정확한 분노와 고민의 지점을 알려주는 미더운 한 권의 책을 만났다. 김희경이 쓴 『이상한 정상가족』이다.

 

우리 사회가 유독 정상가족에 집착하는 이유가 나온다. “가족은 부계혈연 중심의 유교적 가족규범이 지배적이었던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근대화, 도시화, 산업화를 거치며 줄곧 사회적 위기상황에서 개인을 지켜주는 거의 유일한 울타리였다.”(166쪽) 그러니까 사회 안전망이 없는 사회에서 개인이 기댈 유일한 언덕은 ‘사적 안전망’인 가족이라는 얘기다.

 

그렇지만 가족 내부의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 삭막하다. 각각 밥하고 돈 벌고 공부하는 도구적 존재로서 서로를 구실 삼아 정상가족의 그럴싸한 외양을 유지한다. “자녀를 소유물처럼 대하고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자녀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증명하려드는 부모라는 권력”(10쪽)은 체벌이나 학대 같은 친밀한 폭력을 은밀히 혹은 대놓고 행사한다. 아동인권단체에서 6년간 활동하며 ‘아이들의 수난사’를 지켜본 저자는 묻는다. 가족은 정말 울타리인가.

 

저 물음에 대해 난 고개를 반쯤 젓게 된다. 수년간 글쓰기 수업에서 ‘어른들의 성장기’를 접하면서 한 사람의 지울 수 없는 고통과 치욕은 어김없이 가족의 뿌리에 닿아 있음을 보았다. 유년시절부터 노동에 지친 아버지는 술 마시고 엄마에게 폭언과 폭력을 휘두르는 모습이었기에 이제 아버지가 죽어도 눈물이 날 것 같지 않다고 자식은 말한다. 일 나간 엄마 아빠를 대신해 초등학교 때부터 가족의 노동력으로 동원되고 두 동생을 돌봐야 했던 어린 장녀는 이웃집 아주머니와 싸움에 휘말렸으나, 자식의 편을 들어주기는커녕 매질을 한 엄마에 대한 30년 묵은 원망을 털어놓는다.

 

가족의 울타리는 핵가족 사회에선 억압과 공포의 밀실이 되기도 한다. 학창시절 최고 성적을 놓치지 않았던 아이는 너에게 들어간 학원비가 얼마인줄 아느냐, 1등을 못하면 강아지를 죽이겠다는 협박에 시달리며 과중한 학습 노동을 수행했고 끝내 정신의 질병을 얻었다. 물론 가족의 헌신과 지지로 좌절을 감내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말해지지 못한다는 점에서 고통이 더 깊고 크다. 저자 말대로 “문제는 가족의 형태가 아니다. 예컨대 친부모라고 안전하다고 할 수 없다”(63쪽).

 

부모와 산다고 다 행복하지 않듯이 부모가 없다고 꼭 불행하지 않다. 복지시설에서 사는 열다섯 살 아이의 비밀이 아픈 것이지, 그 아이의 삶 자체가 슬픈 것은 아니다. 아침에 학교에 가고 아이돌 좋아하고 친구들이랑 싸우고 떠들고 치마 기장 줄이기에 연연하며 핸드폰 카톡에 정신이 팔려 있는 모습은 또래 아이와 다르지 않다. 부모의 부재를 무조건 동정하거나 차별하는 시선만 아니라면 아이가 기죽을 일도, 거짓으로 둘러댈 일도 없다. 

 

한 아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 타인의 돌봄이다. 그 타인이 꼭 부모일 필요는 없다. 부모이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인간은 나약하고 흔들리는 존재다. 자식을 낳는다고 남을 돌볼 수 있는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 상태가 자동으로 세팅되지는 않으며 그랬다고 해도 영원하지도 않다. 그러므로 “아이는 무조건 친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식으로 혈연을 강조하고 모성에 대한 환상을 부풀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128쪽) 

 

한 아이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든 신체적 온전함과 존엄성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후원금을 척척 내는 어른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부모님 뭐하시느냐’ 다짜고짜 묻지 않는 어른이 많아져야 하고 이력서에 가족관계를 쓰지 않도록 하는 제도가 생겨야 한다. 이 세상에 ‘불쌍한 아이’는 없다. 부모 없이 자란 자식이란 굴레를 씌우고 불쌍한 아이를 만들어내는 집요한 어른들이 있고, 정상 가족이라는 틀로 자율적 존재를 가두거나 배제하는 닫힌 사회가 있을 뿐이다.


* 채널예스에 실림

서울, 패터슨의 가능성

[은유칼럼]

평일 오후에 이런 적은 처음인데 싶어 연신 창밖으로 몸이 기울었다. 정류장이 코앞. 신호가 몇번 바뀌도록 버스가 꼼짝 못 하자 기사는 뒷문을 열어주었고 승객 서넛이 내렸다. 큰 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정류장도 아닌 데 차를 세웠다며 뒷문 쪽에 웬 남자가 서서 목청을 높였다.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 줄 아느냐, 운전기사가 아무것도 모른다, 형편없는 사람이다, 라며 그는 술 취한 아버지처럼 한 말 또 하기 신공을 발휘하더니만 느닷없이 화제를 자신에게 돌렸다.

“내가 말이야 모자 쓰고 잠바때기나 입고 있는 늙은이라고 날 무시해!” 짙은 밤색 모자와 남색 외투를 입은 행색은 단정하고 허리는 꼿꼿했다. 행동도 민첩했다. 핸드폰을 꺼내 차 문 위에 붙은 교통불편 신고 전화번호를 누르고 차량 번호, 위치, 신고 내용을 읊고는 꼭 처리해달라며 끊었다. 그사이 버스는 정류장에 닿았고 중얼중얼 단죄를 멈추지 않으며 그는 퇴장했다.

가래 끓는 말들의 악취가 버스에 낭자했다. 무대응으로 일관하던 기사님은 묵묵히 차를 몰았다. 빈 의자 없이 좌석을 채운 승객들은 정물처럼 조용했다. 만약 기사가 멱살을 잡혔다면 누군가 말렸을까. 이 공공연한 멸시와 억측의 현장에서 나는 무기력했다. 이 정도는 부정 정차가 아니다, 기사님한테 왜 막말하느냐, 당신이야말로 업무방해죄로 신고하겠다는 말은 입 밖으로 터져나오지 못했다.

일전엔 밤 10시 무렵 버스 뒷자리에서 젊은 여성 둘이 종알종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어 칸 앞에 앉은 중년남성이 고개를 획 돌리더니 ‘조용히 하라’고 했다. 취기 섞인 음성과 불그레한 얼굴은 위압적이었고 여성들의 말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근데도 압박의 제스처가 계속된 모양이다. “왜 자꾸 기분 나쁘게 쳐다보세요? 아저씨가 뭐라고 한 뒤로 우린 아무 말도 안 했거든요?” 여자의 단호한 목소리가 들렸고 남자의 대응은 없었다.

때로 버스는 폭력을 잉태한 가부장의 공간이 된다. 사회적 약자들, 특히 자리를 뜰 수 없고 눈동자를 마주할 수 없는 운전기사는 쉽게 사물화된다. 한평도 안 되는 일터에서 겪는 기막힌 일들, 무례의 말들은 얼마나 많을 것이며 저 울화를 누구에게 얘기하고 이해받고 몸 밖으로 흘려보낼까. 행여나 그 얼토당토않은 신고 때문에 징계를 받는 건 아닌지, 걱정은 하면서도 난 버스회사에 전화 한 통 넣지 못했다. 마음의 빚으로 남았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한 아이를 학대하는 데에도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사무치는 나날이다. 일터 괴롭힘이든 아동 학대든 학교 왕따든 성폭력이든 다수의 침묵과 방조 없인 불가능하단 얘기다. 살면서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정신 차리고 피해자가 됐을 때 대응하자며 공부하지만 시급한 건 목격자로서 행동 매뉴얼, 남의 일에 간섭하고 목소리를 내는 훈련 같다.

영화 <패터슨>의 남자 주인공 직업은 버스 운전기사다. 그는 운전석이라는 공적 공간에 비눗방울 같은 막을 만들어 고요를 누린다. 사람과 주변을 관찰하고 시상을 떠올리며 짬짬이 시를 쓴다. 그의 내적 세계를 함부로 터뜨리거나 침해하는 사람은 없다. 자기 생각과 감정을 가진 노동하는 존재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장면은 천국 같았다. 우리 일상이 시를 낳는 공간이 되려면 똥물 같은 언사를 휘두르는 현실에 눈 돌리지 않고 같이 뒹굴고 치워야 할 것이다. 새해엔 나도 ‘반격하는 몸’이 되고 싶다. 시 쓰는 운전기사를 위해.


*한겨레 삶의 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