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아입는 엄마의 옷

[은유칼럼]

올해 내 인생 사건은 군인 엄마가 된 것이다. 지난봄 아들이 군에 간 뒤 앎과 감각이 바뀌었다. 군 의문사에 관심이 가고 참사·재난 기록문학이 다시 읽힌다. 대북 관련 뉴스가 귀에 박히고 뿔테 안경 쓴 앳된 군인이 자꾸 보인다. 거리에 군인이 이렇게 많았나 새삼스럽다. 민간인 청년들이 재잘거리며 노는 모습이 예쁘다가도 10㎏짜리 군장 들고 행군 중인 아들 얼굴이, 부르튼 손이 겹쳐 울컥한다. 이런 심정을 토로하면 주변에서 위로한다. 국방부의 시계도 돌아간다고.


아들 입대 4일 후, 구의역 참사가 발생했다.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열차 사이에 끼여 숨진 청년노동자의 처참한 죽음에, 사고의 원인을 고인 과실로 몰아가려던 원·하청 업체의 비겁한 처사에, 고인의 가방에 나뒹굴던 사발면과 쇠수저에 국민적 분노와 슬픔이 컸던 사건이다. 고인이 아들 또래다. 내겐 울고 싶은데 뺨 때리는 것 같은 뉴스였다. 당시 고인 엄마가 쓴 호소문을 며칠 전 다시 읽었는데 이 대목에서 멈칫했다.


“20년을 키운 어미가 그 아들을 알아볼 수 없다. 저 처참한 모습이 우리 아들이 아니다. (…) 사흘 못 봤는데 너무 보고 싶다. 군대 가거나 유학 갔다고 생각하라고 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몇 년 참을 수 있지만, 군대 가면 휴가라도 나오고 유학 가면 영상통화로 볼 수가 있다. 저는 평생 아이를 볼 수가 없다.” 자식의 군 입대를 ‘가정’하고 부재의 고통을 견뎌보고자 하는 엄마. 죽은 자식을 둔 엄마의 절규와 몸부림이 끊이질 않는 나라에서 내 자식의 무사귀환을 바라고 있자니 어쩐지 죄스럽고 마음이 복잡했다.


자식들이 돌아오지 못하는 나라. 군대 안보다 밖이 안전할까. 신병훈련소 과정을 마친 아들은 얼마나 힘들었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아르바이트할 때보다 어떤 면에서 편했다고. 음식점 알바가 밤 12시에 끝나서 늘 잠이 모자랐고 근무 중 손님이 몰아치면 끼니를 놓치기 일쑤였다고, 군대는 식사와 취침이 규칙적이라 좋더라고 했다. 예상치 못한 대답에 말문이 막혔다. 그래서 군 입대가 적체였나 싶었다. 먹고 자는 삶의 생태계마저 무너진 사회에서 의식주가 보장되는 군대가 젊은이들의 대안적 거처이자 일시적 도피처가 되는 현실은 얼마나 서글픈가.


국방부의 시계가 멈춰도 일상의 시계는 돌아간다. 또 누군가의 시계는 갑자기 정지한다. 오토바이 배달에 나선 청소년 노동자가, 에어컨 실외기 설치 기사가, 스마트폰 만드는 반도체 노동자가 어느 날 질병을 얻고 목숨을 잃는다. 마르크스가 일찍이 간파했듯이 “자본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오로지 1노동일 내에 운동시킬 수 있는 노동력의 최대한도일 뿐”인 야만스런 현실에서 노동에 대면하자마자 인간은 사라져버린다. 구의역에서 청년노동자가 스러졌듯이.


계절이 두 번 바뀌고서야 구의역 참사 현장에 가보았다. 노란 포스트잇 흐드러졌던 승강장은 꽃잎이 진 잿빛 풍경이다. 고인이 ‘끼인’ 9-4 승강장을 시간에 ‘쫓긴’ 이들이 오늘도 바삐 통과한다. 일할수록 닦달당하고 마모되면서 가난해지는데 너도 가고 나도 간다. 아들도 가고 엄마도 간다. 때가 되면 군인 엄마의 옷은 벗어도 재난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불안의 옷은 벗지 못할 것임을 나는 안다. 참사 현장 스크린도어에 비문(碑文)처럼 새겨진 ‘너는 나다’라는 문구를 헤아려본다. 내가 입은 군인 엄마의 옷은 유가족 엄마가 그토록 입고 싶어 했던 옷이고, 유가족 엄마가 입은 슬픔의 옷은 어느 날 내게 입혀질 수도 있는 옷이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75900.html#csidx46b2ee9cf0dc94ab180979a99d276b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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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배울 필요가 없는 사람들

[은유칼럼]



매주 토요일에 열리는 촛불 집회는 수업을 마친 후 학인들과 동행한다. 20대부터 50대까지 삼삼오오 몰려간다. 일전에 문화공연에 정태춘이 나왔을 때 사오십대는 작은 탄성을 냈고 이십대는 물었다. “정태춘이 누구에요?” “음유시인인데, 우리나라의 밥 딜런 같은 존재랄까?” 난 가사도 음색도 최고인 가수라고 한껏 들떠 소개했다. 설명을 듣던 친구는 검색 본능에 따라 스마트폰을 켜더니 날 보여준다. 실시간 검색어 1위 정태춘. 집회에 온 젊은이들이 ‘늙은 가수’를 모르는 것이다. 


지난 주말 집회에는 남성 댄스그룹 DJ DOC가 문화공연에 출연할 예정이다가 무산되는 일이 있었다. 현 국정농단 사태를 비판하는 노래를 발표했는데, 박근혜 대통령을 ‘미스 박’으로 칭하는 대목 등이 문제가 돼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이를 두고 SNS에서 논쟁이 일었다. 미스 박은 결혼 안 한 여자를 뜻하는 말이니 문제될 것 없다, 미스 박은 여성비하적 멸칭으로 문제다,라는 의견이 대립했다. 


논리를 떠나서 나는 ‘미스 박’이란 말을 듣는 순간 불쾌했다. 사회초년생 ‘막내 여자’일 때 남자 직원들 커피 타주고 심부름을 해야했는데 그때 난 미스 김이었다. 동기 남자직원은 미스터 김이 아닌 ○○○씨라는 이름 석 자로 불렸다. 물론 문제제기를 했고 일부 시정되었지만 중년의 상사들은 쉬이 바뀌지 않았다. 미스 김 호칭을 완전히 벗은 것은 노조에서 일하면서부터다. 그러니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미스 ○은 도구적 호칭이지 인격적 호칭은 아니(었)고, 성평등 문화를 저해하는 낡은 언어인 게 사실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현직 대통령의 무능과 부정을 비판하면서 왜 꼭 굳이 대통령의 성별을 들먹여서 여성들 전체의 억압된 기억을 들쑤시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집회에 온, 한 번도 미스 김이었던 적이 없는 사람들은 미스 김이었거나 미스 김일 수 있는 사람의 처지를 모를 수 있다. 모른다는 것을 알았으면 무수한 말들을 귀담아 듣고 배우면 되는 일이다. 이건 표현의 자유가 아닌 시민윤리의 습득, 인간 존중의 사안으로 접근해 노력해야 한다. 


광장 밖에서도 말의 간극을 자주 확인한다. 한번은 수업 시간에 프랑스 문학 이야기를 하면서 ‘불란서’(프랑스)라고 했더니 한 친구가 불란서가 뭐냐고 물었다. 어떻게 불란서를 모르는가 싶어 당황했는데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젠 거의 쓰임이 없는 고어가 된 모양이다. 반대로 이십대가 쓰는 ‘금사빠’(금세 사랑에 빠지는 사람) ‘어좁’(어깨가 좁음) ‘딥빡’(깊게deep 빡침)이란 말을 난 한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음성메시지보다 문자메시지를 애용하고 SNS 기반으로 대화를 나누다보니 젊은 세대 중심으로 줄임말이 계속 생산되는 추세고 온라인 언어는 자연스레 오프라인으로 넘어온다. 새로운 말들의 진격 앞에서 어리둥절하지만 그래도 알아들으려 노력한다. 말과 생각을 나누고 살아야 하니까. 


우리는 같은 언어 생활자라도 다른 세계에서 산다. 일반 상식과 가용 어휘가 다르다. 여성의 언어를 남성이 모르니까 미스 박이 뭐가 문제냐고 말하고, ‘젊은이의 병을 늙은 의사가 모르니까’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말하고, 장애인의 언어를 비장애인이 모르니까 박근혜는 발달장애인이라고 말하고, 채식주의자의 언어를 육식주의자가 모르니까 골고루 먹어야 건강에 좋다고 말한다. 언어를 모른다는 것은 한 사람의 고통과 정서를 모른다는 말과 같다. 말을 못 알아듣는 한, 존재의 이해는 불가능하다. 우리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쓰이는 말이 조금도 불편하지 않아 의심해본 적 없는 사람, 새로운 언어 표현을 발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타락한 정권을 욕할지언정 이 엉망인 국가 사회체계에서 사는 데 큰 불편이 없는 기득권자일 가능성이 크다. 아주 최소한의 단어로도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박근혜가 그걸 증명해준다. 


- 한국방송통신대학보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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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은 두 번 절망한다

[은유칼럼]


딸아이가 기르던 머리를 단발로 잘랐는데 친구들이 예쁘다고 했다며 하는 말. “엄마, 나 평생 이 머리만 할래. 박근혜처럼.” 이것은 엄마의 화를 돋우려는 중2의 반항인가. 하필 그분을 따라하느냐 물었더니 박근혜가 평생 한 가지 머리만 했잖아 한다. 그런데 왜 딸아이에게 대통령이 반면교사든 교사든 인생의 중요한 지혜를 알려주는 사람으로 나타나지 않고, 헤어·패션·코스메틱의 교본을 제공하는 사람으로 각인됐을까.


삼십대 후반인 비혼 친구는 수난을 당했다. 엄마가 제발 결혼하라 다그치며 한마디 했단다. “너 그러다가 박근혜처럼 될래!” 엄마는 설상가상 내가 널 박근혜처럼 외롭게 한 거냐고 자책했다고 한다. 완고한 스타일, 드라마 덕후, 미용 시술 애호가, 부모 여읜 불쌍한 딸, 남편도 자식도 없는 외로운 여자 팔자. 박근혜는 초유의 무능과 부정을 기록한 대통령이기 전에 가부장제에서 실패한 딱한 여자, 겉치장에만 골몰하는 한심한 여자가 됐고, 그렇게 “여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여자”(오규원)로 구축된 생애 서사는 우리 일상에서 반복되고 있다.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


그즈음 로자 룩셈부르크(1871~1919) 생애를 다룬 만화 <레드 로자>를 글쓰기 수업 토론 교재로 읽었다. 처음엔 생소한 인물이라며 심드렁하던 이삼십대 학인들 눈빛이 반짝였다. 로자는 고통감수성 영재였다. 열다섯에 이런 글을 남겼다. ‘나는 넉넉히 가진 자들의 양심에 짐을 지우고 싶다. 그 모든 고통과 남몰래 흘리는 쓰라린 눈물의 짐을.’ 여자로서 존재 각성도 단호했다. “작은 부리를 채우기 위해 세상에 존재하는 엄마의 삶”에 몸서리치며 결심한다. 아이를 갖지 않겠다. 로자는 고양이 한 마리 키우고 자유로이 연애했다. 불법 신문을 제작하고 대중파업을 선동하는 혁명가이자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로 생을 모조리 불태웠다.


이런 여자의 일생도 있다니! 출산을 거부하고 더 인간다운 사회체제 이행을 위해 헌신한 인물이 백년 전 존재했단 사실에 가임기 여성 학인들은 혹했다. 왜 아니겠는가. 본보기로 삼을 만한 여자의 서사가 가뜩이나 귀한 한국 사회에서 자식 없는 여자 정체성을 내세워 최초의 여자 대통령이 탄생했으나 딸들에게 자부심은 허용되지 않았다. 여자 대통령은 자기 언어가 없어 기자회견을 기피하고 사소한 결정도 친분 관계에 의존하고 부역자들과 합심해 국가권력기구를 사유화했고, 그와 같은 대통령의 무책임한 행보는 여자라는 종적 미숙함으로 환원되곤 했다. 이전 대통령들이 발포 명령으로 무구한 목숨을 앗아가고 4대강 사업으로 국토강산을 ‘건설 마피아’에 상납해도 남자라서 공격적이고 남자라서 생태감수성이 약하다는 말, 이래서 남자 대통령이 위험하다는 비난은 나오지 않는 것과 대조적이다. 딸들은 두번 절망한다. 한번은 국가시스템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무너뜨리는 잇단 사건들에, 한번은 난세를 틈타 노골화되는 여성혐오에.


지난 토요일엔 딸아이와 같이 세월호 7시간을 다룬 시사프로그램을 봤다. 미용 시술이든 낮잠이든 대통령이 무엇을 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국가적 재난 상황에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가 쟁점이라는 것, 여자 박근혜가 아닌 대통령의 ‘행동 능력’ 부재를 벌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희생된 아이들의 온전한 애도를 위해서 진실은 밝혀야 한다는 대목에선 아이의 손을 꼭 잡았다. 청와대 사람들이 7시간을 비밀로 하는 게 아무래도 수상쩍다며 단발머리 딸아이가 중얼거린다. “국민들이 본때를 보여줘야겠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72010.html?_fr=mt5#csidx3f59b48c8288f4ab6eb88fd17d9fdf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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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주는 여자 - 한 병 딸까요?

[은유칼럼]

배우 윤여정이 ‘박카스 아줌마’로 나온다기에 영화 <죽여주는 여자>를 챙겨보았다. 윤여정이 맡은 배역은 소영.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에 ‘삼팔3.8따라지’(전쟁 고아)로 태어나 식모살이, 공순이, 양공주 등 여러 직업을 거친다. 젊었을 때 미군 흑인 병사와 살림을 차렸고 아이를 낳았지만 키울 여건이 안 돼 해외로 입양 보낸 사연이 있다. 하필 전쟁통에 삶에 제약이 많은 ‘여자’로 태어난 것을 필두로, 살면서 몇차례 난폭한 우연을 통과하자 남은 거라곤 몸뚱이 뿐. 65세 여성 노동자는 가방에 박카스를 챙겨넣고 파고다 공원 일대에서 남성 노인들에게 다가가 안색을 살피며 슬쩍 운을 뗀다. “한 병 딸까요?” 


날 밝으면 가방 챙겨 출근하고 ‘한 건’ 하면 먹을거리 사들고 너털걸음으로 귀가하는 소영. 시계추처럼 반복되는 노동의 일상은 나른하고 덤덤하다. 그리고 그것은 불안정 노동을 수행하는 보편적인 노동자의 모습과 겹친다. 


소영은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다가가서 거절 당할 각오를 하고선 말을 걸어야 하는 세일즈맨이기도 하고, 돈 주는 사람이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내놓아야 단골이 생기고 일이 끊기질 않는 프리랜서이기도 하며, 참지 못하면 살지 못하니 참는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어 수치심을 감내하고 고객의 비위를 맞추는 감정노동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성매매노동자인 그녀는 “춥다, 아프다, 무겁다 같이 정해진 시간 동안 어떤 감각을 계속 느끼는 것을 견디고, 그 대가로 얼마쯤 돈을 받는”(기시 마사히코) 육체노동자이기도 하며, 일하다가 생긴 질병(성병)으로 며칠을 공치는 일용직 산재 노동자이기도 하다.


“한병 딸까요?” 


소영이 따는 그것. 박카스는 신진대사 기능을 회복시켜 정신적, 육체적 활력을 증강시키는 약이다. 박카스를 따겠다는 것은 제 몸에 저장된 에너지를 팔겠다는 뜻이다. 항상 이윤을 창출하는 유일한 상품은 인간의 노동력이라는 마르크스의 통찰대로,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자는 자기를 파먹으며 근근이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나는 지식과 경험을 사유 노동으로 체화해 놓았다가 판다. 이 글을 쓰기 위해서도 내 마음의 영화를 한 편 딴다. 한번 읽어보실래요? 내 글에 공감하는 독자들에게 만족을 안겨주며 밥벌이를 한다. 모든 노동하는 사람의 수고로움이 들어있는 말. 한 병 딸까요? 산다는 것은 내 안에 무언가를 계속 따야하는 일이리라.


윤여정은 이 영화 개봉 즈음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들도 나처럼 부모 밑에선 소중한 딸 아니겠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착잡해졌고 우울해졌다. 사람들은 왜 할 일이 많은데 저런 일 하냐고 손가락질 한다. 그런데 영화 속 대사에도 나오지만, 그것밖에 할 수 없는 속사정이 있을 거다. 함부로 얘기하면 안 되겠더라.”


윤여정은 또한 영화를 하지 않았으면 죽을 때까지 모르고 살았을 세계를 안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의 내밀한 연기 덕분에 나 역시 평소 모자이크 처리되고 음성변조 된채 가십거리로 소비되는 한 존재의 생활 세계를 경험했다. 한 사람의 속사정에 다가갔다. 영화 제목만 봤을 땐 ‘죽여주는’이란 수식어가 직업적 숙련도를 뜻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성적 쾌락과 죽음 대행, 두 가지 의미가 들어있다. 그러니까 영화에서 소영이 하는 일이란, 산 사람 살게 하고 죽으려는 사람 죽게 하는 것이다. 그녀의 단골 고객 증언대로 “소영은 천사”였을까. 그렇다면 아마도 그건 지상의 가장 낮고 위태위태한 자리에서 일생을 살았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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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방송통신대학보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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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것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은유칼럼]


나는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를 다녔다. 중3 초에 그 학교를 알게 됐고 '공부 잘해야 가는 학교' '취업 명문'이라는 말을 듣고 그냥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다. 가까스로 합격했고, 잠실에서 무악재까지 왕복 서너 시간 등하굣길을 힘든 줄도 모르고 다녔다. 난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을 일찌감치 따두었고 2학년 올라가서 5월에 국내 최대의 증권회사로 취업이 결정됐다. 그때부터 책 보고 시 베껴 쓰고 음악 듣고 학교 건물 뒤편 우애동산에서 낙엽 주우면서 한량처럼 놀았다. 금융권에서 여직원은 여상출신이 대부분이었는데, 여상 중에서도 서울여상 출신인 나는 어딜 가나 대접받고 똑똑한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기죽을 일이 없었다. 


고졸의 불편을 느낀 건 결혼할 때였다. 시가에서 노골적으로 내 학력을 문제 삼았다. 2세를 생각하면 엄마 머리가 좋아야한다면서 '그래도' 서울여상이니까 용납한다는 식이었다. 아이를 낳고 아이 또래의 엄마들과 교분이 생겼다. 남편이 목동지점으로 발령이 나서 이사를 갔고 그 동네 평균 학력이 높다보니 난 또 불편을 겪었다. "00 엄마는 몇 학번이야?" 유모차 밀다가 벤치에 앉아서 말문을 트면 그런 인사가 자연스럽게 오갔다. 그냥 멋쩍게 "고등학교 나왔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럼 뭔가 서로 민망했다. 속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덜 무안한 대답의 몇 가지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았다. 


'고등학교만 나왔어요.' '고졸이에요. '대학 안 다녔어요.' '대학 안 나왔어요.' ' '여상 나왔어요.' '서울여상 나왔어요.' 그 어느 것도 상황이 산뜻하지 않았고 어딘가 구차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평범함.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경험하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라는 일본의 사회학자 기시 마사히코는 말대로, 나는 '그것'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난 평범하지 않았던 것이다. 


글을 쓴답시고 밥벌이를 하게 됐고 철학 공부를 하러 연구공동체에 다닐 때다. 나를 아끼는 선배가 말했다. 네가 앞으로 작가로 활동하려면 그래도 대학을 가는 게 낫지 않을까. 거기 다니며 공부할 시간과 돈과 공력이라면 대학을 시도해보라고 했다. 그건 나를 위하는 말이지만 옳은 말은 아니었다. 사회 비판적인 의식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비판하는 사회는 뭐지? 그때부터 유심히 지켜봤다. 지나가는 말로라도 학벌 중심 사회를 비판하는 지식인들은 거의 고학력자들이었다. 학벌 중심 사회를 비판하면서 학벌 중심 사회를 공고화했고 그 틀을 깨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를 내면화했고 자기 자식을 명문대 보내려고 애썼고, 자신이 어느 대학 몇 학번을 자연스레 노출했고 그로 인한 실리를 살뜰히 챙겼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학벌 세탁'에 드는 자원을 마련할 수도 없었다. 몰락한 중산층이 돼버려 월 백만원에 이르는 재수학원비를 감당할 수 없었고, 생계 노동에 나서야 하기에 책상에 붙어 앉아 미적분을 풀 시간이 없었고, 두 아이 양육과 살림만으로도 생체 에너지는 고갈됐다. 그 모든 한계를 떨치고 일어날 만큼 공부에 '한'이 맺혀 있지도 않았다. 지금 책장에 꽂힌 책만 다 읽기에도 남은 인생이 부족할 지경이었는데 내가 왜 굳이 또 그걸. 나는 '그것'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운이 좋은 고졸사람이었다. 비교적 문턱이 낮은 '자유기고가' 직업에 입문해 '열일'했고 전세자금도 올려줬다. 어쩌다 보니 지금은 글쓰기 관련 강의도 나간다. 학력 문제는 계속 따라다닌다. 내가 주로 강의를 나가는 곳은 시민단체다. 나랏돈을 받아 운영되다보니 강사료 지급 기준이 박하고 엄격하다. 다른 통로로 최저 강사료를 마련해주기 위해 활동가가 애를 먹기도 한다. 작년에 모대학 특강을 갔을 때는 강사료 지급 기준에 석박사는 있어도 고졸 학력 기준은 아예 없어서 새로 만들어야 했다고 했다. 


불편해도 괜찮았다. 나의 평범하지 않음, 소수성으로 인해 겪어야 했던 여러 갈래의 경험은 내가 사회학이나 여성학, 철학을 공부하는 데 자양분이 되었다. 현실 문제에 부딪혀 본 것들이 이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여자라서 불편한 게 많다 보니 피곤하긴 해도 생각하면서 살 수 있었던 것처럼, 고졸이란 신분도 그랬다. 덕분에 내가 누구이고 내가 어디 있는지 늘 되묻고 깨어 있어야 했으니까. 


얼마 전 어느 출판사에서 공저로 참여하는 출간 제안을 받았다. 공저자 명단에는 평소 내가 영향 받은, 밑줄 치며 책 읽는 저자의 이름이 나란히 있었다. 나는 그의 언어로 젠더, 나이, 인종, 학력 등 온갖 차별에 눈떴다. 저항하는 법을 배웠고 인권 감수성을 키웠다. 내가 여기에 껴도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관심이 가는 주제여서 써보기로 했다가 마음을 바꿨다. 이유는 국가폭력피해자 인터뷰집 발행 작업을 마감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이미 한 것 같아서, 주제가 겹치는 듯해서다. 


그런데 원고를 못 쓰겠다는 이야기를 꺼내면서 출판사의 난처한 입장을 전해 듣게 되었다. 공저자 가운데 한 사람이 본인은 필자로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하며 내가 이 책의 저자로 끼어 있다는 사실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자세한 정황은 듣지 못했으나, 나는 ‘그것’에 대해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필진의 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문제가 될 까닭이 무엇인지 나는 짐작하기가 어렵다. 동등한 ‘저자’ 입장에서 본인이 참여하지도 않을 기획에 다른 저자의 참여에 불편함을 느끼고, (느끼는 것까지야 자유라 하더라도) 그것을 기획자에게 굳이 전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나는 모르겠다. 나는 잊고 살아도 세상은 잊지 않으므로 ‘그것’을 자주 생각해야 한다. 나는 평범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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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누드모델

[은유칼럼]

‘나는 해부학적으로 그려져 걸릴 것이다/ 훌륭한 박물관에. 부르주아들이 나지막이 탄성을 지르겠지/ 이런 강변의 매춘부 이미지에 대고. 그들은 그걸 예술이라 하지.’


영국 시인 캐럴 앤 더피의 <서 있는 여성 누드> 일부다. 시의 화자는 누드모델. 자신에게서 ‘색을 뽑’고 움직임을 통제하며 권력 감정을 느끼는 화가를 ‘조그마한 남자’(little man)로 부르고, 누드화에 감탄하는 영국 여왕을 ‘웃긴다’고 말한다. 이 시에서 여성은 그려지고 보여지는 존재가 아니라 생각하고 말하는 존재다. 자신을 보는 화가-관객을 보는 시선의 전도로 인해 역사상 목소리를 가진 적 없는 누드모델이 견자(見者)로 등장한다.


친구의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이탈리아에서 미술관엘 갔는데 길게 늘어선 줄이 거의 여성이더란다. 전시실엔 백인 남성 화가 작품들만 걸려 있음은 물론이다. 관람을 마치고 바닷가에 갔더니 미술관에서 안 보이던 남자들이 해변에 누워 여자들을 감상하고 있더라나. 왜 여자는 보여지고 (그걸 또 돈 내고 보고) 남자는 창작하게 된 거냐고 푸념했다.


그런데 위의 시에 따르면 화폭 속 여자는 수동적인 대상으로 가만히 있지만은 않는다. 자신을 보는 사람들을 관찰해 통찰을 얻는다. 그는 ‘해야만 하니까. 다른 선택이 없으니까.’ 그저 그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화가나 자신이나 같은 처지라며 이런 시구를 남긴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하지’


인간사를 아우르는 간명한 명제다. 난 일전에 한 남성 철학자의 책을 읽었는데 서문에는 이 방대한 저서를 집필하느라 시간이 얼마나 걸렸고 몸이 어떻게 탈진됐는지 병명까지 상세히 적혀 있었다. 그 비슷한 시기에 빵집 아줌마 얘기를 들었다. 김밥집에서 수년간 일한 그는 김밥을 하도 말아 손목 관절이 손상돼 그만두고 시장통 빵집에 겨우 취직했다. 빵 담고 거스름돈 내주는 일이 망가진 손목으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동작인 탓이다.


어떤 직업은 노동의 결과물이 보존되고 과정의 수고로움이 기록된다. 존경과 동경을 받는다. 어떤 직업은 아니다. 노동의 성과가 사라지고 고충이 음소거된다. 폄하와 무시를 당한다. 사회적 무지와 몰이해. 그것이 직업의 귀천을 만들고 구조적 불평등을 낳는 건 아닐까. 대부분의 직업이, 몸이 축난다는 점에서 단순직이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점에서 전문직이다. 저 ‘누드모델’이 응시하듯 누군가를 깊게 들여다본 적 없는 우리는, 서로를 동등한 동료 시민으로 바라보지 못한다.


내 직업 작가도 학자와 더불어 문(文)을 숭상하는 한국 사회 유교적 전통의 수혜 직군이다. 가난해도 대접받는 편이다. 그런데 글 쓰는 직업에도 위계가 있다. 자유기고가와 르포르타주 작가로 일하는 내게 사람들은 예사롭게 묻는다. “시나 소설은 안 쓰세요?” “등단하셔야죠.” 저 순문학 세계에 이르는 길 어디쯤에 비소설 분야 문필하청업자 자리가 있지 싶다.


장르는 갈래다. 장르 자체가 작품의 고귀함을 보장하지 않는다. 직업이 인격을 담보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세상에는 권력에 빌붙어 합리적 생존성만 따지는 의사나 법조인이 있고, 약자에게 다정한 (성)폭력을 휘두르는 문인과 교수가 있다. 특정 직업에 덧씌워진 환상을 벗겨내고, 그 일이 누구의 이익에 복무하는지, 다른 존재를 억압하진 않는지, 어떤 관점을 내포하는지 ‘해부학적으로’ 따져야 한다. ‘나는 볼 수 있다’고 말하는 누드모델처럼, 보여질 때조차도 보는 사람이 예술가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67850.html?_fr=mt5#csidxeadf8fc1bd4f6978e99e915ef7a03f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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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삶의창] 내 인생이 그렇게 슬프진 않거든요

[은유칼럼]



아이들이 이백 명 넘게 있더라, 생각해보니 나 학교 다닐 때 우리 반에도 보육원에 사는 애가 없진 않았을 거 같아. 업무차 보육원에 다녀온 친구가 말했다. 그 아이는 반 친구를 집에 데려오지 못하고 남들처럼 부모형제와 사는 듯 지냈을 텐데 싶어 애처로운 마음이 든다고 했다. 나와 같은 시간대를 통과했을 한 아이를 나도 가만히 떠올려보았다. 있는 그대로 자기를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의 가슴은 때때로 얼마나 졸아드는가.


예전에 보육원에서 만난 취재원이 떠올랐다. 원생이 성인이 되면 약간의 생활자금을 갖고 시설을 나간다고 말했다. 난 좀 놀랐다. 방 한칸 구하기 어려운 소액으로 가족도 없는데 어떻게 자립을 하느냐며 살짝 분개했던 거 같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자기가 그 경우랬다. 시설에서 살다가 스무 살에 독립해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이곳에서 일한다고. 그러니까 나는 ‘보육원 출신 성인’이라는 추상적 인격을 상정하고 걱정인지 동정인지 모를 감정을 표출했는데, 그 실제 인물이 눈앞에 있었던 거다. 소매 걷은 흰 셔츠 입은 이십대 여자의 침착한 얼굴로.


한 움큼 부끄러움을 삼키며 나는 배웠다. 동정이든 차별이든 그 아래 깔린 근본 생각은 다르지 않다는 걸. 어떤 대상을 자기 삶의 반경에 없는 분리된 존재로 취급하는 것(고아들이 불쌍하다), 한 존재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 특정한 면만 부각시켜 인격화하는 것(장애인은 무능하다), 자신은 결코 되지 않을 이질적 대상으로 상대를 보는 것(공부 안 하면 노숙인 된다). 하나같이 타자화하는 말들이다.


배울 일은 계속 일어났다. 장애여성들과 글쓰기 수업을 할 때다. 손 움직임이 불편한 학인이 A4 용지 두 장 분량의 과제를 제출했다. 구족화가처럼 발가락으로 자판을 두드렸을까? 어떻게 썼는지 물었더니 스마트폰을 코로 눌러 글을 써서 컴퓨터 문서에 옮겨 출력했단다. 난 또 놀랐다. 코로 글을 써요? 옆에 있던 활동가가 코로 게임도 엄청 잘한다고 일러줘 다같이 웃었다.


코로 글을 쓰는 그는 연극도 하고 아이도 키우고 강의도 한다. ‘장애의 이해’란 주제로 인권 교육을 나가는데, 사람들이 휠체어를 타고 말투가 어눌한 그를 강사보다는 딱한 장애인으로 보는 모양이다. 교육이 끝나면 다가와 ‘꿈을 잃지 말고 살라’ ‘얼굴은 예뻐서 다행이다’라고 말하거나 불쌍하다고 끌어안고 우는 사람도 있단다. 이 촌극 같은 상황을 두고 동정심만 키운 망한 교육이라며 그는 웃음 머금은 채 말한다.


“내 인생이 그렇게 슬프진 않거든요.”


안 보이는 사람의 나라가 있다. 삶에 대한 상상력이 직업에 대한 정보력을 넘지 못하는 수준이다 보니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사람의 이야기는 사라져간다. 남성, 이성애자, 서울 출신, 명문대 졸업, 전문직 종사자로 표상되는 소위 정상적 삶의 서사는 매스컴으로 구전으로 맹렬히 유통되는 반면, 거기서 벗어날수록 삶의 서사를 구성하기가 어렵다. 장애여성 강사처럼 자기 경험과 생각과 감정을 말할 기회가 드물고, 겨우 말한다 해도 오해나 동정을 산다. 그런데 남에게 자기 얘기를 하지 않으면 사람은 자기를 알기 어렵고 사회에 자신을 위치 지을 수도 없다. 말소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아마도 사람을 단정하는 내 ‘꾸준한 고집’으로 눈앞에서 놓쳐버린 무수한 타인들이 있을 것이다. 다시 듣기를 시도한다. 저마다 처지와 형편과 고민을 말하고 듣고 상상하는 동안 서로의 존재 정착을 도우리라. 




2016.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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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의 선물

[은유칼럼]



예전 동료와 연락이 닿았다. 나의 신간 '쓰기의 말들'이 인터넷 서점에 나온 것을 보고는 그가 연락을 한 것이다. "새 책 나왔네? 여전히 부지런해!" 밀린 수다가 오갔고 대화는 급물살을 타며 언제 밥 한 번 먹자가 아니라 다음주에 당장 날잡자로 이야기 됐고 그날이 왔다. 문자 안부가 아닌 실물 상봉은 거의 4-5년 만이다. 그간 그는 두 명의 아이를 출산해 일과 육아를 병행했고, 난 살림과 집필을 수행했다. 우린 너무 바빴다.


그는 규모가 있는 편집회사 사보기획자, 나는 늦깍이 프리랜서 작가였다. 요즘 말로 따지면 그는 을 나는 병이다. 둘이 일 궁합이 좋았다. 그는 자신이 진행하는 거의 모든 사보를 나에게 맡겨야 안심했고 그 모든 일을 나는 마다 않고 완수했다. 갑이 요청하는 급작스러운 일들, 그러니까 대표이사 인삿말 윤문 같은 것들도 정해진 시간 내에 써주었고, 갑의 핵심 사업인 신기술 관련한 까다로운 내용도 빈틈없이 정리해서 원고를 납품했다. 사보 제작 관행상 작가 여러 명이 한꼭지씩 써야하기에 필명을 세 개 돌려가면서 다른 인격으로 원고를 쓰기도 했다. 돈이 필요했던 나, 그리고 갑인 클라이언트에게 '빠꾸' 맞지 않을 원고가 필요했던 그. 우린 서로를 원했다.


약속 장소로 가는 길, 버스에 앉아 창밖으로 눈길을 던지며 상념에 젖는다. 8월의 태양을 직통으로 맞고 건물이 내뿜는 실외기 열기까지 감내하고 있는 저 플라타너스가 대견하다. 이 뙤약볕에 여전히 버스정류장에서 낡은 의자 쿳션 깔고 앉아 채소를 파는 할머니는 또 얼마나 대단한가. 올해의 폭염처럼 끝날 듯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지리멸렬한 고통의 시간대를 나는 일을 하면서 통과했고, 지금 그를 만나러 간다. 


한 존재가 살아가는 일의 '기적'에 대해 생각했다. 우주가 돕는다면 사람이 우주일 것이다. 아무 기반도 없이 글밥 먹고 사는 일을 시작한 나를 믿고 일감을 몰아준 그가 새삼 고마웠다. 덕분에 쌀독에 쌀이 비는 불상사를 막았다. 더 고마운 건 ‘왕성한 집필기’를 거치며  작가로서 글쓰기의 근력을 키우고 자신감을 얻은 것이다. 그 때도 고마웠는데 표현하지 못했다. 혹여라도 선물이 뇌물이 될까, 평등한 동료 관계가 비대칭의 갑을관계로 기울어버릴까 조심스러웠다. 이젠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았으니 뭔가를 전해도 되겠구나 싶었다.


광화문 네거리, 더바디샵에 들러서 나는 코를 킁킁거리며 향기로운 선물을 골랐다. 카페에서 만나 포옹하고 “어머, 그대로네. 어떻게 하나도 안 변했느냐” 예의 그 호들갑스런 인사를 한바탕 시연한 후 자리에 앉아 그에게 곧장 내밀었다. “이거 선물이야. 당신 덕분에 내가 살 만한 삶을 살았네. 고마워. 너무 늦은 거 아니지?” 10년 묵힌 마음, 10년 만의 선물이다. 


며칠 후, 그에게 문자가 왔다. 내 책을 읽고 잠시나마 문학소녀였던 그 때 그 설렘이 훅 먼지처럼 일어나고 가슴이 콩닥거려서 커피우유 사다 마셨다고. 책에 인용한 문장과 에피소드가 절묘하다며 그가 말했다. “대체 얼마나 뇌즙을 짜낸거야?” 난 ‘뇌즙’이란 말에 무릅을 쳤다. 어떻게 그런 표현을 생각했냐고 물었더니 그가 말했다. 

“옛날에 그대가 썼던 말이야. 원고 보내면서. 하도 콱 박혀서 잊혀지지가 않아.” 


난 당황했다. 왠지 내가 삼십대였던 그 땐 총기도 있고 체력도 좋아 글을 힘들이지 않고 썼다고 생각했다. 예나 지금이나 사보 일이나 책 집필이나 그냥 써지는 글을 없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글쓰기에는 일정량의 ‘뇌즙’을 바쳐야한다는 것. 그가 내게 돌려준 10년 숙성된 명언, 10년 만의 선물이다. 



* 방송대 학보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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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 여름 제사

[은유칼럼]


시적인 게 뭐예요? 시 수업에서 질문이 나왔다. 난 오래된 시집에서 본 설명에 기댔다. “그 시적인 것은 뭐라고 딱히 말할 수는 없고, 딱히 말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것은 어쩌면 선적인 것과 닿아 있는지 모르겠다.”(황지우,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64쪽) 그리고 예를 들었다. ‘여름 제사’ 같은 게 아닐까요?


저 오늘 여름 제사 지내러 가요. 얼마 전 지인이 지나가듯 하는 말에 몸이 움찔했다. 여름 피서가 아니라 여름 제사. 이 빗나가고 거스르는 말들의 배열이 내겐 너무 시적으로 다가왔다. 삼복더위에 호화로운 휴가 한번 즐기지 못한 엄마는, 자식들 콩국수 만들어 먹이고 아버지 술안주로 부침개 부치느라 가스불 앞을 떠나지 못하고 낑낑대던 엄마는 한여름에 돌아가셨다. 써보지 못한 여권사진이 영정사진이 됐다. 10년 전이다. 나는 10년째 여름 제사를 지낸다.


서울 36도. 올해 엄마 기일도 무더웠다. 가스불 앞에서 쇠고기 무국을 끓이고 전을 뒤집고 산적 고기를 익히는 나는 엄마가 되어 엄마를 본다. 가슴골로 맹렬하게 흘러내리는 땀줄기가 건드리는 그 무엇. “너 키울 때 자는 동안에도 계속 부채질해줘서 땀띠 한번 없이 여름을 났다”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단지 ‘고생한 엄마’라고 말하면 많은 것이 빠져나가 버리기에 말할 수 없는 여성 억압의 중추를, 엄마의 어떤 생을 몸으로 반복한다. 늘 있지만 잘 눈여겨보지 않는 삶의 자리, 여름 제사.


강남역 8번 출구에서도 여름 제사를 지낸다. 사계절 영정사진이 놓인 곳. 천막을 치고 삼성에서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의 넋을 기린다. 고 황유미 아버지 황상기씨는 속초에서 서울로 달려와 입사원서 사진이 영정사진이 된 딸의 제사를 지낸다. 9년째다. 빌딩 숲속 실외기의 후덥지근한 열기와 9차선 도로의 시커먼 매연 속에서 죽은 자의 못다 한 이야기를 알리고 산 자의 살 권리를 이야기한다. 기록적인 폭염의 절정에서 반올림 활동가 공유정옥은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날씨 덕분에 반올림 오성급 호텔 사우나를 습식 사우나로 업그레이드하였습니다. (…) 보습기능이 증진되었고, 노폐물을 쫙쫙 빼주니 체중도 줄었어요. 강남역 8번 출구 앞 1분 거리 삼성 딜라이트 홍보관 앞에 있습니다.”


여름 농성장은 습식 사우나. 말하기에 실패하면서 계속 말하기를 전달하는 이 상황은 또 얼마나 시적인가. 삼성 백혈병 문제 보상을 위한 싸움이라고만 하면 너무 많은 것이 생략돼 버리기에 딱히 말할 수 없지만 말하기를 포기할 수도 없다. 이 삶적이고 선적인 무엇. 삼성이 성매매 여성에게 지불한 500만원과 죽어가는 황유미에게 “이걸로 끝내자”며 건넨 500만원의 치욕을 기억하는 것이 ‘사람의 일’임을 증언하는 그곳, 도시의 중심에서 가장 주변이 된 삶의 자리, 강남역 농성장.


시적인 것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것을 보게 하는 힘, 동력, 에너지다. 혹서기에 김포공항 출입문을 통과하는 알록달록한 인파는 시적이지 않다. 잘 보이니까. 김포공항 구석구석에서 꿈틀거리는 땀 위에 스멀거리는 모욕의 말들을 뒤집어쓰고 주물거리는 관리자의 성추행을 감내하며 하루 3만보를 이동하는 청소노동자들, 인간 대접 받고 싶다며 삭발에 나선 그들의 몸에서 떨어지는 머리카락과 눈물과 땀은 시적이다. 잘 보아야 보이니까.


불볕더위에 불덩이를 떠안고 ‘인간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을 불러내는 말들, 움직임들, 응답들로 인해 없는 존재가 있는 존재가 될 때 비루함이 고귀함이 된다. 그래서 시적인 것은 있지 않고 발견된다. 여름 제사처럼.



* 한겨레 '삶의창' 2016. 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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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빛 - 넓어져가는 소란을 위해서

[은유칼럼]

(*영화의 줄거리가 많이 나옵니다.)

 

영화 <환상의 빛> 초반의 한 장면, 남편이 라디오 소리를 집중해 듣고 있다. 아내가 시끄럽지 않느냐고 묻자 남편이 답한다. 노인네 귀가 잘 안 들려서 크게 틀어놓은 거겠지. 알고 보니 옆집에 혼자 사는 할아버지가 틀어놓은 라디오 소리가 벽을 타고 넘어온 거였다. 이것은 분명 ‘벽간 소음’의 일촉즉발 상황인데 영화에서는 라디오를 공유하는 다정한 이웃 풍경으로 그려진다. 소리로 연결된 관계? 이 때부터 난 영화의 ‘빛’보다 ‘소리’가 귀에 감기기 시작했다. 


배경이 기찻길 부근 주택가 가난한 동네다. 부부 사이 아기가 태어났는데 ‘기찻길 옆 오막살이’ 동요에 나오는 아기처럼 순둥순둥 잘도 잔다. 공장에 다니는 남편은 기계 굉음으로 아내가 창밖에서 기다리는 것을 보지 못하고 일에 매진한다. 퇴근 후 두 사람은 단골 찻집에서 두런두런 대화를 나눈다. 삶이 순조로울 때 일상의 소리도 왕성하다. 그러나 남편의 돌연한 죽음 후 삶은 어둠과 적막이 깃들고 아기의 옹알이만 간신히 일상을 지탱한다. 남편의 부재로 ‘음소거’가 된 듯한 일상은 어항처럼 조용하다. 


몇 년 후 아내는 재혼해 바닷가 마을로 거처를 옮긴다. 머리맡까지 파도소리 밀려오는 방, 두 번째 남편은 아내를 걱정하며 말한다. 처음에는 파도 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잘 수도 있다고. 아내는 적응을 위해 노력한다. 마루 계단 닦는 소리, 파 송송 써는 소리, 개 짖는 소리, 수박 씨 뱉는 소리가 무던한 일상의 신호음처럼 들린다. 그리고, 전 남편의 기억을 불러오는 것도 유품이 된 자전거 열쇠의 방울 소리이고, 상실의 아픔을 치유하는 것도 아내가 스스로 터뜨린 처연한 울음소리다. 


삶은 얼마나 많은 소리로 영위되는가. 돌이켜보니 난 삶이 서툴 때 세상이 내는 온갖 소리와 적대했다. 첫아이 육아기에는 (기차소리는커녕) “고장난 에어컨 테레비 컴퓨터 삽니다.” 하는 무한반복 트럭 방송에 아기가 깰세라 쩔쩔맸다. 글이 안 써질 땐 놀이터의 아이들 떠드는 소리는 물론이고 집안의 TV소리, 화장실 물소리까지 신경이 곤두섰다. 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제거하고 싶은 난폭한 마음은 타자의 존재 부정이라는 과격한 상태로 치닫곤 했다. 


영화의 전개처럼 내 삶의 계절도 바뀌고 있다. 아이들이 크고 복닥거리던 집안이 조용하고 그토록 갈망하던 일상 소음의 한복판을 벗어나는 지금, 난 뒤늦게 삶이 내는 소리와 화해하고 있다. 트럭 방송을 켜놓고 운전석에서 잠든 아저씨의 하루 매출이 걱정스럽고, 공공장소에서 떠드는 아이들이 내뿜는 존재의 활기가 반갑다. 베란다를 타고 넘어오는 이웃집 부부싸움 소리가 불안했는데 요즘은 외려 조용하면 불길하다. ‘사람이 과연 살고 있을까?’ 


“노란 꽃을 주세요 넓어져 가는 소란을 위해서”(‘꽃일2’) 라고 시인 김수영은 노래했다. 세상의 삐뚤어짐과 떠들썩함을 찬미하는 시구다. 가만히 있지 않고 부딪치고 충돌하고 어수선할 때 ‘아까와는 다른 시간’을 만드는 가능성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영화 <환상의 빛>은 비탈길을 자전거로 낑낑대며 올라가는 아빠와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 넓어져가는 소란을 길게 응시하며 끝이 난다. 아까와는 다른 시간이 펼쳐질 것임을 예고한다. 


이웃집 라디오 소리를 즐겁게 받아들이듯, 때로 이유를 알 수 없는 죽음도 의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게 삶이라는 것을 일러주는 이 영화는 일상의 소란이 환상의 빛처럼 삶을 감싼다.


-방통대 학보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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