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학원에 빠지는 아이에게

[은유칼럼]

십대 아이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읽기, 더 싫어하는 건 쓰기, 더더 싫어하는 건 읽고 쓰기라는 담당교사의 얘기를 듣고, 왜 아니겠나 싶었다. 아이란 어른과의 관계에서 규정되는 존재지. 자기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어른이 드문 환경에서 아이가 자기 생각을 만들긴 어렵겠지. 한글만 떼면 매일매일 부과되는 학습량을 잠자코 해내다가 스스로 사고하고 표현하는 활동이 주어지면 얼마나 어색할까 짐작해본다. 우물에서 숭늉 만들기는 누구나 힘든 법이니까.

그래서 사실 좀 미안했어. 종이 한장 주고 30분 동안 글 쓰는 과제가 주어진다면 나는 자신 없거든. 그런데 너희는 써냈어! 어떤 녀석은 문자메시지 치듯 일분 만에 서너줄을 쓰고, 다른 아이들도 대여섯줄 쓰고 노닥거리는데, 그 어수선한 와중에도 너는 미동도 않고 지면을 메우더구나. 내용은 이랬어.

‘중3 이후 학원을 ‘땡땡이’치는 습관이 들었고 학원을 스무번도 끊었다 다녔다를 반복했다. 부모님은 혼내면서도 계속 새로운 학원을 알아봤다. 고등학생이 돼서도 학원 빠지는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고1 기말고사를 치르고 이러다가 큰일 나겠다 싶었고 대학 진학의 목표를 세웠지만 공부 습관이 안 들어서 학원에 앉아 있는 건 힘들었다. 왜인지 학원 빠지고 노는 건 꿀맛이라, 자꾸만 빠지게 됐다. 그 사실을 안 엄마에게 장문의 문자가 오면 면목 없고 나도 월 백만원이 넘는 돈이랑 쓰다 만 교재가 너무 아깝다.’

글이 하도 생생해서 나는 학원비 결제하는 엄마 입장이 되어 속이 타들어갔다가, 학원 건물 앞을 배회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떡볶이집을 향하는 아이가 되어 초조했다가 갈팡질팡 울고 싶었다. 맞아. 고백할게. 아마 길에서 학원 빠지고 피시방 다니고 담배 뻑뻑 피우는 교복 입은 학생을 봤으면 한숨부터 나왔을 거야. 근데 네 글을 읽고서 알았네. 당사자도 죄책감과 갑갑함에 옥죄는구나, 땡땡이는 의지가 아닌 습관이 하는 일이구나, 공부가 하고 싶구나, 생각이 없는 게 아니라 생각은 있지만 방도를 몰라서 그렇구나.

참 부조리한 상황이다. 한 아이가 정규교육 과정을 착실히 밟아왔어. 부모는 아침마다 아이를 깨워 밥 먹여 등교시키고 등골 휘도록 돈 벌어 등록금 대고 학원비까지 냈지. 근데 그 아이는 필요한 학습 지원을 받지 못한다니 말이야. 아이들 삶을 돌보는 정책이 아닌 오직 수능 대책이 ‘교육 정책’이 되어버린 세태를 아프게 실감한다. 내 아이만 피해 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또 뭘 어찌할지 모른다는 핑계로 나도 외면한 현실인데 네 고민을 듣고 보니 부끄럽더라.

누가 네 처지에 맞는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혹여라도 “생각 없는 놈” “글러먹은 놈” “담배 피우는 놈”이란 어른들 말이 너를 설명하는 말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길 바라. 공부에 흥미를 잃고, 학원에 빠지고, 담배에서 위로를 찾는 건 같은 원인의 다른 현상이다. 네겐 이런 면모도 있어. “자기가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고, 자신이 하는 행동이 남에게 어떤 (부정적) 영향을 주는지 적어도 파악하는 사람”이야. 자기 위치와 한계를 아는 것, 그것이 성숙의 지표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어.

네가 대학 진학의 목표를 이루든 아니든,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그날 보여준 모습처럼, 자기를 설명할 언어가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 아픔과 갈등을 표현하면 거기서부터 나은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을 거야. 그날 너희들과의 만남을 흡연 예방 교육이 아닌 서로의 삶의 건강을 돌보는 자리로 기억할게.


* 한겨레 삶의창 



지금, 여기에서 사라진 십대라는 존재

[은유칼럼]

“이번에 당선된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 이제 막 성인이 되어 마주할 사회의 모습이 달라질 테니 투표권 없는 우리들은 불안하기만 했다. 그저 어른들이 멀쩡한 사람을 뽑아주기만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때 어리숙한 권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네 또 어른들 흉내 내니? 너희들이 뉴스 볼 시간은 있니? 맨날 페이스북이나 하면서 확실한 정보도 아닌데 함부로 말하고. 쓸데없는 얘기 할 시간에 영어 단어 한 개라도 외워라.’ 과학 선생님이었다.” 

나는 나의 무지가 들통나서 여러 번 당혹스러웠다. 청소년 페미니즘 단체에서 강의를 할 때다. 십대의 화장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물었다. “학교에서 화장을 허용하나요?” 몇몇 아이들이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쑥스러워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는데 나중에 진행자가 말해주었다. 학교를 다니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고. 난 ‘탈학교 청소년’이란 개념은 알아도 내 앞에 학교에 다니지 않는 청소년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거다. 

일하는 청소년도 생소하긴 마찬가지. 십대 학인들이 노동 경험을 써온 글을 보고 바보처럼 물었다. 아르바이트하면 힘든데 왜 살이 찌냐고. 서너 명이 돌아가며 답했다. ‘손님 몰리면 밥 제때 못 먹어요. 먹을 수 있을 때 먹어야 하니까 빨리 먹어요. 빨리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를 주로 먹어요.’ 그들은 주로 편의점, 패스트푸드점, 뷔페, 카페, 호텔 등에서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일한다고 했다. 일상의 영역에 섞여 살면서도 청소년 노동자라는 존재를 나는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왜 그럴까. 

이수정 외 지음교육공동체 벗 펴냄

“흔히 청소년은 ‘지금, 여기’의 존재가 아닌 ‘미래’의 존재로 취급된다. 청소년은 아직 배움의 과정에 있는 학생이고,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예비 노동자이며, 장차 국가를 이끌어갈 시민이라는 식이다. (…) 이미 노동 현장에 진입해 일하고 있는 청소년들이 다수 있다는 사실 역시 시야에서 사라진다(204쪽).” 

청소년 노동 르포집 <십대 밑바닥 노동>에 따르면 이 같은 ‘비가시화’는 청소년 노동 문제를 덮거나 주변화하는 전략이다. 그러니까 이 나라 어른들은 청소년을 미숙한 존재, 뭘 모르는 애들, 잠자코 공부나 해야 하는 학생으로 규정하면서 노동시장에서 저임금·장시간 노동으로 신나게 부려먹고 있는 형국이다. 전태일이 십대에 그랬듯이 참다못한 그들도 작당한다. 

성숙하고 각성된 ‘투표권 없는’ 정치 주체 

“우리가 상상했던 게 있어요. 일하는 청소년들이 모여서 노동조합을 만들고, 우리끼리 시청광장을 점거하고 시위하고, 한날한시에 파업하고 그럼 멋지겠다. (…) 청소년 노동자인 우리가 이 사회 안에 같이 살고 있고, 또 우리가 일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이 이만큼 굴러가고 있다. 우리가 멈추면 너희도 멈춘다. 우리도 노동자다! 하고 외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죠(143쪽).” 

부끄러움에 고개가 숙여질수록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청소년이라고 해서 모두 교복을 입지 않으며, 수능이라는 목표를 향해 일렬로 우르르 달려가지도 않는다. 공부하는 십대가 있다면 노동하는 십대가 있고, 파업을 모의하는 십대가 있고, 투표권을 열망하는 십대가 있다. 1년 전 촛불을 가장 먼저 들었던 이들도 십대고, 세월호 노란 리본을 가장 늦게까지 달고 있는 이들도 십대다. 어른들이 ‘멀쩡한 사람’을 뽑아주길 두 손 놓고 지켜보기엔 청소년은 너무도 멀쩡한, 성숙한, 각성된 정치적 주체임을 느낀다. 늦게나마 청소년 투표권과 노동권과 인권의 보장을 위해 노력하는 멀쩡한 어른이고 싶다. 


* 시사인에 실림




은유 읽다 -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

[은유칼럼]

비닐 천막을 걷어내자 두어 평 남짓 평상이 휑하니 드러난다. 이중 삼중으로 깔려 있던 돗자리 바닥 아래 플라스틱 지지대 사이엔 여름휴가철 해변처럼 쓰레기가 나뒹군다. 스티로폼 조각, 캔 음료, 빵 비닐들, 그리고 딱딱하고 거무튀튀한 고양이 똥이 발견됐다. 

“이게 주범이었어!” 

삼성 직업병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농성장. 709일 만에 대청소를 유발한 주된 요인은 고양이(배설물)다. 농성장을 드나들던 고양이 서너 마리가 좁은 틈으로 들어가 볼일을 보는 바람에 쿰쿰한 냄새가 진동했다고. 찬바람도 불어오니 월동 준비 겸 대대적인 리모델링 계획을 세웠다. 반올림 활동가 공유정옥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대청소 공지를 보고 나는 슬그머니 출동했다. 

ⓒ시사IN 이명익

“의사란 이름을 떠난 지 5년쯤 됐어요. 그런데 인터뷰를 하면 ‘의사’에 방점이 찍혀 나가요. 그냥 전문의 자격증 따고 살고 싶은 대로 살 뿐인데….” 

7년 전 인터뷰이로 만난 공유정옥씨가 말했다. 살고 싶은 삶을 이어가던 그는 요즘엔 반상근 활동가로 일하며 직장에 나간다. 얼마 전 공저로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이란 책을 냈다. 13명의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와 연구원이 쓴 ‘일하다가 죽는 사회에 맞서는 직업병 추적기’다. 진즉에 사둔 책을 강남역 가는 버스에서 폈다.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가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나서지 않았다면, 산재 신청을 포기하면 10억원을 주겠다는 삼성의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버텨서 7년 만에 공식 산재 인정을 받아내지 못했다면, 우린 지금까지도 반도체 및 첨단 전자산업의 위험에 대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178쪽).” 

농성장에 도착하니 책 속의 황상기씨가 예의 염화미소를 머금은 채 묵은 짐을 바삐 나른다. 그 옆엔 또 다른 ‘유미’, 한혜경씨가 있다. 열아홉 나이에 삼성전자 LCD사업부에 들어가 일한 지 3년 만에 월경이 완전히 멈췄고 뇌종양이 발병했다. “설마 삼성처럼 큰 회사가 몸에 해로운 일을 그냥 시키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177쪽)”던 그녀는 지금 휠체어에 앉아 있고, 어머니 김시녀씨는 두 팔 걷어붙이고 현장을 지휘한다. 

“유미 아빠, 이건 버립시다.” “김 반장이 버리라면 버려야 돼! 하하.” 삼성에서 일하다가 죽거나 골병든 자식을 둔 부모들, 무심하고 일상적인 저 말들이 정겹고 아프다. 마스크를 쓰시라고 해도 답답하다며 맨몸으로 먼지 구덩이 속을 누비는 것까지 닮았다. 저토록 성실함으로 나날을 통과해 이른 곳이 맨바닥, 남의 목숨과 고통을 연료로 몸집을 불려나가다 괴물처럼 비대해져버린 저들의 목전이다. 

나는 세간 정리를 맡았다. 농성장 둘레 선반에 쌓아두었던 냄비며 접시, 일회용 커피, 공구세트, 문구용품, 스탠드, 화분 등을 꺼내 먼지를 닦고 있었는데 저쪽에서 한 젊은 남자가 성급한 걸음걸이로 다가와 말을 건다. 

기업은 꿈쩍 않지만 사람은 흔들린다

“이제 끝났습니까? 잘 해결된 건가요?” 그건 아니고 대청소 중이라고 말했더니 낙담한다. 출근할 때마다 버스 타고 농성장 앞을 매일 지나간다고 했다. 차창 밖으로 농성장이 해체된 걸 보고는 반가운 마음에 목적지도 아닌데 내려서 일부러 찾아왔다며 머뭇거리다가 발걸음을 돌렸다. 

기업은 꿈쩍 않지만 사람은 흔들린다. 공유정옥씨가 어느 노동자의 죽음에 흔들렸듯이 노동자의 질병을 직업병으로, 즉 “인간 노동력의 결함이 아닌 노동과 자본-기계와의 결합 관계의 문제(328쪽)”로 밝혀낸 여러 의사가 있고, 공장 안의 위험한 비밀을 굴뚝 바깥으로 나와서 알리는 노동자들이 있고, 또 타인의 죽음에 눈길을 거두지 않다가 다급하게 안부를 묻는, 흔들리는 눈동자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이 가을날 더 많은 것들이 흔들리길. 그 흔들림의 결합만이 이 농성장의 소멸을 가능케 하리라. 인정 없는 노동의 풍경을 바꿔내리라. 

은유 (작가) webmaster@sisain.co.kr

울더라도 정확하게 말하는 것

[은유칼럼]

“남자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우리 남자들도 알고 보면 돈 버느라 불쌍하거든요.”

 

강연을 마치고 질문 시간에 손을 든 중년 남성이 말했다. 난 강연 내용을 재빨리 복기해보았다. 남자를 밉다고 했나? 그렇지 않다.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으로서 겪는 곤란과 불편, 내가 만난 여성들이 당한 폭력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했을 뿐이다. 굳이 따지자면 남자보다 여자의 불쌍함을 이야기를 한 셈이다. 그것을 두고 남자에 대한 미움, 투정, 원망으로 받아들이고 그는 동정과 배려를 당부했다.

 

당황한 나머지 난 말을 얼버무렸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뒤늦게 답변 시나리오를 짜보았다. “제가 남자를 미워한다는 느낌은 어떤 대목에서 받으셨어요? 전 여성의 삶을 이야기했거든요. 선생님이 여성이 겪는 아픔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질문(의견)을 질문으로 되묻는 방법. 이 정도가 가장 무난한 대응책이라고 결론지었다. 

 

동시에 이상한 열패감이 들었다. 무작위로 날아드는 어떤 말에도 최대한 공손하고 정확하게 답변하려고 일종의 ‘말하기 연습’에 몰두하는 모습은 얼마나 처량한지. 이는 괴팍함, 무뚝뚝함, 거침없음이 남성다움의 전유물로 여겨지듯이 친절함, 보살핌, 포용성을 여성다움의 책무로 익혀온 강박일지도 모른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말하기는 늘 미끄러진다. 부정, 무시, 왜곡당한다.

 

글쓰기 수업에서 페미니즘 관련 책을 읽고 토론할 때 벌어지는 풍경이 있다. 함께 읽은 책의 내용에 공감한 여성 학인들은 자기 이야기를 쏟아낸다. 살면서 억울했던 일, 분했던 일, 기가 막혔던 일... 그러면 남자 학인들의 표정은 조용히 어두워진다. 급기야 “나는 집에서 설거지도 잘하는데 왜 그러느냐” 항변하기도 한다. 그러면 말길이 끊긴다. 분노하는 여성은 우습지만 분노하는 남성은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그냥’ 말한다. 말할 수 있을 때 말한다. 책의 서사에 자극받아 억압되어 있던 자기 얘기를 꺼낸다. 너도 그랬니, 나도 그랬어, 말의 봇물이 터지고 경험의 파도가 쉴 새 없이 밀려오는 것뿐이다. 여성의 공적 말하기 기회가 드물기에 여성의 말하기를 듣는 기회도 없다면, ‘그냥’ 듣고 있는 게 남성으로선 어렵고 어색한 일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평생의 억울함을 터놓는데 잠시의 억울함을 견디지 못하고 끼어드는 말은 제 스스로 힘을 잃는다. 

 

한 지역에서 폭력과 존엄을 화두로 강의를 했을 때다. 관객 중 가장 연장자인 남성이 가장 먼저 손을 들고 소감을 말했다. “작가님은 살면서 폭력을 당한 적이 많나 봐요?” “폭력을 많이 당한 거 같아서요.” 어순을 바꿔가며 반복했다. 그날 강의의 줄거리는 내가 직간접으로 경험한 폭력의 서사였다. 간첩조작사건피해자 인터뷰집 『폭력과 존엄 사이』를 쓰면서 알게 된 국가폭력, 가정폭력과 성폭력 피해자와 글쓰기 수업을 하며 발견한 일상의 폭력, 평소 무심히 사용하는 편견과 차별의 언어 폭력 등등.

 

그건 누구나 예기치 않은 폭력에 노출될 수 있음을 알리는 보고문이면서, 타인의 고통에 무지하고 무심했던 데 대한 반성문이기도 하고, 폭력을 어떻게 줄여나갈지 같이 모색하자고 촉구하는 선언문이기도 한, 아프고도 조심스러운 말들이었다.

 

질문자의 기습적인 발언은 나를 향하는 듯했지만, 막상 나란 사람이 얼마나 많은 폭력에 노출되었는가는 중요치 않았다. 그는 말을 이었다. 결혼한 지 30년이 넘었고 이제는 집안일에 솔선하고 아내를 위한다며 자신의 눈을 빼서 주어도 아깝지 않고 목숨도 바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세상에는 폭력을 휘두르는 (악마 같은) 남자만 있는 게 아니라 몸을 던져 희생하고 노력하는 (천사 같은) 남자도 있다는 걸 말하고 싶은 듯했다. 

 

이 낯설고 익숙한 상황, 이야기의 전후 맥락을 살피기보다 자신을 불쑥 내세우는 남성성의 노출에 난 또 찔렸다. 이번엔 정신을 집중해 말했다. 내 몸을 통과한 폭력의 기억에 대한 가치 폄훼를 바로 잡아야 했다. 당신의 발언은 내가 폭력의 당사자여도 문제, 아니어도 문제다. 용기 내어 자기 아픔을 터놓고 그 아픔에 같이 아파하고 감응한 사람들에 대한 결례이자 업신여김이다. 폭력의 피해를 개인의 박복과 불운으로 취급하는 것, 수치심을 심어주어 침묵을 강요하고 사적인 문제로 돌리는 관습이 얼마나 많은 폭력을 양산하고 방치하는지가 오늘 강의 주제라고 정리해주었다.

 

물론 냉정하고 초연하지 못했다. 맥없이 터진 눈물을 꾹꾹 누르며 말했고 그는 주저 없이 사과했다. 자신이 강의 중간에 들어와서 앞의 이야기를 못 들었고 인문학을 배운 지 얼마 안 돼서 잘 몰라서 그렇다는 말도 덧붙였다. 선량한 눈매를 가진 그의 사과를 의심하진 않지만 그럴수록 그의 언행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강의 내용 파악이 어렵고 공부가 부족하다고 여기면서도 스스로 말하도록 허락했고 기어코 한 수 가르치려 들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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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 걸 묻죠?”라고 재깍 되물을 줄 아는 사람

 

“내가 나에 대해서, 그리고 일에만 몰두하는 매정한 남자와 결혼하여 네 아이를 낳고 살면서 분노와 비참함으로 자주 속을 끓였던 어머니에 대해서 이야기한 책을 쓴 뒤였다. 웬 인터뷰어가 혹시 내가 인생의 짝을 찾지 못한 건 학대하는 아버지를 둔 탓이었느냐고 기습적으로 물었다. 그 질문은 내가 인생에서 하고자 했던 일이 무엇인지를 제멋대로 가정하고 어이없게도 그 인생에 끼어들 권리를 주장하는 질문이었다.”(23쪽)

 

리베카 솔닛은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에서 자신의 경험을 고백한다. 한 여성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를 학대하는 아버지를 둔 탓으로 단정하는 저 장면은, 한국사회의 장대한 폭력에 관한 서사를 한 여성의 트라우마로 간단히 환원해버리는 목소리와 겹친다.

 

‘남자도 돈 버느라 힘들다.’ ‘남자도 설거지 한다.’ ‘남자는 여자를 위해 목숨도 던질 수 있다.’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구구절절한 말하기는 (여성이 그렇다는 걸 알았다가 아니라) 남자는 이렇다는 걸 알아달라는 한 줄 요약으로 돌아오곤 한다. 이런 반복적인 상황이 나의 역량이나 경험 부족 탓이 아닐까 자책했으나 솔닛의 사례와 연결되자 보편적 젠더 현상으로 확장된다.

 

“남자들은 감정이입의 범위를 넓혀서 다른 젠더와 자신을 동일시해보라는 요구를 받지 않는다. 백인은 유색인종과는 달리 다른 인종에 동일시해보라는 요구를 받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지배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은 곧 자신만을 볼 뿐 남들은 보지 않는 것이다.”(89쪽)

 

태어나면서부터 여성은 침묵하는 법을 익히고 남성은 감정을 도려내는 법을 배운다. 그렇게 가부장제는 인간 본성을 왜곡시키고 그 하자와 결함을 체화한 젠더 역할 수행을 윤활유 삼아 굴러간다. 말하기를 익히지 못한 여성이 공감을 배우지 못한 남성과 동료시민으로 살아가자니 여기저기서 삐걱거리고 맞추어 살자니 공부가 끝이 없다. 
 
난 강연 중 눈물바람이 세 번째다. 두 번은 말하다가 혼자 울컥했다. 더 울어야 할 것이다. 내 나약함을 혐오하지 않기 위해 목표를 바꾼다. 울지 않고 말하는 게 아니라 울더라도 정확하게 말하는 것. “내 내면에 대한 권한을 스스로 가짐으로써 다가오는 침입자에 맞서서 훌륭한 문지기가 되는 것, 최소한 “왜 그런 걸 묻죠?”라고 재깍 되물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19쪽)


- 채널예스에 실림


닉네임이 더치페이를 만났을 때

[은유칼럼]

나이 들면 입은 다물고 지갑은 열어라, 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가 십 년 전이다. 모름지기 저것이 올바른 노년의 처세라며 탄복했었다. 심상하게 나 자신을 얻어먹는 위치에 두었거나 태평하게 젖과 꿀이 흐르는 중년 이후를 자신했던 거 같다. 실상은, 위계 구조에 속한 직장인이 아닌 프리랜서로 근근이 살다보니 나 혼자 입도 열고 지갑도 열며 나이 들고 있다.


간헐적으로 글쓰기 수업에서 사회생활을 경험한다. 10대부터 60대까지 나이, 직업, 성별, 주머니 사정이 제각각인 소규모 만민공동회 같은 구성체인데, 유급 노동자로서 상호 이해가 얽혀 있지 않아서 동등한 관계 맺음이 가능한 편이다. 그래도 사람 모인 곳이라면 어디서나 권력을 작동하게 하는 두 가지를 피해갈 수 없으니 바로 호칭과 돈이다.


호칭은 닉네임을 ‘님’자 빼고 부르자고 권한다. 한번은 어느 학인이 “은유 글에서도 착한 딸 역할을 강요하는 부분이 보여요”라고 비판했다. 정말 그런가? 난 내 글을 남 글인 양 은유 글로 재차 검토했다. “선생님 글에서도(…)”라고 하는 것보단 확실히 메시지가 명료하게 전달되는 걸 느낀다. 닉네임은 존칭에 따른 감정 소모를 줄이고 말의 내용과 맥락에 집중하게 하며, 통상 연장자 순으로 배정되는 말의 점유를 막아주었다.


돈 문제는 더치페이로 탈권위주의를 도모한다. 애초엔 소득과 고용 형태에 비례해 차등 적용했다. 과제 미제출이나 지각 시 벌금을 정규직 1만원, 비정규직 5천원, 무직 3천원으로. 근데 이게 또 서열이 돼버렸고 본의 아니게 정규직에게 가부장의 짐을 지웠다. 어차피 과제 안 하고 지각하면 그 자체가 형벌이기에 이중처벌 금지에 따라 벌금을 없앴다. 뒤풀이를 하면 인원수대로 나누어 낸다. 억대 연봉자도 시급 알바생도 강사도 공평하게. 원칙은 이렇게 정하고 지역에서 올라와 교통비가 많이 드는 이나 보릿고개를 넘는 이 등 속사정을 아는 한도에서 눈치껏 배려했다.


나는 닉네임 쓰기보다 더치페이 하기가 더 어려웠다. 세월이 나를 연장자 축에 데려다놓았고 지갑은 채워주지 않았지만, 왠지 팍팍 열어야 할 것 같아 손이 움찔거렸다. 그러는 나를 ‘고리타분하게 왜 이러느냐’며 젊은 친구들과 유학파 출신들이 말렸다. 나의 지갑 열기 충동을 되돌아보았다. 돈을 통한 지배 의지인가, 배제에 대한 불안인가, 내리사랑의 선의인가. 가(식)없는 증여를 위해선 해처럼 넘치는 자가 되어 베풀어도 가진 것의 총량이 줄지 않아야 하는데 그 조건에 난 미달했다.


아무튼 자기 처지가 어려워 남의 형편도 헤아리는 ‘요즘 젊은이들’ 덕분에 ‘쿨하고 힙하게’ 관계 맺는 법, 지갑을 열어야 할 때와 닫아야 할 때를 분간하는 법을 배운다. 권위주의 타파하고 상호 평등 이룩하자, 구호뿐이던 일상에 닉네임과 더치페이 실천으로 틈이 생기고 섬세한 시야가 열렸다. 계급장 뗀 그 사람의 안색, 형편, 고민을 보게 됐다. 아울러 나이, 지위, 재력 등 외적 조건을 우선시하는 권위적인 사람일수록 타인에 대한 고통 감수성이 부족한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얼마 전, 세 시간 거리에서 통학했던 한 학인에게 문자가 왔다. “우리 회식할 때 저한테 멀리서 왔다고 회비 아껴두라고 말해줬었는데 그게 고마운 밤이네요. 오늘 우리 글 모임 회식하는데 서울에서 온 친구에게 회비 내지 말라고 말하려고요.” 사람을 변화시키는 건 계몽이 아니라 전염이라는 걸 상기한 덩달아 고마운 밤이었다. 호칭의 간소화와 지출의 민주화가 노년 초년 할 것 없이 생활 양식으로 자리 잡는다면 괜한 체면의 무게로 뒤뚱거리는 삶이 좀 더 가벼워질 것 같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14441.html?_fr=mt5#csidx336aa9fad962f2897ae8b0b08996567 



은유 읽다 - 그의 시대와 나의 시대는 달랐다

[은유칼럼]

용산전쟁기념관에서 공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망설였다. 내게 용산역은 ‘용산참사역’이고 불에 탄 남일당 건물에 유가족이 사는 그 일대는 망자들이 떠도는 슬픈 무덤이다. 그렇다고 공연을 안 가기도 이상했다. 뭐 내가 나라 걱정에 단식투쟁 하는 투사도 아니고, 살던 집에서 먹던 밥 먹고 하던 일 하는 범속한 나날을 살다가 가끔 집회에 나가는 소시민 주제에 공연도 자중하고 금욕하기란 민망한 것이다. 그래서 갔다. 

 
그와 밴드 멤버들이 날렵한 검은 정장을 맞춰 입고 무대에 올랐다. 속으로 기뻤다.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5개월,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 지 한 달 됐으니 저건 애도의 복장일지도 모른다고 내 뜻대로 해석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비틀스’ 코스프레였다. 몸은 공연장에 있고 마음은 남일당으로 기우는데, 공연이 절정으로 치달을 즈음 오색찬란한 폭죽이 터지기 시작했다. 펑! 펑! 펑! 까만 밤을 수놓는 불꽃쇼는 영원처럼 길었다.


ⓒ서태지컴퍼니 제공

“여름밤의 폭죽을 봐/ 울음이 결국 우주의 먼지가 되는 것을(26쪽).”


내 마음은 멍울졌다. 폭죽 양만큼 속울음이 터졌다. 공연 시작 전에 묵념이라도 했으면 좀 좋아. 아마 용산에서 무슨 행사한다고 저토록 많은 폭죽을 쏘았으면 그 단체를 생각 없다고 욕했겠지. <시대유감>이라는 노래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불렀을까…. 그가 사는 시대와 내가 사는 시대가 같지 않으며 나의 유감이 그의 유감이 될 수 없음을 그날 나는 깨달았다. 그리고 이혼과 결혼으로 평창동 대저택에 은거한 뮤지션의 음악은 내 사십 대의 BGM(배경음악)이 되지 못했다.

서태지 데뷔 25주년 콘서트가 열린다고 했다. 같이 ‘팬질’하던 친구에게 공연 전전날 연락이 왔다. 스탠딩 앞 번호에 ‘1+1’로 산 반값 표가 한 장 남았는데 가지 않을래? 살림하는 아줌마 본능인지 희미한 옛사랑의 추억인지 솔깃했다. 어떤 결정에서 8만원이 그렇게 중요한 적이 없었는데, 16만원 들여서까지 가고 싶진 않지만 8만원이라면 한번 가볼까 싶기도 했다. 시든 사랑은 식은 죽만큼이나 시시하다. 아무튼 갔다. 헤어진 애인의 결혼식 가는 심정으로.

<그래, 사랑이 하고 싶으시다고?>
박세미 외 지음
제철소 펴냄

정확히 8년 만의 조우다. 그는 서태지와 ‘아들들’이라고 너스레를 떨며 방탄소년단 멤버와 그 시절을 완벽하게 재현했다(아래 사진). 장기간 비활성화됐던 내 ‘덕력’도 살아났다. 친구와의 첫 곡 맞히기 내기에서 내가 이겼고, 기타 음 한 소절만으로도 곡명을 읊었다. 베이스, 기타, 키보드, 드럼, 보컬까지 겹겹의 사운드에 휩싸이자 온 세상이 내 것 같았다. “즐거웠던 시간만을 기억해줄래”란 노랫말을 흥얼거리고 ‘그럴게’ 약속하며 공연장을 빠져나왔다.

“아름다웠지// 말할 때는 시제가 슬프게 느껴졌다(110쪽).”

뮤지션의 사회적 구실을 생각한다. 학생은 공부만 하라는 말처럼 뮤지션은 음악만 하라는 요구는 꽤나 정치적이다. 예술과 정치, 아이와 어른, 공과 사, 무대와 일상 등을 나누는 분리 기획은 권력자에게 유리하고 약자들이 고립된다는 면에서 위험하다. 직업·나이·성별에 무관하게 저마다 자기 자리에서 목소리를 낸다면 세상이 좀 더 좋아지리라는 믿음이 내겐 있다. 

저마다 자기 자리에서 목소리를 낸다면…

2009년, 시대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피폐했고 지쳐 있던 난 그에게 온갖 이상을 부과했다. 있는 그대로 음악에 감응하지 못하고 자기의 풀리지 않은 문제와 욕망을 남에게 투사했고 충족되지 않자 돌아앉았다. 지금은 반성한다. 한 사람에게 시민의 책무를 기대할 순 있으나 그 실천의 속도와 방법까지 나와 같기를 바란 건 편협했고 무례했다. 

이번 공연에서야 본다. 동시대 ‘문화 대통령’이 아닌 국내 상위 계층의 재력가이자 탁월한 기획력과 실력을 갖춘 영리한 뮤지션으로 그가 무대에 있고, 8만원 절약에 기뻐하는 장기 채무자이자 불안정 노동자이고 록 마니아로서 내가 콩나물시루 같은 곳에 끼어 있다. 이게 팩트다. 나의 ‘음악 자아’를 활성화해주러 온 내 인생의 중요한 타인, 그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사람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의 이불을 덮고 죽는다(56쪽)”라고 하니 목 끝까지 덮을 이불 한 채 개키는 심정으로 한 시절 추억을 접는다.


- 시사인 <은유 읽다>



다정한 얼굴을 완성하는 법

[은유칼럼]

우리가 배워야 하는 건 어머니의 고통이어야 했다

 

몇 해 전 추석을 앞두고 외숙모에게 전화가 왔다. 나이 들어 몸이 여기저기 아프고 음식 장만이 힘들다며 추석은 쉬고 설날에만 오면 어떻겠냐고 주저주저 운을 뗐다. 그간 매년 명절에 아버지를 모시고 외가에 갔었고 숙모는 20인분 가량 친지의 식사를 준비하곤 했다. 특히 엄마가 돌아가신 후엔 우리 가족을 각별히 챙겼다. 명절상에 특별요리를 더한 상차림이 예순을 넘긴 숙모에겐 고단한 노동이었을 텐데 미리 헤아려드리지 못해 너무도 죄송했다.

 

아버지에게 외숙모의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숟가락 몇 개 놓는 건데”라며 표정이 어두워진다. 물론 한 끼 밥을 못 먹어 그러시는 게 아닐 것이다. 친지와의 왕래가 줄어드는 명절에 대한 서운함과 사위어가는 인연에 대한 쓸쓸함을 느끼시는 것 같다. 그래도 가족의 화합을 위해 여자의 희생이 당연시되는 건 문제다. 나는 대식구 밥 차리는 게 간단하지 않다고, 장을 보고 저장하고 재료를 다듬고 썰고 데치고 조리해 차려내는 일이 중노동이라고, 나도 싱크대에 서는 게 힘든데 숙모는 오죽하시겠냐고, 쉬게 해드려야 한다고 차근차근 설명했다.

 

누구라도 그러하듯, 아버지가 지금까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갑자기 이해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해되지 않는 말들이 차곡차곡 쌓이다보면 어떤 계기에 인식의 다른 지평이 열리기도 한다는 걸 믿기에 최대한 말씀을 드렸다.

 

우리가 배워야 하는 건 어머니의 은혜가 아니라 어머니의 고통이어야 했다. ‘평생 밥 당번’으로 사느라 뼈가 녹는 고충을 당사자들은 제대로 말하지 않았고, 구구절절 말하지 않는 고통을 남들이 먼저 알아주는 법은 없다. 하지만 그 고통을 알아보는 능력이 부족하면 나쁜 어른으로 오래 늙는다. 살면서 제대로 배운 적 없지만 살면서 너무도 필요한 일이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기’라는 걸 절감하는 나날에, 참고서 같은 책이 내게로 왔다.

 

“어린 나는 엄마에게도 무슨 사정이 있겠지 생각할 수 없었고, 엄마의 내부에서도 무너지고 있는 게 있을 거라고 마음 쓸 수 없었다. (…) 꼬박꼬박 월급을 가져다주는 건실한 남편과 크게 속 썩이지 않는 아들딸을 두고도 그럴 수 있다. 그런 걸 이제 나는 안다. 나는 엄마의 삶을 이해하려고, 배웠다. 배운 사람은 그런 걸 이해하려는 사람이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을.”(13쪽)

 

시인 김현이 쓴 『걱정 말고 다녀와』라는 산문집이다. “엄마가 술에 취해 내게 전화하지 않으면 좋겠다”라고 시작하는 이 책은 술에 취한 (아빠가 아니라) 엄마라는 낯선 존재를 드러내 밝힌다. 엄마가 되어본 것처럼, 저자는 다른 존재가 가까스로 되어본다. 애인의 입장이 되어보고, 그날 보았던 한 남자의 입장이 되어보고, 카페를 환하게 밝히는 어린 연인들의 입장이 되어보고, 오래된 수습사원이 되어본다. 그리고 퀴어퍼레이드에 와서 북치고 고함치며 남의 축제를 방해하는 혐오세력의 입장이 되어본다.

 

“아마도 스스로를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며 ‘비정상적인’ 사람들을 비난하기 위해 광장으로 나왔던 사람도 지친 몸으로 애인을 향해 갔을 것이다. 그는 애인과 뽀뽀했을까. 나는 그 사람이 어떤 얼굴로 애인의 얼굴을 마주 보고 그날 자신이 보낸 ‘혐오의 하루’를 말할지 짐작할 수 있었다. ‘뽀뽀하기 위한 하루의 얼굴’을 어디 감히 그런 얼굴 따위가 이길 수 있으랴. 나는 뽀뽀하는 사람으로서 모든 혐오와 차별에 반대한다.”(42쪽)

 

자신을 뽀뽀하는 사람으로 정체화하고 혐오세력의 뽀뽀 불가능성을 예측하는 장면은 통쾌하고, 글을 마무리하며 켄 로치 영화 〈다정한 입맞춤〉을 인용하는 대목은 진실의 무게로 묵직하다. 이렇게 김현은 쓴다. 가만히 응시하고 넌지시 되어보는 이야기를 풀어놓다가 켄 로치 영화를 막판에 무심하게 곁들이는데, 그것이 퍼즐의 마지막 한 조각처럼 절묘하게 본문과 들어맞는다. 그러고 보니 이 책의 부제가 ‘켄 로치에게’다.

 

“그의 영화는 보는 이에게 요청한다. ‘그들의 애인이, 그들의 가족이, 그들의 친구가, 그들의 동료가 되어 보십시오. 그러니까 그들이 되어보세요.’ 이때의 되어보기는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라는 가상체험이면서 동시에 나는 과연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가를 되돌아보는 현실 체험이다.”(1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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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레쉬


다정함을 아는 얼굴로 스스로를 완성해


『걱정 말고 다녀와』를 완독한 그날 오후, 나는 재킷 소매 기장을 줄이러 수선집에 갔다. 복도를 막아 만든 그 좁은 공간에 60대쯤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세 분이 나란히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데 밥을 안 해줄 수도 없고, 나이 먹으니까 밥하기가 너무너무 싫잖아.” 
“맞아, 어디 가도 밥 때만 되면 맘이 안 편해. 근데 요즘 애들이 결혼을 어디 일찍 하냐고.”
“왜들 결혼은 안 해? 큰일이야 큰일.”

 

듣자하니 주제는 비혼의 과년한 자식과 같이 사는 일의 괴로움에 관한 것이었다. 달달한 믹스 커피가 든 종이컵을 촛불처럼 두 손으로 감싸 쥔 그녀들의 표정은 밥과 돌봄으로부터의 해방을 염원하는 듯 절절했다. 주섬주섬 옷을 챙기는 내 귀는 점점 쫑긋해졌다. 한마디 한마디가 우리 외숙모 같고 저자의 엄마 같고 미래의 내 모습 같아서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필 책을 읽고 났는데 이런 장면을 목도했네 싶었지만, 엄마들의 저런 한탄과 하소연은 주변에 늘 흘러다녔다. ‘남의 입장이 되어봄’에 관한 책을 마침 읽었기에 내게 생생히 들린 것뿐일 거다.

 

켄 로치의 ‘되어 보기의 망토’가 공용화되는 세상을 상상했다. 밥 먹는 사람이 밥하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기. 이때의 밥하기는 여유 있게 놀다가 모처럼 하는 일회성 노동이 아니라 수십 년간 삼시세끼 노동량이 누적된 상태에서 중단 없이 이어지는 반복성 노동이며, “견딜 수 없는 기분과 나락으로 떨어진 것 같은 감정이 때때로 찾아왔”(13쪽)을 때에도 몸을 일으켜 차려야 하는 모진 노역이다. 숟가락 하나 더 놓기 위해서는 한 사람의 자리를 마련하고 입맛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일이다. 이런 찬찬하고 총체적인 되어보기가 어떻게 가능할까.

 

“켄 로치의 재현은 많은 경우 본 것을 다시 보라고 요청한다”(36쪽)고 김현은 전한다. 엄마에게서 엄마를 지우고 한 인간으로 다시 보고, “가장 빨리 미화되고 가장 느리게 진상이 밝혀지는 가족에의 환상”(103쪽)을 차분하게 마주하라는 충고다. 무구한 밥에 얽힌 그 잔인을 깨우치는 과정을 통해서만 우리는 “다정함을 아는 얼굴로 스스로를 완성해”(42쪽)갈 수 있으리라. 

 

다가오는 명절을 맞아 아마 넋두리 2탄을 풀어놓고 있을 수선집 아주머니들에게 나는 김현의 다정을 흉내 내어 말해주고 싶다. “걱정 말고 다녀와.” 그리고 후렴구처럼 켄 로치의 명언도 붙여야겠지. “우리는 무엇이든지 가능하고,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며 필요하다고 외쳐야 합니다.”(50쪽)


* 채널예스에 실림



이 여중생들을 보라

[은유칼럼]

매 맞지 않고 성폭력 당하지 않고 사는 게 꿈이라고 말하는 십대 여자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슬픔에 잠이 깰 때마다 새벽녘 시를 썼다. ‘언제나 곁에 있을 것처럼/ 그렇게 때렸으면서// 당신은 뭐가 그렇게 급했기에/ 이토록 빨리 나를 내려두고//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멀리멀리 가버렸나요.’ 이 3연짜리 시의 제목은 ‘가족’이다. 나를 죽인 건 당신들인데 왜 난 당신들을 그리워하고 있나요, 라며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에 관한 시를 쓰고 ‘무서운 나의 집’이라는 글도 남겼다.

내 몸엔 보라, 파랑, 빨간색 멍이 얼룩덜룩 있었고 전신거울로 그걸 보고 있자면 웃음이 나왔다고, 여름에도 긴팔에 긴바지를 입었으며 친구들 입는 핫팬츠를 못 입고 멋을 내지 못해 억울하다고 그 옆의 여자아이는 썼다. 한 사람의 몸에 가해지는 폭력과 상처, 아니 피와 멍의 양과 부피를 가늠할 수 없었던 나는, 눈앞에서 자꾸만 물방울처럼 흩어지는 글자들을 문장으로 모아서 읽느라 종이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어떻게 얼마나 언제까지 아팠을지 알 수 없어 입을 열지 못했다.

부산 여중생 폭력 사건의 사진을 봤을 때, 그 얼굴들이 겹쳐 보였다. 가정폭력과 성폭력 피해를 당한 여자아이들. 중학생 때부터 시작되는 몸의 수난들. 그들이 쓴 증언의 단서들로 서투르게 그려보았던 참혹한 장면들. 제아무리 상상력과 공감력을 동원해도 문장을 따라가지 못하는 완강한 현실들. 부산 여중생은 또래 집단에 의해 일어난 학교 밖 폭력이고, 내가 만난 아이들은 부모에게 당한 가정 내 폭력이지만 공권력이 작동하지 못하는 사적 공간에서 자행되는 폭력이라는 점에선 다르지 않다.

저 지경으로 맞는 여중생이 저게 다가 아니다. 부산을 기점으로 강릉, 대전 등 전국으로 산불처럼 번지는 여중생 폭력 사건의 경쟁적 보도와 네티즌의 공분 기류에 편승해 일러바치고 싶다. 당신의 옆집에서 아침이면 말짱하게 양복 입고 출근하는 아빠에게 맞는 그 또래 아이들이 있다고. 남이 아닌 혈육이라 피해 사실을 드러내지 못하는 사정을 이용해 폭력을 저지르는 어른 가해자는 어떻게 색출하고 처벌하면 좋겠는지 조언을 구하고 싶다.

여중생 가해자가 저지른 ‘조폭 수준’의 잔혹함은 놀랍다. 그러나 대학, 군대, 직장, 집 등을 무대로 어른들이 펼치는 은밀하고 무자비한 조폭 수준의 폭력 사건, 그 연장선에서 보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런 현실에서 가해 여중생을 감옥에 영구 격리 시키자는 엄벌주의가 어떤 효과가 있을까.

청소년을 봐주면 안 되는 게 아니라 폭력을 봐주면 안 된다. 폭력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무시로 일어나는 폭력의 총량을 인식하는 게 우선이다. 사적 공간에서 겪은 폭력을 공적 장에서 떠들고 각각의 폭력 경험을 연결해야 한다. 부산 여중생 피해자가 있기 전에, 이미지의 스펙터클로 전시되지 않았다 뿐,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력 사건 피해자도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저 나이에 난 얼마나 맞고 살았는데…, 부러워요.” 몸의 피멍을 시어로 빼내는 저 아이는 피해여성 쉼터에 있는 여중생을 보며 집에서 좀 더 일찍 탈출하지 못한 제 처지를 통탄했다.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은 자’로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한 가지를 실천하고 있다. 교사들을 만날 때마다 아이들 안색과 몸을 잘 살펴달라고, 가정폭력·성폭력 당하는 아이들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기관을 연계해주라고 신신당부한다. 피해자의 몸-말에 집중할 때 그나마 가해자의 악을 최소화할 수 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10269.html?_fr=mt5#csidx36dc693d9b777feba3e3634fd13c465 

내 아이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은유칼럼]

‘아이의 말을 중간에 끊지 마세요.’ ‘따뜻한 눈길로 바라봐주세요.’ ‘아이가 화낸다고 같이 화내지 마세요.’ 어느 건물 승강기에 탔더니 ‘좋은 부모 10계명’이 붙어 있다.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의 말이다. 그걸 보며 쓴웃음이 나왔다. 부모가 저렇게 하려면 적어도 초과 노동이나 타인의 무례와 간섭에 시달리는 임금노동자는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관대함은 탄수화물에서 나온다’는 말은 진리다. 좋은 부모 노릇은 10계명이 아니라 등 따습고 부른 배, 심리적 평안에서 비롯된다. 세상에 그냥 부모는 없다. 건물주 부모, 그 건물을 청소하는 비정규직 부모, 만사가 귀찮은 갱년기 부모, 자기 삶에 만족하지 못해 화가 난 젊은 부모가 있을 뿐.

ⓒAP Photo
1999년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격 사건으로 희생된 이들의 묘.

(있는 줄도 몰랐던) 내 안의 ‘미친년’을 애 키우다가 만난다고, 엄마들이 모여 자조적으로 얘기한 적이 있다. 나도 그랬다. 퇴근 후 집이 어질러져 있거나 아이가 보채면 부아가 치밀었다. 온종일 누적된 짜증과 피곤이 다 어디로 가겠나. 눈앞에 있는 만만한, 나보다 약자인 아이에게 쏟아졌다. 그러곤 아이를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지 못한 죄의식에 시달렸다. 그 슬픈 반복을 단절하고자 내가 택한 건 마음 다잡기가 아니라 노동시간 단축이다. 일을 줄이고 반찬가게를 활용했다. 그제야 ‘아이가 화낸다고 같이 화내지’ 않을 수 있었다.


아이를 버릇없이 키우지 말라는 양육법 같은 것은 이미 그렇게 사는 사람에게만 효과가 있다. 좋은 엄마는 고사하고 불량 엄마를 면하고 싶은 내게 도움을 준 유일한 육아서가 있다. 수 클리볼드의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지음
홍한별 옮김
반비 펴냄

이 책은 1999년 미국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총격 사건을 벌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해자 딜런의 엄마가 쓴 자기 진술서다. 저자의 직업은 장애인 학교의 교사. 자기 아이들에게 늘 약자에 대한 관심, 관용과 포용을 강조했다고 한다. 딜런은 학대와 방치를 당한 게 아니라 소위 ‘정상 가정’의 ‘좋은 부모’ 밑에서 자랐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알 수 없는 것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데에 바친 16년의 기록을 공개한다.

아이를 어떻게 키우라는 식의 답은 없다. “내가 알고 신경 쓰고 소중히 여기는 것들은 모두 아이들에게 쏟아부었다. (…) 설교하는 대신 귀를 더 많이 기울였더라면 좋았을 것이다(419쪽)”와 같은 회한만 간간이 새어나온다. 그런데 저자에게는 또 다른 아들(딜런의 형)이 있다. 같은 부모, 같은 환경에서도 아이들은 다르게 큰다. 나쁜 영향이든 좋은 영향이든 부모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다. 이 책의 미덕은 좋은 엄마가 되는 법이 아니라 좋은 엄마라고 착각하거나 방심하지 않는 법을 일깨운다는 점이다.

같은 부모, 같은 환경에서도 다르게 크는 아이


한국에서도 인천 초등생 살해 사건이라는 끔찍한 청소년 범죄가 발생했다. 콜럼바인 총격 사건을 두고 그랬듯이 세상 사람들은 쉽게 판단했다. “사악함을 타고난 나쁜 씨앗이었다거나, 아니면 도덕적 지침 없이 막 자랐다고(243쪽).” 가해자와 부모를 욕하고 내 아이가 피해자가 될까 봐 염려한다. 이 책을 읽은 나는 멀쩡해 보이는 내 아이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오싹했다. “사람은 가정에서만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며 “아이가 아무리 절망적 상태에 빠져 있더라도 그걸 드러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면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부모, 교사, 친구들조차 모를 수 있(183쪽)”기 때문이다. 

‘이웃집 괴물’은 부모의 지덕체 결여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좋은 부모’라는 낭만화된 이상은 양육의 본질을 가리고 매사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린다. 그사이 현실은 빠르게 나빠진다. 아이를 잘 키우기보다 명대로 본성껏 살게 하고, 남을 해치지 않는 사람으로 길러내는 게 시급하다. 그런 점에서 좋은 부모 10계명 대신 붙여놓고 싶은 문장이 있다. “도덕성, 공감, 윤리, 이런 건 한 번으로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니라 아이와 함께하는 모든 것에 깃들어 있다(417쪽).”

아픈 몸을 살다

[은유칼럼]

마흔 이후 건강검진을 받지 않았다. 특별히 약을 챙겨먹어야 할 질환이 없어서였는데, 그랬더니 몸에 무심해졌고, 무심하다가 와르르 망가지겠다는 신호가 왔다. 종종 숨이 가쁘고 골이 띵하고 몸이 꺼졌다. 7년 만에 검진센터에 전화를 걸었더니 생리 마치고 1~2주 후에 오라기에 날짜에 맞춰 예약을 했는데, 검진을 앞두고 또 생리를 하는 게 아닌가. 처음 있는 일이다. 아무리 따져보아도 혐의는 하나였다. 갱년기, 생리불순. 두 단어를 검색창에 입력하는 손가락은 더디었다. 갱년기라는 말이 내 삶에 최초로 기입되는 순간, 속옷에 묻은 생리혈을 처음 봤을 때처럼 나는 저 홀로 수치스러웠다.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 사람들은 당황하며, 그래서 연습할 기회를 놓친다. 또 연습한 적이 없으므로 이런 이야기를 나누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결국 사람들은 질병이 이야기할 만한 주제가 아니라고 믿게 되며, 다른 이와 함께 질병을 경험하고 배울 기회를 놓친다(13쪽).”

ⓒ시사IN 신선영


<아픈 몸을 살다>는 심장마비와 암을 겪은 저자가 자신의 질병 경험을 사유한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현대인이 자기 몸에 대한 지식과 지혜가 빈곤한 원인을 알게 되었다. 생리불순 같은 일시적 증상부터 심각한 질병까지 아픈 얘기는 궁상이나 엄살, 약점이나 결핍으로 치부됐기에 너나없이 쉬쉬한다. 그럴수록 병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우리 몸은 ‘의학의 식민지’가 된다. 

저자의 의견에 크게 공감한 나는 앞으로 몸에서 일어나는 자질구레한 의심을 떠들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참이기에 생리불순 건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목소리는 목소리를 불렀다. 또래나 선배 여성들이 원래 그런다, 더한 경우도 있다, 그러다가 수년 내 폐경이 온다는 경험을 말해주었다. 그렇게 배울 기회를 챙겼다. 인체의 신비는 여전히 모르겠어도 늙어가는 자궁의 변덕은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번 검진에서 수면 내시경도 처음 받았다. 손등에 주사 바늘을 꽂고 위 운동 억제제, 목 마취제라는 야릇한 맛의 시럽을 삼키고 얌전히 차례를 기다렸다. 커튼으로 칸칸이 구획된 곳으로 내시경 받을 사람, 받은 사람, 마취 깬 사람의 침대가 일사불란하게 이동했다.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듯 질서정연한 사람의 흐름에 나 또한 이름이 불려 끼어들어갔고, 눈을 떴을 때는 검사가 끝난 뒤였다.

<아픈 몸을 살다>
아서 프랭크 지음 
메이 옮김 
봄날의책 펴냄

수면유도제 기운 탓인지 기분 탓인지 몽롱한 가운데 말소리가 들렸다. 옆 칸 침대의 남자 어르신은 혼자 갈 수 있다며 몸을 일으키고, 간호사는 연세가 있어서 위험하며 보호자가 와야 나갈 수 있고 혼자 가려면 잠 깨는 약을 먹어야 하는데 비용이 1만원 든다고 했다. 실랑이가 길어졌다. 저 어르신은 보호자가 없는 걸까, 1만원이 없는 걸까. 둘 다 없는 걸까, 둘 다 있지만 의료 체계에 저항하시는 걸까. 여러 가지 이유로 보호자를 대동할 수 없는 환자가 분명 있을 텐데 어쩌란 말인가. 

질병 없는 인생은 불가능하다

아프거나 아팠을 얼굴들이 떠올랐다. 두 노인네 밥 먹고 병원 다니는 게 일이라고 한탄하는 시부모님, 얼마 전 백내장 수술을 받은 아버지, 전신 마취하고 디스크 수술을 한 남편. 큰 수술이 아니라고만 생각했지 그들이 병원 침대에서 느꼈을 고립감과 “더는 젊지 않은 자신과 헤어지는 일(148쪽)”의 처연함을 너무 몰랐다. 나의 반성과는 별개로, 아픈 사람을 “가족의 시간과 경제적 자원을 빨아들이는 존재(197쪽)”로 만들고 질병을 개인의 성격이나 건강관리 부주의로 돌리는 사회 현실에는 분개한다. 

“질병이 없는 인생은 불완전할 뿐 아니라 불가능하다(202쪽)”고 하니 감내할 건 감내하고 싸울 건 싸우면서 몸의 일기를 기록해야겠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생리가 규칙적일 수 없으리라는 불길한 예감에 시달리는 중년의 가을은 난감하다(김훈이 쓴 산문집 <풍경과 상처>의 첫 문장, “내일이 새로울 수 없으리라는 확실한 예감에 사로잡히는 중년의 가을은 난감하다”의 패러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