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누드모델

[은유칼럼]

‘나는 해부학적으로 그려져 걸릴 것이다/ 훌륭한 박물관에. 부르주아들이 나지막이 탄성을 지르겠지/ 이런 강변의 매춘부 이미지에 대고. 그들은 그걸 예술이라 하지.’


영국 시인 캐럴 앤 더피의 <서 있는 여성 누드> 일부다. 시의 화자는 누드모델. 자신에게서 ‘색을 뽑’고 움직임을 통제하며 권력 감정을 느끼는 화가를 ‘조그마한 남자’(little man)로 부르고, 누드화에 감탄하는 영국 여왕을 ‘웃긴다’고 말한다. 이 시에서 여성은 그려지고 보여지는 존재가 아니라 생각하고 말하는 존재다. 자신을 보는 화가-관객을 보는 시선의 전도로 인해 역사상 목소리를 가진 적 없는 누드모델이 견자(見者)로 등장한다.


친구의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이탈리아에서 미술관엘 갔는데 길게 늘어선 줄이 거의 여성이더란다. 전시실엔 백인 남성 화가 작품들만 걸려 있음은 물론이다. 관람을 마치고 바닷가에 갔더니 미술관에서 안 보이던 남자들이 해변에 누워 여자들을 감상하고 있더라나. 왜 여자는 보여지고 (그걸 또 돈 내고 보고) 남자는 창작하게 된 거냐고 푸념했다.


그런데 위의 시에 따르면 화폭 속 여자는 수동적인 대상으로 가만히 있지만은 않는다. 자신을 보는 사람들을 관찰해 통찰을 얻는다. 그는 ‘해야만 하니까. 다른 선택이 없으니까.’ 그저 그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화가나 자신이나 같은 처지라며 이런 시구를 남긴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하지’


인간사를 아우르는 간명한 명제다. 난 일전에 한 남성 철학자의 책을 읽었는데 서문에는 이 방대한 저서를 집필하느라 시간이 얼마나 걸렸고 몸이 어떻게 탈진됐는지 병명까지 상세히 적혀 있었다. 그 비슷한 시기에 빵집 아줌마 얘기를 들었다. 김밥집에서 수년간 일한 그는 김밥을 하도 말아 손목 관절이 손상돼 그만두고 시장통 빵집에 겨우 취직했다. 빵 담고 거스름돈 내주는 일이 망가진 손목으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동작인 탓이다.


어떤 직업은 노동의 결과물이 보존되고 과정의 수고로움이 기록된다. 존경과 동경을 받는다. 어떤 직업은 아니다. 노동의 성과가 사라지고 고충이 음소거된다. 폄하와 무시를 당한다. 사회적 무지와 몰이해. 그것이 직업의 귀천을 만들고 구조적 불평등을 낳는 건 아닐까. 대부분의 직업이, 몸이 축난다는 점에서 단순직이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점에서 전문직이다. 저 ‘누드모델’이 응시하듯 누군가를 깊게 들여다본 적 없는 우리는, 서로를 동등한 동료 시민으로 바라보지 못한다.


내 직업 작가도 학자와 더불어 문(文)을 숭상하는 한국 사회 유교적 전통의 수혜 직군이다. 가난해도 대접받는 편이다. 그런데 글 쓰는 직업에도 위계가 있다. 자유기고가와 르포르타주 작가로 일하는 내게 사람들은 예사롭게 묻는다. “시나 소설은 안 쓰세요?” “등단하셔야죠.” 저 순문학 세계에 이르는 길 어디쯤에 비소설 분야 문필하청업자 자리가 있지 싶다.


장르는 갈래다. 장르 자체가 작품의 고귀함을 보장하지 않는다. 직업이 인격을 담보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세상에는 권력에 빌붙어 합리적 생존성만 따지는 의사나 법조인이 있고, 약자에게 다정한 (성)폭력을 휘두르는 문인과 교수가 있다. 특정 직업에 덧씌워진 환상을 벗겨내고, 그 일이 누구의 이익에 복무하는지, 다른 존재를 억압하진 않는지, 어떤 관점을 내포하는지 ‘해부학적으로’ 따져야 한다. ‘나는 볼 수 있다’고 말하는 누드모델처럼, 보여질 때조차도 보는 사람이 예술가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67850.html?_fr=mt5#csidxeadf8fc1bd4f6978e99e915ef7a03f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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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삶의창] 내 인생이 그렇게 슬프진 않거든요

[은유칼럼]



아이들이 이백 명 넘게 있더라, 생각해보니 나 학교 다닐 때 우리 반에도 보육원에 사는 애가 없진 않았을 거 같아. 업무차 보육원에 다녀온 친구가 말했다. 그 아이는 반 친구를 집에 데려오지 못하고 남들처럼 부모형제와 사는 듯 지냈을 텐데 싶어 애처로운 마음이 든다고 했다. 나와 같은 시간대를 통과했을 한 아이를 나도 가만히 떠올려보았다. 있는 그대로 자기를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의 가슴은 때때로 얼마나 졸아드는가.


예전에 보육원에서 만난 취재원이 떠올랐다. 원생이 성인이 되면 약간의 생활자금을 갖고 시설을 나간다고 말했다. 난 좀 놀랐다. 방 한칸 구하기 어려운 소액으로 가족도 없는데 어떻게 자립을 하느냐며 살짝 분개했던 거 같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자기가 그 경우랬다. 시설에서 살다가 스무 살에 독립해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이곳에서 일한다고. 그러니까 나는 ‘보육원 출신 성인’이라는 추상적 인격을 상정하고 걱정인지 동정인지 모를 감정을 표출했는데, 그 실제 인물이 눈앞에 있었던 거다. 소매 걷은 흰 셔츠 입은 이십대 여자의 침착한 얼굴로.


한 움큼 부끄러움을 삼키며 나는 배웠다. 동정이든 차별이든 그 아래 깔린 근본 생각은 다르지 않다는 걸. 어떤 대상을 자기 삶의 반경에 없는 분리된 존재로 취급하는 것(고아들이 불쌍하다), 한 존재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 특정한 면만 부각시켜 인격화하는 것(장애인은 무능하다), 자신은 결코 되지 않을 이질적 대상으로 상대를 보는 것(공부 안 하면 노숙인 된다). 하나같이 타자화하는 말들이다.


배울 일은 계속 일어났다. 장애여성들과 글쓰기 수업을 할 때다. 손 움직임이 불편한 학인이 A4 용지 두 장 분량의 과제를 제출했다. 구족화가처럼 발가락으로 자판을 두드렸을까? 어떻게 썼는지 물었더니 스마트폰을 코로 눌러 글을 써서 컴퓨터 문서에 옮겨 출력했단다. 난 또 놀랐다. 코로 글을 써요? 옆에 있던 활동가가 코로 게임도 엄청 잘한다고 일러줘 다같이 웃었다.


코로 글을 쓰는 그는 연극도 하고 아이도 키우고 강의도 한다. ‘장애의 이해’란 주제로 인권 교육을 나가는데, 사람들이 휠체어를 타고 말투가 어눌한 그를 강사보다는 딱한 장애인으로 보는 모양이다. 교육이 끝나면 다가와 ‘꿈을 잃지 말고 살라’ ‘얼굴은 예뻐서 다행이다’라고 말하거나 불쌍하다고 끌어안고 우는 사람도 있단다. 이 촌극 같은 상황을 두고 동정심만 키운 망한 교육이라며 그는 웃음 머금은 채 말한다.


“내 인생이 그렇게 슬프진 않거든요.”


안 보이는 사람의 나라가 있다. 삶에 대한 상상력이 직업에 대한 정보력을 넘지 못하는 수준이다 보니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사람의 이야기는 사라져간다. 남성, 이성애자, 서울 출신, 명문대 졸업, 전문직 종사자로 표상되는 소위 정상적 삶의 서사는 매스컴으로 구전으로 맹렬히 유통되는 반면, 거기서 벗어날수록 삶의 서사를 구성하기가 어렵다. 장애여성 강사처럼 자기 경험과 생각과 감정을 말할 기회가 드물고, 겨우 말한다 해도 오해나 동정을 산다. 그런데 남에게 자기 얘기를 하지 않으면 사람은 자기를 알기 어렵고 사회에 자신을 위치 지을 수도 없다. 말소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아마도 사람을 단정하는 내 ‘꾸준한 고집’으로 눈앞에서 놓쳐버린 무수한 타인들이 있을 것이다. 다시 듣기를 시도한다. 저마다 처지와 형편과 고민을 말하고 듣고 상상하는 동안 서로의 존재 정착을 도우리라. 




2016.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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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의 선물

[은유칼럼]



예전 동료와 연락이 닿았다. 나의 신간 '쓰기의 말들'이 인터넷 서점에 나온 것을 보고는 그가 연락을 한 것이다. "새 책 나왔네? 여전히 부지런해!" 밀린 수다가 오갔고 대화는 급물살을 타며 언제 밥 한 번 먹자가 아니라 다음주에 당장 날잡자로 이야기 됐고 그날이 왔다. 문자 안부가 아닌 실물 상봉은 거의 4-5년 만이다. 그간 그는 두 명의 아이를 출산해 일과 육아를 병행했고, 난 살림과 집필을 수행했다. 우린 너무 바빴다.


그는 규모가 있는 편집회사 사보기획자, 나는 늦깍이 프리랜서 작가였다. 요즘 말로 따지면 그는 을 나는 병이다. 둘이 일 궁합이 좋았다. 그는 자신이 진행하는 거의 모든 사보를 나에게 맡겨야 안심했고 그 모든 일을 나는 마다 않고 완수했다. 갑이 요청하는 급작스러운 일들, 그러니까 대표이사 인삿말 윤문 같은 것들도 정해진 시간 내에 써주었고, 갑의 핵심 사업인 신기술 관련한 까다로운 내용도 빈틈없이 정리해서 원고를 납품했다. 사보 제작 관행상 작가 여러 명이 한꼭지씩 써야하기에 필명을 세 개 돌려가면서 다른 인격으로 원고를 쓰기도 했다. 돈이 필요했던 나, 그리고 갑인 클라이언트에게 '빠꾸' 맞지 않을 원고가 필요했던 그. 우린 서로를 원했다.


약속 장소로 가는 길, 버스에 앉아 창밖으로 눈길을 던지며 상념에 젖는다. 8월의 태양을 직통으로 맞고 건물이 내뿜는 실외기 열기까지 감내하고 있는 저 플라타너스가 대견하다. 이 뙤약볕에 여전히 버스정류장에서 낡은 의자 쿳션 깔고 앉아 채소를 파는 할머니는 또 얼마나 대단한가. 올해의 폭염처럼 끝날 듯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지리멸렬한 고통의 시간대를 나는 일을 하면서 통과했고, 지금 그를 만나러 간다. 


한 존재가 살아가는 일의 '기적'에 대해 생각했다. 우주가 돕는다면 사람이 우주일 것이다. 아무 기반도 없이 글밥 먹고 사는 일을 시작한 나를 믿고 일감을 몰아준 그가 새삼 고마웠다. 덕분에 쌀독에 쌀이 비는 불상사를 막았다. 더 고마운 건 ‘왕성한 집필기’를 거치며  작가로서 글쓰기의 근력을 키우고 자신감을 얻은 것이다. 그 때도 고마웠는데 표현하지 못했다. 혹여라도 선물이 뇌물이 될까, 평등한 동료 관계가 비대칭의 갑을관계로 기울어버릴까 조심스러웠다. 이젠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았으니 뭔가를 전해도 되겠구나 싶었다.


광화문 네거리, 더바디샵에 들러서 나는 코를 킁킁거리며 향기로운 선물을 골랐다. 카페에서 만나 포옹하고 “어머, 그대로네. 어떻게 하나도 안 변했느냐” 예의 그 호들갑스런 인사를 한바탕 시연한 후 자리에 앉아 그에게 곧장 내밀었다. “이거 선물이야. 당신 덕분에 내가 살 만한 삶을 살았네. 고마워. 너무 늦은 거 아니지?” 10년 묵힌 마음, 10년 만의 선물이다. 


며칠 후, 그에게 문자가 왔다. 내 책을 읽고 잠시나마 문학소녀였던 그 때 그 설렘이 훅 먼지처럼 일어나고 가슴이 콩닥거려서 커피우유 사다 마셨다고. 책에 인용한 문장과 에피소드가 절묘하다며 그가 말했다. “대체 얼마나 뇌즙을 짜낸거야?” 난 ‘뇌즙’이란 말에 무릅을 쳤다. 어떻게 그런 표현을 생각했냐고 물었더니 그가 말했다. 

“옛날에 그대가 썼던 말이야. 원고 보내면서. 하도 콱 박혀서 잊혀지지가 않아.” 


난 당황했다. 왠지 내가 삼십대였던 그 땐 총기도 있고 체력도 좋아 글을 힘들이지 않고 썼다고 생각했다. 예나 지금이나 사보 일이나 책 집필이나 그냥 써지는 글을 없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글쓰기에는 일정량의 ‘뇌즙’을 바쳐야한다는 것. 그가 내게 돌려준 10년 숙성된 명언, 10년 만의 선물이다. 



* 방송대 학보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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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 여름 제사

[은유칼럼]


시적인 게 뭐예요? 시 수업에서 질문이 나왔다. 난 오래된 시집에서 본 설명에 기댔다. “그 시적인 것은 뭐라고 딱히 말할 수는 없고, 딱히 말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것은 어쩌면 선적인 것과 닿아 있는지 모르겠다.”(황지우,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64쪽) 그리고 예를 들었다. ‘여름 제사’ 같은 게 아닐까요?


저 오늘 여름 제사 지내러 가요. 얼마 전 지인이 지나가듯 하는 말에 몸이 움찔했다. 여름 피서가 아니라 여름 제사. 이 빗나가고 거스르는 말들의 배열이 내겐 너무 시적으로 다가왔다. 삼복더위에 호화로운 휴가 한번 즐기지 못한 엄마는, 자식들 콩국수 만들어 먹이고 아버지 술안주로 부침개 부치느라 가스불 앞을 떠나지 못하고 낑낑대던 엄마는 한여름에 돌아가셨다. 써보지 못한 여권사진이 영정사진이 됐다. 10년 전이다. 나는 10년째 여름 제사를 지낸다.


서울 36도. 올해 엄마 기일도 무더웠다. 가스불 앞에서 쇠고기 무국을 끓이고 전을 뒤집고 산적 고기를 익히는 나는 엄마가 되어 엄마를 본다. 가슴골로 맹렬하게 흘러내리는 땀줄기가 건드리는 그 무엇. “너 키울 때 자는 동안에도 계속 부채질해줘서 땀띠 한번 없이 여름을 났다”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단지 ‘고생한 엄마’라고 말하면 많은 것이 빠져나가 버리기에 말할 수 없는 여성 억압의 중추를, 엄마의 어떤 생을 몸으로 반복한다. 늘 있지만 잘 눈여겨보지 않는 삶의 자리, 여름 제사.


강남역 8번 출구에서도 여름 제사를 지낸다. 사계절 영정사진이 놓인 곳. 천막을 치고 삼성에서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의 넋을 기린다. 고 황유미 아버지 황상기씨는 속초에서 서울로 달려와 입사원서 사진이 영정사진이 된 딸의 제사를 지낸다. 9년째다. 빌딩 숲속 실외기의 후덥지근한 열기와 9차선 도로의 시커먼 매연 속에서 죽은 자의 못다 한 이야기를 알리고 산 자의 살 권리를 이야기한다. 기록적인 폭염의 절정에서 반올림 활동가 공유정옥은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날씨 덕분에 반올림 오성급 호텔 사우나를 습식 사우나로 업그레이드하였습니다. (…) 보습기능이 증진되었고, 노폐물을 쫙쫙 빼주니 체중도 줄었어요. 강남역 8번 출구 앞 1분 거리 삼성 딜라이트 홍보관 앞에 있습니다.”


여름 농성장은 습식 사우나. 말하기에 실패하면서 계속 말하기를 전달하는 이 상황은 또 얼마나 시적인가. 삼성 백혈병 문제 보상을 위한 싸움이라고만 하면 너무 많은 것이 생략돼 버리기에 딱히 말할 수 없지만 말하기를 포기할 수도 없다. 이 삶적이고 선적인 무엇. 삼성이 성매매 여성에게 지불한 500만원과 죽어가는 황유미에게 “이걸로 끝내자”며 건넨 500만원의 치욕을 기억하는 것이 ‘사람의 일’임을 증언하는 그곳, 도시의 중심에서 가장 주변이 된 삶의 자리, 강남역 농성장.


시적인 것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것을 보게 하는 힘, 동력, 에너지다. 혹서기에 김포공항 출입문을 통과하는 알록달록한 인파는 시적이지 않다. 잘 보이니까. 김포공항 구석구석에서 꿈틀거리는 땀 위에 스멀거리는 모욕의 말들을 뒤집어쓰고 주물거리는 관리자의 성추행을 감내하며 하루 3만보를 이동하는 청소노동자들, 인간 대접 받고 싶다며 삭발에 나선 그들의 몸에서 떨어지는 머리카락과 눈물과 땀은 시적이다. 잘 보아야 보이니까.


불볕더위에 불덩이를 떠안고 ‘인간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을 불러내는 말들, 움직임들, 응답들로 인해 없는 존재가 있는 존재가 될 때 비루함이 고귀함이 된다. 그래서 시적인 것은 있지 않고 발견된다. 여름 제사처럼.



* 한겨레 '삶의창' 2016. 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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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빛 - 넓어져가는 소란을 위해서

[은유칼럼]

(*영화의 줄거리가 많이 나옵니다.)

 

영화 <환상의 빛> 초반의 한 장면, 남편이 라디오 소리를 집중해 듣고 있다. 아내가 시끄럽지 않느냐고 묻자 남편이 답한다. 노인네 귀가 잘 안 들려서 크게 틀어놓은 거겠지. 알고 보니 옆집에 혼자 사는 할아버지가 틀어놓은 라디오 소리가 벽을 타고 넘어온 거였다. 이것은 분명 ‘벽간 소음’의 일촉즉발 상황인데 영화에서는 라디오를 공유하는 다정한 이웃 풍경으로 그려진다. 소리로 연결된 관계? 이 때부터 난 영화의 ‘빛’보다 ‘소리’가 귀에 감기기 시작했다. 


배경이 기찻길 부근 주택가 가난한 동네다. 부부 사이 아기가 태어났는데 ‘기찻길 옆 오막살이’ 동요에 나오는 아기처럼 순둥순둥 잘도 잔다. 공장에 다니는 남편은 기계 굉음으로 아내가 창밖에서 기다리는 것을 보지 못하고 일에 매진한다. 퇴근 후 두 사람은 단골 찻집에서 두런두런 대화를 나눈다. 삶이 순조로울 때 일상의 소리도 왕성하다. 그러나 남편의 돌연한 죽음 후 삶은 어둠과 적막이 깃들고 아기의 옹알이만 간신히 일상을 지탱한다. 남편의 부재로 ‘음소거’가 된 듯한 일상은 어항처럼 조용하다. 


몇 년 후 아내는 재혼해 바닷가 마을로 거처를 옮긴다. 머리맡까지 파도소리 밀려오는 방, 두 번째 남편은 아내를 걱정하며 말한다. 처음에는 파도 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잘 수도 있다고. 아내는 적응을 위해 노력한다. 마루 계단 닦는 소리, 파 송송 써는 소리, 개 짖는 소리, 수박 씨 뱉는 소리가 무던한 일상의 신호음처럼 들린다. 그리고, 전 남편의 기억을 불러오는 것도 유품이 된 자전거 열쇠의 방울 소리이고, 상실의 아픔을 치유하는 것도 아내가 스스로 터뜨린 처연한 울음소리다. 


삶은 얼마나 많은 소리로 영위되는가. 돌이켜보니 난 삶이 서툴 때 세상이 내는 온갖 소리와 적대했다. 첫아이 육아기에는 (기차소리는커녕) “고장난 에어컨 테레비 컴퓨터 삽니다.” 하는 무한반복 트럭 방송에 아기가 깰세라 쩔쩔맸다. 글이 안 써질 땐 놀이터의 아이들 떠드는 소리는 물론이고 집안의 TV소리, 화장실 물소리까지 신경이 곤두섰다. 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제거하고 싶은 난폭한 마음은 타자의 존재 부정이라는 과격한 상태로 치닫곤 했다. 


영화의 전개처럼 내 삶의 계절도 바뀌고 있다. 아이들이 크고 복닥거리던 집안이 조용하고 그토록 갈망하던 일상 소음의 한복판을 벗어나는 지금, 난 뒤늦게 삶이 내는 소리와 화해하고 있다. 트럭 방송을 켜놓고 운전석에서 잠든 아저씨의 하루 매출이 걱정스럽고, 공공장소에서 떠드는 아이들이 내뿜는 존재의 활기가 반갑다. 베란다를 타고 넘어오는 이웃집 부부싸움 소리가 불안했는데 요즘은 외려 조용하면 불길하다. ‘사람이 과연 살고 있을까?’ 


“노란 꽃을 주세요 넓어져 가는 소란을 위해서”(‘꽃일2’) 라고 시인 김수영은 노래했다. 세상의 삐뚤어짐과 떠들썩함을 찬미하는 시구다. 가만히 있지 않고 부딪치고 충돌하고 어수선할 때 ‘아까와는 다른 시간’을 만드는 가능성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영화 <환상의 빛>은 비탈길을 자전거로 낑낑대며 올라가는 아빠와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 넓어져가는 소란을 길게 응시하며 끝이 난다. 아까와는 다른 시간이 펼쳐질 것임을 예고한다. 


이웃집 라디오 소리를 즐겁게 받아들이듯, 때로 이유를 알 수 없는 죽음도 의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게 삶이라는 것을 일러주는 이 영화는 일상의 소란이 환상의 빛처럼 삶을 감싼다.


-방통대 학보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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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왕따 생존자의 말하기

[은유칼럼]

오래된 농담처럼 ‘왕따’라는 단어를 말하기까지 십수년이 걸렸다. 그녀는 중학생 때 지독한 왕따를 당했다. 3년 내내 혼자 다녔다. 점심시간에 혼자 밥을 먹고 들어오면 책상에는 아이들이 남긴 반찬, 그러니까 음식물 쓰레기가 올라와 있었다. 매일 울면서 집에 갔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언니가 담임을 찾아가 말했으나 담임은 조회 시간에 주의 한번 주고 말았다. ‘네 동생 왕따라며?’ 외려 언니가 반에서 따돌림을 당했다. 약한 것을 비집고 들어가는 괴롭힘은 죄책감 하나 없이 당연해 보였다.


폭력을 꾸준히 당하자 그녀에게도 폭력 성향이 생겼다. 부모가 뒤를 받쳐줄 수 있다면 걸상을 들어 누구라도 내리찍고 싶었다. 외부로 향하지 못한 공격성은 육체의 말단인 손톱을 향했다. 하도 물어뜯어 검지에서 중지로, 중지에서 약지로 손톱에선 늘 피가 번졌다. 밤마다 자문자답의 꼬리물기가 시작됐다. 왜 나한테 그럴까, 내일 학교 가면 나아질까, 가해자 부모를 찾아가서 말할까, 차라리 자살할까…. 인생에서 일어나는 크고 힘든 사건일수록 그렇듯이 그녀는 자신이 당하는 고통의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스물셋, 동사무소 헬스장에서 중학교 동창을 만났다. 10년 만에 마주친 그 동창, 시도 때도 없이 쿡쿡 찌르고 욕설을 뱉던 왕따의 가담자는 그 자리에서 사과했다. “미안하다.” 얼결에 이뤄진 재회와 사과를 그녀는 속수무책 받아들여야 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열불이 났다. 억압된 것의 회귀. 상대는 죄책감 덜고 살자고 사과했을지 모르나 그녀는 치욕의 불구덩이에 다시 빠져들었다. 뒤늦게 대학에 진학해 시야와 관계를 넓히며 악몽에서 벗어난 그녀는 고통의 언어화 작업을 시도했고 ‘폭력과 기억’을 주제로 글을 썼다.


“말로 받았던 폭력과 그들의 얼굴은 하나하나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 기억하고 있는 것 자체가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잊지 않고 있다. 이건 내가 용서해야 지워질 폭력에 대한 기억이다.”


그녀는 나와 함께 글쓰기 공부를 한 학인이다. 자라지 못한 손톱을 부채처럼 펼쳐 보이는 그녀 앞에서 난 몹시도 부끄러웠다. 함부로 하는 사과가 자기기만인지도 모른 채 어른이 됐고, 왕따의 화살이 내 아이만은 비켜가길 바라는 학부모로 사는 내게 그녀의 증언은 엄중한 진실로 압도했다. “잊지 않겠다.”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택한 ‘존엄의 회복’의 수순이 꼭 그와 같았다.


“나는 범죄자들을 한 사람도 용서하지 않았다. 지금도, 앞으로도 그 누구도 용서할 생각이 없다. 이탈리아와 외국의 파시즘이 범죄였고 잘못이었음을 인정하고 (…) 그것들을 뿌리째 뽑아내지 않는 한 말이다.”(<이것이 인간인가> 270쪽)


왕따를 당한 아이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생존자가 된다는 뜻이다. 왕따 학생 자살 사건이 사회면 단골 뉴스가 된 현실이 이를 말해준다. 그러니 섣부르게 용서하지 않겠다는 그녀의 말은 존엄 회복의 노력이고 폭력 근절의 실천이다. 오늘도 손톱을 뜯으며 폭력의 독을 빼내고 있을 아이들은 어떻게 슬픔에 익사당하지 않고 ‘사건의 반복’을 사유하는 생존자가 될 수 있을까.


그녀는 두 가지를 말한다. 눈가가 젖어 있거나 교복이 망가졌거나 “티는 나는데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아이들을 살필 것. 당사자는 숨기지 말고 ‘고통 말하기’라는 우연한 시도를 누릴 것. “처음에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내 아픔의 정보를 내주었을 때 상대방도 자기 얘기를 터놓았다. 왕따나 직장 괴롭힘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 한겨레 '삶의창' 2016.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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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죽지 않는 자기소개

[은유칼럼]



"저는 나이가 많습니다. 70살인데 결혼을 안 했고 자식이 없고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어느 지역 평생학습관 글쓰기 수업 첫시간, 한 여자 학인이 떨리는 음성으로 자기를 소개했다. 일흔 살에 비혼 여성? 내용의 희소성보다 그 사실을 서슴없이 터놓는 당당함에 처음엔 당황하고 곧이어 감탄했다. 


일정한 나이에 학교 가고 취업 하고 결혼 하고 자식 낳고 사는 인생 행로를 가지 않으면, 한국 사회에서는 시시때때로 불편을 겪는다. (중년 여성은 무조건 ‘어머님’으로 불린다.) 왜 남들처럼 살지 않는지 설명을 요구받는다. 그 번거로움을 그는 예사롭게 자처했다. 


이후 수업에서 그는 오육십년 전 시골에서 난치병을 앓는 여자 아이로 성장한 이야기, 건강과 배움을 박탈당했다가 되찾아가는 이야기를 여러 편의 글로 썼다. 그의 생애는 늦깍이 학생으로 대학졸업장과 사회복지사 자격증까지 획득한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거나 장애를 딛고 열심히 살아가는 '희망의 증거'가 될 만한 내용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는 자기생애 서사를 휴먼스토리로 일반화 시키지 않았다.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주어진 정체성의 규정 요소들- 건강, 계급, 성별, 나이, 지역 등-을 부정하거나 떼어버리려 하지 않았다. 아픈 몸을 치료하는 노력들, 외롭던 시간들, 가족 아닌 동료들과 배우고 놀며 성장하는 일상을 그려냈다. 아프니까, 여자니까, 늙었으니까 등등 매 순간 걸림돌이 됐을 요인들을 자기 삶으로 통합해냈다. 그 연장선상에서 거침 없는 자기소개가 가능했던 것이다. 


"25살 동안 글을 모르고 살았다." 위의 평생학습관 수업에서 한 남자 학인이 발표한 글의 첫 문장이다. 이토록 강렬한 서두라니. 난 또 움찔했다. 그는 안마시술소, 때밀이, 막노동꾼, 공장노동자, 모텔 종업원 등을 전전하다가 “직업을 당당하게 말하고 싶어서”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검정고시학원에서 한글 공부를 하며서 중장비 기술 자격증을 15개나 땄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은 후 맘처럼 늘지 않는 글쓰기와 독해력을 높이고자 인문학 공부를 시작했다며 이렇게 썼다. 


"책을 읽으면 똑똑해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공감 능력이 좋아졌다. 내가 바라는 것은 똑똑한 인간이 되는 건데 참 이상했다." 그는 이어 고백한다. “글을 몰랐을 때는 항상 움츠리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능력도 없었고 자신감 없이 살았다. 글을 오랫동안 배우면서 내 생각을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고, 자신감도 생기고, 인간으로서 성숙한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됐다.”


나는 이곳 평생학습관 수업을 결정하기까지 망설임이 컸다. 왕복거리가 4시간, 집에 오면 자정이 되기 때문이다. 10주의 여정을 마치고 나니, 여길 안 왔으면 어쩔 뻔했나 싶다. 평생학습관에서 수업은 ‘평생’학습의 본디 뜻을 상기시켜주었다. 사람은 왜 공부해야하는지, 읽고 쓰기는 어떻게 내면의 힘을 기르는지, 타인의 삶에 눈 떠가게 하는지. 


인류학자 김현경은 “정체성에 대한 인정은 특정한 서사 내용에 대한 인정이 아니라, 서사의 편집권에 대한 인정이다.”라고 했다. 자기자신에 대해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자신이라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평생 배우고 쓴다지만 자기 생애를 지배 규범의 주어진 틀 안에서 되풀이하고, 어떤 이들은 뒤늦게 배우고 쓰면서 자기 인생의 저자가 된다. 자기가 누구인지 ‘기죽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평생학습이 유행처럼 번지는 시대, 모두가 공부해야한다면 이 특권적인 힘을 기르기 위해서가 아닐까. 


(두달 전 방통대에 기고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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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절대로 하지 마

[은유칼럼]

‘자유로운 영혼 뒤에는 울부짖는 처자식이 있다.’ 넥타이 맨 사람보다 기타 든 사람에게 쉬이 매료되던 내게 선배가 해줬던 충고다. 연애 상대자의 미덕이 결혼하면 악덕이 될 수도 있다는 그 생활 격언에 따라 기타 치는 직장인과 결혼했고, 아이를 둘 낳았다. 가족제도 울타리에 들어앉은 나는 애 낳고 사는 일상이 갑갑할 때마다 영화나 문학(같은 삶)으로 도피했다.


소설 <마담 보바리>류의 몰락 서사는 늘 매혹적이었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리는 인생이라니. 사진가 앨프리드 스티글리츠와 화가 조지아 오키프의 사랑은 또 어떤가. 여자는 아이를 원하지만 남자는 출산에 반대한다. 스물세살 연상 남편이 ‘핏줄’을 거부하고 아내의 일을 독려하는 이국 문화는 낯설고 부러웠다.


여성이 책을 낼 수 없었던 19세기, 남편의 폭력에 못 이겨 애 둘 데리고 이혼한 뒤 뭇 예술가들과 자유연애를 구가한 스캔들의 여왕이자 쇼팽의 뮤즈였던 소설가 조르주 상드에서 1930년대 파리지앵과 바람나서 이혼당하고 행려병자로 죽은 우리의 신여성 예술가 나혜석까지. 금기와 위반의 서사는 사랑, 자유, 욕망, 존엄 같은 큰 물음 앞에 나를 세워놓았다.


어설픈 몽상가 아줌마를 현실로 데려온 건 홍상수였다. 술과 말이 흥건한 그의 영화는 지적이고 자유로운 영혼을 가장한 울부짖는 중년 남자의 민낯을 전시했다. ‘불쾌한 사실을 직시하는 능력’을 가진 그의 영화를 난 꼬박꼬박 챙겼다. 그는 사랑의 위대함이 아닌 집착, 질투, 미련, 지배욕망 같은 지지하고 시시하고 이중적인 감정들을 보게 했다. 사랑과 사랑 아닌 것을 자꾸만 생각하게 했다.


얼마 전 공개된 홍상수와 김민희 연애 소식을 나는 스크린 바깥으로 흘러넘친 영화라고 보았다. 그들이 일에서 보여준 존재감 그대로다. 길들여지지 않는 눈빛을 가진 배우다웠고 영화와 현실을 뒤섞는 능청스러운 감독다웠다. 역시 어느 시대나 다르게 살 수 있는 사람은 다르게 사는구나 싶었다. 안전한 삶보다 모험적 사랑에 존재를 던지는 선택은, 지리멸렬한 관계의 파고를 넘는 평범한 삶만큼 존중받고 보존해야 할 사랑의 역사가 아닌가.


일각에선 단죄 여론이 들끓었다. ‘전지적 홍상수 부인 시점’으로 접근한 기사들은 한 사람을 온전한 사랑의 주체가 아닌 작정한 가정파괴범으로 지목했다. ‘나이 어린 년’은 어떤 이슈에서도 약자다. 실제로 아버지나 남편의 외도를 경험한 주변인들이 자신은 이런 사건을 ‘쿨하고 힙하게’ 받아들일 수 없음을 고백했다. 그런데 그들은 또한 가장의 부재로 생존에 위협을 느꼈던 자기 고통을 진술하고 남겨진 자의 아픔을 헤아려야 한다고 말한다. 자유로운 영혼 뒤에는 내적 성숙을 이뤄가는 처자식도 있는 것이다.


“이유(EU)도 해체될 거 같은데 우리는 해체 안 해?” 기타 치는 일보다 차트 보는 일에 골몰하는 남편이 묻는다. “언제든”이라고 나는 눙친다. 결혼도 이혼도 인연의 방편이자 나은 삶을 위한 선택이라고 여기면서도 삶의 관성을 깨지도 못하고 사랑의 물음을 놓지도 못하고 나는 살고 있다. 좋은 영화, 좋은 문학이 품어온 사랑과 자유의 가치가 일상의 문화 감각으로 승인되는 일은 요원할까.


합리성과 익숙함으로 최적화된 세상에서 인간 정신은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다. 그러니 ‘사랑을 목발질하며’(기형도) 살아가는 희귀종들을 그냥 살게 두면 안 될까 싶다. 홍상수는 <옥희의 영화>에서 사랑 꼭 해야 하냐는 질문을 던지고 이렇게 답한다. “사랑 절대로 하지 마. 정말 안 하겠다고 결심하고 딱 버텨봐. 그래도 뭔가 사랑하고 있을걸?”



<한겨레> 삶의 창, 2016. 7.1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50579.html?_fr=mt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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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의 말

[은유칼럼]

“너희들보다 훨씬 더 상위에 있는 종족들이에요.” “무조건 남자들은 앞으로 살면서 여자 말을 듣고 산다 생각하면 중간은 간다.” “여자들이 불쌍한 남자 잘 보살펴 달라.” “사람이 아니고 개다 생각하면 싸울 일이 전혀 없습니다.”

이것은 누구의 말일까. 인터넷에 떠도는 김제동의 강연 동영상 자막이다. 김제동은 ‘연애할 때 싸우지 않는 법’을 특유의 입담으로 설파하고 객석을 채운 선남선녀 커플들은 물개 박수를 치면서 박장대소다. 화기애애한 강연장 분위기를 보는 나는, 웃자고 하는 말에 땅이 꺼져라 한숨 쉰다. 

김제동의 말은 여성을 치켜세우고 남자를 비하하는 듯하지만 아니다. 한 사람을 보살피는 것은 한 우주를 헤아리는 일이다. 친밀성 능력, 정서적·육체적 노동 다 투여된다. 두 사람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왜 한쪽이 도맡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가족도 학교도 못한 ‘사람 만들기’를 한 개인이 할 수 있을까. 왜 스스로 사람이 되라고 말하지 않고 관계의 무임승차를 권유할까. 

사실 김제동의 말은 새삼스럽지 않다. 최진실을 세상에 알린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라는 유명한 광고 대사, “며느리가 잘 들어와야 집안이 잘 된다”는 시어머니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남자 보살피는 것도 부족해서 집안 부흥의 책무(일명 ‘효도 대행’)까지 여자에게 부과하는 게 가부장제 일반적인 관습이고 정서다. 

“당신 좀 쉬어. 내가 할게.” “당신 수고 했어. 잘 먹을 게.” “당신은 엄마로서 교사로서 참 열심히 사네.” “당신 그런 것도 할 줄 아나. 대단하네.” 

이것은 누구의 말일까. 얼마 전 교사들 공부 모임에서 어느 교사가 쓴 글이다. 살면서 남편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이라며 일일이 나열했다. 저게 뭐라고 처량하게 감정이입하는 여성들이 나 포함 많을 것이다. 결혼 후 아무 의심 없이 돌봄노동, 가사노동을 자처하고 헌신했다. 가족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자 아내이자 엄마로서 임무 수행이라고 여겼다. 문득 회의가 밀려온다. 왜 맨날 나야? 

20년 돌봄 노동을 그녀는 멈췄고 남편은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전통적으로 성과 사랑의 주체는 남성이지만,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동은 여성이 담당한다. 여성이 노동을 그만두는 순간, 대부분의 관계도 끝난다.”(정희진)

그날 모임에서 김제동의 말을 들려줬다. 개념 있는 연예인의 말이니까, 남자는 애 아니면 개다는 익숙한 말이니까, 처음엔 맞다며 동조한다. ‘왜?’라고 의심하고 토론하면 각성이 일어난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던데) 내가 좀더 현명하게 남자를 이끌었으면 평등한 부부관계가 되지 않았을까 자책하는 자기 모습을 발견한다. 

그렇게 알아간다. 사회 문제에 개입하고 약자 편에서 발언하는 미더운 방송인도, 좋은 삶을 위해 공부하는 여성 자신들도 가부장제 언어를 내면화하고 산다는 사실을. 내면화는 일상화라는 것을.

외부 강연을 나가면 꼭 나오는 질문이 있다.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는데 감응력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하나요?” 느낌의 불모상태, 친밀성의 무능력을 호소하는 이들은 예외없이 남자 사람이다. 그런 질문이 반갑다. 무조건 남자를 보살피며 살지 않겠다는 여자들이 나타나고 있듯, 무조건 여자 말만 듣고 살아도 되던 남자들이 사라지는 것 같아서다.

‘여성이 상위 종족’이라는 명령은 권력의 말이다. 노동자를 산업의 역군이라 명명하(고 착취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쪽의 수고로 한쪽이 안락을 누리지 않아야 좋은 관계다. 

모든 사건과 사물의 질서를 정의하고 정리하고 판단하고 명령하는 마이크 권력이 줄어들고, 왜 맨날 나인가 회의하는 물음, 화장실 좀 맘 편히 가자는 일상의 억압을 증언하는 목소리가 흘러넘치길 바란다. 그럴 때만 남성의 조화로운 인격 형성을 방해하고 여성의 평화로운 일상 활동을 가로막는 가부장제 언어는 무력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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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통신대학보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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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은유칼럼]


그렇게 화장도 안 하고 다니다간 피부 망가진다는 경고를 20대부터 들었다. 내 딴엔 스킨로션을 바르고 분첩을 두드린 건데 그랬다. 뭘 어떻게 덧발라야 화장한 티가 나는지, 자외선이 차단되는지 알지 못했다. 확 망가지지도 않고 쫙 피어나지도 않고, 피부는 제 나이를 야금야금 먹어갔다. 피곤하면 뾰루지가 나고 뾰루지를 뜯으면 착색이 됐다. 새살이 돋지 않고 어엿한 잡티로 남았다. 세포 재생력이 떨어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어느 날 자고 나니 오른쪽 눈가에 콩알 만한 얼룩이 생겼다. 자고 나니 책에 누운 글자가 흐릿해지던 즈음이다. 혹시? 이건 할머니 손등이나 얼굴에 나는 건데 난 ‘아직’ 40대이므로 설마했다. 노안이란 말을 그랬듯이 그말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럴수록 거슬렸다. 내게 ‘화장하라’던 조언자 일군은 충고했다. ‘피부과 좀 가라.’ 


검버섯. 내심 따돌리던 그 단어를 인터넷 검색창에 넣었다. 연관 검색어로 검버섯 제거비용, 검버섯 제거방법이 줄줄이 떴다. 링크를 하나씩 눌러봤다. 대부분 성형외과 광고글이었다. 비용도 천차만별. 십만원부터 백만원까지 개수와 크기와 기기에 따라 시술 비용이 달랐다. 몇 개까지 얼마라는 할인 혜택은 혹했다. 천천히 스크롤을 내리던 나는 ‘제거 후 미백 관리가 필수’라는 문구를 본 다음에야 검색창을 닫았다. 


<몸에 갇힌 사람들>의 저자 수지 오바크는 말한다. “언어들이 사라지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다양한 신체 종류들과 표현들이 사라지고 있다...다양성과 차이라는 강점을 잃어가고 있다...우리는 몸을 개조하기를 원하고, 미용산업에는 떼돈을 벌어다주면서 스스로에게는 엄청난 상처를 안긴다.” 여기에 밑줄을 그었다. 


영화 비포시리즈는 내 인생 영화다. <비포 선라이즈>(1995)에서 <비포 선셋>(2004)으로 <비포 미드나잇>(2013)까지, 동일한 남녀 주인공이 이십대부터 사십대까지 30년 시간의 폭과 결을 ‘몸소’ 보여주는 연기와 설정은 단연 독보적이다. 그들이 방부제 미모였으면 영화가 그토록 기품있었을까. 주름과 잡티를 예찬하던 나다. 


그런데 왜 나는 내 얼굴에서 ‘그것’을 지우려했을까. (난 쥴리 델피가 아니니까) 수지 오바크 말대로 “몸이 흡사 낡아서 창피한 부엌이라도 되는 것처럼” 못마땅하게 굴었을까. (쥴리 델피처럼 예뻐지고 싶어서) 내 신체 박피 욕망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용납하지 못하는 개발 신화와 얼마나 다를까. (쥴리 델피는 영화에서 사나운 환경운동가다)


지루한 연휴 끝의 피부과 광클릭, 그 시작은 심각했으나 시시하게 종료됐다. ‘병원이 병을 만든다’는 책도 있다시피, 피부과에 가면 점과 잡티는 무한 발명된다. 피부과나 성형외과 시술은 한번 받은 사람은 없다지 않은가. 안 하거나 또 하거나. 


‘계속’이라고 말하는 건 자본의 오랜 속삭임이다. 그 지속적인 피부 재생 및 미백 관리 및 주름 제거에 들일 시간과 비용이 내겐 없다. 운명이고 다행이다. 사회적 문화적 압박에 시달리는 몸들을 만들어내는 미용산업 대열에 섣불리 발 들이지 못한다. 가끔 흔들릴 것도 같다. 잡티 빼는 게 뭐라고, 남들 다 하는데, 하면서 공돈이라도 생기면 피부과 문을 빼꼼히 열지도 모르겠다. 


내 몸과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 질문이 남는다. 노화는 섭리다. 몸에 대한 근원적 불안과 불만의 강도가 높아질 날들이 기다리고 있다. 내것이 아닌 것 같은 몸, 낯선 모습으로 고개 내밀 얼굴과 동거하는 연습을, 콩알 만한 그것으로 해보고 싶다. ‘일찍 시작하고 자주 시행하라’는 시대적 요청에 거슬러, 40대부터 잡티 제거 안하고 살면 어떻게 되는지, 나의 신체 표현이 나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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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통신대학보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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