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말하기 공부

[은유칼럼]
새봄 새 학기, 급식 메뉴도 맛있고 문화체험 행사도 많아 기대에 들뜬 소년은 선생님의 다급한 부름을 받는다. 엄마의 부고 소식이다. 교통사고로 엄마를 떠나보낸 때가 열다섯. 죽음을 받아들이기에 적당한 나이가 있진 않겠으나 검은 상복이 안 어울리는 연령대는 있다. 그 소년은 스물한살이 되어 그날의 상황과 심정을 글쓰기로 풀어냈고, 어린 상주에게 감정이 이입된 동료들은 숨죽였다.

얼마 전 글쓰기 수업 장면이다. 그가 낭독을 마치자 예의 침묵이 한동안 감돌았다. 합평은 늘 긴장된다. 이런 경우처럼 상실 경험이라면 더하다. 글이 묵직하니 말이 더디 터진다. 적절한 위로와 지적의 말을 찾느라 그런가 보다 했는데 아니었다. 남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불쑥 삐져나온 자기 기억과 대면하느라 저마다 머릿속이 바쁘기도 한 거였다.

이 침묵, 이 머뭇거림을 나는 한때 견디지 못했다. 글쓴이가 울컥해 낭독을 멈추면 내가 대타로 나서 읽어주었다. 낭독 이후 의견이 없으면 말의 물꼬를 트려고 애썼다. 그럴수록 표현이 궁했다. 가령, 친족 성폭력은 누구나 겪는 일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삶에서는 이미 일어난 일이다. 별일 아니라고 말하기엔 별일이고, 별일이라고 말하기엔 별일이 아니어야 산다. 삶의 아이러니 앞에서 말은 무력하다. (듣고 나서 무어라 말해야 좋은지 당사자에게 물어보았더니 “믿고 말해줘서 고마워”라고 했다.)

한번은 나도 상념에 빠져 주춤하는 사이 다른 동료의 발언으로 토론이 진행된 적이 있다. 왜 꼭 먼저 나서려 했던가 싶어 민망했다. 한발 뒤로 물러서니 침묵의 다른 기능이 보였다. 침묵은 정지의 시간이 아니라 생성의 시간이다. 무슨 말이든 하고 싶지만 아무 말이나 하지 않고자 언어를 고르는 시간, 글을 쓴 이의 삶으로 걸어들어가 문장들을 경험하고 행간을 서성이고 감정을 길어내는 활발한 사고 작업의 과정이다.

나는 내 시행착오를 학인들과 공유했다. 침묵을 견디는 법, 그리고 글에 대한 평가와 삶에 대한 평가를 구별하는 방법을 얘기했다. 만약 어린 상주의 글을 읽고서 ‘부모 없이도 잘 자란 훌륭한 사람 많다’고 말하는 건 삶에 대한 평가다. 덕담 같지만 압박이다. 자기 기준으로 상대를 끌고 오는 게으른 태도다. 엄마가 없어서 언제 제일 힘들었는지 결정적인 한 장면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건 글에 대한 평가다. 한 사람의 처지를 헤아리려는 노력의 발로다. 복잡해 보이지만 간단하다. 글에 대한 평가가 더 구체적이고 다정하다. 해결사가 아닌 듣는 사람의 위치를 지키면 된다.

그날 발표자 학인은 후기를 남겼다. “무슨 용기로 엄마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했는지(…) 아마 정리를 하고 싶었던 거 같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글 쓰는 작업이 처음이라 읽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지 못했다며 그는 퇴고를 다짐했다.

읽고 쓰고 말하고 고치기의 반복. 이 고된 노역을 우리는 왜 자처하는가. 글쓰기의 목적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이렇게 정리해본다. 삶이 고차함수인데 글이 쉽게 써지면 반칙이다. 정확한 단어와 표현을 고심하다 보면 자신을 스스로 속일 가능성이 줄어들고, 몸을 숙여 한 사람의 내면의 갱도에 들어가는 훈련으로 남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을 수 있다고.

“모든 사물과 현상을 씨-동기-로부터 본다”(김수영)는 것, 자기 중심성을 벗어나 타인의 처지가 되어보는 일, 사람살이에 꼭 필요한 이것을 교육받을 기회가 드물었던 우리는 글쓰기를 핑계 삼아 공부하고 있다. 꼰대발언, 혐오발언이 승한 시대에 말을 지키는 것은 나를 지키는 것이기도 하니까.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84097.html?_fr=mt5#csidxe2d3af335abd7509266efb7c208a3a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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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인 은유 읽다 -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

[은유칼럼]

“엄마는 생일날 우리랑 안 있고 왜 친구 만나러 가?” 아이가 눈망울을 굴리며 물었다. 예상치 못한 기습 질문에 당황했지만 나는 면접에 임하는 사람처럼 성심껏 답했다. 우리는 매일 밥을 같이 먹고 외식도 자주 한다. 근데 생일에도 가족이 꼭 함께해야 하는 걸까. 엄마는 아빠나 너네들이랑 같이 있으면 자꾸 일하게 된다. 동생이 어리니까 밥 먹을 때도 반찬을 챙기게 되고 신경이 쓰인다. 일상의 연장이고 특별하지 않다. 엄마도 생일에는 마음 편히 보내고 싶다고.


나는 첫아이를 저렇게 질문이 가능한 ‘사람’으로 만들어놓고 둘째를 낳았다. 6년 만에 재개된 육아는 겨우 정돈된 일상을 쉽게 뒤집어버렸다. 내 일이 바쁠 때면 두 아이 손발톱 40개가 꼬질꼬질한 채로 자라 있곤 했다. 늘 동동거리느라 혼이 빠진 나는 틈만 나면 고요히, 단독자의 시간을 탐했다. 아이는 이해했을까. 가족이 아니라 노동을 거부하는 엄마의 마음을.


‘생일은 가족과 함께’라는 사회규범은 유니폼처럼 거추장스럽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늘 함께하는 사람들이 정해져 있다는 게 인간 행복의 관점에서 온당한지 잘 모르겠다. 외부가 없는 삶은 숨 막힌다. 평소에도 밥을 같이 먹는 식구인데 굳이 생일까지 모여야 하는지. 아마도 평소엔 밥상을, 생일엔 잔칫상을 받았던 아버지를 위한 가부장 문화의 잔재가 아닐까 추측한다. 그 수혜자가 아닌 뒷수발 드는 ‘안’사람 처지에서는 가족 ‘바깥’이 선물이다.


엄마가 되고 나면 사라지는 권리들. 자아실현이나 경력 단절보다 먹고 자고 누는 기본 생식 활동에 제동이 걸리는 게 나는 더 혼란스러웠다. 아무리 호텔 요리를 먹어도 아이가 옆에 있으면 맛을 느끼지 못했다. 아이를 두고 나오면 걱정되고 데리고 나오면 성가시고. 첫 수저를 뜨려는 찰나 아이의 ‘응가’ 한마디면 식사의 흐름이 끊긴다. 밥이 허용되지 않는 엄마의 시간. 그뿐인가. 백화점 여성용 화장실 칸 내부에는 접이식 아기 의자가 달려 있다. 몸을 못 가누거나 멋대로 돌아다니는 영·유아를 동반한 고객을 위한 장치다. 지극히 사적인 공간에서도 아이를 그림자처럼 달고 다녀야 한다.


“아이가 태어나고, 타인의 도움 없이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생명이란 것을 알고 나면 그 생명을 키우는 일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된다(130쪽).” 그것을 출산 전에 구체적으로 알 길이 없다. 타인의 도움 없이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한 생명이 다른 한 생명의 일상을 어떻게 바꾸어놓는지, 몰라서 낳는다. 그리고 키우면서 알아간다. 어디로도 도망칠 거리가 확보되지 않는 참 곤란한 관계를 출산과 양육을 통해 경험하는 것이다.


그 무수한 날들, 너무도 모질어서 존재가 공글려지는 시간이 흘렀고 아이들은 자랐다. 지난해 내 생일엔 군 입대를 앞둔 아이에게 미역국을 끓여달라고 부탁했다. 올해는 아직 어린 둘째가 오빠를 대신해 미역국을 차려주었다. 그냥 한번 말해보았는데 밥이 나왔다. 나는 ‘남편 재교육보다 자녀 출산 후 교화가 빠를 수 있다’는 교훈을 공유한답시고 페이스북에 인증 샷을 올렸다. 비혼 친구에게 먼저 반응이 왔다. 좋겠다, 부럽다를 연발한다. 난 스마트폰 계산기를 켰다. 20년, 365일, 세끼를 곱하니 2만1600끼 만에 한 끼가 돌아온 셈이다. 배불리 먹었고 자랑도 했으나 썩 부러워할 일은 아닌 거 너도 알지 않느냐고 말했다. 친구도 선뜻 인정. 이러한 극단적 비대칭 관계를 모성으로 숭앙하는 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자식 키운 보람 따윈 됐고요 육아 수당이나 주세요, 여성들이 요구하는 시대로 변하는 중이다.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난 그래도 엄마가 됐을 거 같다. 아이를 무작정 좋아하는 데다가 한 생명을 키우는 데 필요한 재화와 노동의 총량에 대한 정보는 알아도 구체적인 실감은 어려우니까 용감하게 출산의 길을 가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 놓고 여전히 생일날 온전한 식사를 위한 외출 이용권과 효행 미역국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하는 심정으로 살았으리라.


이러한 내 부산스러운 행동과 생각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낳을 자유’다. “부모를 골라서 태어날 수 없는 아이들의 평등을 지켜주는 공적 자원(281쪽)”과 “아이를 낳지 않고 싶은 여성이 비난받지 않을 자유(283쪽)”가 확보된 상태. 특정 상대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헌신하지 않는 관계 맺음이 가능하도록 가족제도가 개선될 때까지, 나는 무한한 모성을 강요하는 세상의 모든 면접관들에게 말씀드릴 작정이다. 엄마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
우에노 지즈코·미나시타 기류 지음, 조승미 옮김, 동녘 펴냄


원문보기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28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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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창 - 나, 다니엘 블레이크 따라하기

[은유칼럼]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두 번 봤다. 켄 로치의 마스터피스로 꼽히는 만큼 훌륭함으로 꽉 찬 영화지만 난 등장인물들이 같이 다니는 장면에 눈길이 갔다. 주인공 다니엘은 40년 경력의 늙은 목수, 케이티는 아이 둘을 키우는 한 부모 가장이다. 둘 다 관료화된 복지제도의 희생양으로 관공서에서 우연히 조우했다. 처음 만나서부터 허름한 집에 따라가고 소소한 도움을 주고받다가 무료 식료품 보급소나 질병수당 항고심이 이뤄지는 법원 등 비참함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운명의 극장’까지 동반 입장한다.

그냥 같이 따라가는 것. 혹은 가 ‘주는’ 것. 간다는 행위의 조건 없는 증여. 딱히 임무가 없었지만 가면 할 일이 생기기도 하는 것. 어찌할 도리는 없으나 그냥 옆에 앉아 있는 것. 이 무위의 동행은 일상을 분 단위로 쪼개 생산성을 추구하는 현대인에게 가장 어려운 과업인지 모른다. 시간 낭비이자 간섭으로 간주된다. 영화는 다르다. 목적도 거래도 없이 사람과 사람이 그냥 같이 있음으로써 일어나는 일은 가히 혁명적이다. 사람을 도구화하고 인격을 뭉개버리는 사회 제도에 맞서 그들은 존엄을 지켜주고 대변하는 삶의 증인이 된다.

영화에서 본 대로 ‘그냥 같이 가기’를 언제 한번 흉내 내고 싶었는데 그 행위 모방의 기회는 새해 벽두부터 찾아왔다. 작은 출판사를 운영하는 친구가 출판도매상 송인서적 부도로 피해를 입었다. 타격이 크다. 정유라 말 한 마리 값도 안 되는 돈이지만 책 한 권 낼 돈은 넘는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려고 집필 노동을 할 때, 친구는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들려고 편집 알바를 했다. 그 돈을 고스란히 날렸다. 며칠 뒤 국회에서 대책 마련 간담회가 열렸다. 출판인들이 많이 참석해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채권단이 된 처지가 처량해 가기 싫다는 친구를 나는 짐짓 심상하게 따라나섰다.

국회 간담회장엔 출판계 실상을 고하는 말들이 쏟아졌다. 출판계는 아직도 어음이 거래되고 그나마 문방구 종이어음이 사라진 게 불과 1년 전이라는 것. 책을 낸다는 이유로 최하위 신용등급을 받고 있다는 어느 출판사 대표의 증언. 출판업이 사양산업이라며 투자를 기피하고 게임이나 엔터테인먼트 산업만 육성했다는 질책. 무속신앙에 관한 책 안 팔리는 거 알지만 기록을 위해 만들었다고, 출판계가 무너지면 전통, 문화, 미래가 사라진다고, 대출금리 1%, 2% 논할 때가 아니라고 목청을 높이던 한 출판인은 복받치듯 외쳤다.

“우리가 거지입니까!”

옆자리 친구가 울컥 고개를 떨궜다. 건너편 한 출판사 대표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평생 목수로 일한 다니엘이 이리저리 떠밀리다 벼랑 끝까지 다다른 삶의 자리에서 ‘나는 거지도 게으름뱅이도 아니다’ 선언하듯이 책 만들기 외길을 걸어온 그들도 우리는 거지도 장사꾼도 아님을 목 아프게 이야기하고 있다. 당장에 무너지는 출판사를 붙들어 놓고 낙후된 출판유통 시스템을 바꾸는 구조적 대책을 세우길 요구했다.

가난한 출판인들 생살여탈권이 논의되는 운명의 극장을 돌아나오며 또 한 편의 영화를 본 기분이 들었다. 제목은 ‘나, 출판쟁이’. 최소한의 직업적 자부심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 일하는 사람을 종이컵처럼 쓰고 버리는 게 당연한 체제에서, 허기와 모욕에 꺾이지 않고 존엄을 지키려면 더 많이 선언하고 더 그냥 같이 다녀야 할 것 같다. “괜찮아. 네 탓이 아니야. 넌 엄마-출판인으로 잘 버텼어”라는 영화 속 명대사까지 외워서 건네면 더 좋고.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79625.html?_fr=mt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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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아입는 엄마의 옷

[은유칼럼]

올해 내 인생 사건은 군인 엄마가 된 것이다. 지난봄 아들이 군에 간 뒤 앎과 감각이 바뀌었다. 군 의문사에 관심이 가고 참사·재난 기록문학이 다시 읽힌다. 대북 관련 뉴스가 귀에 박히고 뿔테 안경 쓴 앳된 군인이 자꾸 보인다. 거리에 군인이 이렇게 많았나 새삼스럽다. 민간인 청년들이 재잘거리며 노는 모습이 예쁘다가도 10㎏짜리 군장 들고 행군 중인 아들 얼굴이, 부르튼 손이 겹쳐 울컥한다. 이런 심정을 토로하면 주변에서 위로한다. 국방부의 시계도 돌아간다고.


아들 입대 4일 후, 구의역 참사가 발생했다.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열차 사이에 끼여 숨진 청년노동자의 처참한 죽음에, 사고의 원인을 고인 과실로 몰아가려던 원·하청 업체의 비겁한 처사에, 고인의 가방에 나뒹굴던 사발면과 쇠수저에 국민적 분노와 슬픔이 컸던 사건이다. 고인이 아들 또래다. 내겐 울고 싶은데 뺨 때리는 것 같은 뉴스였다. 당시 고인 엄마가 쓴 호소문을 며칠 전 다시 읽었는데 이 대목에서 멈칫했다.


“20년을 키운 어미가 그 아들을 알아볼 수 없다. 저 처참한 모습이 우리 아들이 아니다. (…) 사흘 못 봤는데 너무 보고 싶다. 군대 가거나 유학 갔다고 생각하라고 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몇 년 참을 수 있지만, 군대 가면 휴가라도 나오고 유학 가면 영상통화로 볼 수가 있다. 저는 평생 아이를 볼 수가 없다.” 자식의 군 입대를 ‘가정’하고 부재의 고통을 견뎌보고자 하는 엄마. 죽은 자식을 둔 엄마의 절규와 몸부림이 끊이질 않는 나라에서 내 자식의 무사귀환을 바라고 있자니 어쩐지 죄스럽고 마음이 복잡했다.


자식들이 돌아오지 못하는 나라. 군대 안보다 밖이 안전할까. 신병훈련소 과정을 마친 아들은 얼마나 힘들었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아르바이트할 때보다 어떤 면에서 편했다고. 음식점 알바가 밤 12시에 끝나서 늘 잠이 모자랐고 근무 중 손님이 몰아치면 끼니를 놓치기 일쑤였다고, 군대는 식사와 취침이 규칙적이라 좋더라고 했다. 예상치 못한 대답에 말문이 막혔다. 그래서 군 입대가 적체였나 싶었다. 먹고 자는 삶의 생태계마저 무너진 사회에서 의식주가 보장되는 군대가 젊은이들의 대안적 거처이자 일시적 도피처가 되는 현실은 얼마나 서글픈가.


국방부의 시계가 멈춰도 일상의 시계는 돌아간다. 또 누군가의 시계는 갑자기 정지한다. 오토바이 배달에 나선 청소년 노동자가, 에어컨 실외기 설치 기사가, 스마트폰 만드는 반도체 노동자가 어느 날 질병을 얻고 목숨을 잃는다. 마르크스가 일찍이 간파했듯이 “자본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오로지 1노동일 내에 운동시킬 수 있는 노동력의 최대한도일 뿐”인 야만스런 현실에서 노동에 대면하자마자 인간은 사라져버린다. 구의역에서 청년노동자가 스러졌듯이.


계절이 두 번 바뀌고서야 구의역 참사 현장에 가보았다. 노란 포스트잇 흐드러졌던 승강장은 꽃잎이 진 잿빛 풍경이다. 고인이 ‘끼인’ 9-4 승강장을 시간에 ‘쫓긴’ 이들이 오늘도 바삐 통과한다. 일할수록 닦달당하고 마모되면서 가난해지는데 너도 가고 나도 간다. 아들도 가고 엄마도 간다. 때가 되면 군인 엄마의 옷은 벗어도 재난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불안의 옷은 벗지 못할 것임을 나는 안다. 참사 현장 스크린도어에 비문(碑文)처럼 새겨진 ‘너는 나다’라는 문구를 헤아려본다. 내가 입은 군인 엄마의 옷은 유가족 엄마가 그토록 입고 싶어 했던 옷이고, 유가족 엄마가 입은 슬픔의 옷은 어느 날 내게 입혀질 수도 있는 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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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75900.html#csidx46b2ee9cf0dc94ab180979a99d276b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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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배울 필요가 없는 사람들

[은유칼럼]



매주 토요일에 열리는 촛불 집회는 수업을 마친 후 학인들과 동행한다. 20대부터 50대까지 삼삼오오 몰려간다. 일전에 문화공연에 정태춘이 나왔을 때 사오십대는 작은 탄성을 냈고 이십대는 물었다. “정태춘이 누구에요?” “음유시인인데, 우리나라의 밥 딜런 같은 존재랄까?” 난 가사도 음색도 최고인 가수라고 한껏 들떠 소개했다. 설명을 듣던 친구는 검색 본능에 따라 스마트폰을 켜더니 날 보여준다. 실시간 검색어 1위 정태춘. 집회에 온 젊은이들이 ‘늙은 가수’를 모르는 것이다. 


지난 주말 집회에는 남성 댄스그룹 DJ DOC가 문화공연에 출연할 예정이다가 무산되는 일이 있었다. 현 국정농단 사태를 비판하는 노래를 발표했는데, 박근혜 대통령을 ‘미스 박’으로 칭하는 대목 등이 문제가 돼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이를 두고 SNS에서 논쟁이 일었다. 미스 박은 결혼 안 한 여자를 뜻하는 말이니 문제될 것 없다, 미스 박은 여성비하적 멸칭으로 문제다,라는 의견이 대립했다. 


논리를 떠나서 나는 ‘미스 박’이란 말을 듣는 순간 불쾌했다. 사회초년생 ‘막내 여자’일 때 남자 직원들 커피 타주고 심부름을 해야했는데 그때 난 미스 김이었다. 동기 남자직원은 미스터 김이 아닌 ○○○씨라는 이름 석 자로 불렸다. 물론 문제제기를 했고 일부 시정되었지만 중년의 상사들은 쉬이 바뀌지 않았다. 미스 김 호칭을 완전히 벗은 것은 노조에서 일하면서부터다. 그러니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미스 ○은 도구적 호칭이지 인격적 호칭은 아니(었)고, 성평등 문화를 저해하는 낡은 언어인 게 사실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현직 대통령의 무능과 부정을 비판하면서 왜 꼭 굳이 대통령의 성별을 들먹여서 여성들 전체의 억압된 기억을 들쑤시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집회에 온, 한 번도 미스 김이었던 적이 없는 사람들은 미스 김이었거나 미스 김일 수 있는 사람의 처지를 모를 수 있다. 모른다는 것을 알았으면 무수한 말들을 귀담아 듣고 배우면 되는 일이다. 이건 표현의 자유가 아닌 시민윤리의 습득, 인간 존중의 사안으로 접근해 노력해야 한다. 


광장 밖에서도 말의 간극을 자주 확인한다. 한번은 수업 시간에 프랑스 문학 이야기를 하면서 ‘불란서’(프랑스)라고 했더니 한 친구가 불란서가 뭐냐고 물었다. 어떻게 불란서를 모르는가 싶어 당황했는데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젠 거의 쓰임이 없는 고어가 된 모양이다. 반대로 이십대가 쓰는 ‘금사빠’(금세 사랑에 빠지는 사람) ‘어좁’(어깨가 좁음) ‘딥빡’(깊게deep 빡침)이란 말을 난 한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음성메시지보다 문자메시지를 애용하고 SNS 기반으로 대화를 나누다보니 젊은 세대 중심으로 줄임말이 계속 생산되는 추세고 온라인 언어는 자연스레 오프라인으로 넘어온다. 새로운 말들의 진격 앞에서 어리둥절하지만 그래도 알아들으려 노력한다. 말과 생각을 나누고 살아야 하니까. 


우리는 같은 언어 생활자라도 다른 세계에서 산다. 일반 상식과 가용 어휘가 다르다. 여성의 언어를 남성이 모르니까 미스 박이 뭐가 문제냐고 말하고, ‘젊은이의 병을 늙은 의사가 모르니까’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말하고, 장애인의 언어를 비장애인이 모르니까 박근혜는 발달장애인이라고 말하고, 채식주의자의 언어를 육식주의자가 모르니까 골고루 먹어야 건강에 좋다고 말한다. 언어를 모른다는 것은 한 사람의 고통과 정서를 모른다는 말과 같다. 말을 못 알아듣는 한, 존재의 이해는 불가능하다. 우리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쓰이는 말이 조금도 불편하지 않아 의심해본 적 없는 사람, 새로운 언어 표현을 발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타락한 정권을 욕할지언정 이 엉망인 국가 사회체계에서 사는 데 큰 불편이 없는 기득권자일 가능성이 크다. 아주 최소한의 단어로도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박근혜가 그걸 증명해준다. 


- 한국방송통신대학보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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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은 두 번 절망한다

[은유칼럼]


딸아이가 기르던 머리를 단발로 잘랐는데 친구들이 예쁘다고 했다며 하는 말. “엄마, 나 평생 이 머리만 할래. 박근혜처럼.” 이것은 엄마의 화를 돋우려는 중2의 반항인가. 하필 그분을 따라하느냐 물었더니 박근혜가 평생 한 가지 머리만 했잖아 한다. 그런데 왜 딸아이에게 대통령이 반면교사든 교사든 인생의 중요한 지혜를 알려주는 사람으로 나타나지 않고, 헤어·패션·코스메틱의 교본을 제공하는 사람으로 각인됐을까.


삼십대 후반인 비혼 친구는 수난을 당했다. 엄마가 제발 결혼하라 다그치며 한마디 했단다. “너 그러다가 박근혜처럼 될래!” 엄마는 설상가상 내가 널 박근혜처럼 외롭게 한 거냐고 자책했다고 한다. 완고한 스타일, 드라마 덕후, 미용 시술 애호가, 부모 여읜 불쌍한 딸, 남편도 자식도 없는 외로운 여자 팔자. 박근혜는 초유의 무능과 부정을 기록한 대통령이기 전에 가부장제에서 실패한 딱한 여자, 겉치장에만 골몰하는 한심한 여자가 됐고, 그렇게 “여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여자”(오규원)로 구축된 생애 서사는 우리 일상에서 반복되고 있다.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


그즈음 로자 룩셈부르크(1871~1919) 생애를 다룬 만화 <레드 로자>를 글쓰기 수업 토론 교재로 읽었다. 처음엔 생소한 인물이라며 심드렁하던 이삼십대 학인들 눈빛이 반짝였다. 로자는 고통감수성 영재였다. 열다섯에 이런 글을 남겼다. ‘나는 넉넉히 가진 자들의 양심에 짐을 지우고 싶다. 그 모든 고통과 남몰래 흘리는 쓰라린 눈물의 짐을.’ 여자로서 존재 각성도 단호했다. “작은 부리를 채우기 위해 세상에 존재하는 엄마의 삶”에 몸서리치며 결심한다. 아이를 갖지 않겠다. 로자는 고양이 한 마리 키우고 자유로이 연애했다. 불법 신문을 제작하고 대중파업을 선동하는 혁명가이자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로 생을 모조리 불태웠다.


이런 여자의 일생도 있다니! 출산을 거부하고 더 인간다운 사회체제 이행을 위해 헌신한 인물이 백년 전 존재했단 사실에 가임기 여성 학인들은 혹했다. 왜 아니겠는가. 본보기로 삼을 만한 여자의 서사가 가뜩이나 귀한 한국 사회에서 자식 없는 여자 정체성을 내세워 최초의 여자 대통령이 탄생했으나 딸들에게 자부심은 허용되지 않았다. 여자 대통령은 자기 언어가 없어 기자회견을 기피하고 사소한 결정도 친분 관계에 의존하고 부역자들과 합심해 국가권력기구를 사유화했고, 그와 같은 대통령의 무책임한 행보는 여자라는 종적 미숙함으로 환원되곤 했다. 이전 대통령들이 발포 명령으로 무구한 목숨을 앗아가고 4대강 사업으로 국토강산을 ‘건설 마피아’에 상납해도 남자라서 공격적이고 남자라서 생태감수성이 약하다는 말, 이래서 남자 대통령이 위험하다는 비난은 나오지 않는 것과 대조적이다. 딸들은 두번 절망한다. 한번은 국가시스템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무너뜨리는 잇단 사건들에, 한번은 난세를 틈타 노골화되는 여성혐오에.


지난 토요일엔 딸아이와 같이 세월호 7시간을 다룬 시사프로그램을 봤다. 미용 시술이든 낮잠이든 대통령이 무엇을 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국가적 재난 상황에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가 쟁점이라는 것, 여자 박근혜가 아닌 대통령의 ‘행동 능력’ 부재를 벌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희생된 아이들의 온전한 애도를 위해서 진실은 밝혀야 한다는 대목에선 아이의 손을 꼭 잡았다. 청와대 사람들이 7시간을 비밀로 하는 게 아무래도 수상쩍다며 단발머리 딸아이가 중얼거린다. “국민들이 본때를 보여줘야겠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72010.html?_fr=mt5#csidx3f59b48c8288f4ab6eb88fd17d9fdf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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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주는 여자 - 한 병 딸까요?

[은유칼럼]

배우 윤여정이 ‘박카스 아줌마’로 나온다기에 영화 <죽여주는 여자>를 챙겨보았다. 윤여정이 맡은 배역은 소영.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에 ‘삼팔3.8따라지’(전쟁 고아)로 태어나 식모살이, 공순이, 양공주 등 여러 직업을 거친다. 젊었을 때 미군 흑인 병사와 살림을 차렸고 아이를 낳았지만 키울 여건이 안 돼 해외로 입양 보낸 사연이 있다. 하필 전쟁통에 삶에 제약이 많은 ‘여자’로 태어난 것을 필두로, 살면서 몇차례 난폭한 우연을 통과하자 남은 거라곤 몸뚱이 뿐. 65세 여성 노동자는 가방에 박카스를 챙겨넣고 파고다 공원 일대에서 남성 노인들에게 다가가 안색을 살피며 슬쩍 운을 뗀다. “한 병 딸까요?” 


날 밝으면 가방 챙겨 출근하고 ‘한 건’ 하면 먹을거리 사들고 너털걸음으로 귀가하는 소영. 시계추처럼 반복되는 노동의 일상은 나른하고 덤덤하다. 그리고 그것은 불안정 노동을 수행하는 보편적인 노동자의 모습과 겹친다. 


소영은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다가가서 거절 당할 각오를 하고선 말을 걸어야 하는 세일즈맨이기도 하고, 돈 주는 사람이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내놓아야 단골이 생기고 일이 끊기질 않는 프리랜서이기도 하며, 참지 못하면 살지 못하니 참는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어 수치심을 감내하고 고객의 비위를 맞추는 감정노동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성매매노동자인 그녀는 “춥다, 아프다, 무겁다 같이 정해진 시간 동안 어떤 감각을 계속 느끼는 것을 견디고, 그 대가로 얼마쯤 돈을 받는”(기시 마사히코) 육체노동자이기도 하며, 일하다가 생긴 질병(성병)으로 며칠을 공치는 일용직 산재 노동자이기도 하다.


“한병 딸까요?” 


소영이 따는 그것. 박카스는 신진대사 기능을 회복시켜 정신적, 육체적 활력을 증강시키는 약이다. 박카스를 따겠다는 것은 제 몸에 저장된 에너지를 팔겠다는 뜻이다. 항상 이윤을 창출하는 유일한 상품은 인간의 노동력이라는 마르크스의 통찰대로,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자는 자기를 파먹으며 근근이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나는 지식과 경험을 사유 노동으로 체화해 놓았다가 판다. 이 글을 쓰기 위해서도 내 마음의 영화를 한 편 딴다. 한번 읽어보실래요? 내 글에 공감하는 독자들에게 만족을 안겨주며 밥벌이를 한다. 모든 노동하는 사람의 수고로움이 들어있는 말. 한 병 딸까요? 산다는 것은 내 안에 무언가를 계속 따야하는 일이리라.


윤여정은 이 영화 개봉 즈음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들도 나처럼 부모 밑에선 소중한 딸 아니겠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착잡해졌고 우울해졌다. 사람들은 왜 할 일이 많은데 저런 일 하냐고 손가락질 한다. 그런데 영화 속 대사에도 나오지만, 그것밖에 할 수 없는 속사정이 있을 거다. 함부로 얘기하면 안 되겠더라.”


윤여정은 또한 영화를 하지 않았으면 죽을 때까지 모르고 살았을 세계를 안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의 내밀한 연기 덕분에 나 역시 평소 모자이크 처리되고 음성변조 된채 가십거리로 소비되는 한 존재의 생활 세계를 경험했다. 한 사람의 속사정에 다가갔다. 영화 제목만 봤을 땐 ‘죽여주는’이란 수식어가 직업적 숙련도를 뜻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성적 쾌락과 죽음 대행, 두 가지 의미가 들어있다. 그러니까 영화에서 소영이 하는 일이란, 산 사람 살게 하고 죽으려는 사람 죽게 하는 것이다. 그녀의 단골 고객 증언대로 “소영은 천사”였을까. 그렇다면 아마도 그건 지상의 가장 낮고 위태위태한 자리에서 일생을 살았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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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방송통신대학보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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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것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은유칼럼]


나는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를 다녔다. 중3 초에 그 학교를 알게 됐고 '공부 잘해야 가는 학교' '취업 명문'이라는 말을 듣고 그냥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다. 가까스로 합격했고, 잠실에서 무악재까지 왕복 서너 시간 등하굣길을 힘든 줄도 모르고 다녔다. 난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을 일찌감치 따두었고 2학년 올라가서 5월에 국내 최대의 증권회사로 취업이 결정됐다. 그때부터 책 보고 시 베껴 쓰고 음악 듣고 학교 건물 뒤편 우애동산에서 낙엽 주우면서 한량처럼 놀았다. 금융권에서 여직원은 여상출신이 대부분이었는데, 여상 중에서도 서울여상 출신인 나는 어딜 가나 대접받고 똑똑한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기죽을 일이 없었다. 


고졸의 불편을 느낀 건 결혼할 때였다. 시가에서 노골적으로 내 학력을 문제 삼았다. 2세를 생각하면 엄마 머리가 좋아야한다면서 '그래도' 서울여상이니까 용납한다는 식이었다. 아이를 낳고 아이 또래의 엄마들과 교분이 생겼다. 남편이 목동지점으로 발령이 나서 이사를 갔고 그 동네 평균 학력이 높다보니 난 또 불편을 겪었다. "00 엄마는 몇 학번이야?" 유모차 밀다가 벤치에 앉아서 말문을 트면 그런 인사가 자연스럽게 오갔다. 그냥 멋쩍게 "고등학교 나왔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럼 뭔가 서로 민망했다. 속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덜 무안한 대답의 몇 가지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았다. 


'고등학교만 나왔어요.' '고졸이에요. '대학 안 다녔어요.' '대학 안 나왔어요.' ' '여상 나왔어요.' '서울여상 나왔어요.' 그 어느 것도 상황이 산뜻하지 않았고 어딘가 구차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평범함.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경험하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라는 일본의 사회학자 기시 마사히코는 말대로, 나는 '그것'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난 평범하지 않았던 것이다. 


글을 쓴답시고 밥벌이를 하게 됐고 철학 공부를 하러 연구공동체에 다닐 때다. 나를 아끼는 선배가 말했다. 네가 앞으로 작가로 활동하려면 그래도 대학을 가는 게 낫지 않을까. 거기 다니며 공부할 시간과 돈과 공력이라면 대학을 시도해보라고 했다. 그건 나를 위하는 말이지만 옳은 말은 아니었다. 사회 비판적인 의식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비판하는 사회는 뭐지? 그때부터 유심히 지켜봤다. 지나가는 말로라도 학벌 중심 사회를 비판하는 지식인들은 거의 고학력자들이었다. 학벌 중심 사회를 비판하면서 학벌 중심 사회를 공고화했고 그 틀을 깨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를 내면화했고 자기 자식을 명문대 보내려고 애썼고, 자신이 어느 대학 몇 학번을 자연스레 노출했고 그로 인한 실리를 살뜰히 챙겼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학벌 세탁'에 드는 자원을 마련할 수도 없었다. 몰락한 중산층이 돼버려 월 백만원에 이르는 재수학원비를 감당할 수 없었고, 생계 노동에 나서야 하기에 책상에 붙어 앉아 미적분을 풀 시간이 없었고, 두 아이 양육과 살림만으로도 생체 에너지는 고갈됐다. 그 모든 한계를 떨치고 일어날 만큼 공부에 '한'이 맺혀 있지도 않았다. 지금 책장에 꽂힌 책만 다 읽기에도 남은 인생이 부족할 지경이었는데 내가 왜 굳이 또 그걸. 나는 '그것'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운이 좋은 고졸사람이었다. 비교적 문턱이 낮은 '자유기고가' 직업에 입문해 '열일'했고 전세자금도 올려줬다. 어쩌다 보니 지금은 글쓰기 관련 강의도 나간다. 학력 문제는 계속 따라다닌다. 내가 주로 강의를 나가는 곳은 시민단체다. 나랏돈을 받아 운영되다보니 강사료 지급 기준이 박하고 엄격하다. 다른 통로로 최저 강사료를 마련해주기 위해 활동가가 애를 먹기도 한다. 작년에 모대학 특강을 갔을 때는 강사료 지급 기준에 석박사는 있어도 고졸 학력 기준은 아예 없어서 새로 만들어야 했다고 했다. 


불편해도 괜찮았다. 나의 평범하지 않음, 소수성으로 인해 겪어야 했던 여러 갈래의 경험은 내가 사회학이나 여성학, 철학을 공부하는 데 자양분이 되었다. 현실 문제에 부딪혀 본 것들이 이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여자라서 불편한 게 많다 보니 피곤하긴 해도 생각하면서 살 수 있었던 것처럼, 고졸이란 신분도 그랬다. 덕분에 내가 누구이고 내가 어디 있는지 늘 되묻고 깨어 있어야 했으니까. 


얼마 전 어느 출판사에서 공저로 참여하는 출간 제안을 받았다. 공저자 명단에는 평소 내가 영향 받은, 밑줄 치며 책 읽는 저자의 이름이 나란히 있었다. 나는 그의 언어로 젠더, 나이, 인종, 학력 등 온갖 차별에 눈떴다. 저항하는 법을 배웠고 인권 감수성을 키웠다. 내가 여기에 껴도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관심이 가는 주제여서 써보기로 했다가 마음을 바꿨다. 이유는 국가폭력피해자 인터뷰집 발행 작업을 마감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이미 한 것 같아서, 주제가 겹치는 듯해서다. 


그런데 원고를 못 쓰겠다는 이야기를 꺼내면서 출판사의 난처한 입장을 전해 듣게 되었다. 공저자 가운데 한 사람이 본인은 필자로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하며 내가 이 책의 저자로 끼어 있다는 사실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자세한 정황은 듣지 못했으나, 나는 ‘그것’에 대해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필진의 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문제가 될 까닭이 무엇인지 나는 짐작하기가 어렵다. 동등한 ‘저자’ 입장에서 본인이 참여하지도 않을 기획에 다른 저자의 참여에 불편함을 느끼고, (느끼는 것까지야 자유라 하더라도) 그것을 기획자에게 굳이 전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나는 모르겠다. 나는 잊고 살아도 세상은 잊지 않으므로 ‘그것’을 자주 생각해야 한다. 나는 평범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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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누드모델

[은유칼럼]

‘나는 해부학적으로 그려져 걸릴 것이다/ 훌륭한 박물관에. 부르주아들이 나지막이 탄성을 지르겠지/ 이런 강변의 매춘부 이미지에 대고. 그들은 그걸 예술이라 하지.’


영국 시인 캐럴 앤 더피의 <서 있는 여성 누드> 일부다. 시의 화자는 누드모델. 자신에게서 ‘색을 뽑’고 움직임을 통제하며 권력 감정을 느끼는 화가를 ‘조그마한 남자’(little man)로 부르고, 누드화에 감탄하는 영국 여왕을 ‘웃긴다’고 말한다. 이 시에서 여성은 그려지고 보여지는 존재가 아니라 생각하고 말하는 존재다. 자신을 보는 화가-관객을 보는 시선의 전도로 인해 역사상 목소리를 가진 적 없는 누드모델이 견자(見者)로 등장한다.


친구의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이탈리아에서 미술관엘 갔는데 길게 늘어선 줄이 거의 여성이더란다. 전시실엔 백인 남성 화가 작품들만 걸려 있음은 물론이다. 관람을 마치고 바닷가에 갔더니 미술관에서 안 보이던 남자들이 해변에 누워 여자들을 감상하고 있더라나. 왜 여자는 보여지고 (그걸 또 돈 내고 보고) 남자는 창작하게 된 거냐고 푸념했다.


그런데 위의 시에 따르면 화폭 속 여자는 수동적인 대상으로 가만히 있지만은 않는다. 자신을 보는 사람들을 관찰해 통찰을 얻는다. 그는 ‘해야만 하니까. 다른 선택이 없으니까.’ 그저 그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화가나 자신이나 같은 처지라며 이런 시구를 남긴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하지’


인간사를 아우르는 간명한 명제다. 난 일전에 한 남성 철학자의 책을 읽었는데 서문에는 이 방대한 저서를 집필하느라 시간이 얼마나 걸렸고 몸이 어떻게 탈진됐는지 병명까지 상세히 적혀 있었다. 그 비슷한 시기에 빵집 아줌마 얘기를 들었다. 김밥집에서 수년간 일한 그는 김밥을 하도 말아 손목 관절이 손상돼 그만두고 시장통 빵집에 겨우 취직했다. 빵 담고 거스름돈 내주는 일이 망가진 손목으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동작인 탓이다.


어떤 직업은 노동의 결과물이 보존되고 과정의 수고로움이 기록된다. 존경과 동경을 받는다. 어떤 직업은 아니다. 노동의 성과가 사라지고 고충이 음소거된다. 폄하와 무시를 당한다. 사회적 무지와 몰이해. 그것이 직업의 귀천을 만들고 구조적 불평등을 낳는 건 아닐까. 대부분의 직업이, 몸이 축난다는 점에서 단순직이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점에서 전문직이다. 저 ‘누드모델’이 응시하듯 누군가를 깊게 들여다본 적 없는 우리는, 서로를 동등한 동료 시민으로 바라보지 못한다.


내 직업 작가도 학자와 더불어 문(文)을 숭상하는 한국 사회 유교적 전통의 수혜 직군이다. 가난해도 대접받는 편이다. 그런데 글 쓰는 직업에도 위계가 있다. 자유기고가와 르포르타주 작가로 일하는 내게 사람들은 예사롭게 묻는다. “시나 소설은 안 쓰세요?” “등단하셔야죠.” 저 순문학 세계에 이르는 길 어디쯤에 비소설 분야 문필하청업자 자리가 있지 싶다.


장르는 갈래다. 장르 자체가 작품의 고귀함을 보장하지 않는다. 직업이 인격을 담보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세상에는 권력에 빌붙어 합리적 생존성만 따지는 의사나 법조인이 있고, 약자에게 다정한 (성)폭력을 휘두르는 문인과 교수가 있다. 특정 직업에 덧씌워진 환상을 벗겨내고, 그 일이 누구의 이익에 복무하는지, 다른 존재를 억압하진 않는지, 어떤 관점을 내포하는지 ‘해부학적으로’ 따져야 한다. ‘나는 볼 수 있다’고 말하는 누드모델처럼, 보여질 때조차도 보는 사람이 예술가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67850.html?_fr=mt5#csidxeadf8fc1bd4f6978e99e915ef7a03f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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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삶의창] 내 인생이 그렇게 슬프진 않거든요

[은유칼럼]



아이들이 이백 명 넘게 있더라, 생각해보니 나 학교 다닐 때 우리 반에도 보육원에 사는 애가 없진 않았을 거 같아. 업무차 보육원에 다녀온 친구가 말했다. 그 아이는 반 친구를 집에 데려오지 못하고 남들처럼 부모형제와 사는 듯 지냈을 텐데 싶어 애처로운 마음이 든다고 했다. 나와 같은 시간대를 통과했을 한 아이를 나도 가만히 떠올려보았다. 있는 그대로 자기를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의 가슴은 때때로 얼마나 졸아드는가.


예전에 보육원에서 만난 취재원이 떠올랐다. 원생이 성인이 되면 약간의 생활자금을 갖고 시설을 나간다고 말했다. 난 좀 놀랐다. 방 한칸 구하기 어려운 소액으로 가족도 없는데 어떻게 자립을 하느냐며 살짝 분개했던 거 같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자기가 그 경우랬다. 시설에서 살다가 스무 살에 독립해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이곳에서 일한다고. 그러니까 나는 ‘보육원 출신 성인’이라는 추상적 인격을 상정하고 걱정인지 동정인지 모를 감정을 표출했는데, 그 실제 인물이 눈앞에 있었던 거다. 소매 걷은 흰 셔츠 입은 이십대 여자의 침착한 얼굴로.


한 움큼 부끄러움을 삼키며 나는 배웠다. 동정이든 차별이든 그 아래 깔린 근본 생각은 다르지 않다는 걸. 어떤 대상을 자기 삶의 반경에 없는 분리된 존재로 취급하는 것(고아들이 불쌍하다), 한 존재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 특정한 면만 부각시켜 인격화하는 것(장애인은 무능하다), 자신은 결코 되지 않을 이질적 대상으로 상대를 보는 것(공부 안 하면 노숙인 된다). 하나같이 타자화하는 말들이다.


배울 일은 계속 일어났다. 장애여성들과 글쓰기 수업을 할 때다. 손 움직임이 불편한 학인이 A4 용지 두 장 분량의 과제를 제출했다. 구족화가처럼 발가락으로 자판을 두드렸을까? 어떻게 썼는지 물었더니 스마트폰을 코로 눌러 글을 써서 컴퓨터 문서에 옮겨 출력했단다. 난 또 놀랐다. 코로 글을 써요? 옆에 있던 활동가가 코로 게임도 엄청 잘한다고 일러줘 다같이 웃었다.


코로 글을 쓰는 그는 연극도 하고 아이도 키우고 강의도 한다. ‘장애의 이해’란 주제로 인권 교육을 나가는데, 사람들이 휠체어를 타고 말투가 어눌한 그를 강사보다는 딱한 장애인으로 보는 모양이다. 교육이 끝나면 다가와 ‘꿈을 잃지 말고 살라’ ‘얼굴은 예뻐서 다행이다’라고 말하거나 불쌍하다고 끌어안고 우는 사람도 있단다. 이 촌극 같은 상황을 두고 동정심만 키운 망한 교육이라며 그는 웃음 머금은 채 말한다.


“내 인생이 그렇게 슬프진 않거든요.”


안 보이는 사람의 나라가 있다. 삶에 대한 상상력이 직업에 대한 정보력을 넘지 못하는 수준이다 보니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사람의 이야기는 사라져간다. 남성, 이성애자, 서울 출신, 명문대 졸업, 전문직 종사자로 표상되는 소위 정상적 삶의 서사는 매스컴으로 구전으로 맹렬히 유통되는 반면, 거기서 벗어날수록 삶의 서사를 구성하기가 어렵다. 장애여성 강사처럼 자기 경험과 생각과 감정을 말할 기회가 드물고, 겨우 말한다 해도 오해나 동정을 산다. 그런데 남에게 자기 얘기를 하지 않으면 사람은 자기를 알기 어렵고 사회에 자신을 위치 지을 수도 없다. 말소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아마도 사람을 단정하는 내 ‘꾸준한 고집’으로 눈앞에서 놓쳐버린 무수한 타인들이 있을 것이다. 다시 듣기를 시도한다. 저마다 처지와 형편과 고민을 말하고 듣고 상상하는 동안 서로의 존재 정착을 도우리라. 




2016.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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