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왕따 생존자의 말하기

[은유칼럼]

오래된 농담처럼 ‘왕따’라는 단어를 말하기까지 십수년이 걸렸다. 그녀는 중학생 때 지독한 왕따를 당했다. 3년 내내 혼자 다녔다. 점심시간에 혼자 밥을 먹고 들어오면 책상에는 아이들이 남긴 반찬, 그러니까 음식물 쓰레기가 올라와 있었다. 매일 울면서 집에 갔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언니가 담임을 찾아가 말했으나 담임은 조회 시간에 주의 한번 주고 말았다. ‘네 동생 왕따라며?’ 외려 언니가 반에서 따돌림을 당했다. 약한 것을 비집고 들어가는 괴롭힘은 죄책감 하나 없이 당연해 보였다.


폭력을 꾸준히 당하자 그녀에게도 폭력 성향이 생겼다. 부모가 뒤를 받쳐줄 수 있다면 걸상을 들어 누구라도 내리찍고 싶었다. 외부로 향하지 못한 공격성은 육체의 말단인 손톱을 향했다. 하도 물어뜯어 검지에서 중지로, 중지에서 약지로 손톱에선 늘 피가 번졌다. 밤마다 자문자답의 꼬리물기가 시작됐다. 왜 나한테 그럴까, 내일 학교 가면 나아질까, 가해자 부모를 찾아가서 말할까, 차라리 자살할까…. 인생에서 일어나는 크고 힘든 사건일수록 그렇듯이 그녀는 자신이 당하는 고통의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스물셋, 동사무소 헬스장에서 중학교 동창을 만났다. 10년 만에 마주친 그 동창, 시도 때도 없이 쿡쿡 찌르고 욕설을 뱉던 왕따의 가담자는 그 자리에서 사과했다. “미안하다.” 얼결에 이뤄진 재회와 사과를 그녀는 속수무책 받아들여야 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열불이 났다. 억압된 것의 회귀. 상대는 죄책감 덜고 살자고 사과했을지 모르나 그녀는 치욕의 불구덩이에 다시 빠져들었다. 뒤늦게 대학에 진학해 시야와 관계를 넓히며 악몽에서 벗어난 그녀는 고통의 언어화 작업을 시도했고 ‘폭력과 기억’을 주제로 글을 썼다.


“말로 받았던 폭력과 그들의 얼굴은 하나하나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 기억하고 있는 것 자체가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잊지 않고 있다. 이건 내가 용서해야 지워질 폭력에 대한 기억이다.”


그녀는 나와 함께 글쓰기 공부를 한 학인이다. 자라지 못한 손톱을 부채처럼 펼쳐 보이는 그녀 앞에서 난 몹시도 부끄러웠다. 함부로 하는 사과가 자기기만인지도 모른 채 어른이 됐고, 왕따의 화살이 내 아이만은 비켜가길 바라는 학부모로 사는 내게 그녀의 증언은 엄중한 진실로 압도했다. “잊지 않겠다.”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택한 ‘존엄의 회복’의 수순이 꼭 그와 같았다.


“나는 범죄자들을 한 사람도 용서하지 않았다. 지금도, 앞으로도 그 누구도 용서할 생각이 없다. 이탈리아와 외국의 파시즘이 범죄였고 잘못이었음을 인정하고 (…) 그것들을 뿌리째 뽑아내지 않는 한 말이다.”(<이것이 인간인가> 270쪽)


왕따를 당한 아이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생존자가 된다는 뜻이다. 왕따 학생 자살 사건이 사회면 단골 뉴스가 된 현실이 이를 말해준다. 그러니 섣부르게 용서하지 않겠다는 그녀의 말은 존엄 회복의 노력이고 폭력 근절의 실천이다. 오늘도 손톱을 뜯으며 폭력의 독을 빼내고 있을 아이들은 어떻게 슬픔에 익사당하지 않고 ‘사건의 반복’을 사유하는 생존자가 될 수 있을까.


그녀는 두 가지를 말한다. 눈가가 젖어 있거나 교복이 망가졌거나 “티는 나는데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아이들을 살필 것. 당사자는 숨기지 말고 ‘고통 말하기’라는 우연한 시도를 누릴 것. “처음에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내 아픔의 정보를 내주었을 때 상대방도 자기 얘기를 터놓았다. 왕따나 직장 괴롭힘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 한겨레 '삶의창' 2016.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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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죽지 않는 자기소개

[은유칼럼]



"저는 나이가 많습니다. 70살인데 결혼을 안 했고 자식이 없고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어느 지역 평생학습관 글쓰기 수업 첫시간, 한 여자 학인이 떨리는 음성으로 자기를 소개했다. 일흔 살에 비혼 여성? 내용의 희소성보다 그 사실을 서슴없이 터놓는 당당함에 처음엔 당황하고 곧이어 감탄했다. 


일정한 나이에 학교 가고 취업 하고 결혼 하고 자식 낳고 사는 인생 행로를 가지 않으면, 한국 사회에서는 시시때때로 불편을 겪는다. (중년 여성은 무조건 ‘어머님’으로 불린다.) 왜 남들처럼 살지 않는지 설명을 요구받는다. 그 번거로움을 그는 예사롭게 자처했다. 


이후 수업에서 그는 오육십년 전 시골에서 난치병을 앓는 여자 아이로 성장한 이야기, 건강과 배움을 박탈당했다가 되찾아가는 이야기를 여러 편의 글로 썼다. 그의 생애는 늦깍이 학생으로 대학졸업장과 사회복지사 자격증까지 획득한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거나 장애를 딛고 열심히 살아가는 '희망의 증거'가 될 만한 내용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는 자기생애 서사를 휴먼스토리로 일반화 시키지 않았다.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주어진 정체성의 규정 요소들- 건강, 계급, 성별, 나이, 지역 등-을 부정하거나 떼어버리려 하지 않았다. 아픈 몸을 치료하는 노력들, 외롭던 시간들, 가족 아닌 동료들과 배우고 놀며 성장하는 일상을 그려냈다. 아프니까, 여자니까, 늙었으니까 등등 매 순간 걸림돌이 됐을 요인들을 자기 삶으로 통합해냈다. 그 연장선상에서 거침 없는 자기소개가 가능했던 것이다. 


"25살 동안 글을 모르고 살았다." 위의 평생학습관 수업에서 한 남자 학인이 발표한 글의 첫 문장이다. 이토록 강렬한 서두라니. 난 또 움찔했다. 그는 안마시술소, 때밀이, 막노동꾼, 공장노동자, 모텔 종업원 등을 전전하다가 “직업을 당당하게 말하고 싶어서”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검정고시학원에서 한글 공부를 하며서 중장비 기술 자격증을 15개나 땄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은 후 맘처럼 늘지 않는 글쓰기와 독해력을 높이고자 인문학 공부를 시작했다며 이렇게 썼다. 


"책을 읽으면 똑똑해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공감 능력이 좋아졌다. 내가 바라는 것은 똑똑한 인간이 되는 건데 참 이상했다." 그는 이어 고백한다. “글을 몰랐을 때는 항상 움츠리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능력도 없었고 자신감 없이 살았다. 글을 오랫동안 배우면서 내 생각을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고, 자신감도 생기고, 인간으로서 성숙한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됐다.”


나는 이곳 평생학습관 수업을 결정하기까지 망설임이 컸다. 왕복거리가 4시간, 집에 오면 자정이 되기 때문이다. 10주의 여정을 마치고 나니, 여길 안 왔으면 어쩔 뻔했나 싶다. 평생학습관에서 수업은 ‘평생’학습의 본디 뜻을 상기시켜주었다. 사람은 왜 공부해야하는지, 읽고 쓰기는 어떻게 내면의 힘을 기르는지, 타인의 삶에 눈 떠가게 하는지. 


인류학자 김현경은 “정체성에 대한 인정은 특정한 서사 내용에 대한 인정이 아니라, 서사의 편집권에 대한 인정이다.”라고 했다. 자기자신에 대해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자신이라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평생 배우고 쓴다지만 자기 생애를 지배 규범의 주어진 틀 안에서 되풀이하고, 어떤 이들은 뒤늦게 배우고 쓰면서 자기 인생의 저자가 된다. 자기가 누구인지 ‘기죽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평생학습이 유행처럼 번지는 시대, 모두가 공부해야한다면 이 특권적인 힘을 기르기 위해서가 아닐까. 


(두달 전 방통대에 기고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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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절대로 하지 마

[은유칼럼]

‘자유로운 영혼 뒤에는 울부짖는 처자식이 있다.’ 넥타이 맨 사람보다 기타 든 사람에게 쉬이 매료되던 내게 선배가 해줬던 충고다. 연애 상대자의 미덕이 결혼하면 악덕이 될 수도 있다는 그 생활 격언에 따라 기타 치는 직장인과 결혼했고, 아이를 둘 낳았다. 가족제도 울타리에 들어앉은 나는 애 낳고 사는 일상이 갑갑할 때마다 영화나 문학(같은 삶)으로 도피했다.


소설 <마담 보바리>류의 몰락 서사는 늘 매혹적이었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리는 인생이라니. 사진가 앨프리드 스티글리츠와 화가 조지아 오키프의 사랑은 또 어떤가. 여자는 아이를 원하지만 남자는 출산에 반대한다. 스물세살 연상 남편이 ‘핏줄’을 거부하고 아내의 일을 독려하는 이국 문화는 낯설고 부러웠다.


여성이 책을 낼 수 없었던 19세기, 남편의 폭력에 못 이겨 애 둘 데리고 이혼한 뒤 뭇 예술가들과 자유연애를 구가한 스캔들의 여왕이자 쇼팽의 뮤즈였던 소설가 조르주 상드에서 1930년대 파리지앵과 바람나서 이혼당하고 행려병자로 죽은 우리의 신여성 예술가 나혜석까지. 금기와 위반의 서사는 사랑, 자유, 욕망, 존엄 같은 큰 물음 앞에 나를 세워놓았다.


어설픈 몽상가 아줌마를 현실로 데려온 건 홍상수였다. 술과 말이 흥건한 그의 영화는 지적이고 자유로운 영혼을 가장한 울부짖는 중년 남자의 민낯을 전시했다. ‘불쾌한 사실을 직시하는 능력’을 가진 그의 영화를 난 꼬박꼬박 챙겼다. 그는 사랑의 위대함이 아닌 집착, 질투, 미련, 지배욕망 같은 지지하고 시시하고 이중적인 감정들을 보게 했다. 사랑과 사랑 아닌 것을 자꾸만 생각하게 했다.


얼마 전 공개된 홍상수와 김민희 연애 소식을 나는 스크린 바깥으로 흘러넘친 영화라고 보았다. 그들이 일에서 보여준 존재감 그대로다. 길들여지지 않는 눈빛을 가진 배우다웠고 영화와 현실을 뒤섞는 능청스러운 감독다웠다. 역시 어느 시대나 다르게 살 수 있는 사람은 다르게 사는구나 싶었다. 안전한 삶보다 모험적 사랑에 존재를 던지는 선택은, 지리멸렬한 관계의 파고를 넘는 평범한 삶만큼 존중받고 보존해야 할 사랑의 역사가 아닌가.


일각에선 단죄 여론이 들끓었다. ‘전지적 홍상수 부인 시점’으로 접근한 기사들은 한 사람을 온전한 사랑의 주체가 아닌 작정한 가정파괴범으로 지목했다. ‘나이 어린 년’은 어떤 이슈에서도 약자다. 실제로 아버지나 남편의 외도를 경험한 주변인들이 자신은 이런 사건을 ‘쿨하고 힙하게’ 받아들일 수 없음을 고백했다. 그런데 그들은 또한 가장의 부재로 생존에 위협을 느꼈던 자기 고통을 진술하고 남겨진 자의 아픔을 헤아려야 한다고 말한다. 자유로운 영혼 뒤에는 내적 성숙을 이뤄가는 처자식도 있는 것이다.


“이유(EU)도 해체될 거 같은데 우리는 해체 안 해?” 기타 치는 일보다 차트 보는 일에 골몰하는 남편이 묻는다. “언제든”이라고 나는 눙친다. 결혼도 이혼도 인연의 방편이자 나은 삶을 위한 선택이라고 여기면서도 삶의 관성을 깨지도 못하고 사랑의 물음을 놓지도 못하고 나는 살고 있다. 좋은 영화, 좋은 문학이 품어온 사랑과 자유의 가치가 일상의 문화 감각으로 승인되는 일은 요원할까.


합리성과 익숙함으로 최적화된 세상에서 인간 정신은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다. 그러니 ‘사랑을 목발질하며’(기형도) 살아가는 희귀종들을 그냥 살게 두면 안 될까 싶다. 홍상수는 <옥희의 영화>에서 사랑 꼭 해야 하냐는 질문을 던지고 이렇게 답한다. “사랑 절대로 하지 마. 정말 안 하겠다고 결심하고 딱 버텨봐. 그래도 뭔가 사랑하고 있을걸?”



<한겨레> 삶의 창, 2016. 7.1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50579.html?_fr=mt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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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의 말

[은유칼럼]

“너희들보다 훨씬 더 상위에 있는 종족들이에요.” “무조건 남자들은 앞으로 살면서 여자 말을 듣고 산다 생각하면 중간은 간다.” “여자들이 불쌍한 남자 잘 보살펴 달라.” “사람이 아니고 개다 생각하면 싸울 일이 전혀 없습니다.”

이것은 누구의 말일까. 인터넷에 떠도는 김제동의 강연 동영상 자막이다. 김제동은 ‘연애할 때 싸우지 않는 법’을 특유의 입담으로 설파하고 객석을 채운 선남선녀 커플들은 물개 박수를 치면서 박장대소다. 화기애애한 강연장 분위기를 보는 나는, 웃자고 하는 말에 땅이 꺼져라 한숨 쉰다. 

김제동의 말은 여성을 치켜세우고 남자를 비하하는 듯하지만 아니다. 한 사람을 보살피는 것은 한 우주를 헤아리는 일이다. 친밀성 능력, 정서적·육체적 노동 다 투여된다. 두 사람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왜 한쪽이 도맡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가족도 학교도 못한 ‘사람 만들기’를 한 개인이 할 수 있을까. 왜 스스로 사람이 되라고 말하지 않고 관계의 무임승차를 권유할까. 

사실 김제동의 말은 새삼스럽지 않다. 최진실을 세상에 알린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라는 유명한 광고 대사, “며느리가 잘 들어와야 집안이 잘 된다”는 시어머니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남자 보살피는 것도 부족해서 집안 부흥의 책무(일명 ‘효도 대행’)까지 여자에게 부과하는 게 가부장제 일반적인 관습이고 정서다. 

“당신 좀 쉬어. 내가 할게.” “당신 수고 했어. 잘 먹을 게.” “당신은 엄마로서 교사로서 참 열심히 사네.” “당신 그런 것도 할 줄 아나. 대단하네.” 

이것은 누구의 말일까. 얼마 전 교사들 공부 모임에서 어느 교사가 쓴 글이다. 살면서 남편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이라며 일일이 나열했다. 저게 뭐라고 처량하게 감정이입하는 여성들이 나 포함 많을 것이다. 결혼 후 아무 의심 없이 돌봄노동, 가사노동을 자처하고 헌신했다. 가족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자 아내이자 엄마로서 임무 수행이라고 여겼다. 문득 회의가 밀려온다. 왜 맨날 나야? 

20년 돌봄 노동을 그녀는 멈췄고 남편은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전통적으로 성과 사랑의 주체는 남성이지만,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동은 여성이 담당한다. 여성이 노동을 그만두는 순간, 대부분의 관계도 끝난다.”(정희진)

그날 모임에서 김제동의 말을 들려줬다. 개념 있는 연예인의 말이니까, 남자는 애 아니면 개다는 익숙한 말이니까, 처음엔 맞다며 동조한다. ‘왜?’라고 의심하고 토론하면 각성이 일어난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던데) 내가 좀더 현명하게 남자를 이끌었으면 평등한 부부관계가 되지 않았을까 자책하는 자기 모습을 발견한다. 

그렇게 알아간다. 사회 문제에 개입하고 약자 편에서 발언하는 미더운 방송인도, 좋은 삶을 위해 공부하는 여성 자신들도 가부장제 언어를 내면화하고 산다는 사실을. 내면화는 일상화라는 것을.

외부 강연을 나가면 꼭 나오는 질문이 있다.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는데 감응력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하나요?” 느낌의 불모상태, 친밀성의 무능력을 호소하는 이들은 예외없이 남자 사람이다. 그런 질문이 반갑다. 무조건 남자를 보살피며 살지 않겠다는 여자들이 나타나고 있듯, 무조건 여자 말만 듣고 살아도 되던 남자들이 사라지는 것 같아서다.

‘여성이 상위 종족’이라는 명령은 권력의 말이다. 노동자를 산업의 역군이라 명명하(고 착취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쪽의 수고로 한쪽이 안락을 누리지 않아야 좋은 관계다. 

모든 사건과 사물의 질서를 정의하고 정리하고 판단하고 명령하는 마이크 권력이 줄어들고, 왜 맨날 나인가 회의하는 물음, 화장실 좀 맘 편히 가자는 일상의 억압을 증언하는 목소리가 흘러넘치길 바란다. 그럴 때만 남성의 조화로운 인격 형성을 방해하고 여성의 평화로운 일상 활동을 가로막는 가부장제 언어는 무력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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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통신대학보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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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은유칼럼]


그렇게 화장도 안 하고 다니다간 피부 망가진다는 경고를 20대부터 들었다. 내 딴엔 스킨로션을 바르고 분첩을 두드린 건데 그랬다. 뭘 어떻게 덧발라야 화장한 티가 나는지, 자외선이 차단되는지 알지 못했다. 확 망가지지도 않고 쫙 피어나지도 않고, 피부는 제 나이를 야금야금 먹어갔다. 피곤하면 뾰루지가 나고 뾰루지를 뜯으면 착색이 됐다. 새살이 돋지 않고 어엿한 잡티로 남았다. 세포 재생력이 떨어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어느 날 자고 나니 오른쪽 눈가에 콩알 만한 얼룩이 생겼다. 자고 나니 책에 누운 글자가 흐릿해지던 즈음이다. 혹시? 이건 할머니 손등이나 얼굴에 나는 건데 난 ‘아직’ 40대이므로 설마했다. 노안이란 말을 그랬듯이 그말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럴수록 거슬렸다. 내게 ‘화장하라’던 조언자 일군은 충고했다. ‘피부과 좀 가라.’ 


검버섯. 내심 따돌리던 그 단어를 인터넷 검색창에 넣었다. 연관 검색어로 검버섯 제거비용, 검버섯 제거방법이 줄줄이 떴다. 링크를 하나씩 눌러봤다. 대부분 성형외과 광고글이었다. 비용도 천차만별. 십만원부터 백만원까지 개수와 크기와 기기에 따라 시술 비용이 달랐다. 몇 개까지 얼마라는 할인 혜택은 혹했다. 천천히 스크롤을 내리던 나는 ‘제거 후 미백 관리가 필수’라는 문구를 본 다음에야 검색창을 닫았다. 


<몸에 갇힌 사람들>의 저자 수지 오바크는 말한다. “언어들이 사라지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다양한 신체 종류들과 표현들이 사라지고 있다...다양성과 차이라는 강점을 잃어가고 있다...우리는 몸을 개조하기를 원하고, 미용산업에는 떼돈을 벌어다주면서 스스로에게는 엄청난 상처를 안긴다.” 여기에 밑줄을 그었다. 


영화 비포시리즈는 내 인생 영화다. <비포 선라이즈>(1995)에서 <비포 선셋>(2004)으로 <비포 미드나잇>(2013)까지, 동일한 남녀 주인공이 이십대부터 사십대까지 30년 시간의 폭과 결을 ‘몸소’ 보여주는 연기와 설정은 단연 독보적이다. 그들이 방부제 미모였으면 영화가 그토록 기품있었을까. 주름과 잡티를 예찬하던 나다. 


그런데 왜 나는 내 얼굴에서 ‘그것’을 지우려했을까. (난 쥴리 델피가 아니니까) 수지 오바크 말대로 “몸이 흡사 낡아서 창피한 부엌이라도 되는 것처럼” 못마땅하게 굴었을까. (쥴리 델피처럼 예뻐지고 싶어서) 내 신체 박피 욕망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용납하지 못하는 개발 신화와 얼마나 다를까. (쥴리 델피는 영화에서 사나운 환경운동가다)


지루한 연휴 끝의 피부과 광클릭, 그 시작은 심각했으나 시시하게 종료됐다. ‘병원이 병을 만든다’는 책도 있다시피, 피부과에 가면 점과 잡티는 무한 발명된다. 피부과나 성형외과 시술은 한번 받은 사람은 없다지 않은가. 안 하거나 또 하거나. 


‘계속’이라고 말하는 건 자본의 오랜 속삭임이다. 그 지속적인 피부 재생 및 미백 관리 및 주름 제거에 들일 시간과 비용이 내겐 없다. 운명이고 다행이다. 사회적 문화적 압박에 시달리는 몸들을 만들어내는 미용산업 대열에 섣불리 발 들이지 못한다. 가끔 흔들릴 것도 같다. 잡티 빼는 게 뭐라고, 남들 다 하는데, 하면서 공돈이라도 생기면 피부과 문을 빼꼼히 열지도 모르겠다. 


내 몸과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 질문이 남는다. 노화는 섭리다. 몸에 대한 근원적 불안과 불만의 강도가 높아질 날들이 기다리고 있다. 내것이 아닌 것 같은 몸, 낯선 모습으로 고개 내밀 얼굴과 동거하는 연습을, 콩알 만한 그것으로 해보고 싶다. ‘일찍 시작하고 자주 시행하라’는 시대적 요청에 거슬러, 40대부터 잡티 제거 안하고 살면 어떻게 되는지, 나의 신체 표현이 나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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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통신대학보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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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장애인 아버지가 된다

[은유칼럼]

지하철 객차에서 장애인 아들과 비장애인 아버지를 보았다. 건장한 성인 체격의 아들은 천진난만한 어투로 목청껏 떠들고 크게 웃었다. 주변의 눈길이 일제히 쏠렸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조금만 작게 말해달라고 타일렀다. 자상한 눈빛이었다. 부자지간의 대화가, 그들의 외출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나는 그 아버지를 따라가고 싶었다. 직업정신인데, 무수한 이야기가 깃든 얼굴, 자기정리가 된 듯 편안한 기운에 끌렸다. 어떤 일로 웃는지, 속상한지, 불편한지, 실망하는지, 어떻게 기운 차려 하루를 살아가는지 궁금했다. 매스컴에 소개되는 동정과 차별의 대상인 장애인 말고 다른 이야기들, 지하철 한 칸에 섞여 타는 동료 시민으로서, 애 키우는 같은 부모로서 사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나의 부모님도 장애인 아들을 두었다. 오빠가 삼십대 초반 급작스런 질병으로 장애를 얻었다. 신앙심 깊고 인정 많은 엄마는 평소 약하고 병든 이를 도와야 한다고 말했지만 막상 당신의 아들이 ‘사회적 약자’가 되자 크게 절망했다. 엄마에게 장애인은 동정의 대상이지 인정의 실체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병실에 있는 사람들에게 늘 이렇게 설명했다. “얘가 ○○대를 나왔는데 이렇게 됐다.” 그런 말을 하는 아버지가 나는 민망하고 애처로웠다. 그건 장애인이라는 ‘비정상성’의 노출을 학벌 자원이라는 ‘정상성’의 외투로 가려보려는 안간힘 같았다. 장애인은 못배우고 가난하고 불행하다는 편견의 그물에 두 분 스스로가 휘적휘적 발이 걸려 넘어지고 상처 입었다.


자유기고가로 일하며 난 장애인과 자주 만났다. 기업체 사보와 공공단체 기관지에서는 ‘소외된 이웃’을 향해 손길을 내미는 사회공헌 활동이 단골 메뉴다. 장애인 학교 체육대회에 취재를 갔을 때다. 그날 만난 학부모가 저녁에 전화를 걸었다. 아이가 학교를 졸업하면 모든 지원이 끊기고 다닐 곳이 없다고, 아무 힘 없는 문필하청업자인 내게 이십여분을 하소연했다. 청각장애인 영화감독을 만났을 때는 노트북을 사이에 놓고 한줄 한줄 질문과 대답을 입력해가며 필담을 나누었다.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이들의 창작 작업을 상상하고 기록했다. 뇌병변 장애인 인터뷰에선 활동보조인이 통역을 도와주었다. 더치커피처럼 한 단어씩 느리게 떨어지는 말들을 난 처음 맛보는 커피처럼 찬찬히 음미했다.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긴 생머리의 여성 학인은 자기를 이렇게 소개했다. 걸레 짤 힘도 없이 손목이 아플 때가 많아서 서류에 자신을 장애인으로 표시한다고.


‘장애인 페미니스트’ 해릴린 루소는 <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에서 자기 이야기를 속 시원하게 풀어놓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고작 몇 층 이동하는 동안에도 익명성을, 잠깐의 고요를 누릴 권리가 없는 불편을 토로한다. 구조적 문제도 놓치지 않는다. “내가 살면서 부딪히는 수많은 문제의 근본 원인은 장애 자체가 아니라 장애에 대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태도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관계는 관점을 결정한다. 일과 책으로 장애인의 언어를 접하며 내 편견은 서서히 무너졌다. 존재의 이해도가 높아졌다. 정상적인 삶이 아무 문제 없다는 뜻이 아니라면, 장애인이 처한 곤란을 정확한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는 매우 임의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대개의 장애는 극복할 수 없다고 들었다. 사실 비장애인도 평소 뭘 그리 극복하고 살지 않는다. 해릴린 루소 말대로 “장애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장애가 있어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에선, 비장애인도 닦달당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회였다면 우리 부모가 그토록 절망했을까. 


지하철에서 목청이 커지는 장애인을 만나면? 장애인이 ‘극복’할 수는 없지만 비장애인이 ‘수용’할 수는 있을 것이다. 짜증내지도 힐끔거리지도 못본 체하지도 않으면서 익명성의 권리를 존중하는 기술은, 대부분 관계의 문제가 그렇듯 내가 풀어야 할 몫 같다. 그래서 난 뭐에 끌린 듯 아버지를 따라가고 싶었나 보다. 

* 한국방송통신대학보에 실림


(무슨 책 내는 것도 아니면서 이런 말이 우습지만, 난 이 글을 장애인 부모로 살아가는 곤란과 아픔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 준 나의 학인들을 위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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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되지 않은 전태일을 기록하며

[은유칼럼]

10대부터 60대까지 연령대가 모인 글쓰기 수업에서 <전태일 평전>을 읽을 때면, 그의 생애 만큼이나 뜨겁고 척척한 말들이 오간다. 감응의 지점이 세대별로 조금씩 다르다. 60대는 ‘신발에 물이 새지 않으면 다행인’ 찢어지는 가난에 좀 더 공감하고 40~50대는 ‘비참한 현실을 바꿔내는’ 집요한 싸움에 반응한다. 20~30대는? 가장 열렬하다. 전태일이 그리는 생생한 노동 현장 실태에 맞장구 치며 목소리를 높인다. 


“월급 받아도 교통비를 제하고 나면 남는 게 없다는 전태일 말이 그때나 지금이나 틀리지 않구나 싶어요.” “먹고 살길이 막막한 젊은이들이 서울로 몰린다는 것도요.” “노동력으로 전락한 인간상을 증오한다는 문장이 팍 와 닿아요.” “‘왜 이렇게 의욕이 없는 일을 하고 있는지 나 자신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렴풋이 생각이 확실해질 때는 퇴근 시간이 다 될 때이다.’ 이 대목 읽으면서 진짜 제가 쓴 줄 알았어요.” 


전태일은 48년 생. 살아있었다면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다. 책에 나오는 수기는 1960년대 후반에 쓴 글들이다. 무려 오십년 전 어느 노동자의 참담한 수기를 ‘요즘 젊은이들’이 지루해하면 어쩌나 하는 나의 걱정은 기우였다. 무지와 편견이었다. 마르크스 말대로, 어떤 노동자가 어떤 자본가를 만나느냐는 우연적일 수 있지만 전체로서 노동자 계급이 자본가 계급을 만나는 것은 거의 필연적인 법. 전태일의 평화시장이 그들에겐 편의점이고 사무실이다. 완장 찬 작업 반장 대신 CCTV가 감시할 뿐, 사람을 이윤 창출의 도구로 보는 현실은 너무도 닮았다. 


며칠 전 수업 때다. 머리카락 희끗한 어느 남자 학인은 <전태일 평전>을 읽고 무슨 예언처럼 이런 말을 보탰다. “전태일은 기록이 남아 있고 분신을 해서 후대에 알려졌지만 아마 그 당시 전태일 만큼 열심히 싸운 다른 노동자가 또 많을 겁니다.” 그리고 그날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난 거짓말처럼 어느 노동자의 ‘부고’를 들었다. 


경기도 시흥의 스피로폼 파쇄업체에서 한 노동자가 파쇄기에 상반신이 끼어 압착 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이다. 그는 이미 25세에 공단지역에서 일하다가 프레스 사고로 손가락 4개를 절단한 산재노동자이고, 그 사건을 계기로 수지 접합 산재노동자들을 돕는 일에 15년 간 종사한 활동가였다. 4년전 베트남인 여성과 결혼해 3살, 5살 두 아들과 다문화가정을 꾸리며 일상을 일궈가던 중 참변을 당한 것이다. 


<전태일 평전>에 나오는 사례라고 해도 믿기지 않을, 2016년에 일어난 이 사건을 다룬 매체는 <한겨레>와 <민중의 소리> 두 곳 뿐이었다. 인공지능 로봇과 인간의 바둑 대결이 생중계 되는 첨단과학의 시대에, 기계가 사람을 삼켜버리는 영세 사업장의 무참한 현실은 뉴스가 되지 않았다. 아마 페이스북을 열지 않았으면 나도 몰랐을 일이다. 이십대에 손가락 네 개를 잃고 사십대에 온 몸이 찢긴 ‘어느 노동자의 삶과 죽음’은 그렇게 조용히 세상에서 지워진다.


기억할 것 많은 4월, 기억 하나 더 얹는다. 남현섭(1967~2016). <전태일 평전> 한 귀퉁이에 조심스레 그의 이름을 쓴다. 기록되지 않는 전태일의 죽음을 기록한다. 다음 수업에 학인들에게 읽어줄 것이다. 이 찬란한 봄에 그가 꾸었던 소박한 꿈을.


‘자연이 연출하는 너무나 아름다운 광경을 보고 그리고 상상하고 있노라니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고마운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이 아름다운 세상을 떠나게 되는 그 때까지 이렇게 몸과 마음이 다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2010년 4월 26일 '건강한 노동세상 소식지'에 고인이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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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기고 - 반도체 소녀의 귀향

[은유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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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귀향>을 보는 동안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팠다. 일본군의 (성)폭력으로 인한 비명과 무자비한 총성이 길고 셌다. 무구한 소녀와 잔인한 일본군의 선악 대비, 그 단순한 서사의 프레임은 생각을 몰수하고 통증을 일으켰다. 이런 궁금증이 남았다. 왜 저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범하고 죽이게 되었는가. 존재를 침범당한 인간은 또 어떻게 존엄을 추스르고 일상을 살아갔는가.

극장을 나와 핸드폰을 켜니 문자가 와 있었다. 내일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세상에 알린 고 황유미씨의 9주기 추모제가 열린다는 내용이다. 아, <귀향>은 끝나지 않았구나. 여기에 또 하나의 악이 있고, 또 하나의 기막힌 죽음이 있고, 귀향을 기다리는 또 하나의 소녀상이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묵직했다. 

이튿날, 서울 강남역 8번 출구 삼성전자 본사 앞을 찾아갔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 150일째 농성 중이었다. 기나긴 풍찬노숙엔 이유가 있다. 지난 1월 언론에선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보상 마침내 마무리’라는 기사가 쏟아졌으나, 겉과 속이 다르다. 삼성전자는 독립된 사회적 기구가 아닌 독자적 사내 보상위원회를 발족했다. 그러곤 가해자인 자기들이 직접 보상을 진두지휘했다. 산정기한을 정해서 피해자들을 압박하고, 합의사항에 대한 비밀을 유지하라는 각서를 발송했다. 사과도 형식적이다. 삼성의 부실한 안전관리 행위를 인정하고 사과하라는 조정권고안의 내용은 쏙 빼고 “아픔을 헤아리는 데 소홀했다”는 말로 얼버무렸다. 한마디로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아프다니 유감이다’라는 식이다.

이것은 우리가 풀어야 할 거대한 의문부호다. 삼성은 왜 저 푸르스름한 건물 유리처럼 차가운 얼굴을 갖게 되었나. 직업병 사망자 76명과 암환자 223명이 나왔는데도 왜 눈물 흘리지 않는가. 죽음의 공장인 삼성이 어떻게 세계 일류 기업의 칭호를 누리는가. 삼성은 아는 것 같다. 영화 <귀향>의 일본군처럼 삼성은 한국 사회의 절대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다. 독한 화학약품의 생산라인에 사람을 방치하여, 죽이지 않고 죽게 내버려둔다. 돈 몇 푼 쥐여주고 조용히 죽음의 흔적을 치워버린다. 언론은 삼성 편이다. 대학생이 들어가기 원하는 1위 기업의 위상은 굳건하다. 어떤 짓을 해도 어떤 저항에도 부딪치지 않는다는 확신이 폐쇄적이고 책임을 회피하는 기업 체질을 만들었으리라. 

황유미는 열아홉에 속초에서 관광버스 타고 삼성반도체 기흥 공장에 들어갔다가 백혈병을 얻어 스물셋에 세상을 떠났다. ‘생전의 고인은 왜 아파야 하는지 몰랐다’는 기자회견문에서 영화 <귀향>의 소녀의 대사가 겹친다. 트럭 타고 일본군에 끌려온 열다섯 소녀도 몰랐다. 그래서 묻는다. ‘여기가 어디예요?’ 일본군은 질문하는 소녀의 입을 후려쳤다. 황유미 추모제가 열리는 날 삼성전자는 본사 앞에 펜스를 쳤다. 말하는 자, 감히 알려고 하는 자를 저들은 몹시도 겁낸다.

은유 작가
은유 작가
9년 사이, 말이 쌓여 질문이 되고 진실이 드러났다. 황유미의 산업재해가 행정법원에서 인정됐다. “왜 네가 병에 걸렸는지 원인을 밝혀내겠다”던 약속을 아버지 황상기씨는 지켰다. 세상으로 나온 또 다른 유미들이 매일 강남역 삼성전자 앞에서 이어 말하고 있다. 삼성이라는 악에 대한 증언에서 나아가 저들의 비열한 횡포에 맞서 어떻게 분투했는지, 일상을 파괴하는 고통과 분노에 익사당하지 않고 타인에게 관심을 넓히게 되었는지, 알 수 없는 고통이 알 수 있는 고통이 되기까지 어떻게 싸웠는지…. 오가는 행인의 발걸음을 붙들어 세우는 그 뜨거운 이야기들은, 반도체 소녀들의 ‘귀향’이다.

은유 작가


* 고 황유미 9주기를 맞아 언론사 릴레이 기고에 참여했습니다. 한겨레 3월 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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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분과 전혜린

[은유칼럼]


‘본분’이라는 말, 이 쿰쿰한 냄새 피우는 단어의 옷을 공교롭게도 ‘여자 아이돌’이 입고 나타났다. 설 연휴에 KBS 2TV에서 ‘본분 금메달’이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됐고 제목 그대로 누가 더 여자 아이돌의 본분에 맞는가를 겨루었다. 가령 모형 바퀴벌레를 던져놓고 얼마나 예쁘게 놀라는지,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도 표정이 일그러지지 않는지, 프로필상 몸무게와 실제 몸무게가 얼마나 일치하는지 등의 테스트를 거친 후 총점을 매겨 무슨 올림픽처럼 금메달을 수여했다. 방영 후 ‘아이돌 괴롭히기’라는 논란이 일고 ‘눈살 찌푸리게 한다’는 시청자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그럴 만했다. 본분本分. 본래의 직분에 따른 책임이나 의무를 진다는 뜻이다. 이 행실 바른 말의 숨은 폭력성을 저 프로그램은 여실히 드러냈다. 학생의 본분 하면 공부, 여자의 본분 하면 조신하게 살림하고 애키우기를 떠올리는 건 나뿐인가? 대개 본분이란 약자의 (동의 없이 정해진) 의무이고 그 본분은 약자의 생사여탈권을 쥔 자가 정한다. 아이돌의 본분 역시 방송 권력이 급조했다. 위 프로그램을 만든 최승희 PD는 프로그램 제목인 아이돌의 '본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언제 어디서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남의 삶의 의무를 내가 정한다는 발상 자체는 얼마나 위험한가. 이 가학의 놀이가 공공연히 공중파 프로그램으로 제작 유통되는 시스템이 나는 끔찍하다. 

사람 사이 위계를 전제한 ‘본분’이라는 봉건적 언어와 ‘금메달’이라는 경쟁지상주의를 접목해 프로그램 제목을 짓는 천박함이,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이미지 관리가 가능할지 바로 확인 들어갑니다’라는 자막을 넣는 오만함이, “어떤 상황에서도 웃어야하는 아이돌의 숙명”을 보여주겠다는 제작진의 인권 감수성의 무감각이, 시청률을 내기 위해서라면 “언제 어디서나 최선을 다하는” 그 성실한 임무 의식이 무섭다. 이렇듯 개인의 존엄을 간단히 몰수하는 나쁜 관념을 만드는 건 너무도 평범하게 굴러가는 저마다의 일상이다. 

본분은 질 나쁜 꿈처럼 여자의 삶에서 떨쳐지지 않는다. 아이돌 뿐이랴. 저 방송 제작진의 간파대로 본분의 명령이 “어떤 상황에서도” “언제 어디서나” 일상에 불쾌하게 끼어드는 걸 나도 경험한다. 심지어 아이가 수능 시험을 보는 해에는 “고3 엄마가 엠티를 가느냐”는 등 '고3 엄마의 본분’을 강요당하기도 했다. 학생의 본분은 졸업이 있어도 여자의 본분은 졸업이 없다. 고3 엄마가 가야할 장소란 입시설명회나 절, 성당, 교회 같은 기도처라는 듯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유는 아마 수능 시즌 언론 보도 영향이 클 것이다. 매체의 이미지는 그렇게 대중의 무의식이 된다. 

본분 금메달이 열리는 설 연휴에, 차례를 지낸 후 나는 제주도로 떠났다. 기름 냄새에 찌든 메스꺼운 기분이 아닌 옥빛 바다의 찬 공기를 쐬며 맑은 정신으로 명절을 보냈다. 결혼 후 처음 누리는 호사다. 며느리, 딸, 엄마, 아내의 본분을 벗어나 존재의 오롯함을 즐겼다. 바닷가 마을 작은 서점에 들렀다가 스무살의 내가 되어 전혜린의 에세이 <목마른 계절>을 집어들었고, 그 책에서 “여성의 가장 본질적인 약점으로 나는 생 전반에 대한 비본연적 태도를 들고 싶다”는 문장을 아프게 읽었다. 

비본연적 태도로 살아가길 강요 받는 이땅의 모든 본분 금메달의 출전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전혜린은 이렇게 글을 매듭짓는다. 남녀를 막론하고 인간이라는 무서운 조건 하에 놓인 우리가 해야할 일은 (본분 수행이 아니라) “근본적인 생 감정에 지배된 생활”이어야 한다고.


* 한국방송대학보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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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니까 ,

[은유칼럼]



지난 설에 친정에 들러서 저녁 준비를 했다. 나는 싱크대에 붙어서 쌀을 씻고 전을 부쳤고 아버지는 거실에 놓인 상을 정리했다. 평소 네모난 교자상에 신문이며 우편물, 성경책을 산더미처럼 쌓아놓는 아버지는 우리 식구가 오면 거기서 밥을 먹기 위해서는 상을 치운다. 그날도 주섬주섬 물건을 내려놓더니 당신 손녀를 불렀다. "행주 갖다가 닦아라." 그리고 그 상에 둘러앉아 다같이 밥을 먹었다. 식사 후 그릇들과 물컵, 남은 반찬을 남편이 나르고 상을 치우는데 아버지는 또 손녀에게 물 가져와라, 컵 가져오라며 이것저것 시켰다. 부엌에서 일하는 나는 그 말이 점점 귀에 걸렸다. 


'왜 딸아이를 시키지..' 혼잣말로 궁시렁거리며 참고 있는데 아버지의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야, 행주로 상 닦아라." 

"아니, 왜 자꾸 어린 ○○를 시키세요? 큰 애도 있는데..." 


기어이 말을 뱉었다. 아니,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아버지는 놀랐는지 "뭐?" 하시더니 더듬더듬 말했다. "○○은 여자니까" 말문이 막혔다. 다시 숨을 가다듬고 말문을 열었다. "여자면 해야 돼요? 나이도 어린 애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는지 아들내미가 나와서 그릇을 치우고 거드는 시늉을 했다. 아버지는 "그래. 너네는 남녀가 평등하구나." 했고 상황은 멋쩍게 종료됐다. 


친정엄마가 돌아가시고 명절이면 자동으로 우울하다. 엄마의 빈자리도 크고, 엄마의 빈자리를 딸인 나 혼자 몸으로 메워야하는 현실도 서글프다. 시댁에서 앞치마 풀자마자 친정에 가서 식구들 밥을 먹여야하는 게 고되다. 자주 찾아뵙는 것도 아니고 아버지와 고작 밥 한끼 먹는 일인데도 마음이 부담스럽다. 나 어리광 부리고 싶은가. 엄마가 전업주부였기 때문에 난 결혼 전엔 집안일을 하지 않았다. 또 일찍 결혼한 편이라 친정에 가면 엄마가 딸인 내 손에 물 한방울 못 묻히게 했다. 그 엄마가 안 계시고 나니 다 내 차지다. 친정에서의 가사노동은 아직도 어색하다. 


그런데 나도 부족해서 딸의 딸에게, 중학생인 아이에게까지 부엌일의 부담이 지워지는 게 화가 났다. 큰 아이는 스무살. 그 애가 만약 아들이 아니고 딸이었으면 명절의 가사노동은 큰 아이 몫이었을 것이다. 아버지 말대로 "여자니까." 


아버지에게 이렇게 내 의견을 직접적으로 말한 건 처음이다. 한동안 마음이 복잡하고 불편했다. '옳은 말'을 다다다 해대고 나니 늙은 아버지가 불쌍하다. TV를 보는 어깨도 더 굽어보인다. 어른에게(라도) 할말은 하고 상황을 불편하게 만드는 일이, 나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나 하나 참고 조용해지자는 평화주의자였는데 딸아이에게까지 성역할이 부과되는 것은 참기 힘들었다. 그건 어쩌면 딸아이가 아닌 '어린 여자' '어린 나'에 대한 연민이자 옹호였을지 모르겠다. 딸이니까 참았는데 딸이니까 말해야겠다. 지금부터라도. 조금씩이라도.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들에게 물었다. 

"엄마가 할아버지한테 너무 한 건가? 여자니까 가사일 해야한다는 말, 어떻게 생각해?" 

운전대를 잡은 남편은 말이 없고 딸은 가만히 있는 사이 아들이 먼저 "그러면 안 되죠" 라고 한다. 엄마는 남녀가 평등한 걸 바라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이 소외된 노동을 하는 것에 대해 무심한 가족 문화가 아니었음 좋겠다고 부연했다. 아빠는 운전 오래 해서 피곤하고 엄마 혼자 부엌에서 일하니까 다음부턴 니가 솔선해서 도우라고 아들에게 말했더니 그러겠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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