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도 믿기지 않는 실화

[은유칼럼]

“딸이 있어 참 다행이야(57쪽).” 

엄마의 장례식장에 온 이모는 나를 구석에 있는 벤치로 데려가서 앉혀놓고 손을 부여잡고 연신 말했다. 딸이 있어서, 네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너마저 없었으면 어쩔 뻔했니, 아버지랑 오빠 남겨두고 가면서 엄마가 어떻게 눈을 감았겠니, 네가 엄마 대신 잘해라. 너만 믿는다. 그날 문상객들은 급작스러운 망자의 죽음에 경황이 없었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보다 몇 시간 일찍 부고를 들었을 뿐인 나는,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내가 딸이란 사실을 떠안아야 했다. 

한 해 두 해 지나자 의구심이 일었다. 왜 나지? 누가 시켰지? “혀뿌리까지 치밀었던 말들(278쪽)”이 어느 날 넘쳤다. 힘들어서 못하겠으니 반찬가게에서 사먹거나 가사도우미를 구하라고 남자들에게 통보했다. 그러자 바로 가사도우미가 왔고 난 반찬 셔틀을 중단했다. 그건 수갑이 풀리듯 매우 간단한 일이었다. 몇 가지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그걸 말하지 않으면 모르나 싶지만 정말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것. 남의 고통을 헤아려주는 사람은 없다는 것, 그리고 내가 무얼 하지 않아도 세상엔 별일이 안 일어난다는 것이다. 

폭탄 돌리기처럼 허둥지둥 여자 역할을 내게 떠넘긴 사촌이모는 “자신도 가부장제의 피해자인 동시에 그 규범을 적극적으로 재생산”하는 보통 엄마였다. “딸이 있어 얼마나 다행이니.” 우리 엄마도 자주 말했다. 속 하나 안 썩이고 없는 것처럼 자란 속 깊은 딸, 엄마의 자랑, 엄마의 보험, 엄마의 친구. 이 모든 명예 훈장은 실은 집안의 일손이자 엄마의 보조 노동력이자 감정 해우소로 딸을 승인하는 몹쓸 언어다. 그 딸들은 며느리가 되어서도 “집안의 사노비(55쪽)” 신세를 면치 못한다. 

아무리 그래도 노비라니 너무 심한 거 아닌가, 경상도 남자와 결혼한 선배의 얘길 듣기 전이라면 서울 여자인 나는 그리 생각했을 거다. 새 며느리의 첫 명절, 생면부지의 친척들이 줄줄이 들이닥쳤고 부엌에 갇혀 과중한 노동에 시달렸다. 유건 쓰고 도포 입은 남자는 없었으나 남녀 상차림을 따로 했다고. 거기까진 각오를 했는데 현실은 늘 예상을 초과하는 법. 시어머니가 말하길, 우리 여자들은 남자들이 남긴 밥을 먹자고 했다는 것이다. “아니, 내가 왜 누군지도 모르는 늙은 남자들이 남긴 더러운 밥을 먹어야 해?” 

가부장제 생존자의 증언 

그날 우린 깔깔대다가 같이 울었다. 듣고도 믿기지 않는 실화, 구토가 치미는 강도의 기억. 가부장제 생존자의 증언은 왜 언제나 새롭고도 새삼스러운가. 한 사람이 물꼬만 터주면 “삭히거나 잊어야 하는 줄만 알았던 자신의 이야기 (278쪽)”를 너도나도 꺼내놓는다. 그리고 거기에는 “참고 또 참는 사람. 남자가 하는 일에 토를 달지 않는 사람, 남자와 아이들에게 궁극의 편안함을 제공하는 사람. 자기 욕구를 헐어 남의 욕구를 채워주는 사람, 자기주장이 없거나 약하므로 갈등을 일으킬 일도 없는 사람(51쪽)”으로 길러졌으나 이제 그런 자기를 들여다보는 사람으로 변신한 한 존재가 있다. 그저 말하고 있음. 단지 말하고 싶음. 나는 말해야겠으므로 쓰인 소설 한 권, 여성들의 삶을 정 가운데로 놓은 이야기가 있어 참 다행이다.



*시사인 은유 읽다

걷기의 인문 - 사람, 걷기, 공부의 조합에 마음 설레다

[은유칼럼]

학교 운동장 수돗가 크기의 족탕에 두 발을 담그고 앉았다. 뜨끈한 김이 오르는 온천수 아래로 짚신처럼 쭈글쭈글하고 단풍처럼 붉어진 두 짝의 발이 나란하다. 총 길이 12㎞, 다섯 시간 코스 종착점에서 수고한 발을 달래주는 시간. 오늘 얼마나 걸었나 보자며 한 사람이 스마트폰을 열었다. 1만9000걸음이란다. 나도 열어보았다. 2만2000걸음이다. 아침부터 같은 동선으로 같이 다녔는데 왜 숫자에 차이가 나죠, 묻자 누군가 말했다. 다리 길이가 다르니까요. 맨발의 어른들은 ‘롱다리 숏다리’ 얘기에 깔깔깔 즐겁다. 

<시사IN> 창간 10주년 기념 규슈올레 걷기 행사에 3박4일간 동행했다. 독자 61명과 길을 걷고 강연을 듣고 역사 현장을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나는 여행을 썩 즐기는 편은 아닌데 ‘사람, 걷기, 공부’의 조합에 마음 설레어 나섰다. 자연보다 사람에 자극받는 편이고 달리기보다 걷기, 놀기보다 공부가 적성에 맞는다. 이 세 가지에는 공통점이 있다. 삶도 걷기도 공부도 서두르지 않고 자기 속도대로 꾸준히 해나가는 일, 결과보다 과정이 소중한 행위라는 점이다. 

ⓒ시사IN 신선영

“보행은 그저 존재하는 것과 뭔가를 해내는 것 사이의 미묘한 균형이다(20쪽).” 리베카 솔닛의 말에서 보행을 공부로 바꿔도 뜻이 통한다. 책 한 권을 읽거나 강연 한번 듣는 일은 산책 한번 하는 것처럼 그 자체로는 별다른 변화도 보상도 주지 않는다. 아무것도 안 하는 거랑 당장에는 비슷하다. 그런데 그것들이 쌓여서 몸의 감각이 변하고 삶의 자리가 달라진다. 태생적으로 경쟁을 무서워하는 나는 이 “아무것도 안 하는 것에 가까운 일”로 인생의 지면을 채우며 생산 지향적 사회에서 간신히 살아왔다. 

이번 걷기 여행에서도 하위 그룹에 섞였다. 내 뒤에 오던 이가 힘들어서 못 따라가겠다고 헉헉대자 가이드가 조언했다. “그냥 지금처럼 가셔도 돼요. 앞에 가는 사람은 신경 쓰지 말아요. 맨 앞에 가는 사람들은 빨리 못 가게 하면 병나는 사람들이에요. 나중엔 다 만나요.” 원래 60명 정도가 걸으면 선두에서 후미까지 한 시간 정도 차이가 난다고 가이드는 설명했다. 그 말이 꼭 세상의 운행 원리를 밝히는 스님의 법문처럼 가슴에 박혔다. 

속도 숭배의 사회에선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목소리가 어딜 가나 들린다. 글쓰기를 배우는 학인들은 잘 쓰는 동료 때문에 기죽는다고 호소한다. 난 수영 강습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는 초급반에서 가장 진도가 느려서 자주 창피한데, 수영대회 출전을 위한 게 아니고 건강을 위한 운동이므로 뻔뻔하게 다닐 것이며 2~3년 지나면 웬만한 영법은 하겠지 생각한다고, 글쓰기도 당장의 시간 투입 대비 산출을 셈하지 말고 묵언 정진하라고 말한다. 빨리 배우라고 하면 병나는 종족인 내가, 빨리 못 배우면 병나는 종족들에게 어쭙잖은 충고를 했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남에게 하는 말은 곧 나에게 하는 말. 

전복적 우회를 택하는 용기 

리베카 솔닛 지음김정아 옮김반비 펴냄

규슈올레 마지막 날, 미야마 코스는 두 시간 소요 예정인데 30분 일찍 목적지에 전원이 도착했다. 진행 스태프가 왜 이리 빨리 걷느냐고 ‘천리마운동’ 하시느냐며 지청구를 주었다. 어쨌거나 우리는 걸었다. 일하던 컴퓨터를 켜놓고 빠져나온 직장인, 연기된 수능을 보는 동생과 엄마를 두고 혼자 온 대학생, 나 홀로 일하는 앱 개발자, 여고 동창들과 외유 나온 어르신 사총사 등, 하던 일도 보폭도 폐활량 나이도 제각각 다르지만 “생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여가를 오그라뜨리고 존재를 짜부라뜨리는 지점(31쪽)”에서 전복적 우회를 택하는 용기를 냈다. 

“중류층의 육체를 집과 사무실에 갇혀 있는 시대착오적 물건으로 변형시키는 환경”, 돌아다니기에 알맞은 사람의 몸을 “공장의 기계 부품으로 변형시키는 환경(274쪽)”에 대한 거부로서 걷기가, 못생긴 발을 마주하는 가식 없는 만남이 여행이 아닌 일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 시사인에 게재됨


김장 버티기

[은유칼럼]


‘마음은 빈집 같아서 어떤 때는 독사가 살고 어떤 때는 청보리밭 너른 들이 살았다’고 어느 시인은 노래했는데, 찬 바람이 불면 내 마음엔 커다란 김장독이 산다. 남도의 땅에서 나고 자란 엄마는 김치를 중시했다. 배추김치는 기본에 깍두기, 총각김치, 갓김치, 파김치, 물김치를 번갈아 담갔고 김장철엔 손이 더 커졌다. 김치 가져가라는 전화에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고선 냉장고에 자리도 없는데 또 담갔냐고 기어코 한소리하기도 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10년, 엄마 김치를 못 먹게 된 지 10년이다. 김치 가뭄으로 엄마의 부재를 실감한다. 시댁에서 가져온 김치는 빨리 동나고 산 김치는 비싸서 감질나고, 나는 김치를 담글 줄 모른다. 가사노동, 양육노동, 집필노동으로 꽉 채워진 일상. 내 인생에 김치노동까지 추가되면 끝장이라는 비장함으로 안 배우고 버텨왔다. 할 줄 알면 누가 시키기도 전에 몸이 자동으로 움직일 게 뻔하니까, 식구들이 잘 먹으면 먹이고 싶으니까. 내가 나를 말리는 심정으로 김치 먹을 자유보다 일하지 않을 권리를 수호하고 있다. 

“이번엔 황석어젓을 사봤는데” “고춧가루 빛깔이 안 좋아서 속상해” “올해는 절임배추 써볼까 하는데” 요즘 시장에서, 거리에서, 버스에서, 목욕탕에서 나이 든 여자들은 둘만 모였다 하면 김장 얘기다. 마음에 김치가 사는 나는 이런 목소리를 줍고 다닌다. 머리가 허옇고 허리가 기역자로 굽어도 장바구니 달린 보행기를 밀고 다니면서 쪽파며 배추를 실어 나르는 동네 할머니를 본다. 

살아계셨으면 일흔일곱. 우리 엄마도 저이들처럼 억척스럽게 장 보고 김장을 하고 삭신이 쑤신다며 앓아누우셨을까. 엄마는 그즈음 부쩍 음식 간이 안 맞는다고, 뭘 해도 맛이 없고 김치도 짜기만 하다고 낙심했다. 혀가 늙는다는 것도, 김치 담그기가 중노동이라는 것도 삼십대인 나는 알지 못했다. 김장을 안 해도 된다는 것을 그 시절 엄마가 알지 못했듯이. 

어쨌거나 나는 매년 김장 김치를 먹는다. 파는 김치는 비위생적이며 당신 손으로 해주는 게 부모의 도리라고 여기는 시어머니가 담가주시고, 가까운 이들에게 사랑의 김장이 답지한다. 올해는 친구의 시골 노모가 담근 김치를 분양받았다. 양이 많다며 배추김치 한 통에 덤으로 총각김치랑 묵은지까지 보내주었다. 끼니마다 콕 쏘는 김치를 허겁지겁 먹어치우면서도 목 안이 따끔하다. 한 여성이 소위 ‘바깥일’을 하려면 다른 여성의 돌봄노동이 필요하듯이, 내가 김치 담그기에서 해방되자면 누군가의 고단한 노역의 산물인 김치를 먹게 된다. 얼마나 손끝이 얼얼하도록 마늘을 까고 생강을 다지고 배추를 씻고 절이고 버무렸을까. 

‘엄마표 김치’라는 말이 그리운 말에서 징그러운 말이 되어간다. 엄마의 자기희생이 강요된 말, 넙죽 받아먹기만 하는 자들이 계속 받아먹기를 염원하는 말이다. 어느 소설가의 문학관에는 대하소설을 쓰는 동안 사용한 볼펜과 원고지가 탑처럼 쌓여 있다고 하는데, 엄마들이 평생 담근 김치와 사용한 고무장갑을 한눈에 쌓아놓으면 어떤 붉은 스펙터클이 나올지 상상해본다. 어머니가 해주신 밥과 김치 먹고 굴러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절대 가시화되지 않는 이상한 노동. 피와 살로 스며서 똥으로 나가버리는 엄마의 땀. 부불노동(unpaid work)으로서 가사노동의 불꽃인 김장. 

한 동료의 엄마는 여든살을 맞아 김장을 안 한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늦은 은퇴다. 엄마들의 잇단 김장 파업 선언에 김치 난민이 속출하는 또 다른 겨울 풍경을 그려본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22724.html?_fr=mt5#csidx59f1e4f302efc4dba1b0897023be44f 

마침내 사는 법을 배우다

[은유칼럼]

모처럼 한국을 떠났다 돌아온 다음 날, 문자 메시지가 왔다. “여행 중이신 거 같아 알리지 못했는데 이재순 선생님이 돌아가셨습니다.” 뒤늦은 부고에 황망함이 몰려오자 그의 장례식에 찾아 뵙지 못한 죄스러움이 커져갔다.

 

이재순은 2016년 봄부터 한 지역 평생학습관에서 10주간 같이 공부한 학인이고, 지난 수년간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면서 내가 만난 이들 중 최고령자다. 수업 첫날 이렇게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나이가 많습니다. 일흔 살인데 결혼을 안 했고 자식이 없고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담담한 자기 진술은 힘찬 빗줄기처럼 가슴을 두드렸고 그가 쓰는 글들은 사람은 왜 배워야하는가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였기에 난 그의 사연을 『쓰기의 말들』에 소개하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췌장암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나는 옛 게시판을 뒤져 그가 쓴 글들을 추려서 찬찬히 읽어보았다.

 

이재순은 세 살 때 홍역을 앓았다. 부모님은 이미 아이 셋을 홍역으로 잃은 뒤였기에 포기하고 윗목에 밀어두었는데, “엄마” 하고 모기만한 소리로 불러서 살아났다. 그에게 유년 시절은 전쟁 직후로 몹시도 가난했지만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다. “건강한 시절은 오직 그 때 뿐이었으니까.”

 

10대부터 수난이었다. “딸인 나를 중학교에 보내면 아들인 동생을 중학교에 못 보낼 수도 있다”는 아버지의 말씀에 “발광을 떨며” 단식투쟁으로 맞섰고 어머니와 외삼촌의 도움으로 중학교 입학금을 겨우 마련했다. 그러나 류머티즘 관절염이란 병이 공부의 앞길을 막았고  관계의 끈도 헝클어버렸다. 중3 때, 아픈 다리를 간신히 이끌고 학교에 가던 길이었는데 또래의 동네 남자아이가 절룩거리는 모습을 흉내 내며 계속 따라왔다. “너무나 화가 나서 그놈을 잡아 죽이고 싶었다.”

 

고등학교 진학은 언감생심, 긴 투병이 시작됐다. 변변한 치료법을 찾지 못하던 그 시대에 병을 고쳐보겠다고 “무당들과 한 달 동안 함께 기거하며 굿을 하기도 했고, 때로는 부적을 불에 태워서 그 재를 먹기도 했고, 때로는 동네 두더지란 두더지는 다 잡아서 약탕에 고아 먹기도 하며 세월을 보냈다.” 그러다가 서울의 큰 병원에서 올바른 진단과 치료를 받고 겨우 걸음을 걸었다.

 

세월이 흘러도 공부에 대한 열망은 식지 않았다. 60대로 접어든 어느 해 “아픈 몸으로도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걸 알고 방송통신고등학교에 들어갔다. “학력란에 당당하게 ‘고교 졸’이라고 쓸 수 있다는 기쁨”에 만족하지 않고 사이버대학에 진학했으며 한의학 공부를 2년 마치고 사회복지학과로 전과하여 2급 복지사 자격증까지 받았다. 배움의 길을 따라 발걸음을 내딛어 평생학습관에까지 다다른 그는 공부의 의미를 이렇게 정리한다.

 

“나의 60대의 공부는 출세보다는 못다 꾼 꿈을 이루기 위한 것도 있겠지만 사람들과의 만남이 더 중요했다. 그 속에서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되는 것이다. 공부란 끝이 없이 사람들과의 어울림 속에서 인간답게 사는 것을 배우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인간답게 사는 방법의 탐구로서의 배움. 그것은 그가 생소한 책도 거부 없이 척척 읽어낼 수 있었던 비결이다. 조지 오웰의 『위건부두로 가는 길』을 읽고, 그는 영국의 탄광노동자들에게서 “연탄가루 묻혀가며 일하시던 아버지의 삶”을 본다. 아버지의 노동이 얼마나 고달픈 줄 몰랐고 그냥 아버지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는 자책, 아버지가 12세에 부모님 잃고 고아로 살아왔으니 ‘그 얼마나 고독하셨을까’ 하는 생각은 “내가 나이 들어서야 깨닫게 되었다”는 탄식, 얼굴에 시커먼 가루를 묻힌 모습으로 “재순아, 이거 먹고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거라” 하시며 쇠고기 한 근 사오시던 그날의 모습을 선연히 그려낸다.

 

프리모 레비의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를 읽고는 수치심의 정의를 확장한다. 다리 수술을 하기 전엔 항상 절룩거렸고 힘든 걸음걸이보다 사람들의 눈초리가 늘 수치심으로 다가왔는데, 이 책을 읽고 “자잘한 감정의 수치심”이 아닌 “더 큰 수치심”을 깨닫게 되었다며 쓴다.

 

“(세월호 사건 때) 마음으로만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눈다고 생각했으며 한 번도 그들이 있는 곳에 직접 찾아가본 적이 없었다. 나는 내 몸의 건강이 따라 주지 않는다는 핑계로 그들이 울부짖고 있을 때 그들의 곁에 가서 그들의 눈물을 닦아준 적이 없었다.”

 

평생 아픈 몸을 살았다. 그림자처럼 들러붙어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자기 고통에 매몰되어왔기에 타인의 고통을 좀처럼 보지 못했음을 그는 뒤늦게 자각하고 반성했다. 하지만 그토록 혹독한 고통의 시간을 살아온 그이기에 배제와 차별, 불의와 불공정에 대한 남다른 예민함으로 읽고 쓰기가 가능했을 것이다. 단어 하나 잣대 삼아 자기 생각의 크기를 재어보고, 책 한권 거울 삼아 자기 일상의 태도를 점검했던 그의 영전에 나는 책 한 권 놓아드리고 싶다.

 

강남순의 『배움에 관하여』. 이 책에서 저자는 비판적 성찰을 일상화하여 삶의 주변을 들여다본 배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는 행간마다 수시로 출몰하는 이재순의 얼굴과 대화하고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이 책을 함께 읽었다.

 

“어떤 특정한 조건들이 충족되는 ‘무엇 때문’이 아니라 그 ‘어떤 정황들에서라도’ 한 사람의 내면 한 귀퉁이에서 저렇게 잎사귀가 나올 수 있게 하는 힘”(35쪽) 그 끈질긴 희망의 줄기, 그것은 차가운 윗목에서 간신히 살아나 끈질긴 희망의 줄기를 틔워낸 그의 삶에 관한 메타포가 아닌가. 이재순은 “이미 만들어진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만들어가야 하는 ‘형성 중의 존재’”로서 “자기 자신과의 관계의 정원을 소중하고 아름답게 가꾸고 키”(137쪽)웠다. 

 

옛 게시판에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글은 수업 후기다. 평생학습관에 등록하던 날의 에피소드가 적혔다.

 

“글쓰기 수업을 신청하겠다고 하자, 학습관 담당자가 ‘이 프로그램은 감응의 글쓰기인데요?’ ‘저도 알아요. 신청해 주세요.’ 담당자가 나이도 많고 헙수룩한 내 모습을 보고 그 프로그램에 참가해서 따라갈 수 있을까 미리 염려를 했던 모양이다. 순간 기분이 상했지만 두려움도 있었다. (...) 나의 삶은 병에 갇혀서 넓은 세상을 보면서 살지 못했는데, 여러 학인님들의 폭넓은 삶을 내 마음에 담아가니 나는 큰 부자가 되었다는 뿌듯함에 시간이 끝나는 게 아쉬웠다.”

 

첫 시간에 정한 이재순의 닉네임은 ‘함께하는 즐거움’이었다. “‘살아감이란 함께 살아감’이라는 심오한 존재의 철학”(182쪽)을 이미 삶으로 체화한 그였기에 자신을 낯선 자리에 개방했으리라. 내가 만일 일흔 살에 살아 있다면 어느 자리에 누구와 함께 있을까. 나보다 삼사십년 아래인 젊은이들이 모여 있고, 읽어본 적 없는 책을 읽고 써본 적 없는 글을 쓰는 그런 “변혁적 배움”(9쪽)의 자리를 찾아갈 수 있을까. 나는 가슴 펴고 문 두드릴 수 있을까.

 

한 해 한 해 나이 들고 자꾸만 굳어가는 생각과 관계, 익숙한 자리에 안주하려는 나를 그의 온 삶이 일깨운다. 『배움에 관하여』에 나오는, 프랑스 철학자 데리다가 죽기 3일 전 스스로 작성했다는 장례식 조사를 나는 고인이 세상에 보내는 유언으로 마음에 새긴다.

 

“언제나 삶을 사랑하고 생존하여 살아냄을 긍정하는 것을 멈추지 마십시오.”(157쪽)

 

* 채널예스 '은유의 다가오는 것들' 


벨훅스,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

[은유칼럼]

3년 전 초여름, 동료들과 전주로 1박2일 엠티를 갔다 왔다고 하니 선배가 말했다. “너는 고3 엄마가 6월 모의고사 보는 날 놀러 갔니?” 이 질책이 의미하는 바를 몰랐는데, 6월과 9월 모의고사가 대입의 명운을 가르는 중대한 시험이란다. 특히 6월 모의고사 성적은 거의 수능 점수로 보면 된다고. 알고 나서도 어리둥절했다. 그렇다면 그날 엄마 된 자로서 무얼 해야 하는지 몰라서이고, 내 정체성이 고3 엄마로 명명된 상황이 뜬금없어서다. 

고3 엄마의 본분에 대한 무지와 나태는 11월까지 이어졌다. 수능 날도 도시락 싸서 보내놓고 나니 할 일이 없었다. 이제 와서 새삼 예배당을 갈 수도 없는 노릇. 그냥 광화문 카페로 달려가 책을 폈으나 책장은 그대로다. 아이가 답안지를 밀려 쓰는 건 아닌지 따위의 별별 걱정에 마음이 콕콕 조여왔다. 긴 하루를 보내고 이듬해 모 대학 ‘추가 합격자’ 명단에 아이 이름이 오르면서 고3 엄마를 간신히 면했다.

그 심란한 겨울을 보내고 나니 입시를 왜 ‘입시 전쟁’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동생의 희생까지 네 박자가 맞아야 아이가 명문대에 간다는 말에는 거짓이나 보탬이 없다. 그런데 생업은 제쳐둔 채 입시설명회에 다니고, 수백 가지가 넘는 수시 전형을 파악하고, 고가의 입시 컨설팅을 받는 학부모가 얼마나 될까.

ⓒ시사IN 신선영

올해도 친한 친구들이 수험생 부모가 되었다. 아이가 수시 원서 넣을 대학을 정하느라 두통약을 먹고, 시험장에 따라다니느라 업무 시간을 뺐다. 원서비만 100만원에 육박했고, 시험 날이 다가올수록 심야 할증요금 붙듯 마구 오르는 학원비에 기겁했다. ‘비(非)강남권’ 지역의 학원도 사정이 이랬다. 입시 전쟁에서 살아남기는커녕 끼어들기만 하려 해도 적지 않은 판돈이 든다. 전쟁으로 군수산업이 돈을 벌고 힘없는 병사들이 죽어가듯 입시 전쟁에는 학원산업이 득을 보고 평범한 아이들은 조용히 스러져간다. 

11월 들어 고등학교 두 곳에 강연을 갔다. 과학 고등학교에서 글쓰기에 관심 있는 아이들과 일반 고등학교에서 흡연 예방 교육을 받는 아이들을 각각 만났다. 과학고 아이들에게 아르바이트를 해봤느냐 물었더니 “저희가 시간이 어딨어요” 한다. 사교육의 최전선을 일찍이 통과한 그 아이들은 평일에는 기숙사에서 살고 주말에는 귀가해 사교육을 또 받는다. 

흡연 예방 교육에 온 한 학생은 주유소 알바를 하다가 돈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그만둔 사정을 털어놓았다. 그 아이가 다니는 고등학교는 전국에서 대학진학률이 최하위권이라고 담당 교사가 전했다.

수능 한파를 몰고 오는 그들의 비명


벨 훅스 지음
이경아 옮김
모티브북 펴냄
<벨 훅스,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를 쓴 벨 훅스는 가난한 흑인 여성이었다. 대학에 들어가서 “자신들은 선택받았고, 특별하며, 이렇게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행운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백인들(13쪽)”을 만나면서 사회의 불평등한 구조와 자신의 계급적 위치를 자각한다. 그녀는 마르크스도 구체적인 해법을 알려주지 않는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복잡한 계급 문제(62쪽)”에 맞닥뜨린다.

남의 얘기 같지 않았다. 인간은 경험적 존재다. 태어나면서부터 부유했고, 가난과 가난으로 인한 고통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이, 공감 능력이 아닌 학습 능력만 평가하는 제도를 통과해 이 사회의 엘리트층을 이루고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은 분명 문제다. 우리 사회의 경제 체제가 공정하게 변화하기 위해선 계급 분리를 조장하는 입시 제도부터 달라져야 할 텐데, 현실은 요원하고 수능은 요란하다. 

올해도 수능 추위가 예고됐다. 딱히 대학을 거부할 소신이나 대안이 없고 이른바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재력과 실력도 간당간당한, 대다수 학부모와 아이들의 비명이 매년 수능 한파를 몰고 오는 게 아닐까. 


* 시사인 은유 읽다


자꾸 학원에 빠지는 아이에게

[은유칼럼]

십대 아이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읽기, 더 싫어하는 건 쓰기, 더더 싫어하는 건 읽고 쓰기라는 담당교사의 얘기를 듣고, 왜 아니겠나 싶었다. 아이란 어른과의 관계에서 규정되는 존재지. 자기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어른이 드문 환경에서 아이가 자기 생각을 만들긴 어렵겠지. 한글만 떼면 매일매일 부과되는 학습량을 잠자코 해내다가 스스로 사고하고 표현하는 활동이 주어지면 얼마나 어색할까 짐작해본다. 우물에서 숭늉 만들기는 누구나 힘든 법이니까.

그래서 사실 좀 미안했어. 종이 한장 주고 30분 동안 글 쓰는 과제가 주어진다면 나는 자신 없거든. 그런데 너희는 써냈어! 어떤 녀석은 문자메시지 치듯 일분 만에 서너줄을 쓰고, 다른 아이들도 대여섯줄 쓰고 노닥거리는데, 그 어수선한 와중에도 너는 미동도 않고 지면을 메우더구나. 내용은 이랬어.

‘중3 이후 학원을 ‘땡땡이’치는 습관이 들었고 학원을 스무번도 끊었다 다녔다를 반복했다. 부모님은 혼내면서도 계속 새로운 학원을 알아봤다. 고등학생이 돼서도 학원 빠지는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고1 기말고사를 치르고 이러다가 큰일 나겠다 싶었고 대학 진학의 목표를 세웠지만 공부 습관이 안 들어서 학원에 앉아 있는 건 힘들었다. 왜인지 학원 빠지고 노는 건 꿀맛이라, 자꾸만 빠지게 됐다. 그 사실을 안 엄마에게 장문의 문자가 오면 면목 없고 나도 월 백만원이 넘는 돈이랑 쓰다 만 교재가 너무 아깝다.’

글이 하도 생생해서 나는 학원비 결제하는 엄마 입장이 되어 속이 타들어갔다가, 학원 건물 앞을 배회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떡볶이집을 향하는 아이가 되어 초조했다가 갈팡질팡 울고 싶었다. 맞아. 고백할게. 아마 길에서 학원 빠지고 피시방 다니고 담배 뻑뻑 피우는 교복 입은 학생을 봤으면 한숨부터 나왔을 거야. 근데 네 글을 읽고서 알았네. 당사자도 죄책감과 갑갑함에 옥죄는구나, 땡땡이는 의지가 아닌 습관이 하는 일이구나, 공부가 하고 싶구나, 생각이 없는 게 아니라 생각은 있지만 방도를 몰라서 그렇구나.

참 부조리한 상황이다. 한 아이가 정규교육 과정을 착실히 밟아왔어. 부모는 아침마다 아이를 깨워 밥 먹여 등교시키고 등골 휘도록 돈 벌어 등록금 대고 학원비까지 냈지. 근데 그 아이는 필요한 학습 지원을 받지 못한다니 말이야. 아이들 삶을 돌보는 정책이 아닌 오직 수능 대책이 ‘교육 정책’이 되어버린 세태를 아프게 실감한다. 내 아이만 피해 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또 뭘 어찌할지 모른다는 핑계로 나도 외면한 현실인데 네 고민을 듣고 보니 부끄럽더라.

누가 네 처지에 맞는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혹여라도 “생각 없는 놈” “글러먹은 놈” “담배 피우는 놈”이란 어른들 말이 너를 설명하는 말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길 바라. 공부에 흥미를 잃고, 학원에 빠지고, 담배에서 위로를 찾는 건 같은 원인의 다른 현상이다. 네겐 이런 면모도 있어. “자기가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고, 자신이 하는 행동이 남에게 어떤 (부정적) 영향을 주는지 적어도 파악하는 사람”이야. 자기 위치와 한계를 아는 것, 그것이 성숙의 지표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어.

네가 대학 진학의 목표를 이루든 아니든,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그날 보여준 모습처럼, 자기를 설명할 언어가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 아픔과 갈등을 표현하면 거기서부터 나은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을 거야. 그날 너희들과의 만남을 흡연 예방 교육이 아닌 서로의 삶의 건강을 돌보는 자리로 기억할게.


* 한겨레 삶의창 



지금, 여기에서 사라진 십대라는 존재

[은유칼럼]

“이번에 당선된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 이제 막 성인이 되어 마주할 사회의 모습이 달라질 테니 투표권 없는 우리들은 불안하기만 했다. 그저 어른들이 멀쩡한 사람을 뽑아주기만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때 어리숙한 권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네 또 어른들 흉내 내니? 너희들이 뉴스 볼 시간은 있니? 맨날 페이스북이나 하면서 확실한 정보도 아닌데 함부로 말하고. 쓸데없는 얘기 할 시간에 영어 단어 한 개라도 외워라.’ 과학 선생님이었다.” 

나는 나의 무지가 들통나서 여러 번 당혹스러웠다. 청소년 페미니즘 단체에서 강의를 할 때다. 십대의 화장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물었다. “학교에서 화장을 허용하나요?” 몇몇 아이들이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쑥스러워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는데 나중에 진행자가 말해주었다. 학교를 다니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고. 난 ‘탈학교 청소년’이란 개념은 알아도 내 앞에 학교에 다니지 않는 청소년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거다. 

일하는 청소년도 생소하긴 마찬가지. 십대 학인들이 노동 경험을 써온 글을 보고 바보처럼 물었다. 아르바이트하면 힘든데 왜 살이 찌냐고. 서너 명이 돌아가며 답했다. ‘손님 몰리면 밥 제때 못 먹어요. 먹을 수 있을 때 먹어야 하니까 빨리 먹어요. 빨리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를 주로 먹어요.’ 그들은 주로 편의점, 패스트푸드점, 뷔페, 카페, 호텔 등에서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일한다고 했다. 일상의 영역에 섞여 살면서도 청소년 노동자라는 존재를 나는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왜 그럴까. 

이수정 외 지음교육공동체 벗 펴냄

“흔히 청소년은 ‘지금, 여기’의 존재가 아닌 ‘미래’의 존재로 취급된다. 청소년은 아직 배움의 과정에 있는 학생이고,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예비 노동자이며, 장차 국가를 이끌어갈 시민이라는 식이다. (…) 이미 노동 현장에 진입해 일하고 있는 청소년들이 다수 있다는 사실 역시 시야에서 사라진다(204쪽).” 

청소년 노동 르포집 <십대 밑바닥 노동>에 따르면 이 같은 ‘비가시화’는 청소년 노동 문제를 덮거나 주변화하는 전략이다. 그러니까 이 나라 어른들은 청소년을 미숙한 존재, 뭘 모르는 애들, 잠자코 공부나 해야 하는 학생으로 규정하면서 노동시장에서 저임금·장시간 노동으로 신나게 부려먹고 있는 형국이다. 전태일이 십대에 그랬듯이 참다못한 그들도 작당한다. 

성숙하고 각성된 ‘투표권 없는’ 정치 주체 

“우리가 상상했던 게 있어요. 일하는 청소년들이 모여서 노동조합을 만들고, 우리끼리 시청광장을 점거하고 시위하고, 한날한시에 파업하고 그럼 멋지겠다. (…) 청소년 노동자인 우리가 이 사회 안에 같이 살고 있고, 또 우리가 일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이 이만큼 굴러가고 있다. 우리가 멈추면 너희도 멈춘다. 우리도 노동자다! 하고 외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죠(143쪽).” 

부끄러움에 고개가 숙여질수록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청소년이라고 해서 모두 교복을 입지 않으며, 수능이라는 목표를 향해 일렬로 우르르 달려가지도 않는다. 공부하는 십대가 있다면 노동하는 십대가 있고, 파업을 모의하는 십대가 있고, 투표권을 열망하는 십대가 있다. 1년 전 촛불을 가장 먼저 들었던 이들도 십대고, 세월호 노란 리본을 가장 늦게까지 달고 있는 이들도 십대다. 어른들이 ‘멀쩡한 사람’을 뽑아주길 두 손 놓고 지켜보기엔 청소년은 너무도 멀쩡한, 성숙한, 각성된 정치적 주체임을 느낀다. 늦게나마 청소년 투표권과 노동권과 인권의 보장을 위해 노력하는 멀쩡한 어른이고 싶다. 


* 시사인에 실림




은유 읽다 -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

[은유칼럼]

비닐 천막을 걷어내자 두어 평 남짓 평상이 휑하니 드러난다. 이중 삼중으로 깔려 있던 돗자리 바닥 아래 플라스틱 지지대 사이엔 여름휴가철 해변처럼 쓰레기가 나뒹군다. 스티로폼 조각, 캔 음료, 빵 비닐들, 그리고 딱딱하고 거무튀튀한 고양이 똥이 발견됐다. 

“이게 주범이었어!” 

삼성 직업병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농성장. 709일 만에 대청소를 유발한 주된 요인은 고양이(배설물)다. 농성장을 드나들던 고양이 서너 마리가 좁은 틈으로 들어가 볼일을 보는 바람에 쿰쿰한 냄새가 진동했다고. 찬바람도 불어오니 월동 준비 겸 대대적인 리모델링 계획을 세웠다. 반올림 활동가 공유정옥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대청소 공지를 보고 나는 슬그머니 출동했다. 

ⓒ시사IN 이명익

“의사란 이름을 떠난 지 5년쯤 됐어요. 그런데 인터뷰를 하면 ‘의사’에 방점이 찍혀 나가요. 그냥 전문의 자격증 따고 살고 싶은 대로 살 뿐인데….” 

7년 전 인터뷰이로 만난 공유정옥씨가 말했다. 살고 싶은 삶을 이어가던 그는 요즘엔 반상근 활동가로 일하며 직장에 나간다. 얼마 전 공저로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이란 책을 냈다. 13명의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와 연구원이 쓴 ‘일하다가 죽는 사회에 맞서는 직업병 추적기’다. 진즉에 사둔 책을 강남역 가는 버스에서 폈다.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가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나서지 않았다면, 산재 신청을 포기하면 10억원을 주겠다는 삼성의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버텨서 7년 만에 공식 산재 인정을 받아내지 못했다면, 우린 지금까지도 반도체 및 첨단 전자산업의 위험에 대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178쪽).” 

농성장에 도착하니 책 속의 황상기씨가 예의 염화미소를 머금은 채 묵은 짐을 바삐 나른다. 그 옆엔 또 다른 ‘유미’, 한혜경씨가 있다. 열아홉 나이에 삼성전자 LCD사업부에 들어가 일한 지 3년 만에 월경이 완전히 멈췄고 뇌종양이 발병했다. “설마 삼성처럼 큰 회사가 몸에 해로운 일을 그냥 시키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177쪽)”던 그녀는 지금 휠체어에 앉아 있고, 어머니 김시녀씨는 두 팔 걷어붙이고 현장을 지휘한다. 

“유미 아빠, 이건 버립시다.” “김 반장이 버리라면 버려야 돼! 하하.” 삼성에서 일하다가 죽거나 골병든 자식을 둔 부모들, 무심하고 일상적인 저 말들이 정겹고 아프다. 마스크를 쓰시라고 해도 답답하다며 맨몸으로 먼지 구덩이 속을 누비는 것까지 닮았다. 저토록 성실함으로 나날을 통과해 이른 곳이 맨바닥, 남의 목숨과 고통을 연료로 몸집을 불려나가다 괴물처럼 비대해져버린 저들의 목전이다. 

나는 세간 정리를 맡았다. 농성장 둘레 선반에 쌓아두었던 냄비며 접시, 일회용 커피, 공구세트, 문구용품, 스탠드, 화분 등을 꺼내 먼지를 닦고 있었는데 저쪽에서 한 젊은 남자가 성급한 걸음걸이로 다가와 말을 건다. 

기업은 꿈쩍 않지만 사람은 흔들린다

“이제 끝났습니까? 잘 해결된 건가요?” 그건 아니고 대청소 중이라고 말했더니 낙담한다. 출근할 때마다 버스 타고 농성장 앞을 매일 지나간다고 했다. 차창 밖으로 농성장이 해체된 걸 보고는 반가운 마음에 목적지도 아닌데 내려서 일부러 찾아왔다며 머뭇거리다가 발걸음을 돌렸다. 

기업은 꿈쩍 않지만 사람은 흔들린다. 공유정옥씨가 어느 노동자의 죽음에 흔들렸듯이 노동자의 질병을 직업병으로, 즉 “인간 노동력의 결함이 아닌 노동과 자본-기계와의 결합 관계의 문제(328쪽)”로 밝혀낸 여러 의사가 있고, 공장 안의 위험한 비밀을 굴뚝 바깥으로 나와서 알리는 노동자들이 있고, 또 타인의 죽음에 눈길을 거두지 않다가 다급하게 안부를 묻는, 흔들리는 눈동자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이 가을날 더 많은 것들이 흔들리길. 그 흔들림의 결합만이 이 농성장의 소멸을 가능케 하리라. 인정 없는 노동의 풍경을 바꿔내리라. 

은유 (작가) webmaster@sisain.co.kr

울더라도 정확하게 말하는 것

[은유칼럼]

“남자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우리 남자들도 알고 보면 돈 버느라 불쌍하거든요.”

 

강연을 마치고 질문 시간에 손을 든 중년 남성이 말했다. 난 강연 내용을 재빨리 복기해보았다. 남자를 밉다고 했나? 그렇지 않다.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으로서 겪는 곤란과 불편, 내가 만난 여성들이 당한 폭력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했을 뿐이다. 굳이 따지자면 남자보다 여자의 불쌍함을 이야기를 한 셈이다. 그것을 두고 남자에 대한 미움, 투정, 원망으로 받아들이고 그는 동정과 배려를 당부했다.

 

당황한 나머지 난 말을 얼버무렸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뒤늦게 답변 시나리오를 짜보았다. “제가 남자를 미워한다는 느낌은 어떤 대목에서 받으셨어요? 전 여성의 삶을 이야기했거든요. 선생님이 여성이 겪는 아픔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질문(의견)을 질문으로 되묻는 방법. 이 정도가 가장 무난한 대응책이라고 결론지었다. 

 

동시에 이상한 열패감이 들었다. 무작위로 날아드는 어떤 말에도 최대한 공손하고 정확하게 답변하려고 일종의 ‘말하기 연습’에 몰두하는 모습은 얼마나 처량한지. 이는 괴팍함, 무뚝뚝함, 거침없음이 남성다움의 전유물로 여겨지듯이 친절함, 보살핌, 포용성을 여성다움의 책무로 익혀온 강박일지도 모른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말하기는 늘 미끄러진다. 부정, 무시, 왜곡당한다.

 

글쓰기 수업에서 페미니즘 관련 책을 읽고 토론할 때 벌어지는 풍경이 있다. 함께 읽은 책의 내용에 공감한 여성 학인들은 자기 이야기를 쏟아낸다. 살면서 억울했던 일, 분했던 일, 기가 막혔던 일... 그러면 남자 학인들의 표정은 조용히 어두워진다. 급기야 “나는 집에서 설거지도 잘하는데 왜 그러느냐” 항변하기도 한다. 그러면 말길이 끊긴다. 분노하는 여성은 우습지만 분노하는 남성은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그냥’ 말한다. 말할 수 있을 때 말한다. 책의 서사에 자극받아 억압되어 있던 자기 얘기를 꺼낸다. 너도 그랬니, 나도 그랬어, 말의 봇물이 터지고 경험의 파도가 쉴 새 없이 밀려오는 것뿐이다. 여성의 공적 말하기 기회가 드물기에 여성의 말하기를 듣는 기회도 없다면, ‘그냥’ 듣고 있는 게 남성으로선 어렵고 어색한 일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평생의 억울함을 터놓는데 잠시의 억울함을 견디지 못하고 끼어드는 말은 제 스스로 힘을 잃는다. 

 

한 지역에서 폭력과 존엄을 화두로 강의를 했을 때다. 관객 중 가장 연장자인 남성이 가장 먼저 손을 들고 소감을 말했다. “작가님은 살면서 폭력을 당한 적이 많나 봐요?” “폭력을 많이 당한 거 같아서요.” 어순을 바꿔가며 반복했다. 그날 강의의 줄거리는 내가 직간접으로 경험한 폭력의 서사였다. 간첩조작사건피해자 인터뷰집 『폭력과 존엄 사이』를 쓰면서 알게 된 국가폭력, 가정폭력과 성폭력 피해자와 글쓰기 수업을 하며 발견한 일상의 폭력, 평소 무심히 사용하는 편견과 차별의 언어 폭력 등등.

 

그건 누구나 예기치 않은 폭력에 노출될 수 있음을 알리는 보고문이면서, 타인의 고통에 무지하고 무심했던 데 대한 반성문이기도 하고, 폭력을 어떻게 줄여나갈지 같이 모색하자고 촉구하는 선언문이기도 한, 아프고도 조심스러운 말들이었다.

 

질문자의 기습적인 발언은 나를 향하는 듯했지만, 막상 나란 사람이 얼마나 많은 폭력에 노출되었는가는 중요치 않았다. 그는 말을 이었다. 결혼한 지 30년이 넘었고 이제는 집안일에 솔선하고 아내를 위한다며 자신의 눈을 빼서 주어도 아깝지 않고 목숨도 바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세상에는 폭력을 휘두르는 (악마 같은) 남자만 있는 게 아니라 몸을 던져 희생하고 노력하는 (천사 같은) 남자도 있다는 걸 말하고 싶은 듯했다. 

 

이 낯설고 익숙한 상황, 이야기의 전후 맥락을 살피기보다 자신을 불쑥 내세우는 남성성의 노출에 난 또 찔렸다. 이번엔 정신을 집중해 말했다. 내 몸을 통과한 폭력의 기억에 대한 가치 폄훼를 바로 잡아야 했다. 당신의 발언은 내가 폭력의 당사자여도 문제, 아니어도 문제다. 용기 내어 자기 아픔을 터놓고 그 아픔에 같이 아파하고 감응한 사람들에 대한 결례이자 업신여김이다. 폭력의 피해를 개인의 박복과 불운으로 취급하는 것, 수치심을 심어주어 침묵을 강요하고 사적인 문제로 돌리는 관습이 얼마나 많은 폭력을 양산하고 방치하는지가 오늘 강의 주제라고 정리해주었다.

 

물론 냉정하고 초연하지 못했다. 맥없이 터진 눈물을 꾹꾹 누르며 말했고 그는 주저 없이 사과했다. 자신이 강의 중간에 들어와서 앞의 이야기를 못 들었고 인문학을 배운 지 얼마 안 돼서 잘 몰라서 그렇다는 말도 덧붙였다. 선량한 눈매를 가진 그의 사과를 의심하진 않지만 그럴수록 그의 언행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강의 내용 파악이 어렵고 공부가 부족하다고 여기면서도 스스로 말하도록 허락했고 기어코 한 수 가르치려 들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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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 걸 묻죠?”라고 재깍 되물을 줄 아는 사람

 

“내가 나에 대해서, 그리고 일에만 몰두하는 매정한 남자와 결혼하여 네 아이를 낳고 살면서 분노와 비참함으로 자주 속을 끓였던 어머니에 대해서 이야기한 책을 쓴 뒤였다. 웬 인터뷰어가 혹시 내가 인생의 짝을 찾지 못한 건 학대하는 아버지를 둔 탓이었느냐고 기습적으로 물었다. 그 질문은 내가 인생에서 하고자 했던 일이 무엇인지를 제멋대로 가정하고 어이없게도 그 인생에 끼어들 권리를 주장하는 질문이었다.”(23쪽)

 

리베카 솔닛은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에서 자신의 경험을 고백한다. 한 여성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를 학대하는 아버지를 둔 탓으로 단정하는 저 장면은, 한국사회의 장대한 폭력에 관한 서사를 한 여성의 트라우마로 간단히 환원해버리는 목소리와 겹친다.

 

‘남자도 돈 버느라 힘들다.’ ‘남자도 설거지 한다.’ ‘남자는 여자를 위해 목숨도 던질 수 있다.’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구구절절한 말하기는 (여성이 그렇다는 걸 알았다가 아니라) 남자는 이렇다는 걸 알아달라는 한 줄 요약으로 돌아오곤 한다. 이런 반복적인 상황이 나의 역량이나 경험 부족 탓이 아닐까 자책했으나 솔닛의 사례와 연결되자 보편적 젠더 현상으로 확장된다.

 

“남자들은 감정이입의 범위를 넓혀서 다른 젠더와 자신을 동일시해보라는 요구를 받지 않는다. 백인은 유색인종과는 달리 다른 인종에 동일시해보라는 요구를 받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지배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은 곧 자신만을 볼 뿐 남들은 보지 않는 것이다.”(89쪽)

 

태어나면서부터 여성은 침묵하는 법을 익히고 남성은 감정을 도려내는 법을 배운다. 그렇게 가부장제는 인간 본성을 왜곡시키고 그 하자와 결함을 체화한 젠더 역할 수행을 윤활유 삼아 굴러간다. 말하기를 익히지 못한 여성이 공감을 배우지 못한 남성과 동료시민으로 살아가자니 여기저기서 삐걱거리고 맞추어 살자니 공부가 끝이 없다. 
 
난 강연 중 눈물바람이 세 번째다. 두 번은 말하다가 혼자 울컥했다. 더 울어야 할 것이다. 내 나약함을 혐오하지 않기 위해 목표를 바꾼다. 울지 않고 말하는 게 아니라 울더라도 정확하게 말하는 것. “내 내면에 대한 권한을 스스로 가짐으로써 다가오는 침입자에 맞서서 훌륭한 문지기가 되는 것, 최소한 “왜 그런 걸 묻죠?”라고 재깍 되물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19쪽)


- 채널예스에 실림


닉네임이 더치페이를 만났을 때

[은유칼럼]

나이 들면 입은 다물고 지갑은 열어라, 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가 십 년 전이다. 모름지기 저것이 올바른 노년의 처세라며 탄복했었다. 심상하게 나 자신을 얻어먹는 위치에 두었거나 태평하게 젖과 꿀이 흐르는 중년 이후를 자신했던 거 같다. 실상은, 위계 구조에 속한 직장인이 아닌 프리랜서로 근근이 살다보니 나 혼자 입도 열고 지갑도 열며 나이 들고 있다.


간헐적으로 글쓰기 수업에서 사회생활을 경험한다. 10대부터 60대까지 나이, 직업, 성별, 주머니 사정이 제각각인 소규모 만민공동회 같은 구성체인데, 유급 노동자로서 상호 이해가 얽혀 있지 않아서 동등한 관계 맺음이 가능한 편이다. 그래도 사람 모인 곳이라면 어디서나 권력을 작동하게 하는 두 가지를 피해갈 수 없으니 바로 호칭과 돈이다.


호칭은 닉네임을 ‘님’자 빼고 부르자고 권한다. 한번은 어느 학인이 “은유 글에서도 착한 딸 역할을 강요하는 부분이 보여요”라고 비판했다. 정말 그런가? 난 내 글을 남 글인 양 은유 글로 재차 검토했다. “선생님 글에서도(…)”라고 하는 것보단 확실히 메시지가 명료하게 전달되는 걸 느낀다. 닉네임은 존칭에 따른 감정 소모를 줄이고 말의 내용과 맥락에 집중하게 하며, 통상 연장자 순으로 배정되는 말의 점유를 막아주었다.


돈 문제는 더치페이로 탈권위주의를 도모한다. 애초엔 소득과 고용 형태에 비례해 차등 적용했다. 과제 미제출이나 지각 시 벌금을 정규직 1만원, 비정규직 5천원, 무직 3천원으로. 근데 이게 또 서열이 돼버렸고 본의 아니게 정규직에게 가부장의 짐을 지웠다. 어차피 과제 안 하고 지각하면 그 자체가 형벌이기에 이중처벌 금지에 따라 벌금을 없앴다. 뒤풀이를 하면 인원수대로 나누어 낸다. 억대 연봉자도 시급 알바생도 강사도 공평하게. 원칙은 이렇게 정하고 지역에서 올라와 교통비가 많이 드는 이나 보릿고개를 넘는 이 등 속사정을 아는 한도에서 눈치껏 배려했다.


나는 닉네임 쓰기보다 더치페이 하기가 더 어려웠다. 세월이 나를 연장자 축에 데려다놓았고 지갑은 채워주지 않았지만, 왠지 팍팍 열어야 할 것 같아 손이 움찔거렸다. 그러는 나를 ‘고리타분하게 왜 이러느냐’며 젊은 친구들과 유학파 출신들이 말렸다. 나의 지갑 열기 충동을 되돌아보았다. 돈을 통한 지배 의지인가, 배제에 대한 불안인가, 내리사랑의 선의인가. 가(식)없는 증여를 위해선 해처럼 넘치는 자가 되어 베풀어도 가진 것의 총량이 줄지 않아야 하는데 그 조건에 난 미달했다.


아무튼 자기 처지가 어려워 남의 형편도 헤아리는 ‘요즘 젊은이들’ 덕분에 ‘쿨하고 힙하게’ 관계 맺는 법, 지갑을 열어야 할 때와 닫아야 할 때를 분간하는 법을 배운다. 권위주의 타파하고 상호 평등 이룩하자, 구호뿐이던 일상에 닉네임과 더치페이 실천으로 틈이 생기고 섬세한 시야가 열렸다. 계급장 뗀 그 사람의 안색, 형편, 고민을 보게 됐다. 아울러 나이, 지위, 재력 등 외적 조건을 우선시하는 권위적인 사람일수록 타인에 대한 고통 감수성이 부족한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얼마 전, 세 시간 거리에서 통학했던 한 학인에게 문자가 왔다. “우리 회식할 때 저한테 멀리서 왔다고 회비 아껴두라고 말해줬었는데 그게 고마운 밤이네요. 오늘 우리 글 모임 회식하는데 서울에서 온 친구에게 회비 내지 말라고 말하려고요.” 사람을 변화시키는 건 계몽이 아니라 전염이라는 걸 상기한 덩달아 고마운 밤이었다. 호칭의 간소화와 지출의 민주화가 노년 초년 할 것 없이 생활 양식으로 자리 잡는다면 괜한 체면의 무게로 뒤뚱거리는 삶이 좀 더 가벼워질 것 같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14441.html?_fr=mt5#csidx336aa9fad962f2897ae8b0b089965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