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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전선

5차시 리뷰 - 삶의 발화로

그간은 기억의 말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삶의 발화단계로 넘어가야할 때입니다. 기억이 말하는 것과 삶이 말하는 것(피어나는 것)은 같기도 다르기도 합니다. 앞에 것이 기억의 방에서 꺼낸 정보와 사실 위주라면 뒤에 것은 삶에 대한 숙고와 진실 차원입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이 질문을 말풍선으로 띄워놓고 글을 써보세요. 글이 사적 고백을 넘어서 공적 가치를 지닐 수 있도록요.

 

 

(스콜라스티카)

아버지의 예민함을 설명한 부분이 생생하게 와 닿네요. 특히 맞춤법 부분은 매우 놀라운데, 아버지가 국어선생님이신가? 하는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어떤 이유와 계기로 토시 하나까지 점검하시는지 설명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예민함은 감각의 영역이거든요. 아버지처럼 태도의 영역은 깐깐했다.’라거나 정확함을 추구했다.’는 표현이 더 맞지 않을까요. 대물림되는 어떤 습성과 태도를 담기에 예민함이라는 단어는 적합지 않습니다. 글을 끌고 가는 키워드가 딱 맞는 표현이 아니라서, 글이 섬세하게 흐르는 듯싶지만 어딘가 전반적으로 핀트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줍니다.

 

 

타고난 예민함은 언제 어디에서나 항상 제일 먼저 달려 나왔고, 짐짓 모른 척 외면하며 침묵하며 지냈다.’ ‘사람 사이의 거리란 아무리 달려간들, 아무리 달려온들 어느 정도의 거리 이상으로 가까워질 수는 없는 것임을 알겠다.’ 이런 문장은 언뜻 좋은데 뜻이 모호하고 보편타당한 이야기라 주제의식을 흐려요. 타고난 예민함이 대인관계에 벽을 만들었고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외롭게 했다는 것, 자신의 처지를 자각하면서 느끼는 아버지에 대한 연민. 이 소재라면 예민함이 얼마나 자기를 얼마나 외롭게 하는가의 보고서 성격이면 글의 문제의식이 더 살겠죠.

 

 

(슝슝)

심인성 실명. 정신적 트라우마로 인해 보는 것을 거부하는 증상. 증상은 자신이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 대신 선택한 것. 스무 살, 열다섯 살 남매를 둔 아버지고, 결혼 20년 차 남편, 7급 공무원으로 10년 근무. 감정상실, 어느 날 시력상실. 현실의 눈을 감은 그가 사랑의 눈을 뜨다. ‘눈을 감아야만 그녀를 볼 수 있어요. 저는 눈을 감고서야 생생하게 살아났어요.’

 

 

감성을 상실한 사십대 남성이 자기해방의 탈출구로 꿈속으로 도피해 감성 주체로 살아난다. 글이 단순한 구조인데 본문에서는 선명하지가 않아요. 왜 그럴까요. K의 러브스토리 증언으로 대부분 할애하는데 그 내용이 다소 진부하고 장황하고요. 건조한 현실에 대비해서 꿈속 사랑이 조금 치명적이거나 몽환적이면 어땠을까요. 보색대비처럼 선명한 건 싸구려소설이라고 평소에 생각하지만 그렇게 쓰는 게 기본이고 그게 능란할 때 변주도 나오는 법이니 시도해볼만 하다고 봐요. 글쓰기는 더 낫게 실패하기. 슝슝님의 형식실험이 어디로 갈지 기대합니다.

 

 

(오늑)

공중에서 죽은 새들. 제목이 압도하네요. ‘탄생을 즐기는 그’ ‘하늘의 이성’ ‘아버지처럼 감싸주던 하늘의 공기이 부분이 초자아 아버지인가요. 살을 찢어 파고드는 거대한 힘으로서의 부성이요. 죽음으로 추락한 새들. 자식들 세상의 몰락과 폐허가 얼핏 그려지기는 하는데 시가 설명적이고 행간이 너무 넓어요. 더 섬세하고 치밀하게.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시선으로.

 

 

(바람도리)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이 들 때까지 죽고 싶었다. 죽음과 사투를 벌이던 한 시절이 선연하게 드러납니다. 마치 요점정리처럼. 문장도 표현도 구체적이고 참 좋은데 글이 개괄적이라서 힘을 못 받아요. 다 말하려고 하지 말고 한 장면만 잡아서 전체를, 한 시절을 이야기할 수 있어요.

 

 

마음이 힘들어서 여행을 하면 만나는 남자에게 기대게 되고 그럴수록 남자에게 상처받는 일이 꼭 생긴다.’이 교훈으로 주제를 좁혀서 이야기하면 여행이라는 위로의 허망함도, 세상이 가하는 농락도, 필자의 좌절도, 나쁜 남자의 악행도 다 들어갈 수 있어요. 나중에 우울증에서 벗어나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법까지 썼는데, 아름다운 마무리에 대한 강박 떨치세요. 내 좌절의 시간들에서 얻은 교훈을 하나씩 독립된 글로 분양하는 겁니다. 어느 한 장면 (외로울 때 남자에게 기댄 후의 몰락)만 잘 보여주겠다는 욕심으로, 한 편의 글에 한 편의 주제만 담아볼 단계입니다.

 

 

(소울리스)

 

너무 배가 부르면 소화될 때까지 책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배가 고프면 힘이 없어 책이 읽히지 않는 영원회귀의 딜레마에 맞서는 나름의 대책이다.’ 독서와 기후, 토양, 생리적 조건에 대한 고찰이었으면 좋았을 글입니다. 니체가 말했듯이 사소한 것은 사소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거죠. 나의 독서 습관의 이력을 늘어놓기만 하니 조금 밋밋해요. ‘들어찬 사람들이 내뿜는 이산화탄소와 체온으로 데워진 후끈한 열기는 폐와 머리에 이물질을 꾸겨 넣는 기분이 들게 했다.’ 이런 표현 정확해요.

 

 

점심 먹고 나면 오전 같은 집중력은 돌아오지 않았고 오후에는 참 많은 일들이 벌어지곤 하던 시절이었다.’ 이 문장은 참 많은 일들의 예시를 두 세 개는 들어주시고요. ‘혼자 놀기라는 테마로 독서와 고독의 이야기로 풀어도 좋고요. 책을 읽으려면 친구를 멀리해라. 뭐 이런 결론도 재밌겠네요.

 

 

(경덕쿵)

시 읽기와 라디오주파수에 관한 비유는 정말 딱 맞아떨어집니다. 감수성 섬세남 인정. 이별의 종류를 나열한 섬세함도 돋보입니다. 천원짜리 샌드위치의 애착을 사랑으로 해석하는 것은 소소하게 재미나지만 좀 억지스럽죠. 아니면 사랑은 기호식품이다.’ 라는 주제로 사랑 경험과 샌드위치 경험을 같이 풀어냈으면 모를까.

 

 

같은 음식을 계속 먹어서 물리는 것과 한 사람을 오래 사랑해서 질리는 것의 상관관계, 기질적인 문제로 풀어보던가요. 섬세한 감수성과 안정된 문장력을 갖췄으니 이걸 토대로 사유를 더 깊게 파고드는 연습을 하고 하나의 주제를 더 감각적으로 혹은 더 독창적으로 아니면 심오하게 물고늘어져보세요.

 

(랄조)

명절은 주사 맞는 것과 같음을 이번 설을 쇠고 느꼈다.’명절과 주사의 비유가 좋습니다. 그런데 추석이 왜 더 아프죠? 새뱃돈 받는 셈 칠 수가 없어서 그런가요? 그 부분을 더 비교 분석해주세요. ‘그분들이 빨리 가셨으면 했다. 아니 세배는 받으시고.’이 문장을 저는 빨리 돌아가시길 바라는 걸로 들었어요. 내 발이 닿지 못한 곳에서 본인들의 경험상을 이래저래 평가하는 그들이 얄미운데, 그들은 왜 그렇게 남 얘기, 남 걱정을 할까요. 그 심리를 피해자 입장에서 유추해보는 것도 좋겠네요.

 

 

그리고 부정적인 생각들은 물에 잉크를 푼 듯 삽시간에 퍼졌다. 시각화된 문장. '이러다가 무엇도 못되고 죽는 거 아냐?‘ 뭐가 되고 싶은지, 아직 못 정했는지 자기고민이 들어가면 글이 깊이가 생겨요. 남들은 노는 것처럼 보이지만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하는지, 위의 쑥덕공론과 대비되게요. 자기가 처한 불안과 위태로움을 끝까지 응시하고 파고들면 좋은글이 나옵니다. 불안을 견딜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계속 쓰세요. 십대 때 얘기도 궁금해요.

(상상)

니 편이 되는 법과 지랄총량의 법칙. 수학문제처럼 놓인 두 개의 조건입니다. 나의 지랄-> 아버지의 대응. 자식의 지랄-> 나의 대응. 이걸 기본 구조로 잡고 이야기를 전개했으면 좋았겠죠. ‘우리 생에는 자기가 가진 열꽃만큼 비워내야 통과하는 길이 있다.’ 는 결론도 설득력 있을 테고요.

 

 

작은 아이 학교 문제 교사의 대응, 아버지의 죽음과 추억여행, 이건 각각의 글감으로 독립시켜야 합니다.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으니까요. 이전 글에 비해서 글이 더 밀도가 생기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더 박차를 가하면 더 좋아지겠어요. 기록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나중에 추억여행을 앨범이 아니라 문집으로 전해줄 수 있겠네요. 제목은 지랄 총량의 법칙이 될지, 사랑무한의 법칙, 부모로 사는 법이 될지.

 

 

(도치)

노인과 가족의 문제네요. 죽음을 앞둔 엄마와 일가족의 이야기가 일일드라마처럼 생생하게 그려져요. 엄마의 이야기를 역시나 찬찬하게 잘 들려주셨고 자식 간 미묘한 갈등적 요소도 가감 없이 드러나는데, 주제의식이 미약해요. 우리는 누구나 늙잖아요. 고령화 시대에 자식과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는 모두의 화두이기도 할 테고요. 도치님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곁들여서 글에 깊이를 부여해주세요. 돌아가신 엄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끝나면 라디오 사연 정도에 머무는 것이고요. 글쓰기는 더 사유가 담겨야 합니다.

 

(히나)

늘 건강하다가도 늘 아픈 것 같은 자식의 존재-> 이게 무슨 뜻인가요. 제목이 감각의 기억인데 내용은 설움의 기억에 가까워요. 그리고 설움이긴 하지만 또 그 안에서 여러 개 이야기가 어우러지기보다 약간 어긋나고요. 알콩달콩 연애 중의 감기몸살=행복, 엄마의 무관심 속의 감기몸살= 설움, 나쁜 놈의 패악질 속의 몸살 = 모멸. 아닐까 싶네요. 엇비슷해 보이는 것들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게 글쓰기입니다. “제발 함부로 아프지 말고, 아플 때는 내 허락을 먼저 받아.”몹시도 웃기고 강렬한 서두. 글이 흥미롭게 술술 익히는데 그만큼 헐겁다는 뜻이기도 해요. 글이 더 섬세하면 좋겠고요.

 

(밀애)

 

뒤치다꺼리 하느라 무뇌아에 감정까지 없어진 인간이 되어간다.’ ‘점점 주변 상황에 관심도 없고 감정노동도 하기 싫다. 누가 시비 걸면 죽여 버리고 싶다.’ 노동의 질곡에서 비명처럼 나오는 살아있는 표현들이 좋습니다. 보통 직장을 그만두고 싶은 때 나타나는 증상으로 묶어낸 것도요. ‘담당 공무원에게 욕이 나오고 조직적이지 않는 사무국장이 짜증난다. 문제의식은 있으나 마음 약한 대표도 밉다.’ 각 직급별 원망의 포인트를 짚어주니 실감이 나고요. “여성운동 했다는 사람이 중간 착취 관리자처럼 행동하시면 안 되죠?” 같은 인용도 적절합니다.

 

 

직장생활의 고난. 불혹을 넘은 나이 참을성 없는 자신에 대한 한탄과 연민, 그리고 분석. 에니어그램을 통한 위안. ‘그동안 내가 화를 자주 냈던 것도 걱정 근심이 많은 이유도 내가 살아가기 위한 결핍을 해결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해석하고 이해하고 위로 받으려 하고 있구나. 에니어그램도 글쓰기 최전선도.’ 결론도 잘 내려주었어요. 다 좋은데 글이 왜 산만하고 어수선해요. 이건 훌륭한 초고이고, 중복되는 표현은 한번으로 줄여주고. 문장도 다듬고요. 몇일전 -> 며칠 전/ 댓구-> 대구 / 뒤치다꺼리-> 뒤치다꺼리. 맞춤법 손보면 되겠네요. 욕심을 안 부리고 글이 솔직하니 시원시원해서 좋습니다. 대신 더 꼼꼼하게 퇴고하세요.

 

 

나는 어느 도시에서 비정규직(계약직)을 하면서 번 돈으로 살아가고 있다. 두 아이와 늘 생계를 걱정하지만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하면서 살고 싶은지 자아성찰과 자기반성을 잊지 않는 사람이다. 간혹 삶에 지쳐 넋 놓고 울 때도 있지만 다시 일어나서 나의 삶을 맞이한다.”

지난 기수 과제에 냈던 글이네요. 이 부분은 다시 읽어도 좋은 문장입니다.

 

 

(노래)

자신의 분노와 화를 가장 소중하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쏟아내는 엄마. ‘엄마의 화가 나에게 옮아오지 않는 곳으로. 엄마의 불덩이가 나에게 들어오지 못할 곳으로. 난 무조건 엄마와 다르게 살고 싶었다.’ 이 문장이 맨발로 도망가는 딸이 그려져요. 다급하게 잘 표현되었네요. 엄마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까지 나아가서 좋아요. ‘엄마 가슴속에 언제부터 무엇 때문에 뜨거운 불덩이가 들어앉아 응어리져 있었는지 직접 물어본 적도 궁금해 한 적도 없었음을 이제야 알았다.’

 

 

그런데, 엄마의 고질적 습관을 따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라잖아요. 자신의 가슴 속에는 어떤 불덩이가 있는지 관찰하고 사유하면 엄마의 고충도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상태에 대한 자각 이후 자기 분석까지 시도해서 거울처럼 서로의 삶을 비추어본다면 멋진 입체적인 글이 되었겠어요. 인정과 애정을 갈구하고, 외롭고 지치고. 이건 맞는 표현이지만 고유한 표현은 아니잖아요. 글의 마무리로는 사용하지 않아야 글의 고유성이 살아납니다. 뭔가 글이 조금씩 균형이 생기고 있습니다. 좋은 변화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