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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전선

<침묵의 미래> 삶과 삶 아닌 것, 글과 글 아닌 것

낭독과 합평의 불꽃같은 2차시, 엠티도 아니고 두 번째 수업부터 4시간을 달렸습니다. 릴레이 발표의 기록을 세운 것 같네요. 막판에는 (멜로님 표현대로) ‘글이 잘못인지 내가 잘못인지 헷갈릴 정도로정신이 혼미해졌습니다. 모두 애쓰셨습니다. 우리 장했어요. 고된 시간이었지만 몸풀기는 확실히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앞으로는 체력을 감안해서 속도를 조절할게요. 글이란 게, 엑스레이처럼 삶-마음의 한 단면을 보여주기 마련이거든요. 첫 글을 읽고 나니 비로소 여러분들 만난 기분입니다. 앞으로의 과제는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글쓰기의 원칙을 반영해서 쓰는 노력을 기울여주세요. 14차시 수업을 마쳤을 때는 내용전달을 기본으로 주제의식을 드러내고 공감가능한 고유한 글쓰기를 해내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김애란 <침묵의 미래>에서 이야기 나누고 싶었던 것은 삶 비슷한 것이예요. 작가가 나눈 기준은 언어입니다. 말의 지껄임 같은 것들. 자유로운 발언. 박물관에 갇혀 언어를 통제 당할 때 삶 비슷한 것을 사는 노인. 공동체에서 여럿이 어울리며 떠들던 시절의 을 그리워하죠.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사는 것 같다혹은 이게 사는 것인가라는 말을 하잖아요. 그럴 때 에 어떤 상관성이 있을까 생각해보았어요. 개인적 취향이지만 말-느낌의 풍요로운 성찬을 나눌 때 (수다, , 영화, 정치적 발언) 사는 것 같긴 하거든요. 말도 한 마디 못하고 소처럼 일만 할 때, 소외된 노동의 배치 속에서는 이게 사는 것인가한탄합니다. 글쓰기 수업에서 을 나눈 시간들을 사는 것 같았던 시간으로 기억한다는 학인들도 많이 있었고요. 말과 삶의 상관성은, 우리가 공부하는 동안 화두로 품고 물음을 가져갔으면 좋겠어요. 아마 글 비슷한 것사이를 진동하면서 삶 비슷한 것을 탐문해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조리퐁) -사건일지는 지루하다

서울 용산구의 중앙대 부속병원에서 태어났다..’로 시작하는 글. 감상보다 줄거리가 위주로 썼지만 사건이 아니라 사건일지를 정리한 형식이라서 늘어집니다. 줄거리를 쓰되, 불필요한 정보는 과감히 뺄 줄 알아야 메시지 전달에 효과적입니다. 마지막 단락에 글감이 와글와글. 근데 멋진 문장도 서사가 뒷받침 되지 않으면 힘을 잃습니다. 각 문장 하나를 주제로 잡고 사건/사례 중심의 글을 써보세요.

 

* 나름의 풍파를 겪었다...최선을 추구하기보다 최악을 피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알았고, 사람을 그 자체로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매일 나를 스쳐가는 자극들이 힘을 잃는 것을 보면서 지금도 살고있다.

 

 

(백납) - 위트 있는 문장들로 수미일관하게

아버지는 뭐하시냐는 질문은 이제 거의 듣지 않는다첫 문장 좋아요. ‘기도만으로도 대기업 입사가 가능했던 황금시대의 전설로 여겨질 뿐이다.’ ‘어쩌면 도박에도 자아실현과 성취가 있을 수 있다재기 넘치는 해석이 무거울 수 있는 내용에 숨통을 열어주고요. 곳곳에 그런 장치들이 돋보여요. 도투락월드, 환상의 꿈의 나라 통도 판타지아, 같은 구체적 표현이 글을 살아있게 하고. 중후반으로 넘어가면서 아버지의 IMF, 질병 등은 한줄 내레이션으로 처리했으면 더 좋았겠음. -했다고 한다는 어미는 했다로 끊어칠 것. 결론 부분, 피로감의 원인과 가족에 대한 자기만의 도덕을 밝힌 부분이 좋습니다.

 

*윤리와 도덕 이전에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는 피곤이 있는 것이다...버려진 자가 다시 버리지 않을 도리는 도저히 없다.

 

 

(현빈사랑) - 한 가지 사건을 더 깊게 파헤치자

내면의 고백은 쉽지 않다. 도도한 도입은 좋았는데, 치밀하게 파고드는 게 아쉬워요. 무엇이 가장 두려운가요? 일상에서 발생 가능한 일들을 상상하면서 두려움을 구체화해보면 좋겠네요. 막상 별일 아닐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영화감상, 고전공부 등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가 따뜻하게 그려지는데 소재가 여러 가지 다소 산만합니다. ‘망각부분은 기억력이 떨어진다는 설명식의 진술보다 사건으로 구체화해주시고요. 현재 직업을 학생으로 마무리한 거 좋아요. 공부 후의 변화를 첫째, 둘째, 셋째, 써보세요. ‘신청하는 게 아니었어같은 마음속 독백은 작은따옴표고요. 말줄임표랑 이모티콘은 안 써야 반듯한 글이 됩니다.

 

*나는 지금 두 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이다. 그리고... 학생이다.

 

 

(최군) - 섹시한 전개와 착한 결말의 부조화

이 글을 읽은 후에 먹는 고로케는 다를 거예요. 고로케를 소재로 성장기를 다 풀어낼 수 있으니 놀랍네요. 맨밥의 김치와는 너무 다른 식감. 고로케가 튀김으로 떡볶이로 이어지면서 어른이 된 청년. 무채색의 기억과 유채색의 모습을 대비한 적절한 에피소드와 진술로 긴장감 있게 잘 끌고 갔어요. ‘오비완 케노피에 대한 한줄 풀이가 글을 더 주제의식에 닿게 해주지 않을까 싶어요.

 

어깨를 쳐주면서 괜찮아라는 설정이나, 마데카솔이 나오는 부분은 좀 진부합니다. 빨리 화해하고 싶다는 어떤 강박으로도 읽히고요. 긴장의 톤이 깨진다고 할까요. 치유보다 중요한 건, 꾸준한 응시입니다. 합평 시간에 답한 얘기들, 아픔을 전혀 느끼지 않았던 성장기, 정서의 의도적 무관심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가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는 이성복의 시구가 생각나요. 밀린 아픔을 아프는 시간들 되면 좋겠어요. 글쓰기가. 억압된 것의 귀환의 기록 기다려져요.

 

*난 누구와도, 나 자신과도 대화하는 법을 몰랐다. 겉으론 말 잘하는 웅변가였지만...삶은 원래 뿌옇게 흐린 물이니 그냥 가라앉힐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몰랐다.

 

 

(이요르) - 소녀 감수성의 진화를 위해 길게 써라

글의 양이 중요해요. 양이 질을 담보해주기도 하거든요. 더러는. 앞으로는 길게 이야기를 풀어보세요. ‘우리 가족은 모두 상처를 숨기는 사람이었다’ ‘지금까지 타인에게 온 마음을 준 적 없다같은 문장의 경우 경험/사건 위주로 배경도 풀어주고 주고받은 말도 따옴표로 인용하고 자세히 써보세요. 조용한 아이, 활발한 아이, 이름을 부르면 놀라는 아이의 변화가 잡힐 듯 잡힐 듯 안 잡히네요. 그래도 뭔가 시적인 정서적 울림이 있어요. 추상으로 한 없이 흐를 위험이 있으니 탄탄한 서사로 잘 받쳐주길.

 

*“하영아라고 부르는 존재가 날 긴장하게 한다. 나를 배경이 아닌 존재로 알아보고, 다가오려는 사람들. 난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나무와 강) - 정보를 아끼지 말자

인도와 일상의 간극에 다리를 놓아주세요. 인도를 가기 전에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았기에 일상의 반복이 지루했는지, 떠나고 싶었는지, 가장 중요한 정보가 빠지니까 깊은 공감이 어렵죠. 한 사람의 캐릭터가 잡히지 않으면 글이 치고 나가질 못하고, 어떤 고유성을 갖기 힘들어요. 중간에 인도에서 에피소드는 재밌게 빨려들어요. 생생하고 읽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인도 에피소드 전후로 제목에 상응하는 일상이 이야기가 들어갔다면, 인생은 받아들이는 것이다, 일상에 순응하자, 라는 진한 깨달음이 더 울림을 주겠죠.

 

*어디를 가나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았다. 결국 어디로 떠나든 나를 떠날 수 없다는 것과, 떠난 자리나 시작하는 자리나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반복되는 일상이 나를 변화시키며, 그것이 일상의 위력이라는 것도 나이든 지금에야 어렴풋 깨달아간다.

 

 

(김명아) - 줌 아웃으로 주제를 부각시키자

문과 집과 담과 길의 이야기로 기억하는 유년. 어린아이가 기웃기웃 자기 외부 세계를 탐하는 장면이 그려져요. 친구와 수다 떨면서 오가던 길, ‘이 기억하는 골목이라던가, 더군다나 번호키가 없던 시절의 이야기가 시대 고증처럼 생생히 펼쳐집니다. 그런데 현장 묘사에 비해 정서적 느낌에 관한 진술이 없어서 다소 늘어지고 건조합니다. 그런 골목에서 얻은 길들의 발견이 나에게 어떤 정서작용을 일으켰는지, 유년의 기억으로 지금도 골목을 탐하는데 그게 또 일상에서 주는 기쁨, 사라지는 것에 대한 생각 등이 글의 주제가 되겠지요. 구체적인 장면을 파고들다가도 한번 씩 고개 들어 하늘을 보듯이 망원렌즈로 도시의 산책자가 된 자신의 모습을 관찰한다면 글이 더 풍부해질 겁니다.

 

*오랜 시간 그 자리에 있었기에 파괴도어 사라질거라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골목들, 언젠가 아니 몇 달 뒤에 사라질지도 모르는 골목과 동네를 기억하고 기록하기 위해, 골목에 들어선다.

 

 

() - 끊어치기로 인한 글의 리듬과 혼란

과거와 현재를 교차 편집한 입체식 구성. 단문의 스피드한 전개가 돋보입니다. 다만 너무 생략해버려서 메시지 수용에 혼란을 겪게도 되네요. ‘지금은 삶이 내 것인지 두렵다’ ‘사람을 만날수록 외로워졌다’ ‘세상을 바꾸자고 설득한 모든 말들이 칼처럼 나에게 되돌아와 푹 꽂혔다.’ 등등 각 단락마다 얘기가 시작되려다 끝나는 느낌이 있어요. 의도된 전략인지 모르겠으나 한 문장 정도 더 부연하면 좋겠어요. 경찰 버스 아래서 인증샷 찍는 모습, A4용지 두 장 안 될 만큼 나눈 연인과의 대화 등은 가슴이 설레고 재밌어요. 독자를 안달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느 한 부분에선 충족시켜줘야 합니다. 좀만 더 친절하게 부풀려주세요.

 

*옷이 날개라 날개옷은 나를 현실중력에서 잠시 해방시켰줬다...나는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파란불이 켜지고 우린 동시에 움직였다. 어떤 종교행사 같았다. 그날 이후 TV는 나를 소외시키지 않았다.

 

 

(봄봄) - 하고 싶은 이야기 후련하게 하자

자신의 모든 생애서사를 알고 있는 필자와 아무런 정보가 없는 독자가 같은 감정에 이르기 위해서는 고도의 전략이 필요하죠. 그건 허탈하게 쉽거나 지독하게 어렵습니다. 어떤 은유나 알레고리로 전달하려면 더 치밀한 전개가 필요하겠고요. 마론 인형과 어머니의 태도에 따른 상처, 모녀지간 기억의 부조화, 그 오랜 시간들의 이야기. 정성스러운 묘사, 엉킴 없는 서사가 좋은데요, 알 듯 말 듯해서 조금 답답했어요. ‘순해질 때면엄마를 이해하는데 아직도 풀리지 않는 앙금이 남아있는 듯도 하고요. 속 시원하게 감정을 파고들어 진술했다면 다소 거칠더라도 그걸 읽고 나서 독자가 끄덕였겠지요. “기억 때문이야...기억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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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사는 건 다 그런 건지 모르겠다. 엄마도 (자식을) 사랑했지만 때론 귀찮았고, 위로해주고 싶었지만 때론 무기력 했고, 참으려했지만 화가 났겠지. (나의) 마음이 순해질 때면, 최선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기억을 뭉뚱그려 생각해내는 엄마를 안아주고 싶다.

 

 

(배롱) - 독자를 과하게 노동하게 하지 마라

추리소설이 아니라 추리수필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제목도 소환. 한 편의 추리극처럼 흥미진진하고 빠르게 읽히는데요, 뭔가 단서들을 이리저리 맞춰봐야 서사가 파악되는 구조에요. 필자가 소환한 각 세 명의 자아의 이야기를 중심축으로 풀어갔으면 더 좋았겠구나 싶어요. 독자들은 쉽게 해석노동을 자처하지 않습니다. 도도한 마음을 얻으려면 조금 친절한 것도 필요하죠. 한강철교, 김언수 작가, 김영하 작가, 자전적 소설에 대한 입장, 수유너머 수업, 외국소설, 내성천, 아버지, 판타지, 소설 하구 등 여러 가지를 동원하기보다 몇 개는 빼도 좋았겠어요. 이를테면 자전적 글에 대한 두려움, 한강철교 장면 같은 것은 메시지 수용을 방해합니다. 그런데도 문장마다 힘이 있어서 혼란스러운 채로 긴장감 있게 읽히는 재주는 놀랍습니다.

 

*‘글쎄요... 희망이라든가 하는 것과는 다른 맥락인데 삶에 대한 인식이 바뀔 때 우리의 삶이 바뀐다고 해야 할까요? 껍질뿐인 욕망이 거대한 하구였다는 걸 알게 되는 거고, 새로운 삶이 새로운 강이 되는 건 아닐까요?’

 

 

(지원) - 모범생의 답안지를 피하기 위하여

착한 사람보다 나쁜 사람이 더 글쓰기가 유리하다고 해요. 드라마에 악녀 캐릭터가 꼭 나오는 것도 비슷한 이유일까요. 우리나라가 억압이 많은 사회라서 악녀를 통해 카타르시스 느끼는 게 아닐까 싶어요. 글을 차분히 잘 썼어요. 장갑 분실 에피소드를 통해 소심함, 예민함을 잘 보여주었고, 심리학 책 이야기로 벗어나려는 노력, 재즈로의 귀환을 통한 자기극복의 노력 등 들어갈 것들이 다 들어간 청춘에세이에요. 그런데 아주 착실한 모범생의 답안지 같은 느낌이 있지요. 더 자기를 과감히 드러내볼래요. 재즈를 증오했던 얘기, 열등감 같은 것들. 나 자신을 인정하게 했던 계기. 즉흥연주처럼 흔들려야 청춘이다 쯤 되는 서사들.

 

*매일매일이 특별하고 새로운 나날이라 내가 앞으로 어떻게 생각이 바뀌고 어떤 가치관으로 살아갈지 헤아릴 수가 없다. 준비된 연주자로서 내 삶을 훌륭한 즉흥연주로 만들어가는 게 지금 나의 목표다.

 

 

(기명) - 나쁜 짓도 얼굴 보고 하자

수업에 안 나오신 이유를 올린 글, 잘 봤어요. 올드걸의 시집은 공감 안 가서 못 나오셨다고 하셨는데, 침묵의 미래 시간에는 왜 안 오셨어요. 두번째는 시간은 기다렸는데요. 눈치 안 보고 솔직하게 의견을 개진하는 게 '나쁜 짓' 아니고 '공덕' 쌓는 일이랍니다. 글쓰기 수업에서는요. 자기연민을 혼자서 넘어서기는 어렵고 동료들 사이에서 단단해지는 과정이기도 하고요. 하루키의 말이라는 우주의 복잡함에 비한다면 우리는 지렁이의 뇌 같은존재들이 문자로 꿈틀거리는 짓의 하나가 글쓰기지요. 기명님 글에 괄호와 문장부호가 너무 많아요. 그러면 내용적 독해 말고 물리적 시각적 독해를 방해하지요. 우리는 뇌로 정보를 처리하면서 읽지만 눈으로 글 배치의 미학적 느낌을 읽기도 하니까요.

 

*첫째, “비어있는글은 쓰지 말 것-쓰고 싶지 않을 때 혹은 쓸 것이 없을 때 문장을 뻥튀기하지 말 것. 둘째, 쓸데없는 문장은 쓰지 말 것-여백조차 필요한 곳과 있어야 할 곳에 둘 것-입니다.

 

 

 

:: 3차시 과제 tip

3차시까지는 자유글입니다. 책에서 영감 받아 쓰고 싶은 것 써오세요. 발제-글쓰기의 예를 들면, 벤야민의 책 내용에서 마음에 드는 구절을 모아서 정리한다. 좋은 이유나 반론, 질문까지 쓰면 금상첨화.각각의 소제목을 단 산문 한 편에 대해 떠오르는 사건-생각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