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이미지> 삶의 파괴적 성격

[글쓰기의 최전선]

(2차시 과제 밀린 리뷰부터)

 

(밤밤) 마음의 말, 감정 진술로 된 글의 한계

행여 수치심이 쏟아져 나올까, 오해될까 두려워 꽁꽁 닫아두었던 마음이 얼룩이로 인해 보듬고 나아지는 과정을 글로 썼습니다. 언제 왜 어떤 사건과 관계를 계기로 그런 마음 상태가 되었는지에 대한 구체적 서사가 생략되어서 아쉽습니다. 글이 겉돌면 독자와 거리가 좁혀지지 않거든요. 글쓰기 첫 과제를 제출하면서 숨 고르기 과정이라 생각해요. 막연하지만 얼룩이가 밤밤님이 삶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데 굉장히 큰 역할을 했다는 느낌은 강하게 다가오니 절반의 성공이랄까요. 고양이의 힘이 어떻게 밤밤님 삶에 작용하는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풀어주세요. 약간 생에 달관한 듯도 싶고 떨림을 간직한 듯도 싶은 매력적인 어조의 글, 듣고 싶네요.

 

*마음의 말은 나와 얼룩이를 연결해주었을 뿐 아니라 나와 세계의 어그러진 관계를 보듬어주었다. 밖으로 뻗어나가던 뿔들은 차츰 내 마음에 가 닿으려는 에너지가 되고 있었다.

 

 

(겨울) 이스탄불도 내 안의 폐허도 보일 듯 말 듯

버스 창밖을 내다보는 고등학생 소녀. 그런데 삶을 보고 있지 않고 이스탄불을 보고 있네요. 약간의 단서처럼, 혹은 숨은그림찾기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의 거리들 사이로 아버지의 부재가 남긴 폐허의 조각들이 눈에 보였습니다. 그 시절이 희망도 기대도 없었다, 살얼음판 같았다는 얘기는 너무 크고 추상적이라서 이스탄불은 아름다운 도시더라는 진술처럼 힘을 잃습니다. 결단을 내렸으면 좋겠어요. 풍부한 문학적 자료와 인용으로 아예 이스탄불의 역사와 정보를 소개하면서 유년을 암시적으로 드러내던가, 아니면 아예 독자를 데리고 내 안의 폐허로 여행을 떠나던가요. 이번 글은 겨울님에게 두 가지 모두 쓸 수 있는 자원이 충분하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예고편입니다.

 

 

*자기 안의 폐허를 가져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이스탄불이 품고 있는 비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직 난 내안의 폐허를 밀어내지도, 있는 그대로 직시하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멜로) 기억의 퍼즐도 맞춰야 보배

다 읽고 나서 하나의 맥락으로 잡히지 않은 어수선한 글이 있습니다. 그런 글은 대개 이런 느낌을 주죠. 참 무성의하게 썼구나. 그런데 이 글은 이상하게 공을 들여서 기억을 끄집어내고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읽으면서 같이 이리저리 기억의 조각을 하나씩 확인하는 기분입니다. 서사가 흩어져도 영혼이 없는 글은 아니라는 느낌을 주는 게 신기하네요. 자기에게 최대한 집중(하려고 노력)한 좋은 초고입니다. 이 글을 들여다보면서 혼자 보낸 유년의 장면 수퍼마켓 방-오락실, 활달했던 청소년기, 성인이 된 후 책과 컴퓨터 등을 묘사해보세요. 일문일사 단문으로 끊어 치고, 단어 중복 피하고 단락을 나눠서 쓴다면 글이 훨씬 명료해질 거예요.

 

 

*돌이켜 보면 중학교 시절이 농구며 스케이트보드며 운동도 많이 하고 여러 친구들도 만나면서 가장 활동적으로 생활했던 시기인데, 당시 부모님은 친구들이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같이 놀지 말라고 했다는 거다.

 

 

(사띠) 일상의 디테일이 만든 판타지

글이 사띠님과 닮았어요. 담백하고 초롱초롱 합니다. ‘현지인처럼 살다오기’. 일상은 지루한 건데, 일상 여행은 지루하지 않게 그려지네요. 아마 타자성이 분명한 친구네 가족과 이국땅과 교감해서 그렇겠지요. 그것들을 놓치지 않고 잡아내 삶의 디테일을 보여준 게 이 글의 힘입니다. 나를 현실에서 살게 하는 사람, 거의 성자 반열의 힘을 행사하는 친구이야기가 더 있었으면 좋았겠네요. 몸도 아프고 세상이 맘처럼 되지 않았던 20대 초반의 이야기도 부연으로 들어갔으면 대조적으로 주제가 더 드러났겠지요. 일상도 잘 살아내면 판타지가 된다는 생각을 들게 해준 글입니다. (왠지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가 생각나네요.)

 

 

*구태여 되고 싶은 걸 찾지 않는다. 꿈이 없는 걸 더 이상 초조해 하지 않는다. 자기계발서 류의 책들을 저주한다. 나는 내 삶이 한없이 가벼워지기를 바란다. 열정, 책임감, 사명감 같은 무거운 가치의 굴레를 스스로에게 지우지 않기를 바란다...중국에 머물렀던 그 시간들처럼.

 

 

(라피스) 한 편의 글에 하나의 이야기만

통영에 여행 왔다. 이곳은 거진의 작은 항구를 닮았다. 배를 타고 연대도로 간다. 깡을 본다. 거진이 떠오른다. 내게 또 다른 삶을 안기어준 곳, 파란의 첫 신호탄이기도 했던 곳. 진저리처지는 노동의 현장, 바다. 아버지의 무덤이 있는 그곳. 나는 가지 않는다. 아버지를 이해하는 나이가 된 딸의 회한 까지. 한 가지 글에서 너무 여러 장소와 시기와 감정이 담겨있습니다. ‘바다라는 소재로 이야기를 끌어가면 좋았을 텐데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시점 이동, 원망과 이해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독자가 같이 호흡하기에는 라피스님에 대한 정보 제공이 충분치가 않습니다. 글 한편에서 하나의 주제에만 집중하면, 명태에 대한 박식한 정보와 상념처럼, 글감의 생생함과 고유함이 살아날 거예요. 바다는 큽니다.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아요. 바다와 나의 관계, 그 감정의 촘촘한 결을 살리세요.

 

 

*그 시절 이후 나는 명태와 작별했다. 무수히 많은 명태를 잠들게 한 대가로 나는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밤, 꿈속에서 악몽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러나 가끔은 큰 어머니가 해주셨던 창란, 명란, 아가미젖을 먹고 싶다. 그리고 큰 어머니도 그립고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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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부터 3차시 과제 리뷰)

 

고통 없는 삶이 없고, 결핍 없는 사람 없지요. 삶의 매혹, 사람의 매력은 그 결핍과 파괴에서 온다고 저는 생각해요. 내게 주어진 아픔, 결점, 시행착오를 차분히 끌어안고 삶으로 통합하는 능력이 사는 능력일 테고요. 소위 부정의 항목으로 척결의 목록으로 이름지워진 아픔과 상처가 아니라면 삶이 왜 소중하고 사람이 왜 존귀할까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친밀하게 이어주는 것도 탁월함, 완벽함이 아니라 부족함인 경우가 많고요. 허술한 사람 보면 정들잖아요. 서로 실수해야 배우고요.^^ 중요한 것은 결핍 자체가 아니라 결핍을 대하는 태도 같아요. 자격지심에 빠지지 말고 자기 삶에 관대하고 의연해지는 연습이 필요하겠지요. 나를 대하는 태도가 곧 남을 대하는 태도이기도 하니까요.

 

글쓰기 수업이 자기 아픔 털어놓는 고통의 해우소가 아니라, 삶의 이야기라면 어느 것도 수용가능한 자리일 때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자신을 과대포장하고 무결점 인간임을 내세워야 살아남는 세상, 결핍을 밝히면 무시 당하기 십상인 세상의 질서와는 다른 감각, 다른 윤리가 작동하는 공간이길 바래봅니다. 주저하지 마시고 겁내지도 마시고, 서두르지도 마시고, 삶의 진실에 복무하는 마음 하나만 챙기고 서로의 글을 대하면 좋겠어요.

 

저는 글쓰기수업에서 동료들 앞에서 글을 읽는 행위- 자기 삶을 진술하는 행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직시하고 성찰해야 삶에서 글감도 나오지, 고개 돌리고 회피하면 쓸 것이 없어요. 그러니 낭독은 삶을 끌어안는 연습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쉽게 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요. 때를 기다리고 준비하고 시도하는 것, 그 과정 자체가 공부이고요. 동료의 글을 읽고 자극 받고, 혼자 쓰려다가 좌절도 하고, 부족한대로 읽고 비판도 위로도 칭찬도 받고. 그런 온갖 시간을 통과하면서 우리는 조금씩 변합니다. 글을 쓰는 능력도 사는 힘도 길러지겠지요.

 

최승자 시인이 말한 '상처받고 응시하고 꿈꾼다'가 삶의 본질을 정확히 표현한 문장이라서 저는 좋아하는데요, 벤야민의 글 역시 이 한 문장에 담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상처받고, 응시하고, 꿈꾸는 문장들, 늘 잉여의 것을 담고 있는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기회를 가져보고 싶어서 벤야민의 <사유이미지> 같이 읽는 시간 마련했습니다. 쉽게 결론 내려주는 책보다 난해해도 영감을 주는 책을, 우리는 아껴야합니다. 글을 쓰려면요 ^^

 

(배롱) 진부함과 통속성의 줄타기

소설 속 인물의 탄생이 아기 낳는 것처럼 산통이 있나봅니다. 그래서 핏덩이 신생아가 벌건 얼굴을 하고 있어 다 닮아 보이듯이, 이 글의 인물도 개성이 잘 살아나지는 않습니다. 특히 인물 묘사는 눈코입의 모양과 배치보다는 그 사람 주름이나 눈빛, 표정, 말투 등으로 더 드러나는 법인데 물리적 묘사만 있어서 그런 거 같고요. 소설을 완성시켜 가는 동안 이 타짜들의 세계를 담은 소설에서 담고 싶은 주제의식이 뭔지는 놓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간접적으로라도 드러나면 좋겠어요. 통속의 미학이 있습니다. 끝까지 밀고가 보세요. 미소 머금고 재밌게 읽었습니다.

 

 

*그에게 행복감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익숙해진 한 가지에 사로잡혀 그것 없이는 못 살게 된 지경에 이른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자기 파괴적인 환락에 동참하도록 강요하면서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라피스) 수기와 문학의 차이

삶을 산다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요. 세상에는 내가 알 수 없는 고통이 참으로 많습니다. 옆에 있으면서 거저 배웠습니다. 내밀한 삶의 이야기 들려줘서 고맙습니다. 삶의 진실함, 삶의 무자비함으로 인해 글이 압도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머니와의 만남, 아버지의 용서가 연루되어 있는데 분리불가능하게 섞여 있는 감정이지만 엄마이야기, 아빠이야기 분리해서 더 정교하게 파고들었으면 좋았겠다 싶습니다. 수업시간에 학인들의 고통의 서사를 접하면서 생각합니다. 수기와 문학의 차이는 무엇일까. 수기를 넘어서는 기록문학의 가치를 갖기 위해서는 고통 자체보다(수기) 고통 이후의 변화(문학)에 주목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고통겨루기가 돼서는 안 되고, 자기 안에서의 쟁투를 주시해야지요. 고통의 본질은 계속 변한다는 것이니까요. 더 가벼워진 그래서 더 깊어진 글을 쓰려는 노력을 같이 기울여보면 좋겠습니다.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는 긴 세월 나는 너무 고통스러웠다. 아버지에 대한 용서는 나의 용서이기도 했다. 고통의 도가니에서 살아왔던 수십 년과의 결별이 필요했다. 나는 부모로부터 자유롭고 싶었으며 이제 행복하고 싶었다.

 

 

(지원) 질문의 힘은 뒷심에서 나온다

그늘진 얼굴. 글이 조리 있어요. 할 말 다 했네요. 뭐랄까 다큐멘터리의 인터뷰 장면을 본 거 같아요. 오해만 커지는 글-말이라면 차라리 침묵하겠다. 내 풍부한 감정이 고작 한 단어에 갇히는 게 싫다는 것. 누구나 하는 생각이죠. 말은 할수록 좌절되는 게 본질이에요. 그 한계 안에서 을 수단으로 살아야 해서 이 어려운 것이고요. 우리는 온전히 이해 받으려는 노력보다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 오해 받으면서 사고의 중심을 조금씩 잡아가는 방법을 연구해야하는지 몰라요. 상처 받기 싫어서 사랑하지 않기보다는 덜 상처주면서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하듯이. 지원씨는 직관적으로 답을 알고 있어요. “마음 한편 언짢음을 잘 품고 기회 닿을 때마다 생각을 구체화시켜 보세요. 마무리 잘 하려면 뒷심이 중요해요.

 

 

*이제는 나 혼자 뭔가를 감내한다는 게 너무 익숙해졌다. 어차피 내 인생 다른 사람이 살아주는 것 아니고, 흔히들 혼자 사는 인생이라던데 다른 사람한테 얘기해서 뭐하나 싶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 한편이 언짢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짱아치) 적절한 사례, 논리적 모순

문제설정이 재밌고 신선해요. 근데 다 조금씩 아쉬움. ‘안타까운 것은 친구가 친하면 친할수록 내 말을 듣지 않을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왜 그런지 궁금해요. 연인과 친구는 관계 역학이 분명히 많이 다르거든. 임상결과 제시 요망. ‘이러한 불통의 극단적 형태는 사랑이라는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연인 사이에 섣부른 돌직구 던지지 말고 미덕을 발견하고 칭찬해라, 이렇게 써놓고 아래 이상순과 이효리는 서로의 적절한 무관심이 금술의 비결이라고 했네요. 이거 차이가 있는데 얼버무린 느낌. 연인관계가 성장의 수단이 된다는 지적은 날카로운 지점.덕규 감각, 덕규 관점 치밀하게 파고들면 좋은 글 쓸 것으로 사료됨.

 

 

*언제나 성장해야 하는 성장 강박의 시대, 연인관계마저 자신의 성장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지적인 이성을 원한다. 이성의 작품, 가령 글이나 미술작품, 음악 등을 보며 그 사람에게 성적 매력을 느낀다. 그리고 그 끌림을 사랑이라 여긴다. 하지만 그 말에 속아서는 안 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성장시켜주는 이성이 아니라, 성장한 이성의 찬사를 원할 뿐이다.

 

 

(사띠) 행위 이전의 욕망의 층위까지

담백하고 정갈하게 차려진 요리를 보는 기분입니다. 사띠님 글은 주제전달력이 높아요. 주제로 이야기를 수렴시켜나가는 능력이 탁월하세요. 과식을 통한 소극적 자기 파괴. 그것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일상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휴식으로 다다르기 위한 그림자의 방편이었다는 게 설득력 있어요. 융의 그림자랑 벤야민의 파괴적 성격이랑 잘 엮으셨어요.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다만 일상 부분. 행위 이전 필자의 욕망이 아쉬워요.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일상에 대한 정보와 진술이 들어가야 합니다. , 어떤 이유로, 어떤 일을 하면서 빽빽한 일상을 보내야했는지 상세히 들어간다면 꿈의 해석에 대한 감응이 더 크겠지요.

 

 

*‘그 어떤 순간에도 그 다음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한다. 기왕에 존재하는 것을 그는 산산이 부순다. 부수어진 조각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조각난 것들 사이를 뚫고 생겨날 길을 위해서다’. 존재하는 것을 파괴를 하는 것은 그림자의 에너지이다. 하지만 생성된 길을 직시하는 것은 우리의 문제이다. 꿈속에서 멈추어버린 일상 사이로 약간의 틈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