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해야 안심이 돼요. 또 제가 그 당시 히트곡, 즉 매일 부르는 노래를 하는 자리가 아니라면 한 달반 전에 미리 섭외 약속이 끝난 무대에만 섭니다. 한 달반 동안 곡을 선별하고 머리부터 의상까지 무대를 구상하죠. 경상도 시민공연이면 ‘날 좀 보소’를 넣고, 호남지역이면 남진의 ‘저 푸른 초원위에’를 부르는 식입니다. 대학가 공연이면 '그래 나도 너희처럼 핫팬츠 입어줄게' 하고는 젊은 취향의 노래를 일명 빡세게 불러줍니다. 그리고 올드팝이나 트롯 등 옛날 노래를 꼭 한두 곡 집어넣습니다. 무조건 취향만 맞춰주는 게 아닌, 나의 정체성을 알리고 자존심을 세우면서 우리시대에는 이런 노래도 있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인순이... 열정의 노래를 들어라
언제부터일까. 인순이의 팬임을 자처하는 이들이 하나둘 늘어갔다. TV나 공연장에서 그녀를 보면 쉽사리 ‘열정의 포로’가 되는 탓이다.
꼬마불꽃 일렁이는 뜨거운 눈빛에 덜컥 감전되고, 언제나 당당하고 생기진 표정에 절로 기뻐지며, 마디마디 혼을 담은 노래에 사뭇 가슴 미어지고 만다.
어디 그뿐이랴. 나이를 거스르는 건강한 아름다움, 후배가수와 주거니 받거니 빠른 랩을 구사하는 열린 감성, 쇼의 진수를 선보이는 폭발적 무대매너 등등.
오랜 세월 치열한 삶속에서 발효된 그녀의 열정바이러스는 남녀노소 걸림 없이 가슴에서 가슴으로 번져가고 있다.
데뷔 30주년. 마침내 ‘열정의 디바’로 등극한 인순이는 말한다. “열정은 꿈이다. 그리고 꿈은 꾸는 자에게만 이루어진다.”고.
●끼 “무대에서 나도 상상하지 못한 내 모습을 본다.”
『2007 아프리카 잠비아 에이즈 어린이 돕기-국민가수 인순이 사랑의 징검다리 콘서트』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금요일, 경기도 분당의 성마테오 성당에는 짤막한 초대장 같은 현수막이 나부꼈다. 어둑어둑 해가 저물자 좋은 공연도 보고 나눔의 기회도 가지려는 신도들이 형광색 막대를 들고 속속 자리를 메워갔다. 잠시 후 조명이 꺼지고 객석 뒤에서 그녀가 ‘Fly me to the moon’을 부르며 성큼성큼 무대로 나아갔다. 예의 그 열정에 탄 듯한 헤어스타일과 까만색 셔츠와 바지를 입은 날렵한 모습, 거기서 우러난 에스프레소처럼 진하고 감미로운 목소리에 객석에선 웅성웅성 수런거림이 들려오고 열렬한 박수가 쏟아졌다.
“안녕하세요. 인순이입니다.” 정감어린 인사에 이어 ‘친구여’ ‘Once there was a love’ ‘잠깐’ ‘열정’ 등 발라드부터 댄스, 힙합, 트롯 등 장르를 넘나들며 열창의 무대를 선보였다. 중간 중간 유년 시절 추억을 곁들인 재치 만발한 입담으로 관객을 사로잡은 그녀는 “여러분이 낸 입장료는 수녀님들이 잠비아에서 병원과 학교를 짓는데 쓰인다.”고 말한 후 ‘밤이면 밤마다’를 불렀다. 예배당의 단출한 무대는 단숨에 용광로처럼 달아올랐다. 스스로 마이크이자 고출력 스피커이고 현란한 조명이 된 그녀의 열정적 춤과 노래는, 고집스럽게 엉덩이를 붙이고 박수만 치던 몇몇 중년의 관객들까지 벌떡 일으켜 결국 ‘hands up'의 물결에 동참시켰다.
“무대에서 내려오면 방금 무슨 얘기를 어떻게 했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나요. 공연의 흐름에 완전히 빠져들죠. 때로는 나도 상상하지 못했던 내 모습을 봅니다. 오랜 세월 무대에 서니까 그렇게 세팅이 된 거 같아요. 노래 부를 때 여전히 가슴이 설레고 즐거우니까 이런 게 운명이겠죠.”
● 힘 “나를 통해 내 연령대의 사람들이 젊어졌으면 좋겠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가수로서 생의 운명을 만들어간 인순이. 하지만 팔색조 매력을 발산하는 열정적 무대 뒤에는 치밀한 자기관리가 뒷받침됐다. 먼저 그녀는 공연을 위해서 체력은 기본이고 옷에 맞춰 사람의 손짓이나 몸짓이 변하기 때문에 몸매관리도 중요하다며 오후 6시 이후에는 거의 먹지 않고 매일 아침 체중계에 올라간다고 말했다. 또 그녀의 허리춤에는 만보계가 달려있다.
“될 수 있으면 많이 걷고 틈날 때마다 등산을 갑니다. 다리 힘을 기르기 위해서죠. 두 다리를 무대에 굳건하게 지탱해야 노래 부를 때 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윗몸일으키기도 매일합니다. 가수는 배에 힘이 좋아야 소리가 제대로 나오거든요.”
두 시간 동안 무대를 종횡으로 누비며 열창해도 음정과 박자의 흔들림 없기로 유명한 실력파 가수 인순이의 명성은 1978년 데뷔 이래 튼튼하게 뿌리내린 생활습관 덕이다. 또한 그녀는 음악 듣는 귀 역시 쉼 없이 단련시킨다. 장르 불문하고 계속 듣고 또 듣고 부르고 또 불러본다. 그렇게 애창곡이 된 '거위의 꿈'은 원래 김동률과 이적이 함께한 그룹 <카니발>의 노래로 혼혈인의 어려움을 딛고 당당히 꿈을 이룬 그녀가 리메이크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 중이다.
이밖에도 코요태 출신의 김구를 ‘열정’ 리믹스 버전의 래퍼로 참여시키는 등 후배와의 음악적 교류가 활발하다. 왕년의 히트곡에 안주하며 나이 들어가는 중년의 가수이길 단호히 거부하는 인순이. 꾸준한 노력과 도전으로 몸도 음악도 갈수록 젊음을 유지하는 그녀는 “내 연령대의 사람들이 나를 통해 젊어졌으면 좋겠다. 중년들도 스스로 노래를 다운로드 받으며 젊어졌으면 좋겠다.”는 착한 소망을 밝혔다.
●혼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한다.”
초대형 공연부터 크고 작은 자선공연, 전국투어 정기 콘서트까지 인순이는 참으로 다양한 무대에 선다. 무대를 선택하는 기준은 단 하나. 시쳇말로 “필이 꽂히는가.”에 따른다.
“어느 한곳에 머물러 영웅이 되기보다는 마음이 시키는 대로 자유롭게 다닙니다. 큰 공연은 하고 작은 공연은 안 하고 그런 건 없습니다. 특히 연말이면 자선공연 의뢰가 많은데 마음이 움직이는 걸 택합니다. 너무 상업적 의도로 계산된 공연은 거부하고 인간적인 진정성에 마음이 끌리는 편이죠.”
지난 상반기에도 ‘전회 매진’을 기록하며 전국투어 콘서트를 성공리에 마친 인순이는 10월부터 다시 하반기 전국 투어에 다시 나선다. “일 년 내내 전국을 돈다.”는 그녀는 지금까지는 대도시 위주로 공연을 했지만 앞으로는 기회가 닿는 대로 중소도시 문화회관을 찾아가 소규모 공연을 해볼 참이라고 말했다. “농사짓는 분들, 어렵게 사시는 분들 등등...어쩌면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 그분들의 사랑이 밑거름이 된 거거든요.”
● 깡 “ 당당하게 완벽하게 재미있게”
무대경력 30년. 늘 복받치는 감동을 선사하며 현재진행형 전성기를 구가하는 그녀지만 겸손함과 초심을 결코 잃지 않는다. 열린음악회 등 여러 가수들이 서는 공연에서는 인순이 만이 유일하게 마이크를 들고 리허설에 참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오케스트라와 맞춰보고 그걸 녹음해서 듣고 어색한 부분을 다시 고치는 작업을 반복한다.
“그렇게 해야 안심이 돼요. 또 제가 그 당시 히트곡, 즉 매일 부르는 노래를 하는 자리가 아니라면 한 달반 전에 미리 섭외 약속이 끝난 무대에만 섭니다. 한 달반 동안 곡을 선별하고 머리부터 의상까지 무대를 구상하죠.
경상도 시민공연이면 ‘날 좀 보소’를 넣고, 호남지역이면 남진의 ‘저 푸른 초원위에’를 부르는 식입니다. 대학가 공연이면 그래 나도 너희처럼 핫팬츠 입어줄게 하고는 젊은 취향의 노래를 일명 빡세게 불러줍니다. 그리고 올드팝이나 트롯 등 옛날 노래를 꼭 한두 곡 집어넣습니다. 무조건 취향만 맞춰주는 게 아닌, 나의 정체성을 알리고 자존심을 세우면서 우리시대에는 이런 노래도 있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당당하게, 완벽하게, 그리고 미치도록 재미있게’라는 소신에는 타협이 없어 보였다. 그녀의 삶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넘치는 ‘끼’와 다부진 ‘깡. 여기서 피어난 인순이의 열정 파워가 세대를 넘고 시대를 넘고 지역을 넘어 마치 태풍처럼 커다란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꿈 “열정은 꿈이다.”
인순이의 쉼표이자 에너지원은 딸 세인(13)이다. 딸의 이야기를 꺼내자 금세 얼굴이 대낮처럼 환해진다. 이 날 공연장 오기 전에도 세인이의 생일파티를 위해 함께 마트에서 장을 봐왔다며 내일 세인이 친구들을 초대해 고기파티를 열어줄 계획이라고 한다. 사실 아이를 낳으면서부터 그녀는 일 년에 한두 달은 꼭 활동을 중단하고 온전히 엄마로 살아왔다. 하루 종일 아이와 붙어 지내며 학교를 바래다주기도 하고 밤에는 품에 꼭 끼고 자는가하면 지난여름에는 미국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일체의 머뭇거림도 없이 그녀는 말한다. “나의 보물 1호는 박세인”이라고.
“세인이에게 좋은 엄마 되는 것, 대중들에게 영원히 사랑받는 가수가 되는 것은 한 모습이겠지요. 할 수 있는 그날까지 무대에 서고 싶습니다. 올해가 데뷔 30주년이라고 주위에서 자꾸 얘기 하는데 몇 주년 챙기면 ‘노땅’같아서 별로이긴 해요. 그리고 꼭 세월을 10년 단위로 자를 필요는 없잖아요. 그래서 내년에 31주년을 기념공연을 할 생각입니다. 또 내년 하반기에는 콘서트 말고 라스베가스의 버라이어티 쇼 같은, 진짜 ‘쇼’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공연을 한 번 해보고 싶어요. 정말 멋지게요.”
마치 꿈 많은 소녀처럼 오밀조밀한 꿈 보따리를 펼쳐놓는 인순이. 그녀는 “열정은 곧 꿈”이라며 “꿈이 있는 자에게만 열정은 샘솟고, 열정은 다시 꿈을 만든다.”고 말했다. 그렇다. 열정이 곧 꿈, 꿈이 곧 노래, 노래가 곧 열정, 열정이 곧 인순이다. 가수로서 최고로 아름다운 열정의 실루엣을 보여주고 있는 인순이에게 ‘열정’ ‘거위의 꿈’ 같은 노래가 신데델라 구두처럼 딱 들어맞았던 것은 그녀의 삶과 노래가 정직하게 일치한 때문이리라. 김송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