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환경운동은 쉽다. 그리고 즐겁다. 딱딱한 생태이론 대신에 실생활 지침 ‘환경사랑 10계명’을 제시하고, <김치, 된장, 청국장><한강은 흐른다>등 멋진 노래를 손수 만들어 부른다. 또한 해박한 논리와 타고난 생태감수성으로 자연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환경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날이 갈수록 청푸른 기운 내뿜는 나무처럼, 일구월심 환경사랑을 전파하는 이기영 호서대 식품생물공학과 교수를 만났다.
이면지 명함 ..호서대학교 자연과학관 328호.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간 그의 방은 마치 아늑한 카페를 연상케 한다. 벽면엔 그가 직접 그린 아름다운 여인과 딸의 초상화 두 점이 걸려있고, 한 켠에 기타가 비스듬히 기대어 섰다. 그 앞엔 악보가 널려있다. 의자에는 하얀 가운이, 책상에는 그가 개발한 유기농 두유, 천년초로 만든 치약, 생약 비누가 있다. 나란한 곳에 역시 그가 발매한 음반과 책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환경사랑 10계명’이 적힌 판넬도 눈에 띈다. 때마침 창밖에는 장맛비가 촉촉이 내리고, 나무들이 유리창에 살며시 몸을 기대와 푸르름을 더했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단순히 운치 있는 카페가 아니다. 한 사람의 삶과 자연, 낭만이 어우러진 보물창고다.
“안녕하세요. 이기영입니다.” 이 풍요로운 ‘자기만의 방’의 주인장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웬 종이를 건넨다. 손가락 두 마디만한 그것의 정체는 바로 명함. 이면지에 이름과 연락처가 적혀있다. 필요한 사항만 전달하면 그만이지 복잡하게 만들 필요 있냐고 묻는다.
눅눅한 날씨지만 에어컨도 켜지 않는다. 아예 그의 방엔 에어컨이 없다. 한여름에도 맨발에 반바지와 모시남방으로 더위를 이긴다고 한다. ‘냉난방을 자제하자.’ ‘검소함을 자랑삼고 사치를 부끄러워하자.’등 환경사랑 10계명을 몸소 실천한다. 누구나 알지만 좀처럼 실행이 어려운 일을 척척 해내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가 바로 환경사랑 10계명을 만든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1998년에 음식물 쓰레기를 이용해 가축 사료를 만드는 법을 연구하여 천주교 환경과학자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자연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생활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환경보호를 위한 연구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그 해에 바로 환경사랑 10계명을 일간지에 발표했고, 환경노래 ‘지구를 위하여’를 만들었습니다. 서초구민회관 강연에서 처음으로 노래를 불렀는데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가 환경노래를 만들 게 된 계기는 이렇다. 어릴 적부터 자연에 파묻혀 자란 탓에 생태 감수성이 풍부하고, 미술·음악 등 예술적 재능이 뛰어났다고 한다. 중학생 때 독학으로 기타를 깨우쳤고, 고려대 식품공학과 재학 중에는 통기타를 치는 캠퍼스 싱어로 통할만큼 음악을 사랑했다. 그러던 중 베를린 유학시절, 아이들이 “빨간 불엔 멈추고, 파란 불엔 걸어요.”라며 공공규칙을 노래로 부르는 것을 목도했다. 흥겹게 사회규범을 배우는 장면을 통해 그의 두뇌에서는 노래와 환경운동의 ‘화학반응’이 일어난 것이다. 이후 <갯벌나라> <파란마음> <우린 절약이 가족> <열무우꽃> <김치, 된장, 청국장> <한강은 흐른다> 등의 노래가 그에게서 줄줄이 탄생했다. 어렵고 딱딱한 계몽방식에서 벗어나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다가가는 ‘신나는 환경운동’의 새 지평을 활짝 열어젖힌 것이다.
자작곡 환경사랑 노래로 촉촉이 적셔
워낙 명쾌한 논리와 즐거운 노래가 버무려진 맛깔스런 활동을 펼치는지라 그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매년 개최되는 ‘천주교 환경음악회’뿐만 아니라 ‘자연사랑 문화예술인 한마당’ ‘불우이웃 돕기 나눔 음악회’ 등 크고 작은 공연에 참가한다. 뿐만 아니라 기업체, 문화센터 등 강연에서도 반드시 노래를 부르는데, 오세영 시인이 가사를 쓰고 그가 곡을 붙인 <한강은 흐른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라고 한다.
“한강은 우리민족의 대동맥이자 젖줄입니다. 이 소중한 한강이 날로 오염되고 개발의 대상으로만 취급되는 거 같아 너무 안타깝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한강 행주 나루터에서 태어나서 아버지와 낚시하던 일, 빙판에서 스케이트 타던 일 등 한강에 대한 추억이 많습니다. 한강을 지켜야 한다는 애절함을 담아 노래를 부르다보면 어떨 때는 눈물이 흐르기도 합니다. 그러면 관중들도 같이 눈시울을 적시지요. 노래로 이루지 못할 것은 없습니다.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움직이니까요.”
이밖에도 그에겐 잊지 못할 ‘강연의 추억’이 많다. 한 번은 어느 교회에서 그의 저서 <지구가 정말 이상하다>를 200권 사갔는데 교인들이 일일이 독후감 쓴 걸 책으로 만들어 선물해주었다고 한다. 그는 가보 다루듯 섬세한 손길로 하늘색 표지의 제본을 꺼내어 보이며 “정말 태어나서 이런 감격은 처음”이었다고 고백했다.
순간순간 이렇게 쌓인 감동과 갈채는 고스란히 그의 열정으로 갈무리 된다. 그리고 그 열정은 폐교 위기에 놓인 시골학교를 되살릴 만큼 뜨겁고 힘이 세다. 그는 가장 보람찬 일로 거산초등학교를 되살린 일을 꼽았다.
“거산초등학교는 학생 수 감소로 한때 폐교의 위기에 몰렸습니다. 마을의 미래를 걱정한 주민들과 힘을 합해 폐교 반대 운동에 나섰고 독서모임에서 만난 교사 6명이 전근을 자청하는 등 학교 살리기에 노력했습니다. 3년 만에 다시 간판을 되찾고 이제는 전국에서 오고 싶어 하는 생태명문학교가 됐습니다. 전국적으로 이런 학교를 늘리는 것이 제 할 일입니다.” 6년 전부터 지금껏, 그는 매달 마지막 토요일이면 거산초등학교를 찾아가 아이들과 함께 ‘노래하는 환경교실’을 열고 있다.
“우리 것 다시 살리고, 간소한 삶을 살자”
그의 환경운동은 이토록 오래고 뭉근하다. 그에겐 환경운동이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우리 것을 다시 살리자’와 ‘간소한 삶을 살자’를 가슴에 품고 하루하루 살아감은, 자연스레 환경사랑 메시지로 전국 방방곡곡 메아리친다.
“아침 6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냉수마찰을 하고 정신이 맑을 때 글을 씁니다. 낮에는 학교에 나가서 일하고 책보고 저녁에는 강연을 다닙니다. 어떤 날은 녹초가 돼서 ‘오늘 강연을 어떻게 하나’ 싶다가도 2시간 강연하고 나면 거꾸로 다시 힘이 불끈 솟습니다.”
그는 강연활동 외에도 각종 매체의 환경 칼럼니스트, 저술가, 환경 관련 단체의 자문역으로 활약한다. 일주일에 두 번 KBS, TBS 라디오에 출연한다. 틈틈이 가사도 쓰고 곡 작업을 한다. 한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지만 너끈하다는 눈치다. 외려 좋은 생각과 아름다운 음악을 나누니 “늘 행복하다”며 웃는다. 하얀 모시 남방 차려입은 정갈한 중년의 남자가 보여주는 순박한 미소, 두 눈 지그시 감고 혼을 다해 열창하는 모습은 많은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열정, 가능성, 순수, 치열함, 나눔,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 김송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