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운 8할은 오빠들이다. 지나고 보니 열아홉 이후에는 늑대소굴에서 살았다. 그들을 남자로 보았을 리 만무하다. 사랑과 우정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킬 여지도 없었다. 성적인 것에 무지했다. 순결이데올로기가 내면화된 줄도 모른 채였다. 당시 내게 남자란 이성理性. 다른 성별이 아니라 합리적 존재였다. 같이 있으면 말도 통하고 배우는 것도 많고 즐거웠다. 좋은 사람의 좋은 기운에 끌렸고 그들도 나를 국민여동생처럼 예뻐했다.
가장 따랐던 선배A. 나의 사수였다. ‘대학에 가도 이런 공부만 하니까 내가 가르쳐 준다’며 호의를 베풀었다. 몇 개월 토요일에 그의 집을 드나들었다. 녹두에서 나온 감색 책 ‘세철’을 가방에 넣고 다녔다. 책을 읽고 묻고 답하고 정리했다. 영화 보면 과외선생님이랑 정분이 나기도 하던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선배B랑은 친했다. 요즘 같은 장마철이었다. 아침에 짐을 꾸려서 나왔는데 지방 분회 방문이 취소됐다. 집에 들어가기 아까웠다. 친구랑 ‘밤새워’ 놀고 싶었다. B에게 전화했다. 오늘 나 거기서 자도 돼? 과년한 처자가 겁도 없지가 아니라 그 땐 자연스러웠다. 노보를 만들다가 원고가 틀어질 때 전화하면 바로 글 한편을 생산해서 보내주곤 하던 선배다. 시랑 음악을 좋아했다. 여러모로 나랑 죽이 잘 맞았다.
자취방에 갔더니 책이 엄청 많았다. 얇은 영어잡지로 싸고 비닐로 또 덮은 시집을 펴자 군데군데 반듯한 줄이 쳐있었다. 빈틈없고 명민한 그답다고 생각했다. 당시는 교과서도 초중고딩은 달력으로, 대딩은 외국잡지로 쌌다. 책 포장이 유행이었다. 서점에서도 로고가 들어간 종이로 책을 포장해주었다. 암튼 그가 아끼는 시집을 선물해주었다. 지금도 가끔씩 들춰보며 그 밤을 떠올린다.
LP판을 틀어놓고 시집을 읽었다. 그가 자기의 성장기 앨범을 보여주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랑 찍은 사진과 가족사진을 보며 들었던 얘기가 좀 지루했던 기억이 난다. 밤새 이야기 나누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방이 좁았다. 나는 쿨쿨 잤는데 그도 단잠을 잤는지는 모르겠다. 다음날 비가 왔다. 우산 하나 같이 쓰고 아침을 먹으러 가는데 그가 자연스럽게 내 어깨에 손을 둘렀다. 에로틱한 포즈였으나, 야릇하기보다 오롯했다.
선배C는 길동무였다. 집 방향이 같았다. 일주일간 강원도 절에 들어가서 한방에서 지내면서 사소한 불장난도 일어나지 않았다. 회사통근버스에서 D선배와 손잡고 기대어 자는 꼴을 자주 보이는 바람에 스캔들이 좀 돌았지만 괘념치 않았다. 나중에 청첩장을 돌렸을 때 사내 동료들은 신랑이 D가 아닌 것에 의아해했을 정도다. 그러니 나는 무성적인 존재였던 거 같다. A,B,C,D,E...여러 오빠들과 적절한 친밀한 관계를 구축했지만 보건복지부 제작 청소년드라마도 이보다 더 건전할 순 없었다. 어쨌거나 C가 몇 년 뒤 남편이 되긴 했지만. A와 B가 그랬듯이 예정에 없던 일이다.
모든 남성들이 ‘육체적 관계를 배제(유보)한 감성동맹’을 원치는 않았다. 한강을 좋아하던 나는 야밤에 고수부지까지 따라가서 희희낙락 수다 떨던 참에 입맞춤을 당할 뻔한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나랑 같이 자고 싶었던 거 아니냐’고 물어오는 놈도 있었다. 기겁을 하고 도망갔다. 단교했다. 올 초엔가 포털뉴스에서 '여자가 새벽3시까지 같이 있으면 동침을 허락하는 것'이란 통계치 기사를 보고서야 20년 전 내 행위의 과실을 알아차렸다.
홍상수 영화에는 남녀가 자연스럽게 여관을 자주 가더라만, 난 그들을 육체적 쾌락에 눈 먼 속물이라며 혀를 찼다. 자나 깨나 성기결합만 떠올리는 수컷들이 그렇게 한심할 수가 없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섹스지상주의에 반기를 들었다. 상대를 쓰러뜨려 눕히지 않아도 남녀는 참숯처럼 뜨거운 밤을 새울 수 있고 섹스는 정말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때 해야 한다고 믿었다.
무겁고 엄숙했다. 꼭 천국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사랑을 꿈꿨다. 성인남녀 사이에서 예측 가능한 반응인데 살을 더듬는 남자를 흉악범 취급한 것도 조금은 미안했다. 성욕으로 영토화된 신체도 문제지만 고슴도치처럼 중무장한 신체도 정상은 아니었다. 나는 성적자기결정권을 갖고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을 지도 모르겠다. 나의 욕망은 80년대 시대정신과 당대의 사회적 규범에 의해 닫혀있었다. 국민여동생은 공백없이 엄마가 됐다. 꽃다운 나이에.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엄마로 산다는 것. 그것은 무성적 존재로 살아가라는 '성모' 지위에 '보모' 역할을 부여받는 일이었다.
칙칙하고 까칠하던 홍상수 영화가 부드럽고 유쾌해지면서 나도 점점 변해간다. <하하하>를 배꼽 잡고 보면서 부러운 거다. “아, 그동안과 비교도 안 되게 진짜 좋다” “여자는 사랑하는 사람 아니면 못 자요”하는 문소리의 앙큼한 고백. 사귀던 남자와 헤어지자마자 옛 애인에게 바로 전화하는 일초의 망설임도 없는 태도. 가벼움. 솔직함. 얽히고설킨 구질구질한 관계, 너절한 정념의 연쇄. 그것이 사랑임을 나는 인정한다. 돌아보면 주위가 인연의 꽃밭이었다. 황지우의 시구대로 얼마간의 고통(굴욕)을 지불하고 지나가는 길일 뿐이다. 더 아프거나 덜 아픈 사랑이 있을 뿐, 그리 대단한 사랑은 없다.